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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배인호가 아니었다

나는 푹 자고 일어났고, 깨어났을 때도 여전히 배인호 품속이었다.

그는 아직 자고 있었고, 나는 살며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옷은 의자에 걸쳐있었고, 냄새를 맡아보니 술 냄새가 진동했다. 역시 어제저녁에 많이 마셨나 보다.

이때 내 핸드폰 진동 알림이 울렸고, 또 아빠의 전화였다.

나는 거실로 나가서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지영아, 인호랑 언제 올 거니? 네 엄마가 음식도 다 사다 놨고, 오늘 직접 요리한대!”

아빠는 아주 많이 들떠 보였고, 사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아빠, 오늘 나랑 인호 씨 아마 못 갈 거 같아요...”

아빠는 지금까지 이 정도로 사위를 기다려 본 적이 없었고, 나는 차마 이어서 말할 수 없었다.

오늘 배인호는 세화 쪽에 가봐야 한다고 했고, 가끔 가서 현장도 살펴보곤 했다.

내 말을 듣고 난 아빠는 역시나 불쾌해하셨다.

“왜 못 온다는 거야? 너 인호한테 말하지 않은 거니? 아니면 인호가 오고 싶지 않대?”

우리가 결혼한 첫해에, 우리 집에서는 집에 종종 밥 먹으러 오라고 했었고 배인호는 항상 거절해 왔다. 그는 우리 엄마, 아빠 생일이나 대명절 때만 예의상으로 방문하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엄마·아빠도 그의 뜻을 알아채고 다시는 우리를 부르지 않았으며, 배인호에 대한 감정의 골도 더욱 깊어지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회사 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내 핸드폰을 뺏어 갔다.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배인호가 어느새 잠에서 깬 상태로 내 핸드폰을 뺏어 들고는 우리 아빠한테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님, 저희 이따 갈 수 있습니다.”

그의 이 한마디에 아빠는 만족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배인호는 핸드폰을 다시 나한테 건네주었고, 내가 멍하니 그를 보고 있자,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뭘 봐?”

“오늘 세화 쪽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얼른 핸드폰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오후에 가도 괜찮아.”

배인호는 네이비 컬러의 라운드넥 스웨터를 입었고, 넓은 어깨 때문에 스웨터가 아주 잘 어울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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