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탕 먹으며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고, 기선우의 재치 있는 말로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그리고 서울시에서 가장 큰 공원인 누리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큰 인공 호수가 있었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해서 아름답고 겨울에는 얼음층으로 덮여 있었다. 얼음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는데 그 앞에 멈춰서 관광객들이 빵을 으깨서 버리면 쪼아 먹었다.기선우도 빵 두 개를 사서 나에게 하나를 주었다. "누나, 새들한테 먹이로 줘보세요.""알았어." 빵을 뜯어 손으로 으깨서 호수에 던졌더니, 곧바로 새 몇 마리가 와서 쪼아먹는 모습이 아주 생기 넘쳐 보였다.빵을 먹인 후 둘이 다시 공원을 산책했다. 나는 평소에 산책은 거의 하지 않았다. 날씨가 상당히 추웠지만 너무 행복했다.마침내 우리는 가금산 산기슭에 이르렀다. 돌계단은 비교적 깨끗했다. 산 위의 눈은 산을 오르러 온 사람들에 의해 짓밟혀 거의 녹아 있었다.산을 오르는 길에 기선우는 갑자기 나에게 서란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남자를 부모님에게 소개해 주려고 집에 데리고 갔는데, 누나 남편은 아니라고 들었어요."이 말이 참 아이러니했다. 나는 잠시 멈춰서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배인호가 나중에 서란을 찾으러 왔었고, 나는 그때 우연히 서란네 집에 있었어.""서란의 집에 있었다고요??" 기선우는 깜짝 놀랐다."어, 서란의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했었어. 아주 열성적으로 한약을 지어다 주셔서 내가 가지러 갔었어." 나는 일들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기선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산을 계속 올랐다. 산 정상에 오를 때쯤에는 땀을 많이 흘려 재킷을 벗었더니 찬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가금산의 눈 덮인 풍경을 바라보니 정말 아름다웠다. 산기슭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시는 마치 겨울왕국 같았고 맑은 햇살 아래에서 빛났다."누나, 사진 찍어 드릴게요." 기선우는 배낭을 내려놓고 뚱뚱한 오렌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이걸 들고 사진을 찍는 건 어때요?"나는 가드레일에 기대어 뚱뚱한 오렌
나는 정아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기회 없다고 이미 말했어. 난 너희 오빠하고 남녀 사이에 그런 감정이 없어.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둬!”정아는 머리를 잡고 불쌍하게 대답했다.“만나 보기도 전에 아무 느낌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 지영아, 날 믿어봐. 우리 오빠 진짜 좋은 남자야. 만약 너랑 만나면서 너한테 못되게 굴거나 바람이라도 피우면 내 손에 죽을 거야! 약속할게!”박정환은 확실히 좋은 남자였다. 집안과 외모 모두 출중했고, 인품과 성격 면에서도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만약 감정이 억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그와 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감히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만약 서로 알아간 끝에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 헤어지기라도 하면 나와 정아의 사이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정아의 친오빠인 만큼, 백 퍼센트의 확신 없이는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정아야, 내 걱정은 하지 마! 난 그래도 결혼이라도 한번 해봤지만, 넌 남자친구도 없잖아! 빨리 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나는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어떤 남자가 좋은데? 안정적인 남자는 어때? 내가 우리 아빠한테 알아봐 달라고 할까?”자신의 얘기를 꺼내자, 정아는 시선을 피하며 움츠러들었다.“됐어! 난 카르페 디엠이야! 결혼은 나의 자유로운 영혼을 구속할 뿐이라고.”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고 나를 보며 말했다.“지영아, 나 술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적당히 마셔.”나는 어쩔 수 없이 한마디 당부했다.“알겠어!”정아는 백을 들고 서둘러 빠져나갔다.그녀가 떠나고 난 뒤 나는 위층에 올라가서 계속 물건을 정리했다. 재판이 열리기 전에 나는 청담동에서 나가고 싶었고, 행동으로 나의 결심을 보여주고 싶었다.옷과 액세서리가 너무 많아 캐리어 5개에 넣어 챙긴 뒤, 첼로와 악보를 챙기기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악보를 찾고 있다가 나는 먼지가 쌓인, 오래된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안에는 내가 작곡한
나는 아빠를 제지했다.“가지 마세요, 아빠. 제가 수년간 억울하게 당하며 살았다는 거 아시잖아요. 이제 다 내려놓았어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아빠가 그러시면 저희 가문에 좋지 않을 거예요. 이런 문제로 더 큰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나는 이런 일을 이미 한번 겪었기에 이성적이었다.설득 끝에 아빠는 나의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요구를 제시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만약 배인호와 서란이 들키기 전에 내가 이혼을 제기했다면 양가 부모님 모두 나를 설득하려 하셨을 것이다. 내가 이혼 소송을 하는 사실을 아직 몇 명이 모를 때 일이 밝혀진 것은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이다.통화가 끝나고 나는 고민하다가 이우범에게 전화를 걸었다.“어디 있어요?”이우범은 조금 걱정하는 듯했다.“시어머님이 서란을 찾아내 만난 건 알고 있어요?”“네, 알고 있어요. 인호 씨가 전화 와서 서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던데요.”나는 접시에 채소를 골라 먹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우범 씨도 내가 시어머니한테 서란의 일을 말씀드렸다고 생각해요?”이우범과 배인호는 좋은 친구이니 당연히 배인호의 편을 들 것이다. 그들 마음속에서 나는 쭉 배인호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원망스러운 여자였을 것이다.이우범은 재빨리 대답했다.“아니요. 지영 씨가 말하지 않았다는 거 알고 있어요.”나는 놀라서 물었다.“날 믿어요?”“네, 이혼하고 싶어 하잖아요? 지영 씨가 시어머니한테 말씀드리면 결국 일이 더 복잡해질 텐데요.”이우범은 대답했다.“우범 씨가 나를 믿어줄지는 몰랐네요. 고마워요.”나는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이우범은 또 물었다.나는 이미 이혼소송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니, 전화기 반대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침대에서 뒤척이는 듯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정말이에요?”나는 웃으며 말했다.“거짓일 리가
타이틀이 꽤 많아서 다 읽기가 힘들었다. 내용을 잠깐 읽다가 댓글만 읽었다.「젠장, 우리 여대생들 창피하게 하지 말아줄래? 세컨드가 신데렐라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이 여자 꽤 예쁘네. 유부남 만나지 않아도 다른 돈 많은 싱글남들 만날 수 있을 듯.」「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가 미친 것처럼 나만 좋아한다면 나도 빠져들 수밖에 없을 듯. 여자는 원래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부모님 다 계시고 남친도 있고 결혼은 안 했고 바람피운 적 없습니다. 그저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해 말했을 뿐. 욕하지 마세요.)」「배인호 와이프는 누구지? 매번 스캔들 날 때마다 침묵을 지키네. 어릴 때부터 도라도 닦으셨나요?」서란을 욕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나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배인호의 지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나조차도 모르는 다양한 ‘비밀’을 쓴 사람도 있었다. 나는 눈이 어지러워서 결국 댓글 창을 닫았다.이번 일에 관심이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잠잠해졌지만 아빠도 기사를 보신듯했다. 오늘은 인기 검색어에 올라 주변 지인들이 다 볼 것 같았다.어젯밤 서란이 뛰어내린 다음 배인호가 그녀를 구하려 뛰어드는 장면이 촬영되어 화제를 모았다. 역시나 친구들에게서 문자가 쏟아졌다.정아는 문자를 보냈다「젠장, 배인호 이 인간쓰레기! 세컨드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들어!」「지영아, 이번에 이혼소송 꼭 끝까지 가. 이런 남자 갖고 뭘 하겠어?」민정이가 문자를 보냈다.「이혼소송? 난 왜 몰랐지?」세희가 잘했다고 문자를 했다.「잘했어. 바람을 저렇게 당당하게 피우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이상하다 싶었는데. 누가 배인호가 서란을 구하는 걸 타이밍 좋게 찍을 수 있어? 내가 이상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서란이 다 계획하고 생쇼 한 거 아니야?」정아는 바로 감탄하며 문자를 보냈다.「!!!! 맞아!!! 며칠 전 지영이 시어머님이 그 불여시를 만났어. 걔 이런 방법으로 지영이 시어머니한테 보여 주려는 거야. 배인호가 자
전화를 끊고 박정환에게 가려는데 서란의 친구가 내 옆을 지나가며 어깨를 일부러 세게 부딪쳤다.“거기서!”나는 도저히 참아 줄 수 없어 그녀의 팔을 잡고 차갑게 말했다.“눈이 없어? 사과해.”나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친구들이 달려와 그녀를 불렀다.“유정아!”유정은 친구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의 손을 힘껏 쳐냈다.“아줌마, 나 왜 잡아요?”그녀는 서란과 같은 나이일 텐데 날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왜? 무슨 일이야?”유정의 친구가 물었다.“이 늙은 여자가 바로 서란을 자살하게 만든 사람이야.”유정은 직접적으로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그녀의 친구도 나를 보는 눈빛이 적대적으로 변했다. 나는 기가 차서 웃었다.“내가 서란을 자살하게 했다고? 잘못한 게 없으면 왜 자살하겠어? 읽은 책들은 다 개들 먹이로 줬나 봐? 예의도 윤리 의식도 없어?”“란이는 계속 당신 남편을 거절했어!”유정은 분노하며 말했다.“그쪽 남편이 계속 매달린 건데 왜 남편한테는 뭐라고 안 하는데? 다시 말해서 그쪽 부부 사이에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이익 관계라는 거 다들 알고 있어. 늙은 여자가 남편 사랑 못 받으니깐 마음이 비뚤어진 거 아니야?”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박정환은 내가 다른 사람과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다가왔다. 그는 나의 옆에 서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유정은 박정환을 보며 잠시 놀라는 것 같았다. 저 나이 때 여자애들은 당연히 잘생긴 남자에게 쉽게 끌린다. 아까 연주할 때도 나를 보며 옆에 있는 박정환을 쳐다보았다. 사람이 모여 있는 상태였으니 그녀는 나와 박정환이 모르는 사이인 줄 알았나 보다.“두 동생이 친구를 위해 싸우고 있어요.”나는 웃으며 말했다.“그 친구는 오빠도 알 거예요. 요즘 배인호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그 여자요.”박정환은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며 불쾌한 눈빛을 하고 나의 손을 잡았다.“끼리끼리 모인다고, 이런 것들이랑 무슨 말을 해?”그의 말에 격분한 유정은 우리 앞을 막으며 당당하게
나는 코웃음을 치고 대답하지 않았다. 배인호는 나의 아파트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말했다.“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네. 성격이 점점 더 급해져.”그는 그렇게 말한 뒤 코트를 벗어 의자에 던져 놓고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물었다.“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얘기해요.”“네 생각을 말해봐.”배인호는 내게 다시 물었다.“우리 집안에서 우리 이혼을 동의하지 않으실 거야.”나도 당연히 배씨 가문에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배인호의 태도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는 쭉 자기 고집대로 해왔던 사람인데 누가 반대해도 듣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전생에서 그의 미친 듯한 행동들은 내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혀 있었다.당연히 나도 미쳐있었고, 이우범도 미쳐있었다. 모두가 서란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는 왠지 지금 그가 전생에서만큼 서란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우범도 은연중에 내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인호 씨, 서란을 위해서 집안에 반항도 못 해요?”나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서란이 이렇게 쭉 세컨드로 살았으면 좋겠어요?”“세컨드 아니야.”배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세컨드라고 말한 것이 분명 불쾌했을 것이다.“그럼, 뭔데요?”나는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우리는 아직 이혼하기 전까지 서란이 세컨드가 아니면 천사예요?”배인호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도 며칠 전 기사와 댓글들을 보았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의 가치관은 여전히 정의로웠다. 모두 서란을 남의 가정에 끼어든 파렴치한 여자로 보고 있었다.사실 배인호가 전에 스캔들이 났던 여자들도 인터넷에서 욕을 먹었지만, 그 여자들은 대부분 연예인이기에 루머에 대한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러나 서란은 달랐다. 처음 이런 인터넷 폭력을 당하는 것이다. 자살을 선택한 것도 한편으론 어머님께 증명해 보이고 싶었겠지만, 또 한편으론 확실히 욕들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인호 씨, 예전에 나는 당신의 쿨하고 직설
내 생각에도 큰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은 일리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생각이 개방적시기에 나에게 회사를 물려받기를 강요하지 않으셨지만 나도 너무 이기적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배인호와 짧은 시간 내에 이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쓸데없는 감정에 허비하기보다는 자신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인생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큰아버지 알겠어요.”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성재 오빠가 만든 계열사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나랑 함께 출국해서 한동안 배우고 다시 돌아와서 배인호와의 일을 마무리 짓는 건 어떠니? 외국에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고.”큰아버지는 기뻐하시며 제안하셨다.우리 집안과 큰아버지께서 하는 사업은 같은 업계였다. 그저 국내와 해외로 나눌 뿐이다. 만약 내가 정말로 큰아버지한테 가서 배운다면 그것도 좋은 기회였다. 제일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질척거리지 않고 배인호와 한동안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는 나를 쳐다보시는 눈빛에 기대가 가득하셨다. 말로는 나에게 부담을 주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지만, 엄마 심장도 안 좋으시고 아빠도 곧 퇴직하실 때가 되었다. 나도 나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불효를 저지르는 것이었다.“좋아요. 큰아버지 큰어머니, 설 쇠고 제가 싱가포르로 같이 갈게요.”나는 더 생각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이 대답에 다들 기뻐하며 즐겁게 식사를 시작했다.식사를 마치고 큰아버지네는 서울시에 있는 자기 집으로 가셨다. 평소에 전문 업체에서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두어 우리 집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엄마와 아빠는 나를 둘러싸고 물으셨다“지영아, 너 정말 큰 아버지한테 가서 일할 거야?”“네, 엄마 아빠 저도 생각해 봤는데요. 음악은 저에게 정말 중요하고 가장 큰 취미예요.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오랫동안 내려놓았어요. 다시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비즈니스 배우면서 남는 시간에 첼로도 켜면 되죠. 아니에요?”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말했다.아빠는 깊은 한숨을 쉬시면서 아무 말씀도 하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서란을 바라보기만 했다.손바닥만 한 얼굴은 더욱 말랐고, 눈은 처음 만났을 때만큼 맑지 않았으며, 어깨는 살짝 굽어 있고, 하얀 캐시미어 코트로 그녀의 마른 몸을 가리지 못했다.카페에 들어오기 전 열심히 바른 빨간 립스틱이었는데 요즘 기분도 좋고 잠도 잘 자서 나는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아무도 모르는 사이 나와 서란의 역할이 바뀐 것 같았고, 그녀는 사랑에 빠진 비련의 여자이고,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방관자가 되었다.“서란아, 내가 시어머니에게 널 만나달라고 부탁했다고 배인호에게 왜 그렇게 말했어?”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말했다.“지영 언니...”서란은 깜짝 놀랐고, 죄책감이 들었는지 그녀의 눈은 나를 피했습니다.그녀의 불쌍한 외모 뒤에는 수많은 속임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배인호도 처음에는 내가 어머님에게 얘기했다고 믿었겠지만, 그것은 분명 서란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어머님이 서란을 만나고 나서 배인호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머님의 목적은 서란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지 문제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네가 나한테 오해를 뒤집어씌우고 사라져서 자살한 거 맞지? 오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지?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배인호가 나를 더 역겹고 미워할 테니까.”나는 한숨을 쉬었다.“그래도 넌 아직 어려. 배인호가 너를 좋아하긴 하지만 바보는 아니잖아. 이런 건 자기 엄마한테 물어보면 바로 들통나는 거야.”“너 때문에 그 사람이 자기 엄마에게 화를 내고 인연을 끊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내 말에 서란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내가 한 말이 틀림없었다.내가 고자질해서 시어머니가 찾아가서 자살했다면 결국 시어머니와 나는 모두 죄인 된다. 배인호가 정말 그녀를 좋아했다면 그는 분명 나와 자기 어머니를 무시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녀가 정말 멍청했다.서란은 입술은 깨물어 피가 날 것 같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