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는 돌아온 김에 지현이도 데려가고 노성민도 한번 찾아갈 예정이었다.그녀의 투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니 아마 자랑하러 가는 듯했다. 어쨌든 노성민이 아이를 그렇게나 신경 쓰고 있으니, 절대 세 아이 모두 정아가 데려가는 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이건 그 부부 사이의 일이라 나도 가끔 모순이 발생했을 때나 달래고 해결해 줄 수 있지, 시시콜콜 그들 일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정아가 떠난 후 나와 희선 언니는 로아와 승현이만 잘 보살피면 되는 것이다.저녁 9시쯤, 나는 최소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녀가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고 말이다.“허지영 씨, 저와 지영 씨 사이에 원한 같은 건 없는것 같은데, 굳이 저 이렇게 몰아붙일 필요 있어요? 지금 저 죽음으로까지 몰아붙일 예정인가요?”최소연은 다소 격앙되어 말했다.“혼자서 아이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거 허지영 씨도 잘 알잖아요. 저 직업까지 없으면 앞으로 어떡하라는 거예요?!”“그럼 퇴사하지 말고, 그 영상을 널리 퍼트리면 되잖아요?”나는 마음속으로 아무런 미동도 없었고 심지어 웃음이 나왔다.이게 세컨드들이 궁지에 몰리면 나오는 통일된 반응인가? 다들 자기 탓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네.최소연 역시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었다.그녀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어차피 그냥 영상 뿐이잖아요? 전 퇴사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지금 돈 많은 남자들한테 물어봐요. 누가 세컨드 한두 명쯤은 다 있다고요! 그리고 전 겁나지 않아요. 게다가 왜 배인호 대표님이 절 자르는거죠? 저는 그 분 회사직원도 아닌데 대체 뭔 권한으로 저를 자르냐고요!”그 말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배인호는 노성민이 선뜻 손을 쓰지 못할까 봐 대신 결정을 내려준 듯 했다.게다가 노성민이 그에 대한 신뢰도는, 그가 조금만 진지하게 나가면 바로 그의 말을 들을 것이다. 배인호와 노성민의 협업프로젝트는 주로 배 씨 그룹 위주이기에, 그가 직원 하나 자르는 건 어려운 일
배인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만 바라보았다.여긴 분명히 내 집이지만 마치 주도권을 빼앗긴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배인호가 거실에 들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이우범은 식재료를 들고 주방에 들어가 요리하기 시작했다.희선 언니는 로아와 승현이를 한창 달래고 있었다. 그러더니 현재의 광경을 보고는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을 내비쳤다.“저희 방으로 들어가요.”나는 희선 언니에게 말했고, 우리는 한사람이 한 명 씩 아이를 안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배인호와 멀뚱멀뚱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것만 생각하면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게다가 배인호에게 좋은 표정 또한 짓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노성민에게 보낸 문자가 빈이라는 걸 믿고 있는 배인호에게 그냥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방에 들어간 로아는 기분이 좋지 않은 듯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평소에 얌전하던 애가 배인호가 올 때면 꼭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저는 때때로 혈연 감응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로아안고 정원에 좀 나가볼게요.”나는 로아를 안은 채 희선 언니에게 말했다. 희선 언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에 남아 승현이를 보살폈다.그 시각, 배인호는 혼자서 거실 소파에 긴 다리를 꼰 채 앉아있었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씩 마시며 전혀 어색함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나는 말없이 그를 흘겨보았다.아니 갑자기 뭔 밥을 먹겠다고 난리인 거야?아마 잠시 후 나는 밥이 목구멍에 제대로 넘어갈 것 같지 않다!“으앙…”로아는 또다시 울기 시작했고 부드러운 피부에는 땀이 맺혀나오며 지금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은지 알 수 있었다.나는 로아를 안고 정원에서 왔다 갔다 하며 흔들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게다가 도저와 비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평소에 도저와 비비를 무척 좋아하던 로아였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나는 로아가 울다가 뭔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평소에 이우범이 안
“저 요리하러 갈게요.”결국 이우범은 두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주방으로 향했다.그 순간 나는 이우범이 안타까우면서도, 그와 동시에 죄책감을 느꼈다. 배인호는 그 시각 나와 이우범의 변화에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는 단지 로아의 눈매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바라보며 슬픔이 담긴 말투로 입을 열었다.“만약 그때 우리 딸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 생겼겠지?”나는 단 한 번도 배인호에게 아이의 성별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고,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그 아이 이야기만 하면 나는 가슴이 아파 났다.“근데 딸인 건 어떻게 알아요?”나는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 임신검사 기록을 조사해 봤어. 그래서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배인호는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봤다.“뭔 일이요?”나는 배인호가 그걸 조사해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배인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에는 이런저런 고민이 가득 차 보였다. 그는 평소에 시원시원한 성격이고 그 어떠한 일도 거의 질질 끌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머뭇거린다는 건 그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나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일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설마 또 로아와 승현이의 친자확인 관련된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절대로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내가 너 임신검사 기록은 조사해 봤지만, 아이에 관한 결과는 너한테만 있대. 그거 아직 갖고 있어?”배인호는 끝내 입을 열었고, 그 내용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내 첫 번째 아이에 관한 건 겨우 아이의 오관을 볼 수 있는 사진한장뿐이었다. 나는 그걸 항상 보관해 왔었고, 그 사실에 대해 잃어버린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만약 아직 갖고 있다면 나 한 번만 볼 수 있어?”배인호는 거의 간청하는 태도로 나에게 말했다.그렇게 까칠하고 차갑던 남자가 아이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다니.그에게는 이미 빈이가 있고, 그와 나 사이에서의
이우범은 빤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그 눈동자는 다소 슬퍼 보였다.“내가 그런 것도 생각 안 해봤을 것 같아요?”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는 신중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이런 것 또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어쩌면 나보다도 더 깊게 고민했을 수도 있다.“고민해 봤으면 여기서 그만 멈춰야죠. 이우범 씨, 당신은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예요. 근데 우범 씨 행복은 저한테 없어요.”어느새 내 목소리는 막힌 듯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난 그렇게 못하겠어요. 그런 것보다도 더 무서운 건 지영 씨가 제 곁에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지영 씨가 알려줘요.”이우범의 눈빛에는 우울함이 뒤덮였고, 나는 더욱더 강렬하게 죄책감이 들었다.예전의 이우범은 시크하고 다가가기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한테나 냉담한 태도였고 그 어떠한 일도 그에게 영향 같은 건 끼치지 않았다. 물론 전생에 서란을 위해 그렇게 변한 것 빼고 말이다. 그 외에 다른 순간 그는 단 한 번도 이성을 잃은 적이 없었고, 모든 일도 자신의 계획안에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그는 마치 내가 그를 이렇게 만든 것만 같았다.이건 내 의도가 아닐뿐더러 애초부터 내 예상 밖을 벗어난 일이었다.“우리 결혼해요.”갑자기 이우범이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 색은 비교적 옅었지만 촉촉해 보였고, 말을 할 때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맑고 매력적이었다.이어서 그는 주머니에서 전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허지영 씨, 저와 결혼해 주면 안 돼요? 제가 앞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지라도 전 좋아요.”“제발 바보 같은 짓 그만해요. 네?”나는 눈가의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전에 우범 씨 어머님이 반대하시던 거 기억 안 나요? 지금 이미 여기 없어도, 그래도…”어머니의 말만 꺼내면 이우범의 표정에는 미세하게 변화가 일어났다. 생전에 이우범 어머니는 나와 그를 그토록 반대했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러면 민설아 믿어요?”나는 이어서 물었다. 사실 내가 물으려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단지 전생에 이우범이 했던 일들이 생각났을 뿐이고, 그의 본성도 배인호와 똑같게 미치광이였다.나는 혹시라도 그가 나 때문에 민설아 사이에 말 못할 비밀이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이우범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고개를 살짝 내린 채 나를 바라봤다. 그의 흰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었고 그의 얼굴에는 차가움과 부드러움이 섞여 있었으며, 목소리 또한 중저음에 매력적이었다.“내가 어떻게 민설아를 믿을 수 있겠어요? 난 오직 지영 씨만 믿어요. 그러니 계속 저 밀어내지만 말아줘요. 네?”이때 그의 품속에 있던 승현이는 갑자기 웃어 보였고, 그 목소리는 귀엽기 그지없었다.“승현이가 동의했네요. 로아는 동의할지 모르겠네요?”이우범은 고개를 돌려 내 품 안에 있는 로아를 바라보았다.그는 일부러 대화 주제를 돌리며 내 대답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로아는 얌전히 있었으며, 배인호에게 안기고 난 뒤 마치 모든 수요가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기분이 좋은지 계속하여 자기의 작은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가끔 소리를 내며 웃어 보였다.“이제 다시 말해요.”내 마음은 그 순간 다소 혼란스러웠고, 더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일단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하지만 내가 내뱉은 그 한마디에 이우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시크하던 남자가 지금 그 순간은 애써 유지하던 평정심을 뒤로하고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래요.”그는 고개를 숙여 승현이에게 뽀뽀했다.——3일 후, 나는 정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나는 최소연이 해고된 후, 그녀와 노성민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뒤, 노성민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전화는 정아의 작별 인사 전화였다.“지영아, 나랑 노성민 이혼하기로 했어. 이혼 수속만 끝나면 나 애들 데리고 서울로 가려고.”
노성민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 순간 내 시선은 무심코 배인호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에는 종잡을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왜 이혼하고 싶지 않은데?”정아가 되묻기도 전에 배인호가 오히려 노성민에게 물었다. 그 말투는 나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내가 잘못했으니까요. 내가 남녀 사이의 선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최소연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도움이 내 와이프가 나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었어. 이건 정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야.”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지, 첫마디를 내뱉은 뒤 노성민은 이미 준비라도 한 듯이 그 뒤에는 술술 말을 내뱉었다.그는 용기를 내 정아를 바라보았다.“여보, 나랑 이혼 안 하면 안 돼? 나에게 기회 한 번만 더 줘. 절대 똑같은 반복하지 않을 거야.”정아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가 있었지만, 마음이 움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는 노성민을 잠깐 바라보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노성민, 네가 나 알고 난 뒤로부터, 넌 내 성격에 대해 알았을 거야. 난 내 의견 굽히지 않아.”그 짧은 몇 마디에 노성민의 얼굴은 굳어졌다. 평소에는 철없는 귀공자가 지금은 길가에 내다 버려진 강아지같이 풀이 죽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정아가 이토록 마음을 굳게 먹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노성민이 어떻게 그녀에게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정아야, 너…”나는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참았다. 왜냐하면 정아의 선택을 지지해 주고 이해해 주기로 했으니 말이다.“계속 말해.”배인호는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듯했다. 노성민은 그 몇 마디를 한 뒤 정아에게 거절당하고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인호 형, 내가 뭘 더 말해?”노성민의 목소리는 낮고 퇴폐했다.“할 말 있으면 지금 다 말해. 지금 안 하고 이혼한 뒤에 말하려고 그러는 거야? 어떤 말은 정해진 시간 내에 말해야 그 효과도 더 발
정아는 눈물을 닦아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맞아, 나도 여왕벌이긴 했지. 지금은 왜 이렇게 약해 진 건지 모르겠어. 사랑이 인간을 죽도록 괴롭히긴 하나 봐.”나는 정아를 따라 미소를 지었다.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나도 사랑 때문에 10년이라는 청춘을 소모했었다.“다 지난 일이지. 지영아, 너 먼저 집에 가. 애들이 기다리겠다. 난 혼자서 좀 걸으려고.”지금 정아의 기분은 많이 다운돼 보였다. 내가 함께 있어 주고 싶었지만 가끔 기분이 심하게 나쁠 때는 혼자서 조용히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도움이 된다.나는 할 말이 더 있긴 했지만 정아가 유모차를 밀며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햇빛 사이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빛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운 그림자가 비쳐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팠다.배인호와 노성민은 얘기를 나누느라 아직 나오지 않았다.차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휙 지나가는 작은 그림자가 왠지 빈이 같았다.확실하지 않아 차에 타서 10초 정도 기다려보니 역시나 빈이가 튀어나왔다. 빈이는 자기의 손목시계를 보며 수상쩍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빈이의 주위에 민설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혹시 배인호가 데려온 것일까? 하지만 배인호가 빈이를 혼자밖에 놔둘 가능성은 없었다.가끔 나는 빈이가 조금 싫었다. 너무 장난꾸러기이기도 했지만 민설아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막무가내일 때가 많았다. 그것들이 나는 조금 불편했지만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배인호에게 빈이를 데려가라고 연락하려는데 빈이가 갑자기 횡단보도로 달려갔다. 신호등도 보지 않고 다급해 보였다. 한 빨간 차량이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면 빈이는 차에 치일 뻔했다.빈이도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더니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누구 집 애야? 죽으려고 환장했어?”빨간 차량의 주인은 큰 목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 중에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나는 전화를 할 새도 없이 재빨리 달려갔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빈
만약 배인호의 지력에 문제가 없다면 나의 어이없는 눈빛의 뜻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나를 왜 쳐다보고 있는 거지? 우리는 부부가 아니고 셋이 한 가족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거절하면 될 것을.’결국 빈이가 입을 열었다. 빈이는 매우 기분 나빠하며 판매원에게 말했다.“아줌마, 왜 아무 말이나 막 해요? 이 아줌마는 우리 마미 아니에요. 근데 이 사람은 우리 아빠예요.”빈이는 나를 한 번 보더니 입술을 삐쭉이며 기분 나빠하고 있었다.판매원은 놀라더니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론이 좋지 않은 듯 갑자기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다른 판매원과 눈빛을 교환했다.“그러시군요. 저희가 잘못 봤습니다.”판매원은 화보집을 가지고선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나도 별다른 생각 없이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배인호는 빈이의 손을 잡고 멀지 않은 곳에서 따라왔다. 내가 두 판매원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의 귓속말이 들려왔다.“저런 여자는 정말...”“그러게, 남자가 아이까지 데리고 나왔는데 저 여자는 부끄럽지도 않나?”“저 남자 멋있고 돈도 많아 보이니까 들이대는 거겠지.”서로 얘기를 나누더니 한 명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기까지 했다. 내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더니 그녀는 당황하며 서둘러 나에게서 멀어졌다.그런데 나는 이미 들었다. 이런 모욕적인 얘기를 어떻게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있을까?“거기 서!”나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두 사람에게 정확히 들릴 정도였다.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췄지만 나를 돌아보더니 곧바로 앞으로 걸어가며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멀지 않은 곳에 그들의 스튜디오가 있었다.두 사람이 곧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나는 재빨리 문 앞으로 다가가 그녀들의 앞을 막아섰다.배인호는 상황을 보더니 빈이를 데리고 다가왔다.“무슨 일이야?”“두 사람 아까 했던 말 다시 해봐요.”나는 배인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강렬한 눈빛으로 두 판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