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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독한 말

“그때는 내가 좀 바빴어. 허지영,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배인호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기세등등해서 말했다.

나는 앉은 채로 약간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인호의 눈이 빨개지더니 이내 충혈되었다.

“나와 약속한 건 다 거짓말이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계속해 물었다.

“나는 네 아빠 사건을 해결하고 너는 나와 재결합해서 아이를 낳겠다고 했잖아. 근데 아무 말 없이 떠났고 낳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아이라고 하고. 도대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민설아가 돌아오면서 내 가슴에 박혀 있던 가시도 점점 더 뒤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조금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배인호가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나를 되돌리고 싶다고 한순간 나는 민설아와 대적할 힘이 조금 생긴 것 같았다.

이우범이 내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줘도 나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특히 민설아가 배인호 앞에 두세 번 정도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나타난 적이 있는데 배인호는 목소리로 민설아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점이 나를 기쁘게 했다. 나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굳이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목소리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인호가 민설아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건 배인호의 마음속에 민설아는 이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단순했다.

민설아가 배인호와 서란의 약혼식에 아무런 숨김없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몇 초 나타난 것만으로 배인호는 나를 가차 없이 버렸다.

그 순간 내 마음속의 마지막 환상도 같이 사라졌다.

배인호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망설여도, 나에게 미련이 남아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미 되돌릴 수 없어요. 그냥 내가 미안한 걸로 하죠.”

내가 답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배인호는 약간 삐뚤어진 미소를 지었다.

“민설아 때문이라면 왜 민설아가 나타나기 전에 임신한 거야?”

“민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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