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이긴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고요한 거실에 핸드폰 소리가 갑자기 울리자 나는 심장이 떨려왔다. 누가 걸어온 전화인지 확인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걸어온 전화였다.받고 싶지 않았지만 안 받으면 오히려 더 의심을 살까 봐 배인호에게 “쉿”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지영아, 어디야? 왜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와?”엄마가 매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투는 듣는 사람이 큰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빨리 돌아갈게요. 세희랑 밖에서 돌고 있어요.”나는 아무렇게나 이유를 둘러댔지만, 마음속은 당황하기 그지없었다.“세희랑 있다는 거 진짜야?”엄마가 의심하며 물었다.“그럼 좀 바꿔봐.”일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배인호를 쳐다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방금 갔어요. 있다 전화 넣으라고 할게요. 됐죠? 저도 이제 들어가려고요.”나는 계속 둘러대려고 했지만 엄마는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고 바로 알아챘다.“아니다. 내가 바로 세희에게 전화하면 돼. 세희 번호 알아.”이렇게 말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세희와 말을 맞출 시간을 전혀 주지 않았다.나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배인호가 예리한 시선으로 나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갑자기 말했다.“내가 이미 문자 넣었어. 별일 없을 거야.”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진짜요?”“응.”배인호의 눈썹이 올라갔다.“하지만 지금 우리 상황이 밖에서 불륜 저지르고 있는 거 같지 않아?”이렇게 비유할 바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나는 배인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1, 2분쯤 지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엄마가 다시 전화해 온 것이었다.배인호가 반응이 빨랐고 세희도 마침 그 문자를 확인해서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엄마는 그저 빨리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용건이 끝난 줄 알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순간 엄마가 이우범 얘기
엄마의 눈빛이 살짝 변하더니 다시 엄숙하게 말했다.“나는 네가 다시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까 봐 무서운 거야. 어찌 됐든 간에 다시 배인호와 감정으로 엮이지 마. 알겠지?”“엄마, 오늘 내가 인호 씨 만나러 갔다고 의심했죠? 맞아요?”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되물었다.엄마는 침묵을 지켰다.나는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배인호가 지금 나를 도와서 진명수 조사하고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안 만나요? 만나서 토론은 해야죠.”“전화로 해도 되잖아.”엄마는 확실히 좀 꽉 막힌 느낌이었다.예전의 엄마는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배인호와 관련된 일에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고 있다.나와 배인호가 아까 같이 있었다는 것만 알면 바로 연을 끊을 것 같은 기세였다.“엄마, 나 피곤해요.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나는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아 혼자 위층으로 올라갔다. 엄마도 더 이상 나를 구박하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다.내가 돌아버릴 것 같은 건 엄마 때문만이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게 모질게 끊어내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기에 엄마가 캐묻는 게 두려운 것이다.만약 내가 진짜 켕기는 게 없다면, 배인호에게 조금의 감정이라도 남아있지 않다면 나는 지금 태연하면서도 침착했을 것이다.이 밤 나는 깊은 잠이 들지 못했고 일찍 잠에서 깼다. 엄마와 마주 앉으면 다시 물어볼 것 같아서 나는 아침도 먹지 않은 채 회사로 향했다.나는 혼자 밖에서 아침을 먹었다. 정아가 의외로 아침부터 내게 전화를 해왔다. 말투는 매우 흥분에 차 있었다.“지영아, 나 다시 Snow 선생님 예약했어. 오늘도 나와 같이 갈 거야? 너도 약 좀 처방해 달라고 해. 살 좀 찌우게.”“언제?”Snow 얘기를 꺼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나를 살피던 그 눈동자가 생각났다.“오후에 잡혔어. 나도 이렇게 빨리 잡힐 줄은 몰랐지. 저번에 서란에게 기회를 빼앗긴 게 짜증 나긴 하지만 그래도 둘째를 위해
“침 맞는 거 받아들일 수 있어요?”Snow는 아이에 대한 질문을 건너뛴 채 나를 향해 물었다.나는 침을 맞아본 적은 없었기에 더럭 겁이 나긴 했다. 게다가 그녀가 나에게 주는 느낌이 이상해서 거절했다.“고민해 볼게요. 연락처 좀 남겨줄래요? 치료하고 싶으면 연락할게요.”나는 Snow가 쉽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를 찾는 환자들이 많아 연락도 어렵고 예약은 더 어렵다고 정아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하지만 Snow는 바로 명함 한 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위에는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정아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니 나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하지만 나는 그 명함을 받아 들었다. 나와 이 Snow라는 의사 사이에 남다른 인연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호텔에서 나온 정아는 의아함을 드러냈다.“왜지? 난 Snow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너를 이렇게 특별하게 대하는 거지?”“좋은 일 아니야?”내가 되물었다.“당연하지. 이렇게 대단한 의사를 친구로 두는 것도 나쁠 건 없지.”정아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때때로 그 명함을 꺼내서 살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자꾸 불편해졌다.갑자기 뭔가 중요한게 생각났다. 만약 Snow가 진짜 그렇게 대단하다면 아까 맥을 짚으면서 내가 다시 임신하기는 어렵다는 걸 눈치챈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순간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아가씨, 오셨네요.”기선혜가 나를 보고는 인사를 해왔다.“네, 엄마는요?”내가 물었다.“오후에 이 기사님과 병원으로 검사하러 갔어요. 아까 전화를 했는데 이우범 선생님이 밥 사주겠다고 해서 저녁에 식사하고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기선혜는 내가 이우범을 조금 꺼리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말하는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작아졌다.원래도 불안하던 마음에 짜증이 더해졌다. 엄마는 내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기어코 이우범을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나는 가방을 소파에 던져두
전생의 나는 유방암이었다. 현생에도 유방에 자그마한 문제가 있지만 크게 심각한 상태는 아녔다.하지만 이번의 검사로 보아하니, 문제가 조금은 심각해진 듯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더러 휴식을 잘 취하고, 감정 조절도 잘해야 한다면서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는 앞으로도 계속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죽기 직전의 느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인지라, 이 부분에대해 극도로 민감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생에서도 나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한 것 또한 잘 알고 있다.병원에서 나온 뒤 나는 회사로 가지 않고 혼자서 수정 팰리스로 갔다. 아마 집에서 나와 혼자 여기서 한동안은 조용히 지내야 할 듯싶다.배인호든 우리 엄마든 지금 나에게 있어 모두 혼란스러운 존재이고, 나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나는 결정을 내린 뒤, 집에 돌아가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집에서 나갈 준비를 하였다.“지영아, 너 뭐 하는 짓이야?”내가 트렁크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놀라서 물으셨다.“엄마, 나 한동안은 바빠서 일단 수정 팰리스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머리도 혼란스럽고 엄마와도 다투고 싶지 않으니까, 나 좀 이해해 주면 안 될까?”나는 직설적으로 엄마에게 말했고, 모녀 사이에 이 정도의 솔직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내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지영아, 너 지금 엄마와 맞먹으려는 거야? 내가 너더러 이우범 씨 만나라고 강요했다고 지금 엄마한테 화난 거니?”이건 단지 일부분의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단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은 기선혜가 엄마를 보살펴주시니, 나도 더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나는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엄마, 나 엄마한테 화난 거 아니야. 그냥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감정적인 조절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엄마는 당황스러운 표정으
나는 잠시 고민하다 결국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너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한평생 나 보지 않을 예정이야?”배인호는 원망 섞인 말투로 마치 내가 그에게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나는 머뭇거리며 답했다.“그런 건 아니에요. 며칠 전 제가 인호 씨에게 미도 그룹 자료 보냈잖아요?”배인호는 내 대답에 말문이 막힌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도 말이 없어 나는 그가 전화를 끊은 줄 알았다.“너 지금 세상 무서운 거 없지? ”배인호는 이를 갈며 말했다.“또 한 달이 지났어. 너 내가 다친 거 뻔히 알면서도 한 달 동안 미도 그룹 자료 보낸 것 외에 다른 말 한 적 있어? 심지어 내가 괜찮아졌는지도 관심 없고 말이야.”그 말은 되게 낯설게 느껴졌다. 배인호가 지금 내가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화를 내다니?이런 상황은 나에게 있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의 말투에서 내 과거의 모습이 보였으니 말이다.그의 말에 대답하려던 찰나, 전화기 너머로 서란의 소리가 들려왔다.“인호 씨, 저와 밥 먹으러 간다면서요? 안가도 뭐해요? 나 배고파요!”그녀의 청량한 목소리와 애교 섞인 말투에서 그 둘의 친밀한 관계가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분명히 이 모든 게 계획된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그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배인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내가 혹여나 그들의 대화를 듣고 기분이 나빠질까 봐 끊은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전화를 한 게 들켜 전화를 끊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여 내가 배인호를 탓할 명분 또한 없다. 이 모든 게 내가 선택한 계획이니 말이다.나는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업무에만 집중했고, 어떻게 하면 하미선의 금고에서 진명수의 그 파일들을 손에 넣을 수 있는지만 생각했다.퇴근 시간까지도 나의 기분은 여전히 다운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는 내 찌푸린 얼굴이 비쳤고, 나는 손을 들어 미간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곧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제야
배인호는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왜? 점심 준비하고 있는데.”“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여기서 멈춰요!”나는 다시 입을 열어 그를 제지했다. 나는 그가 유하가든에서 하마터면 우리 집 주방을 태울 뻔한 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하여 나는 그가 여기 집 주방도 또 태울까 봐 겁이 났다.배인호는 손에 식칼을 들고 있었고, 그의 건장한 몸매는 우리 집의 그 작은 주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게다가 그는 내 앞치마까지 입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에게는 작은 사이즈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자, 얼른 나와요.”나는 그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배인호는 영문도 모른 채 주방에서 나왔고, 나는 그 손에 들고 있던 식칼을 얼른 뺏었다.“인호 씨 마음만 받을게요. 전 여기 주방까지 태우고 싶지 않거든요. 요리에 재능이 없으면 더 이상 무리하지 마세요. 당신은 요리랑은 거리가 멀고도 머니깐요.”나의 말에 배인호는 전에 주방을 태웠던 일이 떠오른 듯했고, 그 표정은 미세하게 굳어졌다. 배인호는 능력적으로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고, 모든 일도 척척 해결할 수 있는데 요리가 그의 유일한 흠이었다.그는 굳은 얼굴로 한마디 내뱉었다.“그럼 너 이제 임신하면 어떡할 건데?”나는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봤다.“여자가 임신하면 남편이 밥해주는 거 좋아한다던데? 먹고 싶은 거도 마음껏 해주고 말이야.”배인호의 그 진지한 태도에 나는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대체 그런 내용은 어디서 본 거죠?”배인호가 담담하게 답했다.“노성민이 보내준 거야.”“...”나는 말문이 막혀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앞으로 와이프가 임신했다 해서 모든 걸 다 직접 할 필요는 없어요. 인호 씨 그 많은 돈 벌어서 죽을 때 갖고 가려고 그래요?”나는 이젠 남자를 조련하는 데 꽤 능숙했다.배인호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조목조목 말을 이어 나갔다.“그래도 직접 하는 음식은 정성과 사랑이 깃든 거라 그런 거랑은 차원이 달라. 임산부가 정
나는 굳이 서란과 마주하여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서란 씨, 이제 가보셔도 돼요.”Snow는 서란을 향해 말했고, 그녀의 말투는 왠지 모르게 차갑고 날카로워 보였다.서란은 옆에 내가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Snow에게 애원하며 말했다.“선생님, 저 진짜 다른 치료 방법은 없나요? 저 돈 많아요. 선생님 실력 좋다면서요? 저 잘만 치료해 주시면, 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그 말에 Snow는 서란에게 되물었다.“그 돈은 어디서 난 거예요?”서란은 멈칫하더니 곧바로 답했다.“제 엄마, 아빠가 돈이 많아요. 제가 앞으로 임신해서 애를 낳을 수만 있게 해준다면 원하시는 금액 제가 다 드릴 수 있어요!”서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Snow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섞여 있었지만, 그 또한 아주 차가웠다.“안타깝네요. 만약 반드시 아이를 낳겠다면 죽는 방법밖에 없어요. 선택해요.”서란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지라 몸 상태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나랑 똑같이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그에 비하면 내 상황은 오히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녔다. 어쨌든 난 내 생명만은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그 순간 내 기분은 갑자기 좋아졌다. 나는 내가 아이를 잃었을 때 서란의 그 의기양양했던 모습이 떠올랐고, 이건 하늘이 그녀에게 내린 벌인 듯했다.“당신 지금 나 속이는 거지? 당신은 그냥 돌팔이야!”서란은 눈물을 흘리더니 갑자기 분노에 차올라서는 Snow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애초부터 다른 사람들 말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별거 아니네. 당신 기다려. 나 반드시 아이 가지고 말 거야. 그리고 산모와 아이 모두 무사하게 다시 나타날 거라고!”말을 마친 서란은 가방을 들고 화를 내며 그 자리를 떠났다.Snow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허지영 씨 왔어요?”“제 성이 허 씨인 건 어떻게 아셨
“그건 뭔 약이야?”배인호의 시선은 내 손에 든 한약을 향했다.“어디가 안 좋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몸 관리하는 약이에요. 조금 전 그 분은 제 담당 의사고요. 인호 씨 지금 실수한 거예요.”배인호는 내 손에 한약을 덥석 가져가 냄새를 맡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어디 병원 의사야?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약도 보내주고 말이야?”“해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근무 중인 병원이 없어요. 아니면 인호 씨가 나 대신 저분 자료 좀 확인해 주면 안 돼요??”나는 전부터 Snow 신분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하여 그 의구심은 아직도 조금은 있는 상태였고, 배인호가 나 대신 그녀를 조사해주면 어느 정도 수확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그녀가 나의 몸을 치료해 주는 사람이니,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거도 정상이다. 배인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허지영, 너 미쳤어? 어디 족보도 없는 사람을 찾아 몸 관리를 한다고? 네가 네 명을 재촉하는구나?”만약 정아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나도 Snow를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배인호에게 더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줄 수 없어, 묵묵히 한약 봉지를 다시 가져갔다.“조사해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남의 결정까지 간섭하고 그래요.”나는 한약 봉지를 챙긴 뒤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빨리 가자. 오늘 청담동에 가서 도저 데려온다고 했잖아?”나의 말투에는 짜증이 살짝 섞여 있었지만, 배인호는 이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는지, 웃어 보이며 내 허리를 팔로 감쌌다.“지금은 왜 그렇게 화를 자주 내는 거야? 쩍하면 내게 화내고 말이야. 그러면 난 어떡하란 거야?” “뭘 어떡해요. 이런 일 처리하는 데 능숙하잖아요?”나는 무표정으로 답했다. 전에 배인호는 아무리 많은 스캔들이 터져도, 그녀들의 입단속 하나만은 제대로 했기에, 그 누가 감히 나와서 뭐라고 번복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예전 일만 언급하면 배인호는 아주 쩔쩔맸다.“그래그래,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 전에 그 여자애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