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예 부케를 뺏을 생각이 없었고 그냥 뺏은 체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정은 하필 내가 있는 방향으로 부케를 던졌다.나는 손을 거두려고 했다. 옆에 선 서란이 팔을 높이 뻗으며 부케를 받으려고 하니 받게 놔두려고 했다.이 생각을 굳히기도 전에 부케가 내 품으로 날아들었고 서란은 바닥에 넘어지면서 둔탁한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아!"서란이 고통스럽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아마도 다친 듯했다.아래에서 구경하던 민예솔이 이런 상황을 보고는 급히 이쪽으로 뛰어와 서란의 상처를 살폈다.“괜찮아? 왜 갑자기 넘어진 거야?”하객들도 이 갑작스러운 사고에 놀라 목을 빼 들고 상황을 살폈다. 부케를 안고 옆에 서 있던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아니나 다를까 서란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나를 한번 보더니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언니, 저 괜찮아요. 올라와서 지영 언니랑 부케를 뺏는 게 아닌데...”부케를 던질 때 열몇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신체적인 접촉도 많아 아래서는 어떤 상황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서란이 만약 나를 저격한다면 나는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부케 뺏을 때 넘어지는 건 원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다친 게 뭐라고?”정아가 직설적으로 말했다.“근데 라니가 이미 부케를 받았는데 허지영 씨가 다시 뺏어가면서 밀친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민예솔이 서란을 부축해 일으키며 나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나는 두 사람의 쇼를 옆에서 냉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래에 있던 하객 중에 서란을 믿는 사람이 무조건 있을 것이다. 하긴 정아와 애들을 빼고는 다 모르는 사람이니 말이다.역시나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저 사람 배인호 전처 아니야? 서란은 배인호 전 여친이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닐까?”“배인호도 있잖아? 봤을까?”“근데 아까 서란이 먼저 부케를 받았는데 허지영이 뺏어간 거 같은데.”나와 서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감
“인호 씨,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서란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내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눈물이 글썽해서 배인호에게 따질 뿐이었다.배인호만 그녀의 편을 들어준다면 서란은 이렇게 서럽지 않았을 것이다.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 편에 서게 된다. 배인호는 서란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쉽게 그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한 것이다.“네가 잘못했으니까 사과하는 게 맞지.”배인호의 말투는 엄격했다.“나 잘못한 거 없어요. 지영 언니가 내 부케 뺏은 거 맞고 나를 일부러 밀어서 넘어지게 했어요.”서란이 그래도 계속 바득바득 우기며 반박했다.“인호 씨가 아직 지영 언니한테 미련이 남아서 언니 편에 설 뿐이에요. 그런 거라면 왜 마음 가는 대로 안 해요?”배인호는 끝내 인내심을 잃고 성질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닥쳐. 내가 네 가르침까지 받으면서 행동해야 해?”서란이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나를 모함하려 했지만 결국 내가 보는 앞에서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서란이 증오의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서란이 또 나에게 책임 전가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서란은 역시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이를 악물더니 말했다.“언니, 이제 만족해요? 이런 꼴 보고 싶었던 거죠?”“첫 번째, 날 모함한 건 너야. 두 번째, 난 네 꼴도 보기 싫어. 네가 말하는 이런 꼴은 더더욱 싫고.”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서란이 얼굴을 가리고는 울면서 휴게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민예솔이 뒤따라 나간 것 외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배인호는 이우범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원수라도 보는 것 같았다.나는 이 두 사람이 내 앞에서 기 싸움을 하는 걸 보기 싫어서 먼저 도망가려고 했다.“지영 씨!”순간 이우범이 나를 불러 세웠다.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약간은 불안한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다.“왜요?”“무슨 일이 있든 간에 난 무조건 지영 씨 편이에요. 지금 이 말 꼭 기억해요.”이
“지난번에 했던 그 말, 아직 유효한 거죠? ”나는 자존심 같은 건 다 내려놓고 물었다. 배인호가 아빠의 일로 나를 속일 사람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빠가 진짜 누구에 의해 이렇게 된 거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아빠를 만나 일의 자초지종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어떤 말?”배인호의 굳어 있던 얼굴은 순식간에 풀렸고, 내가 뭘 묻는지 알면서 일부러 되물었다.“내가 청담동에 가서 보름 동안 살면 아빠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면서요.”나는 아빠가 나를 탓할지라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빠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거면, 나는 딸로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깨어나면, 아빠가 이 일을 당한 거에 대해 많이 속상해하실 것이다. 배인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내 손을 놓더니 내 말을 정정해 주었다.“한 달.”“보름 동안이라면서요?!”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응, 보름은 네가 정한 거잖아? 지금은 네가 나에게 부탁하는 거니까, 내가 그 조건 좀 고치려고.”배인호는 마음껏 뻔뻔함을 드러냈다.나는 몇 마디 반박하려 했지만, 배인호의 눈빛 하나에 제압당해 버렸으며, 지금 나의 위치에 대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지금 만약 또 그를 거절한다면, 아빠를 벼랑 끝까지 미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그래요. 좋아요. 하지만 3일 이내에 아빠를 만날 수 있게 해줘요.”나도 내 요구를 제기했다.“알겠어.”배인호는 간단명료하게 답했다.“그럼, 지금 청담동으로 가.”“저 아직 짐 정리도 못 했어요!”내가 답했다.“그럴 필요 없어. 청담동에 이미 다 준비해 뒀거든. 넌 몸만 가면 돼. 때마침 오늘 우릴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배인호는 내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을 끌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의 손은 내 손과 달리 아주 따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손까지 잡을 필요 없어요.”“손이 그렇게나 차가운데 옷 좀 두껍게 입어.”배인호는 내 손을
배인호 어머니는 나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냥이를 쳐다봤다.이렇게나 직접 배인호네 집으로 찾아온 여자는 당연히 보통내기가 아니기 때문이다.냥이는 머리를 검은색으로 바꿔, 많이 차분하고 얌전해 보였다. 코 피어싱이나 입술 피어싱도 다 제거하긴 했지만, 귀에 그 줄줄이 끼여진 피어싱은 제거하지 않은 상태라, 차분함에 약간의 자유분방함이 섞여 있는듯한 모습이었다.내가 잘난 척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배인호 부모님이 어떤 며느리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지적이고, 외적으로는 심플하고 귀티 나는 스타일을 선호하신다.냥이처럼 귀에 줄줄이 끼워진 피어싱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게다가 그들은 아직 냥이의 신분도 모르는 상태이다.“인호야, 이분은 누구시니?”배인호 어머니는 이런 스타일은 싫어하시지만, 그래도 교양 있고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그냥 아는 애예요.”배인호는 간단명료하게 소개했으며, 그 태도는 심지어 무척 차가웠다.냥이는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경쾌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아저씨. 저는 배인호 씨의 친구입니다. 그냥 냥이라고 불러주세요. 오늘 아주머니 생신이라고 들어서 선물 드리러 왔어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녀는 가져온 선물을 배인호 어머니에게 내밀었고, 투명하고 정교한 선물상자에는 한눈에 봐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아름다운 비취 관음이 놓여있었다.이 선물을 본 배인호 어머니의 표정은 역시나 밝아졌고, 그녀를 향한 몇 마디의 칭찬에 냥이의 표정도 많이 풀렸다.하지만 배인호 어머니는 그 선물을 다시 냥이에게 돌려줬다.“정말 고맙지만 이렇게 귀중한 선물은 제가 받을 수 없어요. 냥이 씨, 온 김에 그냥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가요. ”냥이는 멈칫하더니 약간의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선물을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라도 뻘쭘하긴 하지만, 배인호 어머니가 선물을 거절하는 거도 지극히 정상인 적인 일이다. 배인호의 그냥 아는 일반 친구의 귀중한 선물을 받
“아...”서란은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녀가 여기 들어오고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오른쪽 어깨는 정상으로 보였으며, 전혀 다친 사람 같지 않았다.이때 민예솔이 그녀 대신 답했다.“여사님, 그런 게 아니라 제 동생이 괜한 통증으로 오늘 자리에 영향을 끼칠까 봐, 여기 오기 전 특별히 진통제를 먹고 왔어요. ”이제는 하다 하다 진통제라니...서란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아요. 근데 별 큰 문제는 없어요. 지영 언니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요.”“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서 왜 날 고소하려 했어?”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입을 열어 되물었다.그 순간 민예솔도 대꾸할 방법이 없는 듯 말문이 막힌 채 멍해 있었다.서란은 촉박해 보이는 표정으로 하미선쪽을 바라봤다.“이건 모두 오해로 초래된 일인 거죠. 오해는 해명하고 고소는 취하하면 되는 겁니다.서로 다 친한 사이라 왕래가 잦다 보니,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없네요. 양해해주세요.”역시 서란의 뒷배경인 하미선이 전혀 조급해 하지 않고 차분히 얘기를 이어 나갔다.나는 담담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그래요, 해명은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내 말을 들은 서란의 표정은 의심이 가득했으나, 장소가 장소인지라 더는 묻지 않았고, 나도 여기까지만 답했다.현재 거실 소파에는 배인호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로 꽉 차 있지만, 서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 사람들이었다.때마침, 저녁상이 준비되었고, 저녁을 먹으라는 집사의 말에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풀렸다.원형 식탁에는 때마침 8개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배인호 어머니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지켜본 서란은 그 옆에 다가가 앉으려 했으나, 배인호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영아, 내 옆에 앉아.”“네.”나는 그녀의 말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서란은 속상한 듯 배인호 어머니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배인호에게 시선이 멈췄다. 아마 배인호가 어디 앉으면 그녀도 그 옆에 가서 앉으려는 듯했다.배인호는 아무 생각 없이 자
“그렇죠, 단지 인연도 길연과 악연으로 나뉠 뿐이죠.”배인호 어머니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배인호 부모한테 있어서 서란과 배인호의 인연은 기필코 악연일 것이다.배인호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서란으로 하여금 그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서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우여곡절 끝에 결국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났다. 냥이는 다 같이 케이크를 먹자고 제안했고, 배인호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인호 씨, 저 좀 잠깐 봐요.”나는 케이크는 먹을 생각조차 없었고, 낮은 목소리로 배인호를 불러냈다.“무슨 일이야?”배인호가 물었다.“저 오늘 저녁 나가봐야 해서 케이크는 못 먹을 것 같아요. 그러니 저 인호 씨 차 키 좀 빌려줘요.”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들여다봤고,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배인호는 내 낌새가 이상함을 느끼고, 거실을 힐끗 보더니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에게 물었다.“조금 전 너에게 전화 한 사람 누구야? 그 사람 찾으러 가는 거야?”나는 더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고스란히 그에게 얘기해줬다.“기선우한테서 걸려 온 전화예요. 근데 아무런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아마 뭔 일이 생긴 것 같아요.”배인호의 의심은 가셔지지 않았고, 그는 전부터 나와 기선우 사이를 의심했던지라 그의 의심은 더욱 깊어져 갔다.나는 아예 직접 차 키를 찾아 나섰고, 그런 모습을 본 배인호 어머니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지영아, 뭐 찾고 있어?”“저 인호 씨 차 좀 빌리려고 차 키 찾고 있어요.”내가 답했다.“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인호더러 데려다 달라고 해. 시간도 늦은 저녁이라 여자 혼자서는 위험해.”배인호 어머니는 나를 강박으로 앉혀 케이크를 먹으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인호더러 내 급한 일을 도와주라고 했다.배인호 아버지도 곧바로 배인호를 향해 말했다.“그래, 지영이가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네가 좀 같이 가서 도와줘!”나는 원래는 그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 없었지만, 만약 기선우
“인호 씨, 저 도와서 기선우 좀 찾아주면 안 돼요?”나는 이젠 체면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배인호에게 도움부터 청했다.하지만 배인호는 내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했다.“싫어.”“그 애 서란 때문에 이미 궁지에 몰려 서울을 떠날 준비를 하는 애예요. 그런 애가 이 시점에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건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 걸 거예요. 그러니 좋은 일 한번 한다 치고 저 좀 도와줘요!”나는 한 손으로 배인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현재의 나는 진심으로 기선우를 내 동생처럼 여기고 있었고,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꼭 어떤 방법을 쓰든지 그를 도울 것이다.하지만 배인호의 눈에는 냉기가 가득했고,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그 앨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데?”“그 애와 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그 애는 단지 제가 좋아하는 동생일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동생을 챙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 거죠.”나는 다급하게 그에게 말했지만, 곧 맥이 빠졌다.“됐어요. 그냥 저 혼자 경찰서에 신고할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배인호는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는 듯했고, 곧 내 뒤를 따라왔다.“내가 도와줄게, 됐지?”“진짜죠?”나는 그가 나를 돕겠다는 소리에 빠르게 반응했다.“응, 이틀 내로 찾아줄게. 근데 나 조건이 하나 있어.”배인호는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나는 이미 청담동에 돌아가 1달 동안 살기로 약속까지 했기에, 조건이 더 추가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말해봐요.”“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우범에게 그 어떠한 기회도 주지 마.”배인호는 강경한 태도로 이 조건을 말했고,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내 대답만을 기다렸다.나도 이우범과 다시 엮이고 싶지 않던 참이라, 그의 요구조건이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아니었다.“그래요, 그러면 우리 아빠를 만나는 일이랑 기선우를 찾는 일 모두 인호 씨한테 맡길게요. 그리
“왜 그래? 누구한테서 온 문자야?”때마침 앞에 빨간 불이라 배인호는 차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나는 핸드폰을 숨기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정아에게서 온 문자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배인호는 입가를 살짝 올리며, 약간의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우범이가 약혼한다는 소식 아니야?”나는 깜짝 놀랐다.“이미 알고 있었어요?”전에 민정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배인호가 확신에 찬 말투로 이우범과 도시아는 약혼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이우범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현재는…“당연하지.”배인호는 시선을 거두고는 앞을 내다보며 냉담하게 답했다.“난 이미 예전에 알고 있었어. 우범이는 집에 부모님이 정한 대로 해야 하거든. 예전에 의학 공부할 때도, 집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학업 포기하겠다고 부모님 협박해서야 결국 하게 된 거야.”나는 이우범이 의학 공부를 위해 그 정도로 필사적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하여 그가 나 때문에 그걸 포기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너랑 우범이 사이는 미래가 안 보여. 그러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거도 좋은 일인 거지.”배인호가 이어서 말했다.나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인호도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어느덧 차는 회사 아래까지 도착했고, 나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배인호는 바로 가지 않고, 내가 회사 큰문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이치대로라면, 이우범이 약혼하는 건 나에게 있어 좋은 일이며 더는 그가 나를 놓지 못할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도시아도 괜찮은 배우자이며 그 둘은 무척 어울리는 한 쌍이다.하지만 나는 그가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집안에 뜻이 어떻든 절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근데 이 짧은 시간 내에,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나는 이우범이 나와 배인호처럼 이런 비극적인 결혼이 아닌, 행복한 결혼을 하길 바랐다.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