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 씨, 저 도와서 기선우 좀 찾아주면 안 돼요?”나는 이젠 체면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배인호에게 도움부터 청했다.하지만 배인호는 내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했다.“싫어.”“그 애 서란 때문에 이미 궁지에 몰려 서울을 떠날 준비를 하는 애예요. 그런 애가 이 시점에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건 분명히 무슨 일이 생긴 걸 거예요. 그러니 좋은 일 한번 한다 치고 저 좀 도와줘요!”나는 한 손으로 배인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현재의 나는 진심으로 기선우를 내 동생처럼 여기고 있었고,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꼭 어떤 방법을 쓰든지 그를 도울 것이다.하지만 배인호의 눈에는 냉기가 가득했고,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그 앨 왜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데?”“그 애와 저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우리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어요. 그 애는 단지 제가 좋아하는 동생일 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동생을 챙기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 거죠.”나는 다급하게 그에게 말했지만, 곧 맥이 빠졌다.“됐어요. 그냥 저 혼자 경찰서에 신고할게요.”말을 마친 뒤 나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배인호는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는 듯했고, 곧 내 뒤를 따라왔다.“내가 도와줄게, 됐지?”“진짜죠?”나는 그가 나를 돕겠다는 소리에 빠르게 반응했다.“응, 이틀 내로 찾아줄게. 근데 나 조건이 하나 있어.”배인호는 깊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나는 이미 청담동에 돌아가 1달 동안 살기로 약속까지 했기에, 조건이 더 추가된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말해봐요.”“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우범에게 그 어떠한 기회도 주지 마.”배인호는 강경한 태도로 이 조건을 말했고,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내 대답만을 기다렸다.나도 이우범과 다시 엮이고 싶지 않던 참이라, 그의 요구조건이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아니었다.“그래요, 그러면 우리 아빠를 만나는 일이랑 기선우를 찾는 일 모두 인호 씨한테 맡길게요. 그리
“왜 그래? 누구한테서 온 문자야?”때마침 앞에 빨간 불이라 배인호는 차를 멈추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나는 핸드폰을 숨기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정아에게서 온 문자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배인호는 입가를 살짝 올리며, 약간의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우범이가 약혼한다는 소식 아니야?”나는 깜짝 놀랐다.“이미 알고 있었어요?”전에 민정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배인호가 확신에 찬 말투로 이우범과 도시아는 약혼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이우범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현재는…“당연하지.”배인호는 시선을 거두고는 앞을 내다보며 냉담하게 답했다.“난 이미 예전에 알고 있었어. 우범이는 집에 부모님이 정한 대로 해야 하거든. 예전에 의학 공부할 때도, 집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학업 포기하겠다고 부모님 협박해서야 결국 하게 된 거야.”나는 이우범이 의학 공부를 위해 그 정도로 필사적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하여 그가 나 때문에 그걸 포기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너랑 우범이 사이는 미래가 안 보여. 그러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거도 좋은 일인 거지.”배인호가 이어서 말했다.나는 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인호도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어느덧 차는 회사 아래까지 도착했고, 나는 말없이 차에서 내렸다. 배인호는 바로 가지 않고, 내가 회사 큰문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이치대로라면, 이우범이 약혼하는 건 나에게 있어 좋은 일이며 더는 그가 나를 놓지 못할 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도시아도 괜찮은 배우자이며 그 둘은 무척 어울리는 한 쌍이다.하지만 나는 그가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집안에 뜻이 어떻든 절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다. 근데 이 짧은 시간 내에, 받아들이기로 한 건가?나는 이우범이 나와 배인호처럼 이런 비극적인 결혼이 아닌, 행복한 결혼을 하길 바랐다.나는
이우범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내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는 걸 느꼈다.배인호는 손을 뻗어 내 눈가를 닦아주려 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는 거야?”나는 그의 손을 피하며 머리를 저었다.“아니요, 안 울어요.”“그럼 됐어. 난 네가 내 앞에서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게 싫거든.”배인호는 손을 거두며 경고가 담긴 한마디를 건넸다.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제 자유에요. 인호 씨가 그런 것까지 절 간섭할 이유는 없어요.”배인호가 차갑게 답했다.“됐어. 가자.”나는 묵묵히 배인호 뒤를 따라나섰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고, 그의 차는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우산을 펼쳐 든 배인호는 우산을 비스듬히 내 쪽으로 향해줬고, 나는 그걸 피하진 않았다. 괜히 비를 맞아 감기까지 걸리면 나만 힘드니 말이다.차에 탄 뒤, 나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인호 씨, 앞으로 저 계속 데리러 올 필요 없어요. 저 이 기사님한테 부탁해도 되고, 저 혼자서도 운전해 갈 수 있어요.”“오늘은 그냥 가는 길에 들른 거야. 조금 전 샤인 코스메틱에서 오는 길이거든.”배인호는 솔직하게 말했고, 그와 서란 사이의 왕래를 전혀 숨기지 않았다.“인호 씨는 이상하다고 느낀 적 없어요? 사사건건 절 간섭하면서 인호 씨는요? 서란은 여전히 당신과 얽히려 하고, 당신을 바라보는 냥이도 있잖아요. 그다음 여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언제 인호 씨 간섭한 적 있었어요?”나는 참지 못하고 배인호에게 질문을 던졌다.배인호가 담담하게 답했다.“지금 질투하는 거야?”나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그럴 일은 죽어도 없어요.”배인호는 나를 힐끔 보더니, 표정이 약간은 풀린 듯했다. 그는 마치 갓 연애를 시작한 소년처럼, 내가 조금의 질투라도 보이면 기분이 풀리곤 했다.청담동에 도착한 뒤, 나의 핸드폰은 쉴 틈 없이 울렸다. 내 단톡방에서는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왔고, 그 내용 또한 전부 이우범 혼사에 관한 일들이었다.박정아:「지영아, 퇴근했지?
나는 만족스럽게 마스크팩을 하고 잠을 잘 준비했다.내가 거의 잠이 들 무렵, 갑자기 온몸에 정신이 들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배인호는 몸을 곧게 폈고, 조금 전 몸을 숙여 내게 다가온 사람이 그가 아닌 것만 같았다.“이걸 얼굴에 온 저녁 붙이고 있을 예산이야?”배인호는 손가락으로 내 마스크팩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요?”나는 놀라서 물었다.“뭐 좀 가지러 왔어. 와보니 네가 문을 잠그지 않았더라고.”배인호는 팩을 휴지통에 버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서랍 속을 뒤졌고, 롭투 시가를 한 박스 들고는 그제야 내게 이어서 말했다.“평소에 그렇게 나를 조심하면서 오늘 문 잠그는 건 까먹었나 봐? 조심해.”말이 끝난 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나는 닫힌 문을 노려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를 욕 했다. 아마 배인호가 거의 아래층에 도착한 후에야 나는 얼른 일어나 방문을 걸어 잠갔다.배인호는 술을 마신 듯했고, 조금 전 그한테서 약간의 술 냄새가 풍겨왔었다. 만약 그가 술에 취한다면, 그는 또 한 마리의 짐승으로 변할 것이고, 그러면 내가 위험에 처할 것이다.나는 문이 제대로 잠겨진 지 확인 후 안심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문을 잠그고 잠자리에 들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한밤중이 되자 나는 잠결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배인호의 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누가 방문을 잠근 거야? 강도라도 든 거야?”그의 목소리에는 명백히 취기가 섞여 있었고, 그의 술 주량으로 보았을 때 보통은 취하지 않을 건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취해 있었다.내가 답했다.“배인호 씨, 당신 취했어요. 얼른 객실로 가서 쉬어요.”밖에는 잠시 고요해졌고, 나는 배인호가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집사를 부르러 간 것이었다. 이윽고 집사의 애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사장님, 안에서 잠겨진 거라 저희도 문을 열 방법이 없습니다.”배인호는 그 말에 노발대발하며 꾸짖었다.“이런 거도 못 하면 내가 당신들을 왜 쓰겠어? 내 피만
그 순간 나는 심장이 철렁하는 것만 같았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무도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도 이미 변한 상태였다.“말해봐요.”“내가 사람을 시켜 기선우 핸드폰 위치를 추적하게 했거든. 근데 폐기된 냉동창고 안 에 있었어.”배인호는 머뭇거리더니 이어서 말했다.“지금 아직도 거기 있을 거야.”“냉동창고요?!”나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기선우의 핸드폰이 어떻게 그런 곳에서 나올 수 있으며, 게다가 폐기된 냉동창고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배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너 신고하려면 빨리 해. 비록 아직도 거기 있는진 모르겠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야.”배인호의 말을 더 들을 것도 없이 나는 이 일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고 경찰서에 신고했다.나는 배인호한테서 폐기된 냉동창고 주소를 알아낸 뒤, 경찰에게 그 주소를 알려줬다.전화를 끊은 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직접 냉동창고로 가서 상황을 확인하려 했지만, 배인호가 막아 나섰다.“나랑 같이 가.”“당신 술 마셨잖아요.”나는 급하게 외투를 챙겨 입었다.“저 혼자 가면 돼요.”배인호는 내 말은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았고, 나보다도 먼저 방문을 나서며 말했다.“네가 운전하면 되잖아?”배인호는 원래부터 기선우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선우의 생사에 관해 관심은 없어 보였다.나는 그의 말은 무시한 채 빠르게 운전해 그 냉동창고로 향했다.냉동창고는 서울시 교외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의 우리 회사가 이 냉동창고를 임대하여 일부 생산 원료를 보관했지만,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서 더는 임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선우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곧 경찰에서도 도착했고 냉동창고 주인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때 누군가 자물쇠가 고장 난 것을 발견했고, 조금만 힘을 주니 열 수 있었다.나는 분주하게 수색하는 경찰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고, 불안감도 극도
배인호는 내 침대 옆에 앉으며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부검 결과 나왔어. 기선우, 얼어 죽은 거래. 죽기 전에 너에게 전화했던 거고.”나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배인호의 그 말을 듣고 아예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거기 부근에 CCTV도 없고, 냉동창고 CCTV도 고장이 났었대. 현재 경찰 쪽 초기적인 판단은 기선우가 전화 한 통을 받고 거기에 갔었고, 냉동창고가 이미 폐기된 건 줄 알고 들어갔다가 문이 잠겨버린 거래.”배인호의 말을 나는 단 하나도 믿을 수 없었다. 기선우가 멍청하게 혼자서 교외의 폐기된 냉동창고에 들어가 그 안에 갇혔다는 게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현재의 내 심정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 게 아니라, 이상하다는 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이거 서란이 저지른 거예요!”한참 뒤, 나도 평정심을 되찾은 뒤 배인호를 향해 말했다.“예전부터 서란이 선우더러 서울을 떠나게 궁지로 몰았어요. 서란만이 이런 악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라고요!”“현재 증거가 없잖아.”배인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일단 진정 좀 해.”“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인호 씨, 제가 선우를 해친 거라고요. 알아듣겠어요? 저야말로 이 사건의 발단이에요. 그렇게 착한 애가 이런 결과를 맞이했는데, 제가 진정할 수 있겠냐고요!”나는 감정이 폭발한 상태에서 말했다.내 감정이 점점 격해지는 걸 본 배인호는 바로 나를 자기 품에 끌어안으며 위로했다.“일단 푹 쉬어. 만약 기선우의 죽음이 진짜로 서란과 연관이 있는 거라면 내가 너 대신 복수해줄게. 그렇게 해주면 될까?”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배인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를 거세게 밀치며 날카롭게 되물었다.“저 그만 속여요. 당신이 어떻게 절 도와줄건데요?”“당신은 그냥 거짓 그 자체에요. 저랑 이혼하고 이 관계를 놓지 못하더니, 한쪽으로는 또 서란과 얽히고 있잖아요!”
병원에 하루만 있고 나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서 퇴원했다.나는 경찰서로 달려가 기선우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보러 갔는데 들려오는 것은 배인호와 같은 대답이었다.경찰서에서 나왔을 때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설이 다가오니 길거리에 많은 사람이 북적이고 있었다. 설은 한해 중에 가장 큰 명절이다.차갑고 번화한 거리에서 나는 서란의 전화를 받았다. 서란은 모르는 번호를 쓰고 있었다.“선우... 왜 그렇게 된 거예요?”핸드폰에서는 서란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서란, 너 연기 정말 잘한다.”나는 쌀쌀한 목소리로 물었다.“선우는 너의 첫 남자친구잖아.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넌 조금의 양심 가책도 못 느껴?”서란은 울면서 말했다.“지영 언니, 난 선우를 다치게 할 생각은 정말 없었어요. 그저 사고였어요. 언니는 내가 그렇게 독한 줄 알아요? 난 양심도 없는 줄 알아요? 난 단지 선우가 서울을 떠나길 바란 것 뿐이라고요.”서란은 슬프게 울고 있었다. 마치 진심으로 기선우의 죽음에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지영 언니,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해요.”서란은 또 먼저 만나자고 했다.나는 서란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독한 여자가 어디까지 연기하는지 보고 싶었다.나는 만나자고 대답했고 서란은 카페 ‘랑데부’에서 만나자고 했다.그곳에는 이미 오랫동안 가지 않았다. 나는 가끔 처음에 카페에서 서란을 훔쳐본 것을 후회했다. 그로 인해 일어나야 할 일들이 엉망이 된 것 같았다.반 시간 후, 나는 서란을 만났다. 저번에 여기서 서란을 만났을 때 서란은 내가 배인호와 이혼하기를 바랐다.그때 서란은 초췌하고 창백한 것이 상처 입은 한 송이 꽃 같았다. 현재 그 꽃은 이미 부자가 되어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저렴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었다.카페 직원은 모두 바뀌어 서란과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지영 언니.”서란은 나를 보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빨갛게 부은 눈은 방금까지 운 것 같았다.“그냥 이름만 불러. 우리 사이에
“갑자기 여기는 왜 온 거야?”배인호는 나 대신 코트를 여며주며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카페 안을 쳐다보았다. 서란은 이미 배인호가 온 것을 발견했고 아까 코트를 걸쳐주는 장면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좀 전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우고 저런 꼴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을 리가 없다.한 사람을 사랑하면 자기의 모든 감정을 그 사람에게 넘겨준다더니 서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인호를 이용해 아주 쉽게 서란에게 복수할 수 있었다.배인호는 나의 시선을 따라 서란을 발견했다.“서란 만나러 온 거야?”배인호의 목소리는 갑자기 차가워졌고 눈썹은 무의식적으로 치켜 올라갔다.“난 서란에게 기선우를 죽였는지 물으러 왔어요.”나의 대답은 분명 바보 같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배인호의 표정이 단호해졌다.“이건 경솔한 짓이야.”나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는 여전히 아름답고 고상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세월이 그를 비껴간 것 같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차분함과 카리스마가 더해졌을 뿐이다. 서란이 포기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이 남자의 마음은 외모에 걸맞지 않았다.배인호는 나의 눈빛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얇은 입술을 열었다.“왜?”“내가 병실에서 한 말 때문에 화난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데리러 왔어요?”난 웃으며 어깨에 걸쳐진 코트를 단단히 감쌌다.“추워, 차에 가서 얘기해.”“그래요.”배인호는 먼저 차로 갔다.서란이 카페에서 달려 나와 배인호를 불렀다.“인호 씨.”배인호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지만, 서란에게 대답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안 오고 뭐 해? 바람이 춥지 않아?”서란의 원망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빠르게 걸어갔다. 아까 한 서란의 말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계속 참는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때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깨닫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