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용은 눈꺼풀이 거세게 뛰었다. 천도준의 이 말은 천씨 가문 노부인에게 맞서는 게 분명했다.소위 ‘소견’이라는 건 노부인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천씨 가문에 있으면 가주도 소견을 받기도 했다!“하! 죽지 않았으면 가야 합니다.”정장 차림의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죽었어도 노부인께서 만나고자 하시면 관짝을 들고서라도 가야 하지요.”천도준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막 입을 여려는데 이수용이 먼저 공수하며 웃었다.“저녁 8시, 제가 반드시 도련님을 데리고 노부인을 찾아뵙겠습니다.’“교외의 사인 회관이요.”정장 차림의 남자는 그 장소만 덜렁 남겨둔 뒤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처음부터 끝까지 쓸데없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고고하고 오만하고 냉담한 태도였다.이수용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풀어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어르신, 노예 노릇도 잘못했나 본데요. 젊은것들 셋이 좋게 말하는 법이 없네요.”천도준이 그를 놀리며 말했다.그는 딱히 만남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노부인이 이미 여기까지 온 마당에 도망은 불가능했다.방금 전의 반응은 그 세 정장차림의 남자의 말투나태도가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었다.이수용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저 사람들은 노부인의 측근들입니다. 천씨 가문에서 노부인의 시중만 따로 드는 자들이죠. 저는 회장님의 측근이니 당연히 저에게 좋은 태도를 보일 리가 없습니다. 천씨 가문 내부는 아주 복잡하거든요.”그때, 옆에 있던 울프의 두 눈에 빛이 번뜩였다.“천도준 씨, 이 사인회관….”눈썹을 까딱한 천도준은 의아한 얼굴로 울프를 쳐다봤다.“이 사인 회관은 이 지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연 개인 회관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이수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는 회장님이 도련님을 보필하라고 보낸 사람이라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모든 세력과 현지 상황에 대해 명명백백히 조사를 했었다.천씨 가문의 정보망으로 이런 것들을 알아내기란 식
천도준은 상처가 벌어지며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을 참으려 애를 썼다.시트에 몸을 기댄 채 크게 심호흡을 해도 고통은 가셔지지 않았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죄를 물으러 왔을 텐데 제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거야말로 큰 죄가 아니겠어요??”이수용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가슴이 막 갑갑해지며 무거운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가 보기에 천도준이 이러는 것은 도무지 방법이 없어 일부러 부상을 여사님에게 보여주려 하는 것으로 보였다.만약 다친 게 천태성이었다면 이런 행동은 절대로 할 리가 없었다.천씨 가문에서 천태성은 여사님의 얌전한 손자였고 부상을 당해도 여사님의 앞에 무릎 꿇고 아프다고 앓는 소리 몇 번 하면 여사님이 알아서 복수를 해줬었다.그러나 천도준은 거의 아물어가는 상처를 억지로 벌려야만 겨우 여사님의 한발 양보를 바랄 수 있었다!똑같은 천씨 가문의 사람이었지만 대우는 이토록 천지 차이였다. “괜찮아요, 어르신.”천도준은 웃으며 이수용을 위로하며 운전 중인 존에게 말했다.“그만 보고 얼른 들어가요, 더 늦으면 피가 다 굳겠어요.”존은 억지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롤스로이스를 운전했다. 다만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에도 짙은 씁쓸함과 무력함이 가득했다.출신이라는 두 글자는 참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밤의 장막 아래, 사인회관은 산허리쯤의 숲속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그대로 산허리에 박혀 들어간 것 같은 풍경이었다.이 지역의 최고급 회관으로 주건희와 주준용 같은 호걸이라고 해도 초대장이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어, 일반적인 권력자들은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그리고 그것은 사인회관을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만들기도 했다.그리하여 천도준마저도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거대한 대문은 고대 건축 양식을 띄고 있었다. 높은 담벼락에 커다란 마당은 회관을 단단히 에워싸고 있었다.대문 앞, 높게 걸린 커다란 ‘사인회관’ 편액 양옆으로 특별 제작된 커다란 붉은 등이 걸려 있었다.붉은빛을 흩뿌리는 광경은 장엄함과 엄숙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며 극심한 고통이 일어 천도준은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얼마 걷지 않아, 시야 속에 작은 별채가 보였다.별채는 소박하고 소탈해 사인회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여사님, 천도준 도련님이 인사를 드리려고 이리 왔습니다.”이수용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조금 소리 높여 외쳤다.“들거라.”한 목소리가 별채 안에서 들려왔다.이수용과 존의 부축을 받으며 천도준은 조금 불쌍하게 상처를 부여잡은 채 별채로 향했다.걸음을 옮기며 이수용은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도련님, 최대한 참으셔야 합니다.”천도준은 씁쓸하게 웃었다.눈빛이 번뜩이더니 오른손이 저도 모르게 복부의 상처를 꽉 움켜쥐었다.자신이 그 도리를 몰랐다면 직접 거의 다 아물어가는 상처를 다시 벌렸을 리는 없었다.어둠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여기까지 온 그는 가끔은 적당히 고개를 숙이는 건 나중에 더 높이 날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끼익….별채의 문이 열렸다.점심에 천도준을 소견 했던 세 명의 정장남도 전부 별채 안에 있었다.선두에 있던 사람은 곧바로 안쪽으로 안내하는 손짓을 했다.“여사님께서는 안채에 계십니다.”안채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공기 중에는 옅은 향냄새가 가득했다.그와 함께 불경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여사님은 상위에 앉아 눈을 감은 채 오른손은 조용히 염주를 세며 불경 소리를 따라 불경을 외웠다.그 옆,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이 단정하게 앉아 조심스럽게 보좌하고 있었다.천도준이 안으로 들어오자 중년이 낮은 목소리로 귀띔을 했다.“여사님, 천도준이 왔습니다.”미간을 살짝 찌푸린 여사님은 두 눈은 뜨지 않은 채 계속해서 염주를 넘기며 불경을 외웠다.중년은 자연스레 그 뜻을 알아채고는 천도준 일행에게 대기하라는 눈짓을 했다.천도준은 상처를 움켜쥔 채 중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이분은 이 지역에서 권력이 가장 큰 사람이었다. 그런 상대가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았는데 상대의 체면을 바닥에 내팽개칠
차가운 목소리가 안채에 울려퍼졌다.방안의 공기도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양쪽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한 중년의 동공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그는 이내 곧 경악에 휩싸였다.이수용과 존은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대표님, 무례를 범하지 마세요.”말을 마치고, 그는 다급히 이미연에게 해명했다.“어르신, 제가 대표님을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제발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하.”이미연은 냉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수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천도준을 흘겨보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천도준의 얼굴에는 냉기 외에는 조금의 감정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미연과 당당히 눈을 마주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는 안채에 들어서자마자 이미연이 불교의 전통 초도경문인 ‘지장보살본원경’을 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미연에게 한 발 물러서달라고 용서를 구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화를 꾹 참았었다. 하지만 이미연은 그저 경문을 외우기만 할 뿐, 천도준을 아예 신경쓰지도 않았다. 만약 이수용이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이미연은 정말 ‘지장보살본원경’을 백 번이나 읊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경문을 백 번이나 읽다니…… 천도준을 피 말려 죽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천도준은 용서를 구하러 온 게 확실했다. 하지만 그는 쉽게 이용당할 사람도 아니고, 충동적인 사람도 아니었다.이미연은 경문으로 그를 설교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천도준이 무엇을 더 참으란 말인가?그 모습에 이수용은 안절부절못했다. 이미연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은 어느새 새빨개졌다.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이미 이미연이 초도경문을 읽는 것을 알아챘었다. 하지만 그는 감히 천도준을 말릴 수 없었다.천도준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지 않았다면, 그는 감히 말을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뜻밖에 천도준이 경문을 읊는 이미연에게 대들 줄이야……그건 아주 불경스러운 일이었다.그때, 이미연은 천천히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독경 소리를 끄고, 발걸음을
천도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네, 좋습니다. 무릎 꿇을게요.”그는 복부가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창백했던 천도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폈지만 그의 두 눈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순간, 손의 핏줄이 더욱 선명해졌다. 굴욕이었다.천도준이 아무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무릎을 꿇으면 후계자가 될 확률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주 비참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쿵.무릎과 바닥이 부딪쳤다. 천도준의 심장은 빠르게 요동쳤다.순간, 그는 의식이 몽롱해지고 머릿속이 하얘졌다.“난 네 뼈가 철로 만들어졌는 줄 알았는데 너도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구나?”이미연은 경멸과 혐오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천도준을 내려다보았다.“네가 나의 착한 손자인 태성이를 다치게 한 죄는 어떻게 갚을 거냐?”그녀의 말에 이수용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사님, 그 일은 이미 집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까?”“흥.”이미연은 갑자기 두 손을 휘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도준이는 우리 착하고 말 잘 듣는 태성이를 괴롭히고, 자꾸 물을 흐리려고 하고 있어. 너희들은 내가 정말 죽었으면 좋겠어? 멀쩡한 우리 손자 몸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렇게 쉽게 일을 끝내려고 하는 거야?”‘말 잘 듣고 착한 아이?’천도준은 냉소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분노가 끓어올랐다.이렇게 손자를 두둔하고 드니, 어떻게 사람들이 죄를 물을 수가 있겠는가?“여사님, 대표님도 칼에 찔리셨습니다. 대표님 몸의 이 상처는 정말 안 보이시는 겁니까?”이수용은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도준을 대신해 따지기 시작했다.“건방지게, 어디 하찮은 놈이 감히 입을 놀려? 너에게 말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이미연은
쿵.이수용과 존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공포가 극에 달했다.이수용의 눈빛은 어느새 절망으로 가득찼다.‘이젠…… 완전히 끝장났어.’이미연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사생아가 감히 그녀에게 이렇게 행동하다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이미연은 천씨 가문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천씨 가문의 가주라 하더라도 그녀에게 공경을 다해야했다.이미연은 기분이 좋을때에만, 천도준을 천씨 가문 가주의 아들로 여기면서 그를 사생아라고 칭한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때면, 천도준은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천도준은 이미연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순간, 그의 기세등등한 모습과 당당한 눈빛은 모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한 잔 올리겠습니다. 천씨 가문의 권력을 장악하고 계신 분인데, 제가 할머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할머님이 뭐라고 감히……”그의 말에 이미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녀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얼굴이 점점 새빨개지고, 수양으로 쌓아온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미연은 이를 꽉 악물었다.하지만 천도준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미연에게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죄를 묻는 다면, 제가 할머님 체면을 한 번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저 스스로 제 상처를 헐뜯으면 할머님께서도 양보해주세요. 전 할머님께서 양보해주시는 걸 바랄 뿐이지, 지장보살본원경으로 저를 몰아붙여라는 게 아니에요.”우뢰와 같은 목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천도준은 나쁘지도, 멍청하지도 않았다.그는 이미연의 언행에서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는 풀어주되, 자신을 죽여버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천도준은 물러서거나 참을 수 있었다. 심지어 무릎까지 꿇을 각오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면, 천도준은 쉽게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안채의 공기는 숨이 꽉 막힐 정도로 굳어있었다.양쪽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은 미간을 점점 더 찌푸렸다. 천도준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점점 더 매서워졌다.이런 상황에 이수용과 존은 조
천태영이든, 천태성이든 모두 천씨 가문의 엘리트로서 체계적인 격투기 훈련을 받아왔었다. 그런 그들도 천도준을 감당하지 못하는데, 이미연은 자기 옆에 서 있는 중년 남자가 자신을 지켜주리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도준의 말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일이든 못할까?안채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이수용과 존은 머리가 텅 비어있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마치 하늘이 곧 무너질 것 같았다.양쪽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천도준과 이미연은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만약 이 장면이 밖에 알려지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천씨 가문은 하늘 아래 최고의 가문이었다. 전쟁의 신도, 지위와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도, 모두 천씨 가문에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그런데 지금, 한 젊은이가 세 걸음만에 이미연의 피를 보게하려고 협박하고 있다.그렇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고, 안채 밖에서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다.순간, 이미연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준이는 제 아들입니다.” 짧은 한 마디가 마치 번개와 같은 큰 충격을 동반했다.모두가 깜짝 놀랐다.“가…… 가주님.”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이수용의 눈에는 광채가 나타났다.존도 기쁨에 겨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중년 남성도 다급히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가주님을 뵙습니다.”“너무 예의를 차리지 마세요, 박씨 어르신.”둔탁한 목소리가 은은한 바람과 함께 중년 남성에게 화답했다. “흥.”의자에 앉아있던 이미연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천도림, 너 꽤 빨리 왔네?”“어디 어르신만 하겠습니까?”그러자 이미연은 손가락으로 천도준을 가리키며 말했다.“그럼 어디 한 번 봐봐. 저렇게 반항하고 미쳐 날뛰는 사생아가 우리 가문의 엘리트들과 비교할 자격이 있어? 더군다나 우리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패기가 넘쳐흘렀다.이런 기세는 오직 천씨 가문의 가주에게만 있는 것이었다.이미연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수척한 몸은 가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꽉 악물었다.천도림은 가주지만, 그녀는 천씨 가문의 높은 어르신이었다.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하는 게 효도라고 할 수는 없었다.이런 상황은 이미연은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천도림은 이미연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놓았다.이수용과 존은 크게 기뻐하며 새빨개진 눈으로 천도림을 빤히 바라보았다.천도림은 분명히 천도준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양쪽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도 놀라운 기색이 역력했다.천도준조차 정신이 멍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코가 시큰거렸다.일면식도 없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기세가 등등하다고?“천도림, 지금 이게 가문의 가주로서 어르신을 대하는 태도인 거야?”이미연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천씨 가문의 어른에게 효를 다해라는 규칙은 어디로 간 거지?”“무슨 말씀이시죠?”천도림이 말했다.“이 사생아는 이 늙은이에게 아득바득 대들면서 효를 저버리고 있어. 그런데 가문의 가주로서 가문의 규칙을 엄격하게 다루지 않고 오히려 자식을 감싸고 있잖아.”이미연은 천도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기세가 다시 한번 높이 치솟았다.천씨 가문에서 효도는 중요한 규칙의 일부분이었다.이것이 바로 이미연이 오랜 세월 동안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문의 꼭대기에 우뚝 서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어찌 어르신 말씀을 거역하겠습니까? 만약 어르신께서 먼저 도준이를 공격하지 않았다면 제 아들이 어찌 감히 대들 수 있었을까요? 도준이는 스스로 자기 죄를 까발리고 용서를 구하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가문의 어른으로서 어떻게 행동하셨죠?”천도림의 목소리가 무섭게 가라앉았다.그의 말에 이미연은 깜짝 놀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을 쳐다봤다.그러자 중년 남자는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