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 청장님이 말해주셨어. 그 두 여자애는 네 친구야?”연도진의 삼촌, 서정훈이 물었다.“네, 제가 알기로는 절대 불법적인 약물에 손댈 사람들이 아니에요. 바에서 술 마실 때 누군가 술에 손을 쓴 것 같아요.”연도진의 말을 들은 서정훈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은 채 옆에 있는 류지태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류지태가 말했다.“그랬군요. 도진 씨, 서 의원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부하 직원들에게 빨리 확인하고 두 친구분을 풀어주라고 할게요.”“고마워요, 류 청장님.”연도진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취조실 안으로 들어온 심문관은 경험과 대화를 통해 온하랑이 처음이고 아직 중독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온하랑은 두통을 참으며 술집에서 있었던 일을 필사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당시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세부 사항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잘 생각해 보세요. 술잔이 시야에서 사라진 적이 없는지.”미간을 찌푸린 온하랑은 두통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안절부절못하며 씁쓸하게 말했다.“전 정말 생각이 안 나요.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보시면 안 돼요?”심문관은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이때 밖에서 한 경찰이 들어와서 심문관의 귀에 무언가를 말했고, 두 사람은 함께 취조실을 나갔다.몇 분 후 심문관은 다시 들어와 온하랑에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이만 나가봐요.”“네?”온하랑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터질 것 같던 머리가 순식간에 편해지는 것 같았다.“심문 안 해요?”“더 하고 싶은 거예요?”그녀는 두말없이 일어나 취조실에서 나왔다.“하랑 씨! 괜찮아요?”이미 취조실에서 나온 김시연은 문 앞에서 온하랑을 기다렸다가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앞으로 다가갔다.“난 괜찮아요. 그냥 머리가 좀 아파요. 시연 씨는 어때요?”김시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난 아무 반응도 없어요. 검사 결과가 아니었다면 내가 마신 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예요. 대체 누구 짓인지. 아무튼 이 바는 이제부터
연도진도 설핏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인사를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서정훈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그게 뭐 고민할 가치가 있어요.”“저를 기억하세요?”온하랑은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처음에는 생각나지 않았는데 이제 기억이 나네요. 당신 이름은 온하랑이고 남편은 부승민 맞죠?”“기억력이 정말 좋으시네요.”온하랑은 일부러 부승민과 이혼한 사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슬쩍 아부했다. 진실을 말한 것이니 아부라 할 수도 없었다.어쨌든 그때 한 번 보았을 뿐인데 그녀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온하랑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정훈은 미소를 지으며 길게 말하지 않고 밖으로 걸어갔다. 연도진은 발걸음을 주춤하더니 김시연을 바라보았다.“먼저 휴게실에 가서 기다려.”김시연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다리를 뻗어 앞으로 걸어갔다. 서정훈은 뒤에서 따라오는 연도진을 흘끗 쳐다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방금 그 여자애한테 관심 있어?”연도진은 부인하지 않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잠시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삼촌.” “너도 이제 어리지 않은데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면 얼른 결정하고 부모님께 보여드려야지.”서정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말했다.“네, 알아요.”문 앞에 이르자 연도진은 앞장서서 걸어가 차 문을 열었다.“삼촌, 들어가세요.”서정훈은 뒷좌석에 앉았다.“그래 들어가 봐. 일 처리 잘하고, 다음에 집에 와서 밥 먹으렴.”“네.”서정훈을 배웅한 연도진은 휴게실로 향했다. 온하랑과 김시연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시연은 서정훈이 낯익다고 생각했지만 온하랑의 말을 듣고서야 그의 정체를 알고 감탄했다.“이렇게 친절한 분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그런데 연도진은 어떻게 저분을 알고 있죠?”“그건 연도진한테 물어봐야죠.”온하랑이 말을 마치자마자 연도진이 휴게실 문 앞에 나타났다. 김시연은 그를 흘끗 쳐다보며 물었다.“야, 너 저분을 어떻게 알고 있어?”
온하랑은 오재원이 사람을 시켜 자기 술잔에 불법 약물을 넣게 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경주에 있을 때 오재원은 그녀에게 공격적인 말을 쏘아붙였지만 온하랑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언제 오재원에게 폐를 끼친 적이 있는가? 절대 그런 적이 없었다.오재원은 단순히 온하랑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해를 끼치다니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이번에는 돌이킬 수 있었지만 만약 오재원이 그녀가 무방비한 상태에서 또다시 똑같은 짓을 한다면 그녀는 중독될 수도 있지 않을까?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온하랑은 치가 떨렸다.“이 사람은요? 두 사람은 한 패예요.”경찰은 오재원 옆의 여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온하랑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임연지예요!”오재원이 온하랑에게 갖는 이유 없는 적의는 임연지 때문이란 말인가?경찰이 김시연을 보자 그녀는 손을 가로저었다.“전 이 사람들 몰라요.”경찰은 다시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혹시 이 사람들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온하랑은 오재원을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과는 없는데, 이 여자와는 조금 있어요.”“자세히 말해 보세요.”팔짱을 끼고 있던 연도진은 사색에 잠겨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임연지는 최동철을 좋아한다. 연도진은 최동철의 집에 하룻밤 머물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러나 최동철은 온하랑에게 관심이 있었다. 임연지는 이 때문에 온하랑을 노렸을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뜻밖에도 온하랑의 다음 말은 그와 김시연을 놀라게 했다. 최동철의 계모는 사실 온하랑의 친어머니였고, 온하랑과 임연지는 사촌지간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임연지는 얼마 전 온하랑의 사진 작품도 훔친 적이 있었다.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후 경찰은 온하랑과 김시연에게 말했다.“이제 벌금을 내고 가도 됩니다. 요즘 꼭 조심하세요. 뒤에 다른 상황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경찰서에서 나오면서 김시연이 온하랑을 붙잡고 수다를 떨자 연도진은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 걸었다
연도진은 차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다.“당연히 차 타야지. 좀 안쪽으로 가줄래?”김시연은 뒤늦게 연도진과 최동철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연도진이 최동철에게 미리 말을 해두었을 것이 뻔했다. 그러니 최동철이 연도진도 함께 차에 태워 데려다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김시연은 입술을 삐죽이며 어쩔 수 없이 안쪽으로 옮겨 연도진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연도진이 김시연의 옆자리에 앉으며 문을 닫았다. 익숙한 향기가 김시연의 코끝을 간지럽혔다.온하랑이 물었다.“동철 오빠, 오빠가 오 여기 있어요?”“연도진이 알려줬어.”최동철이 대답했다.“괜찮지? 오늘 저녁에 너무 놀라진 않았고?”“괜찮아요.”“무슨 일인지는 알아냈어?”“… 알아냈어요.”최동철이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한 짓이래?”온하랑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연도진이 먼저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네 사촌 동생이랑 오재원이라는 사람.”최동철이 멈칫하더니 연도진을 바라보았다.연도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최동철에게 확신의 의사를 표했다.최동철의 눈빛은 지옥의 신처럼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변했다. 그러던 것도 잠시, 최동철의 시선은 이내 온하랑에게로 옮겨지더니 미안한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해, 하랑아. 내가 가족이랑 친구 간수를 잘 못 해서 그래. 이번 일은 내가 오씨 가문 통해서 잘 처리할게.”온하랑이 웃으며 답했다.“동철 오빠, 오빠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최동철은 최동철이고 임연지는 임연지였다.최동철은 고개를 다시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가늘게 실눈을 떴다.보아하니 최동철이 여태껏 임연지를 너무 오냐오냐 대한 모양이다. 임연지를 정말 자시의 친사촌 동생이라고 생각한 듯했다.연도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긴 다리를 편하게 놓은 채 눈을 비비고 물었다.“이 일, 알려지지는 않았지?”“이미 다 막았어.”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온하랑은 그제야 누군가에 의해 찍힌
오재원은 새벽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오재원의 부모님은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강남까지 달려왔다. 모든 일을 전해 들은 오재원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들이 임연지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알게 됐다.임가희조차 술집 여자라며 무시해왔던 그들이니 임연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런 임연지에게 홀려도 제대로 홀린 아들은 부모가 어떻게 설득하든 절대 임연지를 배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하랑에게 복수하고 싶어 혼자 저지른 짓이라고만 잡아뗐다.오씨 일가 역시 경주에서 알아주는 명문 세가로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여론을 잠재우고 일을 덮는 것쯤은 식은 쭉 먹기였다.하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오재원이 저지른 짓은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첫째, 이 일은 경주가 아닌 강남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명문가라고 해도 경주 가문의 세력이 강남까지 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둘째, 위에서 내려온 정부 감사 때문에 강남 시 경찰들도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 부승민도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지금이야 어떻게든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지만 언론에 알려지는 순간,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일이었다. 여론이 돌아선다면 오재원에게도 좋을 건 없었다.오재원의 부모는 철없는 아들 때문에 심장을 졸이고 있었다.부승민은 이튿날이 되어서야 이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하랑의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각, 온하랑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약효가 돌기 시작하니 온하랑은 낯빛이 창백해지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지쳐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무기력해지니 그 어떤 일에도 무감각하게 반응하게 되었다.이게 부작용이라는 것을 온하랑 역시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부승민은 마음 아프다는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큰 손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온하랑은 뜨거운 햇볕 아래 시들어버린 꽃과도 같아 보였다. 뜨거운 햇볕에 바짝 말라버려 그 어떠한 향기도, 생기도 뿜어내지 않는 꽃이었다.
온하랑은 입을 벌려 부승민이 건네준 오렌지를 받아먹었다.그녀의 표정에는 방금 츄르를 받아먹은 송이처럼 애교 섞인 귀여움이 어려있었다.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마음껏 귀여워해주며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온하랑도 송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부승민의 손길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다.금방 부승민과 이혼을 했던 때를 떠오리면 온하랑은 부승민을 피하기에 급급했지 이런 말랑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지금 둘의 관계는 딱 봐도 단순한 친구 사이를 넘어섰다. 그저 부승민에게 온하랑에게 다시 청혼 할 명분이 부족할 뿐이었다.부승민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오렌지 한 조각을 더 뜯어 온하랑의 입가에 갖다주었다.“오재원 부모가 널 찾아올 거야. 오재원을 용서해달라는 부탁을 하겠지.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최대한 가벼운 판결이 나와야 할 테니까.”마약까지 연루된 탓에 경찰 측에서 이 일을 형사사건으로 입건하는 바람에 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오씨 일가에서는 어떻게든 오재원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총동원 할 것이 뻔했다.온하랑이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만약에 내가 합의 안 해준다 그러면, 나만 곤란해 지는 거 아니야?”“그럴 거야. 하지만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부승민의 말을 듣자 온하랑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도움은 필요 없어.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기꺼이 한 발짝 물러나주지, 뭐.이미 떠나기로 마음 먹은 판에 온하랑은 부승민이 자신 때문에 나서길 바라지 않았다.부승민의 감정을 얻을 생각도 없었고 부승민이 자신 때문에 오씨 일가와 척을 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부승민은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온하랑이 점점 자신을 멀리 하며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부승민도 진작 알고 있었다.그리고 부승민이 여태껏 도와줬던 것들도 온하랑은 아주 당연하게 그 도움에 대
표정 변화 하나 없던 오재원의 엄마인 오승은의 얼굴이 삽시에 붉어지더니 말했다.“아가씨들, 저희는 우리 재원이를 구하고 싶었던 거지, 아가씨들의 친구를 다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아가씨들도 아시잖아요, 세상 그 어떤 부모가 아들이 감옥에 가는 걸 그저 두고만 보겠어요?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저희 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서로 원수 져서 좋을 거 없잖아요. 생각 잘 해보셨으면 좋겠네요.”“말은 청산유수시네요!”김시연이 어이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솔직히 말씀하세요. 우리가 댁네 착해 빠진 그 아드님 용서해줘야 한다는 거잖아요.”“김시연 씨, 욕하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실컷 하세요.”오승은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라도 김시연 씨 화가 어느 정도 풀린다면 실컷 하세요. 진정 좀 하고 잘 생각해보세요. 아가씨들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지, 친구가 더 중요한지.”오승은의 침착한 태도에 김시연도 힘이 빠져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김시연은 온하랑과 눈을 마주쳤다. 오재원 모의 말만 들으면 쉬운 일처럼 들렸지만 그녀들에게는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온하랑이 비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이미 저희가 그쪽이랑 타협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고민해야 할 게 뭐가 있는데요?”오승은이 가볍게 웃으며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저희도 방법이 딱히 없어서 꺼내든 최후의 수단이에요. 아가씨들 의리 하나는 지키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여러분들과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요. 자, 여기 탄원서만 다 써주시면 아가씨들 친구는 바로 풀려날 겁니다.”온하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노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전에 내걸었던 조건들도 아직 유효한 거죠?”어차피 이미 타협하기로 한 거, 뭐든 많이 얻는 편이 좋지 않을까. 뭐 하나라도 손해 보면 배 아파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오형일이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당연히 유효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더니 고개를 들어 오형일과 오승은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게 제 뜻입니다. 저는 하랑이가 합의 안 해줬으면 좋겠거든요. 오재원은 세상 물정 다 아는 법적 성인입니다. 이미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가정교육이 잘못됐다면 이 사회라도 뒤늦게 그 부족한 가정교육을 메워야겠죠.”오형일이 냉소를 흘렸다.“부승민 씨, 부승민 씨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온하랑 씨의 의견이죠. 안 그래요. 온하랑 씨?”온하랑은 오형일의 말에 담긴 위협적인 말투를 눈치챘다. 그녀는 뒤늦게 부승민을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온하랑이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부승민 다시 말을 꺼냈다.“하랑이 협박하실 필요 없어요. 하랑이는 겁이 많은 여자거든요. 아, 맞다. 수하분들한테 말씀 못 전해 들으신 것 같은데 주현 씨는 이미 안전합니다.”오형일이 오재원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쓸 것이라는 걸 진작 예상했던 부승민은 육광태에게 오씨 일가가 강남까지 올 때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을 분부했다.오재원의 부모가 강남에 도착할 때쯤, 육광태는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가 주현을 구출해냈다.온하랑과 김시연의 표정이 밝아졌다.김시연은 부승민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김시연의 눈에 부승민이 이토록 마음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재원 부모의 낯빛이 순식간이 변했다.오형일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부승민을 빤히 응시했다.“지금 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까?”“제가 정말 오형일 씨를 속이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직접 수하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부승민은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부승민의 말에 오형일의 심장이 철렁했다.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그 벨 소리에 오승은은 더욱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다급하게 오형일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화를 받은 오승은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휴대폰을 쥐고 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