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 변화 하나 없던 오재원의 엄마인 오승은의 얼굴이 삽시에 붉어지더니 말했다.“아가씨들, 저희는 우리 재원이를 구하고 싶었던 거지, 아가씨들의 친구를 다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아가씨들도 아시잖아요, 세상 그 어떤 부모가 아들이 감옥에 가는 걸 그저 두고만 보겠어요?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저희 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서로 원수 져서 좋을 거 없잖아요. 생각 잘 해보셨으면 좋겠네요.”“말은 청산유수시네요!”김시연이 어이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솔직히 말씀하세요. 우리가 댁네 착해 빠진 그 아드님 용서해줘야 한다는 거잖아요.”“김시연 씨, 욕하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실컷 하세요.”오승은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라도 김시연 씨 화가 어느 정도 풀린다면 실컷 하세요. 진정 좀 하고 잘 생각해보세요. 아가씨들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지, 친구가 더 중요한지.”오승은의 침착한 태도에 김시연도 힘이 빠져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김시연은 온하랑과 눈을 마주쳤다. 오재원 모의 말만 들으면 쉬운 일처럼 들렸지만 그녀들에게는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온하랑이 비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이미 저희가 그쪽이랑 타협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고민해야 할 게 뭐가 있는데요?”오승은이 가볍게 웃으며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저희도 방법이 딱히 없어서 꺼내든 최후의 수단이에요. 아가씨들 의리 하나는 지키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여러분들과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요. 자, 여기 탄원서만 다 써주시면 아가씨들 친구는 바로 풀려날 겁니다.”온하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노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전에 내걸었던 조건들도 아직 유효한 거죠?”어차피 이미 타협하기로 한 거, 뭐든 많이 얻는 편이 좋지 않을까. 뭐 하나라도 손해 보면 배 아파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오형일이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당연히 유효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더니 고개를 들어 오형일과 오승은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게 제 뜻입니다. 저는 하랑이가 합의 안 해줬으면 좋겠거든요. 오재원은 세상 물정 다 아는 법적 성인입니다. 이미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가정교육이 잘못됐다면 이 사회라도 뒤늦게 그 부족한 가정교육을 메워야겠죠.”오형일이 냉소를 흘렸다.“부승민 씨, 부승민 씨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온하랑 씨의 의견이죠. 안 그래요. 온하랑 씨?”온하랑은 오형일의 말에 담긴 위협적인 말투를 눈치챘다. 그녀는 뒤늦게 부승민을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온하랑이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부승민 다시 말을 꺼냈다.“하랑이 협박하실 필요 없어요. 하랑이는 겁이 많은 여자거든요. 아, 맞다. 수하분들한테 말씀 못 전해 들으신 것 같은데 주현 씨는 이미 안전합니다.”오형일이 오재원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쓸 것이라는 걸 진작 예상했던 부승민은 육광태에게 오씨 일가가 강남까지 올 때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을 분부했다.오재원의 부모가 강남에 도착할 때쯤, 육광태는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가 주현을 구출해냈다.온하랑과 김시연의 표정이 밝아졌다.김시연은 부승민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김시연의 눈에 부승민이 이토록 마음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재원 부모의 낯빛이 순식간이 변했다.오형일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부승민을 빤히 응시했다.“지금 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까?”“제가 정말 오형일 씨를 속이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직접 수하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부승민은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부승민의 말에 오형일의 심장이 철렁했다.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그 벨 소리에 오승은은 더욱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다급하게 오형일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화를 받은 오승은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휴대폰을 쥐고 있던
오후가 되어서야 부승민은 온하랑의 집에 도착했다.온하랑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급히 마중을 나가 문을 열며 물었다.“어떻게 됐어?”부승민은 온하랑의 표정에 어딘가 모르게 웃음이 났다.온하랑은 부승민을 이토록 환영해준 적은 처음이었다.“타협하고 왔어.”부승민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어떻게 얘기했는데?”온하랑은 부승민과 마주 보고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도 된 듯 귀를 쫑긋 세웠다.“오형일이 나한테 사랑하는 자기 아들 좀 이해해달라고 하길래, 난 사랑하는 내 아내 좀 이해해달라고 맞받아쳤지.”부승민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온하랑도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부승민, 너 진짜 생각보다 더 뻔뻔하다.”“그걸 이제 알았어?”“…”온하랑이 대화 주제를 바꿨다.“그리고? 단순히 그 말 한마디로 탄원서를 포기했을 리가 없잖아.”“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방향을 좀 잡아줬어.”“어떻게 했는데?”“최씨 일가를 찾아가라고 알려줬어.”부승민이 진지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너, 오재원이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뭐라고 진술했는지는 알아?”온하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몰라.”“오재원 진술로는 본인이 그런 짓을 저지른 이유가 최동철이 너한테 홀릴까 봐서래. 네가 최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는 게 싫어서.”온하랑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는 부승민의 표정에는 어딘가 기분 나쁘다는 듯한 기색이 비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했다.온하랑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미친 거 아니야? 내가 언제 최씨 가문 며느리로 들어간다고 했는데?”부승민의 눈을 마주 보며 온하랑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왜? 넌 오재원 말을 믿어?”“당연히 안 믿지. 근데 오재원이 왜 이런 오해를 하는 걸까?”“임연지 때문에.”“맞아.”부승민이 답했다.“그러니까 최동철을 위해서든, 임연지를 위해서든 오재원이 저지른 짓은 최씨 일가와 무조건 관련이 있다는 거야. 그럼 오재원 부모는 최씨 일가부터 찾아가야지. 임연지 찾으러. 알겠어?”온하랑이 잠시 고민하더
온하랑은 부승민의 의견을 알아차리고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됐어.”시작부터 온하랑은 그저 기부가 하고 싶었다. 다만 그 금액이 지나치게 컸던 탓에 재단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 뿐 재단으로 비리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다.부승민도 온하랑이 거절할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온하랑은 여전히 무의식 속에서 본인을 평범한 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인맥이나 돈을 찾는 대신 경찰부터 찾는다.그러니 부승민은 항상 온하랑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단순하고 쉬운 온하랑을 지켜주고 싶었다.“그래, 싫으면 말아. 내가 다 보완해주고 지켜줄 테니까 빚진다는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 그냥 날 떠나지만 말아줘.”부승민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설마 내가 허를 찌른 건가?”...감동하려던 찰나였지만 마지막 한 마디 때문에 온하랑은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아니, 네가 의심이 너무 많은 거야.”온하랑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민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부승민 한 번만 믿어주어도 되는 걸까? 꼭 떠나야만 할까?“너 사기꾼이잖아. 경주에서 날 어떻게 속였는지 난 아직도 기억하는데”부승민이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온하랑은 뭔가가 떠오른 듯 부승민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맞다, 우리 집 열쇠가 너한테 왜 있어?”부승민이 잠시 멈칫하더니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온하랑이 곧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열쇠를 들고 물었다.“이거 내 열쇠 아냐?”“응, 맞아.”“언제 가져갔어?”“오늘 아침에.”“난 왜 몰랐지?”“넌 그때 바나나 먹느라 바빴으니까.”“...”아침, 임연지는 오재원에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빠른 항공권을 예매해 다급히 경성으로 돌아갔다.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깨닫자 임연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경주에 도착해 임가희를 보는 순간 임연지는 그녀의 품에 안겨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고
임연지는 말이 없어진 임가희의 모습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고모, 꼭 저 구해주셔야 해요.”뒤늦게 정신을 차린 임가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자 오재원이 저지른 짓이라고 하지 않았어? 경찰이 아직 널 체포하러 온 것도 아니잖아. 그럼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임연지의 심장이 계속해서 쿵쿵 뛰었다.“근데 저 무서워요. 만약 오재원이 감형받으려고 경찰한테 제 이름 불어버리면 어떡해요? 그리고 오씨 집안 사람들이 제가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하면요? 두 집안 관계 유지하려고 고모부께서 저를 방패로 쓰시면 어떡해요?”오재원이 경찰한테 잡혀있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오재원은 정말 임연지의 개새끼였다. 임연지가 손가락만 까딱이며 오른쪽으로 가라 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은 감히 쳐다도 못 보는 그런 사람이었다.임연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바로 오재원의 가문인 오씨 집안이었다.명문 세가 사람들로서 모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람 보는 눈에는 도가 터 있었다. 임연지가 오재원을 꼬드겼다는 것쯤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곧 있으면 얘기를 나누러 최씨 일가로 찾아올 것이다.임가희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밑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임연지가 다급히 창가로 달려가 창밖을 확인했다. 검은색 승용차가 최씨 일가의 저택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차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내렸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오재원의 삼촌이었다.오재원의 삼촌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저택 2층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임연지가 재빨리 고개를 숨기고 임가희의 팔을 끌어안은 채 울면서 말했다.“고모, 오씨 집안 사람이 온 것 같아요! 저 좀 살려주세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저한테 남은 친척이라고는 고모밖에 없다고요.”임연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그 시절, 임연지의 부모님은 경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던 탓에 임가희의 차를 타고 외출했다.어쩌면 임가희도 그 차에 함
“형님, 어차피 진짜 가족도 아니잖습니까. 임연지 그것이 심보가 못돼서는 관리도 똑바로 안 되니까 계속 최씨 가문에 남겨두면 언젠가 큰일을 칠 겁니다.”“형님, 우리 두 가문의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두 노인네가 아직 살아있을 때는 기억 하십니까? 저희 아버지가 저 데리고 최씨 일가 저택까지 찾아왔다가 속옷 한 장 못 입고 돌아갔던 그 일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그때 일을 장난처럼 얘기하시더라고요. 재원이도 동철이랑 같이 자란 아이인데 아직도 저렇게 잘 지내는 걸 보니까 저도 기분이 참 좋습니다... 형님, 형님도 제 친형 부부한테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아시겠죠. 바깥사람 때문에 형제 우애를 망치고 싶지가 않네요.”오정우는 두 집안의 관계가 최씨 가문에 달려있다는 뜻이 담긴 말을 전했다. 최국환이 임연지만 자신들에게 넘긴다면 두 집안의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오재원이 감옥에 들어가는 이상 두 집안의 관계는 바로 끊긴다는 것이다.최국환이 답했다.“난 여태껏 재원이를 내 친조카라고 생각해왔어. 재원이를 감옥에 보내고 싶을 리가 있나. 이렇게 하자. 지금 당장 연지 불러서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어보도록 하지. 정말 연지와 관련되어 있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어휴, 역시 형님은 공평하게 대해줄 줄 알았어요.”오정우가 말했다.최국환이 도우미를 시켜 위층으로 올라가 임연지를 불러오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위층에서 내려와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선생님, 아가씨께서 집에 안 계신데요.”최국환이 놀란 기색으로 물어봤다.“금방 돌아오지 않았나?”도우미가 답했다.“사모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아가씨께서 잠시 다른 곳으로 여행 가셨다고 하던데요. 물건 정리만 대충하고 바로 다시 나가셨대요.”오정우가 최국환을 슬쩍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여행이라니, 물건만 챙기고 바로 나갔다니. 이걸 누가 믿나.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니까 도망간 게 아니고? 임연지의 도망으로 최국환은 이
“정말 관련도 없다면 도망은 왜 친 건데?”최국환이 냉소를 지으며 임가희를 바라보았다.“요즘 날씨가 확확 변하니까 동림이 감기 안 걸리게 케어 잘 해줘. 다른 일은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어.”“하지만, 연지는 우리 오빠 부부의 유일한 아이예요.”임가희가 말을 꺼내며 눈시울을 붉혔다.“전에 본가에 있을 때도 저희 오빠가 저한테 얼마나 잘 해줬는지 아세요? 무슨 물건이든 다 저한테 남겨주고 전남편한테 가정 폭력을 당할 때도 저희 오빠 아니었으면 이혼도 못 했을 거예요. 연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나중에 오빠 얼굴을 무슨 면목으로 봐요?”“나도 당신이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당신 오빠한테 미안해서 이러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하지만 당신이 정말 연지를 위한다면 이런 식으로 감싸고 도는 것도 절대 좋은 게 아니야! 만약 정우가 아니었다면 난 연지가 남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거야!”최국환은 관리를 잘 받아 아직도 청초하고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의 비참했던 몰골을 떠올렸다. 최국환의 말투는 여전히 단호했지만 태도에서 마음이 약해졌다는 게 티가 났다.임가희가 눈물을 머금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그 일은 연지가 잘못한 게 맞아요. 그 일에 대해선 제가 이미 잘 알아듣게 혼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잘 넘기기만 한다면 제가 충분히 타이르도록 할게요. 여보,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돼요?”얼음장 같던 최국환의 마음이 순식간에 눈 녹듯 풀려버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연지가 저지른 일의 뒤처리쯤은 나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하지만 그 조건으로 연지는 무조건 내 계획에 따라야 해.”임가희가 잠시 멈칫하더니 찔러보듯 물었다.“어떤 계획인데요?”최국환이 임가희를 바라보았다.“그건 나도 아직 몰라. 하지만 연지를 해치는 일은 없을 거야. 그저 연지가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날 따위는 없을 거란 소리지.”임가희가 입을 열기 전에 최국환이
“아버지, 서로에게 다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최동철은 웃는 듯 마는 듯하면서 최국환의 사심을 알아보지 못 본 척했다.“피해자가 친구라면서? 네가 직접 가서 얘기해봐. 만약 오재원을 양해해 준다면 어떤 조건이라도 상관없어.”“이게 바로 아버지가 말한 서로에게 다 좋은 방법이에요?”최동철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최국환은 눈꼬리가 펄쩍 뛰었다.“온하랑은 너의 학생이지? 네가 나서면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동의할 거야.”앞서 촬영 공모전에서 최동철은 사고가 발생하였고 임연지는 이 틈을 탔다. 겨우 이일을 해결하였는데 그날 룸에서 오재원은 또 온하랑에게 함부로 말을 지껄였다. 이번 일까지 겹치게 되면 최동철은 온하랑에게 오재원을 양해하라고 말할 면목이 없었다.최동철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최국환은 그를 흘겨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오재원이 말한 것처럼 온하랑에게 미혹되어 너의 사촌 동생인 오재원이 감옥에 가는 꼴을 보더라도 돕지 않을 거야?”최동철은 말하려다 무언가가 문득 생각이 나서 눈을 내리깔며 찬웃음을 지었다.“난 그녀를 좋아하지만, 양해하는 것은 그녀의 권리에요. 그녀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억지를 부리겠어요! 나 때문에 이미 이런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사정할 면목이 없어요. 그리고 오씨네 가문에서 그녀를 찾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협박과 회유도 안 되는 걸 내가 말하면 양해해 줄 것 같나요?”“이번 일은 오재연과 연지의 잘못이에요.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저한테 책임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어요. 그러니 그들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죠, 아버지가 보기에는요?”“오재원은 너와 함께 컸어. 그가 감옥살이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당연히 아니죠. 하여 나는 임연지를 오씨 가문에 넘기려고 해요.”최동철이 답했다.최국환은 말문이 막혀버렸다.“나는 그녀가 다른 곳으로 피신갈 거라고 짐작했어요.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을 시켜 쫓도록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거예요.”최동철이 말했다.“너...”최국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