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부승민의 의견을 알아차리고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됐어.”시작부터 온하랑은 그저 기부가 하고 싶었다. 다만 그 금액이 지나치게 컸던 탓에 재단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 뿐 재단으로 비리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다.부승민도 온하랑이 거절할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온하랑은 여전히 무의식 속에서 본인을 평범한 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인맥이나 돈을 찾는 대신 경찰부터 찾는다.그러니 부승민은 항상 온하랑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단순하고 쉬운 온하랑을 지켜주고 싶었다.“그래, 싫으면 말아. 내가 다 보완해주고 지켜줄 테니까 빚진다는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 그냥 날 떠나지만 말아줘.”부승민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설마 내가 허를 찌른 건가?”...감동하려던 찰나였지만 마지막 한 마디 때문에 온하랑은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아니, 네가 의심이 너무 많은 거야.”온하랑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민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부승민 한 번만 믿어주어도 되는 걸까? 꼭 떠나야만 할까?“너 사기꾼이잖아. 경주에서 날 어떻게 속였는지 난 아직도 기억하는데”부승민이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온하랑은 뭔가가 떠오른 듯 부승민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맞다, 우리 집 열쇠가 너한테 왜 있어?”부승민이 잠시 멈칫하더니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온하랑이 곧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열쇠를 들고 물었다.“이거 내 열쇠 아냐?”“응, 맞아.”“언제 가져갔어?”“오늘 아침에.”“난 왜 몰랐지?”“넌 그때 바나나 먹느라 바빴으니까.”“...”아침, 임연지는 오재원에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빠른 항공권을 예매해 다급히 경성으로 돌아갔다.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깨닫자 임연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경주에 도착해 임가희를 보는 순간 임연지는 그녀의 품에 안겨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고
임연지는 말이 없어진 임가희의 모습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고모, 꼭 저 구해주셔야 해요.”뒤늦게 정신을 차린 임가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자 오재원이 저지른 짓이라고 하지 않았어? 경찰이 아직 널 체포하러 온 것도 아니잖아. 그럼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임연지의 심장이 계속해서 쿵쿵 뛰었다.“근데 저 무서워요. 만약 오재원이 감형받으려고 경찰한테 제 이름 불어버리면 어떡해요? 그리고 오씨 집안 사람들이 제가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하면요? 두 집안 관계 유지하려고 고모부께서 저를 방패로 쓰시면 어떡해요?”오재원이 경찰한테 잡혀있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오재원은 정말 임연지의 개새끼였다. 임연지가 손가락만 까딱이며 오른쪽으로 가라 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은 감히 쳐다도 못 보는 그런 사람이었다.임연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바로 오재원의 가문인 오씨 집안이었다.명문 세가 사람들로서 모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람 보는 눈에는 도가 터 있었다. 임연지가 오재원을 꼬드겼다는 것쯤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곧 있으면 얘기를 나누러 최씨 일가로 찾아올 것이다.임가희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밑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임연지가 다급히 창가로 달려가 창밖을 확인했다. 검은색 승용차가 최씨 일가의 저택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차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내렸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오재원의 삼촌이었다.오재원의 삼촌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저택 2층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임연지가 재빨리 고개를 숨기고 임가희의 팔을 끌어안은 채 울면서 말했다.“고모, 오씨 집안 사람이 온 것 같아요! 저 좀 살려주세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저한테 남은 친척이라고는 고모밖에 없다고요.”임연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그 시절, 임연지의 부모님은 경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던 탓에 임가희의 차를 타고 외출했다.어쩌면 임가희도 그 차에 함
“형님, 어차피 진짜 가족도 아니잖습니까. 임연지 그것이 심보가 못돼서는 관리도 똑바로 안 되니까 계속 최씨 가문에 남겨두면 언젠가 큰일을 칠 겁니다.”“형님, 우리 두 가문의 관계가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두 노인네가 아직 살아있을 때는 기억 하십니까? 저희 아버지가 저 데리고 최씨 일가 저택까지 찾아왔다가 속옷 한 장 못 입고 돌아갔던 그 일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직도 그때 일을 장난처럼 얘기하시더라고요. 재원이도 동철이랑 같이 자란 아이인데 아직도 저렇게 잘 지내는 걸 보니까 저도 기분이 참 좋습니다... 형님, 형님도 제 친형 부부한테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아시겠죠. 바깥사람 때문에 형제 우애를 망치고 싶지가 않네요.”오정우는 두 집안의 관계가 최씨 가문에 달려있다는 뜻이 담긴 말을 전했다. 최국환이 임연지만 자신들에게 넘긴다면 두 집안의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지만 오재원이 감옥에 들어가는 이상 두 집안의 관계는 바로 끊긴다는 것이다.최국환이 답했다.“난 여태껏 재원이를 내 친조카라고 생각해왔어. 재원이를 감옥에 보내고 싶을 리가 있나. 이렇게 하자. 지금 당장 연지 불러서 무슨 일인지 자세히 물어보도록 하지. 정말 연지와 관련되어 있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야.”“어휴, 역시 형님은 공평하게 대해줄 줄 알았어요.”오정우가 말했다.최국환이 도우미를 시켜 위층으로 올라가 임연지를 불러오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우미가 위층에서 내려와 전전긍긍하며 말했다.“선생님, 아가씨께서 집에 안 계신데요.”최국환이 놀란 기색으로 물어봤다.“금방 돌아오지 않았나?”도우미가 답했다.“사모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아가씨께서 잠시 다른 곳으로 여행 가셨다고 하던데요. 물건 정리만 대충하고 바로 다시 나가셨대요.”오정우가 최국환을 슬쩍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여행이라니, 물건만 챙기고 바로 나갔다니. 이걸 누가 믿나.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니까 도망간 게 아니고? 임연지의 도망으로 최국환은 이
“정말 관련도 없다면 도망은 왜 친 건데?”최국환이 냉소를 지으며 임가희를 바라보았다.“요즘 날씨가 확확 변하니까 동림이 감기 안 걸리게 케어 잘 해줘. 다른 일은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어.”“하지만, 연지는 우리 오빠 부부의 유일한 아이예요.”임가희가 말을 꺼내며 눈시울을 붉혔다.“전에 본가에 있을 때도 저희 오빠가 저한테 얼마나 잘 해줬는지 아세요? 무슨 물건이든 다 저한테 남겨주고 전남편한테 가정 폭력을 당할 때도 저희 오빠 아니었으면 이혼도 못 했을 거예요. 연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나중에 오빠 얼굴을 무슨 면목으로 봐요?”“나도 당신이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 당신 오빠한테 미안해서 이러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하지만 당신이 정말 연지를 위한다면 이런 식으로 감싸고 도는 것도 절대 좋은 게 아니야! 만약 정우가 아니었다면 난 연지가 남의 작품을 도용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거야!”최국환은 관리를 잘 받아 아직도 청초하고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의 비참했던 몰골을 떠올렸다. 최국환의 말투는 여전히 단호했지만 태도에서 마음이 약해졌다는 게 티가 났다.임가희가 눈물을 머금고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그 일은 연지가 잘못한 게 맞아요. 그 일에 대해선 제가 이미 잘 알아듣게 혼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잘 넘기기만 한다면 제가 충분히 타이르도록 할게요. 여보,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돼요?”얼음장 같던 최국환의 마음이 순식간에 눈 녹듯 풀려버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연지가 저지른 일의 뒤처리쯤은 나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하지만 그 조건으로 연지는 무조건 내 계획에 따라야 해.”임가희가 잠시 멈칫하더니 찔러보듯 물었다.“어떤 계획인데요?”최국환이 임가희를 바라보았다.“그건 나도 아직 몰라. 하지만 연지를 해치는 일은 없을 거야. 그저 연지가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날 따위는 없을 거란 소리지.”임가희가 입을 열기 전에 최국환이
“아버지, 서로에게 다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최동철은 웃는 듯 마는 듯하면서 최국환의 사심을 알아보지 못 본 척했다.“피해자가 친구라면서? 네가 직접 가서 얘기해봐. 만약 오재원을 양해해 준다면 어떤 조건이라도 상관없어.”“이게 바로 아버지가 말한 서로에게 다 좋은 방법이에요?”최동철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최국환은 눈꼬리가 펄쩍 뛰었다.“온하랑은 너의 학생이지? 네가 나서면 너의 체면을 봐서라도 동의할 거야.”앞서 촬영 공모전에서 최동철은 사고가 발생하였고 임연지는 이 틈을 탔다. 겨우 이일을 해결하였는데 그날 룸에서 오재원은 또 온하랑에게 함부로 말을 지껄였다. 이번 일까지 겹치게 되면 최동철은 온하랑에게 오재원을 양해하라고 말할 면목이 없었다.최동철이 망설이는 것을 보고 최국환은 그를 흘겨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오재원이 말한 것처럼 온하랑에게 미혹되어 너의 사촌 동생인 오재원이 감옥에 가는 꼴을 보더라도 돕지 않을 거야?”최동철은 말하려다 무언가가 문득 생각이 나서 눈을 내리깔며 찬웃음을 지었다.“난 그녀를 좋아하지만, 양해하는 것은 그녀의 권리에요. 그녀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억지를 부리겠어요! 나 때문에 이미 이런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사정할 면목이 없어요. 그리고 오씨네 가문에서 그녀를 찾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협박과 회유도 안 되는 걸 내가 말하면 양해해 줄 것 같나요?”“이번 일은 오재연과 연지의 잘못이에요.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저한테 책임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어요. 그러니 그들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되죠, 아버지가 보기에는요?”“오재원은 너와 함께 컸어. 그가 감옥살이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당연히 아니죠. 하여 나는 임연지를 오씨 가문에 넘기려고 해요.”최동철이 답했다.최국환은 말문이 막혀버렸다.“나는 그녀가 다른 곳으로 피신갈 거라고 짐작했어요. 그래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을 시켜 쫓도록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거예요.”최동철이 말했다.“너...”최국환은
촬영 현장이다. 방금 촬영을 마친 온하랑은 분장실에서 대본을 보고 있었다.이때 직원 한 명이 문 앞에서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다가 온하랑을 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하랑 씨, 밖에 누군가가 찾아왔어요.”“누구죠?”대본을 읽고 있던 온하량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현재 상황으로 보면 배우 본인과 관계되는 사람만이 올 수 있었다. 팬들이 스타를 만나기 위해 줄줄이 서 있는 상황에서 배우 본인과 관계되는 사람이 아니면 스태프는 일부러 통지하지 않을 것이다.“엄마라고 했어요.”온하랑은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차분하게 말했다.“나의 엄마는 이미 20여 년 전에 떠났어요. 밖에 있는 분은 사기꾼일 테니 쫓아내면 돼요.”직원은 의아해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떠났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일까?’“네. 그럼 돌려보낼게요.”스태프는 촬영장 밖에 서 있는 차 옆에 다가와 뒷좌석의 임가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버젓하게 생겼는데 사기꾼이군!’스태프는 무례한 태도로 임가희에게 말했다.“가세요. 온하랑 씨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 거예요.”임가희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나의 신분을 말하지 않았어요?”“말했죠.”“그럼 뭐라고 했어요?”“이 사람이 체면을 세워주니 싫어? 온하랑 씨가 그러는데 그의 엄마는 20년 전에 이미 죽었대! 사기꾼, 어서 떠나지 못해!”스태프는 말을 마치고는 돌아갔다.임가희는 어이가 없었다.어쩐지 온하랑이 여태껏 그녀를 찾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있었구나?“사모님, 어디로 모실까요?”기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임가희가 말했다.“일단 기다려요.”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사람을 시켜 온하랑의 전화번호를 알아보게 했다.앞서 두 사람은 통화했지만, 경찰의 전화를 사용했기에 그녀는 번호를 기록하지 않았다.몇 분 후 온하랑의 전화번호를 받은 임가희는 바로 연락했다.“온 선생님, 전화가 왔어요.”비서는 벨이 울리는 휴대폰을 건네줬다.최근에 너무 바빠진 온하랑은 출퇴근을 책임질 기사를 모집했고
“내가 온하랑의 엄마야. 전화 바꿔.”비서는 잠시 멍해졌다.‘온하랑 선생님의 엄마라고?’‘하지만 정말 온하랑의 엄마라면 어떻게 낯선 번호로 전화를 했을까?’온하랑 선생님은 분명히 이 번호를 모른다.비서가 뒤를 돌아보니 현장 감독은 오디션 때문에 이미 온하랑을 불러갔다. “죄송해요, 온하랑 선생님은 지금은 촬영 중이니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제가 대신 전달해 드릴게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퇴근한 후에 다시 전화해 주세요.”“나는 걔 엄마야. 낯선 사람이 아니라고! 빨리 전화를 바꿔봐!”임가희는 매서운 태도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죄송해요. 온하랑 선생님께서 일하고 계시니 다른 일 없으시면 먼저 끊을게요. 이제 선생님께서 퇴근하신 후 다시 연락해주세요.”전화를 끊고 비서는 물컵을 들고 촬영 현장으로 갔다.온하랑은 대역 배우와 대본을 맞추었으며 그 배우의 비서도 역시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화제는 갑자기 온라인 사기 사건으로 돌려졌고 두 사람은 이를 주제로 토론하기 시작했다. 비서는 아까 받은 전화가 생각나서 참다못해 불평을 터뜨렸다.“...요즘 별의별 온라인 사기가 다 있어요. 저도 조금 전에 남의 엄마 행세를 하는 전화를 받았어요...”“사기꾼이 가족들의 목소리와 억양을 모아 AI로 시뮬레이션하면 친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너무 끔찍해요.”비서가 감탄했다.오후 3시가 넘어서야 온하랑은 촬영을 마치고 현장에서 나와 길가의 차로 걸어갔다.비서가 있으니 확실히 많이 편리했다. 예를 들어 온하랑이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비서는 이미 기사에게 연락하여 차를 제작진 근처로 대기시켜 그녀를 편하게 했다.온하랑이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고 했을 무렵 갑자기 옆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하랑!”온하랑은 주춤하며 멈춰 섰다.이 목소리는 한 번밖에 들어본 적이 없지만 아주 익숙했다.임가희가 이렇게 끈기 있게 여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마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온하랑은 차분히 고개를 돌렸
임가희는 어리둥절하여 즉시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몰고 오라고 했지만 아쉽게도 온하랑의 차는 이미 멀리 가버렸다.그녀는 뒷좌석에 앉아 창문으로 창밖의 거리 풍경을 바라보았으나 마음속으로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온씨네가 온하랑에게 자신이 죽었다고 속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면, 그녀가 목적을 이루려면 먼저 온하랑에게 그녀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믿게 해야 했다.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면, 임가희는 또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만약 온하랑이 정말로 어머니가 죽은 줄 알았다면 불화가 있었던 사람이 나타나 갑자기 자신이 어머니라고 말하면 화를 내며 머리가 이상하다고 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냉정하게 엄마가 없다며 죽었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온하랑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혹시 온하랑이 그녀의 신분을 일찍 알고 있었기에 덤덤했을까?온하랑의 차가운 눈빛을 떠올리며 그녀는 알아차렸다.그렇다면 온하랑은 언제 알았을까?임가희는 지난번에 병원에서 만났을 때를 회억하며 온하랑의 반응이 가식적이지 않아 몰랐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병원에 들어온 후 온하랑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되었고, 병원의 일을 떠올리면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나서 그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임가희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온하랑은 지난번 병원에서 발생한 일로 인해 그녀를 탓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이 모녀 관계를 신경 쓰고 있다는 신호이기에 그녀가 주동적으로 친해지기만 하다면 온하랑의 태도는 틀림없이 누그러질 것이다.차 안에서 온하랑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꼼짝도 하지 않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지난번 병원에서 다시 만나기 전에 온하랑은 이미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접었다.사실 그녀도 임가희를 이해하려 했었다. 비록 자신을 낳았지만 불행하게 살았으니 더 좋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두 사람이 재회한 후의 상황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일이 없으면 찾아오지 않는 법, 온하랑은 임가희가 양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