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진은 차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했다.“당연히 차 타야지. 좀 안쪽으로 가줄래?”김시연은 뒤늦게 연도진과 최동철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연도진이 최동철에게 미리 말을 해두었을 것이 뻔했다. 그러니 최동철이 연도진도 함께 차에 태워 데려다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김시연은 입술을 삐죽이며 어쩔 수 없이 안쪽으로 옮겨 연도진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연도진이 김시연의 옆자리에 앉으며 문을 닫았다. 익숙한 향기가 김시연의 코끝을 간지럽혔다.온하랑이 물었다.“동철 오빠, 오빠가 오 여기 있어요?”“연도진이 알려줬어.”최동철이 대답했다.“괜찮지? 오늘 저녁에 너무 놀라진 않았고?”“괜찮아요.”“무슨 일인지는 알아냈어?”“… 알아냈어요.”최동철이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한 짓이래?”온하랑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연도진이 먼저 선수를 쳐 입을 열었다.“네 사촌 동생이랑 오재원이라는 사람.”최동철이 멈칫하더니 연도진을 바라보았다.연도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최동철에게 확신의 의사를 표했다.최동철의 눈빛은 지옥의 신처럼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변했다. 그러던 것도 잠시, 최동철의 시선은 이내 온하랑에게로 옮겨지더니 미안한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해, 하랑아. 내가 가족이랑 친구 간수를 잘 못 해서 그래. 이번 일은 내가 오씨 가문 통해서 잘 처리할게.”온하랑이 웃으며 답했다.“동철 오빠, 오빠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최동철은 최동철이고 임연지는 임연지였다.최동철은 고개를 다시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가늘게 실눈을 떴다.보아하니 최동철이 여태껏 임연지를 너무 오냐오냐 대한 모양이다. 임연지를 정말 자시의 친사촌 동생이라고 생각한 듯했다.연도진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긴 다리를 편하게 놓은 채 눈을 비비고 물었다.“이 일, 알려지지는 않았지?”“이미 다 막았어.”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온하랑은 그제야 누군가에 의해 찍힌
오재원은 새벽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오재원의 부모님은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강남까지 달려왔다. 모든 일을 전해 들은 오재원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들이 임연지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알게 됐다.임가희조차 술집 여자라며 무시해왔던 그들이니 임연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런 임연지에게 홀려도 제대로 홀린 아들은 부모가 어떻게 설득하든 절대 임연지를 배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하랑에게 복수하고 싶어 혼자 저지른 짓이라고만 잡아뗐다.오씨 일가 역시 경주에서 알아주는 명문 세가로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여론을 잠재우고 일을 덮는 것쯤은 식은 쭉 먹기였다.하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오재원이 저지른 짓은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이었다.첫째, 이 일은 경주가 아닌 강남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명문가라고 해도 경주 가문의 세력이 강남까지 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둘째, 위에서 내려온 정부 감사 때문에 강남 시 경찰들도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 부승민도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지금이야 어떻게든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지만 언론에 알려지는 순간,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일이었다. 여론이 돌아선다면 오재원에게도 좋을 건 없었다.오재원의 부모는 철없는 아들 때문에 심장을 졸이고 있었다.부승민은 이튿날이 되어서야 이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하랑의 집으로 향했다. 그 시각, 온하랑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약효가 돌기 시작하니 온하랑은 낯빛이 창백해지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지쳐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무기력해지니 그 어떤 일에도 무감각하게 반응하게 되었다.이게 부작용이라는 것을 온하랑 역시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다.부승민은 마음 아프다는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며 큰 손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온하랑은 뜨거운 햇볕 아래 시들어버린 꽃과도 같아 보였다. 뜨거운 햇볕에 바짝 말라버려 그 어떠한 향기도, 생기도 뿜어내지 않는 꽃이었다.
온하랑은 입을 벌려 부승민이 건네준 오렌지를 받아먹었다.그녀의 표정에는 방금 츄르를 받아먹은 송이처럼 애교 섞인 귀여움이 어려있었다.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마음껏 귀여워해주며 쓰다듬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온하랑도 송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어느 순간, 부승민의 손길에 완전히 길들여져 버렸다.금방 부승민과 이혼을 했던 때를 떠오리면 온하랑은 부승민을 피하기에 급급했지 이런 말랑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지금 둘의 관계는 딱 봐도 단순한 친구 사이를 넘어섰다. 그저 부승민에게 온하랑에게 다시 청혼 할 명분이 부족할 뿐이었다.부승민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오렌지 한 조각을 더 뜯어 온하랑의 입가에 갖다주었다.“오재원 부모가 널 찾아올 거야. 오재원을 용서해달라는 부탁을 하겠지.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최대한 가벼운 판결이 나와야 할 테니까.”마약까지 연루된 탓에 경찰 측에서 이 일을 형사사건으로 입건하는 바람에 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오씨 일가에서는 어떻게든 오재원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총동원 할 것이 뻔했다.온하랑이 잠시 멈칫하더니 물었다.“만약에 내가 합의 안 해준다 그러면, 나만 곤란해 지는 거 아니야?”“그럴 거야. 하지만 괜찮아, 내가 있으니까.”부승민의 말을 듣자 온하랑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도움은 필요 없어. 나한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기꺼이 한 발짝 물러나주지, 뭐.이미 떠나기로 마음 먹은 판에 온하랑은 부승민이 자신 때문에 나서길 바라지 않았다.부승민의 감정을 얻을 생각도 없었고 부승민이 자신 때문에 오씨 일가와 척을 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부승민은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온하랑이 점점 자신을 멀리 하며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부승민도 진작 알고 있었다.그리고 부승민이 여태껏 도와줬던 것들도 온하랑은 아주 당연하게 그 도움에 대
표정 변화 하나 없던 오재원의 엄마인 오승은의 얼굴이 삽시에 붉어지더니 말했다.“아가씨들, 저희는 우리 재원이를 구하고 싶었던 거지, 아가씨들의 친구를 다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아가씨들도 아시잖아요, 세상 그 어떤 부모가 아들이 감옥에 가는 걸 그저 두고만 보겠어요? 이런 결정을 내린 것도 저희 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서로 원수 져서 좋을 거 없잖아요. 생각 잘 해보셨으면 좋겠네요.”“말은 청산유수시네요!”김시연이 어이없다는 듯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솔직히 말씀하세요. 우리가 댁네 착해 빠진 그 아드님 용서해줘야 한다는 거잖아요.”“김시연 씨, 욕하고 싶으시면 얼마든지 실컷 하세요.”오승은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렇게라도 김시연 씨 화가 어느 정도 풀린다면 실컷 하세요. 진정 좀 하고 잘 생각해보세요. 아가씨들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지, 친구가 더 중요한지.”오승은의 침착한 태도에 김시연도 힘이 빠져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김시연은 온하랑과 눈을 마주쳤다. 오재원 모의 말만 들으면 쉬운 일처럼 들렸지만 그녀들에게는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온하랑이 비웃음을 터뜨렸다.“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이미 저희가 그쪽이랑 타협할 거라는 확신이 있는 거 아닌가요? 저희가 고민해야 할 게 뭐가 있는데요?”오승은이 가볍게 웃으며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저희도 방법이 딱히 없어서 꺼내든 최후의 수단이에요. 아가씨들 의리 하나는 지키는 사람들이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여러분들과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요. 자, 여기 탄원서만 다 써주시면 아가씨들 친구는 바로 풀려날 겁니다.”온하랑은 자신의 앞에 놓인 노트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그전에 내걸었던 조건들도 아직 유효한 거죠?”어차피 이미 타협하기로 한 거, 뭐든 많이 얻는 편이 좋지 않을까. 뭐 하나라도 손해 보면 배 아파서 살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오형일이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당연히 유효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을 잡더니 고개를 들어 오형일과 오승은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게 제 뜻입니다. 저는 하랑이가 합의 안 해줬으면 좋겠거든요. 오재원은 세상 물정 다 아는 법적 성인입니다. 이미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쯤은 알고 있을 겁니다. 가정교육이 잘못됐다면 이 사회라도 뒤늦게 그 부족한 가정교육을 메워야겠죠.”오형일이 냉소를 흘렸다.“부승민 씨, 부승민 씨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온하랑 씨의 의견이죠. 안 그래요. 온하랑 씨?”온하랑은 오형일의 말에 담긴 위협적인 말투를 눈치챘다. 그녀는 뒤늦게 부승민을 바라보며 손을 내저었다. 온하랑이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부승민 다시 말을 꺼냈다.“하랑이 협박하실 필요 없어요. 하랑이는 겁이 많은 여자거든요. 아, 맞다. 수하분들한테 말씀 못 전해 들으신 것 같은데 주현 씨는 이미 안전합니다.”오형일이 오재원을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쓸 것이라는 걸 진작 예상했던 부승민은 육광태에게 오씨 일가가 강남까지 올 때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것을 분부했다.오재원의 부모가 강남에 도착할 때쯤, 육광태는 이미 사람들을 데리고 가 주현을 구출해냈다.온하랑과 김시연의 표정이 밝아졌다.김시연은 부승민의 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김시연의 눈에 부승민이 이토록 마음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재원 부모의 낯빛이 순식간이 변했다.오형일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부승민을 빤히 응시했다.“지금 저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시는 겁니까?”“제가 정말 오형일 씨를 속이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직접 수하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부승민은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부승민의 말에 오형일의 심장이 철렁했다.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그 벨 소리에 오승은은 더욱 불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다급하게 오형일의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상대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전화를 받은 오승은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휴대폰을 쥐고 있던
오후가 되어서야 부승민은 온하랑의 집에 도착했다.온하랑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 급히 마중을 나가 문을 열며 물었다.“어떻게 됐어?”부승민은 온하랑의 표정에 어딘가 모르게 웃음이 났다.온하랑은 부승민을 이토록 환영해준 적은 처음이었다.“타협하고 왔어.”부승민이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어떻게 얘기했는데?”온하랑은 부승민과 마주 보고 앉아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도 된 듯 귀를 쫑긋 세웠다.“오형일이 나한테 사랑하는 자기 아들 좀 이해해달라고 하길래, 난 사랑하는 내 아내 좀 이해해달라고 맞받아쳤지.”부승민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온하랑도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부승민, 너 진짜 생각보다 더 뻔뻔하다.”“그걸 이제 알았어?”“…”온하랑이 대화 주제를 바꿨다.“그리고? 단순히 그 말 한마디로 탄원서를 포기했을 리가 없잖아.”“당연하지. 그래서 내가 방향을 좀 잡아줬어.”“어떻게 했는데?”“최씨 일가를 찾아가라고 알려줬어.”부승민이 진지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너, 오재원이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뭐라고 진술했는지는 알아?”온하랑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몰라.”“오재원 진술로는 본인이 그런 짓을 저지른 이유가 최동철이 너한테 홀릴까 봐서래. 네가 최씨 가문의 며느리가 되는 게 싫어서.”온하랑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는 부승민의 표정에는 어딘가 기분 나쁘다는 듯한 기색이 비쳤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또렷했다.온하랑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미친 거 아니야? 내가 언제 최씨 가문 며느리로 들어간다고 했는데?”부승민의 눈을 마주 보며 온하랑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왜? 넌 오재원 말을 믿어?”“당연히 안 믿지. 근데 오재원이 왜 이런 오해를 하는 걸까?”“임연지 때문에.”“맞아.”부승민이 답했다.“그러니까 최동철을 위해서든, 임연지를 위해서든 오재원이 저지른 짓은 최씨 일가와 무조건 관련이 있다는 거야. 그럼 오재원 부모는 최씨 일가부터 찾아가야지. 임연지 찾으러. 알겠어?”온하랑이 잠시 고민하더
온하랑은 부승민의 의견을 알아차리고 입술을 앙다문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됐어.”시작부터 온하랑은 그저 기부가 하고 싶었다. 다만 그 금액이 지나치게 컸던 탓에 재단을 설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 뿐 재단으로 비리를 저지르고 싶지는 않았다.부승민도 온하랑이 거절할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온하랑은 여전히 무의식 속에서 본인을 평범한 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인맥이나 돈을 찾는 대신 경찰부터 찾는다.그러니 부승민은 항상 온하랑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단순하고 쉬운 온하랑을 지켜주고 싶었다.“그래, 싫으면 말아. 내가 다 보완해주고 지켜줄 테니까 빚진다는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 그냥 날 떠나지만 말아줘.”부승민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설마 내가 허를 찌른 건가?”...감동하려던 찰나였지만 마지막 한 마디 때문에 온하랑은 어이없다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아니, 네가 의심이 너무 많은 거야.”온하랑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민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부승민 한 번만 믿어주어도 되는 걸까? 꼭 떠나야만 할까?“너 사기꾼이잖아. 경주에서 날 어떻게 속였는지 난 아직도 기억하는데”부승민이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온하랑은 뭔가가 떠오른 듯 부승민을 바라보며 화제를 돌렸다.“맞다, 우리 집 열쇠가 너한테 왜 있어?”부승민이 잠시 멈칫하더니 호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온하랑이 곧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열쇠를 들고 물었다.“이거 내 열쇠 아냐?”“응, 맞아.”“언제 가져갔어?”“오늘 아침에.”“난 왜 몰랐지?”“넌 그때 바나나 먹느라 바빴으니까.”“...”아침, 임연지는 오재원에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빠른 항공권을 예매해 다급히 경성으로 돌아갔다.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을 깨닫자 임연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경주에 도착해 임가희를 보는 순간 임연지는 그녀의 품에 안겨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고
임연지는 말이 없어진 임가희의 모습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고모, 꼭 저 구해주셔야 해요.”뒤늦게 정신을 차린 임가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자 오재원이 저지른 짓이라고 하지 않았어? 경찰이 아직 널 체포하러 온 것도 아니잖아. 그럼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걱정하지 마.”임연지의 심장이 계속해서 쿵쿵 뛰었다.“근데 저 무서워요. 만약 오재원이 감형받으려고 경찰한테 제 이름 불어버리면 어떡해요? 그리고 오씨 집안 사람들이 제가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하면요? 두 집안 관계 유지하려고 고모부께서 저를 방패로 쓰시면 어떡해요?”오재원이 경찰한테 잡혀있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았다.오재원은 정말 임연지의 개새끼였다. 임연지가 손가락만 까딱이며 오른쪽으로 가라 하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은 감히 쳐다도 못 보는 그런 사람이었다.임연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바로 오재원의 가문인 오씨 집안이었다.명문 세가 사람들로서 모든 가족 구성원 모두가 사람 보는 눈에는 도가 터 있었다. 임연지가 오재원을 꼬드겼다는 것쯤은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곧 있으면 얘기를 나누러 최씨 일가로 찾아올 것이다.임가희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밑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임연지가 다급히 창가로 달려가 창밖을 확인했다. 검은색 승용차가 최씨 일가의 저택 대문 앞에 멈춰 섰다. 차 뒷좌석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내렸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오재원의 삼촌이었다.오재원의 삼촌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저택 2층을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임연지가 재빨리 고개를 숨기고 임가희의 팔을 끌어안은 채 울면서 말했다.“고모, 오씨 집안 사람이 온 것 같아요! 저 좀 살려주세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저한테 남은 친척이라고는 고모밖에 없다고요.”임연지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그 시절, 임연지의 부모님은 경주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던 탓에 임가희의 차를 타고 외출했다.어쩌면 임가희도 그 차에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