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선월은 살짝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이며 답했다.“알겠어요.”...온하랑은 9시 즈음에 경찰서로 도착했다.추서윤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그녀의 안내를 맡은 경찰이 2초간 머뭇거렸다.“추서윤 씨는 지금 두 형사 사건의 피의자라서 원칙대로라면 면회가 불가능합니다. 온하랑 씨, 먼저 청장님께 가시겠습니까? 청장님께서 고개만 끄덕이신다면 면회가 가능합니다.”온하랑은 청장이 다른 경찰들에게 말해주는 것을 깜빡한 것이라고 여겼다.“네, 그러죠. 아저씨는 지금 어디 계세요?”경찰서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전화로 연결하는 것은 어쩐지 예의가 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청장님께선 위층에 계십니다.”“알겠어요.”온하랑은 몸을 틀어 2층으로 올라갔다.청장실의 문은 꼭 닫히지 않아 틈이 있었다.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민재는 부씨 일가의 장손이에요. 장손이 이렇게 감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 없어요. 어차피 이 사건도 아주 오래전에 벌어진 사건이잖아요. 온하랑을 제외하곤 신경 쓰는 사람도 없고 승민이도 민재를 살리고 싶어 할 거예요. 애초에 이 방법은 승민이가 생각해낸 거잖아요. 너무도 완벽해 온하랑마저 그대로 믿고 있는데 청장님께서 조금만 봐주신다고 해서 온하랑도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승민이랑 추서윤이 어떤 사이였는지 청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비록 두 사람은 헤어지긴 했지만, 대중들은 분명 승민이가 추서윤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추서윤은 지금 두 형사 사건에 얽혀 있어서 우리 승민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힐 게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승민이는 지금 추서윤과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해요. 추서윤이 감방에 몇 년 갇혀 있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누구도 추서윤 대신 나서려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나중에 석방되면 돈을 두둑하게 챙겨주면 될 거예요.”“일이 잘 해결되면 우리 부씨 일가에서도 청장님께 두둑한 보상을 드릴게요.”청장이 대답했다.“부선월 씨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온하랑은 눈물을 참으며 조용히 계단 입구로 왔다.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단을 내려갔다.“온하랑 씨, 청장님께선 뭐라고 하셨습니까?”그녀를 기다리던 경찰이 물었다.온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죄송해요. 제가 방금 급한 일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이만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추서윤 면회는 나중에 제가 다시 올게요.”“네,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온하랑은 차로 돌아왔다. 힘없는 모습으로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부민재는 그녀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이었다. 부승민은 그런 부민재를 위해 책임을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고 했다.그녀는 아마도 그간 부승민의 입에 발린 소리에 홀려 있었던 탓인지 속상함에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녀는 사실 부승민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그녀에게 추서윤이 아닌 자신과 거래를 하자고 했어도 경계를 늦추지 말았어야 했다.입에 발린 소리 뒤에는 달콤한 사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소와 양귀비가 있었다.그는 천천히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알아챘다면 아마 뼛속까지 중독되어 더는 이성을 되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이때 멀리서 차가 점점 다가오더니 경찰서 앞에 멈춰 섰다.그 차에선 소청하와 부윤민이 내렸다. 두 사람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정월 대보름에 만났을 때보다 소청하는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온하랑은 주먹을 꽉 쥐었다.순간 소청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확 내려 몸을 숨겼다. 몇십 초 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소청하와 부윤민은 이미 경찰서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온하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그녀와 온강호가 피해자였다. 부민재가 주모자인지 아니면 공모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감방 신세는 면하지 못할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소청하와 부윤민을 볼 면
게다가 그날 진상을 알게 된 후에도 사람을 시켜 알아보라고 했다. 추서윤이 병원에서 사라진 그 날 확실히 부민재를 찾아갔었고 두 사람의 통화 기록도 확인했었다.다만 그것은 전부 10년 전 일이었다. 만약 추서윤이 부민재를 같이 끌어내리려고 한다면 현재 있는 증거는 부민재에게 불리했다.장국호는 최동철이 경찰에 넘겼다.최동철은 원래부터 부씨 일가에 적의를 보이었다. 비록 부승민은 그가 왜 그런 적의를 보이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장국호를 매수하여 모든 죄를 부민재에게 뒤집어씌울 동기는 있었다.부씨 일가의 장손이자 BX 그룹의 대표가 살인사건의 주모자이고 살해당한 사람은 유명한 기자다. 이런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다면 부씨 일가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주 뻔했다.부승민은 최동철이 BX를 노리고 그런 것으로 생각해 바로 연민우에게 각종 플랫폼이나 SNS를 예의 주시하라고 했다.최동철이 이러는 데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일부 증거를 없애 버렸을 거로 생각한 그는 바로 육광태에게 연락해 몰래 장국호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장국호는 자신까지 끌어들이며 부민재를 모함하고 있었다. 최동철이 장국호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에게 어떠한 이익을 대가로 거짓 진술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부민재의 변호사에게는 시간을 최대한 끌어달라고 말했다.모든 지시를 내린 뒤 부승민은 온하랑을 떠올렸다.‘장국호가 한 진술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까?'‘혹시 오해하고 있는 거 아냐?'그는 핸드폰을 들어 온하랑에게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소리를 꺼버리곤 책상 위로 엎어놓았다. 듣지 못한 것처럼, 보지 못한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연기 연습을 했다.사람마다 자기 입장이 있었다. 부승민이 그녀를 도와주었기에 그녀는 부승민에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던 일로 하고 계속 부승민과 연락하며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그녀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지만 전부 받지 않았다. 부승민은 걱정이 되어 바로
“알아.”“하지만 넌 믿지 않잖아.”“나도 널 믿고 싶어. 하지만...”온하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부승민, 그날 회사에 있었을 때 넌 이미 부민재가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맞아?”그녀도 그를 믿고 싶었다. 하지만 부선월이 청장에게 한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를 믿겠는가?“응.”“그럼 부민재가 자수하기 며칠 전까지 넌 뭐 했어?”부승민은 멈칫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내가 지금 부민재 혐의를 풀어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정말이야?”“그럼 아니야? 부민재는 추서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야.”부승민이 추서윤과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으로 생각했다...“아닐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내가 하랑이 마음속에 정말로 이런 사람이었던 거야?'‘날 조금이라도 믿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온하랑은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네가 그랬지. 누군가 장국호를 매수했다고. 누가 매수하는데?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매수하는데?”온하랑의 냉담한 얼굴에 부승민은 씁쓸함이 밀려왔다.“매수한 사람은 최동철일 거야. 최동철은 오래전부터 우리 일가에 적의를 보였거든.”그 말을 들은 온하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웃어버렸다.“최동철이라고? 최동철은 장국호를 붙잡아 경찰에 넘긴 사람이야. 우리도 부민재가 그 사건과 연관이 있었다는 걸 몰랐는데 최동철이 알고 있었다고?”“만약 정말로 최동철이 알고 부씨 일가를 겨냥하기 위해 그런 거라면 부민재가 자수하는 그 날 이미 기사가 쫙 퍼졌을 거야.”그러나 지금 기사 하나 올라온 것이 없었다.이 부분에 대해선 부승민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그도 그저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그날 내가 너한테 했던 말은 전부 부민재가 직접 나한테 해준 말이었다. 정말로 부민재가 주모자였다고 해도 나랑 연관 없어. 하랑아, 그분은 너의 아버지셔. 나도 네가 장인어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어. 그런 내가 왜
“내가 결백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지금은 이 방법밖엔 없어...”“너 정말!”온하랑은 화가 치밀었다.“너 지금 날 협박하는 거지?”“난 그런 의미가 아니야...”“서 있는 말든 마음대로 해!”온하랑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리고 그대로 책상 위로 던지곤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을 만들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온하랑이 주방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현관엔 김시연이 캐리어를 끌며 들어오고 있었다.“하랑 씨! 나 왔어요!”“어서 와요. 저녁은 먹었어요?”김시연은 주방에 있는 온하랑을 보곤 바로 손을 들었다.“아뇨, 아직이에요! 저도 주세요!”“알겠어요.”펄펄 끓은 물에 온하랑은 새우 물만두를 2인분 넣었다.뜨거운 물이 그녀의 손에 튀었다.“앗, 쓰읍.”온하랑은 얼른 손을 털며 입으로 후후 불었다.집안을 둘러보던 김시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왜 그래요? 다쳤어요?”“네, 조금요.”“예전에는 이런 실수도 안 하던 사람이었잖아요.”김시연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온하랑은 그녀를 힐긋 보았다.“네?”“아녜요.”김시연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전 들어가서 짐 좀 정리하고 있을게요. 다 되면 불러줘요.”“네.”물만두가 완성되고 온하랑은 여러 밑반찬을 그릇에 옮겨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김시연을 불렀다.“시연 씨, 저녁 먹어요!”“네! 가요!”김시연은 방에서 나와 바로 온하랑의 맞은편에 앉았다. 맛있는 냄새에 김시연은 바로 너스레를 떨었다.“세상에, 하랑 씨. 내가 그동안 하랑 씨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며칠 동안 도시락만 먹어서 이것 좀 봐요. 배가 홀쭉해졌단 말이에요.”“괜찮아요. 며칠 후면 다시 볼록해질 거예요.”“음... 냄새 엄청 좋아...”김시연은 혼잣말을 하곤 바로 물만두를 입에 넣었다. 그녀는 이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물만두를 꼭꼭 씹어 삼킨 그녀는 온하랑을 보았다.“하랑 씨, 그날 소파는 왜 바꾼 거예요?”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옷은 이미 빗물에 흠뻑 젖은 상태였고 앞머리에선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부승민은 그녀가 건넨 우산을 보았다. 받지 않고 그저 가만히 온하랑을 보았다.“고마워, 하랑아. 네가 나와줘서 난 기뻐. 하지만 받지 않을래.”은은한 가로등 불빛 아래 그가 입을 열자 뽀얀 입김이 나왔다.온하랑은 고개를 떨군 채 우산을 그래도 부승민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가져가! 차로 돌아가라고!”그녀가 손을 빼자 우산은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온하랑의 안색이 변하고 바닥에 떨어져 버린 우산을 보다가 부승민을 보았다.“싫으면 말아! 비 맞고 싶은 거라면 다른 곳에 가서 맞아. 괜히 우리 집 아래에서 맞았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할 생각하지 말고.”“알았어. 아파트 입구에 서 있을게.”“...”온하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비를 맞으며 말이다.올곧은 그의 자세를 보니 더 처량해 보이기도 했다.온하랑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그대로 집으로 올라가려 했다.우산을 챙겨 줬는데도 그는 받지 않았으니까.‘어디에 서 있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해!'‘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상관할 생각도 없어!'하지만 얼마 못 가 온하랑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랫입술을 틀어 물며 몸을 돌려 부승민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를 쳤다.“부승민, 너 정말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지?!”부승민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빗속을 뚫고 말이다.“하랑아, 난 네가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믿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너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난 부민재는 돕지 않았다고. 설령 나를 믿지 못한다고 해도 경찰을 믿어주리라 생각했어.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확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난 확정 지은 적 없어. 그러니까 얼른 돌아가.”온하랑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사건이 아직 해결되기 전이었지만 판사는 이미 판결서를 준비하고 있었다.조사 결과만 나온다면 정식 판결서가 나올 것이다.“정말?
그녀는 화가 난 모습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간다면서! 왜 안 가고 계속 서 있는 건데!”부승민은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왜... 다시 내려온 거야?”온하랑은 여전히 씩씩대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그녀는 사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복도에 서서 그가 가는지 안 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역시나 그는 가지 않았다.만약 그녀가 그대로 집으로 올라갔다면 그는 분명 밤새 내내 그곳에 서 있으리라 생각했다.온하랑은 부승민의 목적이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이 약해졌으니 말이다.부승민은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두어 걸을 움직이던 온하랑은 멈춰 서더니 몸을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올라가고 싶다며?”말을 마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뒤따라 갔다.온하랑은 먼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곤 부승민을 째려보았다.엘리베이터 안에선 그의 옷에서 떨어지는 빗물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하랑아, 나한테 기회를 주는 거 맞지? 그렇지?”온하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대답을 들려줬다.“시연 씨는 이미 자고 있으니까 이따가 조용히 들어와. 바로 내 방으로 오는 거야. 거실에 머물 생각하지 마, 알았어?”“응.”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이건 전부 그가 뻔뻔하게 버틴 탓에 얻은 기회였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온하랑은 현관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부승민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이 웃겨 저도 모르게 눈웃음을 짓게 되었다.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보면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인 뒤 조심스럽게 현관을 열곤 부승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부승민은 조용히 들어간 뒤 바로 온하랑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온하랑은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닫은 뒤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방 문을 닫기 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현관부터 그녀의 방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려 방 중간에 우뚝 서 있는 부승민을 보았다. 머리를 헝클어져 있었고 알몸 상태였던 지라 굴곡이 선명한 복근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수건 한 장만 몸에 걸치고 있었다.그가 걸치고 있는 수건은 분홍색이었다. 온하랑의 수건 중 하나였다. 원래부터 하얀 피부는 분홍색 수건을 걸쳐도 아주 잘 어울렸다.부승민은 올해가 지나면 서른이 되었다.자기주장이 뚜렷한 이목구비와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그의 몸은 누가 봐도 젊고 활력이 있어 보였다.온하랑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얼른 가서 샤워해.”부승민은 다소 웃음기가 담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알았어. 그런데 시연 씨 자고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자다가 깰 수 있잖아.”온하랑은 그를 째려보았다.‘뭘 그렇게 자꾸 묻는 거야?!'“응, 그럴 수 있지.”부승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이내 욕실로 들어갔다.온하랑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침대에 앉았다.욕실에선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심란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던 그녀는 대충 대본을 들고 두어 장 넘겼다.분명 더는 부승민에게 홀리지 않겠다고, 더는 가깝게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온하랑은 뒤로 벌러덩 누워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그녀는 마치 부승민이라는 덫에 걸려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 같았다.미로에 갇힌 것처럼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이때 밖에서 김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 씨, 물 다시 끓였는데 마실래요?”온하랑은 원래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네, 한잔 남겨 줘요.”한참 후, 부승민은 욕실에서 나왔다. 머리칼에선 여전히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온몸엔 수건 한 장을 걸치고 있었다.머리칼에서 떨어진 물기 때문인지 몸에 남았던 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물방울이 그의 하얀 피부를 따라 그대로 탄탄한 근육까지 흘러내렸다.온하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