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을 꽉 움켜쥔 부승민은 손가락 뼈마디가 하얗게 질리며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오고 눈가에는 적의가 번뜩였다.그는 부민재의 말을 믿었다. 두 사람은 함께 자랐고 부승민보다 부민재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부민재는 온화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그럴 마음은 있어도 그럴 만한 배짱이 없었다.누군가 뒤에서 그를 밀어붙인 것이 분명했다. 추서윤 때문이 아니라면 두 형제는 오늘날,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의 계기는 부민재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부승민은 부민재가 너무 한스러웠다.“얼마 전 형수님이 형이 다른 여자와 연락하고 있다고 하던데, 설마...”“추서윤이야.”부민재는 고개를 들며 말했다.“너의 사람들이 추서윤을 사방으로 찾아다니는 바람에 몰래 나한테 찾아와서 대판 싸웠어.”소청하가 봤던 부민재 목에 난 상처는 바로 추서윤에게 긁힌 자국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소청하가 고통에 시달리며 우울해하고 초췌해지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부승민이 모든 것을 알게 되자 부민재는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마음을 졸이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부승민은 어이가 없어 입에서 허, 실소가 터져 나왔다.“할아버지까지 죽이고 또 무슨 낯짝으로 형을 찾아가...”그렇게 말하던 부승민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 설마...!” “그래, 할아버지는 너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야. 다 나 때문이야... 내가 할아버지를 실망하게 해서...”부민재는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추서윤은 부승호 앞에서 모든 것을 까발렸다. 자신의 자작극 납치 사건과 온하랑 아버지의 죽음을 전부 부민재에게 떠넘겨 버렸다.부승호는 항상 마음이 따뜻하고 겸손하다고 생각했던 큰 손자가 한 사람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을 줄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것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온하랑의 아버지였다.부민재도 전
가늘고 긴 목에 뜨거운 숨결이 닿자, 온하랑은 피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려고 최선을 다했다.오랜 침묵 끝에 부승민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눈을 감고 감정을 추스르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그는 천천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온하랑을 놓아주었다. 온하랑은 그의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예리하게 알아채고 눈을 들었다. 그녀는 가까이서 그의 붉고 퍼렇게 멍든 얼굴을 관찰했다.“누구랑 싸웠어?”“응.”부승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온하랑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가서 구급상자 가져올 테니 먼저 앉아 있어.”회장실에는 구급상자가 있었는데 안에는 몇 가지 기본 약이 들어 있었다. 부승민은 아무 말도 없이 코트를 대충 소파 등받이에 올려놓고 소파에 앉았다.구급상자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온하랑은 뚜껑을 열어 연고를 찾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오빠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 싸울 수 있어? 운전기사가 없었어?”다시 말해, 누가 감히 부승민을 때리냐는 말이다.누가 감히 부승민을 이렇게 때렸단 말이지?부승민은 침묵했다. 한참 동안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온하랑은 그를 힐긋 쳐다보더니 연고를 열어 면봉에 짜냈다.“얼굴 내밀어.”그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온하랑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기꺼이 약을 발라주는 이유는 단지 그가 그녀를 위해 추서윤과 거래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부승민은 순순히 온하랑의 옆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온하랑이 면봉을 가져다가 누르자 시원한 촉감이 전해져왔다.온하랑은 그를 흘긋 쳐다보며 물었다.“아파?”“괜찮아.”부승민은 그윽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애틋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온하랑은 심장이 두근대더니 등에 소름이 돋았다. 얼른 시선을 피하고 그에게 약을 발라주었다.“얼굴 빼고 다른 부위는 안 다쳤어?”“다쳤어.”온하랑은 반사적으로 부승민을 이리저리 살폈다. 부승민은 온하랑의 작은 손을 가슴에 가져다 누르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여기, 여기에 상처가 났어. 너만 치료할
“부승민, 날 약 올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부승민은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입가의 상처를 살며시 눌렀다.“내가 감히 어떻게?”온하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곤란해하는 부승민의 모습은 처음이었다.부승민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하랑은 곧바로 웃음을 지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레스토랑 이름을 말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여기 룸도 있어.”혹시나 그의 현재 이미지가 다른 사람한테 보이기가 민망할까 봐서 말이다.부승민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연민우에게 예약하라고 말했다.레스토랑 룸에 도착한 후 온하랑은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테이블 건너편에 있는 부승민에게 메뉴판을 건넸다.“봐봐. 다른 거 뭐 더 주문할지.” 부승민은 메뉴판을 건네받아 대충 훑어보았다.“양고기스튜?”“좋아.”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먹을 테니 나중에 종업원더러 내 앞에 놓으라고 해.”“너 양고기 좋아해?”“응.”온하랑은 양고기를 즐겨 먹을 뿐만 아니라 양고기 수프를 마시는 것도 좋아했다. 아삭한 양파의 식감과 뽀얗고 진한 수프의 맛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그러나 부승민은 양고기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예전 양고기와 관련된 어떤 것도 집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부승민은 멈칫했다. 주문한 요리 대부분은 그가 좋아하는 음식이거나 현재 그의 위장 상태에 적합한 음식이었다.그녀는 그의 취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주문할 수 있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은 단 두 가지에 불과했다. 생선구이와 초코케이크를 빼면 아는 게 없었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초코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결혼 3년 내내, 이혼에 이르기까지 그는 그녀가 양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처음 이 결혼 생활이 시작될 때부터 그의 정신은 온통 딴 데 팔렸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했다. 단지 그가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이었다. 부승민은 가슴이 시큰거리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히 아니지.”부승민은 피식 웃었다.“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 전에는 뭔가 알아내려고 일부러 민지훈과 사귀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왜 안 돼?”온하랑은 얼굴이 굳더니 눈빛이 흔들리며 급히 시선을 피했다.“그거야 다르지.”“뭐가 다른데?”부승민이 진지하게 물었다. 이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나 속이 뒤집혔다. 마음에 찔리는 듯 온하랑은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달싹였다.“...그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잖아...”더욱 뻔뻔스럽게 말하자면 민지훈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이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그러나 부승민은 달랐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른바 약점 때문에 부승민과 재결합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버지 복수를 위해 어떤 요구든 들어줄 수 있단 말이야?! 하랑아,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도 너의 그런 모습은 원치 않으실 거야. 분명 네가 잘 살아가길 누구보다 바라실 거야.”온하랑은 토라진 어린아이 같았다.“...응.”“다행히 네가 정보를 일찍 알아내 순조롭게 민지훈과 헤어졌으니 망정이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봤어?”“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면 되지...”온하랑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살며시 눈을 들어 부승민의 시선을 마주했다. 마지막 몇 마디는 순식간에 모깃소리만큼 가늘어졌다.부승민은 얼굴빛이 푸르뎅뎅해서 말했다.“흠, 난 아직도 네가 어느 날 밤인가 민지훈이 잘생기고 해맑은 데다 진취적이라서 좋아한다며 널 귀찮게 하지 말라던 말이 기억 속에 생생한데?”눈을 깜박이던 온하랑은 대뜸 얼굴을 붉히며 둘러대느라 애썼다.“어... 그러니까... 그건 의심할까 봐 진짜처럼 연기했을 뿐이지...”“또 뭐랬더라. 내가 준 돈으로 민지훈을 먹여 살리겠다며 나 더라 주제넘게 행동하지 말라고 했었는데.”온하랑은 얼굴이 울긋불긋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그거 다 농담이야... 농담...”“하, 너 분명히 정보를 알아냈으면서 새해 전날 내가 너더러 민지훈
이때 종업원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잇달아 음식을 테이블에 올렸다. 부승민은 젓가락을 들더니 화제를 바꿨다.“먹자.”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가득했다. 양고기스튜는 온하랑의 앞에 놓았는데 여러 가지 음식의 냄새에 섞여 양고기 냄새가 선명하지 않았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수시로 양고기슈트를 향해 젓가락을 뻗는 것을 보며 호기심에 물었다.“정말 그렇게 맛있어?”“가능하면 한번 먹어볼래?”그러자 부승민은 젓가락을 뻗어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입에 가까이 가져가자마자 심한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났다. 그는 억지로 한입 베어 물고는 한참을 꼭꼭 씹은 다음 눈을 감고 삼켰다.“어때?”온하랑은 그의 표정을 보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뭐 나쁘지 않네.”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입에 안 맞으면 억지로 먹지 마.”온하랑이 말했다. 이 말은 어딘가 부승민의 예민한 신경을 건드린 듯했다. 그는 다시 한 조각을 집었다.식사하던 도중에 온하랑은 입술을 감쳐물더니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오빠.”“응?”부승민이 고개를 들었다.“고마워.”온하랑은 진심으로 말했다.“뭐가 고마운데?”“비록 오빠가 나서서 나와 추서윤의 거래를 막아 내가 알 권리를 박탈했지만, 그래도 감사해...”부승민은 멈칫하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온하랑의 정체를 숨긴 건 그녀를 위해서였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숨긴 데에는 나름의 사심이 들어가 있었다.그는 그녀가 그 사실을 떠올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마침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여서 그를 떠나갈까 봐 두려웠다. 가능하다면 이 사실을 평생 숨기고 싶었다. 그녀가 이 사실을 안다면 아이가 행방불명인 채로 계속 밖에서 떠돌게 했다고 그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부승민은 그녀가 진짜 알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천만에.”부승민은 화제를 돌렸다.“너 아까는 그런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또 믿는 거야?”“안 돼?”부승민은 온하랑의 뾰로통한 표정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돼.
온하랑은 뭔가 마음이 허무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면서 아주 복잡했다.수년간의 짝사랑이 마침내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고 이미 이혼했다...부승민은 항상 그녀와 재결합하고 싶어 했다.온하랑은 그날 연회에서 김시연이 그녀에게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아직도 부승민을 사랑해요?’아직도 사랑하는 걸까?온하랑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대답할 수 없었다. 이혼한 지 꽤 오래지났지만, 그녀는 지금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었다.온하랑은 여전히 부승민을 좋아했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도움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의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다.다만 그 애정이 10대와 스무 살 때처럼 순수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을 뿐이다. 과거에 부승민은 그녀의 정신적 지주였고, 그녀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하고 일했다.그러나 현재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삶의 일부분일 뿐이고, 있어도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에게는 다른 할 일이 생겼다. 아직 그녀는 재결합할 계획이 없었다. 그냥 자연의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온하랑은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정월 17일 아침 부승민의 운전기사가 7시 30분에 온하랑의 집 아래에 도착했다. 온하랑이 뒷좌석 문을 열자 부시아는 작은 책가방을 가운데로 옮기고 있었다.“숙모, 빨리 타요.”반대편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문서를 보고 있던 부승민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온하랑은 차 문을 닫았다.“시아야.”“네?”“강남에서의 첫 등원이라 긴장돼?”“아니요!”부시아는 작은 얼굴을 쳐들며 말했다.“그럼 됐어. 어린이집에 가면 친구들이랑 잘 지내야 해. 무슨 일이 생기면 삼촌과 고모한테 바로 전화해. 알았지?”“네, 숙모.”“물건은 다 챙겼어?”온하랑은 부시아의 작은 책가방을 보며 물었다. 온하랑을 흘긋거리던 부승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지금 그녀가 부시아를 챙기는
부승민은 회사로 가는 길에 온하랑을 경찰서 앞에 내려 주었다. 온하랑은 자기 차를 몰고 돌아갔다. 운전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그녀는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휴대폰 너머에서 젊고 열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보세요? 온하랑 씨 맞으시죠?”“맞는데요. 누구시죠?”“저는 송 감독님의 조수 서연우입니다. 감독님이 하랑 씨와 상의할 일이 있으신데 지금 오실 수 있으세요?”온하랑은 의아해서 물었다.“송 감독님이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데요?”서연우가 말했다.“전화상으로 말씀드리기 불편한데 아마도 하랑 씨 배역에 관한 문제 같아요. 혹시 시간 되시면 잠시 촬영장에 와주실 수 있으세요?”온하랑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네. 지금 갈게요.”어쨌든 그녀는 촬영장에서 몇 장면을 찍었다. 추서윤이 경찰에 연행된 진짜 이유에 대해 알게 된 제작진은 아무래도 추서윤을 갈아치울 생각인 것 같았다.그래서 아마 지금 새로운 후보를 물색 중일 것이다. 어쩌면 온하랑이 촬영한 장면을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온하랑은 앞 골목에서 유턴해 촬영장으로 향했다. 촬영장에는 스태프들이 옆으로 숨어 있었고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고 있었으며 송재열은 모니터 뒤에 근엄하게 앉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한 배우가 웃음을 터뜨려서 NG를 내는 바람에 한 장면을 두 번 반복 촬영했다. 온하랑은 스태프 옆에 서서 지켜보았다.이때 배우의 디테일과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송재열이 직접 가서 시범을 보여주었다.전체 장면을 다 찍은 후 배우들은 휴식을 취했다. 일부는 대본을 들고 다음 장면을 촬영할 준비를 하고 일부는 분장하러 갔다.스태프들은 현장과 소품을 정리했다. 송재열은 모니터 앞에 앉아 방금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온하랑은 천천히 송재열의 뒤로 가 모니터에 시선을 옯겼다. 송재열은 기척을 듣고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보며 물었다.“왔어요?”운하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송 감독님, 저 찾으셨어요?”“하랑
스트프들이 멈칫하더니 소품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동안 매니저들은 배우를 부르러 갔다.“잠깐만요.”송 감독은 환성기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 배우와 카메라맨을 불러 장면에 관해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배우들은 매우 숙련된 상태라 한 번 연기를 하고 바로 통과했다. 송 감독은 모니터 앞으로 돌아가 방금 촬영한 장면을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훨씬 편해졌어요.”온하랑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감독님,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없으면 그녀는 먼저 갈 생각이었다. 송 감독은 그 말에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네, 저쪽에 가서 앉아서 얘기합시다.”“좋아요.”온하랑은 대답했지만 조금 당황했다.또 무슨 일이 있지? 아마도 내가 촬영한 장면을 삭제하는 거겠지.온하랑은 송재열 맞은편에 앉았다. 조수가 물 두 잔을 가져왔다. 그녀는 조수에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웃으며 말했다.“감독님, 무슨 일이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송재열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네.”“구미호 역할을 하랑 씨가 계속 맡아주시면 좋겠어요...”“그러죠... 네? 잠시만요?!”온하랑은 당황한 표정으로 송재열을 바라보았다.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내가 출연한 장면을 삭제하는 게 아니고요?”그녀는 자신의 장면을 삭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어차피 그녀는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누가 하랑 씨 장면을 삭제한대요? 혹시 연우의 전달에 문제가 있어 오해하신 건가요?”“아니요... 연우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 생각이에요. 새로운 배우를 찾으시는 거 아니었어요?...”송재열은 그 말에 손깍지를 끼고 말했다.“다른 배우를 찾을 생각도 했지만, 하랑 씨도 알다시피 촬영하려면 스케줄을 미리 짜야 하는데 대부분 배우는 이미 스케줄이 꽉 찼어요. 지금 바로 촬영에 투입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아요. 그런 배우들도 오디션을 봤지만 연기가 맘에 들지 않아서 고민 끝에 하랑 씨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