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부선월을 무시하고 그대로 경찰서로 향했다.추서윤은 현재 경찰서에 있었다.경찰은 온하랑을 어느 한 취조실로 안내했다. 추서윤은 그곳에 의자에 결박되어 있었다.온하랑이 들어오자 매서운 눈빛으로 온하랑을 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온하랑의 옆에 있는 경찰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그럼 얘기를 나누세요.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너무 길게는 대화하지 마시고요.”말을 마친 경찰은 그렇게 문을 열고 나갔다.취조실 안.추서윤은 온하랑을 매서운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눈에 살기도 담긴 것 같은 모습으로 소리를 질러댔다.“온하랑, 그때 나랑 얘기를 잘 끝냈으면서 다음 날에 바로 배신하고 나를 경찰에 신고해?!”온하랑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의자를 뒤로 빼내면서 추서윤의 맞은 편에 앉았다.“내가 뭘 배신했는데? 네가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민성주와 연락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넌 처음부터 증인으로 나설 줄 생각이 없었잖아!”“하! 웃기지 마! 그 사람은 날 납치했던 납치범이야. 내가 왜 그런 납치범한테 소식을 흘려?!”“네 통화 기록 전부 복구됐어. 그중에 민성주랑 통화했던 기록도 있더라.”온하랑은 담담하게 말하며 가소롭게 웃었다.“대처 내가 얼마나 미웠으면 뒤에서 납치범과 몰래 손을 잡고 있었던 거야?”추서윤과 최민식의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경찰들은 추서윤 핸드폰 모든 문자 메시지와 통화 기록을 복구했다.추서윤과 온하랑은 납치 사건과 교통사고 건에 관련된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청장은 이 형사 사건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고 복구된 추서윤의 핸드폰 기록에서 민성주의 번호를 발견했다.청장은 더욱 이해가 안 갔다. 추서윤이 이 정도로 온하랑을 증오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추서윤은 온하랑 몰래 뒤에서 뭔가를 꾸미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납치했던 납치범마저 풀어주었다.온하랑의 말에 추서윤은 안색이 굳어졌다.그런 그녀를 온하랑이 빤히 보았다.“형사님이 그러던데, 네가 나 만나고 싶다고 말이야. 왜 불렀어
이미 이 지경이 된 이상 추서윤은 부승민과 했던 약속을 어기기로 했다.감방에 가는 건 죽도록 싫었으니 말이다.온하랑은 의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보곤 뜸을 들였다.“그래서, 지금 너한테 내 약점이 한 개가 아니다?”그녀는 너무 궁금했다.자신의 어떤 약점이 추서윤에게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한 개가 아니라고 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추서윤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온하랑은 몇 초간 침묵하곤 대답했다.“그래, 약속할게. 네가 쥐고 있는 내 약점을 하나 알려줘.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고 다시 널 찾아올게.”추서윤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래. 그럼 일단 하나를 알려줄게. 사실 넌...”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경찰이 들어왔다.“면회 시간이 끝났습니다. 온하랑 씨, 나오세요.”“...”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경찰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조금만 시간을 늘려주시면 안 될까요? 5분이면 돼요.”경찰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도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서요.”온마음은 뜸을 들이며 답했다.“알겠습니다.”그녀는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서윤을 힐끗 보며 말했다.“나중에 다시 올게.”재판이 열리기까지 아직 시간이 있었다.“잠깐만...”추서윤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끼어들었다.“참, 온하랑 씨. 누군가 온하랑 씨를 찾더군요.”“저를요?”온하랑은 되물으면서 밖으로 나갔다.대체 누가 경찰서까지 와서 그녀를 찾는 걸까?경찰청 로비로 온 온하랑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입구 쪽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는 형체를 발견했다.남자는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고 정장 바지에 수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깨도 넓었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옷차림도 깔끔했다.온하랑은 입술을 살짝 틀어 물며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다.사람마다 각기 특별한 취향이 있었다. 그녀도 그러했다.온하랑은 사실 부승민의 뒤통수와 목이 취향이었다.트렌드에 따라 대부분 남자들은 뒷머리를
부승민은 의미심장한 눈길로 온하랑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약점을 쥐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 여자랑 거래하지 말고 차라리 나랑 해. 난 절대 널 다치게 할 리가 없으니까.”속마음과 말이 다른 버릇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아니 고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가 좋아하니 말이다.특히 그녀가 침대에서 “싫어.”라고 할 때 더욱 좋아했다.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그를 째려보았다.그는 정말이지 거래를 참 잘했다.확실히 부승민과 거래하는 것은 추서윤과 거래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나았다.여하간에 추서윤은 그녀를 뼛속까지 증오할 뿐 아니라 자신을 납치했던 납치범까지 풀어주며 그녀를 해치려고 했으니 말이다. 만약 그런 추서윤에게 합의를 해준다면 나중에 또 그녀를 해치려 할지도 모른다.부승민이 원하는 거래가 무엇인지는 쉽게 알아맞힐 수 있었다. 남녀가 한 방에서 만나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온하랑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부승민의 미소도 점차 사라졌다.“설마 정말로 그 여자한테 합의해 줄 생각인 건 아니지?”온하랑이 바로 대꾸했다.“당연히 아니지. 내가 바보도 아니고.”말을 마친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부승민을 보았다.“그래도 명색에 네 전 여자친구인데 정말로 내가 합의 안 해주길 바라는 거야?”“그 여자는 자기가 한 행동에 책임을 질 필요가 있어.”부승민은 온하랑을 힐끗 보곤 시선을 내리깔았다. 눈빛이 다소 그윽해졌지만, 다시 미소를 지었다.“왜? 지금 일부러 나 떠보는 거야?”만약 그가 추측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추서윤이 감방에 가길 바랐다.“누가 떠봤다고 그래?”온하랑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말을 돌렸다.“너랑 거래할 순 있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 추서윤을 사지로 내몰다가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떡해?”“그러지 못할 거야.”추서윤이 감방을 간다고 해도 어차피 몇 년만 있으면 출소할 수 있었다.하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면서 온하랑의 약점을 퍼뜨리면 부승민은 그녀를 평생 감방에서 썩게 할 생각이다.자
온하랑은 살짝 머뭇거리며 답했다.“알았어.”그녀는 사실 회사로 오고 싶지 않았다.그곳엔 아는 사람이 너무도 많았고 부승민과 함께 있는 모습을 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와 부승민은 이혼을 했지 서로 죽이고 싶어 안달 내는 원수 사이가 아니었다. 부씨 일가와 여전히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었다.그저 그녀가 예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기사는 두 사람을 태운 채 지하 주차장까지 들어갔다.온하랑과 부승민은 VIP 전용 통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장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왔다.회장실은 대표실의 바로 위층에 있었다. 그랬기에 온하랑 전 직장 동료들을 마주치지 않았다.부승민의 비서는 바뀌지 않았다. 비서의 표정 관리도 완벽했다.부승민과 온하랑이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비서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인사를 했다.연민우만 제외하고 말이다.그의 추측이 맞았다.부승민이 온하랑을 만나러 가기 위해 급하게 회사에서 나갔던 것이다.부승민은 비서들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내 방으로 커피 부탁하지.”회장실로 들어온 온하랑은 먼저 주위부터 둘러보았다.“허, 네 방이 대표실보다 2배로 더 크네. 정말 멋져!”그녀의 모습에 부승민이 웃음을 터뜨렸다.“마음에 들어? 복귀하면 네 방도 이렇게 만들어 줄까, 어때?”“응, 싫어.”소파에 앉은 온하랑은 다리를 꼬았다.그녀는 현재 하루하루가 여유로웠다. 그런데 뭣 하러 굳이 출근하러 오겠는가?게다가 그녀는 가만히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SNS에 직접 찍은 사진을 업로드하여 여러 회사에서 그녀의 저작권을 사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사진을 엽서로 인쇄하고 삽화로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벌이가 되었다.이때 비서가 노크하며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온하랑 앞으로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두어 걸음 물러나곤 말했다.“회장님, 10분 뒤 회의가 있습...”“나가.”“네.”비서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결혼을 했었지만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았다. 연민우의 연락을 제외하고 온하랑은 그의 핸드폰으로 온 연락을 대신 받지 않았다. 그의 핸드폰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결혼기념일 그날 이후로 그의 핸드폰을 본 적이 없었다.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더는 늦게 귀가하는 부승민을 위해 집안의 불을 켠 채 기다리지 않았고, 더는 다음 날 그가 출근하기 전 넥타이도 정리해 주지 않았으며, 더는 그가 제때 밥을 먹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는 “승민아”라고 다정하게 부르지도 않았다...그녀는 점점 그와 거리를 두었다.다만 그때의 그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고 그녀가 계속 자신의 곁에 있어 주기만을 바랐다.온하랑은 그런 부승민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궁금한 듯 물었다.“왜 그래? 회의가 안 좋게 끝난 거야?”“아니.”부승민은 뜸을 들이며 답했다.그는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부재중 전화 목록에서 육광태의 이름을 발견하곤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온하랑은 들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았다.“혹시 지금 시간 있어?”“잠깐만.”통화가 연결되고 부승민은 손짓을 했다. 그러면서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여보세요? 무슨 일로 전화했지?”전화기 너머로 육광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부승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면서 점점 화가 난 상태로 변했다.“확실해? ...그래, 알았어. 내가 지금 바로 가지.”통화가 끝난 후에야 온하랑이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야?”“미안해. 내가 지금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얼마나? 언제 돌아오는데?”“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여기서 조금 더 기다려줄래?”온하랑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얼른 돌아와.”“응.”부승민은 겉옷을 챙겨 들고 회장실에서 나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비서에게 간식을 온하랑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경찰서 앞.검은색 승용차의 문이 열렸다. 비싸 보이는 수제 구두가 바닥에 먼저 닿았다.부승민은 문을 닫았다. 그러자 입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부승민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주먹을 움켜쥐자 손등으로 선명한 핏줄이 튀어나와 더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분노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더 타오르는 분노에 이성이 잡아먹힐 것 같았다.부민재는 추서윤을 만나기 위해 경찰서로 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부승민의 추측을 거의 확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과 같았다.육광태가 알아본 바로는 추서윤과 부민재는 대학 시절 은밀한 사이였다고 했다. 부승민은 그럼에도 부민재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았다.부민재는 그의 형이었으니까. 형수를 배신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이해가 가지도 않았다. 부민재가 대체 왜 그랬는지 말이다.그런 그와 달리 부민재는 아주 태연했다.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부승민도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더는 숨길 필요도 없었다.다른 사람이 정말로 모르기를 바란다면 애초에 비밀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온하랑이 납치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 후로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왜 그랬어요?”고요한 분위기를 먼저 깬 건 부승민이었다. 그는 이를 빠득 갈며 한 글자씩 내뱉었다.“대체 왜 그런 거예요?”그는 서두 없이 말했다.하지만 두 사람은 부승민이 대체 뭘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아주 잘 알았다.한참 지나서야 부민재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왜라니? 나도 사실은 몰라. 아마 잠깐 홀렸나 봐.”“허, 잠깐 홀렸다니.”부승민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비꼬았다.그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부민재도 침묵했다.클럽에 도착하고 두 사람은 예약해둔 룸으로 갔다. 웨이터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두 분 안으로 드시지요.”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부민재를 보았다.부민재는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웨이터는 부승민의 뒤를 따라가며 주문을 받으려 하자 부승민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둘이서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고 나가봐요.”웨이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곤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왜 그랬냐고?”부민재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혼외자식 주제에. 할아버지는 너 같은 잡종 새끼가 뭐가 예쁘다고 너만 편애하시고 심지어 회사도 너한테 물려주려고 하셨지! 왜 너만! 왜 너만 모든 걸 다 가져야 하는 거지? 부씨 일가 미래의 가주는 분명 나인데 말이야!”“그러니까 형은 나를 처음부터 동생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소리네요. 그동안 내가 형 부모님을 죽게 한 원흉이고, 형 자리까지 빼앗은 원수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부승민은 시선을 떨군 채 그를 보았다.부민재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그럼 아니야?”집에서든 밖에서든 부민재의 이미지는 온화하고 우아한 사람이었다.부승민은 그런 그가 절대 원망 가득한 눈빛을 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예전에 한번 부민재가 이런 눈빛으로 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였고 그의 가방을 강가에 버렸다. 그가 나뭇가지로 가방을 건져낼 때 부민재는 뒤에서 그를 확 밀어 버렸다. 겨우겨우 강가에서 빠져나왔지만 부민재는 할아버지한테 말하면 죽여버릴 거라고 그를 협박하기도 했었다.집으로 돌아간 뒤 흠뻑 젖은 옷을 보며 부승민은 자신이 실수로 발을 헛디뎌 강가에 빠진 것이라 말했다.사실 할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부민재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부민재는 그에게 사과했다.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져 정말 가족이 되었다.적어도 부승민은 가족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부민재는 애초에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뼛속까지 그를 증오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할아버지 앞에서든 그의 앞에서든 완벽하게 숨겼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겠네요. 난 형이랑 뭔가를 뺏을 생각도 없었고 BX 그룹 대표님 자리도 할아버지께서 형으로 지정하신 거예요.”부민재는 그런 그를 비웃었다.“누구나 그럴싸한 말은 다 해. 네가 내 자리를 노리지 않았다는 말은 난 믿지 않아!
부민재는 그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형이었다. 그가 직접 경찰에 신고한다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 것이었다. 부민재가 자신을 왜 이렇게 괴롭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니까 형은 처음부터 온하랑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거네요?!”부승민은 미간을 팍 찌푸리곤 부민재를 보면서 한 글자씩 내뱉었다.그러자 부민재가 답했다.“뭐, 대충은. 솔직히 말하면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나 아니었으면 온하랑과 만나지도 못했을 거니까.”부승민은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부민재의 복부를 힘껏 차버렸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전부 말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시작은 아주 단순했다.추씨 일가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추상훈은 공장의 총책임자도 아니었다.추서윤의 가정 형편은 일반 사람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강남 재벌가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다.부모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원망해댔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 가끔 추서윤을 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왜 아들이 아니었냐고 하면서 말이다.추상훈에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은 유혜은은 모든 기대를 추서윤에게 걸었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추서윤은 강해져야만 했다. 반드시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 추상훈과 자신을 무시하는 사촌 형제들에게 대단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다만 사람마다 능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녀가 자라온 환경은 그저 그녀에게 비슷한 집안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거나 그녀보다 더 못한 집안의 사람을 만나게 했다. 재벌 2세들을 만나기엔 어림도 없었다. 재벌 2세들은 그들끼리 함께 다녔고 그녀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그럼에도 추서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기회가 차려졌다. 친구 중 한 명이 그녀를 어느 클럽 룸으로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 그녀는 부씨 일가 장손이었던 부민재를 만났다.그때의 부민재는 이미 BX에서 일하고 있었고 부승민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공부에만 신경을 쓰고 겸손했을 뿐 아니라 혼외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