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까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온하랑은 섣달그믐날의 전날 밤 사진 수업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수업은 일주일 후에 있었다.이날 밤 온하랑은 7시 정각에 맞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앱을 열고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수업에 들어가니 이미 화면이 켜져 있었고, 조수가 장비를 디버깅 중이었다.온하랑이 수업 톡방을 열어보니 많은 학원생이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수업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한 학원생이 말했다.“수업이 곧 시작되네요. 너무 흥분돼요. 운이 좋게도 어제 개강한다는 정보를 보고 신청했는데 마침, 마지막 자리였어요!”다른 학원생이 맞장구를 쳤다.“정말 행운아시네요. 전 전부터 기다리다가 개강 정보를 보자마자 신청했어요.”온하랑은 의아했다. 그녀가 신청했을 때는 십 며칠이었는데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미 정원이 다 찼다고 한다. 누군가 신청을 취소하여 자리가 남은 것일 수 있었다.“여보세요, 소리 들려요?”이때 상쾌하고 매력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라이브 방에서 울려 퍼졌다.“네!”“들려요.”“아이언맨!”“...”채팅창에 일련의 댓글이 달렸다.“들리시죠? 그럼 조교가 명단을 확인하고 학생들이 모두 모이면 정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잠시 후 조교가 채팅창에 말했다.“다 도착했습니다.”“좋아요.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강의 목록을 보셨을 텐데요. 첫 수업에서는 사진의 분류와 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우수한 작품들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온하랑은 매우 주의 깊게 들으며 필기했다. 최동철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명료했으며 알맹이만 쏙쏙 뽑아낸 강의 내용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저도 모르는 새에 2시간의 수업이 훌쩍 지나갔다.“자, 학원생 여러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조교 선생님이 톡방에 과제를 보낼 테니 제시간에 완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이브 방송을 끈 온하랑은 노트북을 들고 방에 돌아왔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모든 지식 포인트를 다시 돌이켜보
[정말이야? 그래서 귀국 후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삭제한 거구나.]삭제했다니?온하랑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교통사고 이후 정신을 차린 온하랑은 기억이 없어져 섣불리 친구를 삭제할 수 없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혹시 그녀가 잘 못 기억한 걸까?온하랑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이모티콘을 보냈다.[아마 기억이 안 나서 삭제했나 봐요. 정말 미안해요. 선생님은 제가 해외에 있었을 때 대학교 동기였나요?][아니. 난 필라시에서 몇 년 있었어. 그때는 한인협회 회장이었어.]동철이 대답했다.[우린 당시에 한인협회 단톡방에서 알게 됐어.][그랬군요. 그때의 도움 정말 고마워요.][너 그때 이미 인사했어.]이윽고 동철은 음성메시지를 보냈다.온하랑이 누르자 듣기 좋은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혼자 있는 서재에서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네가 날 삭제한 후 난 또 네가 날 싫어하는 줄 알고 귀국 후에도 너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그런데 생각밖에 네가 내 사진 수업을 신청한 거야. 아마도 인연인가 봐.”[다 당신이 시합 단톡방에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덕분이죠. 제가 신청할 때 이미 정원이 다 차지 않았어요? 당신의 권한으로 저를 받은 거예요?]온하랑이 궁금해하자 동철은 음성메시지로 답했다.“그래, 너 촬영 배우고 싶어? 내가 가르쳐 줄게”온하랑은 의아해서 물었다.[저 지금 선생님 수업 듣고 있잖아요?][사실 내 강의 경험으로 봤을 때 온라인 수업의 효율은 오프라인 수업보다 못해. 너 지금 강남에 있어?][네.][나도 마침 강남에 있는데 만약 네가 원한다면 우리 시간 내서 같이 풍경 사진 찍으러 갈래? 내가 직접 가르쳐 줄게.]온하랑은 이 메시지를 보고 마음이 설렜다.[정말요? 좋아요! 싫을 수가 없는 제안이죠. 다만 저 친구 한 명만 불러도 돼요?]솔직히 지금 최동철은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주현을 부르려고 했다.동철이 얼른 답장을 보냈다.[물론이지
온하랑과 부시아는 거실에 들어오며 부선월과 정면으로 마주쳤다.부선월은 심각한 얼굴로 온하랑을 보는 눈빛에는 불만을 가득 드러냈다. 온하랑은 차분하게 인사했다.“고모, 할머니, 안녕하세요.”“Grandma!”(할머니!)부시아는 활짝 웃으며 부선월의 앞으로 뛰어갔다.“오셨네요!”부선월은 몸을 숙여 부시아의 작은 뺨에 입을 맞췄다.“시아야, 할머니가 데리러 왔어. 좋아?”부시아는 깜짝 놀라더니 두 검지를 맞대며 말했다.“우리 이제 돌아가야 해요?”시아는 아직 가고 싶지 않은데 어쩌면 좋지?부선월은 부시아가 기뻐하지 않는 표정을 보더니 안색이 삽시에 어두워졌다.“왜? 할머니랑 돌아가기 싫은 거야?!”부시아는 얼굴이 하얘지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아... 아니요... 여기 며칠 더 있고 싶은데...”부선월은 섣달그믐날에 돌아왔다. 당연히 국내에서 설을 보내고 며칠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부시아의 반응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온하랑을 째려보더니 부시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가자! 지금 당장 돌아가!”부시아는 흠칫 떨면서 엉덩이를 뒤로 빼며 후퇴하려고 했지만 부선월을 당해낼 수 없었다.“고모!”온하랑은 부선월을 가로막았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시아가 안 돌아가겠다는 것도 아니고...”“네가 무슨 염치로 말해. 이혼까지 해 놓고 아직도 승민이를 꼬드기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네가 애를 낳지 못해서 승민이는 시아를 남겨두려는 거잖아! 부씨 가문이 널 키워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면 승민이한테서 당장 떨어져!”부선월의 사실과 어긋나는 말을 들은 온하랑은 화가 치밀어 올라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서야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마침, 무슨 말을 하려는데 김정숙이 다가와 부선월의 팔을 잡아당겼다.“선월아! 너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부선월은 김정숙의 손을 뿌리치고 온하랑을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내 말 틀렸어요? 얼마 전에 승민이가 위출혈을 일으킨 것도 얘 때문이 아니에요?”“이혼하고도 승민이를 붙잡고 있다니. 승민이가
말을 마친 부선월은 쿵쿵, 걸어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부선월의 뒷모습이 계단에서 사라지자, 김정숙은 온하랑을 위로했다.“하랑아, 고모의 헛소리를 듣지 마. 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서 성격이 아주 제멋대로야.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소란 피우는 건 몇 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으니, 원...”“괜찮아요, 할머니. 저도 알고 있어요.”온하랑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큰 은혜를 입었으니, 부선월의 아무런 타격도 없는 욕설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일 년에 몇 번 밖에 만나지도 않으니 말이다.“그럼 저 이제 숙모랑 같이 못 놀아요?”부시아는 작은 팔로 부승민의 목을 끌어안은 채 빨개진 커다란 눈망울로 아쉬움을 가득 담고서 온하랑을 바라보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히 아니지.”부승민이 얼른 대답했다.“네가 숙모랑 놀고 싶으면 숙모랑 놀면 돼. 누구도 널 제지할 수 없어.”“그랬다가 할머니가 또 화를 내면 어떡해요?”“할머니는 잠깐 화나셨을 뿐이야. 게다가 삼촌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네...”부승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부시아는 그에게 매우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얼굴까지 닮아서 정말 친아버지와 딸 같았다.김정숙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부선월의 태도를 떠올리더니 표정이 삽시에 어두워졌다. 머릿속에는 믿을 수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설마 시아가 정말 부승민의 친딸인 걸까?부선월은 오랫동안 혼자 살았는데 왜 갑자기 아이를 입양할 생각을 하게 된 거지?우연이라고 하기에 이 아이는 부승민을 너무 많이 닮아 있었다. 게다가 부시아는 아주 건강한데 부모가 왜 버렸을까?이렇게 건강한 아이가 어떻게 독신인 부선월한테 입양할 차례가 주어질 수 있을까?그러나 김정숙은 부승민이 절대 밖에서 아무 여자나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부승민이 아이의 아버지라면 아이의 어머니는 누구란 말인가?아마도 허무맹랑한 생각이겠지?김정숙은 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다.점심때 다들 그
그러기에 경찰이 민성주를 조사해 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이 관계는 너무 복잡했다. 민성주는 유괴당한 적이 있는데 워낙 오래된 사건이라 민지훈조차 알지 못했다.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고 온하랑은 천천히 저으며 어떻게 민지훈에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온하랑은 이미 민지훈에게서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하나는 장국호의 위치였고, 나머지 하나는 장국호와 민성주의 관계였다. 더 많은 것을 캐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 더 물으면 민성주가 의심할 것이다.나머지는 경찰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 민지훈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였다. 아무 말도 없는 온하랑 때문에 민지훈은 불안감에 긴장해서 물었다.“누나, 생각해 봤어요? 나랑 헤어질 거예요?”온하랑은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서수현 사건을 빌미로 민지훈에게 헤어지자고 하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 같았다.그렇게 하면 그녀가 일부러 민지훈에게 다가간 사실도 숨길 수 있고, 그에게서 순조롭게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행위는 너무 정 없고 이기적이라서 마음에 걸렸다.민지훈에게 미안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래 끄는 것보다 마음이 아파도 차라리 확실하게 일찍 끝내는 게 나았다.민지훈은 조마조마해하며 온하랑을 살폈고 그녀가 여전히 침묵하자 마음속으로는 이미 끝났다는 걸 알았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기대감이 남아 있었다. 온하랑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다가와 테이블 옆에 섰다. 고개를 들자 부승민의 엄숙한 두 눈빛과 마주쳤다.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온하랑을 내려다보았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안에는 셔츠와 정장을 입고 반듯하게 묶은 넥타이 위에는 정교한 핀이 꽂혀 있었다. 밖에는 심플한 검은색 코트를 입었는데 덕분에 길쭉한 몸매가 더욱 돋보였고 온몸에서 윗사람의 기세를 내뿜었다.온하랑은 깜짝 놀라 맞은편에 앉은 민지훈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부승민에게 말했다.“여기는 왜 왔
“그게 오빠랑 무슨 상관인데?”온하랑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부승민은 민지훈과 헤어지라고 그녀를 압박하고 있다. 그들이 진짜 헤어지게 되면 부승민이 그녀를 어떻게 괴롭힐지 벌써 걱정이 앞섰다. 부승민은 한참 온하랑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화가 나서 실소를 터뜨렸다.“민지훈이 그렇게 좋아? 그놈이 바람피우는 건 받아주면서 나는 싫어? 그놈이 너에게 주는 거 나도 줄 수 있어. 걔가 못 주는 것도 난 다 줄 수 있다고!”하지만 사실은 그가 말한 것과 반대였다. 온하랑은 민지훈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이성적으로 연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또한 온하랑이 부승민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에게 쉽게 상처받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온하랑이 입을 열었다.“정신적으로 바람피운 것도 바람이야. 잊지 마. 며칠 전에 네 입으로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추서윤이라고 인정했잖아.”부승민은 슬픈 눈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랑아, 그건 어쩔 수가 없었어. 너도 알잖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는 거...”“난 모르겠는데.”온하랑이 담담하게 말했다.“오빠 뜻은 내가 내로남불이라는 거잖아? 좋아. 지훈이랑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게. 하지만 오빠랑도 똑같아. 어때? 이럼 공평하지?”온하랑의 냉랭한 말에 부승민의 가슴은 날카로운 한기가 흘러들었고, 그는 손으로 미간을 누르며 지친 듯 고개를 숙였다.“정말 그렇게 생각해?”“그래.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부승민은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갑자기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눈빛을 번뜩이며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그건 불가능해! 이번 생에, 나에게서 벗어날 생각하지 마!”“부승민, 너...”부승민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온하랑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밖으로 나갔다.“뭐 하는 거야? 이거 놔!”온하랑이 몸부림칠수록 부승민은 손가락을 점점 더 조였다. 커피숍 앞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는 조수석 문을
“지금 당장 전화해서 헤어지겠다고 해.”부승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온하랑을 보면서 말했다. 온하랑은 몇 초간의 침묵 후 망설이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민지훈과의 연애에서 잘못한 건 그녀였다. 원래는 민지훈과 직접 만나서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었다. 정중히 말해야만 민지훈에게도 조금의 위안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전화로 헤어지자고 하는 건, 그것도 부승민 앞에서 말하는 건 온하랑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온하랑이 아무 말도 안 하자 부승민은 그녀를 흘끗 보고는 압박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왜, 싫어? 싫으면 내가 할게.”부승민은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민지훈에게 전화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민지훈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건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그 모습을 본 온하랑은 다급히 그의 손목을 잡고 미간을 찌푸린 채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입술을 깨물었다.“부승민, 선 넘지 마!”머리를 들어 올린 부승민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썹은 잔뜩 올라간 채 눈빛은 더없이 단호해 보였다.“내가 선 넘었다고? 난 늘 이랬어. 너도 알고 있었잖아?”온하랑은 말문이 막혔다.“...”이 개 같은 자식은 늘 이런 식이었다.두 사람은 눈에서 불꽃을 튀기며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전쟁을 치른 적군 같았다. 결국 몇 초 뒤 온하랑이 이 대치에서 물러났다. 눈을 내리깔고 등을 좌석에 기대며 휴대폰을 꺼내 민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스피커 눌러.”부승민이 지시했다.“쓸데없는 참견은.”온하랑은 눈을 흘기며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통하자 건너편에서 민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차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민지훈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말투는 지금 상황을 떠보는 듯한 기색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온하랑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훈 씨.”건너편에 있는 민지훈은 온하랑의 감정 변화를 느낀 듯 갑자기 당황해하며 말했다.“누나, 지... 지금 저랑 헤어지려고 그래요?”“... 미안해요, 지훈 씨. 우리
“난 이미 오빠가 말한 대로 했으니까 오빠도 약속 꼭 지켜. 내 의견을 존중해 줬으면 좋겠어.”부승민은 앞만 보면서 운전에 집중했다.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그게 무슨 의견인지 봐야지.두 사람은 본가에 도착했다.부민재네 가족과 둘째 삼촌네 가족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평소 하던 대로 오늘 밤은 모든 가족이 모여서 식사할 것이다.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가족 모임은 평소보다 한 사람이 줄었다는 것이다.이 점을 생각하니 온하랑은 문득 슬퍼졌다.거실에서 할머니 옆에 소청하와 둘째 숙모가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민재는 다른 쪽 소파에 앉아 옆에 있는 부현승과 무언가를 의논하고 있었다.그리고 부시아와 부윤민은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 함께 놀고 있었다.그들과 인사를 나눈 온하랑은 소청하 옆에 다가가 앉았다.“형님, 안녕하세요.”소청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소 부자연스러운 그 미소는 억지로 짜낸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눈가가 거무스름한 게 몹시 피곤해 보였다.온하랑은 소청하가 걱정되어 물었다.“형님, 어디 편찮으세요?”부민재가 듣고 고개를 돌려 소청하를 힐끔 쳐다봤다. 놀란 소청하는 온하랑을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아니. 괜찮아요.”소청하는 온하랑 뒤에서 따라오는 부승민을 보더니 온하랑에게 몸을 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련님이랑 화해했어요?”“아니요.”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흘끗 봤다.그는 부현승 옆에 다가가 앉았다. 부민재는 분명 부승민과 친형제이지만 지금 보니 부현승과 더 닮아 있었다. 오히려 부승민은 그 누구와도 닮은 구석이 없었다.할머니와 둘째 숙모도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 숙모가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벌써 스물일곱인데 여자 친구도 없다니.”부현승은 소파에 기대어 어색하게 웃으며 목을 주물럭거렸다. 온천에서 긁힌 상처가 아직 남아있었다. 부현승이 말했다.“엄마,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제 곧 여자 친구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