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이번 회식에서는 정말 민지훈과 일 얘기만 할 생각이었지 다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때론 천천히 해결해야 하는 일도 있으니까.부시아는 속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내가 신경 쓰이는 건 날 데리고 오는지 마는지가 아니라, 어제 분명히 답장할 필요 없다고 했으면서 오늘 같이 밥 먹는 거예요. 날 속인 거잖아요... 아니, 날 놀리는 거예요. 어린아이라고 날 놀리는 거잖아요... 흑흑...”“시아야, 아니야. 정말 아니야...”온하랑은 계속해서 해명했다.“널 속인 게 아니야. 그냥... 그냥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서...”“무슨 예상치 못한 상황이요?”부시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을까?’온하랑은 복잡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시아야, 숙모가 솔직하게 말해줄게... 숙모가 그 삼촌을 좀 좋아해. 너는 분명 네 삼촌 편을 들 테니까 어제 네 앞에서 메시지에 답장을 안 한 거야...”부시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큰 눈으로 온하랑을 똑바로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냈다.“숙모, 그 사람 좋아해요? 그럼 우리 삼촌은 어떡해요?”어린 소녀는 조바심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삼촌은 숙모를 엄청 좋아해요! 삼촌이 잘못해서 숙모를 잃어버렸으니까 되찾아 올 거라고 했어요. 그러지 못하면 평생 장가 안 가겠다고도 했어요. 숙모, 삼촌한테 한 번만 더 기회 주면 안 돼요?”“시아야, 미안해. 네가 숙모랑 삼촌이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은 알지만 이젠 안 돼. 숙모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삼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우린 함께할 수 없어...”앞서 이미 민지훈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니, 온하랑은 이제 마음의 짐을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 얘기했다.그래, 그녀는 이제부터 민지훈을 좋아하는 거다.부시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이렇게 행동해야만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을 수 있었다.부시아는 눈물을 흘리며 솜사탕을
주문을 마친 부시아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온하랑은 별생각 없이 아이 혼자 가도록 내버려두었다.칸막이로 된 화장실에 도착하자마자 부시아는 힘없이 워치를 열어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시아야. 지금 식당에 있어?”부승민의 목소리가 마이크 너머로 들려왔다.“네.”우울한 부시아의 목소리에 부승민은 무언가를 감지했다. “시아야, 왜 그래? 왜 기분이 안 좋아?”“삼촌, 숙모가 오늘 민지훈이랑 밥 먹기로 했대요.”부승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다른 사람한테는 다정하게 대하면서 유독 그에게만 모질게 구는 그녀였다.부시아는 답답한 듯 말했다.“숙모가 어제 분명 답장하기 싫다고 했는데 그게 거짓말이었어요. 그리고 숙모 민지훈 좋아한대요. 앞으로는 그 사람이 내 삼촌이 될 것 같아요. 삼촌, 어떡해요? 숙모 도망가요!”부승민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렸다.“시아야, 숙모가 정말 그렇게 말했어?”‘온하랑은 분명 이주혁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민지훈을 좋아하게 된 거지?’민지훈을 안 지 얼마나 됐고 몇 번이나 만났다고?부승민은 그녀가 그렇게 쉽게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정말이에요, 삼촌. 거짓말 아니에요.”“시아야, 걱정 마. 삼촌이 방법을 찾을 거야. 절대 숙모를 빼앗기지 않아.”“삼촌, 난 삼촌 믿으니까 최선을 다해야 해요.”부시아는 문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신나서 전화를 끊고 다시 룸으로 돌아오자 안에는 남자 한 명이 더 있었다.맞은편에 앉은 잘생긴 외모의 남자는 귀여운 덧니 두 개를 드러낸 채 웃으며 온하랑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지훈이었다.부시아는 입을 삐죽거렸다.‘대체 우리 삼촌보다 뭐가 나은 거지?’삼촌만큼 잘생기지도 않았고, 삼촌만큼 키 크지도 않았고, 마른 원숭이 같게 생겨서 삼촌만큼 돈이 많지도 않았다.‘그런데 숙모가 왜 이런 남자를 좋아하는 걸까?’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에 민지훈의 말이 끊겼다.그는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앙증맞은 어린 소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미
“네, 이제 겨우 출근한 지 3일밖에 안 됐고 아직 정식으로 일 시작하지 않았어요. 요 며칠 팀장님께서 회사 규정 제도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제가 인턴으로 있을 프로젝트는 휴대폰 게임인데, 독특하고 창의적이라 인기가 많을 것 같아요.”민지훈이 온하랑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누나도 전에 마케팅 일 했다면서요, 이번 IP 담당할 생각 없어요?”온하랑이 싱긋 웃었다.“난 일단은 좀 쉬고 싶어서 아직 그럴 생각은 없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아주 잘 지내요. 전 비록 인턴이지만 팀장님과 선배님들 다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예전에는 배달이나, 커피 심부름 같은 잡일만 시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아예 없어요. 동료들 학력, 이력에 대해 알아보니까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회사 분위기도 아주 좋고요.”민지훈은 어쩌다 보니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회사의 모든 면이 다 마음에 든다면서 왜 인턴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업무적으로 물어볼 게 있다는 거지?’온하랑은 굳이 들추지 않았다.“BX그룹이 꽤 마음에 드나 봐요.”민지훈이 말없이 웃었고 그때 직원이 음식을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시아야, 뭐 먹고 싶어? 숙모가 집어줄게.”온하랑이 묻자 부시아는 작은 머리를 내밀어 두리번거리더니 통통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나는 수육이요!”온하랑은 아이에게 수육 두 점을 집어주었다.“누나도 먹어요.”민지훈이 온하랑에게 갈비찜 한 조각을 건넸고 온하랑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그녀가 갈비찜을 들고 입에 넣자 옆에서 보던 부시아는 수육을 먹고 싶은 생각마저 사라졌다.“흥.”온하랑이 무시할 줄 알았던 민지훈은 뜻밖의 상황에 무척 기뻐했다.‘혹시 누나도 나한테 호감이 있는 건 아닐까?’그때 갑자기 민지훈의 휴대폰이 울리고, 힐끗 발신자를 확인한 그가 굳은 표정으로 온하랑에게 말했다.“누나, 팀장님 전화라 잠깐만 통화 좀 하고 올게요.”온하랑도 상대를 배려하며 말했다.“그래요. 급한 일
민지훈이 떠난 후,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은 온전히 온하랑과 부시아의 몫이 되었다.온하랑은 사실 민지훈이 떠나서 계속 마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부시아 역시 기뻐하며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입가에 기름을 잔뜩 묻히고 작은 손은 새우 껍질을 벗기느라 국물을 묻힌 채 고개를 젖히고 온하랑에게 말했다.“숙모, 지금 점심시간 아니에요? 많이 바쁜가 봐요.”“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지.”“그러면 숙모 곁에 있을 시간이 없는데 외롭지 않겠어요? 삼촌은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온하랑은 새우를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먹으면서도 말이 참 많아.”“음음.” 부시아는 입에서 새우를 꺼내며 작게 말했다.“그렇잖아요.”“남이 사준 밥을 먹고 있으면서...”“내 마음은 삼촌한테 있어요.”부시아는 진지하게 말했다.“어떻게 한 끼로 날 매수할 수 있겠어요? 이 수육 너무 맛있다.”“...”약 20분 후, 온하랑이 휴대폰을 열어 민지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회사 도착했어요? 일 끝나면 뭐라도 챙겨 먹어요. 부현승 씨 그렇게까지 매정한 사람 아니잖아요.]연기를 할 바엔 제대로 해야지.한참 후에야 민지훈은 답장을 보냈다.[문자 지금 봤어요. 고마워요, 누나. 오늘 정말 미안해요. 갑자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괜찮아요. 언제는 예기치 못할 상황이 생기잖아요. 시간 되면 언제 또 같이 밥 먹어요.][누나, 이번 주 토요일 시간 있어요?]온하랑은 대충 그의 뜻을 짐작했다.[시간 돼요.][그날 제가 점심 살게요. 어때요?][알겠어요.]민지훈은 행복해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네, 그럼 토요일에 봐요.]한창 음식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부시아는 온하랑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자 흘깃 쳐다보고는 갑자기 입을 삐죽거렸다.“흥.”온하랑이 그런 아이를 돌아보며 잔뜩 부푼 볼을 꼬집었다.“왜 그래?”“숙모, 토요일에 나랑 같이 밥 먹어요.”부시아는 조그만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구경꾼 하려고?”“흥, 상관없어요. 난 갈 거
세상에, 너무 무겁다.특히 지금은 겨울이라 옷도 두껍게 입고 있었다.온하랑은 부시아를 품에 안고 몇 발짝 못 가서 팔이 아프기 시작했고, 품에 안긴 아이는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온하랑은 부시아를 살짝 안아 올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아주머니, 잠깐만 나와주세요...”거실 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아주머니가 재빨리 나와서 곧 품에서 떨어지려는 부시아를 받아 안았고 온시아는 밑을 받쳐주었다.부시아는 멍하니 눈을 비비며 자신을 안고 있는 사람이 아주머니라는 걸 확인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하랑을 보자 아이는 손을 뻗으며 아직 잠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숙모.”온하랑은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아주머니와 함께 올라갔다.“숙모 여기 있어.”부시아는 눈을 감고 계속 잠을 청했다.아주머니는 부시아를 침대에 눕히고 신발과 겉옷, 바지를 벗긴 다음 이불을 덮어주었다.부시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침대 옆에 있는 온하랑이 보였다.“숙모, 가지 마세요, 알았죠?”온하랑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서 말했다.“숙모 안 가. 시아가 잠들면 갈게.”말을 마친 그가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아주머니, 제 차 뒷좌석에 시아 인형 세 개가 있는데 그거 가져다주세요.”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나갔고 부시아는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몇 분이 지나자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고, 온하랑은 몇 분 더 앉아서 부시아가 깊게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문을 닫고 나갔다.그런데 계단에 막 도착한 그녀가 자리에 멈춰 섰다. 부승민은 아래층에서 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온하랑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말했다.“시아는 놀다가 지쳐서 잠들었어. 아직 저녁 안 먹었으니까 이따 깨워서 먹여. 너무 오래 자게 하지 말고.”“그래.”부승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서 있었다.온하랑이 마지막 계단에 도착해도 부승민이 비켜주지 않자 옆에 있는 틈으로 지나쳤다.그 순간 부승민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
그 생각에 부승민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고, 손등은 핏줄로 불거졌으며, 눈은 점점 더 서늘해져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온하랑을 노려보았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함께 씁쓸한 감정과, 질식할 듯한 고통이 비 오는 날의 곰팡이처럼 천천히 피어올라 왔다.온하랑은 갈수록 잔인하게 변하는 부승민의 눈빛에 등골이 서늘해나며 힘껏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다.“부승민, 뭐 하는 거야? 아파!”부승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불규칙한 호흡을 억누르며 온하랑의 손을 놓았다.“너 이주혁 안 좋아해. 처음부터 이주혁 안 좋아했지?”온하랑은 자신의 손목을 문지르며 부승민을 흘겨보고는 뒤돌아 가버렸다.“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네가 상관할 바 아니야.”부승민은 가만히 서서 온하랑의 뒷모습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그의 짐작이 맞았다.그녀가 좋아하는 건 이주혁이 아니었다!그렇다고 그녀가 민지훈을 좋아할 리도 없었다.10대 때 아버지를 여의고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심리 분석에 따르면, 온하랑은 대체로 자기보다 조금 나이가 많고 아빠처럼 보듬어 줄 수 있는 남자를 좋아할 가능성이 컸다.아주 잠깐 부승민은 그 남자가 온하랑의 대학 시절 선생님이 아닐까 의심했다. 아직 뭘 모르고 사랑이 고픈 온하랑을 꼬드겨 놓고 결국 그녀를 버렸다. 그래서 온하랑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아닐까?틀림없다!부승민은 바로 연민우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랑이 대학 생활, 특히 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봐.”“네!”연민우는 깔끔하게 대답했다.대표님이 딱 짚어 선생님이라고 했다는 건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전화를 끊은 부승민은 스타 엔터테인먼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주혁을 포섭하라고 지시했다.온하랑은 이주혁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주혁은 온하랑을 좋아한다.이주혁을 데려와 띄우면 돈도 벌고 일하느라 바빠서 온하랑을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스타 엔터테인먼트
저녁 식사 후 부시아는 백호 인형과 함께 소파에 앉아 애니메이션을 보았다.부승민이 위층에서 휴대폰을 들고 내려오며 말했다.“시아야, 할머니한테서 전화 왔어.”부시아는 잔뜩 신나 휴대폰을 들고 화면 속 부선월을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어 뽀뽀했다.“할머니, 굿 이브닝!”부선월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부시아를 바라보며 안심했다.“시아야, 강남에 간 기분이 어때?”“강남 정말 좋아요!”“그래 보이네. 삼촌이 지난 이틀 동안 어디로 데려갔어?”부시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정했다.“삼촌 말고 숙모, 숙모가 여기저기 많이 데려다줬어요. 이거 봐요!”시아는 백호 인형을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이건 숙모가 동물원에서 사준 인형이에요. 세 개나 사줬어요! 엄청 귀여워요!”부선월의 표정이 굳어졌다.“숙모? 온하랑? 삼촌 이혼하지 않았니?”부시아는 부선월이 온하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설명했다.“삼촌 바빠서 숙모한테 날 맡겼어요. 할머니, 난 숙모랑 같이 노는 게 좋아요!”부선월의 눈에 불만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가며 더욱더 굳어진 표정과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부승민, 너 듣고 있어? 내가 시아를 너한테 맡겼는데 이런 식으로 돌보는 거야? 왜 시아를 남한테 맡겨, 그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부시아는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조용히 호랑이 인형을 내려놓고, 정말로 옆에 있던 부승민이 대답했다.“고모, 괜한 걱정이에요. 하랑이는 저랑 이혼했어도 여전히 부씨 가문의 양딸인데 그게 어떻게 남이예요?”“걔가 온씨지, 부씨야? 피를 나눈 형제도 확실히 따지는 마당에, 지금 그룹 대표가 누구인지 잊었어? 온하랑에게 다른 꿍꿍이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부선월은 점점 더 흥분하며 날카로운 어투로 쏘아붙였다.“그리고 이미 너랑 이혼했는데 왜 아직도 그 애한테 집착하는 거야? 재혼하기 싫어서 이래? 하나같이 온하랑에게 홀려서 왜들 이러는지 정말. 네 할아버지나, 너나, 시아도 마찬가지야! 할머니 말 들어. 온
부승민은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부시아의 어깨를 다독였다.“시아야, 그만 울어, 울지마...”부시아는 부승민의 품에 쓰러져 엉엉 울며 흐느꼈다.부승민은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계속 등을 토닥이며 탁자에서 휴지 두 장을 꺼내 조심스레 건네주며 천천히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부시아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착하지, 시아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놀면 돼. 알겠지? 할머니 말 안 들어도 돼.”부승민의 어깨에 기댄 부시아는 눈이 충혈되고 속눈썹에 눈물이 맺힌 채 여전히 감정에 북받쳐 다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할머니는 왜 숙모를 싫어해요?”부승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온하랑이 부씨 저택에 온 이후로 부선월은 온하랑을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다.처음엔 그저 공기로 여기며 무시하다가 나중에 할아버지가 온하랑과 부승민의 결혼을 발표하자 부선월은 격하게 반대했고, 굳이 귀국해서 할아버지를 찾아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따로 온하랑을 찾아온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두 사람을 이기지 못한 부선월이 이번엔 부승민을 찾아와 견결히 반대했다.그가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 온하랑과 꼭 이혼하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겨우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처음부터 부선월이 내세운 이유는 온하랑이 불우한 집안 출신이라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다만 부시아에게는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부시아는 의아한 듯 부승민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부승민은 부시아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돌렸다.“시아, 앞으로 강남에서 지내면서 학교 다닐래? 삼촌이 잘 돌봐줄게.”“나는...”부시아가 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고개를 숙이자 부승민이 싱긋 웃었다.“그럼 일단 이 얘기는 그만하고 할머니 말씀은 신경 쓰지 마. 삼촌이랑 있으면 삼촌 말대로 어디서 누구랑 놀든 마음대로 해.”부승민은 망설이는 부시아의 마음을 잘 알았다.부선월은 어릴 적부터 그녀를 키워준 사람이었고, 비록 촌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