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후 부시아는 백호 인형과 함께 소파에 앉아 애니메이션을 보았다.부승민이 위층에서 휴대폰을 들고 내려오며 말했다.“시아야, 할머니한테서 전화 왔어.”부시아는 잔뜩 신나 휴대폰을 들고 화면 속 부선월을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어 뽀뽀했다.“할머니, 굿 이브닝!”부선월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부시아를 바라보며 안심했다.“시아야, 강남에 간 기분이 어때?”“강남 정말 좋아요!”“그래 보이네. 삼촌이 지난 이틀 동안 어디로 데려갔어?”부시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정했다.“삼촌 말고 숙모, 숙모가 여기저기 많이 데려다줬어요. 이거 봐요!”시아는 백호 인형을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이건 숙모가 동물원에서 사준 인형이에요. 세 개나 사줬어요! 엄청 귀여워요!”부선월의 표정이 굳어졌다.“숙모? 온하랑? 삼촌 이혼하지 않았니?”부시아는 부선월이 온하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설명했다.“삼촌 바빠서 숙모한테 날 맡겼어요. 할머니, 난 숙모랑 같이 노는 게 좋아요!”부선월의 눈에 불만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가며 더욱더 굳어진 표정과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부승민, 너 듣고 있어? 내가 시아를 너한테 맡겼는데 이런 식으로 돌보는 거야? 왜 시아를 남한테 맡겨, 그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부시아는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조용히 호랑이 인형을 내려놓고, 정말로 옆에 있던 부승민이 대답했다.“고모, 괜한 걱정이에요. 하랑이는 저랑 이혼했어도 여전히 부씨 가문의 양딸인데 그게 어떻게 남이예요?”“걔가 온씨지, 부씨야? 피를 나눈 형제도 확실히 따지는 마당에, 지금 그룹 대표가 누구인지 잊었어? 온하랑에게 다른 꿍꿍이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부선월은 점점 더 흥분하며 날카로운 어투로 쏘아붙였다.“그리고 이미 너랑 이혼했는데 왜 아직도 그 애한테 집착하는 거야? 재혼하기 싫어서 이래? 하나같이 온하랑에게 홀려서 왜들 이러는지 정말. 네 할아버지나, 너나, 시아도 마찬가지야! 할머니 말 들어. 온
부승민은 휴대폰을 던져버리고 부시아의 어깨를 다독였다.“시아야, 그만 울어, 울지마...”부시아는 부승민의 품에 쓰러져 엉엉 울며 흐느꼈다.부승민은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계속 등을 토닥이며 탁자에서 휴지 두 장을 꺼내 조심스레 건네주며 천천히 아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부시아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착하지, 시아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놀면 돼. 알겠지? 할머니 말 안 들어도 돼.”부승민의 어깨에 기댄 부시아는 눈이 충혈되고 속눈썹에 눈물이 맺힌 채 여전히 감정에 북받쳐 다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삼촌, 할머니는 왜 숙모를 싫어해요?”부승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온하랑이 부씨 저택에 온 이후로 부선월은 온하랑을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다.처음엔 그저 공기로 여기며 무시하다가 나중에 할아버지가 온하랑과 부승민의 결혼을 발표하자 부선월은 격하게 반대했고, 굳이 귀국해서 할아버지를 찾아와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기까지 했다. 따로 온하랑을 찾아온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두 사람을 이기지 못한 부선월이 이번엔 부승민을 찾아와 견결히 반대했다.그가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 온하랑과 꼭 이혼하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겨우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처음부터 부선월이 내세운 이유는 온하랑이 불우한 집안 출신이라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다만 부시아에게는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부시아는 의아한 듯 부승민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부승민은 부시아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돌렸다.“시아, 앞으로 강남에서 지내면서 학교 다닐래? 삼촌이 잘 돌봐줄게.”“나는...”부시아가 작은 입술을 달싹이며 고개를 숙이자 부승민이 싱긋 웃었다.“그럼 일단 이 얘기는 그만하고 할머니 말씀은 신경 쓰지 마. 삼촌이랑 있으면 삼촌 말대로 어디서 누구랑 놀든 마음대로 해.”부승민은 망설이는 부시아의 마음을 잘 알았다.부선월은 어릴 적부터 그녀를 키워준 사람이었고, 비록 촌수가
전화가 연결되고 목소리가 차분해진 부선월이 물었다.“시아는 잠들었어?”“네.”부선월은 힘없는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승민아, 고모는 널 위해서 이러는 건데 왜 고집을 부려?”“온하랑 아니면 저 재혼 안 해요. 고모도 더 말씀하지 마세요. 시아 얘기하려고 다시 전화한 겁니다.”부선월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네가 온하랑한테 제대로 홀렸구나! 온하랑이 애를 못 낳는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래서 시아를 거기에 두고 온하랑의 딸로 만들려는 거야? 난 절대 반대다!”눈을 매섭게 뜬 부승민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어떻게 알았어요?”“걔가...”부선월은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애처 자제하는 것 같았다.“그날 너한테서 유산했다는 말 듣고 병원 가서 확인해 봤어. 걔가 애를 못 낳으니까 내가 재혼을 반대하는 거야. 너도 잘 생각해 봐. 정말 친자식도 없이 평생을 살 생각이야?”“네, 전 이번 생에 온하랑 말고는 누구도 원하지 않아요!”부승민이 단호하게 말했다.“고모, 시아 방학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아 스스로 선택하게 할 생각입니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려보내고, 여기 남겠다고 하면 앞으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마세요.”“너...”부선월은 격분했다.“걔가 왜 낙태 한번 한 걸로 다시 임신하지 못하는지 생각 안 해봤어? 그 배 속에서 몇 명이 죽었는지 알고 그러는 거야. 고작 그런 여자애 때문에...”“고모!”부승민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제가 고모를 고모라고 불러드리는 건 어른에 대한 존중이지, 고모가 마음대로 하랑이를 모욕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아 앞으로 여기 있을 겁니다. 고모처럼 빈부 차이 따지면서 옳고 그름을 모르는 사람 곁에 두는 건 애 성장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부승민, 너...”부선월이 말하기도 전에 부승민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다시 전화가 걸려 왔지만 단호히 거절했고, 계속해서 부선월이 전화를 걸자 부승민은 아예 소리를 끄고 탁자 위에 엎어놓았다....그 후 이틀 동
토요일 아침 9시 30분, 온하랑은 더원파크힐로 가서 부시아를 데리고 쇼핑몰을 한 바퀴 돌았다.두 사람은 대충 시간 맞춰 식당으로 향하던 중 온하랑은 민지훈의 메시지를 받았다.[누나, 가는 길에 카페가 있어서요. 뭐 마실래요?]그리고 메뉴판을 사진으로 찍어 보냈다.온하랑은 메뉴를 보면서 몸을 숙였다.“시아야, 뭐 마실래?”시선을 돌린 부시아가 검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가장 비싼 것을 주문하면서 손가락을 깨물며 말했다.“숙모, 저 세 잔 주세요. 저 한 잔, 삼촌 한 잔, 할머니 한 잔이요.”“...”꼬맹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민지훈의 돈을 뜯어내고 있었다.“그래, 세잔으로 하자.”온하랑은 민지훈에게 음료 이름을 알려주며 돈을 보냈다.[누나, 왜 또 돈 보내요. 오늘 제가 산다고 했잖아요.]그날 밤 집에 돌아온 온하랑은 민지훈에게 점심값을 건다. 부시아랑 같이 밥을 먹은 건 자신인데 민지훈이 계산을 하게 둘 수는 없었다.그때만 해도 민지훈은 받기 싫었지만 온하랑이 대신 토요일에 밥을 사라고 하자 어쩔 수 없이 받았다.온하랑이 문자를 입력했다.[그냥 받아아요. 점심도 사는데 이것까지 살 필요는 없어요.]그러다 고민끝에 뒤에 있는 말을 고치고 답장을 보냈다.[그냥 받아요. 막 인턴 시작해서 아직 월급도 못 받았는데, 한창 돈이 필요할 때잖아요.]이윽고 민지훈은 돈을 받고 고양이 이모티콘을 보냈다.[그럼 받을게요. 누나 고마워요.][뭘요. 참, 시아 데려가도 괜찮죠?]민지훈은 1분 동안 고민하는 걸로 내키지 않는다는 마음을 드러내며 이렇게 대답했다.[괜찮죠.]온하랑은 말과는 다른 민지훈의 표정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흥.”부시아는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 시아야?”온하랑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물었다.“숙모는 채팅만 하면서 날 무시해요.”“숙모는 널 무시하지 않았어.”“숙모는 지금 나를 무시하고 있어요. 다음에는 나랑 놀러 가지 않을지도 몰라요. 앞으로는 아예 안 볼지도 모르고요.”부시아의
“누나, 시아야. 사양 말고 얼른 먹어요.”부시아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젓가락을 집어들었다.뒤이어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음식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온하랑은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더 없는 거죠?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요? 우리 이거 다 못 먹을 텐데.”민지훈이 고개를 들어 놀랍다는 눈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아직 더 있는데요? 누나가 주문해달라는 메뉴대로 시킨 거예요, 저희는.”“뭐?”온하랑은 잠시 멍해 있더니 순간 무언가가 떠오른 듯 민지훈과 대화를 나눴던 카톡방을 들어가 보았다. 카톡 내용을 확인은 온하랑은 순간적으로 지금 자리에 있는 부시아를 당장이라도 내쫓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조용히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차가운 눈빛으로 부시아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켕기는 것이라도 있는지 부시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식지 손가락을 맞접이었다. 온하랑은 미안한 듯한 기색을 보이며 민지훈에게 말했다.“미안해요.”“누나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제가 쏘기로 한 거니까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요.”민지훈이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음식을 시킨 사람은 온하랑이 아닌 부시아였다.어쩐지! 민지훈도 온하랑이 자신을 아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민지훈에게 이렇게나 많은 음식의 금액을 지불하게 할 리가 없다.온하랑이 살살 웃으며 속으로는 식사를 마친 후 나온 금액은 민지훈에게 따로 돌려주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부시아는 본인도 잘못한 걸 아는지 다른 수작 없이 묵묵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그녀의 배는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식사를 하는 동안 민지훈은 세심하게 온하랑이 좋아하는 음식들만 골라 그녀의 앞접시에 담아주었다.처음에는 온하랑도 묵묵히 받아먹었지만 몇 분 후, 민지훈이 두 번째로 음식을 그녀의 앞접시에 덜어주던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 온하랑은 빠르게 손을 빼내며 말했다.“목이 좀 마르네. 나 커피 한 잔만 줄래요? 카푸치노로요.”온하랑의 한 손은 이미 부시아가 잡고 있으니 남는 한 손에는 커피를 든다면 민지훈과 손이 닿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민지훈의 손이 잠시 공중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는 이내 묵묵히 손을 다시 거두고 봉투에서 온하랑이 얘기한 카푸치노와 빨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여기요.”“고마워요.”“별 말씀을요.”영화관에 도착하자 온하랑은 모니터에서 지금 상영 중인 애니메이션과 회차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인터넷에서 그 영화에 대한 긴략한 소개글들을 칮아 부시아에게 보여주며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관람 시작 시간은 2시로 아직 20분 정도는 남아있었다.온하랑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로비 오른쪽에 있는 한 줄의 의자를 발견하고는 부시아와 함께 가 착석했다.20분이 지나 상영관으로 입장을 하던 중 온하랑은 이 상영관으로 들어온 사람 대부분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입장했다는 것을 발견했다.스크린에서는 이미 영화 인트로를 보여주고 있었다.세 사람은 정해진 자리에 착석했다. 온하랑이 가운데 앉고 그 양 옆으로 부시아와 민지훈이 앉았다.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스토리는 생각보다 유치하지 않고 탄탄했다. 온하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영화에 몰입했다.그와 반대로 민지훈은 그닥 영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영화에 집중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그렇게 고개를 세 번째로 돌렸을 때, 민지훈은 부시아의 동그랗고 큰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부시아는 천진한 표정으로 작게 속삭였다.“오빠, 왜 자꾸 우리 숙모 쳐다봐요?”부시아를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로 여기고 있던 민지훈은 민망한 듯 코를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주위 좀 대충 둘러보고 있었어.”말을 마친 민지훈은 급하게 시선을 스크린으로 옮겼다.네 번째로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보려던 그 순간, 민지훈은 또 부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정면으
온하랑은 조금 전 부시아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못 말린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그럼 우리 지금이라도 다른 데 가서 더 놀까? 아니면 바로 집에 갈래?”“저 고양이 보러 가고 싶어요.”“그래, 그럼 작은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시아는 송이부터 찾았다.온하랑은 과일을 씻고 간식들까지 챙겨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테이블 위에 놓인 두 병의 커피를 발견한 온하랑은 순간 부시아가 한 일이 떠올라 낮은 목소리로 부시아를 불렀다.“부시아, 이리로 와봐.”고양이와 놀고 있던 부시아는 자신을 부르는 온하랑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하랑의 어두운 표정을 발견한 부시아는 드디어 호되게 혼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아이 역시 양심에 찔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똘똘한 두 눈으로 물었다.“작은 엄마, 무슨 일이예요?”“이리 와.”“저… 저 지금 송이랑 놀고 있는데요.”“일단 와봐, 송이랑은 나중에 놀고.”부시아 역시 더 표정 관리를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온하랑에게로 걸어갔다.“무슨 일이예요, 작은 엄마?”온하랑은 자신과 민지훈의 카톡 대화방 화면을 켜 부시아의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설명해 봐.”부시아는 두 식지를 마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작은 엄마가 저한테 시키라고 하셨잖아요.”온하랑은 부시아의 작은 뱃살을 마구 꼬집기 시작했다.“부시아! 넌 네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도 가늠을 못 해? 계속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고 우길 거야?”부시아는 몸을 뒤로 넘긴 채 거의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는 그냥 먹고 싶은 대로…”온하랑의 손이 부시아의 겨드랑이 밑으로 향했다.“이래도 인정을 안 해? 넌 애초에 지훈 오빠 돈이나 뜯어먹고 싶었던 거잖아!”겨드랑이가 간지럽혀진 부시아는 깔깔 웃으며 답했다.“작은 엄마, 작은 엄마, 그만! 그만 해요. 으하하항, 으이잉. 그만 하세요, 인정할게요. 인
부시아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그녀는 조심스레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작은 아빠, 저 지금 작은 엄마 집에 있어요.”“작은 아빠가 지금 데리러 갈까?”“네. 작은 아빠, 근데 저… 제 생각엔…”“네 생각엔?”“제 생각엔 작은 아빠한테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요.”“…”“오늘 밥 먹으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작은 엄마는 지훈 오빠랑 얘기하느라 저를 아예 까먹고 있던데요. 밥 다 먹고 나서는 지훈 오빠가 먼저 작은 엄마한테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도 얘기했고요. 작은 엄마도 그걸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어요.”부시아의 말을 듣는 그 순간에도 부승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잠시 침묵을 유지한 부승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또 있어?”설마 온하랑이 진짜 민지훈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승민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또 있어요. 제가 일부러 지훈 오빠 돈이나 뜯어먹어 보려고 진짜 말도 안 될 정도로 메뉴를 엄청 많이 시켰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작은 엄마가 저한테 지훈 오빠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나중에… 제 작은 아빠가 될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한 번만 더 그런 짓 하면 저랑 친하게 못 지낼 것 같다면서… 그리고 방금 다음 약속도 잡았어요! 아 맞다, 그리고 지훈 오빠가 작은 엄마 끌어안기까지 했어요!”사실 끌어안았다기보다는 넘어질 뻔한 온하랑을 부축해준 것일 뿐이었지만.수화기 너머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부시아가 말을 이어나가려던 그 순간, 화장실 밖에서 온하랑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시아야, 아직이야?”부시아가 다급하게 대답했다.“작은 엄마, 저 똥 싸고 있어요! 냄새 장난 아니에요!”“아, 다 되면 불러. 닦아주러 들어갈게.”부시아의 얼굴이 붉어졌다.“작은 엄마, 저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요!”‘흥, 작은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 애인 줄 아나!’점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부시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