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하랑은 조금 전 부시아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못 말린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그럼 우리 지금이라도 다른 데 가서 더 놀까? 아니면 바로 집에 갈래?”“저 고양이 보러 가고 싶어요.”“그래, 그럼 작은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부시아는 송이부터 찾았다.온하랑은 과일을 씻고 간식들까지 챙겨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테이블 위에 놓인 두 병의 커피를 발견한 온하랑은 순간 부시아가 한 일이 떠올라 낮은 목소리로 부시아를 불렀다.“부시아, 이리로 와봐.”고양이와 놀고 있던 부시아는 자신을 부르는 온하랑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하랑의 어두운 표정을 발견한 부시아는 드디어 호되게 혼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아이 역시 양심에 찔려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똘똘한 두 눈으로 물었다.“작은 엄마, 무슨 일이예요?”“이리 와.”“저… 저 지금 송이랑 놀고 있는데요.”“일단 와봐, 송이랑은 나중에 놀고.”부시아 역시 더 표정 관리를 못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온하랑에게로 걸어갔다.“무슨 일이예요, 작은 엄마?”온하랑은 자신과 민지훈의 카톡 대화방 화면을 켜 부시아의 앞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설명해 봐.”부시아는 두 식지를 마주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작은 엄마가 저한테 시키라고 하셨잖아요.”온하랑은 부시아의 작은 뱃살을 마구 꼬집기 시작했다.“부시아! 넌 네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도 가늠을 못 해? 계속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고 우길 거야?”부시아는 몸을 뒤로 넘긴 채 거의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하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저는 그냥 먹고 싶은 대로…”온하랑의 손이 부시아의 겨드랑이 밑으로 향했다.“이래도 인정을 안 해? 넌 애초에 지훈 오빠 돈이나 뜯어먹고 싶었던 거잖아!”겨드랑이가 간지럽혀진 부시아는 깔깔 웃으며 답했다.“작은 엄마, 작은 엄마, 그만! 그만 해요. 으하하항, 으이잉. 그만 하세요, 인정할게요. 인
부시아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코웃음을 치고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그녀는 조심스레 부승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작은 아빠, 저 지금 작은 엄마 집에 있어요.”“작은 아빠가 지금 데리러 갈까?”“네. 작은 아빠, 근데 저… 제 생각엔…”“네 생각엔?”“제 생각엔 작은 아빠한테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요.”“…”“오늘 밥 먹으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작은 엄마는 지훈 오빠랑 얘기하느라 저를 아예 까먹고 있던데요. 밥 다 먹고 나서는 지훈 오빠가 먼저 작은 엄마한테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도 얘기했고요. 작은 엄마도 그걸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어요.”부시아의 말을 듣는 그 순간에도 부승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잠시 침묵을 유지한 부승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또 있어?”설마 온하랑이 진짜 민지훈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승민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또 있어요. 제가 일부러 지훈 오빠 돈이나 뜯어먹어 보려고 진짜 말도 안 될 정도로 메뉴를 엄청 많이 시켰단 말이에요? 그랬더니 작은 엄마가 저한테 지훈 오빠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나중에… 제 작은 아빠가 될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한 번만 더 그런 짓 하면 저랑 친하게 못 지낼 것 같다면서… 그리고 방금 다음 약속도 잡았어요! 아 맞다, 그리고 지훈 오빠가 작은 엄마 끌어안기까지 했어요!”사실 끌어안았다기보다는 넘어질 뻔한 온하랑을 부축해준 것일 뿐이었지만.수화기 너머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부시아가 말을 이어나가려던 그 순간, 화장실 밖에서 온하랑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시아야, 아직이야?”부시아가 다급하게 대답했다.“작은 엄마, 저 똥 싸고 있어요! 냄새 장난 아니에요!”“아, 다 되면 불러. 닦아주러 들어갈게.”부시아의 얼굴이 붉어졌다.“작은 엄마, 저 혼자서도 할 수 있거든요!”‘흥, 작은 엄마는 아직도 내가 어린 애인 줄 아나!’점점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부시아가
“고마워.“부승민이 자신의 앞에 놓인 뜨거운 물을 집어 들더니 고개를 들어 뜨거운 눈빛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온하랑은 그런 부승민을 못 본 척 몸을 돌려 소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솔직히 온하랑은 아직 사진 공모전의 주제를 떠올리지 못했다. 여전히 지금은 자신만의 느낌을 찾아가는중이었다.그녀는 모든 정신을 집중한 채 열심히 카메라를 보았다.그러던 순간, 온하랑은 갑자기 왼쪽 귀가 간지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손을 들어 왼쪽 귀를 만지작대다가 다시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귀가 간지러워져 또다시 손을 들어 오른쪽 귀를 문질렀다.왼쪽 귀가 여전히 간지럽고 뜨겁더니 귓불까지 저도 모르게 점점 빨개졌다.이상했다.그녀는 빠르게 몸을 똑바로 일으켜 뒤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부승민이 그녀의 등 뒤로 다가와 두 손을 소파에 짚은 채 몸을 숙여 온하랑의 귀에 바람을 불고 있었다.온하랑의 귓불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피가 날듯 새빨개지더니 그 열기가 점점 귓바퀴까지 퍼져나갔다. 그녀는 치밀어 오르는 화에 정신까지 혼미해졌다.“부승민, 미쳤어?”평소에 욕이라고는 딱히 하지 않는 온하랑은 기껏해야 미쳤냐 정도의 말 밖에 하지 못했다.부승민의 눈빛에 웃음기가 감돌더니 재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나 미쳤다. 너 안 보면 인생이 재미없어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이게 미친 상사병 아니면 뭐냐.”“…”대체 어디서 배워온 악취미인지 부승민의 대답이 지나치게 오글거린 나머지 온하랑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부승민의 말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하랑아.”부승민이 온하랑을 불러 세웠다.딱 들어도 별 좋은 소리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온하랑은 못 들은 척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가지 마, 할 얘기 있어. 시아 얘기야. 좀 들어봐.”온하랑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부승민을 바라보며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부승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만약 고모가 정말 시아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단순히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시아한테 널 멀리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을 거야.”온하랑은 시아에게 상처를 줄 사람도, 시아를 나쁜 길로 들어서게 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아 역시 온하랑을 좋아하고 잘 따랐으니 굳이 부시아와 온하랑을 강제로 떼어놓을 필요가 없었다.온하랑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사실 그게 인지상정이야. 만약 시아가 내 아이였어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랑 접촉하는 걸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을 거야. 다만 고모님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을 뿐이지.”온하랑의 말을 들은 부승민은 부선월이 온하랑에게 줬던 모욕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는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시아도 여기 남길 원한다면 내 딸로 호적에 올릴 생각이야. 시아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시아 생모는 너로 해둘 생각이고.”부승민의 말에 온하랑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부승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여러 번의 심사숙고를 거친 끝에 내린 결정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외적으로 부시아가 딸이라고 밝혀도 거기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이게 제일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하지만 이런 얘기를 지금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지 않아?”시아의 휴가도 길어봤자 한 달이었다.어떻게 이 짧디짧은 한 달 때문에 부시아더러 로스앤에서의 4년을 포기하라고 할 수 있을까?부승민은 온하랑에게서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부시아의 얘기를 할 때야 두 사람은 평화롭게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더니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시아한테서 들었는데 오늘 금방 민지훈이랑 약속 잡았다며?”그 순간, 부승민은 순간적으로 온하랑에게 설마 정말 민지훈에게 마음이라도
“응.”“내가 잘 부탁한다고 얘기 좀 해줄까?”온하랑이랑 따로 밥 먹을 시간도 없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게.온하랑은 부승민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필요 없어.”낙하산 싫어하는 사람 아니었나?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지?온하랑은 뒤늦게 대화 주제가 점점 다른 쪽으로 빠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부승민과 같은 소파 위에 앉아서 이렇게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줄이야!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나 시아 좀 보러 갈게.”“하랑아!”“또 볼일 남았어?”부승민이 몸을 일으켜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전에 내가 너한테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본 적 있었지. 넌 내 질문에 있다고 대답했어. 그 사람, 누구야?”이 늙다리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구나!연민우는 이미 온하랑의 대학 시절에 관련된 모든 자세한 자료와 경력들을 부승민에게 전해 준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온하랑이 얘기한 그 사람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었다.온하랑은 방어라도 하듯 부승민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나 던졌다.“이주혁이지!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걔 아니잖아.”“걔 맞아! 믿든지 말든지!”말을 마친 온하랑은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네가 또 나한테 해줬던 말이 있지.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주혁은 널 좋아해.”온하랑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손 놔!”그녀가 회피하면 회피할 수록 부승민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했다. 온하랑이 좋아한다고 했던 그 사람은 절대 그녀를 임신시킨 사람과 동일인물이 아니다.“네가 지금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건 대답을 하기 싫은 거야, 아니면 교통사고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부승민이 꽤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출산의 기억을 잊어버린 온하랑이 그 사람에 대한 기억도 함께 잊은 게 아닐까?“손 놓으라고 했다!”“
온하랑은 아무런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안 가.”하지만 부승민은 온하랑의 거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내일 오후에 데리러 올게.”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나서기 전, 부시아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시아야, 작은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알겠지?”부시아가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부승민이 집 밖에 나서는 것을 바라보며 안방 문이 닫혔다. 부시아는 고개를 들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작은 엄마, 술자리가 뭐예요?”온하랑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노는 거야.”“그럼 내일 저도 같이 갈 수 있어요?”호기심 가득한 부시아가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온하랑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 알겠어요.”온하랑은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바깥을 바라보더니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고 몇 가지 식자재를 꺼내 오늘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식사 준비가 절반 정도 끝나자 현관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시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가방을 내던졌다.“송이야, 우리 송이 어디 있니?”“송이 여기 있어요!”부시아가 소파 뒤쪽에서 고개를 내밀더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김시연을 쳐다보았다.“아줌마가 혹시 우리 작은 엄마가 얘기한 김시연 아줌마예요? 아줌마, 너무 예뻐요!”부시아를 발견한 김시연은 빠르게 아이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부시아에게로 걸어가 물었다.“네가 시아구나? 말 정말 예쁘게 하네.”그녀는 송이를 몇 번 쓰다듬더니 부시아에게 말했다.“송이랑 놀고 있어. 나는 작은 엄마 도와주러 갈게.”말을 마친 김시연이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채소를 썰고 있는 온하랑을 발견한 김시연은 그녀의 곁으로 가 팔꿈치로 온하랑을 툭툭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봐요, 하랑 씨. 왜 아직도 안 돌려보낸 거예요?”“오늘 밤에 나랑 같이 자기로 했어요.”“네?”김시연은 매우 놀라며 몰래 주방 밖을 슬쩍 보고는
온하랑 역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불을 끈 뒤 이불을 들어올려 침대 위에 누웠다.토실토실한 부시아가 곧바로 굴러들어왔다.온하랑은 자연스럽게 부시아를 품에 끌어안았다.부시아는 고양이처럼 온하랑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댔다.“작은 엄마, 좋은 냄새 나요.”온하랑은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면서 부시아의 등을 토닥였다.“얼른 자자.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작은 엄마한테 얘기해.”“네.”낮잠을 자지 못한 아이는 눈을 감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온하랑 역시 천천히 잠에 들었다.어렴풋이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꿈속에서 그녀는 한 병원에 병상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갓난아기가 누워 있었는데 태어난 시에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온원녕, 앞으로 너는 원녕이야.”꿈속에서의 온하랑은 아기를 안고 살살 흔들었다.그렇게 흔들다가 갑자기 품속의 아이가 사라졌다.깜짝 놀란 온하랑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떴다. 어둠만이 내려앉은 자신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꿈이었구나.그녀는 손을 뻗어 침대맡 탁자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온하랑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부시아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아이의 통통한 볼살을 한 번 찔러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아마도 부시아가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아이를 향한 갈망을 깨워준 듯 싶었다. 그 때문에 이런 꿈도 꾼 것이겠지.부시아와 천천히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하랑의 마음은 이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7시가 되어 잠에서 깬 그 순간에도 부시아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온하랑은 기지개를 키더니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송이의 밥응 챙겨주고 세수를 마친 뒤 아침식사를 준비했다.온하랑은 두 개의 수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 조각, 스테이크 한 조각, 계란프라이 하나, 상
부승민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라도 하는 듯싶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눈썹뼈가 아이홀 밑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검은 눈동자가 더욱 그윽해 보이게 만들었다.온하랑은 마음속으로 부승민을 변태라 욕보였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부승민을 째려보았다.부승민은 화를 내기는커녕 낮게 웃었다.부승민의 밝은 웃음소리가 오히려 온하랑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다급하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시아야, 방학 숙제 있어?”부시아는 고개를 들고 큰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있어요, 근데 다 엄청 간단한 것들이에요.”“알겠어.”“작은 아빠, 저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저도 그 술자리 가고 싶은데.”부시아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바라보며 그의 팔을 살살 흔들었다.“시아야, 말 들어야지. 너 집에 데려다주고 작은 아빠가 과자 사줄게.”“저 과자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저도 술자리 가고 싶다고요.”“안 돼.”“흥, 작은 아빠랑 말 안 할래요!”부시아는 작은 볼에 바람을 넣고 삐진 티를 내며 고개를 온하랑 쪽으로 홱 돌렸다. 그리고는 온하랑을 끌어안고 말했다.“작은 엄마, 저 오늘 밤에도 작은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온하랑은 아이의 부탁에 하마터면 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뻔했다.그녀는 몇 분 정도 망설이더니 결국 부드럽게 아이의 부탁을 거절했다.“시아야, 오늘 밤에는 작은 엄마가 엄청나게 늦게 돌아갈 것 같은데 혼자 자는 게 어때?”하지만 부시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기다릴 수 있어요.”“하지만 작은 엄마가 너무 늦게 돌아가면 너를 챙겨줄 수 없을 거야.”“저 스스로 챙길 수 있어요. 혼자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저 혼자 옷도 벗을 수 있어요. 만약 정말 늦게 돌아오시면 저 먼저 자고 있을게요!”“…”온하랑의 침묵을 보던 부시아는 작은 입술을 말아 물며 불쌍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작은 엄마, 혹시 제가 싫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