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만약 고모가 정말 시아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단순히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시아한테 널 멀리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을 거야.”온하랑은 시아에게 상처를 줄 사람도, 시아를 나쁜 길로 들어서게 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아 역시 온하랑을 좋아하고 잘 따랐으니 굳이 부시아와 온하랑을 강제로 떼어놓을 필요가 없었다.온하랑이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사실 그게 인지상정이야. 만약 시아가 내 아이였어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랑 접촉하는 걸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을 거야. 다만 고모님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을 뿐이지.”온하랑의 말을 들은 부승민은 부선월이 온하랑에게 줬던 모욕들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는 온하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시아도 여기 남길 원한다면 내 딸로 호적에 올릴 생각이야. 시아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시아 생모는 너로 해둘 생각이고.”부승민의 말에 온하랑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부승민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여러 번의 심사숙고를 거친 끝에 내린 결정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외적으로 부시아가 딸이라고 밝혀도 거기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이게 제일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온하랑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하지만 이런 얘기를 지금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지 않아?”시아의 휴가도 길어봤자 한 달이었다.어떻게 이 짧디짧은 한 달 때문에 부시아더러 로스앤에서의 4년을 포기하라고 할 수 있을까?부승민은 온하랑에게서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부시아의 얘기를 할 때야 두 사람은 평화롭게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하더니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시아한테서 들었는데 오늘 금방 민지훈이랑 약속 잡았다며?”그 순간, 부승민은 순간적으로 온하랑에게 설마 정말 민지훈에게 마음이라도
“응.”“내가 잘 부탁한다고 얘기 좀 해줄까?”온하랑이랑 따로 밥 먹을 시간도 없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게.온하랑은 부승민을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필요 없어.”낙하산 싫어하는 사람 아니었나?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지?온하랑은 뒤늦게 대화 주제가 점점 다른 쪽으로 빠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부승민과 같은 소파 위에 앉아서 이렇게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눌 줄이야!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나 시아 좀 보러 갈게.”“하랑아!”“또 볼일 남았어?”부승민이 몸을 일으켜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전에 내가 너한테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어본 적 있었지. 넌 내 질문에 있다고 대답했어. 그 사람, 누구야?”이 늙다리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구나!연민우는 이미 온하랑의 대학 시절에 관련된 모든 자세한 자료와 경력들을 부승민에게 전해 준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온하랑이 얘기한 그 사람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었다.온하랑은 방어라도 하듯 부승민을 바라보며 아무 말이나 던졌다.“이주혁이지!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걔 아니잖아.”“걔 맞아! 믿든지 말든지!”말을 마친 온하랑은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부승민은 온하랑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네가 또 나한테 해줬던 말이 있지.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은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때 이주혁은 널 좋아해.”온하랑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부승민을 바라보았다.“손 놔!”그녀가 회피하면 회피할 수록 부승민은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했다. 온하랑이 좋아한다고 했던 그 사람은 절대 그녀를 임신시킨 사람과 동일인물이 아니다.“네가 지금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건 대답을 하기 싫은 거야, 아니면 교통사고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부승민이 꽤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출산의 기억을 잊어버린 온하랑이 그 사람에 대한 기억도 함께 잊은 게 아닐까?“손 놓으라고 했다!”“
온하랑은 아무런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안 가.”하지만 부승민은 온하랑의 거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내일 오후에 데리러 올게.”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나서기 전, 부시아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시아야, 작은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알겠지?”부시아가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부승민이 집 밖에 나서는 것을 바라보며 안방 문이 닫혔다. 부시아는 고개를 들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작은 엄마, 술자리가 뭐예요?”온하랑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말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노는 거야.”“그럼 내일 저도 같이 갈 수 있어요?”호기심 가득한 부시아가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온하랑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 알겠어요.”온하랑은 점점 어둑어둑해지는 바깥을 바라보더니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고 몇 가지 식자재를 꺼내 오늘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식사 준비가 절반 정도 끝나자 현관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시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가방을 내던졌다.“송이야, 우리 송이 어디 있니?”“송이 여기 있어요!”부시아가 소파 뒤쪽에서 고개를 내밀더니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김시연을 쳐다보았다.“아줌마가 혹시 우리 작은 엄마가 얘기한 김시연 아줌마예요? 아줌마, 너무 예뻐요!”부시아를 발견한 김시연은 빠르게 아이의 정체를 알아내고는 부시아에게로 걸어가 물었다.“네가 시아구나? 말 정말 예쁘게 하네.”그녀는 송이를 몇 번 쓰다듬더니 부시아에게 말했다.“송이랑 놀고 있어. 나는 작은 엄마 도와주러 갈게.”말을 마친 김시연이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채소를 썰고 있는 온하랑을 발견한 김시연은 그녀의 곁으로 가 팔꿈치로 온하랑을 툭툭치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봐요, 하랑 씨. 왜 아직도 안 돌려보낸 거예요?”“오늘 밤에 나랑 같이 자기로 했어요.”“네?”김시연은 매우 놀라며 몰래 주방 밖을 슬쩍 보고는
온하랑 역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불을 끈 뒤 이불을 들어올려 침대 위에 누웠다.토실토실한 부시아가 곧바로 굴러들어왔다.온하랑은 자연스럽게 부시아를 품에 끌어안았다.부시아는 고양이처럼 온하랑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부비적댔다.“작은 엄마, 좋은 냄새 나요.”온하랑은 말 없이 그저 웃기만 하면서 부시아의 등을 토닥였다.“얼른 자자. 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작은 엄마한테 얘기해.”“네.”낮잠을 자지 못한 아이는 눈을 감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온하랑 역시 천천히 잠에 들었다.어렴풋이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꿈속에서 그녀는 한 병원에 병상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갓난아기가 누워 있었는데 태어난 시에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누워 있는 갓난아기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온원녕, 앞으로 너는 원녕이야.”꿈속에서의 온하랑은 아기를 안고 살살 흔들었다.그렇게 흔들다가 갑자기 품속의 아이가 사라졌다.깜짝 놀란 온하랑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눈을 떴다. 어둠만이 내려앉은 자신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꿈이었구나.그녀는 손을 뻗어 침대맡 탁자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온하랑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부시아를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아이의 통통한 볼살을 한 번 찔러보며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아마도 부시아가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아이를 향한 갈망을 깨워준 듯 싶었다. 그 때문에 이런 꿈도 꾼 것이겠지.부시아와 천천히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온하랑의 마음은 이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7시가 되어 잠에서 깬 그 순간에도 부시아는 여전히 곤히 자고 있었다.온하랑은 기지개를 키더니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송이의 밥응 챙겨주고 세수를 마친 뒤 아침식사를 준비했다.온하랑은 두 개의 수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두 조각, 스테이크 한 조각, 계란프라이 하나, 상
부승민의 눈빛은 초점을 잃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라도 하는 듯싶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온하랑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눈썹뼈가 아이홀 밑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검은 눈동자가 더욱 그윽해 보이게 만들었다.온하랑은 마음속으로 부승민을 변태라 욕보였다.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부승민을 째려보았다.부승민은 화를 내기는커녕 낮게 웃었다.부승민의 밝은 웃음소리가 오히려 온하랑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그녀는 다급하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시아야, 방학 숙제 있어?”부시아는 고개를 들고 큰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있어요, 근데 다 엄청 간단한 것들이에요.”“알겠어.”“작은 아빠, 저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해요? 저도 그 술자리 가고 싶은데.”부시아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바라보며 그의 팔을 살살 흔들었다.“시아야, 말 들어야지. 너 집에 데려다주고 작은 아빠가 과자 사줄게.”“저 과자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저도 술자리 가고 싶다고요.”“안 돼.”“흥, 작은 아빠랑 말 안 할래요!”부시아는 작은 볼에 바람을 넣고 삐진 티를 내며 고개를 온하랑 쪽으로 홱 돌렸다. 그리고는 온하랑을 끌어안고 말했다.“작은 엄마, 저 오늘 밤에도 작은 엄마랑 같이 자고 싶어요.”온하랑은 아이의 부탁에 하마터면 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을뻔했다.그녀는 몇 분 정도 망설이더니 결국 부드럽게 아이의 부탁을 거절했다.“시아야, 오늘 밤에는 작은 엄마가 엄청나게 늦게 돌아갈 것 같은데 혼자 자는 게 어때?”하지만 부시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기다릴 수 있어요.”“하지만 작은 엄마가 너무 늦게 돌아가면 너를 챙겨줄 수 없을 거야.”“저 스스로 챙길 수 있어요. 혼자 세수도 하고 양치도 하고, 저 혼자 옷도 벗을 수 있어요. 만약 정말 늦게 돌아오시면 저 먼저 자고 있을게요!”“…”온하랑의 침묵을 보던 부시아는 작은 입술을 말아 물며 불쌍한 표정으로 온하랑을 바라보았다.“작은 엄마, 혹시 제가 싫어진
온하랑이 다급하게 손을 빼냈다.“이번 한 번만 봐준다.”그녀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번에도 거절 실패다. 멀어지기 실패.됐다. 이게 마지막인 걸로 하자.다음엔 무조건 칼같이 거절할 것이다.운전기사가 물었다.“대표님, 차 돌릴까요?”“아뇨, 우선 저택에서 시아 옷이나 몇 벌 챙기고 하랑이네 집으로 가죠.”“네.”차가 단지 앞에 멈춰 서자 온하랑이 차에서 내려 부시아의 옷가지를 담은 가방을 꺼내 직접 부시아를 위층까지 올려주었다.그 시각, 김시연은 한가하게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온하랑이 돌아온 것을 발견한 김시연이 입을 열었다.“걔 돌려보내…”김시연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하랑의 뒤로 부시아가 보이자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온하랑도 어딘가 민망해져 감히 김시연의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다급하게 가방만 소파 위에 놀려놓은 채 말했다.“시연 씨, 오늘 밤 시아 좀 부탁할게요. 저는 일이 좀 있어서 늦을 것 같아요.”부시아의 앞에서 김시연은 망설임 없이 빠르게 대답했다.“그래요, 얼른 가봐요. 시아야, 오늘은 아줌마랑 같이 밥 먹자!”“네.”부시아도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줌마, 잘 부탁드립니다.”온하랑은 혹시라도 부시아가 심심해할까 아이패드까지 꺼내 부시아에게 전해주며 몇 마디 당부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를 나서자마자 온하랑의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음이 떴다.알림을 확인해보니 김시연이 보낸 째려보는 듯한 이모티콘이 떠 있었다.“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보시죠? 왜 아직도 안 돌려보낸 거예요?”온하랑이 몇 초 정도 침묵을 유지하더니 곧이어 말을 꺼냈다.“안심하세요. 이게 정말 마지막이니까.”안심은 개뿔.김시연은 부승민이 얼마나 교활한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부승민은 지금 온하랑이 아이에게 약하다는 것을 이용해 부시아로 그녀를 유혹 중이었다.“확실한 거예요?”“확실해요.”온하랑은 확고하게 대답했다.“좋아요. 믿어줄게요. 아 맞다, 오늘 저녁에 무슨 일이 있길
온하랑이 옷걸이 쪽으로 걸어갔다.부승민이 그쪽으로 다가가 패딩을 꺼내 그녀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스튜디오를 나서자 뼈까지 파고드는 한기가 밀려 왔다.“얼른 차 안으로 가자.”부승민은 차가운 온하랑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녀는 빠르게 부승민의 손을 피했다.그는 조금 어색한 듯 빠른 걸음으로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부승민은 온하랑을 도와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온하랑은 치마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부승민은 바로 차 문을 닫고 다른 한쪽 문으로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히터가 틀어져 있어 바깥과는 사뭇 다른 따뜻한 공기가 감돌았다.목적지에 도착하자 온하랑은 패딩을 벗고 부승민의 뒤를 따랐다.문 앞까지 도착했을 때, 부승민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팔을 살짝 굽히고는 온하랑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손을 들어 부승민의 몸과 팔 사이에 생긴 작은 틈에 밀어 넣고는 로비로 들어섰다.“부승민 대표님.”이번 술자리 주최자가 바로 달려와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했다.“이렇게 와주시다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부승민의 수하에 있는 자산이 만만치 않게 많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과학 기술 분야에서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금영 테크, 첨단산업개발 구역 랜드마크 건물을 인수한 부동산 회사, 그리고 시내 중심의 가장 높은 사무실 건물과 강남 시내를 통틀어 최고의 무역액을 달성한 금정 빌딩까지.따라서 그가 BX 그룹 대표이사직에서 물러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부승민을 추앙했다.“과찬이십니다.”“이쪽은 온하랑 씨, 맞으시죠?”이 씨는 온하랑에게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미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금방 이혼한 둘이 지금은 함께 모임에 참석하고 있으니 말이다.그렇다는 건 합의로 진행된, 평화롭게 이루어진 이혼이었겠지?“안녕하세요.”온하랑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안으로 드시죠, 부 대표님.”“네.”부승민과 온하랑은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오랜만입니다, 부 대표님.”“어머, 대표님 동
온하랑이 고개를 들어보니 한 손에 와인잔을 든 민지훈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설마 했는데 정말 누나였네요. 잘못 본 줄 알았어요!”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본 온하랑의 입가의 미소가 번졌다.“지훈 씨가 왜 여기 있어요?”만약 온하랑이 오늘 부승민과 함께 여기에 온 것을 안다면, 아마도… 민지훈의 시선이 굳었다.“민지훈?”“아… 친구가 초대해서요.”황급히 정신을 차린 민지훈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긴 속눈썹을 깜빡이며 물었다.“누나, 누나는 왜 여기 있어요??”온하랑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초대장을 받았는데, 시간이 남아서 왔어.”말을 마친 그녀가 지나지 않게 로비를 쓱 훑어보았다.로비에는 서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붐벼 온하랑의 시선을 방해했다.민지훈은 아마도 부승민이 이곳에 있는 것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말했다.“저도 비슷해요. 누나, 뭐 좀 먹을래요? 제가 갖다 드릴게요.”“같이 가요.”온하랑은 몸을 일으켜 민지훈과 함께 음식 코너로 향했다.그녀는 민지훈이 음식 코너로 가던 중 혹시라도 부승민을 마주칠까 봐 겁이 났다. 그러니 같이 가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대화를 통해 민지훈의 집중력을 분산시켜야 했다.온하랑은 두 조각의 작은 케이크와 쿠키를 집었다.그녀는 와인 잔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시 휴대전화로 옮겼다.민지훈은 바로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접시를 받아들었다.“누나, 이거 제가 들어 드릴게요.”“고마워요, 지훈 씨는 안 먹어요?”온하랑은 와인 잔을 들고 가볍게 한 모금을 들이켰다.잠시 멈칫한 민지훈은 집게로 쿠키 두 조각을 집었다.“같이 담아도 괜찮아요?”“괜찮아요. 같이 담죠.”민지훈은 먹고 싶은 쿠키, 케이크와 초콜릿 몇 조각을 한데 담았다.다시 소파로 돌아가는 길, 온하랑은 몰래 주위를 둘러보며 부승민의 실루엣을 찾아냈다.언제부터인지 그의 근처에는 젊은 여자 한 명이 더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아주 좋은 몸매를 가진 여자였다.온하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