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지?’경악도 잠깐일 뿐 온하랑은 사진 속에 숨겨진 포토샵의 흔적을 찾기 위해 뚫어져라 핸드폰을 쳐다봤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베테랑 포토그래퍼의 작품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살짝 젖어있는 듯한 아기의 머리카락마저도 생동감이 넘쳤다.어쩌면 딥페이크로 얼굴 바꿔치기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별안간 온하랑의 머릿속에 스쳤다.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앱 하나를 다운받았다.이 앱은 파일의 내부 세부 사항을 검사하고 이미지의 원본 출처를 분석하여 진위 여부를 테스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온하랑은 사진을 저장하여 앱에 불러넣었다.그러나 곧이어 눈앞에 펼쳐진 결과에 할 말을 잃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사진 두 장도 넣어보았으나 결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믿기지 않는 현실에 머릿속이 텅 비었고 표정마저 잔뜩 굳어졌다.세 장의 사진은 모두 원본이며 그 어떤 포토샵의 흔적도 없었다.앱에 떠오른 정보로 봤을 때 세 장 모두 5년 전의 사진이었다. 날짜는 달랐지만 모두 온하랑이 필라시에 있었을 때와 일치했다.특히나 마지막 사진은 촬영일이 6월 28일인데, 아마 출산일이었을 것이다.온하랑은 기억을 더듬어 본인이 8월 말에 귀국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당시 그녀는 조부모님께 여름 캠프에 참가한다고 얘기했는데 실은 교통사고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그 기억만큼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수술을 마쳤을 때 온하랑은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였고 낯선 나라, 낯선 병원에서 눈을 떴다.그녀의 기억은 필라시로 떠나기 전 그곳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꿀팁을 찾았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나중에 의사를 통해 필라시인 걸 알게 되었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일시적인 충격에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온하랑은 자신에게 기억상실증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핸드폰에는 펜베티아 대학교에서 찍은 사진과 발급받은 인증서 사진이 남아있었다. 학점 표까지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인 부승민이 아니다.“같이 가자. 마음이 안 놓여서 그래.”부선월이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볼 수 있는 상황에 그녀를 위험을 빠뜨릴 수는 없었다.부승민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온하랑도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사진 속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누군가의 악의 섞인 장난일 수도 있기에 헛된 생각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자신의 몸과 뱃속의 아이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만큼 좋은 기분으로 새 생명을 맞이하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그러나 아무리 자기암시를 해도 여전히 헛된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그렇게 온하랑은 잠을 설쳤다.다음날 부승민은 양현수에게 연락했다. 운전대를 잡은 양현수의 곁에는 여자 경호원이 앉아 있었고 그들의 뒤를 지키는 차에도 경호원이 가득 배치되었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온하랑은 비로소 차에 올랐다.이 상황이 웃긴지 온하랑은 미소를 머금고 부승민을 바라봤다.“왜 이렇게 난리야. 누가 보면 황금알을 임신한 줄 알겠어.”“말이 너무 심하네.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아.”이번 정기검진에는 체중, 혈압, 혈액검사를 제외하고 초음파도 포함되어 있었다.초음파실 입구에는 경호원이 지키고 있었다.부승민이 초음파실에 발을 딛은 순간 온하랑이 재빨리 몸을 돌려 손을 가로저었다.“그만. 넌 밖에서 기다려.”부승민은 어리둥절했다.“왜? 난 들어가도 되잖아.”그동안 검사를 받을 때마다 부승민은 줄곧 온하랑의 곁을 지켰고 가끔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가리키며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내가 싫다고 하면 그냥 안 되는 거야.”온하랑은 그를 힐끗 째려보고선 일부러 진지하게 얘기했다.“의사 선생님한테 개인적으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아무리 진지하게 말한다 한들 부승민의 눈에는 그저 귀여워 보였다. 애교 섞인 목소리에 똘망똘망 반짝이는 두 눈이 더해지자 비밀보다는 생리적인 문제로 의사한테 뭔가를 여쭤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온하랑을 클래식 캐슬까지 바래다준 부승민은 그녀에게 푹 쉬라고 당부하고 회사로 향했다.대표 사무실. 연민우가 노크하고선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메일 발신자와 이 사건을 퍼뜨린 당사자를 잡았습니다.”부승민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차분하게 물었다.“자백했어?”“네. 미끼를 던지니까 바로 물었습니다.”“뭐래?”“진술에 따르면 어느 날 낯선 라인 계정으로 친구 추가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변 보호는 확실하게 해줄 테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문제없다고 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것 같습니다. 실명 인증을 받은 계정이라 저희가 따로 조사해 봤는데 소유주는 서천우, 올해 일곱 살입니다...”“서천우...”부승민은 익숙한 이름에 흠칫하고선 여러 번 되뇌였다.그 반응에 연민우는 쭈뼛거리며 말을 이었다.“서정훈 의원님의 둘째 손자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서 의원님의 아들인 서상원입니다...”자기가 대단한 사람인양 허세를 부리는 건 어린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하지만 그 아이가 서천우라면 이 일의 배후에 이엘리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부승민은 몇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의원님 비서한테 언제 시간 되는지 물어봐. 직접 의원님 찾아뵐 생각이니까 사전에 선물 준비하고.”“알겠습니다.”...집에 돌아온 온하랑은 소파에 앉아 핸드폰 속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서우현과의 대화창을 열어봤지만 아직 그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다.참다못한 온하랑은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얼마 후 통화가 연결되었고 핸드폰 너머로 서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하랑 씨?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던 참이었어요.”이를 들은 온하랑은 다짜고짜 물었다.“저한테요? 무슨일로요?”“몇 달 전에 알아봐달라고 부탁하신 일 있잖아요. 단서를 찾았어요.”온하랑은 긴장감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설마 추서윤...”“맞아요. 제가 섣불리 움직이면 꼬리가 잡힐 수도 있어서 일부러 부하한테 시켰어요. 추서윤
사실 이 내용만 들어보면 별 의미가 없다.식당 사장의 말을 토대로 추측하면 온강호가 사고를 당한 시간과 대략 일치한다. 당시 추서윤은 부승민과 만나고 있었으니 마스크를 쓴 남자가 추서윤의 남자 친구일 리가 없다.두 사람이 몰래 인적 드문 골목에서 만났으니 의심을 살 만도 하다.온하랑을 계속하여 물었다.“또 있어요?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고 있대요?”서우현은 한숨을 내쉬었다.“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어요. 180cm의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졌는데 나이는 20대로 보였대요.”180cm의 키에 균형 잡힌 몸매를 가진 남자는 길거리에 널리고 널렸다.“어쨌든 이제 단서도 보이기 시작하니 계속 알아봐 줘요.”실마리를 따라 조사하다 보면 반드시 더 많은 목격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그 남자가 골목에서 증발하지 않은 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진실은 드러나게 된다.“알겠어요.”서우현은 곧바로 답했다.“아참, 무슨 일로 저한테 연락하려고 했어요?”온하랑은 그제야 자신이 연락하려던 목적이 생각났다.“어제 보낸 사진은 뭐예요? 누구한테서 얻은 거예요?”서우현은 당황해하며 물었다.“사진이요? 제가 사진을 보냈어요?”“어젯밤에 보냈잖아요.”“어젯밤이요?”서우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어제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오늘 아침에 경찰서에서 핸드폰 찾으러 오라고 연락왔는데... 설마 그사이에 누군가 사진을 보냈다는 거예요? 그럼 잃어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훔쳤다는 거네요?”온하랑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럴지도 모르겠네요.”“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사진인지 물어봐도 될까요?”“그건 알 필요 없어요. 일단 누가 핸드폰 훔쳤는지부터 조사해 봐요.”“네, 지금 바로 경찰서로 가서 알아봐야겠어요.”전화를 끊은 온하랑은 한숨이 나왔다.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두통이 밀려와 어지러웠다.무거운 배를 잡고 간신히 일어선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으나 좀처럼 진정
통증이 지나간 뒤에도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고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온하랑은 애써 복잡한 생각을 집어던지고 이불을 덮고선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오랫동안 뒤척이다가 결국 잠이 들었는데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 깊게 잠들지 못했다.흐릿한 장면들이 하나둘씩 뇌리를 스쳐갔고 온하랑은 손에 잡히지 않는 뭔가를 잡으려 발버둥 쳤다.잠에서 깨어났을 땐 개운하긴커녕 전보다 더 피곤함을 느꼈다.점심을 다 차려놓은 아주머니는 방문을 두드리며 온하랑에게 밥을 먹으라고 했다침대에서 일어날 힘조자 없었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에게 점심을 방까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입맛이 없었지만 아이를 생각해 대충 배를 채웠다.젓가락을 내려놓은 온하랑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국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핸드폰 너머로 친숙한 벨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가 웬일로 전화했지? 요즘 잘 지내?”“일도 많이 줄었고, 배가 많이 나와서 몸이 힘든 것 말고는 별일 없어. 너는 어때?”“난 아도니스랑 여행 중이야. 지금 바닷가 근처인데 엄청 예뻐.”“좋겠네.”온하랑은 부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여행하는 거 좋아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가자.”“기억해? 우리 졸업하고 나서 같이 여행 가기로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귀국하자마자 연락이 안 될 줄 누가 알았겠어.”“갑자기 귀국한 후로 연락이 안 됐다고?”온하랑은 핵심적인 포인트만 잡았다.“응. 학기 말에 시험 준비 때문에 우리가 연락을 자주 한 편은 아니었어. 시험 끝나면 연락하려고 했는데 그 뒤로 아예 안됐던 거지.”“우리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인지 아직 기억해?”벨라는 기억을 더듬었다.“아마 6월 말이었을걸? 그때 네가 많이 아팠잖아...”온하랑은 의아했다.“내가 아팠다고? 어디가?”“프라이버시 때문에 나도 자세하게 묻지는 못했는데 아마 신장 쪽에 문제가 있었을걸? 호르몬제를 복용해서 살이 엄청 쪘잖아.”BX 그룹에 입사한 후 매년 건강 검
온하랑은 부승민을 좋아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그 남자가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졌다.“갑자기 그런 걸 물어?”벨라가 입을 열었다.“최근에 건강검진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이랑 수다를 떨다가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얘기가 나온 거야. 선생님이 뇌에 남아있던 핏덩이가 없어진 지 오래여서 기억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면 하나둘씩 떠오른다고 해서 물어본 거야.”온하랑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태연하게 핑계를 둘러댔다.“그래? 정말 잘됐다. 또 궁금한 거 있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뭐든지 다 말해줄게.”“친구 하나는 잘 뒀네.”운전하던 진도원이 한마디 덧붙였다.“뭐든지 말만 해.”“내가 필라시에서 연애한 적이 있었나?”벨라는 어리둥절했다.“아니? 넌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어. 널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는데 네가 다 거절했잖아.”“없었다고? 아예?”온하랑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그럼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냐는 말이다.“응. 나한테 엄청 오랫동안 좋아한 사람이 있다고 했어. 그 사람을 포기하기 전까지 다른 남자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했었거든.”“그럼... 나랑 친하게 지낸 남자는 있었어?”“알렉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너랑 자주 연락했을걸? 나중에 너한테 고백했는데 네가 거절했잖아. 알렉스를 제외한 다른 남자는 다 평범한 친구였어.”얘기를 들을수록 온하랑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더 없어? 내가 호감 가진 남자는 아예 없는거야?”“호감 가진 남자?”벨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게 알렉스잖아. 네가 단톡방에서 알렉스한테 방 하나 알아봐달라고 했었거든? 그러고 나서 나랑 같이 방 보러 갔다가 그곳에서 알렉스를 처음 만났는데 소스라치게 놀랐잖아. 사람 잘못 봤다기에는 반응이 너무 이상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네가 좋아하고 있던 그 사람이랑 너무 닮아서 놀란 것 같기도 해.”“나랑 알렉스... 많이 친했어?”“응. 알렉스는 한국인끼리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어. 가끔 파티도 주최하고 서로 도울
온하랑은 모든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때의 온하랑에게 부승민은 어두운 삶을 비춰주는 빛처럼 그녀를 따뜻하게 보살펴줬기에 단지 부승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최동철에게 흔들릴 리가 없다.최동철의 도움을 받았다 한들 고마움을 넘어선 다른 감정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사랑하게 될 일은 더더욱 없었다.만약 그들 사이에 정말 아이가 생겼다면 왜 최동철은 재회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아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까?하지만 최동철이 아니라면 누구일까?벨라의 말에 따르면 현재로선 최동철이 가장 유력하다.마음이 뒤숭숭해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온하랑은 심란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껐다.그해의 일을 회상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수록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다.어젯밤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접한 소식은 충격이지 않을 수가 없다.불과 하루 만에 온하랑은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필라시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부승민의 이복형제인 최동철일 가능성이 크다.신의 장난이 아니고선 정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심지어 누군가 서우현의 핸드폰을 훔쳐 일부러 그 사진들은 온하랑에게 전송했다. 도대체 왜?왜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에 사진을 보내준 걸까?온하랑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팠다.당사자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부승민이 알게 된다면...마냥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부승민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이 사진들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만약 부승민이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헤어짐을 택해야만 한다....부승민은 서정훈을 만나러 서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서정훈은 웃으며 물었다.“단순히 안부만 주고받으려고 찾아오진 않았을 테고... 무슨 일 때문에 온 거니?”부승민은 증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랑이 지금 임신 중입니다. 만에 하나 이런 사진들을 보게 된다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시죠? 어린아이를 상대로 따지고 싶지 않네요. 제 아내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아 이번 한 번만은
겉모습과 달리 사랑에 진심인 부승민을 보며 서정훈은 웃음이 나왔다.“정말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알겠다. 내가 잘 처리하마.”“의원님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얼마 지나지 않아 서상원이 서천우와 함께 찾아왔다.서천우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고 테이블에 놓인 사진을 본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아이는 할아버지의 심문에 못 이겨 모든 일을 사실대로 털어놓았고 부승민의 짐작한 바와 같이 서천우는 이엘리아의 사주를 받았다.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낯선 사람에게 허세를 부리며 협박한 아들의 모습에 서상원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손찌검하며 혼쭐을 냈다.이후 서상원은 부승민 앞에서 이엘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버럭 화를 냈다.전화를 끊은 후에는 부승민에게 사과했고, 서천우를 데리고 온하랑을 찾아가 직접 사죄하겠다고 말했다.부승민은 괜찮다고 말하며 제안을 거절했다.너그러워 보일지 몰라도 실은 온하랑이 이 사진들을 보게 될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이엘리아에 대해서 부승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사람들이 이엘리아를 감쌀수록 윌슨의 조카인 노아의 존재감도 점점 더 커졌다. 손을 잡은 두 사람은 마치 친남매처럼 가깝게 지냈으나 윌슨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을 방치했다.그리고 윌슨이 높이 평가했던 후계자 연도진은 현재 김씨 가문의 회사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참 이상한 구조다.순간 미심쩍은 낌새를 눈치챈 부승민은 알지 못한 배후가 일부러 이런 상황을 조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엘리아와 노아는 현재의 상황을 즐기며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높이 올라갈수록 더 심하게 다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누군가가 자처해 그를 도와 이엘리아를 처리하고 있으니 굳이 나서서 이 좋은 계획을 망칠 필요가 없다....한동안 안정을 취한 온하랑은 그제야 기운을 되찾았다.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사진들이 계속 떠올랐다.차라리 최동철에게 연락해 솔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