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방금 제가 실수한 거였더라고요.”“아, 네...”유모는 서혜민의 잠옷을 흘깃 보았다.상당히 요란하게 노는 스타일 같았다.서혜민은 서재 앞으로 찾아가 문에 두어 번 노크했다.허락을 받자 그녀는 곧장 문을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섰다.“무슨 일이야?”부현승이 고개를 들어 서혜민을 슬쩍 바라보고는 물었다.“다름이 아니라 다음 달이면 우리 엄마 생신이시거든. 그때 나랑 같이 가줄 수 있어?”“그러지, 뭐.”“무슨 선물을 사면 좋을까?”서혜민은 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애썼다. 그 순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부현승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서혜민은 궁금한 마음에 휴대폰 화면을 슬쩍 쳐다보았다. 발신인은 서 비서였다.“네가 알아서 해.”부현승은 서혜민에게 대충 대답하고는 곧장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그래... 알겠어. 지금 바로 갈게.”부현승은 곧장 몸을 일으켜 의자 등받이에 걸쳐둔 겉옷을 집어 들고 말했다.“회사에 일이 좀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네.”서혜민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내일 가면 안 돼?”“급한 일이라 그래. 일찍 쉬어, 나 기다리지 말고.”말을 마친 부현승이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꼭 가야 해? 너희 부이사도 있잖아.”“출장 중이야.”“...”서혜민이 무슨 말을 하든 부현승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그녀는 그저 멍하니 부현승이 문을 열고 홀연히 떠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 물건이나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차에 올라탄 부현승은 점점 불쾌해지는 기분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니었던 부현승은 오늘따라 왠지 이상한 서혜민을 떠올리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눈치챘다.서혜민이 자신과 서수현의 관계를 눈치채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겠나?부현승의 표정이 어두워졌디. 그는 운전 기사에게 회사에 가기 전, 병원에 한 번 들러야겠다고 전했다.그때의 BX 그룹은 일부 부서를
이날 밤, 부현승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그는 서혜민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에 긴급한 일이 있어서 한참 바쁠 것이니 바로 회사에서 쉬겠다고 말했다.부현승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며 약에 취해 있던 짜증도 그녀가 약을 섞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았다.그럴수록 서혜민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집에 돌아오지 않다니... 혹시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간 건가?’그녀는 속으로 서기찬을 욕했다.‘왜 하필 그때 전화가 와서는!’아침이 되어 부현승은 서수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일이 있어 전화를 받지 못한 줄 알았기에 부현승은 반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뒤늦게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그는 서수현의 SNS를 찾아 메시지를 남겼다.오전의 업무가 끝난 후, 부현승은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답장은 없었다.그는 이마를 짚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먼저 나를 의심하게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나를 무시하는 건가?’4학년이라 수업이 적었던 서수현은 두 명의 친구와 함께 그룹 명의로 대학 연합 학과별 경연 대회에 참가해 자신의 경력을 풍부하게 하려 했다.점심시간이 되어 서수현은 도서관 열람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와 문제를 토론하며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서수현 씨.”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서수현은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멀지 않은 기둥 옆에 서 있던 부현승은 그녀가 쳐다보자 성큼성큼 다가갔다.왼쪽에 있던 친구도 부현승을 보고는 팔꿈치로 서수현을 쿡 찌르며 두 사람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매니저님?”서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음, 점심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겠어요?”“무슨 일이신가요? 중요하지 않은 일이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부현승은 서수현의 무미건조한, 심지어 차가운 표정을 보며 살짝 웃고는 그녀의 친구들을 쳐다보았다.그러자 서수현은 친구들에게 먼저 말했다.“너희들 먼저 식당에 가서 치킨가스 하나만
부현승은 서수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럼 강요하지 않을게요. 공부 열심히 해요.”그 말을 끝으로 그는 서수현 곁을 지나 도서관을 떠났다.서수현은 부현승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둘러 식당으로 돌아갔다.이미 두 명의 친구는 자리를 잡아두었고 서수현의 식사까지 준비해두었다.서수현이 자리에 앉자마자 왼쪽에 앉은 친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수현아, 솔직히 말해봐. 그 매니저님이랑 어디까지 간 거야?”그녀는 서수현과 함께 BX 그룹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서수현을 길에서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그 멋진 남자라는 걸 알아챘다.그래서 서수현이 면접을 통과해 입사한 후, 그녀는 서수현이 부현승과 어떤 인연을 맺게 될지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서수현이 인턴십을 마치고 나서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녀는 이 일을 잊어버렸다.그러다 오늘 부현승이 학교에 서수현을 찾아오자 그녀의 호기심이 다시 불타올랐다.오른쪽에 앉은 친구도 서수현과 부현승의 ‘인연'에 대해 듣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서수현을 바라보았다.서수현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오해한 거야. 그분의 아내는 내 사촌 언니야. 그분이 나를 찾아온 건 다른 일 때문이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뭐?”왼쪽에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러니까 네 형부 된다는 소리지? 그럼 됐어.”두 사람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대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이엘리아가 구치소에서 나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누런빛이 돌았으며 몸도 야위어 있어 이전의 화려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자신을 마중 나온 연도진을 보자 이엘리아는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움츠리며 두려움이 서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오빠.”지금 그녀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예전의 오만한 기세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연도진은 그런 이엘리아를 몇 번 훑어보며 말했다.“이엘리아, 가자. 호텔에 가서 정리 좀 해. 내가 저녁 비행기 표를 예약해
필라시 국제공항에서 서희수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마음으로 반 시간을 기다렸다이엘리아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서희수의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이 맺혔다.정성껏 키워온 막내딸이 이토록 큰 고통을 겪을 줄이야.이번 일을 계기로 이엘리아가 교훈을 얻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함부로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다.모녀가 서로를 마주했지만 할 말은 없었다.그러나 곧 서희수는 이엘리아가 돌아온 후, 너무도 위축되고 무기력해진 것을 알아차렸다.윌슨은 지팡이를 짚고 엄한 얼굴로 이엘리아에게 경고했다.“이제부터 필라시에서 얌전히 지내. 어디도 못 가. 다시 문제를 일으키면 네 다리를 부러뜨리고 말 거야.”이엘리아가 말대꾸를 할 줄 알고 미리 준비까지 하고 있던 윌슨은 그녀가 공포에 서린 얼굴로 급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아빠,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앞으로 오빠 말 잘 들을게요. 제발 다시 저를 가두지 마세요. 다시는 그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말을 하면서 이엘리아는 두려움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끔찍한 일을 겪은 듯한 모습이었다.빈센트 윌슨은 잠시 말을 잃었다.“...”서희수는 이엘리아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파 다가가 위로했다.“이엘리아,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여기 있어. 아빠도 네가 잘 되길 바랄 뿐이야.”“엄마...”이엘리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정말 저 다시 가두지 않으시겠죠?”“그래, 네가 말을 잘 들으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걱정 마세요. 꼭 오빠 말 잘 들을게요. 엄마, 오빠한테 말해 주세요. 저한테 화내지 말라고요. 네?”“그렇게 할게. 많이 피곤하지? 이제 들어가서 쉬어라.”“네.”이엘리아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서희수는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카이사르가 도대체 뭘 한 걸까요? 이엘리아가 이렇게 겁에 질려 하다니... 구치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연도진에 대한 불만이 스며들어있었고 아직 보지 못한 김시연까지 원망하게 되었다.빈센트
‘이 모든 것이 내가 이엘리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탓이야...’이엘리아는 서희수의 품에 안겨 흐느끼며 말했다.“엄마, 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어요? 그 안에 있는 동안 정말 무서웠어요... 매일 밤잠도 못 자고 엄마가 나를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왜 안 왔어요...”눈가가 붉어진 채로 서희수가 속삭였다.“미안해... 정말 미안해...”‘이엘리아가 그렇게 오랫동안 구치소에 갇혀 있게 둔 건 내 잘못이야. 조금만 일찍 도진이에게 부탁해 이엘리아를 꺼내오게 했어야 했는데... 내가 안 그랬어.’이엘리아는 흐느끼며 말했다.“난 엄마가 나를 버린 줄 알았어요.”“엄마가 어떻게 너를 버리겠니?”“오빠가 말했어요. 내가 말을 안 들으면 엄마 아빠가 떠난 뒤에 날 집에서 쫓아낼 거라고요...”이 말을 들은 서희수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겉으로는 이엘리아를 달래며 말했다.“오빠가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야. 널 걱정해서 그런 거야.”“정말로요?”“물론이지.”서희수는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확신하지 못했다.그녀는 연도진이 자신들이 떠난 후에도 이엘리아를 잘 돌봐주기를 바랐지만 연도진은 이미 이엘리아에 대해 지친 것처럼 보였다.‘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보상해주려 노력했는데... 여전히 우리에게 특히 이엘리아에게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가? 정말로 그토록 냉혈한 아이인 건가?’필라시에 돌아온 이엘리아는 눈빛이 텅 빈 채로 전신이 생기를 잃어버렸다.이엘리아는 더 이상 외출을 좋아하지 않았고 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고립시켰다.서희수는 이엘리아가 이렇게 있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 함께 쇼핑을 가자고 제안했다.이전의 이엘리아라면 기쁘게 따라나섰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가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고 서희수가 아무리 설득해도 그녀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활발하고 사랑스러웠던 딸이 이렇게 변한 것을 보며 서희수는 깊은 자책감에 빠졌다.빈센트 윌슨은 이엘리아가 심리 치료를 받
이엘리아의 표정을 보며 앨리스는 미소를 지었다.“이제 연기 그만할래?”그러자 이엘리아는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하지만 앨리스는 이 말을 믿지 않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이엘리아, 내가 널 모를 것 같아? 지금 네 마음속엔 오빠에 대한 증오만 가득할 텐데, 맞지?”자기중심적이고 악랄하며 극단적인 성격인 이엘리아가 스스로 반성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절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며 스스로가 억울하다고 여기고 있었다.그래서 복수를 꿈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엘리아가 서희수와 빈센트 윌슨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결국은 그들이 카이사르에게 불만을 가지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앨리스는 확신했다.“뭐야? 오빠 때문에 내 실체를 폭로하겠다는 거야?”이엘리아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고 앨리스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앨리스는 만약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카이사르를 위해 이엘리아를 설득하려고 하면 이엘리아가 자신마저도 해치려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설마 내가 그러겠어?”앨리스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원래라면 앨리스는 이 일을 계기로 이엘리아와 카이사르가 화해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이미 김시연과 결혼해버렸으니 그녀는 더 이상 그와의 관계를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왜서 앨리스는 문제를 일으키려 하는 것일까?”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카이사르에게 그 대가가 무엇인지 톡톡히 보여주려는 것이었다.‘카이사르... 당신은 평생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 거야.’“똑똑하네.”이엘리아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아까 그 말... 오빠가 김시연이랑 결혼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네가 구치소에 있을 때 오빠가 김시연과 강남시에서 결혼식을 올렸어. 그때 알게 된 건데 카이사르 오빠가 진짜 좋아한 사람은 김시연이었지 너나 다른 사람이 아니었어.”이엘리아의 얼굴이 일순간 일그러졌다.‘정말 내 오빠 맞아? 내가 구치소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자기는 결혼할 생각이나
빈센트 윌슨은 서둘러 병원에 도착해 서희수가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재빨리 그녀를 위로했다.서희수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제때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난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우리 딸이,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데, 하마터면... 너무 두려워요...”윌슨은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걱정 마, 다 잘될 거야. 내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당신은 먼저 가서 쉬어. 또 병이라도 날라.”하지만 서희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난 여기서 이엘리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했다.두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응급실 밖의 빨간 불이 꺼졌다.의사가 안에서 나와 마스크를 벗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환자는 이미 응급 처치를 받았습니다. 병원에 아주 제때 도착했어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서희수는 다시 한번 눈물을 쏟아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러자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별말씀을요.”곧 이엘리아는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병실로 옮겨졌다.윌슨은 창백하고 생기 없는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있는 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처음에는 이엘리아의 상태가 연기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접었다.서희수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냈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오랜 시간 병실에서 지켜보던 서희수는 마침내 마음을 다잡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핸드폰을 꺼내 연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윌슨은 고개를 들어 서희수를 바라보고 있었다.서희수는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이번에는 나 말리지 마세요. 내가 반드시 도진이를 불러서 따져야겠어요. 이엘리아가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오빠로서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말이에요. 그리고 도진이의 결혼도 난 절대 허락할 수 없어요!”서희수는 이전에는 김시연을 직접 만나보고 판단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함께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결
연도진이 필라시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부승민은 낯선 이메일을 받았다.이메일을 열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사진 속 여성을 보며 그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고 마우스를 쥐고 있는 손에 갑자기 힘을 들어가며 경직되었다.사진의 배경은 해외의 어느 병원 산부인과로 보였다. 사진 속 여자는 한 손으로 불룩하게 나온 배를 감싸고 다른 손에는 검사 결과지를 들고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여자의 얼굴은 부승민에게 너무나도 익숙했다. 온하랑이였다. 아주 젊은 온하랑, 대략 스무 살 정도로 보였고 풋풋하고 순수한 모습이었다.그녀는 몸매가 여전히 가늘고 가녀렸지만 배는 유독 부풀어 올라 힘들어 보였다.부승민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이 일을 잊으려 할 때마다 누군가가 항상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괴롭혔다.‘도대체 누가 이 일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누가 그토록 나와 온하랑이 잘 지내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그 답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이 사진을 보내온 사람이 단순히 부승민을 화나게 하려고 이 사진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했다.얼마 후, 그 사람은 또 다른 이메일을 보냈다.[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리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나요? 11월 4일, 필라시 헨리 호텔 0302호로 오세요. 기회는 이때뿐입니다.]이메일에는 두 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첫 번째 사진에는 온하랑이 병원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녀의 배는 이미 납작해져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는 간호사가 갓 태어난 듯한 작은 남자아이를 안고 목욕시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부승민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졌다.그는 이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부선월이라고 생각했다.전에 부승민은 부선월이 필라시에서 온하랑을 몇 번 목격하고 그저 사진 몇 장을 찍었을 뿐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이제 이 사진은 온하랑이 출산을 한 병실에서 찍은 것이 명백했다.그리고 아이는 분명히 이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 인도되었을 것이다.깨어나 아이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