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연도진을 바라보았다.“내가 몇 가지만 물어볼게.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대답해줘.”“네가 묻는 거라면 내가 아는 선에서 다 대답해줄게.”연도진의 미소에는 김시연의 비위를 맞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김시연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아는 선에서 다 대답해주겠다고?그럼 그 전엔 뭐 했는데?“7년 전에 너 데려갔던 그 사람, 이엘리아 아빠야?”“맞아.”“그 사람이 너 입양한 거야?”그래서 이엘리아의 오빠가 된 건가?연도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그 사람이 내 친아빠야... 그때 그 사람이 날 찾은 다음에야 알았어. 사실은 내가 아빠로 알고 있던 사람이 날 입양했었다는 걸.”“그럼, 이엘리아가 네 친여동생이라는 뜻이야?”김시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김시연의 눈을 마주친 연도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맞아.”“왜 굳이 나한테까지 네 정체를 숨긴 거야?”“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어. 그냥 너한테 익숙한 연도진이라는 사람으로 너랑 다시 만나 천천히 얘기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랑 이엘리아의 사이가 점점 안 좋아지고 그 악감정이 가족한테까지 미치는 걸 보면서 네가 내 정체를 아는 게 두려워졌어. 나랑 아예 연을 끊으려고 할까 봐.”“시아는 네가 누군지 알잖아. 그래서 결혼식 때도 마침 필라에 있었던 거고. 그럼 네 가족이랑은 이미 얘기 끝났던 거야?”“...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그래서, 시아가 돌아왔을 때 굳이 H 시로 출장 갔던 건? 그것도 다 계획되어 있던 거였어?”“응.”“네가 누구인지 언젠가는 밝혀질 테니까 H 시에 있을 때 갑자기 7년 전에 날 떠났던 이유를 알려줬던 거구나. 이것도 설마 다 네가 계획했던 거였니? 내가 굳이 안 물어봤어도 먼저 나한테 얘기해줄 거였어?”“응.”“어차피 알게 될 사실인데 왜 먼저 말 안 해줬어? 미리 말하고 나한테 용서를 구했으면 됐잖아.”“사실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도, 시아가 먼저 폭로할까 봐 얘기해준
“내 질문은 여기서 끝이야, 연도진 씨. 아니, 윌슨 씨.”김시연은 무미건조한 대답만을 남긴 채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연도진은 깊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그래도 당장 계약을 파기하고 이 집에서 연도진을 쫓아내지는 않았으니 다행인 걸까?“시연아, 점심 뭐 먹고 싶어? 내가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려볼게.”“입맛 없어, 안 먹어!”“...”...온하랑은 부시아와 함께 다이닝룸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웃고 떠들 기분이 아니었던지라 조용히 식사를 마쳤고 온하랑은 부시아를 더원파크힐까지 데리고 갔다.오늘 휴무였던 부승민은 서재에서 개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아빠, 저 왔어요.”부승민은 하던 일을 바로 멈추고 대답했다.“들어와.”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숙모는? 갔어?”“네!”부시아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숙모 화났어요. 외삼촌이 시연 아줌마 남편인 거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안 알려줬다고.”부승민은 부시아의 말에 당황한 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럼 지금이라도 따라가야지, 어떻게든 사과를 해야 하니까.”“핑계잖아요. 제가 보기에 아빠는 그냥 숙모가 보고 싶은 것 같은데요.”“맞아, 아빠는 지금 숙모가 보고 싶어. 그러니까 전 집에서 도우미 할머니 말 잘 들어야 해.”부승민이 아이에게 당부하며 방문을 나섰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이내 부승민의 걸음이 멈추었다.온하랑은 문 옆의 벽에 딱 달라붙어 입술을 꽉 깨문 채 부승민을 보며 웃고 있었다.부시아 이 계집애가 진짜!“왜 안 들어와?”부승민이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온하랑의 손을 잡아 서재 안으로 이끌자 부시아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온하랑은 소파에 앉으며 등을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평온한 표정으로 손톱을 만지작댔다.“난 지금 네 죄를 물으러 온 거야!”부승민은 온하랑의 입에서 나올 말을 짐작했는지 부시아에게 시선을 옮겼다.부시아
부승민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왜 억지야?”온하랑이 대답했다.“시연이가 도진 씨 정체를 일주일이나 늦게 알았잖아!”그 일주일은 김시연이 마침 연도진과 함께 H 시로 떠났을 때였다. 출장이라고는 했지만 신혼여행에 가까웠는데 어떻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만약 김시연이 일주일 먼저 알게 됐다면 망설임 없이 연도진을 뻥 차버렸을 것이다. 그 일주일 동안 서로에게 깊어져 지금 김시연은 그저 망설이는 입장이 되어버렸지 않나?출장을 갔다 오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라는 사실을 연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곧 어떤 짓을 할 게 뻔했다.어쩌면 H 시에 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진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싹틔웠을지도 몰랐다.“만약 정말 연도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언제 알게 되든 결과는 똑같을 거야. 하지만 연도진을 좋아한다면 조금 더 일찍 알았다고 해도 연도진의 공세에 언젠가 타협하고 말겠지. 네가 봤을 땐, 시연 씨가 연도진 좋아하는 것 같아?”“...”연도진이 먼저 계약 결혼을 제안했을 때,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표정으로부터 뻔히 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김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연도진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로 미루어 봤을 때, 마음속으로는 분명 좋아하고 있는 게 맞았다.온하랑은 답답한 기분에 한숨을 푹 내뱉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어?! 도진 씨가 이엘리아 친오빠라니. 시연이가 분명 도진 씨는 혼혈이 아니라고 했단 말이야.”“듣기로는 예전에 서씨 가문 안주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나서 윌슨 부인이 임신한 몸으로 한 살밖에 안 된 연도진을 끌어안고 강남으로 왔다고 하더라. 힘들었는지 그때 조산을 하게 됐는데 하필이면 병원에 불이 나서 그러다가 연도진을 잃어버렸대. 그렇게 연도진은 강남에서 농부한테 입양됐지.”온하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윌슨 부인이 출산한다고 해도 서 씨 가문의 회사를 이어받을 사람인데 연도진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리도 없잖아. 그런데 그냥 잃어버렸다고? 게다가 병원은 왜 하필 그때
“시연이 남편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진짜 너무 부럽다!”“냄새 좀 맡아봐. 분장실이 아주 그냥 커플들 냄새로 진동을 한다.”“시연아, 결혼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촬영팀 합류해도 돼? 남편이 뭐라 안 해?”“바보냐? 진짜 뭐라 하고 싶었으면 꽃을 보냈겠어?”“...”김시연은 자신과 연도진의 관계를 외부인들에게 알리기도 싫었고 연도진의 체면을 살려줄 마음도 없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연도진이 보내준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박아버린 김시연은 그 사진을 찍어 연도진에게 전송했다.하지만 연도진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이튿날, 김시연은 또 꽃다발을 받았다.꽃의 종류는 달랐지만 신선한 꽃들이 만개한 것이 여전히 아름다웠다.꽃다발 가운데는 여전히 엽서 한 장이 꽂혀있었다. 엽서에 적힌 내용도 어제와 같았고 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김시연은 또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그녀는 또다시 기회를 엿봐 꽃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사진을 찍어 연도진에게 전송했다.연도진은 여전히 답장이 없었지만 꽃다발은 계속해서 배송되었다.꽃다발이 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동료들의 반응도 점점 식어갔다.“시연아, 남편이 너무 잘 해주는 거 아니야? 드라마 종영할 때까지 계속 보내주려는 건 아니겠지?”호텔로 돌아온 김시연은 연도진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이제는 꽃다발 보내지 마. 정말 그렇게 주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돈으로 줘.”“...”이튿날, 일을 마친 김시연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연도진에게서 9만 9천 6백 원이 입금되어있었다. 그리고 추가요청사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나의 예술가에게(내가 주고 싶어서)’산부인과 정기검진 날이 되자 부승민은 온하랑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온하랑의 눈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수현 씨?”그 소리에 서수현이 고개를 돌려 조금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온하랑의 아랫배를 바라보며 말했다.“하랑 씨? 정기 검진받으러 오셨구나. 축하
다음날 오전, 부승민은 부시아와 함께 온하랑을 데리고 부현승의 집으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하랑은 서수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서수현이 말했다.“하랑 씨, 죄송한데 지금 어디 계세요? 혜민이 집에 도착하셨어요?”온하랑은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아니요, 아직이요. 지금 봉천로 쪽인데, 무슨 일이세요?”“제가 탄 택시가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요. 경인로랑 신림로 교차로 쪽에 있거든요. 지금 다른 택시를 탈 수가 없는 상황이라 같은 방향인데 저 좀 태워주실 수 있나 해서요.”서수현이 있는 위치는 온하랑이 부현승의 집으로 가기 위해 꼭 지나야만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굳이 먼 길로 돌아갈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지금 큰아버지랑 같이 계세요?”“저 혼자예요. 아버지는 오늘 같이 못 오신대요.”“알겠어요.”온하랑은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그럼 거기서 잠깐 기다리실래요? 저희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거든요.”“다행이네요. 고마워요, 하랑 씨.”웃으며 전화를 끊은 서수현의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만약... 만약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서혜민은 파티장에서 절대 자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서수현이 파티 현장에 나타난다고 해도 서혜민의 아이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니 서수현은 꼭 온하랑과 함께 가야만 했다.15분 정도가 지나자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서수현 앞에 멈춰 섰다.뒷좌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온하랑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수현 씨, 타요.”서수현은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부승민을 발견하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네.”온하랑, 부승민과 부시아는 뒷좌석에 앉았고 서수현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부현승과 서혜민은 한 층에 한 집뿐인 고급 아파트의 20층에서 살고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부현승은 온하랑과 부시아가 손을 잡고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 두 사람의 뒤로 부승민도 함께 등장했다.부현승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부시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형,
“...”서명철이 먼저 아이를 언급하며 서수현의 뜻대로 행동했다.“거참 잘된 일이네요. 요즘에 예쁘고 잘생긴 거 마다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기 지금 깨어있나요? 가서 보고 싶은데.”“지금은 안 자고 있을 겁니다.”부현승이 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안방은 저쪽이에요.”또 한 명의 손님이 집으로 방문하자 부현승은 부승민과 함께 손님맞이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서수현은 주위를 쓱 둘러보다가 온하랑이 기품 있는 한 중년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 여인이라면 서혜민과 부현승의 결혼식장에서 본 적이 있었다. 부현승의 어머니였다.그때는 멀리서만 보고 자신이 사는 집의 집주인 아줌마와 닮았다고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더 닮은 것 같았다.서수현이 그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하랑 씨.”온하랑과 안미영의 시선이 일제히 서수현에게로 향했다.안미영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수현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니?”“아줌마, 정말 아줌마셨네요.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잖아요!”서수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 혜민이랑 제 조카 보러 왔죠.”안미영은 서수현의 성씨를 떠올려보더니 뒤늦게 서혜민과 서수현이 친척 사이라는 것을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거긴 하랑이랑 같이 가면 되겠네. 난 계속 손님 맞이해야 해서.”“네, 알겠어요.”서수현은 그렇게 온하랑과 함께 안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어준 것은 서혜민의 엄마인 정은경이었다.서수현은 정은경을 마주하자마자 인사를 건넸다.“숙모, 안녕하세요.”“수현이 왔구나.”그 말을 들은 서혜민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서수현이 여긴 왜 왔지?설마...“혜민이랑 아이 보러 왔어요.”온하랑을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던 정은경은 그녀가 부씨 가문 쪽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고 웃으며 대답했다.“들어와요.”“언니, 아가씨.”서혜민이 웃는 얼굴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서수현은 서혜민의 표정을 보며 은근슬쩍 책임을 물었다.“혜민아, 내 조카한테 이렇게 큰 행사가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
온하랑이 자신의 아랫배를 가볍게 문지르며 뭐라도 배우려는 듯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준서는 지금 모유랑 분유 섞어서 먹고 있는 건가요?”정은경이 입을 열려던 그때 서혜민이 먼저 입을 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렇게 먹이는 게 아이랑 엄마한테 다 좋다고 들어서요.”서수현은 서혜민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발견하고 일부러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너무 이른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 보니까 보통 6개월은 지나고 나서 분유 먹이던데.”“다 상황이 다르잖아. 이래도 문제없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서혜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싸늘해지더니 더는 이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을 비쳤다.정은경이 급히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고 서수현도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리며 방금 한 질문이 별 의미 없었던 것인 양 행동했다.하지만 온하랑은 그 가운데서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모유에는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분과 면역 성분들이 들어있어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최적의 음식이었다. 아무리 분유를 모유처럼 만들었다고 해도 결국 모유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하는 법이다.게다가 부준서는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였던 탓에 태어난 후에도 인큐베이터에 며칠 동안 머물며 보살핌을 받았고 지금도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말라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모유 수유가 분유보다 좋은 게 인지상정인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분유만 먹이기 시작했을까?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잠깐 스쳤지만 온하랑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아마도 서혜민이 아이에게 먹이는 분유가 모유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비싸고 영양성분도 가득한 것이리라 생각했다.11시쯤 되자 손님들은 덕만각으로 이동해 파티를 시작했다.서수현은 밥을 먹으면서도 안미영의 동향을 살폈다.파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서수현은 안미영이 화장실 쪽으로 이동하는 걸 바라보았다.그녀는 곧장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두 사람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았다.안미영이 웃으며 물었다.“수현아, 오늘 음
안미영은 초반에 이 모든 일이 다 서혜민이 뭔가를 숨기기 위해 꾸민 것이 아닐까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그 생각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친자확인 검사로 이 아이가 정말 부현승의 아이가 맞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아이가 몇 시에 태어났는데요?”안미영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대답해주었다.“저녁 7시.”서수현이 출산한 지 4시간이 지난 후였다.서수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왜 서혜민이 조산을 했던 걸까? 그것도 하필 부씨 가문 사람이 없을 때.왜 젖이 나오지 않는 걸까?그야 서혜민이 낳은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비록 실질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이 모든 이상한 점들이 서수현에게 서혜민이 안고 있는 아이가 사실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했다.병원에서는 서수현에게 그녀의 아이가 사산되었다고 얘기해주었지만 그저 봉투만 살짝 열어 아이를 보여주었다.하지만 그 아이가 꼭 서수현의 아이일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출산 전, 모든 검사가 순조로웠다.서수현이 실수로 넘어졌을 때, 그녀는 곧바로 구급차를 불러 제때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 도착 골든타임도 늦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구급차에 함께 올라탄 의사와 간호사가 차 안에서 그녀의 출산을 도와주었을 것이다.서혜민은 서수현의 임신 사실을 언제 알게 된 걸까?그리고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그 아이는 애초에 부씨 가문의 아이가 아니었다. 언젠가 부현승에게 들킬 것이 두렵지도 않았던 걸까?안미영은 멍하니 있는 서수현의 모습을 보며 물었다.“수현아, 내가 너무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했니?”안미영과 서혜민은 단순히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였지만 서수현과 서혜민은 함께 자라온 사촌 사이었다.안미영은 서수현이 서혜민에게 이 이야기를 할지 말지에 대해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서수현이 자신을 심술궂은 시어머니로 볼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그럴 리가요? 혜민이가 실수한 건 맞지만 아이는 무사하잖아요. 잘 먹이고 잘 키운다면 분명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