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승민이 입을 열려던 참에 부시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다.“아빠도 나빠요. 어떻게 숙모랑 시연 이모를 속일 수 있죠?”“그래서 지금 시아한테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잖아.”부승민은 웃으며 답했다.“그럼 제가 숙모랑 시연 이모한테 얘기할까요?”한참을 생각하던 부시아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괜히 제가 얘기해서 두 사람이 이혼하면 어떡해요?”“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아빠,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부시아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외삼촌을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부드럽고 상냥한 모습에서 좋은 사람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이상한 이엘리아와 달리 부시아는 김시연을 무척이나 좋아했다.‘시연 이모랑 찍은 중학교 때 사진을 지금까지 배경 화면으로 했다는 건 이모를 엄청 좋아하고 있다는 뜻인데... 잘못은 이엘리아 아줌마가 했잖아. 그런데 왜 외삼촌이 벌을 받는 거지?’부시아는 김시연도 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될 텐데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해쳤던 사람의 오빠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난 이제 어떡해야 하지?’부승민은 입꼬리를 올리며 놀렸다.“아빠를 나쁘다고 하던 게 누구였지?”부시아는 눈치를 살피더니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부승민은 이 일에 부시아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졌다면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릴 게 분명하니까.이걸 감당해야 할 사람은 부시아가 아닌 어른들이다.“시아는 착한 어린이니까 아무한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거지?”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아빠는 외삼촌이랑 시연 이모 사이에 시한폭탄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그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야. 하지만 시연 이모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면 더 괴롭지 않을까?”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시연 이모가 스스로 모든 걸 알게 도와주는 거야.”“어떻게요?”부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일단은...”
부시아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연도진은 아무것도 모른척하는 부시아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다.고개를 숙여 부시아를 바라보자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온하랑과 부시아를 데리고 별장 투어를 마친 김시연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지루하니 영화를 보는 게 어떠냐며 제안했다.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김시연은 도우미에게 과일과 간식거리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그렇게 네 사람은 소파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봤다.김시연은 계속 연도진만 바라보는 부시아가 귀여운 듯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시아야, 왜 계속 이모부만 쳐다봐?”부시아는 입안에 있던 용과를 꿀꺽 삼키고선 입을 열었다.“이모부가 우리 외삼촌이랑 엄청 닮았어요.”연도진은 흠칫 놀랐으나 애써 무덤덤하게 부시아를 바라봤다.부시아의 외삼촌은 이엘리아의 오빠이자 그녀를 데리고 번지점프 하러 갔던 그 남자다.“그래?”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지 김시연은 대뜸 연도진을 째려봤다.“우리 삼촌은 혼혈인데 엄청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요.”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성격이 좋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최대한 아이의 모든 말에 호응했다.‘번지점프 하러 데려간 그 인간이 성격이 좋을 리가 없지.’연도진이 예전에 했던 말처럼 어린아이와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바뀌는 사람이 종종 있기 마련이다.영화가 시작되고 다들 줄거리에 대해 논의하던 중 부시아는 영화 속의 남자 주인공이 삼촌이랑 매우 닮았다며 또다시 언급했다.차분한 표정과 달리 김시연은 온하랑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챘으면 하는 눈치였다.‘애를 잘못 키운 거 아니야? 시아가 그쪽 집안사람을 자주 만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봐봐, 애가 정신을 못 차리네.’부시아의 의도가 뭔지 알아챈 연도진은 전화를 받는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우더니 떠나기 전 부시아에게 눈빛을 보냈다.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부시아가 나오지 않자 자기 뜻을 이해하지 못한 줄 알고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짧은
부시아의 언성이 살짝 높아졌다.“그러니까 제 말은, 아저씨가 제 외삼촌이라고요!”아이의 말에 김시연과 온하랑의 시선이 모두 부시아에게 향했다.온하랑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시아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두 사람을 바라보던 부시아의 목소리가 어딘가 약해졌다.“아저씨가 외삼촌이고 외삼촌이 아저씨라고요.”김시연이 대꾸했다.“그게 말이 돼? 내가 분명 너희 외삼촌 목소리를 들어봤는데...”“그건 진짜 저희 외삼촌 목소리가 아니에요. 연도진이 진짜 제 외삼촌이라고요... 결혼식 날부터 의심스러웠는데 확신은 못 했어요. 그래서 직접 와서 보고 싶었던 거예요.”부시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시연 아줌마, 아저씨 여권 본 적 있어요? 여권 본명 보면 카이사르 윌슨이라고 돼 있을 거예요.”연도진은 강남으로 올 때 국적을 바꿔버렸다. 그렇게 지금 그에게는 M 국의 여권과 Z 국의 임시 거주증만 갖고 있었다.아이의 말에 온하랑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김시연을 바라보았다.연도진의 영어 이름이 카이사르인 것쯤은 온하랑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연도진이 자신처럼 그저 해외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 그 뒤에 윌슨이라는 성까지 함께 붙어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김시연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그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그녀도 연도진에게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신혼집 계약을 할 때도 김시연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했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하지만 김시연은 연도진의 여권도 본 적이 없었다.이것저것 떠올려보던 김시연은 점점 부시아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도진은 이미 모든 것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김시연의 앞에서 이엘리아의 친오빠를 칭찬한다든가 하던 것도 사실은 본인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이엘리아가 김시연을 납치했다가 경찰서에 잡혀들어갔을 때도 연도진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었다.“연도진, 내가 이런 수모를
김시연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연도진을 바라보았다.“내가 몇 가지만 물어볼게.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대답해줘.”“네가 묻는 거라면 내가 아는 선에서 다 대답해줄게.”연도진의 미소에는 김시연의 비위를 맞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김시연이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아는 선에서 다 대답해주겠다고?그럼 그 전엔 뭐 했는데?“7년 전에 너 데려갔던 그 사람, 이엘리아 아빠야?”“맞아.”“그 사람이 너 입양한 거야?”그래서 이엘리아의 오빠가 된 건가?연도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했다.“그 사람이 내 친아빠야... 그때 그 사람이 날 찾은 다음에야 알았어. 사실은 내가 아빠로 알고 있던 사람이 날 입양했었다는 걸.”“그럼, 이엘리아가 네 친여동생이라는 뜻이야?”김시연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김시연의 눈을 마주친 연도진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맞아.”“왜 굳이 나한테까지 네 정체를 숨긴 거야?”“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어. 그냥 너한테 익숙한 연도진이라는 사람으로 너랑 다시 만나 천천히 얘기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랑 이엘리아의 사이가 점점 안 좋아지고 그 악감정이 가족한테까지 미치는 걸 보면서 네가 내 정체를 아는 게 두려워졌어. 나랑 아예 연을 끊으려고 할까 봐.”“시아는 네가 누군지 알잖아. 그래서 결혼식 때도 마침 필라에 있었던 거고. 그럼 네 가족이랑은 이미 얘기 끝났던 거야?”“...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내 손바닥 안에 있으니까.”“그래서, 시아가 돌아왔을 때 굳이 H 시로 출장 갔던 건? 그것도 다 계획되어 있던 거였어?”“응.”“네가 누구인지 언젠가는 밝혀질 테니까 H 시에 있을 때 갑자기 7년 전에 날 떠났던 이유를 알려줬던 거구나. 이것도 설마 다 네가 계획했던 거였니? 내가 굳이 안 물어봤어도 먼저 나한테 얘기해줄 거였어?”“응.”“어차피 알게 될 사실인데 왜 먼저 말 안 해줬어? 미리 말하고 나한테 용서를 구했으면 됐잖아.”“사실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도, 시아가 먼저 폭로할까 봐 얘기해준
“내 질문은 여기서 끝이야, 연도진 씨. 아니, 윌슨 씨.”김시연은 무미건조한 대답만을 남긴 채 몸을 돌려 위층으로 향했다.“...”연도진은 깊은 한숨만 푹 내쉬었다.그래도 당장 계약을 파기하고 이 집에서 연도진을 쫓아내지는 않았으니 다행인 걸까?“시연아, 점심 뭐 먹고 싶어? 내가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려볼게.”“입맛 없어, 안 먹어!”“...”...온하랑은 부시아와 함께 다이닝룸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웃고 떠들 기분이 아니었던지라 조용히 식사를 마쳤고 온하랑은 부시아를 더원파크힐까지 데리고 갔다.오늘 휴무였던 부승민은 서재에서 개인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두어 번 들렸다.“아빠, 저 왔어요.”부승민은 하던 일을 바로 멈추고 대답했다.“들어와.”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숙모는? 갔어?”“네!”부시아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숙모 화났어요. 외삼촌이 시연 아줌마 남편인 거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안 알려줬다고.”부승민은 부시아의 말에 당황한 듯한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럼 지금이라도 따라가야지, 어떻게든 사과를 해야 하니까.”“핑계잖아요. 제가 보기에 아빠는 그냥 숙모가 보고 싶은 것 같은데요.”“맞아, 아빠는 지금 숙모가 보고 싶어. 그러니까 전 집에서 도우미 할머니 말 잘 들어야 해.”부승민이 아이에게 당부하며 방문을 나섰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 이내 부승민의 걸음이 멈추었다.온하랑은 문 옆의 벽에 딱 달라붙어 입술을 꽉 깨문 채 부승민을 보며 웃고 있었다.부시아 이 계집애가 진짜!“왜 안 들어와?”부승민이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온하랑의 손을 잡아 서재 안으로 이끌자 부시아의 장난기 어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온하랑은 소파에 앉으며 등을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평온한 표정으로 손톱을 만지작댔다.“난 지금 네 죄를 물으러 온 거야!”부승민은 온하랑의 입에서 나올 말을 짐작했는지 부시아에게 시선을 옮겼다.부시아
부승민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왜 억지야?”온하랑이 대답했다.“시연이가 도진 씨 정체를 일주일이나 늦게 알았잖아!”그 일주일은 김시연이 마침 연도진과 함께 H 시로 떠났을 때였다. 출장이라고는 했지만 신혼여행에 가까웠는데 어떻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만약 김시연이 일주일 먼저 알게 됐다면 망설임 없이 연도진을 뻥 차버렸을 것이다. 그 일주일 동안 서로에게 깊어져 지금 김시연은 그저 망설이는 입장이 되어버렸지 않나?출장을 갔다 오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이라는 사실을 연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곧 어떤 짓을 할 게 뻔했다.어쩌면 H 시에 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진짜 서로에 대한 감정을 싹틔웠을지도 몰랐다.“만약 정말 연도진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언제 알게 되든 결과는 똑같을 거야. 하지만 연도진을 좋아한다면 조금 더 일찍 알았다고 해도 연도진의 공세에 언젠가 타협하고 말겠지. 네가 봤을 땐, 시연 씨가 연도진 좋아하는 것 같아?”“...”연도진이 먼저 계약 결혼을 제안했을 때,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표정으로부터 뻔히 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김시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연도진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로 미루어 봤을 때, 마음속으로는 분명 좋아하고 있는 게 맞았다.온하랑은 답답한 기분에 한숨을 푹 내뱉었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어?! 도진 씨가 이엘리아 친오빠라니. 시연이가 분명 도진 씨는 혼혈이 아니라고 했단 말이야.”“듣기로는 예전에 서씨 가문 안주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나서 윌슨 부인이 임신한 몸으로 한 살밖에 안 된 연도진을 끌어안고 강남으로 왔다고 하더라. 힘들었는지 그때 조산을 하게 됐는데 하필이면 병원에 불이 나서 그러다가 연도진을 잃어버렸대. 그렇게 연도진은 강남에서 농부한테 입양됐지.”온하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윌슨 부인이 출산한다고 해도 서 씨 가문의 회사를 이어받을 사람인데 연도진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리도 없잖아. 그런데 그냥 잃어버렸다고? 게다가 병원은 왜 하필 그때
“시연이 남편이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진짜 너무 부럽다!”“냄새 좀 맡아봐. 분장실이 아주 그냥 커플들 냄새로 진동을 한다.”“시연아, 결혼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촬영팀 합류해도 돼? 남편이 뭐라 안 해?”“바보냐? 진짜 뭐라 하고 싶었으면 꽃을 보냈겠어?”“...”김시연은 자신과 연도진의 관계를 외부인들에게 알리기도 싫었고 연도진의 체면을 살려줄 마음도 없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연도진이 보내준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박아버린 김시연은 그 사진을 찍어 연도진에게 전송했다.하지만 연도진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이튿날, 김시연은 또 꽃다발을 받았다.꽃의 종류는 달랐지만 신선한 꽃들이 만개한 것이 여전히 아름다웠다.꽃다발 가운데는 여전히 엽서 한 장이 꽂혀있었다. 엽서에 적힌 내용도 어제와 같았고 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김시연은 또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그녀는 또다시 기회를 엿봐 꽃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사진을 찍어 연도진에게 전송했다.연도진은 여전히 답장이 없었지만 꽃다발은 계속해서 배송되었다.꽃다발이 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동료들의 반응도 점점 식어갔다.“시연아, 남편이 너무 잘 해주는 거 아니야? 드라마 종영할 때까지 계속 보내주려는 건 아니겠지?”호텔로 돌아온 김시연은 연도진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이제는 꽃다발 보내지 마. 정말 그렇게 주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돈으로 줘.”“...”이튿날, 일을 마친 김시연이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연도진에게서 9만 9천 6백 원이 입금되어있었다. 그리고 추가요청사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나의 예술가에게(내가 주고 싶어서)’산부인과 정기검진 날이 되자 부승민은 온하랑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복도에서 휴식을 취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온하랑의 눈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수현 씨?”그 소리에 서수현이 고개를 돌려 조금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온하랑의 아랫배를 바라보며 말했다.“하랑 씨? 정기 검진받으러 오셨구나. 축하
다음날 오전, 부승민은 부시아와 함께 온하랑을 데리고 부현승의 집으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온하랑은 서수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의 서수현이 말했다.“하랑 씨, 죄송한데 지금 어디 계세요? 혜민이 집에 도착하셨어요?”온하랑은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아니요, 아직이요. 지금 봉천로 쪽인데, 무슨 일이세요?”“제가 탄 택시가 지금 교통사고가 나서요. 경인로랑 신림로 교차로 쪽에 있거든요. 지금 다른 택시를 탈 수가 없는 상황이라 같은 방향인데 저 좀 태워주실 수 있나 해서요.”서수현이 있는 위치는 온하랑이 부현승의 집으로 가기 위해 꼭 지나야만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굳이 먼 길로 돌아갈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지금 큰아버지랑 같이 계세요?”“저 혼자예요. 아버지는 오늘 같이 못 오신대요.”“알겠어요.”온하랑은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그럼 거기서 잠깐 기다리실래요? 저희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거든요.”“다행이네요. 고마워요, 하랑 씨.”웃으며 전화를 끊은 서수현의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만약... 만약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서혜민은 파티장에서 절대 자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할 것이다.서수현이 파티 현장에 나타난다고 해도 서혜민의 아이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니 서수현은 꼭 온하랑과 함께 가야만 했다.15분 정도가 지나자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서수현 앞에 멈춰 섰다.뒷좌석 창문이 내려가더니 온하랑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수현 씨, 타요.”서수현은 그녀의 등 뒤로 보이는 부승민을 발견하자마자 침을 꿀꺽 삼켰다.“네.”온하랑, 부승민과 부시아는 뒷좌석에 앉았고 서수현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부현승과 서혜민은 한 층에 한 집뿐인 고급 아파트의 20층에서 살고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부현승은 온하랑과 부시아가 손을 잡고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 그 두 사람의 뒤로 부승민도 함께 등장했다.부현승은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부시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