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요. 그럼 원흥거리 입구에 있는 찻집에서 만나요.”하정혜는 전화를 끊은 뒤, 이한명에게 OK사인을 보냈다.이한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가서 하정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얼굴이 예쁘니까 일이 착착 풀리네.”한편, 경비실을 나온 한지훈은 그 길로 마케팅부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마주 오던 여자와 부딪혔다. 여자의 부드러운 살결이 팔뚝에 닿자 한지훈도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괜찮아요?”그가 다급히 물었다.이안영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어색하게 말했다.“네, 괜찮아요.”말을 마친 그녀는 한지훈을 지나쳐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한지훈은 도망치듯 현장을 벗어나는 그녀를 보고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오후 네 시쯤 되었을 때, 회의실에서 사람들이 나왔는데 저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지훈 씨, 리양에서 투자를 철회하기로 했다던데 사실일까요?”장신혁이 한지훈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한지훈이 물었다.“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장신혁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고는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아는 동창이 리양제약에서 출근하는데 오늘 긴급 회의를 소집하더니 도영그룹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기로 했대요.”그 말을 들은 한지훈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송경림 이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결국 해냈네.’도설현은 아마 지금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것 같았다.좀 도와줄까?한지훈은 이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로 가서 이한승에게 전화를 걸었다.“S시에 있는 도영그룹에 투자 좀 합시다.”“네, 회장님.”이한승은 공손히 대답하고 전문가를 섭외해서 도영그룹에 대해 분석했다.모든 일을 마친 뒤, 한지훈은 그 길로 퇴근했다.집으로 돌아오자 강우연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지훈 씨, 오늘 백 선생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지훈 씨도 같이 가요.”한지훈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백 선생이랑 약속을 잡았다고?”그럴 리가 없었다.용이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용이가 깜빡하고 보고를 안
그들은 2층에 있는 별실로 약속을 잡았다. 너무 비싼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구려도 아니었다.강우연이 소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적절한 곳을 고른 것이다.별실로 들어간 두 사람은 먼저 자리에 앉았다. 강우연은 많이 긴장한 얼굴로 손에 진땀을 쥐고 있었다.한지훈은 담담한 얼굴로 옆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는 대체 누구일까 고민했다.“지훈 씨, 백 선생이 오시면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강우연이 물었다.한지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긴장할 거 없어. 아무거나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되지.”잠시 후,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그런데 백 선생이랑은 어떻게 연락된 거야?”강우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먼저 연락한 게 아니고 백 선생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백 선생이 당신에게 먼저 연락했다고?”한지훈은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강우연이 물었다.한지훈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싸늘하게 말했다.“뭔가 좀 수상하지 않아?”강우연은 흠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뭐가 수상해요? 지훈 씨 요즘 너무 예민한 거 아니에요?”“상대의 신분이 가짜일 수도 있잖아.”한지훈이 말했다.그 말에 강우연이 인상을 찌푸리더니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이따가 백 선생 오시면 절대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지 말아요. 백 선생이 어떤 분인데 누가 감히 그런 분을 사칭하고 다니겠어요?”“잊었어? 박 대사도 오관우가 데려온 사람이 사칭한 거였잖아.”한지훈이 말했다.강우연은 착잡한 얼굴로 잠시 고민하다가 단정짓듯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 없어요.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아요.”이때, 별실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이 기세등등하게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의 뒤로 하얀 정장을 입은 젊은 남자가 가면을 쓴 채로 안으로 들어왔다.걸음걸이나 손짓 하나하나에서 품위와 권위가 느껴지는 사람이었다.‘저놈이군!’한지훈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놈의 가면을 찢어버리고 싶
백 선생이란 작자가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한지훈은 놈의 걸음걸이나 눈빛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 뱀 같은 눈이 강우연의 몸을 이리저리 훑고 있었고 뒤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보아하니 당일치기로 고용한 배우 같았다.그들은 경호원이 어디 위치에 서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전문 경호원으로 일한 적 없다는 것이 티가 날 정도였다.‘뭐야? 시시한 놈들이었잖아?’백 선생이란 작자는 가면 너머로 싸늘하게 강우연 옆의 한지훈을 노려보더니 물었다.“강우연 씨, 이분은 누구시죠?”강우연은 다급히 한지훈을 소개했다.“이쪽은 제 남편 한지훈 씨에요. 백 선생께는 고마운 일도 많고 해서 제가 같이 오자고 했어요.”그 말을 들은 백 선생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한지훈을 향해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냈다.“남편이었군요. 오늘은 강우연 씨랑 둘이서 얘기나 할 겸 같이 식사하는 줄 알고 왔는데 내 입장에서는 좀 서운하군요.”한지훈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강우연의 얼굴도 순간 굳었다.“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네요. 하지만 이미 남편과도 얘기된 사안이라….”“해명은 이만합시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였어요.”가짜 백 선생이 담담히 말했다.메뉴가 나오고 강우연은 백 선생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백 선생님께는 정말 고마운 일이 많아요.”가짜 백 선생이라는 작자가 약간 멈칫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별거 아니었어요.”술 한잔이 들어가자 강우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녀를 바라보는 백 선생의 두 눈이 탐욕으로 들끓었다.당장이라도 그녀를 끌고 호텔로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놈은 적의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았다.“우연 씨 남편은 술을 안 좋아하나요? 만나서 감사인사를 전한다고 나온 사람이 인사도 없으니 좀 이상하군요.”놈이 시비 조로 한지훈을 보며 말했다.강우연은 재빨리 한지훈의 팔꿈치를 치며 눈치를 주었다.한지훈은 꿈쩍도 하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백 선생이란 작
별실 내부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가짜 백 선생이라는 작자가 크게 분노하며 고함쳤다.“무례한 녀석! 감히 내 신분을 의심하는 거야? 내가 백 선생인데 너 같은 백수놈 앞에서 뭘 증명하란 말이야!”“강우연 씨 얼굴 봐서 이 자리에 나온 건데 정말 실망스럽군요! 이건 명백히 날 무시한 처사예요! 나랑 일하기 싫어서 일부러 이러는 겁니까!”겁에 질린 강우연은 다급히 백 선생의 앞에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백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남편이 말실수한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하!”백 선생이라는 작자가 싸늘하게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대신 사과하는 게 어디 있어요? 당장 저 놈한테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내 앞에 당장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하세요. 안 그러면 강운과의 계약은 없었던 걸로 할 겁니다! 그리고 S시 전체에 압력을 넣어 아무도 강운과 거래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 말에 강우연은 가슴이 철렁했다.계약을 철회하는 것도 모자라 이건 회사를 망하게 한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지훈 씨 이번에 큰 사고를 쳤어!’그녀는 분노한 눈초리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지훈 씨,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당장 백 선생께 사과드려요!”왜일까?오늘 보인 한지훈의 행보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설마 백 선생이 자신을 도와준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걸까?강우연의 가슴에는 분노와 실망감으로 가득 찼다.‘믿을만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속 좁고 몰상식한 인간이었을 줄이야!’한지훈은 자리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는 강우연을 보고 말했다.“여보, 난 저 백 선생이 사칭범이라고 생각해. 일단은 내 말을 믿어줘.”“그만해요!”강우연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지훈 씨, 당장 백 선생께 사과드려요. 그러지 않으면 이혼할 거예요!”이혼?그 말을 들은 한지훈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내 말을 믿어줘, 우연아!”조급해진 한지훈이 강우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강우연은 그
강우연은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큰아버지, 아빠,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강문복이 차가운 표정으로 대꾸했다.“강우연, 내가 너처럼 비겁한 애는 처음 봤다! 감히 사적인 자리에서 백 선생과 단둘이 만나려 하다니! 백 선생은 우리 회사 VIP인데 너 혼자 접대하는 게 어디 있어?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한지훈 저 미친놈을 데리고 백 선생과 만나다니! 그래서 일이 이렇게 틀어진 거 아니야!”“이 별실은 또 뭐야? 백 선생 같은 분을 이런 허접한 곳에 모셨다고? 넌 백 선생이 만만해?”따발총을 쏘는 것처럼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는 강문복의 모습에 강우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강문복은 음침한 얼굴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말했다.“한지훈! 들어오면서 다 들었어. 가문에서 파면당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백 선생한테 사과해.”강희연 역시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꼭 주제를 모르고 날뛰면서 일을 그르치는 놈들이 있지! 백 선생을 가짜라고 지목하다니. 웃겨서 정말!”한지훈은 갑자기 몰려온 강운의 오너 일가를 바라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가짜라면 가짜인 겁니다.”“무례한 녀석! 내 이놈을 그냥!”강문복은 버럭 화를 내며 테이블에 있는 술병을 집어들었다.백 선생 역시 벌떡 일어서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한지훈? 그 이름 기억하지. 감히 내 신분을 의심하다니. 강운과의 계약은 오늘로 끝났어!”말을 마친 그는 밖으로 나가려는 척, 뒤돌아섰다.강문복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백 선생님, 저런 자식이 한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제가 어떻게든 제대로 혼내서 사과하게 만들겠습니다.”말을 마친 강문복은 뒤돌아서서 한지훈을 노려보며 호통쳤다.“한지훈, 너 정말 안하무인이구나! 감히 대놓고 백 선생의 신분을 의심하다니! 너 때문에 회사 다 망하게 생겼어! 당장 백 선생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회장님께 알려서 널 가문에서 파면할 거야!”조급해진 강우연도 나서서 백 선생을 말렸다.“백 선생님, 죄송해요. 다 제
별실 내부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회사에서 해고한 직원이 백 선생을 사칭하고 다닐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강씨 일가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강문복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강우연을 비난했다.“강우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멍청한 것!”말을 마친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별실을 떠났다.강학주도 불쾌한 눈빛으로 강우연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별실을 나갔다.룸에 한지훈과 둘만 남게 되자 강우연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지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여전히 이 상황이 믿기 힘들었다.백 선생이 가짜였다니!게다가 회사에서 해고한 직원이 작정하고 벌인 사기극이었다니!이어서 자신이 했던 일이 차례대로 머릿속에 떠올랐다.한지훈을 의심하고 그에게 이혼한다고 모진 말까지 해버렸다.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대로 고개가 숙어졌다.“미안해요, 지훈 씨. 내가….”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괜찮아. 당신도 속은 거잖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강우연은 울음을 삼키며 한지훈을 따라 한정식집을 나섰다.가는 길에 궁금증을 참지 못한 강우연이 물었다.“그런데 백 선생이 가짜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한지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뉴스 봤어.”“뉴스요?”강우연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한지훈은 핸드폰을 꺼내 최신 뉴스를 검색해서 보여주며 말했다.“오늘 백 선생은 다른 도시에 일정이 있어서 오전에 S시를 떠났거든.”물론 이건 한지훈이 용이를 시켜 미리 준비한 뉴스였다.뉴스를 확인한 강우연은 멍청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백 선생 같은 거물급 인사가 바로 자신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 의심해 봐야 했다.정말 백 선생이라면 비서나 경호원을 시켜 연락을 시도했을 것이다.그 시각, 홍씨 무술관.싸늘한 기운이 무술관 내부를 감싸고 벼락 같은 고함이 이어지고 있었다.“건방진 녀석! 중소기업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녀석이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려?”무술관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아 분노를
그리고 홍우영의 뒤쪽을 지키고 세 남자는 홍우용보다는 기백이 약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도 어마무시했다.최소 병왕급 실력이었다.“관장님, 제가 사람들을 이끌고 S시에 가서 한지훈이라는 작자의 사지를 뜯어 데려오겠습니다!”매부리코가 인상적인 한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간청했다.그는 홍씨 무술관의 무술 코치 귀망이었는데 3성 병왕급의 실력자였다.이곳으로 오기 전, 그는 야전부대의 지휘관이었다.그러다가 군기를 어기고 군에서 퇴출당하면서 홍우용의 밑으로 오게 되었다.홍우용은 음침한 얼굴로 고민에 잠겼다.고작 중소기업 데릴사위를 상대한다고 병왕급 실력의 코치를 파견했다는 걸 다른 무술관에서 알면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그런데 이때, 한 부하직원이 다급히 안으로 들어오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관장님, 큰일났어요!”홍우용이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부하를 나무랐다.“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야? 빨리 용건부터 말하라고 내가 몇번을 가르쳤어?”부하직원은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관장님, S시에 있는 칠성파 도장에 누가 쳐들어왔는데 허임호 관장님께서….”“허 관장이 왜!”홍우용이 짜증스럽게 물었다.“허 관장님께서 놈에게 살해당하셨고 도장은 이미 경찰들이 현장을 봉쇄한 상태라고 합니다.”허임호가 죽었다니?홍우영의 온몸에서 사무치는 살기가 넘실거렸다.“대체 누구야? 누가 내 애제자를 죽였다는 거야!”그뿐만이 아니었다. 병왕급 실력을 가진 무술 코치들의 얼굴에도 살기가 번뜩였다.2성 현급 병왕의 실력을 가진 허임호가 맥없이 죽어 나갔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최소 3성 병왕급 실력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일이었다.시골도시인 줄 알았던 S시에서 그런 괴물이 나왔다는 게 더 믿기지 않았다.바닥에 무릎을 꿇은 부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그게… 한지훈이란 이름을 가진 젊은이라고 합니다.”한지훈?익숙한 이름에 홍우용이 치를 떨었다.“그놈이야! 못난 데릴사위 녀석! 내 아들을
강운그룹 내부는 혼돈의 도가니였다.귀망은 오자마자 강운그룹을 사냥하겠다고 소문을 퍼뜨렸다.소문이 퍼지자마자 S시 전체가 술렁였다.모두의 시선이 강운그룹을 향했다.그 중에는 연민의 시선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주제를 모르고 날뛰었다는 냉정한 선 긋기가 위주였다.그 시각, 한지훈은 강우연과 함께 본가로 향했다.그들이 들어서자마자 차가운 시선은 그들에게로 쏠렸다.강씨 일가의 모두가 음침한 표정으로 한지훈을 비난했다.“망할 한지훈! 너 이번에 사고 크게 쳤어! 대체 홍씨 무술관은 왜 건드린 거야!”“한지훈 너 때문에 가문이 망하게 생겼다고!”“너 같은 걸 집안에 들인 게 실수였어! 당장 놈을 묶어서 홍씨 무술관에 데려갑시다!”한지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좌중을 둘러보았다.저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았다.홍씨 무술관이라.재밌네.강우연은 초조함과 걱정이 뒤섞인 얼굴로 강준상에게 물었다.“할아버지, 대체 왜들 이러시는 거예요?”강준상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한지훈을 가리켰다.“그건 네 남편한테 물어봐야지! 홍씨 무술관을 건드린 대가로 우리 가문 전체가 날아가게 생겼다고!”“홍씨 무술관이요?”강우연은 굳은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지훈 씨,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쩌다가 H시 사람을 건드렸어요?”홍씨 무술관의 악명에 대해서는 강우연도 들은 바가 있었다.H시 무술 가문 중 하나이자 서열 5위나 되는 방대한 세력이었다.가주인 홍우영은 그 덩치 하나 만으로 좌중을 압도한다고 했다.과거 무술 대회에 제자들을 이끌고 참가한 적 있었는데 대회에서 3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강운그룹 같은 중소기업이 그런 무술 가문을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강우연은 초조했다.반면, 한지훈은 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난 번 시공 현장에서 안전 사고가 났을 때, 널 모함한 세력이 칠성파 도장이라는 무술관 관계자가 한 거야. 그래서 찾아갔는데 어쩌다 보니 관장이랑 시비가 붙어서 관장 허임호를 내가 날려버렸어
백발노인의 단검이 한지훈의 목에 가까워지며 불과 한 치도 남지 않았을 때, 한지훈의 몸 앞에 갑작스럽게 금빛 광막이 나타났다!“뭐지?! 저... 저건 화산의...”창안백은 이 장면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섰고, 화산의 다른 고수들 몇 명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한지훈이 자신의 검에 맞아 죽을 거라고 확신했던 백발노인은 눈앞에 갑자기 솟아오른 금빛 광막을 보고 놀라며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미 휘둘러버린 공격은 멈출 수가 없었다!바로 그 순간, 광막 안에서 하얀 빛의 섬광이 튀어나왔다!“으아악!”백발노인은 놀란 나머지 마치 돌처럼 굳어버렸고, 심지어 단검을 쥔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쉭!”그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은 금빛 광막을 뚫고 들어갔고, 몸은 하얀 섬광과 충돌했다! “쾅!”폭음과 함께 백발노인의 몸은 거칠게 날아갔다!하지만 하얀 섬광은 멈추지 않고 백발노인을 날려버린 뒤, 땅에 있는 바위를 폭발시켜 깊이가 3미터에 달하는 구덩이를 만들어냈다.“푸헉!”백발노인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피를 한가득 뿜어냈다! 그 하얀 섬광은 바로 한지훈이 장도령과 싸우던 때 장도령이 모으지 못했던 천뢰였고, 한지훈은 단지 동방 오우에게서 깨달은 진법을 활용해 그 섬광들을 흡수한 것이었다. 방금 몸이 고정되던 순간, 한지훈은 위험을 감지했지만 다행히 인체의 자기장은 의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발노인의 검은 한지훈의 목숨을 앗아갔을 것이다!그 하얀 섬광이 나타나자 천지의 기운이 땅 위를 덮으며, 임비양의 정혼진도 효력을 잃게 되었다.한지훈은 몸이 잠시 정체된 것을 느꼈고, 곧 다시 움직임을 회복했다. “방금 누가 비침으로 나를 음해하려 했지? 당장 나와라!”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단상 위를 차갑게 바라보며 소리치자, 임비양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지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한지훈, 네가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인데, 또 강적을 만들겠다는 건가?”임비양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그는 백발노인이 더 이상 한지훈을 자극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차라리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한지훈에게 산 채로 고문당하며 죽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흥! 한지훈,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비무 중 생명을 해치는 것은 무맹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여기는 무맹의 영역이며, 창릉은 무맹의 본원이다!”“옳고 그름은 아직 네놈이 평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구만리를 풀어주어라!”백발노인은 두 눈을 부릅뜨며 한지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동시에, 높은 단상에 있던 사람들은 백발노인의 등 뒤에서 감춰졌던 한 손이 이미 단검 두 자루를 꽉 쥐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구만리를 풀어주라고? 좋다!”한지훈은 담담히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발을 들어 구만리를 세게 걷어찼다!“쾅!”굉음과 함께 구만리의 몸은 짐짝처럼 날아올라 20미터 이상이나 멀어져 있던 단상 위로 떨어졌다.“쿵!”구만리의 몸이 단단히 단상에 떨어지며 먼지가 일었다.이때의 구만리는 온몸이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입에서는 피 섞인 거품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의 몸이 격렬히 경련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즉사했다.“허억!”단상 아래의 모든 사람들이 차가운 숨을 삼켰다. 구만리, 구만리가 죽다니?!단 한 번의 기술로 한지훈에게 패배당했을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한지훈에게 한 발로 차여 죽다니!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이해되지 않는 점은, 한지훈이 명백히 천성대진 속에 갇혀 있어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한지훈! 네 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백발노인은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구만리를 잠시 훑어보더니, 눈빛에서 서릿발 같은 살기를 내뿜었다!이 노인의 실력은 결코 구만리와 맞먹을 수준이 아니었고, 평소라면 그가 구만리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설 일은 절대 없을 터였다.그러나 한지훈이 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백발노인은 갑자기 몸을 날려 한지훈을 향해 돌진했다.동시에, 임비양이 갑자기 손을
“용국의 국왕 폐하를 잡초처럼 여긴다고 했던가?!”한지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구만리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찼다.쾅!구만리의 몸은 다시 수 미터 날아가며, 땅의 암반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111“푸헉!”비록 한지훈은 평범한 사람의 상태였지만, 자기장을 조종하여 뿜어낸 발차기는 마치 작은 유성이 가슴을 강타하는 것처럼 강력했다.구만리가 이를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땅에 떨어지자마자 그는 대량의 피를 토해냈고, 피 속에는 내장의 조각들까지 섞여 있었다.“네놈이...”구만리는 힘겹게 팔을 들어 한지훈을 가리켰지만, 오장육부의 고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용국 백성을 모두 개미 취급했던가?!”한지훈은 번개처럼 구만리 앞에 다가서더니, 발을 들어 그의 복부를 세게 짓밟았다.“아아악!”구만리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활처럼 휘었다.그는 마치 허리를 짓밟힌 새우처럼 두 손을 뻗어 한지훈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나를 깔끔히 죽이고 체면이라도 살려주어라!”쾅!구만리가 다리를 붙잡기 전, 한지훈의 무릎이 그의 얼굴을 강하게 들이받았다.구만리의 몸은 땅에 밀착된 채 10미터 이상 미끄러져 나갔다.그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이목구비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네놈이 장도령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한지훈은 발을 들어 구만리의 얼굴을 짓밟았다. 꽈득! 그의 턱뼈와 광대뼈가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리며, 얼굴 전체가 함몰되었다. 이 장면을 본 주변 사람들은 두 눈을 감으며 차마 구만리의 얼굴을 직시하지 못했다.“한지훈! 설마 무종의 규칙을 모르는가?! 비무는 악의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자리가 아니다! 구만리가 이미 패배했는데, 어째서 그를 잔혹하게 죽이려는 것이지?!”그 순간, 높은 대 위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며 한지훈을 제지했다. 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차가운 시선으로 높은 대 위의 무리를 쳐다보았다.“오? 악의적으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참으로 의로운 말이군! 내가 천성대진에 억눌려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은, 한지훈의 전력이 천성대진으로 완전히 봉인된 상태, 즉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구만리는 오성 용급 천왕계 강자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의 손에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백 년 넘게 살아온 세월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닌가?!“어떠한가?!”한지훈은 구만리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너 같은 자를 죽이는 데에는 오릉군 가시 하나면 충분하다. 드래곤 장총 아래에서 죽을 자격이 있는 건 고수 중의 고수뿐이다. 넌 그럴 자격이 없다!”“푸헉!”한지훈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만리는 피를 토해냈다.그가 자격이 없다고?!“한... 한지훈!”구만리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온몸에서 살기가 폭발하며 소리쳤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지금 이 순간, 구만리는 분노의 극한에 도달했다!“휭!”갑자기 창릉산 전체에 강풍이 휘몰아쳤다.“구 씨 형님, 안 됩니다!”단해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이 강풍은 검기가 얽혀 만들어진 것으로, 삼성 천왕계 이하의 사람들은 결코 버틸 수 없는 위력이었다.문제는 적이 오직 한지훈 한 명뿐이라는 점이었다!이 강풍은 자신들 편까지 죽이는 셈이었다.“제기랄!”단해룡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구만리를 구 미치광이라고 부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노인은 완전히 미친 게 분명했다!그는 단해룡의 외침을 무시한 채, 검을 휘둘러 사방에서 검기 폭풍을 일으켰다.“휙!”폭풍이 지나간 자리마다 수많은 시신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한지훈, 죽어라! 반드시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겠다!”구만리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한지훈은 그 모든 것을 냉정히 바라볼 뿐이었고, 그는 몸을 가볍게 돌려 수많은 검기를 피하며 구만리를 향해 돌진했다.“구만리! 넌 이미 졌다! 멈춰라!”대장로는 구만리가 필사의 기술을 사용하자 걱정스러워하며 외쳤다.하지만 대장로의 경고는 물론, 단해룡의 호소
“찌익! 쾅!”한지훈의 오릉군 가시가 구만리의 검신에 닿는 순간, 연이어 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특히 두 번째 폭음이 끝난 후, 구만리의 검을 중심으로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구만리는 손바닥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이럴 수가?!방금 전의 그 강렬한 빛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한지훈은 지금 진법도 사용할 수 없고, 천성대진에 의해 모든 힘이 봉인된 상태였기에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어야 했다.설마...아니, 말도 안 돼!천성대진은 단해룡의 절기로, 천신계 강자라 해도 천성대진에 들어가면 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하물며 한지훈은 겨우 오성 용급 천왕계일 뿐인데, 진법이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그 순간, 구만리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번뜩였다.자기장!“네... 네놈이 설마 인체 내 자기장을 사용할 수 있다니?!”구만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을 더듬었다.자신뿐만 아니라, 조룡의 비술을 전수받은 장씨 집안이라 해도 이런 경지는 불가능했다!비록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방법은 자기장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구만리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한지훈은 이미 몸을 날려 그의 앞에 다가갔다!오릉군 가시는 허공에서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구만리의 등 뒤로 돌아가 다시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이 모든 과정은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실상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현재 한지훈은 물체를 조종하는 것은 커녕, 병왕급의 실력조차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구 씨 형님! 등 뒤를 조심하십시오!”단해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지만, 모든 것이 이미 늦어버렸다. 오릉군 가시는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구만리의 어깨를 강타했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만리는 강한 충격에 의해 앞으로 튕겨 나갔고, 그의 어깨에는 달걀만 한 크기의 혈흔이 생겨났다.“쿵!”구만리는 바위 위로 거칠게 떨어졌다가 다시 한번 튕겨 오른 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단 한
검의를 깨달은 자만이 비로소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아무리 강력한 검경이라 해도 검의 앞에서는 정오의 태양 아래 녹아내리는 얼음과 같았고, 모든 살기는 즉시 소멸하고 만다.“큰소리를 잘도 치는구나? 구만리, 네가 방금 뱉은 말로도 이미 죽어 마땅하다! 검의라 한들 어떠하냐? 하늘의 도리를 거스르는 자를 하늘이 돕겠느냐!”한지훈은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늘어뜨린 채 서 있었고, 그의 손에 쥔 오릉군 가시에서는 희미한 백색의 광채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흥, 말이 많구나. 네놈에게 이 검의의 위력을 보여주마! 내 검의 아래 죽는 것이라면, 너도 죽어서 영광스러운 줄 알아라!”구만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날려 화살처럼 한지훈을 향해 돌진했다!이 순간, 한지훈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보통 사람의 몸으로는 구만리의 살수를 피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다.“죽어라!”구만리가 포효하며 외치자, 사람들은 눈앞에 번쩍이는 흰빛을 보았다.구만리의 몸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검으로 변한 듯, 한지훈을 향해 똑바로 찔러 들어갔다!그와 동시에 공기 중에서는 휘몰아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검기는 해일처럼 밀려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처럼 한지훈에게 몰아쳤다.이것이 바로 검의의 위력이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찢어버릴 수 있는 검기로 변화시키는 능력이었다.그러나 한지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치 구만리의 위력에 놀란 듯 다가오는 그의 모습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한지훈이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흥, 겁먹지 않았다 한들 무슨 소용이냐? 주변의 공기마저 검기로 바뀌었으니, 그가 피할 수나 있을까?”“그가 아직도 오성 용급 천왕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절대 불가능해!”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차가운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구만리의 검 끝이 한지훈의 목에 불과 한 치도 못 미치는 순간, 한지훈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발뒤꿈치를
구만리는 뒷짐을 진 채 곧장 한지훈을 공격하지 않았고, 대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한지훈, 네가 정말 대단한 인물임은 인정하겠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구나!”“용국 백전명장이라 불릴 만하다만, 유감스럽게도 너의 용맹함은 내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이다! 지금의 너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니 나의 충고를 듣거라.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길일 테니!”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구만리의 손에 삼척 길이의 장검이 나타났다.검날은 차가운 빛을 반짝이며 마치 검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보였다.구만리가 손목을 살짝 돌리자 은백색의 검화가 번뜩였고, 공중에는 허공을 찢는 듯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검광이 번쩍이더니, 주변에 서 있던 몇 그루의 소나무가 허리 높이에서 단숨에 잘려 나갔다!이 검술은 단순해 보였으나, 검기를 외부로 뻗어나가 주변의 몇십 그루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게다가 나무가 잘려 나갔음에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은 검기가 얼마나 정밀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구만리의 검술은 역시 절묘하군! 검기를 몇 미터 밖으로 뻗어나가면서도 이렇게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다니, 우리가 평생을 바친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일세!”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하며 말했다.그들이 감탄의 말을 마치기도 전에, “까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만리의 발아래 바위로 된 지면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몇 미터 깊이로 갈라졌다!습!이곳 창릉산의 제단은 만 년 전 화산암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곳으로, 그 단단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검은커녕 포탄을 쏘아도 하얀 자국 정도만 남길 수 있을 뿐이었다.“이것이야말로 현세 제일의 검경 대사이군!”“그렇소. 구만리의 검경은 장도령을 훨씬 능가한다고 들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네!”“한지훈이 천성대진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구만리의 상대가 될 수 없겠지!”구만리의 절기를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내심 놀랐다. 이 천성대진은 정말 대처하기 만만치 않았다. 비록 그 또한 미리 대처할 준비를 하긴 했지만, 역시나 상대방의 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의 온몸을 감싸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일반인이랑 별다를 바 없게 되었다. 축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장로 또한 한지훈의 변화를 알아채게 됐고, 이내 앞으로 나아가 도와주려 하자 동방소가 손을 내밀어 그를 가로막았다. “대장로, 이제 너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멀쩡히 돌아갈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또 맹주의 따귀를 한 대 더 때리려는 거야?”그 말을 들은 대장로는 몸을 살짝 떨게 됐다. 처음 날린 따귀는 단지 단해룡의 경고일 뿐이었고, 만약 그가 다시 손을 대게 된다면 무맹과 무종은 관계는 철저히 끊어지게 된다. 때가 되면 용국의 종무는 필연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대장로님, 사실 저희 또한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 원 씨 집안 또한 북양 왕이 이대로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필경 인원이 적고 발언권이 별로 없으니 멋대로 상황을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이때 원상용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로를 향해 말했다. “너희들...”답답한 이 상황에 대장로는 발만 동동 구를뿐이었다. 사실 그들이 말한 대로, 설사 대장로가 목숨 바쳐 나선다 하더라도 이 결말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내가...”순간 그는 과거의 자신을 회상하게 되었다. 한 씨 별장을 떠나게 될 당시, 대장로는 무종 장로의 인부를 꺼내고는 바로 깨뜨려 버렸었다. 자신은 더 이상 무종 장로가 아니라고, 무종과는 이젠 무관하다고 밝힌 것이었다. 무종 대장로의 신분을 벗게 됐지만, 그는 언제나 한지훈과 함께 생사를 같이할 것이라고 뒷말을 덧붙였다. “죽고 싶어?”그의 단호한 태도에, 단해룡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대장로의 뒷모습을 주시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로가 입을 떼려는 순간, 한지훈이 고개를 들어 대장로를 향해
대장로가 이렇게까지 날뛰는 이유는, 그는 방금 단해룡과 구만리가 주고받는 눈빛을 통해 이미 낌새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나 악랄한 사람들이 어떻게 선배라는 이유로 존경심을 받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특히나 단해룡은 무맹의 맹주라는 신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런 수단으로 사람을 해치려는 건 정말 납득이 안 됐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한지훈 한 사람을 겨냥하는 것 자체가 기가 찼다. 게다가 무맹 맹주와 구만리뿐만 아니라 십여 명의 5대 명산 고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기선제압에 그치지 않고, 천성대진으로 한지훈의 모든 실력까지 빼앗아내 일반인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엔 구만리가 깨끗이 한지훈을 처단하게 만들려는, 그야말로 염치없는 발상들이었다. “뭐라고? 그럼 대장로 말은, 나더러 이 대결에서 져주라는 거야?”단해룡는 마냥 차가운 눈빛으로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단해룡, 넌 엄연히 무맹 맹주야. 신분과 지위가 다 어느 정도 높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한지훈 한 사람을 포위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 게다가 천성대진까지 이용하여...”대장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해룡은 갑자기 손을 들어 강하게 뺨을 내려쳤다. “팍!”대장로는 단해룡이 감히 자신의 따귀를 때릴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전혀 무방비하고 있었던 그는 그 따귀에 몸이 5~6 미터 밖으로 밀려났다. 대장로 또한 삼성 지급 천왕계의 실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코 단해룡의 상대는 아니었다. 설사 그가 단해룡과 같은 급수에 있다 하더라도 진법 면에서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무섭도록 강력한 따귀에 대장로는 멍해졌을 뿐만 아니라, 축대 아랫사람들마저도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무맹과 무종은 비등한 실력을 갖고 있었고, 그중 단해룡과 대장로의 지위도 매우 비슷했다. 그러므로 방금 단해룡이 날린 이 따귀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무맹이 무종에게 던지는 도전장이 된 것이다. “대장로, 너 명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