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차에 오르자 놀란 승객들은 슬금슬금 길을 비켰다.“형님, 저놈입니다. 저놈이 들개 형님 얼굴을 반죽으로 만들었어요!”빡빡이들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놈이 맨 뒤쪽에 앉은 한지훈을 가리키며 소리쳤다.한지훈은 그들을 힐끗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도망가는 게 하도 불쌍해서 내버려뒀더니 지원병을 불러왔어?”큰형님으로 보이는 빡빡이는 18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키에 배가 불룩 나온 근육돼지였다.그는 한지훈을 아래위로 훑더니 옆에 있는 부하에게 말했다.“쟤야? 들개 그 녀석 요즘 운동을 너무 게을리한 거 아니야? 저런 놈 하나 해결하지 못해서 나까지 동원하게 만들어? 딱 봐도 비실비실해 보이는구만, 너희는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부하 녀석이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님, 그게 아니라… 저놈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됩니다. 비실비실하게 생겨서 몸놀림이 심상치 않아요!”형님이라는 녀석은 짜증스럽게 부하를 밀치더니 한지훈의 옆으로 가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았다.“친구, 내 동생을 때렸다는 얘기 들었어. 동생이 맞았는데 형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앞으로 내가 이 도시에서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라고. 딱 봐도 비실해 보이는데 차라리 이건 어때? 지금 내 앞에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고 현금 2천만 원을 내놓으면 없던 일로 해주지.”한지훈은 멍청이를 보는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 제안 별로인데? 차라리 이렇게 하자. 너희가 나한테 2천만 원 주면 내가 그냥 넘어가 줄게. 어때?”“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양아친은 제 귀를 의심했다.건방진 자식!그의 뒤를 따라온 부하들이 발끈하며 소리쳤다.“형님, 이 자식이 우릴 무시하는 것 같은데 본때를 보여줍시다!”“건방진 자식, 지금 누구한테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이 일대의 왕을 자처하며 괴롭힘을 일삼핬던 그들 일당에게 이는 커다란 수치심을 안겨주었다.형님이라는 작자는 그 자리에서 한지훈의 허리를 향해 발길을 날렸다.이걸 제대로 맞는다면 허리가
부하 녀석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씩씩거리며 다시 주먹을 다잡고 한지훈에게 달려들었다.한지훈은 피식 웃고는 맨 앞에 다가오는 놈의 볼에 주먹을 날려버렸다.퍽! 퍽퍽!동작이 너무 빨라서 그들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고개가 돌아가고 입가가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일부는 이미 의자에 주저앉았고 일부는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쳇, 약골들이네.”한지훈은 팔목을 우드득 꺾으며 혼비백산한 우두머리에게로 천천히 다가가 차갑게 물었다.“어때? 이제는 좀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어?”우두머리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다급히 말했다.“알았어요! 목숨만 살려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그는 상대의 실력이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빡빡이가 부하들에게 눈짓하자 겁에 질린 부하들은 저마다 호주머니를 털어 겨우 백만 원 정도를 내놓았다.그 모습을 본 빡빡이의 손에 땀이 고였다. 그는 두 손으로 돈을 한지훈에게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저희가 가진 현금은 이것뿐이에요. 이 정도로 어떻게 안 될까요?”솔직히 그는 두려웠다. 심기가 뒤틀린 한지훈이 자신의 남은 다리마저 부러뜨릴 것 같았다.안타까운 시선으로 한지훈을 바라봤던 승객들은 상황이 역전된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한지훈은 꾸깃꾸깃한 현금뭉치를 보고 싸늘하게 말했다.“이 자식들이 누굴 거지로 보나!”그 말을 들은 빡빡이 우두머리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눈물 콧물 쥐여짜며 말했다.“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도 집에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단 말입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그의 부하 녀석들도 덩달아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평소에 약한 시민을 괴롭히며 이 일대에서 온갖 횡포를 일삼던 놈들은 이 순간이 수치스럽고 억울했다.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눈물을 흘렸다.한지훈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안 되겠는데?”이런 녀석들에게 숨겨둔 금고가 존재하지 않을 리 없었다.결국 빡빡
“결혼식 날에 북양 30만 대군과 8대 용장, 천성전 인원들을 본식에 초대할 거야. 다른 4대 전쟁부에도 초대장을 보내고 총사령관을 초대하도록. 용각과 천자각은 내가 직접 초대장을 들고 방문할 생각이야.”한지훈의 두 눈이 생기로 반짝였다.“알겠습니다, 사령관님.”용일이 격앙된 표정으로 대답했다.총사령관의 결혼식, 그리고 용국을 뒤흔들 성대한 국혼이 이 작은 도시에서 열릴 것이다.5대 주국의 수령들이 축하인사를 하러 몰려들 것이며 전국적으로 생중계될 것이다.용일은 이 성대한 파티의 일원으로서 자부감을 느꼈다.다음 날 아침, 한지훈은 낯선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시죠?”한지훈이 물었다.“한지훈 씨 맞아요? 저 소예민이에요. 시간 괜찮으면 한번 만나뵙고 싶은데요.”수화기 너머로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지훈은 한참을 생각해서야 그날 케빈 호텔에서 만났던 여자 의사를 기억해냈다.그런데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을까?한지훈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소 선생님이셨군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저 지금 출근하러 나가는 길인데요.”소예민은 청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그럼 저녁에는 시간 어떠세요?”한지훈은 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가 밤중에 외간남자를 불러내서 뭐 하자는 거지?“시간 괜찮습니다.”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러자 소예민은 확연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저녁에 모시러 갈게요. 어디 출근해요?”“도영그룹이요.”통화를 끝낸 한지훈은 고운이를 유치원에 데려가고 도영그룹으로 출근했다.안내데스크 직원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홱 돌리더니 인사도 받지 않고 다급히 자리를 떠버렸다.한지훈은 어리둥절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갔다.마케팅부서로 가자 직원들이 연말 보너스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호호 떠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도 한지훈을 보자마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입을 꾹 닫았다.분위기는 삭막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가라앉았다.한지훈
“이사님, 그게 아니라….”장신혁은 당황한 얼굴로 급기야 해명하려고 했지만 이한명이 그의 말을 잘랐다.“아니긴 뭐가 아니야! 장신혁 씨 일하기 싫은 거 티나.”이한명은 음침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비난을 퍼부었다.“일할 시간에 일을 열심히 하지는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잡담이나 할 거면 회사 그만둬! 두 사람 다 해고야!”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지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이 이사님, 저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까지 화풀이하실 건 없잖아요. 저를 회사에서 내치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장신혁 씨랑은 아무 상관없어요.”“지훈 씨….”장신혁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분노한 이한명이 빽 하고 소리 질렀다.한지훈은 장신혁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이고 앞으로 나섰다.“이 이사님은 저를 자그로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저는 나갈 생각이 없는데요? 도 대표님은 이사님 생각 아세요?”현장에 있던 마케팅부 직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감히 이한명 이사를 상대로 저런 발언을 하다니!정말 회사 다니기 실은 건가?이한명 이사와 도 대표의 관계를 몰라서 저런 말을 하는건가?이한명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지금 뭐라는 거야? 나 이 회사 이사야! 너 같은 평사원 자르는 건 일도 아니라고!”한지훈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이사가 대표는 아니잖아요. 저는 도 대표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경호원입니다.”“이 자식이!”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이한명이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무례한 녀석! 윗사람 공경할 줄도 모르는 직원 뒀다 뭐해? 회사 위계 질서만 망칠 뿐이지! 도 대표가 너 같이 건방진 녀석을 계속 옆에 둘 것 같아?”소란은 끝끝내 대표 사무실까지 전해졌다.“시끄럽게 뭣들 하는 거야!”도설현이 인상을 확 찌푸리고 마케팅부로 들어왔다.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본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한지훈의 주먹이
그녀는 지금 머리가 아팠다.리양제약의 송천우를 건드린 탓에 오늘 아침부터 협력 제안은 없던 걸로 하자는 통보를 받았다.오후에 리양제약을 찾아 송천우와 다시 협력에 관한 사안을 재논의해야 했다.한지훈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마냥 순하고 만만할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여자였다.10분 뒤, 몸매를 강조한 정장 원피스를 입은 대표실 비서 이안영이 마케팅부로 왔다. 허벅지만 살짝 가린 베이지톤의 원피스는 그녀의 길고 쭉 뻗은 다리를 강조했다.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입구에서 빈둥거리는 한지훈을 보자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그러고는 재빨리 한지훈을 지나쳐 사무실로 달려갔다.여자의 마음이란 참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대체 저럴 거면 얼굴은 왜 붉히는 걸까.잠시 후, 마케팅 부장 사무실에서 두 여자가 나왔다.한 명은 이안영이고 다른 한 명은 한지훈도 모르는 얼굴이었다.하지만 한눈에 봐도 존재감이 확실한 여자였다.균형잡힌 몸매에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굉장한 미인이었다.저 여자는 누구지?도영그룹에 도설현을 제외하고도 대단한 미인이 있다는 사실이 한지훈은 놀라왔다.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그 여자에게 시선이 갔다. 그녀는 이안영을 따라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이안영이 청순미인이었다면 저 여자는 성숙한 여자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주변 남자 직원들을 돌아보니 이미 홀린 듯,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마케팅부 부장 조민아가 돌아왔다. 높은 하이힐에 차가운 도시 미녀 이미지를 풀풀 풍기며 지나가는 모습에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물론 그에게는 강우연뿐이었다.그냥 정말 단순히 예뻐서 잠깐 쳐다봤을 뿐이었다.“지훈 씨, 뭘 그렇게 봐요?”옆에 있던 장신혁이 그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마케팅 부장님이랑 친해요?”한지훈이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굉장한 미인이네.’그의 시선을 따라가본 장신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설마, 우리 부장님한테 마음 있는
하정혜는 팔짱을 끼고 거만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한지훈을 벌레 보듯이 내려다보며 물었다.“당신이 한지훈이야?”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여자를 바라보았다.진한 화장을 한 것부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저 화장을 벗기면 어떤 얼굴이 나올지 딱 봐도 알 것 같았다.몸매는 조금 괜찮은 편이었지만 이한명의 사람 보는 눈이 너무 형편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한지훈이 담담히 물었다.하정혜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시비를 걸어왔다.“고작 경호원 주제에 우리 이 이사님한테 말대꾸나 하고 말이야! 이사님 한마디면 당장 짐 싸서 떠나야 하는 주제에! 신세가 안타까워서 충고하는데 당장 회사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이 이사님께 사과해! 안 그러면 당신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마케팅부 직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멀찌감치 물러났다.일부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 영상을 녹화해서 회사 커뮤니티에 뿌렸다.장신혁도 자리를 피하고 싶었으나 용기를 내서 다가와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하 부장님, 지훈 씨가 신입이라 아직 회사 생활이 익숙치 않아서 그래요. 이 이사님이랑 뭔가 오해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도 대표님 사람인데 공개 사과는 좀 그렇지 않나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하정혜는 손을 번쩍 들어 장신혁의 귀뺨을 때렸다.“장신혁, 네가 뭔데 끼어들어? 마케팅부 평사원 주제에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언제부터 부장이 하는 일에 평사원 따위가 잔소리나 늘어놓고 있어? 당장 안 꺼져?”싸늘한 경고에 겁에 질린 장신혁이 볼을 붙잡고 한지훈의 뒤로 물러섰다.평사원에 불과한 그가 이번 일로 직장까지 잃으면 앞날이 깜깜했다.한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날카롭게 하정혜를 쏘아보았다.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장신혁을 가리키며 말했다.“당장 장신혁 씨한테 사과하세요!”“헉!”그 한마디에 사무실 직원들 전부가 놀란 숨을 들이켰다.지금 뭘 들은 거지?부장인 하정혜에게 당당히 사과를 요구하다니!미친 거 아닌가?아니면 하정혜의 신분에 대해 정말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하정혜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훈, 들었지? 장신혁은 다 아는 당연한 이치를 넌 모르네? 나 홍보부 부장이야. 너 같은 일개 경호원 나부랭이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내가 고작 말단 사원한테 사과를 해? 꿈도 야무지지!”“내가 사과하면 장신혁 씨는 받을 용기는 있고? 그거 받으면 당장 내일 짐 싸서 회사를 떠나야 하는데?”잘못을 하고도 뻔뻔한 하정혜의 태도에 한지훈은 인상을 찌푸렸다.그는 다 안다는 듯이 장신혁의 어깨를 다독였다.“나한테 처음으로 다가와준 동료인데 괴롭힘 당하게 둘 수는 없죠.”말을 마친 그는 담담한 얼굴로 뒤돌아서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하정혜의 뺨을 때렸다.순간 주변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한지훈을 바라보았다.하정혜를 쳤어?세상에!하정혜도 당황했는지 한참 멍하니 있다가 생각이 돌아온 뒤에야 얼굴을 감싸며 성난 사자처럼 포효했다.“너… 감히 날 쳤어?”“못할 게 뭐가 있어?”한지훈이 싸늘하게 말했다.“신혁 씨가 맞은 거 그대로 돌려준 거 뿐인데?”“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일개 청소부라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 한 부서의 부장으로서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았어야지! 당신보다 직위가 낮더라도 그 사람들이 있어서 회사가 돌아가는 거야!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는 인간은 맞아야지!”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직원들의 동공이 흔들렸다.그랬다.평사원도 회사의 일원이었다.매일 되도 않는 갑질과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가 없었다.평소에 하정혜의 갑질에 시달렸던 직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하정혜를 놓아주었다.한지훈의 귀뺨이 그들을 깨운 것이다.장신혁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이 정도로 자신을 위해 나서줄 줄이야!하정혜가 울분을 터뜨리려는 순간, 한지훈이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짝!순식간에 하정혜의 볼은 시뻘겋게 부어올랐다.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포효했다.“너… 두고 봐!”한지훈이 담담히 말했다.
하정혜는 무시무시한 기에 눌려 잠깐 얼굴이 창백해졌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그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질렀다.“아니! 난 저런 폐급한테 사과할 이유 없어!”“그래?”한지훈은 싸늘한 말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성큼 다가섰다.그 모습을 본 하정혜는 겁에 질린 얼굴로 연신 뒷걸음질쳤다.“너… 왜 이래? 뭘 하려는 거야?”한지훈이 차갑게 말했다.“조금전 했던 행동에 대해 사과하라고!”정신이 나가버린 하정혜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한지훈! 너 미쳤어? 나 홍보부 부장이야! 관리직이 평사원한테 사과하는 게 말이 돼? 정말 끝까지 이럴 거야?”“그래서 뭐? 난 팩트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당장 사과해!”한지훈은 코너로 몰린 하정혜를 끝까지 몰아세웠다.구석까지 밀려난 하정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었다.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이를 꾹 악물더니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한지훈을 힐끗 노려보고는 장신혁에게 말했다.“미안했어.”그 한마디에 상황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얼이 빠졌다.하정혜가 장신혁한테 사과를?비록 태도도 껄렁하고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었지만 그녀가 평사원한테 머리 숙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장신혁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지훈에게 고마웠지만 그 후에 있을 폭풍 때문에 걱정이 더 컸다.‘지훈 씨가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다니.’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다가가서 한지훈을 말렸다.“지훈 씨, 이제 그만하고 보내줘요.”한지훈은 그제야 살기를 거두고 담담한 얼굴로 자리에 가서 앉았다.하정혜는 이를 으드득 갈며 둘을 힘껏 노려보고는 말했다.“한지훈, 장신혁, 딱 기다려! 오늘 일 절대 쉽게 넘기지 않을 거야. 이 회사에 있는 동안 지옥이 뭔지 똑똑히 보여주지!”“헉!”지켜보던 직원들이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이로써 한지훈과 장신혁은 하정혜에게 제대로 찍힌 것이다.일부는 동정의 눈길을 보냈지만 깨고소하는 직원들도 몇 있었다.“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하필이면 하 부장을 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