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검은색 코트를 입은 중년 남성이 공항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VIP 통로를 통해 대기실로 들어갔다.“박 대사님이야! 진짜 오셨어!”“저기 봐! 박 대사님이 나오셨어!”“대박!”공항 안팎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박영성은 그쪽을 힐끗 바라보고는 급하게 VIP 대기실로 걸어갔다.그 모습을 주의한 누군가가 소리쳤다.“VIP 대기실이야! 박 대사가 VIP 대기실로 가셨어! 북양 사령관도 분명 거기 있을 거야. VIP 대기실로 가보자!”순식간에 공항 안팎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우루루 VIP 대기실 방향으로 몰려갔다.하지만 대기실 밖에서 지키고 있던 군인들에 의해 대기실 근처는 가지도 못했다.흥분한 유명 인사들은 멀리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누군가가 망원경을 꺼내들었다.“나 봤어!”“한민학 군단장이랑 이한승 회장도 있어! 박 대사와 악수를 하고 있는 사람이 총사령관인가 봐! 사복 차림인데 멋지다! 얼굴이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게 아쉽네!”사람들은 VIP 대기실 내부 상황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누군가가 다가와서 커튼을 쳤다.결국 그들은 북양 총사령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다행히 누군가가 핸드폰으로 박영성과 젊은 남자가 악수하는 장면을 찍어서 SNS에 게시했다.화면이 많이 흔들리고 화질도 형편없었지만 남자에게서 풍기는 비범한 분위기는 뭇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딱 봐도 그가 북양 총사령관이었다.그 사진은 신속히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하지만 불과 몇분도 되지 않아 군부에서 기사와 게시글을 모두 삭제했다.강희연과 오관우 일행도 사람들 틈에 끼여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저 사람이 북양 총사령관인가 봐. 옆모습만 보는데도 너무 멋진데? 내가 상상하던 왕자님이야!”강희연은 오관우가 옆에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푹 빠진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대상이 다른 남자였다면 화를 냈겠지만 오관우는 화를 내거나 질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북양 총사령관을
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두 사람은 잠깐 대기실에서 대화를 나눈 뒤, 박영성은 한민학의 경호를 받으며 군부 전용차에 올라 미리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한지훈은 일부러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대기실을 떠났다.주차장으로 들어가자 마침 잔뜩 흥분한 얼굴로 걸어오는 강희연과 오관우를 만났다.그들도 한지훈을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한지훈, 네가 여기 왜 있어?”강희연이 앙칼진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고는 대답했다.“누구 마중 좀 나왔어.”그 말을 들은 강희연은 큰 건수를 하나 잡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공항에 마중을 나와? 너 같이 무능한 백수가 공항에 마중 나올 일이 뭐가 있어? 거짓말하지 마!”“설마 너도 박 대사님 마중을 나왔다고 할 거 아니지?”강희연의 얼굴에 비웃음이 진해졌다.한지훈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되물었다.“맞다면 어떻게 할 건데?”그 말을 들은 강희연과 오관우는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젠장! 한지훈 너는 내가 봤던 중에 가장 뻔뻔한 인간일 거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지? 너 영업 사원하면 잘 어울리겠다!”오관우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허세 빼고는 시체인 자식!’“한지훈, 박영성 대사가 누군지는 알고 그런 망언을 하는 거야?”강희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넌 모르겠구나? 박 대사뿐이 아니고 오늘 북양 총사령관도 오군 공항에 방문하셨어! 북양 총사령관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아? 만인의 존경을 받는 우리 용국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존재야! 너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잘생겼더라고!”말을 마친 강희연은 감상에 젖어 눈이 촉촉하게 빛났다.한지훈은 갑자기 역겨움이 몰려와서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내가 북양 사령관이라면 네 얼굴 보고 역겨워서 토가 나왔을 거야.”“너!”분노한 강희연은 한지훈을 손가락질하며 싸늘하게 말했다.“한지훈 네가 무슨 자
오관우가 싸늘하게 냉소 지으며 말했다.“괜한 걱정이야. 박 대사가 저런 일반인들에게 드레스를 만들어 줄 리가 없잖아? 한지훈 저놈은 박 대사를 만나지도 못해. 자존심 상하니까 헛소리 지껄인 거겠지.”강희연이 발을 쾅쾅 구르며 말했다.“한지훈 저 자식 너무 얄미워! 자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 대사 만나게 해줘. 난 박 대사 드레스를 무조건 입고 결혼해야겠어!”오관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박 대사 같은 인물은 아무리 나라도 만나기 어려워.”“그럼 어떡해? 박 대사 드레스 아니면 나 드레스 안 입어! 결혼 안 할래!”강희연은 괜한 억지를 부렸다.오관우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결국 마지못해 승낙했다.“알았어. 노력은 해볼게.”그 시각, 북양 총사령관과 박 대사가 한날 한시에 S시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소문이 퍼지고 퍼져 전 시민들이 다 알게 되었다.강운 그룹.직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세상에! 박 대사님이 오셨대! 그분 드레스 한번 입어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는데!”“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소식이라고. 여기 봐. 북양 총사령관이 오군 공항 전체를 폐쇠하고 박 대사와 비밀 만남을 가졌다는 뉴스가 있어.”“설마 북양 총사령관이 결혼하는 거야? 그런 소식은 없었는데….”“대체 어떤 여자면 이런 복을 차지했을까? 북양 총사령관이 남편에, 박 대사의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다니! 꿈만 같아!”회사 여직원들이 떠들썩하게 감상을 이야기하는 사이, 정부에는 나서서 루머를 정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북양 총사령관과 박 대사는 원래 친분이 있는 사이이며 우연한 만남일 뿐이니 근거 없는 루머는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한동안 도시 전체를 뜨겁게 달구던 열기가 드디어 조금 잦아들었다.그 뒤로 아주 대단한 인물이 박 대사를 특별히 초대하여 아내를 위한 드레스 제작을 의뢰했다는 소식이 퍼져 나왔다.사람들은 누구나 그 대단한 인물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해했다.북양 총사령관도 아니라면 대체 누구일까?박 대사에게 드레스 제작을 의뢰할 정도라면 아
그 말에 강희연은 싸늘한 비웃음을 지었다.“박 대사도 몰라? 아, 모를 수도 있지. 넌 가문에서 쫓겨나서 지내는 사이 상류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았으니까.”“내가 말해주지. 박 대사는 세계 최고의 웨딩 디자이너야. 28일 결혼식에 나는 박 대사가 직접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입장할 거라고. 강우연, 안타깝지만 아무도 너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그러게 왜 굳이 나랑 같은 날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객기를 부려? 한지훈 그 자식 일부러 네 자존심 깎아내리려고 그런 거 아니야? 나 같으면 차라리 결혼식 취소하겠어!”강희연의 얼굴에는 우월감과 거만함이 한데 뒤섞여 가관을 이루었다.강우연은 그런 말을 듣고 있자니 자존심 상하고 서글펐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언니, 나랑 지훈 씨 결혼식이 언니처럼 화려하지는 못해도 우린 원래 뭔가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단지…”“됐어! 변명하면 너만 초라해질 뿐이야. 어쨌든 그날 두고보자고!”강희연은 강우연을 싸늘하게 흘겨보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문이 닫히자 강우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여자로서 남들보다 우월하지는 못해도 모두의 축복을 받는 결혼식을 치르고 싶은 건 당연했다.그녀는 비교할 필요 없다고, 한지훈만 있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그날 저녁, 박 대사가 신비의 인물의 초대를 받고 S시에 드레스를 제작하러 왔다는 소문이 곳곳에 퍼졌다.가장 흥분한 사람들은 당연히 강운그룹 일가였다. 그들은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오관우를 초대하고 이 일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를 나누었다.강희연이 회사에서 결혼식에 박 대사 드레스를 입는다고 이미 공지했기 때문이었다.허영심 충만한 강문복 일가가 이런 자랑거리를 놓칠 리 없었다.강운의 모든 사람들은 그 신비의 인물이 오찬그룹 후계자 오관우라고 확신했다.“우리 예비 사위는 정말 대단해! 박 대사를 특별히 우리 시까지 초대해서 우리 딸을 위한 드레스를 만들게 하다니!”강문복은 흥분을 금치
연회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한지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무례한 녀석! 여기 네가 낄 자리가 어디 있다고 그런 미친 소리를 지껄여?”“강학주, 사위 교육 똑바로 안 해? 어디서 저런 무능한 녀석을 데려와서는!”사람들은 입을 모아 한지훈을 비난했다.“강우연, 남편 단속 잘해! 아무 말이나 내뱉게 하지 말라고! 우리 자기가 박 대사를 초대한 게 아니면 한지훈 저 자식이 초대했다는 소리야? 황새가 뱁새 따라가면 다리 찢어진다고 했어. 너도 참 저런 인간을 만나서 불쌍하다!”강희연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비아냥거렸다.다른 사람들도 옆에서 거들었다.“우연아, 앞으로 저 인간은 가족 연회에 데리고 오지 마. 내가 다 창피하다!”“맞아! 앞으로 가족 모임에는 저 녀석 데리고 나오지 마! 우리 강운그룹도 S시에서는 알아주는 기업인데 저런 인간이랑 같이 밥 먹자니 창피해!”“강학주, 사위 교육 똑바로 안 해? 주제도 모르고 오 대표를 모함하다니!”강문복이 눈을 부릅뜨며 강학주에게 시비를 걸었다.“형님, 나는….”강학주는 한숨을 내쉬고는 분노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한지훈, 그 입 다물어! 계속 헛소리할 거면 당장 나가!”강우연도 굳은 표정으로 한지훈의 팔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지훈 씨, 그만 얘기하고 조용히 밥 좀 먹어요.”한지훈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강우연을 위해서 이번 한번은 넘어가기로 했다.오관우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박 대사를 네가 초대했다면 28일 결혼식에서 우연이가 박 대사 드레스를 입겠네?”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한지훈을 비웃었다.한지훈은 묵묵히 물만 들이켤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오관우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시비를 걸었다.“왜 말이 없어? 기죽었어? 멍청한 녀석!”“저런 인간 때문에 분위기 망칠 필요 없어. 이제 그만해.”말을 마친 강문복은 강 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 우리도
연회장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흐르고, 강가의 친척들은 의심에 찬 눈빛으로 한지훈을 노려보았다.쾅!강문복은 테이블을 힘껏 두드리며 소리쳤다.“한지훈, 그런 말 할 거면 당장 꺼져! 우리 집에 네 자리는 없어!”“재수가 없으려니까 어디서 저딴 녀석이 우리 집에 굴러들어온 거야?”설해연도 옆에서 한술 더 떴다.“웃겨 죽겠네! 한지훈, 그만 나대. 네가 그런다고 사람들이 널 알아줄 것 같아? 분위기 어지럽히지 말고 꺼져!”“강학주, 너도 참 불쌍하다. 저런 사위를 둬서!”강가 친척들의 분노는 모두 한지훈을 향했다.강학주은 음침한 얼굴로 벌떡 일어서서 대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강우연, 저 자식 데리고 당장 꺼져!”강우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한지훈의 팔을 잡아당겼다.“지훈 씨, 우리 그만 가요.”한지훈은 사람들의 비웃음에 못 말린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밥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으니까. 여러분께 사기꾼한테 속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말을 마친 그는 강우연의 손을 잡고 본가를 나섰다.한지훈이 떠나자 강가의 친인척들은 아부 섞인 미소를 지으며 오관우에게 사과했다.“오 대표, 신경 쓰지 마. 쟤는 원래 저런 인간이야!”“맞아, 오 대표. 저런 무능한 녀석이랑은 상종을 말아야 해.”“자, 오 대표. 우리끼리 한잔하자고.”한편, 저택을 나온 강우연은 조용히 걷고 있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흐느꼈다.한지훈은 다급히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물었다.“왜 그래?”그녀는 고개를 들고 서글픈 표정으로 한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지훈 씨, 앞으로 말을 좀 아끼면 안 돼요? 난 그래도 당신이 나와 고운이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줄 알았는데… 당신 너무 유치해요. 왜 사람이 성실하지 못해요?”한지훈은 뭐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강우연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변명 듣고 싶지 않아요.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한지훈의 손을 놓고 앞장서서 집
“이 비서, 당장 내일 입고 갈 옷 좀 준비해 줘. 나 내일 중요한 약속 있어!”박영성은 흥분에 겨워 말했다.옆에서 다 듣고 있던 그의 비서도 감격에 겨워 신속히 옷장을 뒤졌다.하지만 아무리 골라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박영성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자 비서가 말했다.“선생님, 가족 식사에 초대를 받으셨다면 소박하게 입고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박 대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왜지? 역사에 길이 남을 연회에 초대 받았는데 너무 단촐하게 입고 가면 그게 더 실례 아니야? 용국에 북양 총사령관의 초대를 받은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비서가 말했다.“선생님, 잊으셨어요? 총사령관께서는 신분에 관해 절대 비밀에 부쳐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분이 가족 식사에 초대하셨다는 건 선생님을 가족으로 인정한다는 뜻인데 너무 화려하게 입고 가는 게 오히려 실례일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박영성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맞아! 그걸 깜빡하고 있었어! 역시 우리 이 비서 눈치 하나는 빠르다니까! 이번 일정이 끝나면 내 작업실로 출근해!”이 비서의 눈이 감격으로 일렁거렸다.“그게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비서는 허리 숙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다음 날, 한지훈은 아침 일찍 마트로 가서 장을 봐왔다. 잠에서 깬 강우연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친한 지인이 점심에 집으로 오기로 했어.”“지훈 씨 지인이요?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요? 그럼 준비라도 좀 해놓을걸.”강우연이 다급히 말했다.한지훈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이야. 어제 당신 일찍 들어가서 자길래 얘기 안 했어.”그가 말하는 사이 강우연은 이미 주방으로 들어와 한지훈을 도와 야채를 씻으며 말했다.“어떻게 알게 된 지인이에요? 뭐 하는 사람이에요?”“그게… 웨딩 드레스 디자이너야.”한지훈이 말했다.“웨딩 디자이너요?”강우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지훈 씨한테
박영성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그 박영성 맞을 겁니다.”강우연의 충격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박영성 대사…눈앞의 인자한 아저씨가 바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디자이너 박영성이라니!‘이게 어떻게 된 거지?’분명 박 대사는 신비의 인물의 의뢰를 받고 S시에 드레스를 제작하러 방문했다고 했다.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강우연은 의아한 눈으로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그 시각, 주방을 나온 한지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박영성에게 인사를 건넸다.“박 대사님 오셨어요?”박영성은 한지훈을 보자마자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네, 금방 도착했습니다.”“편히 앉아 계세요. 아직 반찬 다 만들려면 멀었어요.”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네, 그럴게요.”박영성이 비서에게 눈짓하자 비서도 공손하게 소파로 다가가서 앉았다.강우연은 한지훈을 끌고 주방으로 들어가서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지훈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저분이 진짜 박영성 대사 맞아요? 저런 분이 왜 우리 집에…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궁금증 가득한 그녀의 표정을 본 한지훈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어제 내가 얘기했잖아. 내가 박 대사를 S시로 초대했다고.”“네?”강우연은 충격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신비의 인물이 지훈 씨였어? 어떻게?’“지훈 씨,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요. 저 사람 진짜 박 대사 맞아요?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강우연이 정색하며 다시 물었다.한지훈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충격적이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한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저분은 박 대사 맞고 아버지 때문에 알게 되었어. 마침 박 대사님이 S시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집으로 초대했고. 당신 드레스 하나 만들어주십사 부탁하려고.”강우연은 그제야 조금 납득이 되는 얼굴이었다.만약 한정그룹의 옛 지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강우연이 다시 물었다.“정말 박 대사님께 드레스를 의뢰하려고요?”“그래. 왜?
핏빛 햇살이 지상을 비추니, 수많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족히 10살은 늙어 보일 정도로 얼굴이 초췌해졌다. 이건 대체 무슨 진법이야? 모두들 깜짝 놀랐다. 한편 한지훈의 머리에도 뜻밖에 흰머리가 생기게 됐는데, 노화하는 속도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두 배 이상 빨랐다. 빠르게 늙어가는 한지훈의 모습에 장도령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하하! 한지훈, 이제야 알겠지! 너를 죽이기 위해서는 난 굳이 이 검을 쓸 필요도 없었어! 네가 뭔데 감히 삼절진을 깨달았다고 으스대는 거야? 이게 바로 삼절진 중의 지절진이라는 거야!”장도령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지절진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빠르게 노화시킬 수 있는 거지? “천절진은 천둥 번개를 움직여 천위를 장악할 수 있고!”“지절진은 사계절 기후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고! 인절진은 사람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고, 맞지?”한지훈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의 얼굴 피부는 한없이 구겨지고 목소리마저 많이 늙게 됐다. “한지훈, 너는 확실히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나긴 해. 삼절진 진법을 깨달은 지 단 10일도 안 되어 그 참뜻을 이해하게 되다니. 역시 난 널 잘못 보지 않았어!” 장도령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한지훈이 아직 얘기하지 않은 한 가지 사실이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장도령이 현재의 실력으로 삼절진을 펼치면 최대 한 시간까지 버틸 수 있긴 하지만 그 후 그는 정력을 다 소모하고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장도령은 자신의 체면을 위해, 장 씨 집안의 명망을 위해 생명을 불태우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한편 도청 전인은 고개를 들어 붉은 해가 하늘에 뜬 것을 바라보고는, 저도 모르게 연이어 고개를 저었다. 오늘 한지훈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비명으로 죽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수십 년 전 당시 그 일전에서도, 부상군 무리는 일찍이 천산에 진입했었다. 당일 정오에도 하늘에는 핏빛이 물들었었다. 핏빛의 땡
다시 말해 인체에 있는 자기장이 폭발하게 된다면, 이런 외력은 더 이상 작용하지 않게 된다. 바로 이때, 한지훈은 다시 깊은 공명 속으로 들어갔다. 전과 달리, 한지훈은 이 와중에 하나의 도리를 깨닫게 되었다. 대체 왜 공명 상태에 들어가야만 완벽한 진법을 펼쳐낼 수 있는 건지. 그 이유는 그 순간이 돼야만 자신의 마음이 우주와 통하고, 몸의 자기장이 우주와 동기화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념원에 따라온 하늘의 별들을 동원할 수 있고 구름을 움직일 수도 있으며 땡볕을 좌우지할 수도 있다. 드넓은 우주에 비해 장도령이 동원한 이런 자연의 힘은 그야말로 보잘것없었다. 이내 광풍이 크게 일면서 무수한 검 그림자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뭇사람들의 귓가에 울림과 동시에 주위에는 울부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도청 전인과 진우 두 사람은 한지훈 뒤에 담담하게 선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강력한 수법에 의해 죽게 된다면, 그들 두 사람은 마냥 허무하게 죽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지훈과 함께 황천길을 갈 수 있다는 것도 그들 두 사람은 영광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마음속에는 조금의 두려움이나 아쉬움도 없었고, 다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의 별들이여!”이때 한지훈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자, 적색 장총이 다시 나타났다. 이내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갑자기 빛을 발하며 사람들의 머리 위에 몰려있던 먹구름을 흩뜨렸다. 뿐만 아니라 천둥 번개도 따라서 사라졌다. 지상도 다시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심지어 수많은 바람의 칼날들 또한 서서히 미풍으로 변하여 사람들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어? 나... 나 죽지 않았어!”“하느님이 날 살렸어!”“정말 감사합니다!”수많은 사람들은 잇달아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해 절을 하였다. 마찬가지로 진우와 도청 전인도 참지 못하고 천천히 두 눈을 뜨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발생한 적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장도령의 분노는 이미 극에 달했다. 그는 데뷔한 이래로 단 한 번도 피를 흘린 적이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험악한 대전을 치르면서도 장도령은 한 번도 물러선 적이 없었다. 그런데 20년 만에 천산에서 내려오자마자 한지훈의 공격을 받고 피를 토해내다니. 비록 그는 자신이 던진 공격이 도리여 반사되어 해를 입게 된 것에 납득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만약 이대로 오늘 한지훈을 놓치게 된다면, 앞으로 장도령의 위신은 추락하게 될 것이다. 유럽의 강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용국에서도 그는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한지훈! 얼른 무기를 내려놓지 못해? 너 설마 너로 인해 이 주위 반경 몇 리 안에 있는 백성들이 모두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야!”노 씨 어르신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 한지훈의 모습에 잔뜩 화가 났다. 사실 그는 백성들의 안위보다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그뿐만이 이 검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그는 전에 이미 직접 그 위력을 목격했었다. 당시 주변에 있던 몇 명 천왕계 고수들, 그리고 수만 명의 군인들은 거의 동시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늘에서는 천둥이, 땅에서는 가시가 돋쳤고, 게다가 수도 없이 날려오는 검들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만약 눈에 보이는 도검이라면 피하기 쉽지만, 문제는 무형의 존재였기에 피할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노 씨 어르신은 조급한 나머지 바지에 실수를 할 뻔했다.“무기를 내려놓으라고?”그 말에 한지훈은 차갑게 노 씨 어르신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한지훈! 너 설마 아직도 지금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거야? 이제 곧 이곳은 천둥에 의해 초토화되고, 모든 사람들은 가시에 찔려 처참한 시체가 될 거라고. 너는 모든 사람들이 너와 함께 죽기를 바라는 거야?”“네 마누라와 아이는 살리고 싶지 않아? 진우와 도청 전인도 살리고 싶지 않냐고!”“네가 이렇게 고집부리면 뭐
특히나 장도령으로부터 검경을 전수받은 도청 전인은 더욱 놀랐다. 앞서 본 장도령의 두 검은, 자신의 수법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검은, 도청 전인이 아직까지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쓱!”장도령의 거검이 다시 내리 꽂히기도 전에, 한지훈이 먼저 일격을 가했다. 순간 적색 장총의 창끝에서는 눈부신 흰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장도령은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고, 자신이 손을 드는 사이에 한지훈의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적색 장총은 뜻밖에도 어마무시한 위세와 함께 직접 장도령의 방어막을 깨뜨렸고 그의 손에 들린 장검의 검 끝을 부딪혔다. “땡!”다시 한번 금속이 충돌하는 굉음이 울렸고, 하늘을 가득 채운 천둥 번개의 빛은 갑자기 사라지고 거대한 검 그림자도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푸!”이내 장도령의 팔이 갑자기 저려나기 시작하더니,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오장육부 전해지기 시작하면서 입가에는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검을 펼치던 도중 한지훈의 총에 맞았기에, 장도령은 그 기운에 눌리게 되어 피까지 토해내게 된 것이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장도령은 크게 놀랐다. 한지훈이 나의 수법을 아예 차단할 수 있다니? 말도 안 돼! 사실 천둥 번개가 그의 손에 있는 검 그림자 속에 모이게 되는 순간 주위에는 매우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되기에, 장총은 말할 것도 없고 대포 하나도 뚫을 수 없었다. 충격적인 장면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멍하니 있었다. 한지훈이 무려 장도령의 묘기를 차단했다고? “한지훈! 너... 빌어먹을!”장도령의 두 눈에는 분노가 뿜어져 나왔고, 이내 동공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변했다. 장도령은 그제야 치욕과 모욕을 느끼게 됐다. 그는 과거 15개국의 고수를 상대하면서도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한참 어린 20대 후배를 상대로, 뜻밖에 상처를 입게 되다니? “천산칠검! 파룡식!”바로 이때, 장도령이 노호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든 장검은
단 네 개의 검으로 8명의 용급 천왕계 강자들을 죽였다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이 사실만으로도 장도령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이때, 장도령이 손목을 뒤집자 무수한 검화가 펼쳐졌고 그 모습은 매우 웅장했다. 곧이어 하늘에는 수많은 거검이 나타났다. 이 장면은 당시 도청 전인이 처음 검경을 펼쳤을 때의 장면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장월동이 펼친 이 위세는 도청 전인의 검경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수많은 거검의 검 그림자는 겹겹이 쌓여 공중에서 합쳐지게 됐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검은 점점 더 단단해지는 동시에, 검봉 위에는 마치 천둥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한 줄기의 전류가 왔다 갔다 하며 노닐고 있었다. 이내 한지훈이 손을 들려하자, 장도령의 검은 바로 한지훈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검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바람 소리도 없이 내리 꽂히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도 그 맹렬한 검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검이 떨어지는 위세는, 마치 수백 개의 검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떨어지는 듯했다. 어떤 각도, 어떤 방식으로 받든 지 결국 참담한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곧이어 검이 한지훈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한지훈의 가슴에서 갑자기 금빛 한 줄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적색의 장총 한 대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땡!”곧이어 적색 장총은 장도령의 손에 들린 칠성 상문검과 제대로 부딪혔다. “우르릉!” 큰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는 무수한 불꽃이 튀어 육안으로도 보아낼 수 있는 속도로 사방으로 퍼지게 됐다. “뭐야?”장도령은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이 검은 누구든지 절대 쉽게 당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검의 오묘한 점은 바로 검에 이미 진법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설사 한지훈의 오릉군 가시라 하더라도 이 검은 전혀 당해낼 수 없다. 그 말은 즉, 한지훈의 손에 있는 이 장총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 장총에도 진법의 위력이
심지어 그의 손을 거쳐 멀쩡히 살아남는 적수도 거의 없었다. 그나저나 한지훈은 이제 몇 살인데? 고작 20대의 나이에도 이렇게나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니, 장도령 또한 절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너도 만만치 않은 놈이네. 동방 오우였으면 진작에 죽었을 텐데!”한지훈은 한 손을 짊어진 채 태연하게 웃었다. 그러나 진우는, 한지훈이 뒤로 감춘 팔이 약간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게다가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우는 점점 한지훈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방금 있었던 일전에서, 한지훈은 분명 손실을 입긴 했다. 그러나 장도령을 상대로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매우 큰 기적이었다. “하하하!”이내 장도령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식, 매우 예리하네! 사실 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너 정말 만만치는 않아. 만약 앞으로 무사히 실력을 닦게 된다면, 정확히 10년 후 넌 반드시 뛰어난 용봉이 될 거야. 하지만 아쉽게도 하늘은 너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아무리 네가 강하다 하더라도 우리 장 씨 집안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지!”“지금 국운이 시작된 이상 다들 알고 시피 국운이 한창 높아지고 있을 무렵, 모든 용인들은 모두 적지 않은 이익을 보게 될 거야. 아마도 2년 후가 되면, 그때는 내가 너를 죽이고 싶어도 적지 않은 기력을 쏟아야 되겠지!”“그렇기에 난 결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거야. 과거 너 같은 인재들 수십 명이 이미 내 손에서 죽게 됐어. 게다가 네가 나더러 직접 손을 써라고 권한 이상 너한테 펼쳐질 엔딩은 단 하나뿐이야!”이 말을 들은 도청 전인과 진우 두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방금 일전은 그저 맛보기 었단 말인가? 장도령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건가?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또한 아연실색하였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그저 몸풀기 일뿐이었다니? “진짜 그냥 몸풀기였다고? 하지만...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신선 같은 수법이야!”“아니야. 장 선배가 일단 최선을 다해서 싸
“한지훈, 네가 감히 날 상대로 반격해? 네가 이 검을 쉽게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단지 너한테 보여준 맛보기일 뿐이야!”화가 난 장도령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곧이어 검 자루는 현장을 휩쓸어버렸다. 순식간에 풍운은 변색되었고, 하늘의 구름 덩어리조차도 모양이 휘어버린 채 나뒹굴기 시작했다.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압도적인 이 기세는, 확실히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여 년 동안 은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도령의 위세는 여전히 용국을 압도할 정도였다. 어쩐지 그가 막 산을 내려왔을 무렵, 무종의 많은 문주와 일부 최정상 상업계 거물들은 뭇별같이 달려와 그를 맞이하였다. “어쩐지 장 씨 집안이 그동안 줄곧 이렇게 무종을 업신여겼더라니, 장도령은 세상을 아주 쉽게 보고 있었어!”도청 전인은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장면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였다. 그는 이 검의 위엄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지훈뿐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저 가능성만 있을 뿐이었다. 도청 전인은 한지훈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장도령의 실력에 두려움을 가진 것이다. 확실히 너무나도 강한 실력이니까. 심지어 천신 경지에서는, 아무도 도달할 수 없을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유럽의 대부분 강자들도 장도령의 이름을 듣기만 하면 모두 간담이 서늘하다고들 한다. 많은 무종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법과 검법을 이렇게나 정묘하게 결합할 수 있다니,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장도령 한 사람밖에 없을 거야!”적지 않은 종문 종주들도 모두 감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어느새 한지훈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동정심으로 가득했다. 반면 한지훈은 이내 손을 살짝 들고는 흔들었다. 이내 오릉군 가시는 마치 생명체처럼 순식간에 완벽한 호를 그어 장도령의 칠성상문검을 향해 다시 날아갔다. “우르릉!” 곧이어 오릉군 가시와 칠성 상문검이 다시 충돌하였고, 허공에서는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검법과 진법이 동시에 펼쳐진 것이다. 놀라운 광경에 한지훈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방 오우 또한 화산의 제자라고 하긴 하지만 장도령과는 전혀 비교할 차원이 안 됐다. 수법이든 진법이든 장도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마치 물 흐르듯이 모든 행동이 이어져 갔다. 지금 이 순간, 강중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 위 구름을 뚫은 흰빛을 보고는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대체 어떤 신위인 거지? 대체 어떤 수법을 쓴 거야! 구세대 사람들은 여태 장도령의 이야기를 마치 호랑이 이야기처럼 받아들였다. 많은 무종 사람들도 장도령의 이야기를 전설처럼만 듣고 자랐지만, 오늘 직접 마주해 보니 전설 속 장도령은 현실에 비해 매우 약해 보였다. “대단하네!” 한지훈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장도령은 이미 진법을 능통하게 운용하였지만, 유독 하나 부족한 건 바로 진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였다. 다르게 말해서, 틀린 방법은 백 번 더 써도 결국 틀린 것이 된다. 그렇게 정확한 길을 가기까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역시나 용국 백여 년 역사의 최고 강자답습니다! 어쩐지 장 씨 집안의 지위가 줄곧 높더라니, 형님과 같은 엄청난 강자와 비교했을 때 전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네요!”노 씨 어르신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아부하였다. “어쩐지 당시 한 사람의 힘만으로 8명의 최고 천왕계 고수들을 참살할 수 있었더라니, 그것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은 충분히 놀랄 만해!”잇달아 적지 않은 무종 사람들도 분분히 의논했다. “한지훈, 이제 알겠지? 난 단지 더 이상 살인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내가 너보다 실력이 못한 게 아니라!”장도령은 차갑게 웃더니 이내 뛰어올라 한지훈에게로 달려들었다. 그가 몸을 훌쩍 날리며 일어서자, 그의 주변은 온통 은백색의 빛으로 덮이게 됐다.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필적할 수 없는 천위를 느끼게 됐다. 눈부신 은빛뿐만 아니라, 구름 속에서 교차하는 천둥과 번개는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했
뭐라고? 자결하는 것도 모자라 한지훈의 모든 재산을 장 씨 집안에 넘기라니? 장도령의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거물들은, 순간 안색이 변했다. 상대는 무려 북양 왕 한지훈이다. 무종 강자는커녕 국왕도 감히 그 앞에서 막말을 할 수가 없다.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도청전인과 진우는 잇달아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도령이 있는 한 그들에게는 전혀 발언권이 없었고, 그 누구도 감히 한 글자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뭐라고? 자결하고 내 모든 재산을 너희 장 씨 집안에 넘겨야 한다고? 대체 뭘 믿고 이렇게 큰소리치는 거야?”한지훈은 장도령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왜? 설마 너 아직도 고집부리려는 거야? 용국 수천 년 역사 이래 우리 장 씨 집안이 왜 만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는지, 왜 역대 통치자들이 모두 우리 장 씨 집안을 특별히 대우했는지 그 이유를 몰라?”“오늘날의 국왕도 우리 장 씨 집안에 예우를 하고 있어. 게다가, 너도 봤지? 내가 하산하고 나서는 무종뿐만 아니라 무맹 또한 사람들을 보내 직접 날 맞이했지. 넌 설마 그 이유가 뭔지 모르는 거야?”“그건 바로 우리 장 씨 집안이 곧 용국의 하늘이기 때문이야! 우리 장 씨 집안은 조룡을 지키는 공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적할 수도 없는 실력도 갖고 있어!”“너의 그 보잘것없는 기량은, 내 눈에는 전혀 여겨볼 가치도 없어! 하지만 너더러 자결하라는 것은 곧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고, 네 주변 사람들에게도 한 번쯤은 살 기회를 주는 거야!”장도령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너의 마지막 기회가 될 거야. 만약 굳이 내가 손을 쓰게 만든다면, 너뿐만 아니라 저 놈도 죽을 거야! 그리고 네 곁의 모든 가족들을 죽일 거야!”장도령의 말에 진우는 반박하지도 못했다. 도청 전인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장도령은 그동안 두 손에 수많은 피를 가득 묻혔었고, 심지어 사람을 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