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상은 가슴이 철렁해서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이한승에게 물었다.“이 회장님 말씀은 강운이 상회에 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한지훈 덕분이란 말입니까? 우연이랑만 계약을 하겠다고요?”“그렇습니다!”이한승이 정색하며 말했다.강준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는 고개를 돌려 강문복을 바라보았다. 강문복 역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강준상에게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일단은 수락하는 게 어때요? 우리 강운에게는 절호의 기회잖아요. 강우연이랑 한지훈을 처리한 뒤에 다시 협상해도 늦지 않아요.”그 말을 들은 강준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요! 이 회장님 조건에 따르겠습니다.”이한승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강준상에게 악수를 청했다.“그럼 축하드립니다. 강운그룹은 이로써 오군 상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백마 산장에서 환영회가 열릴 예정이니 다른 새 멤버들과 같이 참석해 주세요.”강준상은 감격에 겨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럼 이 회장님, 다음 주 토요일에 뵙지요!”이한승은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날 채비를 했다.그런데 이때 강희연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이 회장님,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한지훈은 일반 퇴역 군인 아닌가요? 왜 이렇게까지 그 인간을 치켜세우는 거죠? 설마 숨겨둔 신분이라도 있는 건가요?”예의 없는 질문에 강준상과 강문복이 화들짝 놀라며 핀잔을 주었다.“희연아! 이 회장님 앞에서 무슨 실례야!”이한승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그렇게 궁금하시면 알려드려야죠. 저는 예전에 한 선생의 가문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그제야 강씨 일가가 궁금해하던 문제가 해결되었다.이한승이 자리를 떠난 뒤에도 강준상 일행은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당장 병원에 있는 우연이에게 연락해!”강준상이 말했다.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잠시 후, 강준상은 강문복 일가와 다른 방계 가족들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그 시각,
살짝 건방진 한지훈의 태도는 강준상을 화나게 했다.하지만 이한승의 말을 떠올리고 어쩔 수 없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우연이 좀 괜찮나 보러 온 거야.”한지훈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싸늘하게 말했다.“당신들이 우연이를 걱정한다고요?”“무례한 녀석! 너 할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투야! 가문에서 쫓겨나고 싶어?”강문복이 발끈하며 한지훈에게 삿대질했다.정말 건방진 자식이었다.강희연도 콧방귀를 뀌며 맞장구를 쳤다.“제가 보기엔 이 녀석은 대놓고 할아버지와 우리 가문을 무시하는 거예요! 어제 좀 싸움에서 이겼다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줄 아놔봐? 꿈 깨! 우리도 이제 네 신분을 알았으니까. 일반 퇴역 군인이 북양 총사령관 덕을 좀 본 주제에!”“그러니까. 북양 총사령관이랑 동원구 홍진수 상관이 아니었으면 너랑 강우연, 그리고 비천한 핏줄을 가진 네 딸까지 다 죽었어!”설해연도 덩달아 가소롭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쾅!한지훈은 온몸으로 강렬한 살기를 내뿜더니 섬뜩한 눈빛으로 설해연을 노려보며 말했다.“죽고 싶으면 방금 전에 했던 말 다시 해봐! 누가 비천한 핏줄이라는 거지?”겁에 질린 설해연은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고는 저승사자처럼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는 한지훈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내가 뭐 잘못 말했어? 고운이 비천한 핏줄 맞잖아! 강우연이 혼전임신으로 낳은 것이니까 더러운 핏줄이지! 넌 강우연이랑 무슨 관계인데? 몰래 혼인신고만 하면 우리가 널 가족으로 인정할 줄 알았어? 결혼식을 안 올렸으면 진정한 부부라고 할 수 없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라고! 이게 우리 용국의 문화야!”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도 냉소가 지어졌다.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둘이 무슨 관계긴. 영원히 빛을 받지 못할 관계지!”“그러니까! 부모의 허락도, 친척들의 축복도 없이 덜컥 혼인신고만 해버리면 부부관계가 성립될 줄 알았나? 혼인신고서는 결국 그냥
가족들의 계속되는 비난에 강우연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만 흘렸다.그녀는 가녀린 손으로 고통스럽게 얼굴을 감쌌다.이때, 따뜻한 손이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고개를 들자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한지훈은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리고 싸늘하게 말했다.“잘 들으세요! 강우연은 내 여자고 평생을 바쳐 지켜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훗날 꼭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 거고요! 이 여자는 S시, 아니 용국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될 겁니다! 전 용국의 백성들이 이 여자를 부러워하도록, 내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강가의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한지훈과 강우연을 번갈아보았다.그것도 잠시, 병실에서 싸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하하하!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저 백수놈이 지금 전국의 백성들이 부러워할만한 그런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한 것 같은데?”“웃겨 죽겠어! 설마 자신이 진짜 북양구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강우연이 불쌍하네. 능력도 없으면서 허풍만 잘 떠는 남편을 만났으니.”사람들의 비웃음에 강우연의 고개가 점점 숙어졌다. 그녀는 남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조용히 흐느꼈다.“지훈 씨, 그만 말해요. 제발… 부탁할게요.”그녀는 자존심에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한지훈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우연아, 나 믿어줘. 나중에 꼭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게 해줄게.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 줄 거야! 난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 자신 있어!”강우연은 새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감격에 겨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믿을게요….”“아빠, 고운이도 있어. 고운이도 빼놓지 마….”고운이가 달려와서 한지훈의 품에 안기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한지훈은 아이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공주님이 될 거야!”고운이는 신이 나서 손을 흔들었다.강준상 일가
그 말을 들은 강씨 일가가 움찔하더니 이내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희연이 너 오관우랑 결혼해?”“세상에! 우리 희연이가 드디어 오찬 그룹에 시집가는구나! 앞으로 대기업 사모님이 되겠네!”“잘했어! 오찬 그룹 같은 든든한 지원군은 꼭 붙잡아야지! 그래야 우리 강운도 흥하는 거야!”사람들은 강우연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너도나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 주었다.강희연은 사람들의 찬양과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일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쟤네가 저러고 있는 꼴을 못 봐주겠더라고요! 다음 달 28일에 S시 최고의 로얄 호텔에서 진행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우리 시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가들과 정계 인사들이 다 모일 거고요. 주요 도로 광고판에 저와 관우 씨의 웨딩 사진이 걸릴 거예요. 언론사 기자들도 초대했어요! 연예부 기자들까지 와서 우리 결혼식을 생중계할 거예요! 그때가 되면 모두가 저를 부러워하겠죠! 강운 그룹도 이 결혼식으로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될 거예요!”“좋아, 아주 좋아!”그 말을 들은 강준상은 언제 인상을 썼냐 싶게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역시 내 손녀는 훌륭해! 할아버지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결혼선물 큰 거로 준비할 테니 기대해!”“감사해요, 할아버지.”강희연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애교스럽게 강준상의 팔짱을 끼고는 강우연에게 도발적인 시선을 보냈다.“어때? 우리 누가 더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나 비교해 볼까?”그 말에 조금 전까지 기대로 부풀었던 강우연은 다시 자신감이 떨어졌다.결혼식장이 로얄 호텔이라니, 이미 같은 비교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레벨이었다.게다가 S시의 유명인사들은 거의 다 참석할 테고 중심가의 건물에 그들의 웨딩사진이 걸린다니! 이런 재력을 강우연은 따라갈 수 없었고 한지훈도 거기까지는 해줄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차 샀을 때 모아둔 재산 다 썼을 텐데….’강우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언니, 축하해. 그런
“그러니까! 우리 강운 사람들은 너희 결혼식에 가지 않을 거야! 꿈 깨!”모두가 그들을 비웃었지만,한지훈은 더 해명하기도 귀찮아서 사람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강가의 사람들도 더 있을 필요를 못 느꼈기에 순순히 병원을 떠났다.한지훈은 병원 입구에서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용일에게 전화를 걸었다.“다음 달 28일에 우연이랑 결혼식을 올릴 거야. 모든 관계를 총동원해서 가장 성대한 결혼식을 선물할 생각이야.”“강희연이 고작 S시 유명 인사들만 초대했다면 난 전국의 유명 인사들을 불러 모을 거야! 아니, 세상 모두가 주목할 만한 그런 결혼식이 될 거야! 용국의 10억 백성, 3백만의 정예 군인들까지 내 아내가 될 사람을 축복할 거야. 국혼이야! 우린 이곳에서 국혼을 치를 거야!”설명을 들은 용일은 공손한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그럼요, 총사령과님. 모든 관계를 총동원해서 성대한 국혼을 준비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용일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드디어 그의 상관이 결혼한다.국혼의 형태로!용국은 개국한 이래 국혼을 치른 적 없었다.이번이 처음이니 절대 실수가 없어야 한다!용일은 신속히 북양구 본부에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렸다.“다음 달 28일에 총사령관님께서 성대한 국혼을 올리실 예정이다! 북양의 30만 대군은 변방 호위군을 제외하고 모두 S시로 진군할 준비를 하고 대기한다! 각 전쟁부와 용각에 이 사실을 알리고 국혼의 형태로 준비해!”“예, 장군!”전화를 받은 연락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그렇게 무수히 많은 통화가 북양구 본부에서 용국의 다른 전쟁부와 행정부까지 이어졌다.이날, 용국의 집정부와 전쟁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북양 총사령관이 국혼을 올린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하급 부문들은 상부에서 지시한 사안을 이행하느라 바빴다.그리고 이 소문은 가장 빠른 속도로 용각에 전해졌다.용각의 비서실장 주찬영은 북양 본부의 비밀 연락을 받고 긴장한 표정으로 용각 집무실로 달
그 말을 들은 신한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흥분에 겨워 말했다.“뭐? 그 녀석이 드디어 장가를 간다고?”신한국뿐이 아니었다. 강만용을 비롯한 다른 장로들도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그들은 한지훈이 국혼을 올린다는 데 대해 전혀 난감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큰손자를 장가보내는 할아버지처럼 기쁨을 금치 못했다.신한국은 바로 지시를 내렸다.“주 비서, 당장 용국의 모든 행정 부서에 연락해서 국혼을 준비하라고 지시해! 다음 달 28일에 있을 우리 용국의 위상을 드높일 결혼식은 무조건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러져야 해! 국내와 해외 언론사들에 알리고 모든 채널에서 생중계할 거야! 이국의 오랑캐들에게 우리 용국 총사령관의 위엄을 자랑해야지!”“네, 알겠습니다!”주찬영은 약간 혼란스러웠다.그가 주저하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신한국에게 물었다.“어르신,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혼이면 수많은 인력과 시간, 자원을 소비해야 하는데….”“무엄하다!”신한국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주찬영, 너 잊었어? 그 녀석이 우리 용국을 위해 변방에서 5년을 싸웠어! 30만 죽음을 불사하는 군사로 변방으로 쳐들어오는 8백만 오랑캐를 박살 내고 용국의 국토를 지켜냈어! 그런 영웅이 결혼식을 올린다는데 당연히 만백성이 같이 축하해 줘야지! 국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그가 이루어 낸 업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주찬영은 화들짝 놀라며 이마에 식은땀을 닦았다.신한국은 5대 총사령관에서 은퇴한 장수 중 한 명이었다.비록 나이는 들었지만,여전히 장군의 위엄은 건재했다.강만용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주 비서, 어서 가서 준비해. 국혼에 관한 일은 국왕께 내가 직접 보고를 올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예, 어르신!”주찬영은 경례를 올린 뒤, 무거운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섰다.밖으로 나온 그의 입에서 비명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괜히 한마디 더 했다가 꾸중만 들었다.그는 재빨리 달려가서
천자각 내부, 높은 의자 앞에는 금자수를 놓은 가림천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뒤에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남자는 가만히 펜을 들고 있는데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넘쳤다.“전하.”강만용 일행이 예를 갖추며 그에게 말했다.“무슨 일이지?”가림천 뒤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북양구 총사령관, 한지훈이 국혼을 올리고 싶다고 청하였습니다.”강만용이 공손히 말했다.중년 남자가 펜을 내려놓았다. 가림천 뒤에서 한복을 입은 남자가 성지를 들고 내려와서 강만용 일행의 앞에 섰다.“어르신, 전하의 명입니다.”강만용은 금빛 용이 반짝이는 성지를 공손하게 받아들었다.성지를 펼치자 ‘국혼을 허락한다!’라는 간결한 글자가 시야에 들어왔다.강만용은 길게 심호흡하고 높은 곳에 계신 그분에게 예를 올렸다.“전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군요.”남자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한지훈은 용국을 구한 수호신이기도 하니 서운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 하지. 그의 뒤에는 3백만 북양 대군도 있으니까! 만반의 준비를 해서 해외 여러 나라들에 우리 용국의 위엄을 보여주자고!”“예, 전하.”강만용은 그분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인 뒤, 정중한 태도로 대답했다.“장로들께서는 나 대신 후한 선물을 준비하여 용국 최고의 예를 갖춰 증여하도록!”왕좌에서 여유 넘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중년 남자는 편전으로 사라져 버렸다.강만용 일행은 천자각을 나와 다급히 전용차에 올라탔다.그 시각, 용경의 한 교외.사람이 살지 않는 한 별장 내부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고 가면을 쓴 남자들이 무릎을 꿇고 대기하고 있었다.그들의 앞에는 검은색 가면을 쓴 남자가 뒷짐을 지고 서서 싸늘한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멍청한 자식들! 5년 전 한정 그룹 일가를 몰살시켜 버렸다면서? 어찌하여 S시에 또 한가의 더러운 핏줄이 나타났냔 말이다!”남자는 손에 든 사진 세 장을 부하들에게 던졌다.한 명은 한지훈, 다른 한 명은 강우연, 그리고 고운이도 있었다.맨 앞에 무릎을
3일 뒤.길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은 매일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고 구설수에 오르내렸다.물론 그중에서 관심이 뜨거운 건 한민학과 홍진수에 대한 관심이었으나, 한지훈과 홍진수가 언론사를 압박하여 소식을 봉쇄하면서 그날 밤 자세한 상황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그날 밤, 병원.하루 종일 아내를 간호한 한지훈은 피곤한 기색으로 병원 복도를 걸었다.어둡고 조용한 병원 복도는 낮과는 달리 싸늘한 분위기가 풍겼다.그리고 이때!갑자기 전등이 전부 꺼지더니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창밖의 바람 부는 소리마저 섬뜩하게 느껴졌다.한지훈은 긴 의자에 앉아 요지부동으로 어딘가를 쏘아보았다.어둠 속에서 자잘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창가 쪽에서 걸음을 멈추었다.셋이군!한지훈은 순식간에 상대의 인원수와 실력을 가늠했다.‘나를 암살하러 온 일당인가? 적국 특공대?’그의 주변으로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복도 끝에서,야행복을 입은 암살자들이 검은색 가면을 쓰고 살기를 진하게 풍기며 다가왔다.그들의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는데 달빛을 받아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그들이 병실에 접근하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저승사자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직업 킬러인가? 어디 소속이야?”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긴 침묵이 오갔다.비수를 든 암살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복도에 사람이 있었다니!이럴 수가!진입할 때 전혀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분명히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그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암살자들이었다.일반적인 상황에서 복도에 살아 숨 쉬는 존재가 있었다면 절대 그들의 눈을 피해 갈 수 없었다.그런데 믿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죽여라!”암살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비수를 든 채,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한 놈은 한지훈의 심장을 노렸고 한 놈은 목을, 한 놈은 복부를 노렸다.한방만 제대
이 말을 들은 한지훈과 양령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얼굴을 찌푸렸다.VIP 휴게실 안에는 이미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쉬고 있었고, 몇몇은 오늘의 신문을 읽고 있었으며, 몇몇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폐쇄되었다는 흔적은 전혀 없었고, 이 매니저가 분명히 한지훈과 양령아를 일부러 난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매니저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분은 한지훈, 과거의 북양왕입니다. VIP 휴게실을 사용할 특권이 있으신 분이에요. 이 사실이 윗분들께 알려지면 우린...”한 직원이 다급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이승운에게 말했다.“윗분?”이승운은 비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고 연기를 뿜어냈다.“동방 오우 도련님께서 이미 경고했잖아.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멸문시킨다고!”“윗분들이 알면 어쩔 건데?!”그는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솔직히 반년 전이라면 나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달라. 그는 더 이상 북양왕이 아니고, 게다가 사대 가문과도 등을 졌잖아. 사대 가문 앞에서 그놈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다고!”이승운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동방영이 뒷짐을 진 채 다가오며, 한지훈과 양령아를 쓱 훑어보고 비웃었다.“어이쿠, 한 선생님께서 이번에 귀국하신 게 꽤나 순탄치 않으신가 보네요.”“하지만 원인이야 있겠죠. 누구더라, 사대 가문조차 안중에 없으셨던 분? 하도 거만하시니, 이제 공항 매니저도 한 선생님을 경멸하네요!”“그럼 이렇게 하시죠. 우리 북양왕님께 작은 접이식 의자 하나 사드리죠. 여기서 잠시 앉으셔서 쉬시고, 제가 사람을 시켜 컵라면 한 그릇 끓여 드리겠습니다. 어떠신가요?”주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동방영!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하라고 했어? 넌 반드시 후회할 거야!”양령아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분노를 터뜨렸다.“흥,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황제급 대우지! 나 같으면 국물 한 방울도 안 줬을 거다!”이승운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만 가지.
동방영의 웃음소리는 곧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지만, 곧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한지훈에게로 쏠렸다.북양왕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아무도 감히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 못했다.동방 오우가 이미 경고를 내렸고, 한지훈에게 접근하는 자는 가문까지 멸할 것이다! “동방영!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한 선생님을 비웃는 거지! 몇 시간 전만 해도 한 선생님은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었어. 그런데 넌? 즐기기만 할 뿐, 국가를 위해 뭘 한 게 있지?”양령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허허, 나는 국가에 세금을 내지. 소비할 때 세금을 내지 않나? 우리 같은 납세자들의 돈 없이는, 한지훈이 북양에서 뭘 먹고 살았겠어?”“솔직히 말해서, 우리 같은 부잣집 도련님들이 하루에 몇백만, 몇천만씩 기부 안 하면, 그놈은 따뜻한 똥도 못 먹었을 거라고!”동방영은 거리낌 없이 조롱하며 말했다.“저… 괘씸한 놈!”“제기랄, 동방 집안 놈들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흥, 저런 놈은 언젠가 천벌을 받을 거다!”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를 악물며 작게 욕설을 퍼부었다.한지훈은 과거 수차례 용국을 위기에서 구했고, 몇 달 전에는 용경을 구하기까지 했다.한지훈이 없었다면, 오국 연합군은 이미 용경을 점령해 그들은 지금의 평화로운 삶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그렇기에 용국 사람들은 한지훈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한지훈조차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네가 왜 나서서 소란을 피우는 거지? 설마 내 형제 동방 오우가 내린 통첩을 모른단 말이야? 그러다 양씨 가문 전체를 해치우고 싶기라도 해?”동방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비웃었다.“동방영! 너... 너...”양령아는 손가락으로 동방영을 가리켰지만, 분노에 차 제대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한지훈은 동방영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다가, 곧장 출구 쪽 휴게소로 걸어갔다.“아이고, 북양왕께서 몸이 허약하신가 보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쉬어야 한다니? 어서, 북양왕께 보약을 한 상
“한지훈이 광명존을 생포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동방 오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여전히 고금의 현을 매만지고 있었다. “사실입니다! 들리는 말로는, 광명존의 스승인 우천존도 당시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용이 나타나 우천존을 물리쳤고, 한지훈은 광명존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다고 분석됩니다!”노인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오! 광명존을 이길 수 있다니, 그에게 다른 비장의 카드가 있는 게 분명하군. 진법인가?”동방 오우는 무표정하게 물었다.“들리는 말로는, 한지훈이 진법에 능하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백성과 그 일당이 한씨 가문 별장에서 죽을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도련님께서는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응?”동방 오우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순식간에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노인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젊은 남자의 시선을 감히 마주하지 못했다. 비록 이 둘이 모두 오성 천왕 경지였으나, 동방 오우는 어려서부터 용호산에서 진법을 배우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짧은 십여 년 만에 용호산의 핵심을 깨우치며, 진법으로 사람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갈 정도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그런 무형의 살인 기술은 노인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같은 경지임에도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게 했다.“진법으로 따지자면, 한지훈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지금쯤 그는 찬란한 명성을 안고 돌아가리라 기대하고 있겠지? 동방영에게 공항으로 가서 북양왕을 맞이해 주도록 해라. 물론, 그에게 적당한 본때를 보여주며 말이다!”“도련님, 그 말씀은…?”노인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동방 오우를 바라보았다.“간단해. 북양왕이 귀국했을 때,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고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체면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보고 싶군! 그리고, 한지훈에게 가까이 가는 자는 그 가족까지 모두 멸할 거라는 소문을 퍼뜨려라!”“알겠습니다!”노인은 서둘러 물러났다.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영
“원가주, 무엇이 그리 겁이 납니까!”동방소는 냉랭한 시선으로 원상용을 바라보았다. 비록 그가 자신보다 몇 세대 어린 후손이었지만, 결국 원씨 가문의 가주로서 자신과 대등하게 대화할 자격이 있었다.“겁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원씨 가문에 또다시 상복을 입히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한지훈이 돌아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가 우리를 청산하기 시작한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모를 테지만, 진왕의 반란 때조차 무적천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습니다!”“다시 말해, 그가 우리를 건드리면 무신종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이…이것이야말로 중대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원상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점차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허허!”그러자 동방소는 냉소를 터뜨리며 말했다.“한지훈이 비록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이 동방 가문에서 한 수밖에 두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십니까?”사대 가문의 100여 년 전 가주로서, 동방소는 결코 모든 것을 하나의 계획에 걸지 않았다.“오호? 동방 가주님께서 또 다른 수를 준비해 두셨단 말씀입니까?”원상용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동방소를 바라보았다.“다들 귀를 가까이 대보시오.”동방소는 천천히 입을 열고, 이후 모두의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였다.“헉!”모두가 그의 말을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정말입니까, 가주님?”원상용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흥, 조금의 거짓도 없습니다. 동방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동방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언했다.“동방 가주님, 동방 가문의 뿌리가 이토록 깊은 줄은 몰랐습니다!”원상용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음산한 표정을 지었다.“하하하... 이 후수가 없다면, 제가 정말로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걸었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동방소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천하는 여전히 우리 사대 가문의 것입니다! 겨우 한씨 가문의 남은 잔재가 어찌 우리와 비교
한지훈!동방소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만약 만약 원한을 따지자면, 동방 가문은 결코 원씨 가문에 비해 적지 않았다.더군다나, 얼마 전 동방염이 한지훈의 손에 죽은 치욕을 반드시 갚아야 했다! 4대 가문은 한지훈이 결코 함부로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알려 주어야 했다. 수십 년 동안 4대 가문은 용국의 경제 맥락을 쥐고 있었고, 조정의 대신들도 그들의 체면을 구기지 못했다. 그러나 원성천이 전사한 지금, 4대 가문의 위세는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많은 이들이 4대 가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러한 결과의 원인은 모두 한지훈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동방염이 죽은 후, 동방 가문은 수십 년 동안 은거해 있던 가주를 불러내기로 결정한 것이다.이번에 한지훈이 이집트로 간다는 정보와 그의 목적, 그리고 그와의 접촉 방식까지 모든 정보를 동방 가문이 직접 광명존에게 전달했다. 광명존 측에서도 한지훈이 이집트에 도착하면, 수많은 함정과 난관이 닥치도록 설계를 해 두었고 이번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확언했었다.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동방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이때, 동방 가문의 대청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있었고, 심지어 원씨 가문의 대표까지 자리하고 있었다.“동방 가주님, 제가 기억하기로 반달 전, 당신께서 친히 말씀하셨던 것이죠? 이번에야말로 한지훈이 날개가 달렸더라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무사히 귀국했다니요?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우리 원씨 가문은 가주님의 계획을 위해 적지 않은 인력과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흑병대의 정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십니까?!”원상용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며, 얼굴 가득 분노를 드러냈다.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하나의 계획이었지만, 그 뒤에는 사대 가문이 얼마나 많은 돈과 인맥을 동원했는지 모른다. 처음에 동방소는 이번에 천신계 강자가 직접 나섰으니, 한지훈이 100명이라고 해도 반드시 이집트에서 죽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
“결국 그는 야망을 이루지 못하고, 다섯 개의 용심을 최종적으로 융합하려다 폭사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용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요.”“그래서 광명파가 용국을 유난히 주목했던 겁니다. 특히 정 씨 어르신이 이 용심들을 찾는 경로도 신경을 썼고 말입니다.”교지혁의 설명에 한지훈은 큰 충격을 받았다.백여 년 전, 정 씨 어르신이 다섯 개의 용심을 손에 넣었다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그 당시가 바로 용국의 기운이 상승할 절호의 시기였던 것이다!하지만 융합의 실패로 인해 정 씨 어르신은 죽음을 면치 못했고, 이는 용국의 기운을 쇠락하게 하여 이후 백 년의 치욕을 불러왔던 것이다.“용심이 나라의 기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까?”한지훈이 놀라며 물었다.“물론입니다. 우리가 가진 자료에 따르면 적어도 용국의 기운은 용심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다섯 개의 용심을 얻어 성공적으로 융합하면, 그 나라는 매우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예를 들어, 성당이나 선진 시절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융합이 실패하면 나라는 쇠락하게 됩니다. 송 태조 역시 그러한 실패로 인해 불분명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송나라 이후로 용국은 더 이상 강성해진 적이 없지 않습니까?”교지혁은 흑병대의 2인자로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을 마치 일반적인 사실처럼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백여 년 전, 부상 사람들이 찾으려던 것도 용심이었단 말입니까?”한지훈이 갑자기 머리를 들어 묻자, 교지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찾지 못했습니다! 용심이 분명 용국에 있지만, 바다에 빠진 바늘을 찾는 격이니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용심을 찾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이 말을 들은 한지훈은 의아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용심을 찾는 데도 특별한 방법이 필요합니까?!”그러자 교지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답 대신 가슴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한지훈에게 건넸다. 한지훈은 그 책을 받아 들자마자 묘
공항 VIP 대기실 안, 한지훈과 양령아가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의 키 큰 젊은 남자가 대기실로 들어섰다.그는 문 입구에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곧 한지훈과 양령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는 빠르게 걸어왔다.“한 선생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진 총사령관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젊은 남자는 한지훈을 자세히 살피더니, 그가 뜻밖에도 조금도 다치지 않은 모습에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한지훈과 광명존 사이의 대전은 그 역시 들어 알고 있었고, 그 대결은 유천존 같은 천신급 인물도 끌어냈다! 그런데도 한지훈이 온전히 살아 돌아왔다니, 이는 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진우의 조수로서, 교지혁은 한지훈이 결코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욱 공손히 그를 대했다. 흑병대의 제일 조수의 신분인 그는 많은 명문 가문의 가주들조차 그 앞에서 먼저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그런 교지혁이 한지훈에게 이토록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본 양령아는 적잖이 놀랐다.한지훈이 비범하긴 하지만, 흑병대조차 경외심을 보일 만큼은 아니잖아?!게다가 흑병대는 용국에서 수백 년간 가장 신비로운 조직으로 군림해 온 곳이었다.흑병대에는 얼마나 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그 조직을 통솔하는 진우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이는 작은 나라 하나쯤은 한순간에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강대한 집단이었다.“안녕하십니까!”한지훈도 공손히 손을 내밀어 교지혁과 악수를 나눴다.교지혁의 눈빛에는 한지훈에 대한 존경심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고, 한지훈이 병영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한지훈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전설과 같았고, 그의 행보는 교지혁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까지 했다. 한지훈이 총사령관직을 내려놓은 이후, 교지혁은 그의 모든 행동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주시하고 있었다.그 이후에도 한지훈이 하는 모든 일은 교지혁의 확신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이 남자는 언젠가 반드시 인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우천존 님, 이제 저희는...”두펑 가문의 몇몇 사람들은 어두운 안색을 한 채, 우천존을 바라보았다. 광명존이 한지훈에게 끌려간 상황에, 그들은 든든한 오른팔을 잃게 되었다. 사실 여태 두펑 가문은 항상 광명존에만 의지해 왔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우천존의 명령에 따르는 것 외에는 더욱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수만 명의 대군들도,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4성 천왕 한 명과 비교하면 그들은 그저 땅강아지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 “돌려보내!”우천존은 이를 악물고는 어쩔 수 없이 철수를 외쳤다. 그 말에 나국화는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 이는 우천존의 자존심이 제대로 구겨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광명존이 끌려간 사실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일이었다. “오늘의 일에 대해, 누구라도 감히 소문내고 다니면 죽을 줄 알아!”우천존은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무려 우천존이 4성 천왕한테 짓밟히게 되었고, 게다가 끊임없이 도발을 당하게 되었으니, 이 사실이 그대로 소문이 나면 우천존은 얼굴을 들고 다닐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우천존이 멀리 떠나고 나서야, 제이슨은 재빠른 걸음으로 한지훈의 뒤를 따랐다. “한 선생님, 역시 위엄이 대단하시네요! 저... 저 이제부터는 한 선생님의 종이 될 겁니다! 아니... 차라리 개가 되겠습니다! 저 정말 진심으로 한 선생님을 존경하고...”제이슨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지훈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손을 흔들며 그의 아첨을 끊었다. “가능한 한 빨리 비행기를 안배하고, 난 바로 용국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너는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아시란치 가문에 남아 있어. 만약 무슨 소식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보고하고. 나의 전화번호는 이거야!”한지훈은 제이슨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네며 말했다. “네, 주인님. 안심하세요. 저... 저 아시란치 가문에 뿌리를 박고 동태를 살필 것입니다. 일단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반드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구든지 막론하고 미치지 않고서야 한지훈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막아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설령 한용이 나선다 하더라도, 그를 막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 최선의 선택은, 한지훈을 풀어주고 그가 멀리 가게끔 놔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광장을 나서자마자 한지훈은 수만 대군에 의해 겹겹이 포위되었다. 그지없이 큰 포구에, 경중 기관총의 검은 총구들이 모두 일제히 한지훈을 겨누었다. 크게 긴장한 진강이 머뭇거리고 있는 한편, 군인들은 순식간에 길을 내주었다. 뜻밖의 상황에 진강은 내심 감격하였다. 천군만마 속을 누비며 유유히 지나가는 것 자체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기백과 위용이 필요한 일인가? 진강은 자신이 이번 생에 뜻밖에도 이렇게나 높은 대우를 누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겨,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안전지대에 도착하자마자, 진강은 격동되는 말투로 물었다. “한... 한 사령관님, 방금 왜 우천존을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그놈을 살려두면 아마도...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자 한지훈은 고개를 돌려 진강을 흘깃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넌 내가 정말 천신계의 강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예상치 못한 한지훈의 반문에, 진강은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지훈은 자신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펼칠 수 있는 진법의 위력은, 노인의 1000분의 1도 안된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분명히 노인의 위세를 느끼기는 했다. 어마무시한 기운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저 겉핥기만 한 셈이었다. 사실 방금 광명 좌우사를 격살할 때도 단지 진법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진법만으로는 두 사람을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는 진법을 펼치는 동시에, 손가락을 짚고는 수십 개의 침을 쏜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 핏물 속에 비침이 숨어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