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다름 아닌S시 시청의 조 국장 조신호와 감독기관의 한 과장 한휘창이다.두 사람은 S시 재벌들이 꿈에 그리는 인물들이다.S시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이 두 사람의 손을 거친다고 봐도 무방하다.서로 눈빛교환을 한 둘은 큰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둘은 비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안의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기겁하며 달려갔다.“그만! 그만해!”조신호가 외쳤다.구충모가 고개를 돌렸다. 조신호와 한휘창을 본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이내 웃음을 머금고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조 국장님, 한 과장님, 어떻게 오신 거예요?”조국장, 한과장의 등장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벙졌다.3분도 채 되지 않아 그 둘이 도착했다.그리고 모든 이의 시선이 또다시 한지훈을 향했다.구충모도 정신 차리고 한지훈을 보았다. 믿을 수 없는 표정이다.한편, 조신호와 한휘창의 눈엔 구충모가 들어올 리 없다. 그들은 모두를 뒤로하고 한달음에 한지훈 앞에 섰다. 그리고 허리를 냅다 굽히며 예의를 갖춰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빨리 도착하지 못한 점 양해 부탁합니다.”한지훈은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로비가 또다시 쥐은듯이 조용했다.그들은 오늘 자신이 몇 번 경악하는 지 셀 수 조차 없었다.조신호와 한휘창마저 한지훈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들은 한지훈 앞에서 자책까지 서슴지 않았다.이....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세상에! 조 국장과 한 과장이 진짜 왔어. 한지훈에게 머리를 조아리다니…”“이 한지훈은 듣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어우 무서워.”“이제 구 씨 가문은 끝났어...”사람들은 모두 소곤대기 시작했다.구충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조신호와 한휘창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구충모가 반응하기도 전에 조신호가 서류들을 한지훈에게 건네며 말했다.“말씀하신 고지서입니다. 구 씨 가문이 가격을 인하할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고지서를 보내 한 선생님께 5100억 원을 배상하도록 요구했
구충모는 연이어 발생하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당혹스러움과 무서움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한지훈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야 억지스러운 미소를 쥐어짰다.“이게.......모두 다 너 때문이라고?”한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모두 말해주고 있었다.털썩!방자하던 구 씨 가문의 가주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이 발이 되도록 한지훈에 용서를 빌었다.“제발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 삼촌이 눈이 멀어서 그런 거야. 우리 구 씨 가문을 제발 한 번만 살려줘. 5100억 원은 너무 많아.......우리 가문의 재산을 아무리 탈탈 털어도 5100억 원은 안 돼......”구충모가 바닥에 엎드린 것을 본 부하들도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망연자실한 구경도 벌벌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눈몰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한지훈에게 기어갔다“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제발 우리 아버지와 가문을 한 번만 봐줘......”로비는 온통 그들 부자의 애원 소리로 가득 찼다.방자하던 구 씨 부자는 철저히 무너지고 말았다.이걸 지켜보던 이들은 한지훈의 신분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가 바로 실종된 지 5년 만에 돌아온 한지훈이라고?그는 이미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조신호와 한휘창마저 굽신거리는 걸 보면......보통 사람이 아니다.S 시에 피바람이 불까?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발밑에 엎드려 있는 구충모에 말했다.“구충모, 너와 난 삼촌, 조카라고 부를 정도의 사이가 아니잖아! 어딜 감히!”한지훈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한 씨 가문이 곤란에 봉착했을 때 구 씨 가문이 제일 번저 배반했다.어이없는 호칭이 역겹다.그러자 구충모가 급하게 말을 바꿨다.“네네네, 한 선생, 너그럽게 한 번만 우리 구 씨 가문을 용서해줘요.”한지훈이 잠시 고민에 빠지는 듯했다.“별장은 시장 가격만 받고 나머지는 내 카드에 다시 원상 복귀시켜. 그리고 유통되고 있는
한지훈이 보헤미를 나서자마자 서경희는 한지훈을 호출했다. 회사에 잠깐 들리라고 할 뿐 별다른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강운 그룹에 도착한 한지훈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무장 부대가 회사의 모든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다.그리고 문밖에는 수십 대의 군용차량이 늘어서 있었다.한지훈이 안으로 들어섰을 때 로비는 삼삼오오 소조로 나뉘어 무장한 채로 각자 맡은 구역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한지훈은 갸우뚱거리며 걸음 옮겨 회의실에 도착했다.문밖에도 여전히 4명의 무장군이 엄숙한 표정으로 살기를 한껏 품어내고 있었다.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지훈이 걸어들어갔다. 거기에는 강운 그룹의 고위층과 강 씨 가문의 식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두 손까지 모은 채로 서 있었다. 강준상이 앉아야 할 중심 자리에 오만한 태도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군복 차림에 군의모를 눌러쓰고 그는 두 스타였다. 그것은 중장을 의미했다.연 씨 가문의 길정우!그가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콧대를 높이며 두꺼운 입술을 달싹이면서 서늘한 눈빛으로 걸어 들어오는 한지훈을 힐끔 보았다. 그의 입가에 거만한 미소가 걸렸다.회의실에 들어선 한지훈은 입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길정우와 시선을 맞췄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는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길정우가 입을 열었다. 차갑게 식은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가 공황이 발작할 만큼 섬뜩했다.“한지훈, 오랜만이야.”한지훈은 마음속 타오르는 불꽃을 억누르며 담담하게 받아쳤다.“그래, 오랜만이지.”연 씨 가문의 길정우는 예전에 한지훈과도 친하게 지냈었다. 둘의 사이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필경, 길시아와 한지훈은 죽마고우였으니 말이다.이때 보다 못한 서경희가 한지훈에 달려들며 폭언했다.“한지훈, 돌아올 생각은 했어? 중장님이 직접 강운 그릅까지 오시게 만들어야 했어? 얼른 엎드려서 사죄하지 못 해?”서경희가 서두를 떼자 가만히 잠자코 있던 강 씨 가
한지훈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우연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한지훈을 잡았다.“안 돼요. 지훈 씨. 그만해요. 제가 빌게요. 제발......”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다. 강우연이 자신 때문에 또다시 힘들어하고 있다.그녀에게 미안할 뿐이다.한지훈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내가 해결할게.”말을 끝으로 고개를 돌린 한지훈은 조금 전 부드러운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해 주위를 한번 슥 훑었다.“다시 묻는다! 누가 때렸지?”강운 그룹의 고위층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렸다. 강 씨 가문의 식구들도 서로를 바라볼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길정우옆에 서있던 강준상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내가 때렸어! 네가 어쩔 거야! 대신해서 복수라도 할 셈이야?”강준상이 한지훈을 쏘아봤다.한지훈의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왜 때는 거야!”강준상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왜냐고? 내가 그녀더러 당장 무릎을 꿇고 중장님을 각진히 모시라고 했어. 네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고 했거든. 근데 이 년이 무릎도 꿇지 않고 입도 열지 않는 거야! 그러니 내가 마땅히 손 좀 봐줘야잖아?!”한지훈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몸을 숨긴 강우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한지훈의 갑작스런 시선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그녀는 한지훈 때문에 맞은 것이다.한지훈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의 여자를 누구나 다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한지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강준상에게 다가갔다.전에 없던 행동에 강준상은 덜컥 겁이 났다. 그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보였다.“한지훈! 뭐 하는 거야! 당장 멈춰!”강문복등 세 사람은 서둘러 강준상의 앞을 막았다.“한지훈, 섣불리 행동했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여기는 강운 그룹이고 중장님도 계신데 네가 이러면 돼? 이건 사형감이라고!”강문복이 흥분했다. 그는 한지훈이 두려웠다.그것은 한지훈의 독기로 가득 찬 그런
다급한 나머지 그는 고개를 돌려 강우연을 꾸짖었다.“강우연, 이놈이 네가 선택한 좋은 남자라고? 이것 좀 봐. 지금 뭐하려고 하는지!”그 말을 들은 강우연이 정신을 차리고 한지훈의 팔을 잡았다. 그녀가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지훈 씨! 그만해요! 저의 할아버지잖아요...... 그만둬요. 네?”한지훈은 그런 그녀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그는 또다시 화를 집어삼켰다. 몸을 돌려 강준상을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제야 강준상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는 한지훈을 쏘아보고는 언제그랬냐는 듯이 웃으며 길정우를 바라봤다.“중장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끌고 가셔도 상관없어요. 이놈은 원래부터 강 씨 가문과 털끝만큼도 관계 없어요.”한지훈을 불러들여 길정우의 화를 누그러뜨릴 심산이었다.그러니 강우연이 맞을지언정 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때 길정우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지훈 앞으로 다가섰다. 둘 사이에 불꽃이 튕겼다.“만나서 반가워. 다음 달 8일이면 나의 취임식이 있을 거야. 그날 저녁에 넌 나와 내 동생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전 S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우리 연씨 가문에 사죄를 하게 될 거야.”차가운 그의 목소리는 섬뜩했다.하지만 한지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내 생각엔 정반대로 상황이 흘러갈 거야. 너의 연 씨 가문이 나한테 빌며 용서를 구하겠지. 고인이 된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까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될 거야.”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실내 온도도 영하로 떨어지고 있는 듯했다.그렇게 회의실 내부를 지키고 있던 길정우의 부하가 반사적으로 나서며 전투준비를 했다.모두가 소름이 돋는 살기를 느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겁에 질린 자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노란 오줌이 다리를 타고 흐르기까지 했다.길정우가 냉소를 지었다.“너무 나대지 말아. 너의 뒤에 한민학이 있다는 걸 알지만 다음 달이면 나도 군단장이야. 그러면 한민학이랑 같은 레벨
한지훈의 말에 강우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불만 가득한 그들의 눈초리, 그녀도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비록 억울했지만 여기는 강 씨 가문이고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강학주가 저 멀리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내심 그녀가 이 강 씨 가문을 떠나길 바랐다. 그러면 덜 괴로울 수 있지 않을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다른 이들은 그저 강우연을 내쫓고 싶었다.강우연이 한지훈과 잡은 손을 풀며 입을 열었다.“지훈 씨, 미안해요. 여기는 우리 집이고 저의 가족들이에요. 난.......그들을 떠날 수 없어요. 미안해요......”강우연이 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미안하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한지훈은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토닥이며 말했다.“그럼, 내가 남기로 한 너의 곁에 함께 있을게! 너의 앞에서 모든 비바람을 막아줄게.”강우연이 고개를 들어 한지훈을 바라봤다. 감동한 그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이 남자는 자신을 이렇게 아껴주는가?“지훈 씨, 난......”더 말하려고 했지만 입가에서 맴돌 뿐 전할 수 없었다.한지훈이 씩 웃고는 강씨 가족들을 두러본 후 강준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일주일도 기다리지 못해요?”강준상은 눈썹을 들썩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이렀다. 이윽고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좋아! 더 기다려 줄게. 네놈이 누굴 찾아서 어떤 방벙으로 연 씨 가문과의 일을 처리하는지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어!”말을 마친 강준상은 가족들을 데리고 회의실을 나갔다.넓은 회의실에는 강학주 일가와 강우연 그리고 한지훈만 남았다.강학주는 한지훈의 품에 안겨 울먹이는 강우연이 마음이 아팠다. 위로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서경희가 제지했다.“뭘 봐! 도울 힘은 있고? 그러다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튄다고! ”서경희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넌 아무
한지훈은 표준우의 어깨를 밀치고는 강우연의 허리를 감싸고 유유히 사라졌다.표준우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내가 뭘 하러 온 거지?고백하러 왔는데 한지훈이 훼방을 놓았다!짜증이 났다.표준우는 재빨리 따라가 한지훈의 어깨를 잡았다. 그대로 쓰러뜨리려 했지만 한지훈은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관성 때문에 표준우가 비틀거리다 하마터면 똥을 밟을 뻔했다.“너!이!”표준우가 한지훈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한지훈! 이 몹쓸 놈아! 네가 우연 씨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좋게 말할 때 우연 씨에게서 떨어져! 오직 나, 표준우만 우연 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원하는 모든 걸 사줄 수 있어. 그런데 너는 그럴 수 없잖아!”표준우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 모양은 마치 장난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한지훈은 가볍게 몸을 돌려 표준우를 노려보며 미소 지었다.“뭐? 뭐든 해줄 수 있다고?”“그래! 난 할 수 있어! 난 표 씨 가문의 귀공자야. 난 연봉이 20억 원이 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가문의 재산은 500억 원이 넘어. 우연 씨가 원한다면 차도 사줄 수 있고 마음껏 여행도 시켜줄 수 있어. 하지만 넌? 너의 가문은 5년 전에 이미 풍비박살났지. 그런데 무슨 수로 우연 씨의 행복을 책임질 거야?”표준우의 얼굴에 점점 생기가 돌았다. 그의 미소에 비웃음이 담겼다.이것이 바로 격차!이것이 바로 재벌과 빈털터리의 격차이다.표준우는 금전상에서 뒤지지 않는 우월함과 자부심이 있다.잠자코 듣고 있던 한지훈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강우연을 더욱 감싸 안으며 그녀에게 물었다.“우연아, 뭐든 다 줄 수 있다고 하는데 받아줄래?”강우연이 한지훈을 흘겼다. 그리고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준우 씨, 미안해요. 그 마음을 받을 수 없어요. 전 이미 남편이 있고 아이도 있어요.”표준우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강우연, 바보인가?“우연 씨, 잘 생각해야 해요. 이놈은 연 씨가문에 폐를 끼쳤어요. 연 씨 가문이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것보다 전 진심으로 우연
전화를 끊은 표준우는 싸늘한 시선으로 한지훈과 강우연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걸렸다."우연 씨, 두고 봐요. 반드시 내 여자로 만들고 말 테니까."차갑게 중얼거린 표준우가 신경질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포르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현장을 벗어났다.한편, 황대식은 그의 아지트나 다름없는 제이드 바의 호화로운 룸에 앉아 있었다.가죽 재킷을 대충 걸치고 시가를 뻑뻑 피워대는 그는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저처럼 부상을 몇 군데씩 달고 있는 부하들을 서늘하게 바라보던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얘들아, 2억짜리 의뢰다. 이번 일만 제대로 끝마치면 당분간은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거다."얼마 전 한지훈에게 잔뜩 얻어터진 그들의 얼굴엔 멍이 채 가시지 않았다."형님, 대체 무슨 의뢰 비용이 2억이나 된답니까?"아부하듯 슬쩍 다가온 부하가 조심스레 물었다."표씨 가문 도련님 지시야. 적당히 사람 하나만 잡아 오면 돼."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한 황대식이 제 부하들을 거느리고 차에 올랐다. 표준우가 지시한 장소로 봉고차 두 대가 벼락같이 달려갔다.마침 한지훈은 딸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생필품을 사러 마트로 출발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모퉁이를 도는 순간, 눈앞에 봉고차 두 대가 그들을 턱 가로막았다.깜짝 놀란 강우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지훈 씨, 저 사람들 뭐예요?"눈앞의 봉고차를 싸늘하게 노려보던 한지훈이 입을 열었다."진정해. 별일 아닐 거야."쇠파이프를 쥔 열 몇 명의 건달들이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리며 세 가족이 탄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위협적으로 다가온 몇몇이 쇠파이프로 차체를 쾅쾅 내려쳤다."어이, 좋은 말로 할 때 내려. 미적거리다간 차를 박살 내는 수가 있어.""뭐야, 꼴에 신형 BMW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인가 봐. 이번 건은 좀 짭짤하겠어."저희끼리 지껄이던 건달들이 탐욕스러운 눈길로 차를 바라보았다.강우연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고운아, 괜찮아. 엄마
한지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도청전인?”국왕은 지금까지 도청전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다.하지만 한지훈이 추천한 인물이라면 믿을 만했다.“그럼 짐이 그에게 관직을 하사하여, 나라를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겠는가?”국왕이 신중하게 묻자,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용국이 위기에 처하면 그가 스스로 나설 것입니다. 그는 무종 사람으로 자유로운 삶에 익숙합니다. 오히려 관직을 주면 그에게 부담이 될 것입니다.”“제가 그를 국왕께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저는 공개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오륙으로 떠나기 전까지, 적어도 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국왕은 이 말을 듣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한지훈, 그대는 진정 나라의 기둥이로구나! 가장 먼저 찾은 것이 아내와 자식이 아니라 짐이라니! 짐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구나!”위기가 해소되자 국왕의 표정도 한층 부드러워졌고, 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오직 국왕 폐하의 근심을 덜기 위해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제 할 말을 다 했으니, 저는 물러나겠습니다.”한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국왕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한지훈, 이번 곤륜에서의 경험이 상당했을 텐데... 지금의 그대는 어느 경지인가?”잠시 침묵이 흘렀다.“천신입니다!”짧고 날카로운 대답이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고, 순식간에 한지훈의 모습이 사라졌다.“천신...?!”국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지훈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그의 마음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국왕 폐하, 방금 누군가 다녀갔습니까?”진우가 문을 밀고 꼭대기 층 테라스로 들어오며 말했고,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그래, 한지훈이었다!”국왕이 담담히 대답했다.“한지훈이라고 하셨습니까?!”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귀신이나 환영 같은 걸 믿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한지훈은 이미…“쓸데없이 놀라
이 시각, 강중에서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도는 것과 달리, 용경은 한층 더 고요했다.용각에서 국왕은 홀로 천자각 꼭대기에서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지금 한지훈이 부재한 상황에서, 용국은 반드시 그를 대신할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그러나 유청은 그 기준에 명백히 미치지 못했다.적어도, 실력이나 경지에 있어서 유청은 열국을 위압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바로 그때, 한 사람의 그림자가 불쑥 내려앉았다!“누구냐!”국왕은 즉시 돌아서며 크게 외쳤고, 동시에 허리에 손을 뻗어 검을 뽑으려 했다.“국왕 폐하, 저입니다.”스윽—!익숙한 목소리를 들은 국왕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한... 한지훈?!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국왕은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훑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너... 너는 사람이냐, 귀신이냐?”국왕은 말을 하며 몇 걸음이나 물러섰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과연 한지훈이었다!다만, 지금의 한지훈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고, 그의 분위기 역시 확연히 변화한 듯했다.예전의 한지훈에게서는 절대적인 위엄이 느껴졌다면, 지금의 한지훈은 더욱 깊고 심오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국왕 폐하,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하산한 뒤에서야 국상을 알았지만, 다행히 운 좋게도 죽지 않았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죽지 않았다니?!”국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한지훈! 네 녀석... 나를 기절초풍하게 만들 뻔했구나! 네가 정말 죽었다면, 용국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겠느냐!”국왕은 말하며 성큼 다가와 한지훈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세차게 흔들었다.“하지만, 예 씨 부부는 저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두 부부 덕분입니다! 그 부부가 목숨을 걸고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수정층 아래에 누워 있는 것은 바로 저였을 것입니다!”한지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래… 예 씨 어르신
황약사가 말을 마치자, 옷자락을 휘날리며 앞마당을 나섰다.일반인들은 황약사가 의술이 뛰어나고 그 실력이 아무도 따라올 수 없다고만 알고 있었다.하지만 극히 일부만이, 황약사가 진정한 천왕계 강자이며 무적천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실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설령 단해룡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황약사의 손에서 쉽게 이득을 보지 못할 터였다.황약사의 예상대로, 한지훈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장씨 가문이든 단해룡이든 가슴 한편에 약간의 설렘이 부풀어 올랐다. 한지훈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내와 자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장씨 가문의 사람들이 괜히 희생된 것도 아니고, 단해룡이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예충기가 살아 있다면 감히 나서지 못했겠지만, 그마저도 곤륜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젠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노 씨 어르신 무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각 문파와 접촉했고, 화산과 항산 역시 이에 호응하며 손을 잡았다. 이제 강우연이 강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바로 그녀를 찾아가 책임을 묻겠다는 움직임이 퍼졌다!겉보기엔 용국이 평온해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거센 격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사대 가문 중에서도 특히 동방 가문과 원씨 가문이 한지훈과 가장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이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가주님, 듣기로는 노 씨 어르신과 무맹이 이미 열 개가 넘는 문파를 규합하여 한씨 가문을 찾아가 응징할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원상용은 차분한 시선으로 보고한 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 원씨 가문의 원한이 그냥 묻힐 수는 없지!”“한지훈, 네가 살아 있을 때 우리 원씨 가문 사람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갔다. 이제 네가 죽었으니, 우리가 잔인하다고 탓하지는 말아라!”원상용은 말을 마친 뒤 보고를 한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원상호, 네가 원씨 가문을 대표하여 강중으로 가 강우연에게 책임을 물
이때, 약왕파에서 생방송을 지켜보던 장로들이 하나같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비록 약왕파와 한지훈 사이에는 오래된 원한이 있었으나, 한지훈의 삶은 의롭고 당당하여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하아! 북양왕의 생애가 너무나도 짧았구나. 만약 그에게 10년만 더 주어졌다면, 이처럼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군.”“수만 도에 달하는 고온 속에서라면, 누구라도 수증기로 변해 사라졌을 것이야. 하지만 제릉산에 의관총이라도 마련된 것이 그나마 영광이라 해야겠지.”장로들은 저마다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오직 오 장로만은 깊은 눈빛으로 화면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말했다.“내 생각엔 며칠 안 가서 무종의 사람들이 우리 문파를 찾아올 거요. 우리 약왕파는 이미 한지훈과 엮여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소?”그의 말에 주변 장로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오 장로, 자네가 한지훈에게 당한 게 있다 해도, 그의 시신이 아직 식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소!”대장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비록 무종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해도,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야 했다.한지훈이 막 숨을 거둔 상황에서 즉각 손절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문파의 명예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터였다.“제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약왕파 전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단해룡이나 원씨 가문, 동방 가문 같은 세력은 논외로 치더라도, 장씨 가문, 천산, 화산, 항산의 인물들이 한지훈을 가만히 두겠습니까?”“그들 중 어느 누구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한지훈을 건드리지 못했던 것은 오직 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예충기까지 함께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제가 들은 바에 따르면, 예충기 부부마저도 이번 사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그리고, 헬기를 통해 촬영된 그들의 시신 사진도 이미 공개되었습니다!”뭐라고?!앉아 있던 장로들은 일제히 경악을 금치 못했
두 눈을 뜬 도청 전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당초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신계 경지를 돌파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20대의 나이에 천신이라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이내 도청 전인은 천천히 일어나 옆에 놓인 보자기 하나를 들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아래로 걸어갔다. 비록 도청 전인은 아직 천신경로 돌파하지는 못했지만, 그 경지까지 반 보 정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도청 전인은 진법에 대한 인식은 깊게 가지고 있었다. 그 또한 체내의 자기장을 동원할 때마다, 발 밑에서는 두 갈래의 회오리바람이 떠오르면서 어느 정도의 기운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곤륜에서는, 한지훈은 천천히 대전을 빠져나왔고, 그의 발은 지면에 닿을 때마다 뇌해의 고온 양향으로 융해된 지면에 층층이 잔잔한 물결을 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치 물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한지훈은 다시금 예충기 부부의 시체 앞에 다가와 허리 굽혀 절을 하였다. 그는 여전히 비통한 마음이었다. 만약 생사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절대 이 두 노인을 자신과 동행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한지훈은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가슴을 쳐들고 산 아래로 걸어갔다. 한지훈이 자리를 떠난 후, 예충기와 정봉교의 시체 옆에는 기이하게 피어난 금색의 작은 꽃 두 송이가 나타났고 수정과도 같은 지면에는 약간의 균열이 나타났다. 한지훈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30분도 안 되어 작은 뜰로 다시 돌아왔다. 작은 뜰은 이미 텅 비었고, 신한국과 강만용조차도 종적을 감췄다. 결국 한지훈은 작은 뜰에서 잠시 머물다가 곤륜산 아래로 걸어갔다. 지금 이 순간 용국은 온 나라가 비통에 잠겨있었다. 용국의 백성들은 한지훈의 공적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지훈을 위한 국장이 치러지는 날, 수백만 명의 용국 백성들은 함께 거리로 나가 한지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몇 줄로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한지훈은 급히 일어섰다. 후! 이때, 제단 주위에서는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더니 곤륜산 전체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것이 한지훈의 감지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바로 이 대지의 주재자라도 된 것처럼, 그는 손 하나 발 하나로도 얼마든지 이 대지와 긴밀하게 융합할 수 있었다. 천신! 순간 한지훈의 마음속에서는 이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이내 그가 주먹을 쥐자, 비할 데 없이 강력한 힘이 체내에서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 기세는 마치 이 세상에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 같았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려났다. 백룡심을 융합시키고 나니, 또 다른 높은 경지에 다다르게 된 건가? 한지훈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만 해도, 오로지 육안만으로도 수십 미터 높이의 돌로 쌓은 대전을 관통할 수 있었고 하늘의 노을빛까지 보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신의 경지에 다다른 징조이다. 게다가 천생서문에 따르면, 일단 천신계로 돌파하기만 하면 하늘에 노을빛이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마침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바로 그 화려한 노을빛이었다. “엄마, 저거 봐, 불광이야!”한편 그 시각, 천부성에 있던 한 소녀가 하늘의 노을빛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어린 소녀의 손가락 방향을 따라 많은 사람들은 그 눈부신 빛을 바라보았다. “어머, 진짜 불광이네. 영험한 보살이 나타났나 보구나!”“다들 얼른 무릎 꿇고 절하세요!”대낮에 어떻게 불광이 나타날 수 있는 거지? 어떤 사람은 단추까지 채운 채 공손하게 무릎 꿇었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뭐가 됐든 이 노을빛은 수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한편 저 멀리 유럽에서는, 대전에 있는 한 백발의 노인은, 세계 각지에서 전송된 동영상 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는 하늘에 비춘 노을빛을 보고는,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용국에 또 천신 강자가 탄생한 거야? 마찬가지로 오르크스산에서는, 백발이
마치 금속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처럼 무섭게 들렸다. “칵!”바로 그때, 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은제 상자는 떨어지게 됐다. 뒤이어 칠흑같이 어두웠던 제단은 갑자기 대낮처럼 밝게 비쳤다. 한지훈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방금 은제 상자가 놓여있던 곳에서는 눈부신 백광이 나타났다. 한지훈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주시한다 하더라도 그 백광 뒤에 가려진 사물을 전혀 볼 수는 없었다. “설마 이게 바로 백룡심인 건가?”한지훈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천생서문에 있는 백룡심에 대한 기록을 다시 회상했다. 백룡심을 융합시키는 건 다른 용심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이유는 백룡심은 사실 생사상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년불멸의 용심은 영원히 살아있기에, 백룡심을 융합하려는 자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렇게 생사가 맞아떨어져야 백룡심이 비로소 하나가 된다. 다만 문제는 그 조건이 매우 가혹하다는 것이다. 백광이 제단 전체를 밝게 비추는 가운데, 음양어 문양도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지훈은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쿵쿵쿵!” 심지어 한지훈은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땅 위의 제단을 다시 한번 올려다본 한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른바 생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결코 이대로 허무하게 자결한다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땅에 그을린 몇 갈래 금은 모두 음양어로 몰리게 됐는데, 어느새 음양어의 한쪽은 이미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럼 남은 반대쪽은 빨간색으로 물들여야 한다. 그 빨간색은 바로 피였다. 이내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뽑아 들어 직접 자신의 손목을 찔렀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지훈은 순간 멍해졌다. “땡!” 오릉군을 내려치면서 뜻밖에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 것이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힘껏 오릉군을 내리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목에 는 흰 점 하나만 보였다. 피는커녕 피부에 닿지도 못했다. 한지훈은
그렇게 한지훈은 예충기 부부의 시체를 향해 여러 차례 무릎 꿇고 참배까지 마친 후에야, 계속하여 곤륜허의 더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뇌해 구역을 지나 5리도 안되어, 한지훈은 갑자기 알 수 없이 넘쳐흐르는 생기를 느꼈다. 이내 주위에 깔려있던 회백색의 모래와 자갈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전방에는 넓은 숲이 나타나더니 자연의 짐승들이 나무 사이를 누비는 걸 보게 됐다. 한지훈은 저도 모르게 공기가 탁 트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예충기가 말한 바와 같이, 제준의 능묘로 들어설수록 생기가 오히려 짙어지고 있었다. 백룡심을 얻기 위해서는 생사를 건너야 한다더니. 방금 뇌해를 건너면서 한지훈은 이미 한 번의 죽음을 겪었기에, 지금 그의 눈앞의 펼쳐진 것은 바로 또 다른 삶이었다. 계속하여 이러한 생사의 왕복이 펼쳐질 예정이다. 동시에 한지훈은 내심 걸어온 길을 되새기며 생기와 사기를 번갈아 생각해 보았다. 이는 어떻게 보면 한지훈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지훈은 생사의 오의를 깨닫지는 못하여 단지 모호한 개념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상한 사실 하나는, 곤륜허에는 낮과 밤의 구분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으로 계산하게 되면, 지금 시점은 노을이 지는 시점일 텐데 곤륜허는 여전히 대낮과도 같았다. 햇빛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주위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이런 극한의 환경은 곤륜허를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또 몇 시간 계속하여 걸으면서 산등성이를 넘은 한지훈은, 갑자기 비할 데 없이 웅장한 궁전을 마주하게 됐다. 그 궁전은 길이가 수 미터에 달하는 돌로 쌓여 있었다. 비록 세월의 풍파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대전과 벽에 보이는 금에서 당시 이 궁전이 얼마나 휘황찬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지훈은 곧장 대전으로 걸어갔다.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알 수 없는 한기가 한지훈에게로 밀려왔다. 이는 진정한 죽음의 기운이었다.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극한의 한기였다. 대
국왕의 발언에, 종묘 장로들은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젊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매우 단단했다. 이는 이번 기회를 빌어 아주 자연스럽게 4대 가문과 조정에 숨겨진 배후를 함께 물리칠 계획이었다. 재빨리 이 사실을 눈치챈 종묘 대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어귀에 있는 금위군을 향해 말했다. “여봐라, 당장 모두 밀어내!”“네!” 이내 한 무리의 금위군이 우르르 몰려들어 땅에 무릎을 꿇고 있던 그 노신들을 밀어내려 하자 국왕이 차갑게 말했다. “그래도 엄연히 다들 우리 용국의 영웅들인데, 어떻게 밀어낼 수가 있겠어?” “네?”그 말에 한 무리의 금위군들은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모두 끌어내! 3일 안에 용경을 떠나지 않는 자들은 가산까진 전부 몰수할 거야!”국왕의 노여움에 금위군들이 다시 우르르 몰려들어 멱살을 잡거나 팔을 잡아당긴 채 20여 명을 모두 용각 밖으로 끌어냈다. 그제야 조정은 비로소 평온을 되찾았다. 신한국은 끌려가는 노신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폐하, 이러면 이젠 4대 가문과 얼굴을 붉히게 될 것입니다!”강만용 역시 근심이 가득했다. “용국이 영원히 4대 가문의 용국은 아니야. 더욱이는 어느 명문 가문의 용국도 아니야. 자고로 용국은 백성들에게 속하고 만민에게 속하는 거야!”“나라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은 마땅히 봉상을 받아야 하고, 그 유상 역시 마땅히 조상의 영예를 받아야 돼. 이것은 절대 당연한 천리야! 이 천리를 어기려 하는 자들은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될 거야!”국왕이 이렇게까지 화가 난 이유는, 그동안 4대 가문이 손을 뻗은 범위가 너무나도 넓었고 관리 범위도 광범위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국왕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닌 용국 전체의 의지를 대표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그 시각, 멀리 곤륜허에서는 사람 모양을 한 검은 숯덩이가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족히 10분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람 모양의 검은 숯덩이는 겨우 몸을 버티고 땅에서 일어선 뒤 옆에 있는 유리석에 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