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의 말에 강우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불만 가득한 그들의 눈초리, 그녀도 이젠 진절머리가 난다.비록 억울했지만 여기는 강 씨 가문이고 그녀의 가족들이 있는 곳이다. 강학주가 저 멀리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그는 내심 그녀가 이 강 씨 가문을 떠나길 바랐다. 그러면 덜 괴로울 수 있지 않을 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다른 이들은 그저 강우연을 내쫓고 싶었다.강우연이 한지훈과 잡은 손을 풀며 입을 열었다.“지훈 씨, 미안해요. 여기는 우리 집이고 저의 가족들이에요. 난.......그들을 떠날 수 없어요. 미안해요......”강우연이 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미안하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한지훈은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토닥이며 말했다.“그럼, 내가 남기로 한 너의 곁에 함께 있을게! 너의 앞에서 모든 비바람을 막아줄게.”강우연이 고개를 들어 한지훈을 바라봤다. 감동한 그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이 남자는 자신을 이렇게 아껴주는가?“지훈 씨, 난......”더 말하려고 했지만 입가에서 맴돌 뿐 전할 수 없었다.한지훈이 씩 웃고는 강씨 가족들을 두러본 후 강준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일주일도 기다리지 못해요?”강준상은 눈썹을 들썩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이렀다. 이윽고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마지못해 대답했다.“좋아! 더 기다려 줄게. 네놈이 누굴 찾아서 어떤 방벙으로 연 씨 가문과의 일을 처리하는지 내가 똑똑히 지켜보겠어!”말을 마친 강준상은 가족들을 데리고 회의실을 나갔다.넓은 회의실에는 강학주 일가와 강우연 그리고 한지훈만 남았다.강학주는 한지훈의 품에 안겨 울먹이는 강우연이 마음이 아팠다. 위로하려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서경희가 제지했다.“뭘 봐! 도울 힘은 있고? 그러다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튄다고! ”서경희는 고개를 돌려 차갑게 말했다.“넌 아무
한지훈은 표준우의 어깨를 밀치고는 강우연의 허리를 감싸고 유유히 사라졌다.표준우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내가 뭘 하러 온 거지?고백하러 왔는데 한지훈이 훼방을 놓았다!짜증이 났다.표준우는 재빨리 따라가 한지훈의 어깨를 잡았다. 그대로 쓰러뜨리려 했지만 한지훈은 꿈쩍하지 않았다. 도리어 관성 때문에 표준우가 비틀거리다 하마터면 똥을 밟을 뻔했다.“너!이!”표준우가 한지훈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한지훈! 이 몹쓸 놈아! 네가 우연 씨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좋게 말할 때 우연 씨에게서 떨어져! 오직 나, 표준우만 우연 씨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원하는 모든 걸 사줄 수 있어. 그런데 너는 그럴 수 없잖아!”표준우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 모양은 마치 장난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한지훈은 가볍게 몸을 돌려 표준우를 노려보며 미소 지었다.“뭐? 뭐든 해줄 수 있다고?”“그래! 난 할 수 있어! 난 표 씨 가문의 귀공자야. 난 연봉이 20억 원이 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가문의 재산은 500억 원이 넘어. 우연 씨가 원한다면 차도 사줄 수 있고 마음껏 여행도 시켜줄 수 있어. 하지만 넌? 너의 가문은 5년 전에 이미 풍비박살났지. 그런데 무슨 수로 우연 씨의 행복을 책임질 거야?”표준우의 얼굴에 점점 생기가 돌았다. 그의 미소에 비웃음이 담겼다.이것이 바로 격차!이것이 바로 재벌과 빈털터리의 격차이다.표준우는 금전상에서 뒤지지 않는 우월함과 자부심이 있다.잠자코 듣고 있던 한지훈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강우연을 더욱 감싸 안으며 그녀에게 물었다.“우연아, 뭐든 다 줄 수 있다고 하는데 받아줄래?”강우연이 한지훈을 흘겼다. 그리고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준우 씨, 미안해요. 그 마음을 받을 수 없어요. 전 이미 남편이 있고 아이도 있어요.”표준우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강우연, 바보인가?“우연 씨, 잘 생각해야 해요. 이놈은 연 씨가문에 폐를 끼쳤어요. 연 씨 가문이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것보다 전 진심으로 우연
전화를 끊은 표준우는 싸늘한 시선으로 한지훈과 강우연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걸렸다."우연 씨, 두고 봐요. 반드시 내 여자로 만들고 말 테니까."차갑게 중얼거린 표준우가 신경질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포르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현장을 벗어났다.한편, 황대식은 그의 아지트나 다름없는 제이드 바의 호화로운 룸에 앉아 있었다.가죽 재킷을 대충 걸치고 시가를 뻑뻑 피워대는 그는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저처럼 부상을 몇 군데씩 달고 있는 부하들을 서늘하게 바라보던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얘들아, 2억짜리 의뢰다. 이번 일만 제대로 끝마치면 당분간은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거다."얼마 전 한지훈에게 잔뜩 얻어터진 그들의 얼굴엔 멍이 채 가시지 않았다."형님, 대체 무슨 의뢰 비용이 2억이나 된답니까?"아부하듯 슬쩍 다가온 부하가 조심스레 물었다."표씨 가문 도련님 지시야. 적당히 사람 하나만 잡아 오면 돼."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한 황대식이 제 부하들을 거느리고 차에 올랐다. 표준우가 지시한 장소로 봉고차 두 대가 벼락같이 달려갔다.마침 한지훈은 딸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생필품을 사러 마트로 출발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모퉁이를 도는 순간, 눈앞에 봉고차 두 대가 그들을 턱 가로막았다.깜짝 놀란 강우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지훈 씨, 저 사람들 뭐예요?"눈앞의 봉고차를 싸늘하게 노려보던 한지훈이 입을 열었다."진정해. 별일 아닐 거야."쇠파이프를 쥔 열 몇 명의 건달들이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리며 세 가족이 탄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위협적으로 다가온 몇몇이 쇠파이프로 차체를 쾅쾅 내려쳤다."어이, 좋은 말로 할 때 내려. 미적거리다간 차를 박살 내는 수가 있어.""뭐야, 꼴에 신형 BMW네. 돈깨나 있는 사람들인가 봐. 이번 건은 좀 짭짤하겠어."저희끼리 지껄이던 건달들이 탐욕스러운 눈길로 차를 바라보았다.강우연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고운아, 괜찮아. 엄마
쇠파이프를 휘두르려던 건달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뒤로 주춤 물러났다.제 부하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황대식이 사납게 윽박질렀다."야 이 한심한 새끼들아, 뭣들 하는 거야? 여럿이서 사람 하나 족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대체 어떤 대단한 놈이길래 그렇게 겁을 집어먹었어! 쓸모없는 새끼들."부하에게서 쇠파이프를 뺏어 든 황대식이 빼곡히 앞을 가로막은 부하들을 밀치며 성큼성큼 한지훈을 향해 걸어갔다. 무기를 꽉 움켜쥔 황대식이 막 차에서 내린 한지훈의 머리를 겨냥하며 달려들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황대식은 쇠파이프를 허공에 멈춘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황대식이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지훈을 쳐다보았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삐질삐질 흘러내렸다.얼른 정신을 차린 황대식이 냉큼 쇠파이프를 제 뒤로 숨겼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역력했다. 이내 비굴한 웃음을 짓던 그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한... 한 선생님께서 왜 이곳에..."어떻게 또 이 사람일 수가 있단 말인가.그 대단하신 정 나리조차도 한지훈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조 국장과 한 과장도 달려왔다. 심지어 그는 구씨 가문을 손 봐주지 않았던가.황대식은 문득 제가 오늘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이렇게 또 보는군, 황대식. 팔은 다 나았나 보지?"한지훈의 싸늘한 목소리를 들은 황대식은 제 쓸모없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무릎을 꿇은 황대식이 콘크리트 바닥에 이마를 퍽퍽 찧으며 두서없이 사죄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한 선생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차 안에 선생님이 계실 줄은... 제가 미처 몰라뵙고 멍청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알았다면 제가 감히 선생님을 가로막았겠습니까?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한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황대식을 아무 말 없이 노려보았다. 이미 한지훈의 실력을 몸소 확인한 적 있던 몇몇 건달들도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한지훈의 살벌한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황대식 패거리들을 둘러보던 한지훈이 미소를 지었다."별일은 아니고, 아는 사람들이야.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한지훈이 서둘러 강우연을 차에 태우며 말했다."먼저 들어가."재빨리 두 사람을 차에 밀어 넣은 한지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황대식을 쏘아보았다."두 사람을 데려다준 다음에 다시 얘기하지. 주소 불러. 곧 찾아갈 테니."건달들은 혼비백산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예예, 한 선생님, 살펴 가십시오."황대식의 손짓에 가지런히 길가에 선 부하들이 한지훈의 차를 배웅했다. 마침내 차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황대식은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가 몇 번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형님, 저희 이젠 어떡합니까? 2억짜리 의뢰라면서요."한지훈에 대해 잘 모르는 부하가 입을 열었다.황대식이 그의 뺨을 후려갈기며 버럭 소리쳤다."그걸 질문이라고 해? 2억 벌어보겠다고 네놈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거야? 저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그래? 정 나리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분이라고. 그런데도 그깟 2억이 대수야?"잠자코 황대식의 말을 듣고 있던 세상 물정 모르던 몇몇 부하도 덩달아 경악했다.그 대단하신 정도현 나리조차도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봐야 하는 인물이라니. 그들은 이 상황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살벌하게 낯을 굳힌 황대식이 두 눈을 번뜩였다."표준우, 이 개자식 같으니라고. 하마터면 날 지옥으로 밀어 넣을 뻔했잖아. 흥, 한 선생 눈 밖에 난 그놈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도 슬슬 돌아가 한 선생 맞이할 준비나 하자고."한 무리 건달들이 서둘러 현장을 벗어났다.강우연과 딸아이를 집에 데려간 한지훈은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벗어났다. 현재 그가 도착한 곳은 황대식 아지트인 제이드 바였다.황대식이 제 모든 부하를 이끌고 그를 맞이했다. 자그마치 마흔 명을 넘어서는 이들이 공손하게 예의를 차렸다.한지훈의 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일제히 90도로 허리를 숙인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
그 무시무시한 행렬에 기겁한 사람들이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룸에 도착한 한지훈이 황망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황대식을 향해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표준우에게 연락해. 날 잡아들였으니 직접 와보라고.""예예예!"눈치 빠른 황대식이 표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들뜬 목소리를 꾸며냈다."도련님, 말씀하신 그놈 잘 데려다 놨습니다. 저희가 할까요, 아니면 직접 손보시겠습니까."그 시각, 표준우는 클럽에 제 술친구들을 잔뜩 불러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의 품에는 늘씬한 미녀 두 명이 안겨 있었다."빠르네? 알았어. 지금 당장 가지. 도망 못 가게 잘 지켜야 해."잔뜩 흥분한 표준우가 제 친구들에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으하하, 한지훈 그 버러지 새끼가 황대식에게 잡혔대. 당장 가서 손봐줘야겠어. 너희들 딱 기다려, 곧 그 새끼가 무릎 꿇고 싹싹 비는 걸 영상에 담아올 테니까."클럽을 나선 표준우가 잔뜩 신이 난 채로 포르쉐를 몰고 쏜살같이 제이드 바로 향했다.3층에 도착한 표준우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사악하게 웃어 보였다."수고 많았어, 황대식. 그 자식은 어디 있어? 오늘 이몸이 직접 그 자식을 병신으로 만들어 주겠어. 내게 맞서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깨우쳐 줘야지."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늘한 목소리가 룸 안에 울려 퍼졌다."표준우, 또 보는군."표준우가 흠칫했다. 흐릿한 불빛 속에서도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그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빌어먹을 한지훈이었다."뭐야, 한지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네놈이 왜 거기 앉아 있어. 당장 내 앞에 무릎 꿇어!"상황 파악이 덜 된 표준우가 버럭 화를 냈다.고개를 틀어 옆을 보니 황대식이 싸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룸 안에는 또한 일여덟 명의 건달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도 마찬가지로 살기가 가득했다.표준우가 바로 황대식에게 따졌다."황대식, 대체 어떻게 된 거야?"사실 그는 조금 전부터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발뺌할 생각부터 하다니.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한지훈이 황대식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소매를 걷어 올린 황대식이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건달들이 표준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너... 너희들 뭐 하는 거야. 헉, 그만해, 내 몸에 손대기만 해봐. 난 표씨 가문 도련님이란 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아시면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으실 거야. 악! 아파! 얼굴은 건드리지 말라고..."처음엔 나름 기고만장하게 협박하던 표준우는 결국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빌기 시작했다.십 분 정도가 지나자 돼지 머리처럼 퉁퉁 부어오른 표준우가 바닥에 엎드려 헐떡댔다. 얼굴은 피범벅이었으며 내뱉는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실려있지 않았다."한... 한지훈... 네놈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표준우 앞으로 걸어간 한지훈이 몸을 숙여 처참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표준우에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했다."표준우, 내 아내 강우연에게 추근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음은 없어."말을 마친 한지훈이 룸을 벗어났다.만약 황대식이 똑똑한 놈이라면 나머지 일은 그가 알아서 해결할 터였다.한지훈이 떠난 뒤 황대식은 표준우도 바에서 쫓아냈다. 바닥에 널브러진 표준우에게 황대식이 날카롭게 말했다."어이구, 도련님. 미안하게 됐습니다. 오늘 일은 제 뜻이 아니란 것만 알아주십시오. 혹시 복수를 하려거든 한 선생에게나 하시구요.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게 좋을 겁니다. 킥킥."말을 마친 황대식은 표준우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차가운 도로에 드러누운 표준우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어머, 표씨 가문에 그 도련님 아니야? 왜 꼴이 저 모양이래?""세상에, 어느 높으신 분 눈 밖에 났길래... 끔찍하군.""한때 그렇게 잘난척하던 사람도 더 강한 사람 앞에선 별수 없네. 이래서 사람은 시건방지면 안 된다니까. 그러다 큰코다칠라."사람들의 조롱을 무기력하게 듣고 있던 표준우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핏발선 두 눈을 형형하게 부릅뜬 표준우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정말이지? 나 대신 복수해 줘야 해? 꼭 그 자식이 내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줘. 아니라면 나도 콱 죽어버릴 거야."표준우는 더욱 불을 지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 말을 들은 도혜영이 기겁하며 제 남편을 재촉했다."여보, 얼른 해결하지 않고 뭐해. 당신 아들이 죽는 꼴을 지켜볼 거야?"표중혁이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서두르지 마. 내일 내가 직접 강씨 가문으로 찾아가지."다음날.열몇 대의 검은색 벤츠를 거느린 표중혁이 제 마이바흐에 올라타며 바로 강운그룹으로 향할 것을 명령했다.강운그룹 사람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안에 떨며 회의실에서 소란스레 말다툼을 벌였다."이거 큰일 났습니다. 표씨 가문의 기세가 말이 아니라고요. 어르신, 우린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이게 다 빌어먹을 한지훈 그놈 때문입니다. 표준우 도련님을 때리라고 사람을 사주했다잖아요.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요.""한지훈은 아직이랍니까?"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뱉어내며 씨근거렸다.상석에 앉은 강준상도 치솟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그는 아침부터 표중혁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어제저녁에 벌어진 일을 전하며 강씨 가문에서 순순히 범인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다. 만약 따르지 않는다면 다른 가문과 기업을 선동하여 강운그룹을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그리하여 조급해 난 강준상이 회의를 소집했던 것이다."그만들 하세요. 긴장할 거 없습니다. 사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한지훈이 친 사고이니 표씨 가문에서 찾아오거든 그놈을 넘기면 되는 일이에요. 기껏해야 병원비나 좀 보태주고요."강문복이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제야 회의실이 조용해졌다.마침 회사에 도착한 한지훈과 강우연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회의실에는 긴장과 분노가 가득했다.사람들은 적의를 감추지도 않은 채 강우연과 한지훈을 노려보고 있었다."할아버지, 사람들을 급하게 소집하셨다고 들었어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강우연은 아직 사건의 전말을 몰랐다.강준상이 차갑게
곧이어 한 노인이 안에서 걸어 나와 정원 문을 활짝 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확인하고 나서야 낙 선생을 정원 안으로 모셨다. “지금 당장 날 정로한테로 모셔!”낙 선생은 다급한 어조로 본론을 꺼냈다. “네, 저를 따라오시죠. 정로께서는 마당 뒤편에서 차를 마시고 계십니다!”이내 노인은 낙 선생을 데리고 뒤뜰로 향했다. 그의 말대로, 한 백발의 노인이 정자 앞에서 한가롭게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는 손에 고서 한 권을 든 채 차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로님! 큰일 났어요!”낙 선생은 자신이 그토록 찾던 노인을 만나자마자 황급히 앞으로 달려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왜 너답지 않게 이렇게까지 당황한 건데? 설마 신군이 뭔가 눈치라도 챈 거야?”정로는 침착한 표정으로 낙 선생을 쳐다보았다. “아니요, 신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그저께, 저는 정로님의 뜻에 따라 강만용을 제거하자고 국왕을 설득해 봤습니다. 그런데 국왕이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는, 저더러 강만용의 고택으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정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어. 어찌 됐든 강만용은 용각의 각인이었기에 네가 단 한두 마디로 그들을 단번에 사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건 아니야!”“하지만 그렇게까지 당황할 필요는 없어. 계획한 대로만 천천히 실행하면 돼. 어차피 그 늙은이들, 오래 살지도 못할 거야!”하지만 낙 선생은 여전히 난감한 안색을 보였다. “정로님, 사실 그게 아니라... 제가 만일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허연생과 장문로를 파견하여, 만약 한지훈이 나타나게 되면 한지훈도 처단하라고 명령했었습니다.”“그런데...”“그런데 뭐?”정로는 허연생의 이름을 듣고는 순간 얼굴색이 변했다. “그런데... 허연생은 한지훈의 손에 죽게 되었고, 게다가 장문로의 시체는 지금 찾을 수도 없습니다!”큰 자책감이 든 낙 선생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뭐라고?’ 예상치 못한 소식에
이내 한지훈은 손을 흔들며 남은 집행 대원들더러 이젠 자리를 떠나도 된다고 하였다. 그제야 집행 대원들은 죽음의 절벽에서 돌아온 것 마냥 급히 일어나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들은 장문로의 시체를 수습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집법 대원들이 멀리 떠나고 나서야 한지훈은 강만용에게 다가와 말했다. “강로 님, 더 이상 이곳에서 지낼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신로님과 함께 저를 따라 강중으로 돌아가시죠!”‘강중으로 돌아가자고?’ 강만용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그는 어디도 갈 수 없었다. 국왕의 명령을 받들고 온 장문로가 이곳에서 죽게 된 이상, 언젠가 다시금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 생각했다. 이 상황에 집을 옮기면서 모습을 감추게 된다면, 나중에 잡혔다가는 오히려 더 큰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한지훈, 걱정해 준 건 고마워. 하지만 만약 나와 신로 모두 온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가게 된다면, 국왕은 오히려 더욱 의심을 품게 될 거야... 장문로가 이렇게 죽게 된 이상, 내가 보기에 국왕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난 너를 따라 강중으로 돌아갈 수 없어!”“하지만, 나의 이 어린 손자는 네가 대신 잘 돌봐줬으면 좋겠어!”강만용은 이내 그 일곱 살 난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강만용의 허벅지를 꼭 안은 채 무슨 말을 해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자현아, 말 들어!”강만용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지훈은 평소 강만용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그가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이상, 그 누구도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쩔 수 없이 강자현을 데리고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신 씨 집안도 마찬가지였다. 신한국은 강만용과 같은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손자 두 명을 한지훈에게 맡기고는 본인은 계속하여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렇게 한지훈은 어쩔 수 없이 세 아이를 데리고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또한 용운에게,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안배하여 시시각각 강 씨 집
일곱 살짜리 아이를 고문하고는 아이의 피부까지 벗겨낼 생각을 하는 놈을, 어딜 봐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장문로, 차라리 자결해. 아니면 넌 앞으로 죽는 것보다도 못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될 거야!”한지훈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장문로를 절대 살아 돌려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강 씨 집안과 신 씨 집안의 원수에게 제대로 복수하고 싶었다. “한지훈!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나는 국왕의 명을 받들어 강만용과 신 한국을 조사하러 온 거라고! 하지만 넌... 더 이상 북양 왕도 아니잖아!”장문로는 여전히 한지훈을 노려보며 굴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화를 내며 소리쳤다. “한지훈, 됐어. 그냥 보내줘. 괜히 죽였다가 국왕이 알기라도 하면...”“강로 님, 만약 정말 국왕이 따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제가 혼자서 다 책임을 질 겁니다! 오늘 전, 반드시 이 놈을 죽일 거예요!”이내 한지훈은 머리를 돌려 용운을 불렀다. “용운!”“네!”잔뜩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용운은, 당장이라도 장문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로 이때, 장문로가 몸을 돌려 도망가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찌 됐든 그저 일반인이었기에, 제 아무리 빨리 도망가도 용운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채 두 걸음 내딛기도 전에, 그는 용운에게 덥석 잡히게 됐다. “장문로, 너 방금 그랬지? 이 아이 피부를 벗겨버릴 거라고. 그럼 너부터 한번 벗겨볼까?”곧이어 용운은 비수를 뽑아 들고는 장문로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너 뭐 하는 짓이야? 난 엄연히 국왕의 명령대로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것뿐이야! 당장이 거 놔! 젠장, 만약 감히 네가 나를 건드리게 된다면 너희들 모두 몰살당하게 될 거야!”장문로는 목이 쉴 정도로 마지막 힘을 짜내가며 고함을 질렀지만, 이내 그의 고함소리는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소리로 변하게 됐다. 용운은 방금 말한 대로, 정말 단번에 장문로의 피부를 벗겨냈다. 엄청난 고통에 장문로는 기절
한지훈은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음양존의 공격에, 순간 눈앞이 깜깜 해나면서 끝없는 환각을 느끼게 된 그 순간을. 만약 진작에 적룡심을 융합하지 않았다면, 그날 한지훈은 필연코 음양존의 손에 죽을게 뻔했다. 빛, 불, 그림자! 바로 이 세 가지 자연의 힘은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환상으로 진화될 수 있었다. 한지훈은 이미 금룡심을 융합하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진법을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이내 생각에 잠긴 한지훈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지훈, 더 이상 건방지게 굴지 마! 네가...”허연생이 다시금 손을 들어 한지훈을 향해 공격하려는 순간, 그는 자신의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나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동시에 눈앞에 있던 강만용의 고택은 물론, 주위의 집법 대원들 그리고 장문로도 사라지게 됐다. 심지어 한지훈도 모습을 감추었다. 어안이 벙벙 해난 허연생은 손바닥을 높이 든 채 그저 멀뚱멀뚱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자신의 다섯 손가락도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 갇혀있게 됐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환상은 그 자신만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허연생이 빠른 걸음으로 한지훈을 향해 돌진하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모습뿐이었다. 그들의 보기에는, 손바닥을 든 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허연생의 행동이 매우 괴이해 보였다. “허 선생님, 뭐 하세요?”장문로는 마치 넋을 잃은 듯 멍하니 손바닥을 들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허연생의 모습에 갑자기 조급 해났다. 그러나 허연생은 장문로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이때, 한지훈은 허연생의 뒤로 성큼성큼 다가와 손바닥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그러자 순간 허연생의 눈앞에 펼쳐진 환상은 사라지게 됐고, 그는 마치 끊어진 연처럼 몸이 저 멀리 날아가게 됐다. 이로서 한지훈은 처음으로 금룡심의 진법을 경험하게 됐다. 그러나 이 진법은 단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에너지 소
만약 이 없었더라면 한용은 지난 20년간, 무적천과 어깨를 겨누며 4성 천급 천신의 경지까지 쉽게 오를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스스로 모색하고 깨달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무적천과는 달리, 한 씨 집안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까지 손에 넣게 됐으니, 그 무엇보다도 탄탄한 백전백승의 체계를 보유하게 됐다. 능력이 진화하는 속도든, 각종 역량에 대한 장악 정도든 그들은 그 어느 하나 무적천에 뒤쳐지는 게 없었다. “너... 분명히 뭔가 숨기는 게 있어!”눈치 빠른 허연생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한지훈은 몸을 돌려 차갑게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내가 방금 말한 대로, 난 오늘 반드시 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곧이어 한지훈은 쏜살같이 앞으로 한걸음 뛰어나와 한 주먹으로 허연생의 급소를 쳤다. 허연생은 비록 한지훈에 비해 얻은 깨달음도 적고 게다가 실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긴 했지만, 어찌 됐든 한 세대를 장악했던 강자였기에 역시나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가슴을 노리는 한지훈의 주먹을 보아낸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돌리고는 도리여 한지훈의 아랫배를 강하게 내리쳤다. “후!” 순간 한 줄기의 강한 바람과 기운이 한지훈의 급소를 공격하게 됐다. 분명 같은 주먹임에도 불구하고, 허연생이 뻗은 이 주먹은 비록 보기에는 그렇게 큰 기세는 아니었지만 힘이 매우 강했다. 그는 모든 힘을 한 주먹에 집중하여 최대한 기운을 폭발시킬 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역공격에 당황한 한지훈은 더욱 정신을 다잡고는 급히 주먹을 휘두르며 방어하였다. “팍!”그렇게 두 사람의 주먹이 부딪히게 되었고,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통제하고 있긴 했지만 그 충돌 소리는 매우 컸다. 두 강자가 뿜어낸 엄청난 기운에, 마당에 있던 바위마저도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죽어!”허연생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다. 그러자 푸하는 소리와 함께 분홍색의 독기가 그의
‘허연생? 이 사람은 이미 30년 전에 무종에서 물러난 사람 아니야?’ 사실 허연생에게는 휘황찬란한 과거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무종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수십 개 종문의 장교 문주들을 무너뜨리고는 무신종과도 대결을 겨룬 강자였다. 당시 무적천은 매우 의기양양하게 바로 허연생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2성 현급 천왕계 밖에 다다르지 못한 무적천과는 달리, 허연생은 당시 이미 4성 천급 천왕에 다다르게 됐다. 그러나 허연생은 무적천에 의해 패배하게 되었고, 심지어 중상까지 입어 하마터면 무신종에서 참사할 뻔하기도 했다. 만약 당시 무적천이 조금이라도 힘을 주체하지 못했더라면, 허연생은 진작에 그곳에 무덤으로 남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무적천에게 패한 후로부터 허연생은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줄곧 무종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동안 그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자살하여 죽었다고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수치심을 느끼고 자취를 감췄다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 예상치 못한 허연생의 출현은 한지훈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사실 그는 허연생을 꺼리는 것보다도, 낙 선생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잡히지가 않아 답답했다. 그동안 3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춰온 사람을 이렇게 손쉽게 드러내는 낙 선생의 절대적인 힘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한지훈의 모습에 허연생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봐, 청년. 내 명성을 듣게 된 이상 굳이 내가 손을 쓸 필요는 없겠지? 당장 무릎 꿇어!”“한지훈, 어서 비켜. 이 일은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강만용은 급히 앞으로 나가 한지훈을 타일렀다. 그 또한 허연생의 명성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허연생은 그야말로 모든 경계를 막론하고도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강로 님은 그동안 용국을 위해 온갖 희생을 다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각로라는 칭호에 절대 부
순간 어안이 벙벙 해난 집행 대원은 떨어진 손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손목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됐다. “아악! 내 손!”이내 집행 대원이 손을 뻗어 상처를 부여잡자, 피가 미친 듯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누구야!”갑작스러운 상황에 장문로도 깜짝 놀랐다. “나야!”바로 그때, 한지훈이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손으로 그 남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이를 풀어주면 네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 줄게. 그렇지 않으면 넌 오늘 이곳에서 죽게 될 거야.”한지훈의 얼굴을 똑똑히 보아낸 장문로는 순간 얼굴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한지훈이 더 이상 북양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바로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장문로는 얼굴에 흉악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 역시나 너희 사이에 뭔가 결탁이 있긴 하나 보네! 차라리 잘 됐어. 굳이 강중까지 찾아가서 사람 잡을 일은 덜게 됐네!”“여봐라, 당장 한지훈을 치워내!” 곧이어 10여 명의 집법 대원들이 동시에 권총을 꺼내 들어 총구를 일제히 한지훈에게로 겨누었다. 필경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양 왕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누구도 감히 한지훈을 얕잡아 볼 수는 없었다. 십여 자루의 권총을 마주하고도 한지훈은 담담하게 웃을 뿐,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크흠!”바로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검복을 입은 한 노인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지훈, 낙 선생은 진작에 네가 이렇게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어!” 노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훈을 훑어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한지훈 또한 그 노인을 훑어보았는데, 노인은 뜻밖에도 삼성 천왕계의 고수였다. 보아하니 낙 선생이 이번에 제대로 벼른 듯했다. “난 바로 낙 선생의 명령을 받들고 너를 잡으러 온 거야!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너는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 좀 거칠어질 수도 있거든.” 삼성 지급 천왕계는 역시나
험상궂은 얼굴의 중년 남자는 큰 손으로 어린 남자아이의 머리를 꽉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는 두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이를 악물고는 절대 울지를 않았다. “장문로! 당시 넌 용국의 여자 아이를 추행했잖아. 그때 그 아이, 겨우 16살이었어. 하지만 넌 아이가 죽기 직전까지 능욕했었지!”“용국의 전관으로서 그런 짓을 벌이면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그런데 만약 그 당시 내가 너를 해고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다들 불공평할 거라고 생각할게 뻔하잖아?”강만용은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노호하였다. 그러자 장문로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아이를 다른 한 집법 대원에게로 밀치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걸친 중산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만용, 너 지금 혹시 나를 질투하는 거야?”“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어쨌든 현명하신 낙 선생이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난 지금 이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잖아. 반면 너는 비참한 미래를 앞두고 있고!”“너희들 정말 한통속이었구나! 언젠가는 고통스럽게 벌 받게 될 거야!”잔뜩 화가 난 강만용은 씩씩대며 눈을 부릅 떴지만, 장문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흥!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해. 당장 네 죄나 인정하라고!”이내 장문로는 이미 완벽하게 작성된 진술서 한 장을 강만용에게 던졌다. 위에 적힌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바로 그들 용각 삼로가 한지훈과 함께 군비를 횡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 진술서를 확인한 강만용은 크게 웃었다. “왕년에 천 평이 넘는 땅을 국가에 순순히 바친 나인데, 내가 굳이 이 몇 조원의 군비를 횡령할 이유가 있을까?” “아휴... 하느님도 참 무심하시네. 이렇게나 간사한 놈이 용권의 정권을 잡게 놔두시다니. 정말 보는 눈도 없으시네!” 강만용이 진술서를 찢으려 하자 장문로는 바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들어 단칼에 남자아이의 옷을 찢어버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만용, 너 잘 생각해. 내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중년 남자는 더 이상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얼핏 봐도 방금 전, 지독한 형벌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지훈! 내... 내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거야!”강만용은 한지훈과 용운 두 사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금치 못하고 목놓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용경에서 온 한 무리의 문관들에 의해, 자신의 아들이 무고하게 산채로 맞아 죽게 되는 상황에서도 강만용은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신한국의 아들인 신국호 또한 몽둥이로 수차례 얻어맞아 두 다리가 부러지게 되었고, 심지어 피까지 많이 흘리게 되어 그 자리에서 죽게 되었다. 그야말로 두 집안이 하룻밤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누구예요! 대체 누굽니까? 어느 개자식이 감히 이렇게 잔인한 수를...”잔인하게 놈들의 수단에, 용운은 너무나도 화가 난 나머지 당장이라도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에휴, 됐어. 아마도 이 늙은이가 그동안 사는 동안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하느님이 날 벌하려나보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힘들었겠는데 일단 방에 가서 앉아있어!”신한국은 겨우 눈물을 닦아내며 한지훈과 용운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강로님, 국왕께서는 대체 왜 이러시는 거랍니까? 낙 선생은 대체 또 어떤 구실로 강로 님의 가족을 건들게 된 건가요?”한지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물었다. “그게...”강만용은 결국 탄식하면서 말했다. “내가 30년 전에 물려받은 천 평 넘는 가택이 있는데, 낙 선생은 내가 군비를 횡령했다고 의심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국왕이 직접 장문로까지 파견하여 조사하게 한 거고.”“조사요?”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찬 용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조사라는 거지? 사람이 죽게 됐잖아!’ “용운아!”한지훈이 낮은 소리로 호통을 치자 용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시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았다. “그럼 놈들은 어젯밤, 강로 님을 끌고 가기라도 했나요?”한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