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야?” 이한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중앙 도로에서 이씨 가문 부하들을 피하려고 도망쳤는데 너무 멀리 와 버렸어요. 지금 주변이 불모지뿐입니다!” 운전 기사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사히 탈출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도윤의 부하들이 먼저 성남시를 잇는 중앙도로를 선점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다행히, 이미 해는 졌고 운전 기사는 전문가였기에 그들은 가까스로 걸리지 않았다.잠시나마 도윤의 부하들에게 도망치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들은 지금 길을 잃었다.“그럼 월급은 왜 받는 건데?! 머저리 자식!” 이한이 소리쳤다.그들은 이미 도시에서 한참을 떨어져 있었고 주위의 우중충함이 이한을 더 좌절시켰다.멀리서 모터 엔진 소리가 들리자, 차가운 밤바람이 그들의 등골을 더 오싹하게 만들었다.잠시 뒤, 백미러에 깜박거리는 불빛이 보였다.그들은 얼마나 많은 차들이 자신들 뒤를 쫓아오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빠르게 따라오고 있는 차를 보자 이한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밟아!”그리고 이한은 핸드폰을 꺼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지금 오고 있는 거야? 내일 내 생일이니까 오늘 늦지 않게 와야 한다!”“엄마! 제발 나 좀 살려줘! 누군가 내가 성남시로 들어가는 거 막고 있어!”“이한아,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지금 거기서 무슨 일 생긴 거야? 무슨 말인지 잘 설명해 봐!” 이한의 엄마가 대답했다.“엄마! 들려? 살려줘!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한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그리고 더 이상 휴대폰 신호가 터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조 대표님, 이제 차를 세우는 게 어떨까요? 밖이 칠흑같이 어두워져서 도로의 상태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계속 공포에 떨어 있던 운전 기사가 말했다.그는 그들이 아무리 도망치려고 한들 결국 잡히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탈출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절대 멈추지 마! 이번에 내가 이도윤한
전화로 얘기를 나누더니, 중년 남성의 얼굴이 갑자기 시체처럼 창백해졌다.“뭐라고요…? 선대표, 당신 가만 안 두겠어! 당장 사람 보낼 테니 그렇게 알아!”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채로 남자가 급히 말했다. “선씨 가문에 따르면, 조이한 대표님이 모천시에서 실종되었다고 합니다!”“…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지금으로서, 일단 제가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둘째대표 쪽에 당장 사람을 거기로 보내라고도 말 해 놓겠습니다!” 남자가 초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둘째 쪽? 그러면..”“첫째 대표님이랑 저는 떠날 수 없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문 내 사람들로 문제를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둘째 대표 쪽 사람이 가문 대표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원이도 따라 가라고 지시해 놓겠습니다!”그 말을 듣자, 여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도윤은 헬리콥터를 타고 절벽에 도착했다.절벽은 깊었고 부하 직원 보고에 따르면, 탑승하고 있던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차의 부품조차 찾기 어렵다고 했다.그 말을 듣자, 도윤은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하늘이 재앙을 우리에게 보내도, 그 재앙을 헤쳐 나갈 희망은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재앙을 자초하면, 그 재앙은 피할 수 없다’ 라는 구절의 표본이었다.이한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그 순간, 도윤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재균이었다.계속 경계를 하는 것이 나쁠 게 없었기에, 도윤은 모천시에 온 이후로 개인적으로 보디가드들을 시켜 선미를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전화를 받고 도윤이 말했다. “무슨 일이야?”“선미양이 깨어났습니다, 대표님. 경미한 뇌진탕이었는데 지금 거의 회복했습니다. 그런데…”재균은 말을 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무슨 일인데?”“..정말로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선미양을 지키고 있었는데 수상하게 행동하는 의사 네 명이 병동에 와서 선미양에게 접근했습니다. 너무 의심스러워서 제가 근처에 못 가게 막
지연은 배 씨 가문 가장의 가장 자랑스러운 딸이자 배씨 가문의 2인자였다. 사실, 그녀의 위치는 채라의 아빠보다 훨씬 더 견고했다.그 사실 만으로도, 지연이 얼마나 유능하고 끼가 많은 사람인지 잘 알 수 있었다.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으로 지연은 자신의 아버지가 선미를 납치했다는 사실에 확신을 했지만 어떻게 그녀를 찾아낸 건지는 도통 감이 안 잡혔다.“도윤아, 나는 배 씨 가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주 잘 알아. 가문 내에 여러 복잡한 내부 문제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선미를 납치한 사람이라면, 나는 아버지가 선미한테 해를 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아서 안심이 돼. 문제는 다른 배 씨 가문 사람들이라면 말이 달라져…”“하하! 이 모든 일이 내가 수십 년 전에 쏘아 올린 공에서 비롯된 거라니! 아버지는 분명 후회하실 테지만, 그 성질은 분명 똑같을 거야! 아직도 내가 먼저 나서서 사과하길 바라시고 있는 건가?” 지연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 저희 어쩌죠? 선미가 그 사람들이랑 같이 있는 이상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도윤이 머리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어쨌거나, 선미는 생물학적으로 그의 사촌이었다. 똑같은 이씨 가문 사람이었다.게다가, 선미를 이 곳에 데려온 사람이 도윤이었다. 자신 때문에 선미가 많은 사건 사고를 겪는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이 대표님, 제 생각에는 저희가 그 사람들 집을 침입해서 선미양을 구하는 건 어떨까요?” 재하와 재균이 동시에 말했다.“안 돼요. 당신들이 유능하다는 건 잘 알지만 다 따져보면, 두 분이서 저희 아버지 부하 4명을 무너트릴 수는 없을 거예요.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점은, 배 씨 가문은 이 씨 가문과 싸움 상대가 충분이 됩니다. 우리 몇 명이서 침입하는 건 말이 안돼요!” 지연이 대답했다.그 말을 듣자, 두 남자는 민망해서 고개를 숙였다.“…그러면, 선미양을 그대로 둬야 할 까요? 구하지 않고요?” 재균이 물었다.“그건 당연히
“애가… 지 엄마를 닮아서 고집은! 흠… 아직 채라가 장세아 위치는 파악 못한 게야? 그 지연이 개인 하녀 말이야. 일단 선미를 최대한 설득해 봐. 그리고, 아무도 선미가 여기 있다는 거 알면 안돼. 채라도 포함해서! 말이 새어나갔다간, 너희 다 죽을 줄 알아! 나가봐!” 그 말을 듣자, 의사들은 겁을 먹어 몸을 떨며 후다닥 나갔다.그들이 나가자, 용섭은 지팡이를 들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선명한 추억은 사랑하는 딸, 지연과 공공연히 관계를 끊었던 때였다.그는 지연을 배씨 가문에서 쫓아냈다. 그는 가문 규정에 대해서는 엄격했지만 그 순간 그녀를 떠나 보낸 것을 후회했다.지연을 찾아내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해왔다. 자신 옆에 두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소중한 자신의 딸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만약 살아 있다면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그것만으로 충분했다.하지만,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는 지연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항상 용모를 단정히 했던 용섭은 3일 후면 80살이었다. 그는 원래라면 더 젊어 보이는 게 맞았지만 같은 나이대에 매일 일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용섭은 그저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다시는 지연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신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난데없이 연호의 아빠, 선승범이 그에게 전화를 했고 지연과 똑 닮은 사람을 보았다고 말을 해 주었다.배 씨 가문은 입김이 꽤 셌기에 그 소식을 듣자, 지연과 그녀의 손녀의 행방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너가 날 싫어하는 거 안다, 지연아… 하지만 삼일 뒤에 내 생일인데.. 날 보러 와 주면 좋겠다..” 용섭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중얼거렸다.이러고 있는 동안, 한 하녀가 손에 박스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방 안에는 한 여자 아이가 침대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하녀는 그녀를 보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셋째 아가씨, 여기 정말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배대표님의 명령이에요!” 보디가드가 필사적으로 여자를 막아서며 말했다. 들어가려는 여자는 20대로 보였다. “와 대박! 나, 배가인이 지금 여기 배씨 가문 저택에서 못 들어가는 곳이 있다는 거야? 언니들은 이미 날 싫어해. 그런데 지금 할아버지도 나를 배척한다는 거야 지금? 너가 못 들어가게 하면 할수록 더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보고 싶어지니까 얼른 비키지 못해?” 가인이 보디가드를 옆으로 밀치며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겉보기에도 화려했고 1960년대 유럽 귀족 스타일로 보이는 고전 가구들이 곳곳에 있었다. 할아버지 방을 제외하고 저택 전체에서 이런 화려함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가인은 할 일이 없을 때마다 종종 이 방에 와서 둘러보곤 했다. 다른 배 씨 가문 사람들처럼 가인은 종종 이 방으로 자신의 방을 옮기는 상상을 하곤 했다.그녀의 고모가 이 방을 썼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가인은 가문 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누군가 지금 이 방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누가 이 방에 살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를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예고 없이 그녀가 들이닥치자 선미와 세아 둘 다 당황했다. 세아는 누군가 그렇게 불쑥 찾아올 줄 몰랐다. “너… 누구야? 낯이 익는데..” 가인은 선미를 보고 말을 했다.“나… 내 이름은 고선미야!”“선미? 배 씨 가문에서 본 적이 없는데, 내 말이 맞지?” 가인이 선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물었다.세아는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 셋째 아가씨 맞죠? 배 대표님께서 선미 양에게 잠시 이 곳에 머물면서 상처를 치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하! 나도 그건 알거든! 그냥 왜 하필 이 방에서 쉬라고 한 건지를 모르겠다는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어쨌거나, 잠깐 나가 있어 줄래? 개인적으로 고선미 씨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채라는 주제에 상관없이 피상적인 지식을 항상 싫어했다.이 때문에, 그녀는 새로운 단서를 찾기 위해 민지와 함께 고모의 방에 들어가 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 곳에서 가인이를 마주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누군가 그 방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자, 그녀의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이 곳에서 머물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우리 몰래 들어가서 방 안 한번 보는 거 어때, 채라야?” 민지도 점점 궁금해져서 물었다.“성급하게 행동하지 마. 일단 지금은 나가자. 조만간 할아버지 생신 연회가 열리는데 이런 식으로 할아버지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채라가 걸어 나가기 시작하며 대답했다. 말을 하면서도 사실 그녀는 민지보다 더 궁금해했다.약 이틀 뒤…“내가 말한 재료들 다 챙겼어? 좀 이따가 한번 더 확인해. 밤에 꾸미고 장식할 때 써야 하니까 빠지는 물품이 있어서는 안돼. 우리 때문에 행사가 내일로 미루어지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30대 여자가 다소 어려 보이는 남자들에게 말을 했다.“그럴게요, 작은 사모님!” 젊은 남자들이 바로 대답했다.“그나저나, 노스베이에서 온다던 쉐프들은 한참 더 있다가 요리 시작할거야. 그리고 연예인들 대접하는 게 정말 힘들어. 그 사람들 지금 카드 놀이하면서 시간 보내고 있을 거야! 이따가 한 명 한 명 잘 대접해 드려!”“문제없습니다!”의문 속에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도윤이었다.지연의 파워는 아직 안 죽었었다. 그녀는 모든 곳에 인맥이 있었다.이틀 전, 재하, 재균과 몇몇 사람들이 아무 문제없이 이 팀에 합류 했다.매년 열리는 생일 연회에서 그러하듯, 배씨 가문은 유명한 지역 쉐프들 뿐만 아니라 연회에 연예인들도 초대하였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서비스를 도울 안내원들 즉 잡역인들이 필요했다.아주 부유한 가문이었기에, 이 행사에서 배씨 가문은 비교할 수 없는 부와 화려함을 보여 주었다. 도윤이 속해 있는 팀의 엄청난 사람들 수만으로도 그를 증
그 여자는 연아였다!그는 정말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그 모든 일 후에, 도윤은 연아가 노스베이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방송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인턴십을 하러 그 곳에 가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보였다.하지만, 여기서 그녀를 마주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나저나, 너가 지금 있는 그 바닥에 떨어진 것 좀 치워줄 수 있어? 고마워!” 도윤이를 심지어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다른 여자애가 말했다.“그래!”지연은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재하와 재균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반면 도윤이는 온갖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 잡역부 역할로 배정이 되었다! 단순 심부름을 하는게 정말 도윤이의 운명이었을까? 그럼에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도윤이에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연아야, 그냥 고난과 역경에서 오는 작은 휴가라고 생각 해. 어쨌든, 불운한 기억으로 가득한 성남시를 간신히 떠나왔잖아. 이제 노스베이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거라고! 누가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어? 원래 모든 게 다 너 거여야 했어! 만약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면 우리도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화장을 계속 지우며 다른 여자 애가 말했다.그들을 힐끔 보며, 도윤은 대부분의 여자들은 공통적으로 낮에 화장을 하고 밤에 화장을 지우는 사실을 느꼈다.“이제 그 얘긴 그만하자, 현희야. 내가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가슴 속 깊이 후회로 가득 차 있어. 맨 처음에 걔한테 내 인상이 좋아서 후회 감정을 안 느끼는 게 쉽지 않아. 걔가 다른 사람들한테 다정하기도 하고 꽤 훈훈하게 생기기도 했잖아. 그런데 너무 가진 게 없었어! 언제부터 인지 왜 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걔가 너무 싫어졌어!”그러고 연아는 화장 지우는 것을 멈췄다. 눈썹 연필로 손에 낙서를 하며 머리를 화장대에 기댔다.“현희야, 너는 가끔 여자들 마음이 진짜 이상한 것 같지 않냐? 걔가 부자가 된 후에야 내가 조금씩 걔를 좋아하기 시작한 게 아니
연아처럼 자존심이 강한 여자에게는 그 일은 당연히 큰 상처로 남았다.도윤은 이 일은 자신의 잘못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는 그들이 부탁한 포도주 두 병을 가지러 나왔다.놀랍게도, 그 둘이 술을 마시고 와인에 취하기 시작하자, 현희는 도윤에게 그들의 짐가방을 싸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다.그가 마치 개인적으로 그들의 일을 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연아는 잡생각들을 하느라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 둘의 짐을 다 쌌을 때쯤, 포도주 두 병은 비어져 있었다.연아는 이때 분명 술에 취해 있었지만, 계속 와인을 더 마시자고 고집했다. 도윤은 그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도윤이 마침내 떠날 준비가 되자, 연아는 몸을 움츠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그녀는 분명 술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마신 듯했다. 현희도 두 번째 병을 비울 때쯤 이미 잠을 자러 들어갔고 이제 의식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마시자! 더 마시고 싶어!” 연아가 흐느끼며 말했다.도윤은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런 연아의 모습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로 다가가면서 그가 도움을 주는 것은 죄책감 때문이지 애정이 아니라고 스스로 되뇌었다.“어쨌든, 연아가 나만 아니었어도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몰라…”팔로 그녀를 벌쩍 들어올리며, 도윤이 말했다. “그래, 이만하면 오늘 많이 마셨어… 내일도 할 일이 있잖아. 그니까 빨리 들어가서 쉬어!”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막 이불을 덮어주려고 할 때 연아가 갑자기 도윤이의 손목을 잡았다.“이..도윤…? 정말 너야…?” 연아가 흐릿하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사람 잘못 보셨어요!” 도윤은 황급히 연아의 손을 잡아 떼며 말했다.“너, 결국 나를 보러 와 줬구나…! 너한테 할 말이 많아… 아직 가지 마! 제 말, 내 말 좀 들어줘!” 연아가 술 취한 사람 치고는 놀랍게도 꽉 움켜쥔 채로 말을 이어했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