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온영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여자가 남자에게 어울리냐 안 어울리냐를 금전이나 권력으로 판단해야 해? 내가 이렇게 예쁜데 너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예쁘다고? 그냥 평범한데.”엄진우는 김온영을 훑어보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김온영은 꽤 예쁘긴 했다.중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녀는 단연코 반에서 제일 예쁜 애였고 심지어 학교에서도 제일 예뻤다. 인터넷상에서도 수많은 남자의 여신이 될 만한 외모였다. 그러나 예우림이나 소지안 같은 최고급 여신들과 비교해 보면 그녀는 한참 부족했다.“평범하다고? 내가?!”김온영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미안하지만 네 허풍 좀 멈춰줄래. 더 이상 듣기 힘드니까.”그때 주방장이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그의 얼굴에는 기묘한 미소와 조롱이 묻어 있었다.“이봐, 우리 레스토랑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야. 그게 뭔지 알아? 그건 우리 레스토랑의 이름값만으로도 몇십억 가치가 있다는 뜻이야! 게다가 내가 외국인이긴 하지만 미적 기준이 다를 수 있어도 이 여자는 정말 매력적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평범하다니? 그럼 네 눈에 예쁜 여자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어? 혹시 여자 친구 있어? 네 눈에 아름다운 여자가 어떤 모습인지 좀 보여줘 봐.”주방장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때 레스토랑 문이 열렸다. 일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고 그 뒤로는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고정했고 결국 레스토랑에 있던 모든 사람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쪽을 멍하니 쳐다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어떻게 왔어?”엄진우는 놀라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멈춰 있던 세상을 깨뜨리는 듯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모두 깜짝 놀라며 엄진우를 바라봤다.“이분은 누구야?”예우림은 엄진우를 한번 쓱 훑어보고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후 평온하게 엄진우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김온영은
김온영의 얼굴은 잠시 멍해졌다. 이제야 그녀는 엄진우가 했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그의 규칙이 바로 창해시 전체의 규칙이라는 걸 말이다.자기는 한 식당의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느 이미 모든 사람을 자기의 규칙에 따르게 할 수 있을 만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그녀는 정말로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김온영의 얼굴은 순간 창백해졌다.“가자. 이밥 먹을 가치도 없는 것 같아.”엄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한 매력적인 여성이 급히 식당으로 들어왔다.“엄진우, 빨리 나와. 급한 일 있어.”화려한 곡선을 드러내는 제복을 입은 조연설이 등장한 것이다.그녀는 엄진우의 손을 잡고 급히 밖으로 끌고 나갔다.예우림과 소지안의 살기를 담은 눈빛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니, 다급한 그녀는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무슨 일이야?”엄진우는 조연설에게 끌려 나가며 물었다.“어젯밤, 창해시에서 한밤중에 여러 건의 잔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어. 성에서 밤새 사건 전담반을 꾸렸지만 아직까지 단서를 전혀 찾지 못했어.”조연설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분하게 말했다.”몇 명이 죽었는데.”엄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비록 창해시에 강남성 최대의 지하 세계 본부가 있지만 실제로 창해시는 강남성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도시였다.엄진우의 명령에 따라 영호는 부하들을 엄격히 통제하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거의 없었다.그래서 창해시는 오랫동안 의도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7명이 죽었어! 게다가 그 7명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죽었고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어. 범인이 무작위로 저지른 것처럼 보이더라고.”조연설이 설명했다.“시신은 어디 있어? 먼저 시신부터 보지.”조연설이 직접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으니 엄진우는 거절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시신은 모두 사라졌어.”조연설의 얼굴은 심각해졌다.엄진우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시신을 보지도 못
이 분주한 아파트 건물은 이제 귀신이라도 들린 듯 사람의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정지되어 있었고 엄진우과 조연설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은 23층이야. 피해자는 한 배낭 여행객이었고 우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는 현재 용국을 여행 중이었어. 어제 서강에서 막 돌아온 상태였지.” 조연설은 계단을 오르며 엄진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조연설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대부분의 남자보다 훨씬 뛰어났다. 23층을 오르면서 얼굴 하나 붉어지지 않고 숨도 가쁘지 않았다. “도착했어.” 계단 입구에는 집행 요원이 지키고 있었고 그들은 조연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들의 시선이 엄진우에게 향했다. “이분은 누구신가요?” 집행 요원이 물었다. “내가 데려온 지원자야. 사건 현장을 보여주려고.” 조연설가 대답했다. 그 집행 요원은 조연설과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집행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 집행청 사람인가요? 처음 뵙는 것 같은데요.” 그는 의아하게 엄진우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우리 시스템 소속은 아니야.” 조연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집행 요원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우리 집행청 소속이 아닌 사람은 안 될 것 같은데요. 우리 내부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안에 성에서 온 사람들이 있어요. 알잖아요...”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성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콧대가 높아서 우리 집행청의 유능한 인재들도 주변 일만 하게 만들었어요. 하물며 이분이 우리 시스템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 곤란해질 거예요.” “이 사람은 달라. 우리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 이런 신뢰는 엄진우가 여러 사건에서 조연설에게 거의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님, 저 좀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성에서 저를 이 계단 입구를 지키라고 시킨 거
“팀장님, 이분은...”조연설이 설명하려는 순간 남자가 말을 끊었다.“이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당장 내보내세요. 조연설 씨, 당신이 명단에 포함된 건 당신에 대한 내 배려에요. 당신 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고 경험을 쌓게 하려고 일부러 이름을 넣어준 거예요.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안 돼요. 이해하겠어요?”남자는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조연설은 닭살이 돋았다.2308호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자기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현장에 들어선 이후로 엄진우는 현장을 관찰하는 데만 집중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난 연설이가 도와달라고 해서 왔어요. 현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도와요?”이 말을 듣고 남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비웃었다.“당신이? 사건 해결을 돕는다고?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요? 강남성 최고의 사건 해결 전문가로 집행 시스템 내에서 신통한 탐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어요. 내가 강남성에 온 이후 총 13건의 미제 사건을 해결했고 37명의 사형수들을 법의 심판을 받게 했어요. 당신이 사건 해결을 돕는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강남성에서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당신들이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연설이 나를 찾은 거 아닙니까. 당신들이 조금만 더 효율적으로 일했다면 나를 찾지도 않았겠죠.”엄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사건 발생 후 현재까지 24시간도 안 되었어요. 이런 대형 사건을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남자는 화가 나서 물었다.“당신이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안 되는 건 아니죠.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건을 해결할 거라고 바라지는 않지만 사건 현장에서 하루 종일 조사를 했는데 아무런 단서라도 찾았나요?”엄진우는 반문했다.남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우리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어딘가에 반드시
“맞아요. 범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왔어요. 그래서 범인이 살인을 하고나서도 방과 복도에 아무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거예요.”엄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장갑을 착용하고 방의 창문을 열었다.23층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지러움을 느낄 높이였다.아파트의 외벽은 매끈한 유리 벽으로 되어 있었다.이 매끈한 외벽을 보고 나서는 어떻게 외벽을 타고 23층에 올라오는지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똑똑한 척은! 우리가 이런 가능성도 고려해 봤지만 바로 제외한 가능성 중 하나에요. 능력이 있다면 그쪽이 직접 보여줘 봐요. 어떻게 창문을 통해 출입할 수 있는지 보고 싶네요.”남자는 차갑게 말했다.엄진우는 물론 와이어를 사용해 자신을 매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국 23층에서 와이어를 사용해 자신을 매달려면 60~70미터 길이의 와이어가 필요하고 성인의 체중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두꺼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이어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범인이 와이어 매단 후 어떻게 풀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된다.“뭐가 어렵다고?”엄진우는 창틀 위로 올라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뭘 하려는 거요?”모두 놀라서 소리쳤고 남자는 급히 외쳤다. 이 미친놈이 자극받아 창문에서 뛰어내리려는 건 아니겠지? 정말 인명사고가 나면 자기도 처벌받을 거라고 생각했다.“보여 달라면서요?”말을 마친 엄진우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2308호 방 안에서는 비명이 들렸다.“저 미친놈!”남자는 욕을 퍼붓고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가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엄진우는 매 층을 떨어질 때마다 발끝으로 벽에 튀어나온 창턱을 가볍게 디디며 낙하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그 튀어나온 창턱은 겨우 2~3센티 미터 정도였다. 엄지우는 마치 큰 새처럼 우아하게 움직이며 가볍게 1층 바닥에 착지했다.물론 엄진우의 실력으로는 23층에서 곧바로 떨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는 그가 수련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범인이 수련자가 아니라면 흔적 하나
엄진우는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낮추며 마치 표범처럼 몸을 튕겨 올렸다.그는 수직으로 점프하는 것이 아니라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뛰어오랐다.몸이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강력한 핵심 근육의 힘을 이용해 공중에서 잠시 멈추었다.그 후 벽에 있는 창턱을 강하게 차며 몸을 한층 더 올렸다. 창턱을 잡고 있는 8개의 손가락 힘만으로 전신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엄진우의 팔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손가락이 강하게 힘을 주어 그의 몸을 공중으로 튕겨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한 층씩 계속 올라갔다. 아래에 있는 성집행청의 사람들 눈에는 그의 몸이 점점 더 작아지면서도 더욱 위엄 있어 보였다.남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엄진우는 이미 20층까지 올라갔다. 그것도 60미터가 넘는 높이였다. 조심하지 않으면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높이였다.“미쳤어! 미쳤어! 이 미친놈을 어디서 찾은 거야?”남자는 놀라며 조연설을 바라보았다. 그는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미치다뇨. 단지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거예요.”조연설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번졌고 마음속으로 엄진우를 자랑스러워했다.공중에서 엄진우는 손가락으로 2308호의 창턱을 잡고 몸을 휘저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방금 내가 올라온 이 경로가 범인이 올라온 경로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 경로만이 외벽과 거리의 모든 CCTV를 완벽하게 피해 갈 수 있거든요. 또 이 경로의 유리 외벽은 낮에 해가 비추는 방향으로 눈부신 햇빛을 반사해서 일반적으로는 아무도 외벽을 올려다보지 않아요.”성집행청 사람들이 방 안으로 돌아오자 엄진우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남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모든 게 사실이니까.비록 그는 엄진우의 방법이 복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가능성이 있다면 조사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가능성도 놓칠 수는 없었다.“즉시 견인 장비를 설치하고 외벽과 창턱을 조사해라!”그는 무거운 어조로 명령했다.곧 아파트의 지붕에는 견인 장비가 설
조사가 중요한 돌파구를 맞이했다.전담반은 시청으로 돌아왔고 시청 전체 층은 전담반의 사무실로 비워두었다.벽에는 찍힌 혈흔 사진들이 주찬호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순서대로 붙여졌다. 그 혈흔 사진들을 응시하면서 주찬호는 미간을 찌푸렸다.엄진우가 말한 대로 범인이 출입한 경로는 모든 CCTV를 완벽하게 피했다.이 혈흔 사진들이 그들에게 더 많은 단서를 제공할 수는 없었다.엄진우는 의자에 앉아 전담반의 의견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오랜 침묵만이 흘렀다.그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그는 지나치게 주목받고 싶지 않았다.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은 적을 만들기 마련이니까.“엄진우 씨, 뭘 알아내셨나요?”한숨 소리가 주찬호의 귀에 다소 거슬리게 들려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엄진우의 기술과 용기는 그를 감명시켰지만 단서의 해석에서는 아직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었다.그러나 이 혈흔이 엄진우 덕분에 발견된 것이어서 그는 감정을 눌러야 했다.“이 혈흔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엄진우는 일어나 사진 앞으로 걸어갔다.“이 사진 중 유리 외벽에서 발견된 혈흔은 범인의 발끝이 남긴 것입니다.”말하면서 그는 사진을 떼어내어 다른 쪽의 빈 공간에 붙였다.“우리는 이 발자국을 아주 쉽게 복원할 수 있어요.”엄진우는 펜을 들어 발바닥 전체를 그리기 시작했다.발끝과 혈흔이 완벽하게 일치했다.복원된 부분은 발끝과 완벽하게 통합되어 이상함이 전혀 없었다.마치 발끝 부분이 이 발바닥에서 잘라낸 것처럼 보였다.“동아시아인과 유럽인의 발바닥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발바닥을 관찰하면 이것이 전형적인 유럽인의 발바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범인의 범위를 창해시의 유럽인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엄진우의 추론에 모든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 범인의 발자국을 간단히 복원했다? 그게 간단한 일이었던가? 그들의 인식으로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월리엄, 우리가 사람을 죽이고 나서 다시 이 건물에 돌아온 건 너무 대담한 짓 아니야?”침대 머리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헤이, 앨리스, 좀 편하게 생각해. 그 용국 놈들 10년이 지나도 우리를 못 찾을 거야.”월리엄이 비웃으며 대답했다.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당당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사건이 벌어진 같은 아파트의 민박에 체크인할 줄은. 전담반이 아파트 내의 수상한 인물들을 조사할 때 두 사람은 사건 후에 체크인했고 사건 전에는 CCTV에 이들이 드나드는 모습이 찍히지 않았기에 첫 번째로 이들을 용의자에서 제외했다.“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어.”앨리스는 연기를 내뿜으며 그녀의 표정은 연기 속에서 흐릿하게 보였다.“아마도 피에 대한 갈망이 네 욕망을 자극하고 아직 만족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월리엄은 와인잔을 내려놓고 앨리스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앨리스, 우리는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지만 그 저질 잡종들과는 달라. 우리는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순혈 뱀파이어야! 이 용국 사람들의 피는 너무 저급하고 비리비리해서 우리 같은 고귀한 존재가 먹을 수 없어.”월리엄은 앨리스의 어깨를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네 말이 맞을지도.”앨리스는 담배를 비벼 끄고 어깨를 으쓱했다.“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네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는 있어.”월리엄의 잘생긴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우리에겐 아직 완료하지 않은 임무가 있어.”앨리스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고작 몇 마리의 저급한 돼지들일 뿐이야. 그 신비한 조직이 왜 그들의 몸을 필요로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야 뭐 오늘 밤 잠깐 시간 내서 그들을 모두 죽이면 돼.”월리엄은 허리띠를 풀며 히죽거렸다.“이제 우리 마음껏 즐기자.”그는 웃으며 말했다.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하게 옷을 벗었다.월리엄은 그녀를 덮쳤지만 앨리스는 끝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힘이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