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란 예우림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는 엄진우를 향해 원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잖아. 방선인이 가짜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 사람들이 맹신하니까 나도 일부러 맞춰줬던 거야!” 엄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신의 계획은 알겠지만 내가 있는 한 당신의 희생으로 목적을 이루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해.” “정말 고집불통이네!” 비록 예우림은 엄진우에게 한 소리 했지만 마음은 말로 할 수 없이 따뜻했다. 알고 보니 엄진우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예우림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다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작은할아버지, 노부인 죄송합니다. 이 사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여러분이 방선인에게 끌려다니는 것을 도무지 볼 수 없어 그런 것뿐이에요. 여러분이 오늘날의 위치에 오른 건 모두 노력의 결과이지 선인의 공로가 아니에요.” 하지만 노부인과 예흥성은 그닥 이해력이 좋지 않았다. 예흥성은 바로 그들을 쫓아내려고 했다. “이 집에서 나가! 당장 나가!” 노부인도 메이드의 부축을 받은 채 두 사람을 노려보며 화를 냈다. “두 사람은 지옥에 갈 거야. 벼락 맞을 거야! 쫄딱 망해서 비참하게 죽을 거야!” “다들 잔뜩 흥분했네. 왜요? 찔리세요?” 엄진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을 비웃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방선인이 진짜 선인이 아니라도 해도 너희 둘을 믿는 것보다 나아!” 예흥성은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왜 방선인이 아닌 두 외부인을 믿어야 하는 거지?” 엄진우는 예우림의 손목시계를 보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10분 뒤면 주식시장이 열리겠네요. 제안을 드리자면 오늘은 다이아 그룹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 오늘 다이아 그룹은 상한가를 칠 거니까요.” “헛소리하지 마!” 예흥성은 그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난 강남의 모든 상장 기업을 빠삭하게 꿰뚫고 있어. 다이아 그룹은 며칠 전 재단과의 소동으로 사
그리고 다이아 그룹의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하려면 적어도 엄청난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이아 그룹이 제경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내거나 연간 재무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파격적인 소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단기간에 금복생은 그런 일을 이루어낼 수 없다. 그의 인맥과 영향력은 고작 강남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진우는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지성 그룹 지사 대표일 뿐이다. 그가 다이아 그룹에 그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그것은 불가능한 말이다. 예우림은 놀란 나머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부 정보라도 받은 거야? 오후에 다이아 그룹이 상한가를 기록할 거라고?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이라도 있어?” 하지만 정말 내부 정보가 있었다면 강남 주식 시장의 금융 대부로 알려진 예흥성이 그보다 먼저 이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높지 않았다. 그러자 엄진우는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맞춰봐.” 예우림은 입술을 깨물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네 생각인 거야?” “뭐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엄진우는 빙그레 웃어 보였고 예우림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진짜 너 한 대 치고 싶어. 아니 밑도 끝도 없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이럴수록 더 미움만 받을 뿐이야.” 오늘의 협력은 거의 망할 각이다. 하지만 엄진우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예 대표, 어차피 10분이야. 그냥 10분만 여기 더 있자고.” 예우림은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나 진짜 당신 때문에 못 살아.” 하지만 아까 최선을 다해 자기를 지켜준 걸 생각해서 그녀는 끝까지 함께 있기로 했다. 어차피 협력은 불가능해졌으니 더는 예흥성과 노부인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 융통성이라곤 꼬물만치도 없는 고지식한 노인네들.예우림은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곧 10분이 지나고 주식 시장이 열렸다. 예흥성은 즉시 주가 현황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이아 그룹의
만약 개장 전에 대량으로 다이아 그룹의 주식을 사들였다면 예흥성은 지금쯤 벌써 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주식 시장에서의 위치도 한 단계 상승했을 것이다. 이게 다 방선인 때문이다. “이 사기꾼 새끼 당장 내 집에서 꺼져!” 예흥성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방선인의 얼굴에는 곧 커다란 붉은 손자국이 생겼다. 그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몇 년 동안 그는 예흥성의 집에서 먹고 마시며 지내며 메이드의 시중을 받은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쫓겨나면 그가 가진 기술로는 결국 길거리에서 구걸하다가 굶어 죽을 것이다. “어르신,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저놈의 계략에 빠진 겁니다.” 방선인은 사색이 되어 애원하기 시작했지만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방선인은 노부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노부인, 절 위해 한마디만 해주세요. 노부인만 아니었더라면 저도 예우림을 삼살체라고 말해 저들을 쫓아내기 위한 핑계를 만들어 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방선인의 말에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자 노부인은 버럭 화를 내더니 용두지팡이를 휘둘러 방선인의 머리를 내려쳤다. “헛소리! 몇 년 동안 눈이 멀어서 자네 같이 쓸모없는 사기꾼을 헛되이 키웠어!”그러나 진실은 이미 드러났고 상대가 어떻게 변명해도 무의미했다. 엄진우는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님, 오늘 일은 어떻게 마무리 지을 생각이세요?” 예흥성은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는 메이드를 불러 노부인을 방으로 모셔가게 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오늘 일은 내 실수야. 어쩌면 협력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군.” 그러자 예우림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정말이세요?” 하지만 엄진우는 예우림을 억지로 그의 뒤로 끌어당겼다. “예 대표,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금방 올 거야.” 예우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중요한 시점에 갑자기 화장실에 간다고? 정말 어이없네. 빨리 다녀와.” “그래.”
“예우림!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예흥성은 화가 나서 수염마저 떨렸다. “우리 같은 어른이 없으면 너도 없는 거야! 잊지 마, 난 너보다 훨씬 어른이야. 네 작은 할아버지라고!” “예씨 가문 사람들과 한패라면 이 예우림의 어른이 아닌 적이 되는 거예요.” 예우림이 진지하게 말했다. “우릴 쫓아내는 건 받아들일 수 있어요. 하지만 예씨 가문과 한통속이 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이것은 그녀의 역린이나 마찬가지다. 예우림은 상대의 무시와 배척은 견딜 수 있어도 배신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그녀를 배신하면 죽어도 같이 죽는 것이다. 예우림의 기세에 잔뜩 풀이 죽은 예흥성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그래, 약속하지. 예흥찬의 집사는 이따가 쫓아낼 거야.” “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이때 엄진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아까 눈에 보이길래 바로 해결했어요.” 순간 예우림은 그대로 얼어붙더니 엄진우를 빤히 쳐다봤다. 와, 역시 이 남자야. 예흥성 역시 잠시 멈칫하다가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빨리! 예흥찬이 보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 “어르신! 머... 머리가 잘렸습니다.” 한 메이드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네가 그자를 죽였어.” 예흥성은 완전히 멘붕이었다. 이젠 끝장이다. 예흥찬이 가장 신뢰하는 집사를 죽였다는 건, 두 집안이 완전히 등을 돌리게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감님,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겠죠?” 엄진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물었다. “예흥찬 그 교활한 늙은이가 대가리가 잘린 집사를 본다면, 과연 영감님의 말을 믿어 줄까요?” 예흥성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엄진우가 계속 말했다.“예 대표, 영감님이 성의가 없으시니 우리도 더는 여기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 가자.” “그래.” 예우림은 협조적으로 대답했다. “잠깐!” 그러자 예흥성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두 사람을 재빨리 막았다. “일단 우리 집에서 잠시 쉬게. 내가... 내가 바로 답을 줄 거야.”
예술품처럼 정교한 풍경은 순간 엄진우의 눈앞에 완전히 펼쳐졌다. 엄진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하체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상대의 모델 같은 몸매를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운동 좋아하나 봐? 몸매 좋네.” 방에는 그 어떤 감시 장치나 도청 장치도 없었고 그녀의 실크 잠옷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여자의 목적은 무엇일까?엄진우는 적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기도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어르린이 그쪽을 즐겁게 해드리라고 보냈어요. 걱정 마세요. 옆 방에 있는 예우림 씨는 아무것도 몰라요. 절대, 영원히 알 수 없어요.” 상대는 얼굴을 붉히며 쭈뼛거렸다. 그녀는 엄진우에게 다가가 온몸을 그의 가슴에 밀착한 채 가느다란 손으로 엄진우의 허벅지를 감쌌다. 그러자 엄진우는 그녀의 손을 홱 낚아챘는데 실수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스쳤다. “내 허락 없이 감히 함부로 행동해? 난 하반신으로만 생각하는 남자가 아니야. 위험한 행동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내 손에 어떻게 될지도 몰라.” 여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엄진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엄진우는 한 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여자를 못 죽인다고 생각해? 특히 이렇게 몸으로 달려드는 여자를?” 엄진우는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북강에서 적을 죽이고 있을 때, 너 같은 아가씨는 어느 삼류 대학에서 애송이들과 어울려 다녔겠지.” 그녀는 숨이 멎을 것 같아 안색이 점점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리고 숨이 거의 멎으려는 그때야 엄진우는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감싼 채 연신 기침을 해댔다. 공포에 질린 사슴처럼, 그녀는 아까의 배짱과 방자함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엄진우는 몸을 숙이고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예흥성 대체 뭐 하려는 수작이지?” “단지 저에게 당신을 기쁘게 해주라고 했어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고 했을 뿐 다른 건 몰라요.
예정현은 흠칫 놀랐다. “엄진우 씨, 지금 저 놀리는 거 맞죠?” 예흥성을 대체한다고? 그 말은 그의 재산과 권력을 모두 그녀가 물려받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엄진우는 웃음 속에 칼을 품으며 말했다. “농담처럼 들려?” 엄진우가 봤을 때, 예흥성의 행동은 극도로 무모한 짓이었다. 겉으로는 협력한다고 약속하더니 뒤에서는 감히 음모를 꾸며 엄진우와 예우림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다니. 이런 악의적인 사람과는 절대 오래 협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협력 상대를 바꾸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만 괜찮다면 내가 짧은 시간 안에 당신에게 예흥성의 모든 것을 주겠다고 보장해 주지. 할래? 한마디만 해.” 엄진우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예정현의 마음속에는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앞의 남자로 인해 오랫동안 억눌렀던 불씨를 일으킬 줄 생각도 못 했다. 그녀는 지금처럼 예흥성의 꼭두각시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그녀는 이 기회가 어쩌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저... 할 게요.” 예정현은 고개를 들고 엄진우의 눈을 마주쳤다. 그러자 엄진우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는 예정현에게 다가가 한 손으로는 그녀의 볼을 감싸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래야 서로 솔직해질 수 있지. 자, 그럼 무릎 꿇어. 일은 철저하게 해야 예흥성 그 영감을 제대로 속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천천히 그를 삼켜버리는 거지.” 예정현은 당황 해서 안색이 붉어졌다. “그쪽도 꽤 음탕한 사람이네요.” 그러자 엄진우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사실 나 더는 못 참아. 그러니 반드시 제대로 당신을 혼내줘야겠어.” “그렇다면 원하시는 대로, 미친 듯이 절 혼내주세요.” 예정아는 순종적으로 무릎을 꿇더니 아름다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 두 시간 뒤, 엄
이건 심리적인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엄진우는 다급히 말했다. “예 대표, 나 억울해. 아니, 나만큼 억울한 사람이 있다면 당장 나오라고 해!” 아니, 내가 먼저 들이대서 잔 게 아니라 상대가 먼저 다가온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그리고 내가 아무 여자나 잔 건 아니잖아. 하지만 예우림은 쉽게 달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엄진우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엄진우는 그녀를 따라가 설명하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바로 최담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순간 엄진우는 심장이 철렁해 발걸음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분명 예강호의 행방을 알게 된 것이 틀림없다. 긴급한 상황에 엄진우는 예우림을 달래는 일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엄진우 님, 찾았어요. 예강호의 행적을 찾았어요.” 최담비는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중해 빌딩에 있는 9대 수진 가문 연합 본부에 있어요. 며칠 동안 함께 잠을 자며 얻어낸 정보예요. 절대 저 실망시키지 마세요.” 엄진우는 속이 떨려왔다. “걱정하지 마. 네 몫은 내가 충분히 챙겨줄게. 중해 빌딩에 드래곤 크루 사람들도 있어?” “없어요. 몇 번이고 확인했는데 드래곤 크루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상대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엄진우는 하나도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그의 머릿속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게 진짜 문제라는 거야.” 그가 아는 드래곤 크루는, 특히 리더 시천민은 예강호를 미끼로 엄진우를 낚으려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중해 빌딩에는 반드시 그의 심복들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담비가 확실하게 없다고 단언한 거로 보았을 때, 유일한 가능성은 바로 드래곤 크루의 사람들은 어딘가에 숨어 그가 덫에 걸리길 기다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은 못 가. 자칫하면 예강호도 못 구하고 오히려 위치를 바꿀 수도 있어.”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현재로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정보를 수집하는
그제야 엄진우는 시선을 돌렸다. “켁켁, 미안. 내 동생 티셔츠와 똑같길래 잠시 넋을 잃었던 것뿐이에요.” 그러자 화끈한 몸매의 여자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동생 이름이 뭐야?” “엄혜우, 난 혜우 오빠 엄진우.” 풉!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엉덩이를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혜우야, 네 오빠가 찾아왔는데?” 이내 슬리퍼 소리가 들려왔다. 엄혜우는 하얀 곰돌이 반팔 티셔츠에 섹시한 핫팬츠를 입은 채 길고 하얀 다리를 뽐냈다. 그리고 포니테일로 깔끔하게 머리를 묶은 그녀는 귀엽고 예뻤다. 엄예우는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진짜 오빠야? 오빠가 여긴 어떻게 왔어?” 엄혜우는 두 팔을 벌려 엄진우의 품에 와락 안겼다. “보고 싶었어.” 엄진우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쩜 아직도 사춘기 소녀 같아? 너 이젠 어른이야.” 그때, 엄진우는 갑자기 몸이 뻣뻣해지더니 헛기침을 해댔다. “혜우야, 너 설마 속옷 안 입었어?” “헤헷!” 엄혜우는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이젠 알겠지? 나 소녀 아니야!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 봐!” 엄혜우가 가슴을 쑥 내밀자 하얗고 얇은 티셔츠에는 선명한 검은 점 두 개가 솟아올랐다. 엄진우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 “너 이거 어디서 배운 못돼먹은 행동이야. 감히 오빠한테 까불고 있어!” “아파, 아프다고!” 엄혜우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배우긴 뭘 배워. 내가 뭐 어린앤가? 이런 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야.” 옆에 있던 화끈한 몸매의 여자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혜우 오빠, 신경 쓰지 마. 얘 평소에도 집에선 가슴 조인다고 속옷 안 입어.” “나 아직 발육 중이라 속옷이 다 작아졌어.” 엄혜우는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순간 엄진우는 할 말을 잃었다. 어이없네, 나한테 왜 그런 걸 얘기하지? 넌 내 동생이야! “나중에 네 새언니한테 골라달라고 할게. 그 여자가 이 방면은 전문이야.” 엄진우가
남자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이때, 서관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남자는 순간 멍해지더니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엄진우를 힐끗 쳐다보았다. 설마... 진짜일 리가 없겠지? 전화를 받자마자 쏟아지는 것은 거친 욕설이었다. 한편 제경에는 피를 동반한 권력 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보수파는 이용진을 잡은 후 야망이 커져 이 기회에 급진파의 장로들을 모두 제거하려 했다. 급진파의 장로들은 이용진 사건에서 이미 한발 물러섰지만 보수파의 끝없는 욕심을 보고 더는 참기 어려웠다. 양측은 격렬한 충돌을 벌이다 큰 전쟁으로 번졌다. 결국 제경 전역을 봉쇄하고 계엄령을 내렸지만 양측의 교전으로 제경 내부는 화약 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이 충돌은 전 국토로 확산되어 전국적인 전란의 위기를 몰고 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대장로가 깨어났다. 몇 년 전, 대장로는 북강 명왕을 해임한 후 깊은 잠에 빠졌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깨어난 것이다. 혼란스러운 제경과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두 파벌을 본 그는 상황이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반쪽짜리 명왕령을 당장 엄진우에게 가져가고 제경으로 불러들여라! 그때의 일은 내가 친히 설명할 것이다.” 대장로는 수십 년을 함께한 심복을 불러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진우는 반쪽짜리 명왕령을 손에 쥐게 되었다. 수년 전 그날, 엄진우는 명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이 반쪽 명왕령을 회수당했다. 이 순간, 명왕령은 드디어 온전한 하나가 되었고 이는 명왕이 다시 자리에 올랐음을 알리는 것이다. 제경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알게 된 엄진우는 아무 말 없이 갑옷을 입고 무장했다. 전투의 기운은 살벌하게 하늘을 찔러댔다. 그는 급히 북강으로 향했다. 북강 잠룡곡. 그곳에는 50만 북강 군대가 수년간 매복해 있었다. “북강군이여, 명령을 받들라!” 긴 외침과 함께 전쟁의 신, 북강 명왕의 모습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만 북강군은 흥분에 휩싸여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암은 용국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인데 용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암의 많은 재벌은 지난 100~200년 동안 용국에서 이민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현재 시암의 갑부 역시 그중 하나였다. “아버지 성이 서씨야?”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 좀 아는구나? 얼마면 되겠어? 가격부터 말해.” 남자는 손을 휘저으며 수표를 꺼냈고 엄진우의 얼굴은 순간 싸늘해졌다. “네 아버지 그까짓 재산으론 내 엉덩이를 닦기도 부족해. 그런데 어디서 감히 큰소리야? 당장 꺼져!” 엄진우는 이 재벌 2세가 그저 방탕한 자식일 뿐, 실지 가문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 단지 남을 괴롭히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저렴한 사람이니 더는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남자는 멍하니 엄진우를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미쳤어? 우리 아버지 시암 갑부라고! 그런데 그까짓 재산이라고?”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네 아버지 말이야! 서씨 가문 자산을 합쳐도 200조를 넘지 못해!” 엄진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아, 이 새끼 허세 장난 아니네? 너 200조가 어떤 개념인 줄 알기나 해? 현금으로 바꾸면 너 같은 건 몇천 번도 깔아 죽일 수 있어.”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됐고... 애송이, 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면 시암에 있는 네 아버지가 당장 날아와 널 혼내줄 거야.” 엄진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남자를 쫓아냈다. “이 새끼 봐라? 감히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이야? 너 돈에 깔려 죽고 싶어?” “말귀 못 알아듣는 놈이군, 당장 네 아버지를 불러줄게.” 엄진우는 휴대폰을 꺼내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서관림 알죠?” 엄진우가 물었다. “선생님, 서관림은 무슨 일로 찾으시는지요? 당장 연락드리라 알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서관림의 아들이
그녀는 아들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원수를 사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고 아들이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아들이 그 수단들을 어디서 배웠는지,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숨 막히는 날들을 보냈는지 너무 걱정되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엄진우는 하수희를 번쩍 안아 들고 회사를 떠났다. 가는 길에 엄진우는 가볍게 하수희의 머리를 쳤고, 곧 하수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엄진우는 그녀의 일부 기억을 지워버렸다. 집에 돌아와 한참이 지나자 하수희도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진우야, 어쩐 일로 갑자기 돌아왔어?” 엄진우를 본 하수희는 반가움에 어쩔 줄 몰랐다. “나 일 때문에 먼 길 떠나기 전에 집에 좀 들러보려고. 근데 엄마는 왜 소파에서 자? 방에서 편히 자지.” 하수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네 동생이랑 전화하다가 잠들었나 봐. 참 이상하네. 어떻게 말하다 말고 잠들었지?” 하수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손강호에게 납치된 기억은 전부 엄진우에 의해 지워졌다. 하수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예전 같지가 않아. 좀 쉬고 있어. 엄마가 곧 밥 해줄게.” 말을 마친 하수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엄진우는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소지안은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회사를 정리했다. 엄진우가 부순 벽은 이미 수리되었고 회사 로비도 완벽하게 청소가 끝나 있었다. “손강호는 창고에 가뒀어. 어떻게 처리할지는 진우 씨가 결정해.” 엄진우가 오자 소지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손강호가 창고에서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회사에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요양원으로 보내. 쉽게 죽으면 안 되지.” 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손강호가 제대로 남은 삶을 ‘즐길’ 수 있게, 엄진우는 돈을 들여서라도 그를 요양원에 보내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 바로 연락해
“그래, 빠져나간 쥐새끼가 없다면 지금쯤 손씨 가문은 16세 이하의 어린애와 70세 이상의 노인을 빼고 다 시체가 되었을걸.” 엄진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말했다. 무자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어느 날인가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그를 해치려고 할 것이다. 손강호의 안색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때 엄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궁민희였다. 엄진우는 전화를 연결하고 스피커폰을 켰다. “상황은 어때? 여기 손씨 가문의 장손이 들을 수 있게 상세하게 말해줘.” “손씨 가문 혈통 총 173명, 노인과 아이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여 명은 이미 처단한 상탭니다.” 남궁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풉! 손강호는 분노와 공포가 치솟아 피를 토해냈다. “말도 안 돼! 그럴 수 없어! 제경 손씨 가문이 어떻게!” 손강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허겁지겁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옥에서 확인해.” 엄진우가 싸늘하게 웃었다. “미친놈! 미친 새끼야!” 손강호는 넋을 잃고 절규했다. “난 단지 네 엄마를 납치했을 뿐 해치지 않았어. 하지만 넌 우리 가문 전부를 죽여버렸어. 넌 악마야!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쓰레기를 낳은 손씨 가문도 도긴개긴이야. 손씨 가문 사람이 천 명이든 만 명이든 우리 엄마의 땀 한 방울보다 하찮다는 걸 기억해. 그리고 이건 너한테 대한 내 보복일 뿐이야. 감히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이만한 각오는 했었어야지.” 엄진우는 손강호의 욕설도 무시하고 차갑게 말했다. 미리 후과를 생각하지 못한 손강호의 어리석음 때문에 손씨 가문은 이대로 전멸했다. “그렇다면 다 같이 죽어!” 손강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폭 장치를 눌렀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하나같이 두려움에 빠져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때, 불타는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지만 엄진우는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용진 말이야... 끌려가기 직전까지 왜 나랑 정면으로 맞
“그 손 놔!” 이때,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강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두 눈을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심지어 소지안보다 더 아름다운 자태를 가졌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존재하다니! “나경 씨, 여긴 왜 내려왔어!” 소지안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내려오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건만. “제가 어떻게 마음 놓고 숨어있어요.” 공나경의 몸은 가늘게 떨렸다.비록 마음속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나서기로 했다. 절대 소지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좋아, 아주 좋아. 엄진우 아주 복이 많은 놈이군. 하지만 이젠 다 내 여자들이야. 용국을 떠나기 전에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손강호는 저도 몰래 침을 흘렸다. 그는 소지안을 놓고 다급히 공나경에게로 다가갔다. 공나경은 뒷걸음질 쳤지만 곧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하하, 아주 곱군!” 손강호는 두 팔을 벌리고 공나경에게로 달려들었다. 곧 공나경을 품에 안으려는데...쿵!회사 건물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더니 무너진 틈 사이로 엄진우가 빠르게 다가와 손강호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손강호는 저만치 날아가며 빨간 피를 뿜어댔다. “네가 어떻게?” 엄진우를 본 손강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긴, 엄진우가 이용진을 무너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상대는 무려 용국 궁정의 장로인 이용진으로 엄진우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다. 금방 승리를 거뒀으니 제경에서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어야 하는데... “널 빨리 죽이고 싶어서 말이야.” 엄진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여태 손강호를 살려둔 이유는 손강호가 창해시에 있는 한 이용진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고민하느라 손을 대지 못할 것이고 그 사이에 엄진우는 이용진을 무너뜨릴 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용진이 무너졌으니 더는 손강호를 남겨둘 이유가 없기에 그는 빠르게 비행기를 타고 창해시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늦었어
엄진우가 탄 비행기는 곧 착륙했고 휴대폰을 켜자마자 엄혜우에게서 온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를 발견했다. 순간 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일이 아니면 엄혜우가 이렇게 많은 전화를 할 리 없었다. 엄혜우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엄혜우의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엄진우는 다급히 전화를 받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엄혜우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엄마가 납치당했어!” 순간 엄진우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고 주변의 공기마저 살기로 가득 찼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엄마는 무사할 거야.” 엄진우는 바로 전화를 끊고 남궁민희에게 연락했다. 남궁민희는 아직 제경에 있었는데 아직도 침대에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제경 손씨 가문 정보 가진 거 있어?” 엄진우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그는 하수희를 납치한 사람이 손강호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창해시에 그와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용의자는 단 한 사람, 바로 손강호였다. 더군다나 이용진이 방금 체포된 상황에서 그의 어머니가 납치되었다면 손강호 이외에는 범인이 따로 없다. “있어요!” 화가 난 엄진우의 목소리에 남궁민희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손씨 가문은 이씨 가문 라인이죠. 우리가 날려 보낸 몇천 명의 사람 중에는 손씨 가문 사람도 있었어요.” “16세 이하의 애들과 70세 이상의 노인을 제외하고 전부 처형해.” 엄진우의 얼굴은 사나운 기색으로 가득 찼다. 이것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엄진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북강의 지배자였고 천 리를 피로 물들인 적이 있었다. 그의 행동은 항상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손강호 같은 패륜아를 길러낸 가문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살려둔 것만 해도 큰 자비였다. 만약 그가 여전히 북강을 통치하던 때였다면 손씨 가문의 개조차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네, 주인님.” 남궁민희는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손씨 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소지안이 걸어 나왔다. 손강호는 소지안의 미모에 놀라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전에 사진으로 본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아름다워 감탄한 것이다. “소 대표, 참 오래 걸리네.” 손강호는 소총을 들고 소지안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이유가 뭐죠?” 소지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싸늘하게 물었다. 그녀는 이런 무법자들에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욱 날뛸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소 대표가 한 번 맞춰보지, 그래?” 손강호는 소지안의 턱에 총구를 대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소지안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돈이 필요해요? 회사에 현금 20억이 있으니 당장 가져가도 좋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고 신고도 안 할 테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회사 계좌의 돈은 내가 당신에게 이체하려고 해도 그 돈을 가져갈 수 없어요.” 소지안이 침착하게 말했다. “소 대표 아주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아쉽지만 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야.” 손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뭘 원하죠?” 소지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이야.” 말을 끝낸 손강호는 바로 손을 뻗어 소지안의 얼굴을 어루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소지안은 그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며 두 눈을 부릅떴다. “내 몸에 손댄다면 당신은 이 창해시를 살아 나갈 수 없어요.” “소 대표 아주 강단 있네. 근데 그 우월함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설마 엄진우?” 손강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 진우 씨를 노리고 왔네요.” 소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갑게 물었다. “역시 소 대표 정말 똑똑해. 어쩔 수 없어. 그 자식이 날 궁지로 몰았으니 나도 이럴 수밖에.” 손강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엄진우가 그를 궁지로 몬 건 사실이다. 창해시에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엄진우는 그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쾅!굉음과 함께 문이 강제로 열리더니 손강호가 부하들을 데리고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신들... 당신들 누구야?” 하수희는 깜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누구냐고? 아줌마 납치하려고.” 손강호는 앞으로 세 걸음 다가와 하수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단숨에 부숴버렸다. “잘 묶어서 끌고 가!” 손강호는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졌다. 엄혜우는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사람들 도대체 누구지? 다행히 엄혜우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엄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진우는 비행기에 탑승 중이라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그쪽은 잘 진행되고 있어?” 손강호가 부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비담 컴퍼니 외벽에 이미 폭약을 설치했습니다. 터트리는 동시 건물 전체는 완전히 잿더미가 될 겁니다.” 손강호의 부하가 보고했다. “좋아, 곧 갈게.” 손강호는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빠르게 비담 컴퍼니에 도착해 손에 배낭을 든 채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소 대표 만나러 왔어.” 예우림은 지금 제경에 있지만 손강호는 비담 컴퍼니의 부대표인 소지안도 엄진우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예약은 하셨을까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손강호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으셨다면 먼저 예약부터 하셔야 합니다. 일단 부대표님에게 보고드린 후 전화로 시간 알려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예약 표를 손강호에게 내밀었다. 손강호는 직원의 손을 내치며 들고 있던 배낭을 프런트 데스크에 던지며 지퍼를 확 열었다. “이걸로 예약할 수 있을까?” 배낭 안의 물건을 확인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배낭 안에는 뇌관이 가득했다. 손강호는 배낭에서 소총을 꺼내 들더니 천장에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다. “다들 쪼그리고 앉아! 소리 지르는 것들은 바로 죽여버릴 거야!” 사람들이 비명을 지
이용진은 공허하고 멍한 눈빛으로 뒤로 한 걸음 휘청거리며 물러섰다. “데려가!” 검찰청 고위 책임자가 명령을 내렸다. 곧 용국 궁정의 원로였던 이용진은 증인과 증거물과 함께 경찰정으로 연행되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씨 가문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당신도 이젠 자유야.” 엄진우는 쓴웃음을 지은 채 한숨을 내쉬며 오동방에게 말했다. 오동방은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갑작스러운 자유에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왜? 인생의 목표를 못 찾겠어?” 엄진우가 장난스럽게 묻자 오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3년 넘는 시간 동안 모든 포부와 열정이 사라져서 앞길이 막막하네요.” “그럼 내가 일자리 구해줘?” 엄진우가 가볍게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죠!” 오동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내 손에 제약회사가 하나 있는데, 원한다면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주지.” 엄진우는 단지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오동방은 진심으로 그와 함께하길 바랐다. 비록 오동방의 의술은 엄진우의 지도하에 발전한 것이지만 그가 이를 완벽히 소화하고 응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의학적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다. 이런 인재가 합류한다면 회사는 반드시 더욱 강해질 것임이 분명했다. “좋아요! 전 무조건 선생님을 따를게요!” 오동방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진우의 말을 수락했다. “예우림이 지금 안강제약 인수 절차 때문에 제경으로 갔으니 오늘 바로 가서 합류하면 돼. 절차가 끝나면 함께 창해시로 돌아와 바로 취임해도 좋아.” 엄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동방이 합류한 건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선생님은 같이 하지 않는 건가요?” 오동방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 먼저 가 있어야겠어.” 엄진우는 살짝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창해시. 손강호의 부하들은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다. “도련님, 이용진은 이미 몰락했습니다! 듣자니 엄진우라는 그놈이 한 짓이랍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