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리가요. 두 분이 골라주시면 저희는 영광이죠.”김명휘와 한사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진미령 이 멍청한 여자가 엄진우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만약 웨딩드레스 몇 벌로 사죄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수지가 맞는 장사일 것이다.엄진우는 웃음이 나왔다.“부대표님, 저렇게 열정적인데 사양하지 마세요.”예우림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제일 럭셔리한 촬영 세트장에 엄진우와 예우림을 안내한 후 예우림이 고른 아까 그 웨딩드레스를 제외하고도 엄진우에게 흰색의 턱시도를 권했다.턱시도로 갈아입은 엄진우는 점잖고 기품이 흘러넘쳤는데 귀공자의 분위기를 잔뜩 풍겼다.예우림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옷이 날개라더니, 이러니까 한결 보기 좋네.”엄진우는 사실 얼굴도 잘생기고 몸매도 좋았지만 꾸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비싼 턱시도를 입히니 예우림에게도 전혀 손색이 되지 않았다.엄진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대표님, 이거 설마 고백인가요?”“말도 안 되는 소리! 칭찬 몇 마디 했다고 너무 우쭐대는 거 아니야?”순간 예우림은 얼굴이 화끈해졌다.“두 분 정말 선남선녀세요. 조금 가까이 서주실래요? 사진 찍어드릴게요.”그러자 두 사람은 금세 가까워졌다.예우림은 이성과 처음으로 이리 가까이 섰는데 괜히 심장이 두근대고 식은땀이 흘렀다.“신부님, 신랑 어깨에 팔 좀 올릴게요.”사진작가의 말에 예우림은 흠칫했다.“네? 그런 것도 필요해요?”“웨딩 촬영인데 당연히 다정하게 찍으셔야죠. 처음이라 많이 긴장하시죠? 자, 활짝 웃을게요!”사진작가는 예우림을 향해 엄진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라고 손짓했다.그러자 예우림은 하는 수 없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쭈뼛쭈뼛 손을 뻗어 엄진우의 어깨에 올려놓았다.그런데 이때, 엄진우는 예우림의 손목을 잡더니 품으로 잡아당기며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이게 더 좋지 않을까요?”“엄진우, 지금 뭐 하는 짓이야!”예우림은 순간 몸을 부르르 떨며 엄진우에게서 벗어나
호가연은 블랙카드를 받았고, 이치대로라면 회사는 이미 고비를 넘겼을 것이다.그런데 왜 엄진우를 급히 찾는 걸까?알 수 없다.“글쎄, 그건 나도 잘 몰라. 아무튼 너한테 연락이 닿기를 바라고 찾아왔는데 우리한테도 네 번호가 없었어.”한사나가 계속 말했다.“오늘 마침 너 만나서 내가 생각났지, 뭐야.”엄진우는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그러면 내가 번호 남길 테니까 호가연한테 전해줘.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바로 연락하라고 해.”“응.”한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이상한 건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예우림은 침묵했고 심지어 엄진우의 장난까지 무시했다.사늘한 얼굴은 마치 빙산과 같았다.“망했다. 설마 화난 건가?”웨딩 촬영 때 조금 ‘건방진’ 행동을 했다고 화난 건가? 근데 그게 화날 일인가?이 여자 성질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진다.“두 사람 드디어 왔네.”집에 돌아오니 소지안이 보였다.그녀는 오늘 체크 나시 탱크톱에 빨간색 랩스커트를 입어 유난히 화려했다.하지만 얼굴에는 혈색이 하나도 없었다.“지안아, 너 웬일이야?”예우림은 깜짝 놀랐다.“나 진우 씨한테 따로 할 얘기가 있어.”소지안이 말했다.“그래. 그러면 두 사람 얘기해. 나 먼저 올라가서 쉬고 있을게.”예우림은 엄진우를 힐끗 보더니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엄진우는 소지안에게 다가가 그녀의 코를 꼬집으며 말했다.“소 비서님. 잠 못 잤어요? 안색이 별로네?”“밤새 잠도 못하고 어제 생각만 했어요.”순간 소지안은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진우 씨, 지금 당장 창해시를 떠나면 안 돼요? 아니, 강남성을 떠나요.”“강남을 떠나라고요? 왜요?”엄진우는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진우 씨는 우리 오빠를 몰라서 그래요. 아무도 우리 오빠 뜻을 거역하면 안 돼요. 그게 설사 나라고 해도 마찬가지예요.”소지안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당시 소씨 가문에서 오빠는 권리를 손에 쥐려고 십여 명의 사촌 형제들을 죽였어요. 자기
"꺅! 진우 씨, 하지 마요. 아무 말도 안 할게요."깜짝 놀란 소지안은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다급히 저으며 몸을 떨었다. 엄진우는 피식 웃더니 그제야 소지안을 놓아주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이제야 소 비서님답네."소지안은 앙탈을 부렸다. "진우 씨는 너무 난폭해요. 어쩜 사람이 퍽하면 힘으로 제압해요? 난 진우 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건데."엄진우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안심해요. 소 비서님 오빠라는 사람 따귀를 날린 건, 그만한 준비가 됐다는 뜻이에요.""또 그 말이에요? 휴, 됐어요. 나도 이젠 몰라요."소지안은 어이없다는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더니 갑자기 활짝 미소를 지었다. "맞다. 혹시 지금 시간 있어요?""왜요?""오늘 큰 서예 전시회가 있는데 명가들의 작품도 많이 나온다고 해서 가보려고요. 그래서... 날 지켜줄 경호원이 필요해요."소지안은 귀엽게 윙크를 날렸다. 그녀는 여유 시간에 늘 서예를 연습하며 정서를 다듬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서예에 빠지게 되었다. 특히 그녀는 유명한 대가의 진적을 아주 좋아했다. 엄진우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소 비서님 경호원 많을 텐데 내가 왜 필요하죠?"소지안은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경호원들이 하나 같이 너무 무뚝뚝해요. 게다가 진우 씨는 잘생겼고 위트있고 게다가 마사지도 잘 하잖아요."그리고 하나 더! 소지안은 엄진우가 옆에 있으면 소찬석도 경거망동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호랑이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소찬석에게 아직 이용당할 가치가 있기에 절대 죽이지 않을 것이다. 엄진우는 눈을 희번덕이며 물었다. "나한테 좋은 점은?"소지안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하얗고 가는 손가락으로 엄진우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으며 말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와 같이 가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뭐라고요? 좋은 점? 만족도 모르는 난봉꾼!""으악! 그만해요. 가요, 같이 가면 되잖아요!"엄진우는 수탉처럼 아우성을 질렀다. 전시회장은 예우림 집과 그리 멀
불과 몇 년 만에 명가로 부상했다니.전에 엄진우는 양우군의 서예를 이렇게 평가했다.유형적이지만 무의미하고 활달하지 못하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그 결점을 이미 극복한 것 같았다.엄진우의 웃음에 주변 몇몇 사람들은 일제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엄진우를 노려보았다.“왜 웃는 거죠? 양우군의 서예는 장중하고 엄수한 화젭니다. 그런데 웃음이 나와요? 명가에 대한 존경심이 하나도 없으시군요!”“이런 곳은 처음이라, 정말 죄송합니다.”소지안은 다급히 엄진우의 입을 막고 사과했다.모두의 분노를 진정시킨 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엄진우를 노려보았다.“여기 엄숙하다고 했잖아요. 아무리 서예를 우습게 알아도 너무 무례하게 굴면 안 돼요!”엄진우는 마지못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억울해요. 서예를 우습게 아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이 웃겨서요.”“양우군은 서예 대가예요. 그런데 웃긴다고요? 역시 문외한이네요.”소지안은 눈을 희번덕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이럴 줄 알았더라면 엄진우와 함께 오는 게 아니었다. 보아하니 엄진우는 서예와 같은 이런 고급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그런데 이때, 갑자기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지?”소지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단상에서 금박을 박은 묵보가 들려나왔다.“천하제일”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띄었는데 마치 놀란 용처럼 힘이 종이 뒷면까지 관통하여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천하제일 해서, 당대 제일이라고 일컬어지는 해서 서예는 단 네 글자만으로 당대 서예계에서 입지를 굳혔습니다. 풍격이 혼연천성하고 성세의 법도가 있으며 글마다 군인의 살풍경한 기운이 가득하죠? 네, 맞습니다! 이 작품은 바로 용국의 수호신, 명왕의 필적입니다! 경매 시작가, 100억!”“명왕? 최근 몇 년간 용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로 불리는 그 남자?”맨 앞줄의 베테랑 서예가들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크게 놀랐다.“붓끝의 힘과 기세가 아주 웅장하네요. 이게 무려 명왕의 친필이라니!”“
그러자 소지안은 순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요? 모조품? 지금 장난해요? 시작가가 100억인 물건이 어떻게 모조품이라는 거죠?”“근데 모조품 맞다니까요.”엄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확고하게 말했다.어이없네. 내가 쓴 글을 내가 몰라보겠냐고.2년 전에 엄진우는 확실히 천하제일이라는 묵보를 쓴 적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었다.눈앞의 이 작품은 누군가 모사한 것으로 비록 비슷한 점이 있지만 진품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엄진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지안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이유가 그게 다예요? 그러니까 진우 씨 추측일 뿐이네요? 어쩜 그런 무책임한 말을... 황당해요. 진우 씨, 이런 고상한 예술을 모르면 차라리 말을 아껴요. 내 기분 망치지 말고.”그녀는 퉁명스럽게 엄진우를 쏘아보았는데 마치 화약이라도 삼킨 것 같았다.그러자 엄진우는 하는 수 없이 대충 얼버무렸다.“마음대로 생각해요. 소 비서님만 좋으면 됐죠.”“아니, 함부로 말한 사람은 진우 씨인데 꼭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말하네요?”소지안은 마치 화난 여자 친구처럼 엄진우에게 화를 냈다.“안 볼 거면 먼저 가세요. 나 혼자 있으면 돼요.”엄진우는 말문이 막혔다.“미안, 미안.”늘 온화하던 소지안이 오늘은 왜 이렇게 사나운 걸까?하지만 여자가 성질을 부릴 때 엄진우는 절대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내가 잘못했어!’하고 얼버무리면 끝나는 일이다.이때 홀 중앙에 갑자기 도도하고 차가운 말투가 들려왔다.“이천억, 제가 살 게요. 명왕의 작품은 반드시 제가 가져가요. 불만 있으신 분은 이 오윤하에게 맞서보시던가요.”긴 생머리에 늘씬한 몸매, 쭉 뻗은 키, 예쁜 엉덩이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가 여왕의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북강 오정그룹의 오윤하예요.”그녀는 회색 털코트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이목구비에는 도도함과 오기가 가득 차 있었다.“북강 오정그룹 오휸하.
이 소식은 장내를 발칵 뒤집었다.“명왕님이요! 그분에게 약혼녀가 있었다니!”“북강의 국문을 지키는 명왕과 북강의 재벌 상속녀 오윤하 님이라니. 이게 바로 천생연분 아니겠습니까?”“그래서 거액을 들여 명왕님의 필적을 사려고 했던 거군요. 약혼녀가 아니라면 누가 이 지경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쩝, 이게 바로 거물들의 사랑일까요?”모두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소지안 역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오윤하 씨가 대단한 명왕님의 약혼녀라니!”예우림이 줄곧 짝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자의 약혼자라니, 소지안은 마음이 복잡해졌다.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소지안은 엄진우의 안색이 잔뜩 흐려졌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오윤하 이 여자, 일방적으로 나와의 관계를 공개해? 문제는 난 한 번도 이 결혼 찬성한 적 없어!안 돼! 이건 못 참아.여기까지 생각한 엄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지안을 지나쳐 중앙으로 걸어갔다.소지안은 잔뜩 당황해서 엄진우를 불렀다.“진우 씨, 왜 그래요?”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오윤하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명왕에겐 나보다 어울리는 여자는 없어요. 이 오윤하만이 그의 왕후가 되어 명왕을 보좌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명왕의 이 작품으로 그의 내면에 한 걸음씩 다가가 그의 진짜 모습을 알아볼 생각이에요.”웅대한 포부를 전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는 그때,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당신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그 작품, 가짜야.”힘찬 목소리가 폭탄처럼 던져지자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진우 씨!소지안은 너무 놀라 말문이 다 막혔다.“맙소사, 아니 왜 오윤하 씨한테 저런 말을 하냐고.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 뭐야?”“뭐야? 약품 발표회 그 남자?”오윤하의 미소는 순간 굳어졌다.“근데 지금 뭐라고 했지?”“귀 잘 안 들려? 그거 가짜라고. 이천억에 모조품을 낙찰받고 창피당할래?”엄진
“엄진우, 내가 마지막으로 말할 기회 줄게. 당장 나한테 사과한다면 없었던 일로 해줄 수 있어.”오윤하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이건 그녀의 마지막 이성이다. 만약 엄진우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다면 그의 재능을 봐서라도 이대로 넘어가 줄 수 있다.이때 소지안이 다급히 달려와 엄진우의 앞을 막아서더니 사색이 되어 입을 열었다.“오윤하 씨, 정말 죄송해요. 전 성안 소씨 가문의 소지안이에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진우 씨가 워낙 말을 잘 못해요. 헛소리일 뿐이니 노여움을 풀어주세요.”그러자 오윤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지안을 째려보았다.“내가 사과하라고 한 사람은 엄진우인데, 그쪽이 엄진우야? 성안 소씨 가문? 당신 오빠도 날 보면 슬슬 기어야 한다는 거 몰라?”속사포 같은 오윤하의 말에 소지안은 말문이 막혔다.오윤하는 아예 소지안을 무시하고 시선을 다시 엄진우에게로 돌렸다.“대답해.”“오윤하 님이 대답하라잖아!”“우스운 광대 같은 자식. 이제야 난처한 줄 아나 보네?”“당장 오윤하 님에게 사과해. 그러면 없던 일로 해주시겠다잖아. 목숨이 중요한 줄 알아야지.”다들 씩씩거리며 한마디씩 했다.이 상황에 바보들도 권세 있는 쪽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엄진우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가짜는 가짜야. 거짓말은 천 번을 반복해도 진짜가 될 수 없어.”엄진우의 단호한 말에 소지안은 혼비백산하여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망했다. 내가 나서도 소용없어. 진우 씨는 반드시 죽게 될 거야.”상대는 명왕의 약혼녀이자 북강의 슈퍼 명문가 상속자인 오윤하이다.지이익!화가 난 오윤하는 치맛자락을 찢어버리더니 얼굴을 찌푸렸다.“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이게 가짜라는 증거를 대! 너 같은 서민이 명왕 얼굴이라도 본 적 있겠어? 명왕의 친필이라도 본 적 있냐고! 당장 증거 내놔.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곳은 네 무덤이 될 거야.”수많은 총구를 마주하고도 엄진우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무례하다! 오윤하 님이 보내준다고 했어?”“오윤하 님 심기를 건드리고 감히 도망가려고?”“넌 끝장이야!”사람들은 씩씩거리며 입을 놀려댔다.“다들 입 다무세요!”이때 오윤하의 쌀쌀한 목소리가 그들을 얼어붙게 했다.“누가 함부로 입을 놀리라고 했죠?”순간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엄진우를 죽이고 싶어 했던 오윤하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걸까?엄진우의 작품을 보는 오윤하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천하제일.분명 똑같은 네 글자다.하지만 경지와 필세에 있어서 경매에 나온 작품을 훨씬 능가했다.머릿속에는 북강에서 한 남자가 해외 백만 군대를 상대하는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피바다와 시신 무더기에서 남자는 의연히 위세를 떨쳤다.명왕이다. 이 글에는 명왕의 기운이 들어있다.“그런 거였어!”오윤하는 감격에 겨워 20억에 낙찰한 작품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오윤하 님, 왜 그러십니까?”“명왕의 필적이자 당대의 보물입니다.”“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러시면 안 됩니다.”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당대 제일의 해서를, 백 세에 길이 남을 작품을 파손하다니.하지만 오윤하는 입꼬리를 올리고 엄진우가 쓴 서예를 번쩍 들고 말했다.“만약 아까 그 작품이 명왕의 진적이라면, 이건 뭘까요?”사람들은 다급히 머리를 빼 들고 엄진우가 쓴 글을 보았다.“아주 훌륭하네요.”“이 글은 획의 길이와 흐름을 강인하지만 여유롭게 다루었는데 군인의 혈기와 문인의 기품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네요.”“이에 비하면 아까 이천 억짜리 작품은 말할 것도 없고 비교할 가치도 없습니다!”“설마 이것이야말로 명왕의 필적이란 말입니까?”사람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어쩐지 한눈에 모조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더라니, 설마 저 젊은이가 명왕인가요?”그 말에 현장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하지만 오윤하는 큰소리로 웃어댔다.“다들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 거죠? 제 약혼자인 명왕이, 용국의 수호신이 이런 작은 도시의 회사원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