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제 사부님이십니다. 전 사부님에게서 10년을 수련했고 최근에야 수련을 마치고 사부님 곁을 떠났죠.”귀곡의존을 언급하자 남궁민희는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용국 10대 명의의 제자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용국 10대 신의의 제자라는 타이틀에서 그들은 이미 99%의 동종업자를 이긴 거나 마찬가지다.조연설이 정색해서 말했다.“아저씨, 혜인이 상황을 듣고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민희를 데려왔어요.”조연설과 허혜인은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소꿉친구로 지금도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귀곡의존?아, 생각났다.3년 전에 엄진우 앞에 무릎을 꿇고 제자로 받아달라고 애원했던 그 노인이다.나중에는 너무 귀찮은 마음에 엄진우는 방에 있던 의학 노트를 하나 던져주고 보내 버렸었다.그 노인의 칭호가 바로 귀곡의존이었다.그 영감탱이가 그렇게 유명했어?허성호는 기뻐하며 앞으로 다가갔다.“연설아, 우리 혜인이 정말 좋은 친구를 뒀구나. 민희 양, 어서 우리 손녀딸을 치료해 주게.”남궁민희는 폭포수 같은 머리를 뒤로 쓸어올리더니 두 손가락을 허혜인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신경중추가 손상된 걸 보니 귀신이 들린 것 같네요. 혹시 등산하는 습관이 있었나요?”허성호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손녀딸이 등산을 그렇게 좋아해. 게다가 오래된 공동묘지에 가는 것도 좋아했지. 옛사람들의 영령을 보러 간다면서.”남궁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그랬군요. 오래된 공동묘지에는 원령이 많아요. 그 사악한 원령들이 산 사람에게 붙은 게 틀림없어요. 이게 바로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빙의 현상이죠.다행히 어려운 병은 아니에요. 십여 분이면 원령을 쫓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허성호는 그녀의 분석에 탄복했다.“역시 민희 양 아주 대단해. 이리 쉽게 원인을 알아냈다니.”“원인은 개뿔. 귀신 들린 거 아니거든?”이때 엄진우가 담담하게 끼어들었다.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
“그게......”소대호도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설마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하지만 엄진우의 가벼운 행동을 돌이켜보니 확실히 의구심이 생겼다.엄진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상관없어요. 그렇다면 저기 남궁민희 씨에게 맡기세요. 난 이만 자러 갈 테니까.”어떤 일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엄진우가 멀어져가자 소대호는 불안한 마음에 몇 번이고 쫓아가서 상대를 붙잡고 싶었지만 허성호는 소대호를 꼼짝도 못 하게 했다.“저놈은 사기꾼일세. 그러니까 도망가게 내버려둬. 남궁민희 양이 왔으니 저놈은 더는 필요 없어.”엄진우가 가버리자 조연설은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이상하네, 내가 왜 이러지? 저까짓 돌팔이가 다 뭐라고.”조연설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남궁민희는 허혜인을 자신있게 품에 안고 말했다.“어르신, 회장님, 염려 마세요. 20분만 주시면 깔끔하게 치료해 드릴게요.”그러더니 위층으로 올라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허성호는 너무 좋아 눈가가 촉촉해졌다.“잘됐어. 우리 손녀가 드디어 낫게 되었어. 연설아, 정말 고맙구나. 내가 나중에 꼭 네 아버지한테 한 번 들를게.”조연설은 가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아요, 아저씨.”허성호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요즘은 너같이 좋은 아이를 참 보기 힘들어.”그런데 이때, 위층에서 남궁민희의 비명이 들려왔다.조연설은 흠칫하더니 다급히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가 헝클어진 머리에 두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남궁민희를 발견했다.“허혜인 씨 병은 치료됐는데, 대출혈이야!”남궁민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깜짝 놀란 사람들이 2층으로 뛰어올라갔을 때, 허예인은 침대에 쓰러져 숨을 헐떡이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민희 양,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가? 빨리, 빨리 사람을 구하게!”허성호는 너무 놀라 사색이 되어버렸다.남궁민희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말했다.“아, 안 돼요. 전 이런 상황을 본 적 없어요.”그녀는
허씨 저택.다들 다급한 마음에 분주히 움직였지만 허혜인의 출혈을 막을 수 없었고 심지어 남궁민희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조연설은 조급한 마음에 남궁민희에게 물었다.“민아, 혜인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이대로 두다간 기껏해야 30분도 못 버티고 죽을 거야.”남궁민희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이때 소대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생각났어요! 이런 방법을 쓰다간 혜인이의 병세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아까 신의님이 말씀하셨습니다!”허성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신의님은? 어서 신의님을 모시거라!”“10분 전에 이미 가셨잖습니까.”남궁민희와 조연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렸다.이건 두 여자의 ‘덕분’이다. 엄진우를 쫓아냈다가 오히려 역풍을 당하고 말았다.소대호는 흔들렸던 자신을 탓했다.“하아,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좀 더 확고했었어야 했는데.”조연설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제가 가서 모셔 올게요! 반드시 데려와서 혜인이 살릴 거예요.”남궁민희도 거들떴다.“나도 같이 가자.”......서정민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깔깔 웃어댔다.“난 또 어떤 대단한 인물이라고 이리 빽빽거리는 줄 알았지. 너였어?엄진우, 너 예우림 믿고 나 쫓아내니 성공했다고 생각해?내가 똑똑히 말해주는데 내 눈엔 넌 말이야. 이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벌레일 뿐이야.”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서정민에게 다가가 또박또박 말했다.“마음대로 생각해. 하지만 사람을 쳤으니 책임은 져야 할 거야.”엄진우는 서정민이 약자를 괴롭히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더군다나 어린 소녀도 가만두지 않는 이런 짐승 같은 놈은 반드시 혼내줘야 한다.서정민이 웃으며 말했다.“풉! 네가 뭔데 감히 나한테 훈계질이야? 야, 나 집행청도 빠삭하니까 너 한마디만 더 해. 당장 전화해서 너부터 체포야.”엄진우는 고개를 들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졸라 무섭다, 야.”퍽!엄진우는 손을 뻗어 서정민의 따귀를 후려쳤다.거대한 힘에
“형! 이거 봤지? 이 자식이 지금 형 무시하고 있어!”서정민은 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상대의 이름은 정표, 서정민과는 의형제이다.서정민은 정표의 직위를 믿고 몇 년 동안 아주 제대로 허세를 부리며 살아왔다.정표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욕설을 내뱉었다.“개새끼가, 여기 내 구역인 거 몰라?내 구역에서 내 동생을 때려? 넌 이 나라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 법을 어기면 형벌을 받아야지!”그 말에 아이 아빠는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친구는 절 도와주다가 충돌이 생겼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단지 말썽을 일으켰다면 기껏해야 며칠 동안 유치장에서 지내면 되겠지만, 만약 법을 어긴 게 되었다면 유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다.아이 아빠에게는 아직도 두 아이가 있었기에 절대 잡혀가면 안 된다.정표는 상대방에게 가차 없이 발길질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이건 또 뭐야? 너 내 동생 삥 뜯으려고 했던 일 문제 삼지 않을 테니, 네 딸년 시체나 치우고 당장 꺼져.”그 말에 아이 아빠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그들 같이 권세도 없는 하층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굽실거리며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다.어쩌면 비루한 개미처럼 비천하게 사는 것이 그들에겐 최선의 방법일 테니까.이런 광경에 엄진우는 단단히 화가 치솟았다.“아저씨, 가지 마세요. 아이가 죽었잖아요. 당신들이 누구든 상관없어. 하지만 당장 사과하고 배상해! 아니면 당신들은......”“아니면 뭐?”정표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실실 쪼갰다.엄진우는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죽어.”“푸하하하! 날 죽인다고?”정표는 배꼽을 잡고 깔깔 웃더니 엄진우를 향해 총을 겨눴다.“여기 적어도 20자루의 총이 널 향하고 있어. 어떻게 자신 있겠어?”엄진우의 날렵한 얼굴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그렇다면, 한번 해볼래?”서정민은 대경실색하며 말했다.“형, 조심해야
“너 그 입 다물지 못해?”정표는 서정민이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들을 불어버릴까 봐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더니 부하에게 강제로 끌어가라고 했다.서정민이 끌려간 뒤에야 정표는 굽신거리며 엄진우에게 다가갔다.“선생님, 다 오햅니다. 제가 보상으로 천만 원 드리겠습니다.”“일억, 지금 당장 내놔.”엄진우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그 말에 정표는 안색이 굳어지며 입꼬리가 떨리더니 하는 수 없이 먼저 현금을 꺼냈다.어쨌든 몸에 있는 현금, 시계, 반지 그리고 목걸이까지 탈탈 털어 그 가치는 고작 6천만 원 좌우밖에 되지 않았지만 엄진우는 전부 다 낚아챘다.정표는 비록 배가 아팠지만 아무래도 이 자리가 가져다주는 이익이 더 많았기에 괜히 엄진우의 심기를 건드려 밥그릇을 잃게 될까 봐 순순히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됐으니까 그냥 꺼져!”엄진우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그제야 상대는 형을 마치고 풀려난 죄수처럼 허둥지둥 도망갔다.조연설은 엄진우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당신도 저 자식과 별반 다른 점 없네. 돈이 그렇게 좋아?”방금까지 느꼈던 약간의 호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하지만 엄진우는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곧장 아이 아빠에게 다가가 정표에게서 받은 모든 금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이 돈으로 애들 영양제나 사줘요. 아저씨,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그리고 법원에 서정민 저 새끼 재산 가압류 신청하고 배상 제대로 받으세요.”순간, 조연설은 갑자기 표정이 변해버렸다.아이 아빠는 즉시 얼굴을 가리고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고마워, 젊은 친구. 하지만 우리 연이는 죽었어.”엄진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열었다.“누가 죽었대요?”남궁민희가 말했다.“맥박 체크했는데 거의 움직임이 없었어요. 살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의미하죠.”“거의 없다는 건 아직도 호흡이 있다는 거 아니야?”여자아이에게 다가 몸을 숙이고 손가락을 맥박에 올려놓자 갑자기 손끝에서 진기가 뿜어져 나왔다.후!
남궁민희는 조연설과 달리 요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싫어요? 저 충분히 예쁘지 않아요?”상대의 매혹적인 눈빛을 보니 엄진우는 또 다른 버전의 예우림을 보는 것 같아 잠시 마음이 복잡해졌다.“됐어.”엄진우는 칼같이 거절하고 주머니에서 단약을 꺼냈다.“이거 손녀딸에게 먹이면 아마 3일은 안정이 될 거예요.”허성호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긴장한 기색으로 단약을 받아 들고 물었다.“그렇다면 3일 후에는 어쩐단 말인가?”“때가 되면 다시 저 찾으러 오세요.”엄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워낙 몸이 약한 손녀딸이 남궁민희 씨의 퇴마 진료를 받아 몸에 무리가 생겨서 대출혈이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야만 저도 치료할 수 있어요.”엄진우는 워낙 소대호가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도 사람을 살릴 생각이 없었지만 조연설이 직접 그를 찾아왔기에 생각이 바뀐 것이었다.말을 끝낸 그는 단호하게 몸을 돌려 가 버렸다.허성호는 다급히 허씨 저택으로 돌아와 허예인에게 단약을 먹였는데 이내 출혈이 멈추고 기색도 많이 회복되었다.이 모든 것을 지켜본 남궁민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저 자식 대체 뭐야? 의술이 왜 이렇게 강하지?”조연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뒤 좀 캐봤는데 단지 지성그룹 마케팅 부서의 일개 직원일 뿐이야. 월급도 쥐꼬리만 해.”남궁민희는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근데 그 남자 네 엉덩이에 관심이 많던데? 치료할 때마다 설마......”조연설은 남궁민희를 째려보며 말했다.“무슨 개소리야! 그래서 내가 저 자식 변태라고 그러는 거야.”두 번 맞았는데 매번 어찌나 아프던지.“안 되겠다. 나 그 남자한테서 의술 좀 얻어야겠어.”남궁민희는 갑자기 위험한 매력을 풍기며 온갖 교태를 다 부렸다.“설아, 내가 저 남자 제대로 꼬시면 그 의술 모두 배울 수 있지 않을까?”조연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 너 무슨 짓 하려고?”“풉, 당연히...... 잡아먹어야지. 아니면 어떻게 알아내겠어.”남궁민희는
“20여 년 전, 네 아버지 엄비주는 내력종사이자 우리 엄씨 가문의 소주로 앞날이 창창했어.그런데 하필 이 천한 무녀에게 반해서 몰래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아 가문의 혼사를 어기고 명성을 더럽혔지.어르신은 결국 네 아버지의 소주 신분을 박탈하고 가문에서 쫓아내 버렸고 그 후로 엄씨 가문의 유망주였던 네 아버지는 모든 걸 잃고 엄씨 가문에서 버려진 떠돌이 개가 되어버렸어.”그 말은 엄진우의 마음속에 사나운 파도를 일으켰다.그는 여태 아버지가 평범한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무도 천재일 줄이야!“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철저히 봉쇄했기에 남들은 몰라.”큰아버지인 엄비룡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그런데 곧 팔순 잔치를 앞둔 어르신이 갑자기 네 아버지가 생각났나 봐.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집으로 오라네.”둘째아버지 엄비호는 싸늘하게 웃었다.“안타깝네. 우리 셋째가 탄광 노동자로 살다가 결국 십여 년 전에 죽었다면서? 그러게 왜 하필 그런 선택을 해서는.이게 바로 가문을 저버리고 천박한 사람을 선택한 벌이지.”엄진우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어른이니 공경하겠다만, 한 번만 우리 엄마 더 모욕한다면 당신 그 입 찢어버리는 수도 있어.”하수희는 다급히 엄진우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진우야, 진정해. 네 큰아버지와 둘째아버지 모두 내력종사야. 그러다 너 큰일나.게다가 엄씨 가문은 4대 고대 무가라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무녀라서 그런가? 눈치는 좀 있네. 걱정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엄씨 가문 핏줄을 죽이기야 하겠어?”엄비룡과 엄비호는 코웃음을 쳤다.“비주가 죽었으니 아들인 네가 대신 열흘 뒤에 열릴 어르신의 생신 잔치에 참석해. 늦으면 못 들어오니까 일찍 도착하는 게 좋을 거야.”말을 끝낸 두 사람은 초대장 하나를 테이블에 던져놓고 버젓이 떠났다.엄진우는 화가 나서 이가 갈렸다.엄씨 가문 사람이면 뭐? 엄마를 모욕하는 자는 전부 죽인다.“진우야. 네 신분에
스윽-엄진우는 번개처럼 손을 뽑으며 멋쩍게 웃었다.“미, 미안해요. 소 비서님.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쳇, 뭘 그렇게 급하게 빼요? 내가 만지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닌데.”소지안은 작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다.“그러면 나 마사지 좀 해줄래요? 나 요즘 생리가 안 와요. 좀 봐주세요.”하얗고 긴 다리가 갑자기 엄진우의 무릎에 올라왔다.아이스 블루에서 장필문이 엄진우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 순간,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보면 볼수록 이 남자를 자기 남자로 만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하는 수 없이 본연의 우세를 동원해야만 했다.삐걱!이때 예우림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오늘 그녀는 타이트한 투피스에 머리는 뒤로 넘긴 채 정교한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해주었으며 크리스탈 귀걸이로 포인트를 주었다.‘단정하지 못한 옷 상태’에 바싹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그녀는 버럭 화를 냈다.“엄진우! 근무 시간에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지금 여기서 내 비서와 놀아난 거야? 너 회사 그만두고 싶어?”“컥컥! 부대표님, 그게 아니라요.”엄진우는 다급히 설명했다.“나 부대표님 찾으러 왔는데 회의중이라고 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근데 소 비서님이 마사지를 부탁하셔서......”소지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부대표님, 엄진우 사원 탓하지 마세요. 이건 제 불찰입니다. 지금 나갈게요.”말을 끝낸 그녀는 긴 다리를 움직여 곧장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예우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됐어, 근데 무슨 일로 찾아왔어?”엄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지하게 말했다.“그게, 저번에 우리 엄마 만나주겠다고 했잖아요.”“난 약속은 지켜.”예우림은 싸늘하게 말했다.“그러면 엄마뿐만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 생신에도 같이 가는 건 어때요?”엄진우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예우림은 놀란 기색이 역력해서 말했다.“엄진우, 당신 욕심이 끝도 없구나? 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네가 당신 가문의 며느리라도 돼? 애라도 낳아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