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잔뜩 마신 지항준은 진작 많이 취했다.한 남자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모함한 여자와 결혼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배현수가 말한 ‘별을 준 것'은 그저 그녀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별을 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그러니까요! 조유진, 왜 배 선배가 달을 선물한 것을 말하지 않았어?”배현수는 조유진을 내려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유진이 말이 틀렸어. 나는 블랙 카드 하나를 준 게 아니야.”지항준이 한마디 했다.“조유진, 이제 어떻게 잘난 척하나 보자!”방시아도 배현수의 말이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조유진, 거짓말한 거 들통났지.”배현수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조유진에게 물었다.“블랙카드 세 장 줬잖아. 그중 한 장은 네가 잘랐고.”그녀에게 처음으로 블랙카드를 줬을 때, 그 당시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껄끄러웠다. 조유진은 성남으로 돌아가기 전, 블랙카드를 그에게 돌려주었다.배현수는 그때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어 조울증이 심했다. 그 블랙 카드를 아예 버렸다.두 번째 블랙카드는 그녀가 스위스에 있을 때, 배현수가 다른 사람과 약혼한다는 뉴스에 화가 나서 블랙카드를 자르고 다이아몬드 반지도 같이 버렸다.세 번째 블랙 카드는 최근 그녀에게 줬다. 이번에는 잘리지 않았고 아직 그녀의 손에 있다.하지만 나중에 싸우면 그녀는 언제든지 다시 자를 수 있다.방시아와 지항준 모두 깜짝 놀랐다.“뭐라고?”주명은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배현수가 오른손으로 조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았을 뿐 아니라 왼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주무르는 등 애정이 넘치고 소유욕인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조유진의 왼손은 배현수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다.럭셔리하고 눈에 띄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녀의 약지에 끼어있다.전에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다이아몬드 반지와 똑같다.배현수 약혼녀는...그렇다... 조유진이다!주명은은 깜짝 놀라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이때 배현수가 입을 열었다.“유진이에게 프
주명은은 조유진이 제일 어려울 때 밥값을 빌려줬다. 주명은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지금 다시 만났고 가는 길에 잠깐 태워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때의 신세를 갚은 셈이 된다.조유진은 거절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타.”주명은은 빙그레 웃으며 뒷좌석 문을 잡아당겨 차에 탔다.“유진아, 고마워.”저녁에 술 한잔한 배현수는 여유롭게 조수석에 몸을 기댔다.조유진은 차를 몰며 물었다.“몇 호선 타는 거야?”주명은이 대답했다.“3호선 타.”조유진은 내비게이션을 힐끗 바라봤다. 3호선 지하철역이 여기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집이 어디야? 집까지 데려다줄게.”“정말? 그럼 너무 고맙지.”주명은은 바로 아파트 주소를 불렀다.조유진은 운전에 집중했다.주말 저녁의 시내는 길이 매우 막혔다. 빨강 신호등을 여러 번 기다렸다.빨강 신호등을 기다릴 때, 조수석의 남자가 갑자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조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지?’눈빛은 뒤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그래서 손을 뻗어 잡지 않았다.그러나 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자기 관자놀이에 대고 문질렀다.“머리가 아파.”조유진이 막 입을 열며 말하려고 할 때, 뒷좌석의 주명은이 먼저 한마디 했다.“배 선배. 오늘 저녁 얼마나 마셨어요?”배현수는 말대꾸하지 않았다. 못 들은 것처럼 말이다.조유진도 얼마나 마셨는지 알고 싶었다.“묻잖아요.”남자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반 근 정도, 반 교장과 주 교수님과 많이 마셨어.”그들 테이블에는 도수 높은 술이 있었다. 반 근이면 배현수에게 있어서 정상 주량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 반응은 있을 수 있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파란불이 켜졌다.조유진이 손을 빼서 핸들을 잡았다.“현수 씨 주량으로는 반 근 정도면 머리가 아플 리가 없잖아요.”배현수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응, 와이프가 있으니까 주량이 좀 안되네.”조유진은 멍해졌다. 가슴이 쿵쾅거렸다.힐끗 그를 본 순간 하마터면
조유진과 배현수는 사람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낯선 친구와 빨리 친해지는 타입이 아니다.특히, 이 사람은 친구라고 할 수 없다.배현수와 주명은은 어떠한 친분도 없다.조유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배현수를 힐끗 쳐다봤다.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확실히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다음에 시간 될 때 봐. 현수 씨가 다음 주에 석식이 있어서.”주명은은 약간 아쉬워하며 입꼬리를 올렸다.“배 선배님, 정말 바쁘시네요. 그럼 유진아, 너는? 지금 일을 하지 않으니 시간 나면 밥 먹고 쇼핑할 수 있잖아?”조유진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배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이도 시간이 없어요. 나와 같이 있어야 해서.”주명은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유진아, 너 왜 이렇게 딱 달라붙어 다녀? 하긴, 지금은 사람의 마음이 제일 무섭다니까? 목적을 갖고 접근하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 그러니까 너도 잘 지켜보고 있어. 안 그러면...”배현수는 미온적인 어조로 그 말을 끊었다.“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유진이와 떨어지려 하지 않는 사람은 나에요.”주명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그렇군요... 선배처럼 좋은 남자 별로 없어. 유진아, 소중히 여겨야 해요.”배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이 난 듯 조유진에게 말했다.“앞 잘 보고 운전해. 조금 잘 테니까 도착하면 불러.”그 말뜻은 모두 닥치라는 것이다.이 사람은 성격이 정말 별로이다.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아무 말 없이 운전을 계속했다.차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한참을 침묵하던 주명은은 참지 못하고 뒷좌석에서 앞으로 몸을 기울여 차를 몰고 있는 조유진에게 물었다.“유진아,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가 너무 크네. 아주 비싸지? 얼마야?”조유진도 사실 정확한 가격은 모른다.“잘 모르겠어. 아는 사람이 이미 자고 있네.”주명은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궁금하지 않아?”“응, 별로.”일부러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지금 배현수로서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저 공이 몇
예를 들어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부자라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는다. 너무 어리석다.돈이 많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조유진 같은 여자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예쁘냐고 묻지 않는다. 예쁜 것은 모두가 인정한 사살이다. 더 이상 필요 없다.주명은은 어리둥절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입을 막으려 했다.정말 배현수는 심각한 독설가이다!주명은은 심한 충격을 받은 듯 울 듯 말 듯 했던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조유진은 티슈를 뽑아 건넸다.“이 사람이 사람 보는 눈썰미가 없어. 마음에 담아두지 마.”다행히 이때쯤 주명은이 사는 동네에 도착했다.조유진은 길가에 차를 세웠다.주명은은 그들과 작별을 고하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리자 배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수석 쪽 창문을 열고 잠시 숨을 돌렸다.차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배현수는 그제야 물었다.“도대체 누구야?”조유진은 깜짝 놀랐다.“정말 기억 안 나요? 예전에 내 룸메이트였잖아요.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여러 번이고요.”기억력이 이렇게 좋은 사람이 아직도 기억해내지 못한다고?배현수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검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 방해꾼?”조유진은 피식 웃었다.“다른 사람을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현수 씨를 건드린 적도 없는데.”그는 예전부터 주명은에게 무감각했다.하루 종일 조유진에게 들러붙어서 그들의 방해꾼이나 다름없었다. 오늘처럼 말이다.배현수는 조유진이 자유롭게 친구를 사귀는 것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명은은 티가 너무 많이 났다.담담하게 주의를 주었다.“속셈이 너무 많아.”조유진은 그저 ‘네’라고 대답한 뒤 말했다.“집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마지막 신세 갚는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을 거예요.”몇 년 동안 연락이 끊겼을 때 갑자기 나타난 옛 동창들은 십중팔구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주명은이 배현수 혹은 조유진에게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조유진은
배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걸어갔다.“일단 내버려 둬. 네가 퀵 서비스도 아니고.”퀵 서비스?조유진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퀵 서비스를 불러 립스틱을 주명은 집으로 보내면 되겠네요!”배현수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좀 더 간단하고 거친 방식을 제안했다.“립스틱 버리고 대신 돈으로 돌려줘, 끝. 차단.”이렇게 서로를 난처하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주명은은 사실 도리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조유진도 동창들 사이에서 더 이상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그녀의 명성이 충분히 낮기 때문이다.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평가하든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배현수와 결혼한다면 그녀는 SY그룹의 또 다른 얼굴이다. 평판이 너무 나쁘면 배현수에게도 SY그룹에게도 좋지 않다.게다가 이제부터 대제주시로 돌아가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앞으로 비즈니스 업계에서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큰 이익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관계가 너무 꼬이는 것을 막고 싶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제안을 거절했다.“그러면 미운털이 깊숙이 박히잖아요. 내일 퀵 서비스를 부를게요. 안 좋은 말이 나오지도 않을 거고 다른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될 일도 없을 거예요.”배현수는 뼛속까지 오만방자했다. 조유진을 품 안으로 끌어당기고 진지하게 말했다.“뭐가 두려워. 감히 한 마디라도 해보라고 해. 그러면 앞으로 대제주시에 있지 못할 테니까.”조유진은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배 대표님,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시네요.”배현수는 몸을 숙이더니 그녀를 현관문에 누르고 키스를 했다.“배현수 사모님이 내 힘을 믿지 않는데 그러면 그동안 내가 노력한 것은 헛수고가 아니야?”입술과 혀가 그녀를 공격했다.그의 입술과 혀 사이에 알코올 냄새가 났다.조유진은 고개를 살짝 젖혀 그의 키스에 답했다.배현수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의 뒷덜미를 큰 손으로 잡고 캐비닛에 대고 더 무겁고 깊은
한편, 남씨 집안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별장에서는 날이 선 말투로 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자기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는 조용한 한밤중에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남재원은 빨래건조대를 들고 남초윤을 가리켰다.“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주느라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는데. 애써 육씨 집안에 시집보냈더니 인제 와서 나에게 고함을 질러? 김성혁, 그 자식이 뭔데? 육씨 집안보다 돈이 더 많고 권력이 더 센 거야?”남초윤은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대체 무슨 근거로 김성혁을 모욕하는 것인데요? 처음부터 우리 두 사람은 같이 있었어요.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한 것은 그렇다 쳐도 무슨 근거로 성혁 씨를 모욕하는데요? 그러고도 내 아빠라고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당신이에요. 나를 육씨 집안에 억지로 시집보내지만 않았어도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예요!”“나를 원망하는 거야?”남재원은 우스갯소리를 들은 듯 말했다.“고개 한 번 숙여 봐. 입고 있는 옷, 들고 있는 가방 중 어느 것이 더 싸? 처음에 김성혁 그 빈털터리와 함께 있는 것을 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거리에서 밥이나 구걸하고 있겠지!”남초윤은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두 눈을 빨갛게 부릅뜬 채 남재원을 바라봤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밥을 구걸해도 내 선택이에요! 남재원 씨,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 적 있어요? 나를 육씨 가문에 들여보낸 게 진짜 나를 위한 거예요? 아니잖아요! 본인을 위한 거잖아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무슨 재벌 꿈을 꾸는 거예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육씨 가문에서 얼굴을 못 드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김성혁과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이혼할 용기조차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이혼? 대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경고하는데 고집을 부리더라도 이혼은 안 돼! 이혼하는 순간 때려죽일 테니까!”남재원은 ‘이혼’이라는 두 글자에 벌컥 화를 냈다.빨래건조대를 들고 남초윤을 향해 휘둘렀다.옆에서 눈물을 훔치던 문
남재원은 격노한 듯 외쳤다.“자존심? 너에게 무슨 자존심이 있는데? 자존심이 밥 먹여 주니? 아니면 명품 가방 하나 사줄 수 있어? 육씨 집안 사모님이 되는 것이 너의 가장 큰 존엄이야.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육씨 집안 사모님이 되고 싶어 하는데! 억지 부리지 마! 이혼하면 육지율 같은 조건의 남자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남초윤은 침을 겨우 삼키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맞아요. 내 주제에 언제 육지율 같은 사람에게 시집가겠어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남씨 집안 상업에 투자하는 사람을 언제 만나겠어요. 예전에 정말 이대로 살까 생각했어요. 아이를 낳자, 어차피 이제 이 생활에 익숙해졌기에 더 타락하는 것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김성혁이 왜 대제주시를 떠났는지 진작 알고 있을 줄은! 왜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는지! 알고 보니 당신들이 뒤에서 부추겼던 거예요! 엄마, 김성혁이 떠났을 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잖아요. 그런데도 아빠와 엄마는 나에게 한마디도 안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때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당신들은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나에게 거짓말을 했죠. 부잣집 아가씨와 도망갔다고요! 양심의 가책도 안 느껴졌나요?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말을 할 수 있어요? 아, 하긴. 당신들은 원래 나와 김성혁을 갈라놓으려고 했고 김성혁이 알아서 사라졌으니 당신들은 너무 기뻤겠죠. 내가 설트랄린을 2년 동안 먹어도 한마디도 안 하고 김성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나를 자극하기까지 했죠. 김성혁을 죽도로 미워하게 강요했고요! 그리고 수작을 부려 나를 육지율의 침대에 데려다 놓았어요. 아주 뿌듯했겠네요. 만약 김성혁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이 모든 것을 알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들의 계획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으니까. 엄마, 나 이제 곧 엄마 소원대로... 이 결혼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어요. 너무 치욕스럽게도 알게 되었거든요. 집주인이 잘
육지율이 전부 들었다.남초윤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육지율을 본 남재원은 어리둥절했다. 얼굴의 분노와 포악함은 빠르게 사라졌다. 카멜레온처럼 얼굴이 갑자기 변했다.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사위, 갑자기 여기에 어쩐 일이야? 한밤중에, 윤이를 데리러 온 거야? 어서 와. 우리에게 말도 안 하고...”육지율은 긴 다리를 성큼성큼 내딛더니 도자기 조각을 밟으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목소리도 덤덤했다.“저녁에 초윤 씨에게 여러 번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왔어요.”남재원은 웃으며 나무랐다.“하, 무슨 일이 생기기는!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은 거겠지! 윤이야, 너도 참! 남편 전화도 안 받아? 못 됐어!”육지율은 남초윤을 노려봤다. 그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못 들은 거예요. 아니면 받기 싫은 거예요?”남재원이 대신 말했다.“못 들은 게 틀림없어...”육지율은 바로 한마디 했다.“장인어른에게 물은 거 아닙니다.”말투가 날카롭다.남초윤은 속눈썹을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재원은 얼른 그녀를 밀치며 낮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재촉했다.“빨리 잘못했다고 해. 그러면 이 일은 지나가는 거야!”잘못을 인정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하지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모두 모두 털어놓았다.예전처럼 계속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을까?남초윤은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그의 어두운 시선과 마주했다. 입을 벌렸지만 한참 후에야 비로소 소리를 낼 수 있었다.“나는...”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남재원이 남초윤을 홱 밀어붙였다.“사위, 늦었어. 일단 윤이 데리고 먼저 집에 가! 젊은이들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잖아. 침대 머리맡에서 싸웠다가 침대 끝에서 화해하는 것이지! 방금 우리와 싸운 이유도 남씨 집안 사업이 계속 육 서방의 지원을 받는다고 얼굴을 못 들겠대. 육 서방이 항상 우리를 도와주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한 거야!”문명희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