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423화

작가: 남희은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대표님, 유진 씨가 엄창민 씨와 만나기로 했대요.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하더라도 유진 씨가 성남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대표님도 충분히 유진 씨를 다시 뺏어올 수 있어요...”

뺏어오라고?

배현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비웃는 어조로 말했다.

“내가 그저 유진이를 좋아하는 거면 뺏을 수 있어. 더 심한 수법을 써서라도 뺏을 거야. 하지만 나는 유진이를 좋아만 하는 게 아니야. 나 때문에 유진이가 이미 한 번 죽으려고 했어. 유진이를 두 번 죽일 수 없어.”

안정희의 죽음은 배현수와 무관하지만 예지은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예지은은 그의 친어머니이다.

안정희가 죽자 조유진도 같이 따라 죽으려고 했다.

그걸 잘 아는 배현수가 어떻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현수는 더 이상 조유진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어도... 그녀만 살아 있으면 되니까...

그러면 배현수는 그녀 뒤를 따라다니면서라도 그녀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까...

서정호는 배현수의 말에 흠칫 놀랐다.

“만약... 유진 씨가 엄창민 씨와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대표님...”

배현수는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눈시울이 빨개진 채 말했다.

“그러면 나는 한 마리의 개가 되어 계속 유진이 따라다녀야지. 언젠가는 유진이가 뒤돌아봐 줄 거라 기대하면서.”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하지만 조유진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배현수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예전처럼 갑자기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두 번 다시 그런 상황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1년 전, 조유진은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는 조유진이 없는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제대로 잠이 든 적도 없었다. 매일 담배를 쉴 새 없이 피웠고 속이 메스껍고 손이 떨릴 때까지 탄산리 약을 먹었다. 하지만 그녀를 잃은 공포와 상실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배현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조유진이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는 뭐든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24화

    조유진이 다급히 물었다. “혹시 키가 꽤 컸어요?”“아마도? 그런데 누워있어서 잘 못 봤어. 네가 쓰러져서 나는 너를 빨리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거든.”운전하고 있는 엄창민은 백미러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조유진을 힐끗 보고는 다시 물었다.“아는 사람이야? 아니면 혹시 의심 가는...”그 말에 조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현수 씨 같아서요.”“그럼 전화해서 한 번 물어봐.”조유진은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몇 초간 망설였다.누구나 사실 매일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그 사람이길 바라면서도 또 아니기를 바라는...그때 조유진이 또 물었다.“저를 구해준 사람... 많이 다쳤나요?”엄창민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꽤 심한 것 같았어. 소방대원분이 들어오셔서 나는 그분들에게 안에 사람 한 명 더 있다고 얘기했거든. 죽지는 않은 것 같았어.”엄창민의 말을 듣던 조유진은 크게 심호흡하고 배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병실에 있던 배현수는 갑자기 휴대전화 화면에 뜬 조유진의 이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빛이 흔들렸다. 전화가 한참 울려도 배현수가 가만히 있자 옆에 있던 서정호가 오히려 안달이나 안절부절못했다.‘이러다 유진 씨가 전화를 끊으면 어떡하려고...’배현수는 천천히 휴대전화 통화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의 조유진은 배현수의 ‘여보세요’라는 단어에 순간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조유진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대제주시를 떠난 지 불과 일주일밖에 안 지났지만 다시 듣는 배현수의 목소리는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이 떨리는 가슴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때 배현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유진을 불렀다.“유진아?”“지... 지금 통화 괜찮아요?”“응, 괜찮아.”그녀의 전화라면 언제 어디서든 항상 괜찮았다.조유진은 일부러 돌려서 물었다.“지금... 지금 어디예요?”자기를 구해준 사람이 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25화

    하지만 옆에 있는 엄창민은 조유진의 모든 감정을 그대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리 자신을 위로한다고 해도 실망스러운 표정은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너희 두 사람 사이는 쌓인 게 많아서 더욱 힘든 거야. 놓지 못하는 거고. 나는 현수 씨가 너와 제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쌓인 걸 어떻게 해결할지는 전부 너에게 달렸다고 생각해. 환희야, 너도 그래서 외면하는 거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 쌓였던 게 한순간에 다 없어지면 그때는 정말 끝날까 봐.”조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허탈하게 웃었다.“창민 오빠, 오빠 대학교 때 심리학 전공했어요?”“내가 연애 경험은 별로 없지만 남녀의 감정이라는 게 그렇잖아. 누군가와 함께하려면 두 사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헤어지는 건 한쪽만 모질게 마음만 먹으면 되는 거니까. 너와 현수 씨가 지금까지 이렇게 있는 건 아무도 진짜로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던 거지. 만약 진짜로 끝난 사이였다면 네가 현수 씨에게 전화하지도 않았을 거고.”“저희 두 사람, 이렇게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헤어지는 게 나아요. 다른 사람들은 헤어져도 다시 만날 수 있지만 저와 현수 씨는 이런 사이로 지낼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 우리 둘 다 피하려고만 하고 있었어요. 대제주시에 있는 동안, 저희는 겉보기에만 괜찮아 보였지 사실 과거의 원한들은 절대 잊을 수도 잊히지도 않거든요.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느새 서로의 얼굴을 보면 바로 예전의 생각들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너 방금 그 사람에게 이미 한 번 기회를 준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현수 씨가 원하지 않는 걸 어떡하겠어.”조유진은 코를 훌쩍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잘 됐어요. 잠깐이었으니까 저도 바로 제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고. 만약 현수 씨가 진짜로 성남에 왔더라면 제 과민반응이 또 심해졌을 거예요. 그러면 오히려 더 골치 아파졌을 거고.”이렇게 말하는 조유진은 자신이 정말 무책임해 보였다. 만약 진짜로 배현수에게 신세를 져 버리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26화

    강이진이 심미경 얼굴의 산소마스크를 건드리려는 순간, 중환자실의 문이 열렸다.강이찬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오빠, 왔어? 새언니 얼굴의 산소마스크가 삐뚤어져 있는 것 같아서. 제대로 해주느라고.”강이진은 억울한 척하며 말했다.심미경의 병상 옆으로 간 강이찬은 별 이상이 없는 것을 보고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나가 있어. 그리고 앞으로 여기 오지 마.”“어차피 나중에 오빠와 결혼할 건데 내가 와서 새언니 보는 게 어때서? 심미경도 우리 가족이야. 오빠, 심미경이 교통사고 난 이후로 나에게 너무 쌀쌀맞은 거 아니야?”강이진은 뾰로통한 얼굴로 한마디 불평을 토로했다.요즘 모든 일에 예민한 강이찬도 그녀의 말이 기분 좋게 들릴 리가 없었다.“너 예전에 미경 씨를 그렇게 괴롭혀 놓고 미경 씨가 너를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굳이 여기까지 들어온 이유가 뭐야? 일부러 미경 씨 자극하려는 거야?”“내가 뭘 괴롭혔다고 그래? 그냥 말로만 몇 마디 한 거지.”“됐어, 나가. 그만 떠들어. 미경 씨 쉬어야 하니까.”강이진은 입술을 깨물며 가까스로 화를 억눌렀다.심미경의 사고 이후, 그녀도 오빠의 태도가 돌변한 것을 느꼈다.예전에는 심미경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으면서 여기에 누워서 깨어나지도 못하니까 그제야 관심하고 있으니 말이다. 강이진은 중환자실을 나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알았어, 나갈게. 그래 다들 나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하나밖에 없는 친오빠까지도 나에게 이러고 있으니.”그 말에 강이찬은 눈살을 찌푸렸다. 여동생에 대해 어느 정도 실망은 했지만 어쨌든 그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매일 술집이나 다니지 말고 시간이 나면 책이라도 좀 봐. 일도 좀 알아보고.”“알겠다고. 일은 알아보는 중이라고.”강이진이 중환자실을 나간 후, 심미경의 옆에 있던 강이찬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심미경이 사고가 난 후, 강이찬은 예전보다 부쩍 예민해졌다. 매일 병원과 회사 두 곳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27화

    이건 분명 강이찬의 가족 카드를 사용하여 자동인출기에서 4천만 원을 꺼낸 것이다.순간 강이찬은 눈썹을 찡그리며 전화를 걸었다.“내 신용카드로 4천만 원을 꺼냈어?”강이찬은 차가운 말투로 바로 물었다.그 말에 전화기 너머의 강이진은 간이 콩알만 해졌다. “오빠, 오빠가 집에서 나를 쫓아냈잖아. 아직 취직도 못 했는데 그럼 내가 노숙자들과 같이 길바닥에서 잘까? 나 매일 친구 집에서 잔단 말이야. 그렇다고 언제까지 친구 집에 있을 수는 없잖아? 나에게 일단 빌려줬다고 생각해. 취직하면 갚을 테니까.”사실 강이찬이 신경 쓰는 것은 이 4천만 원이 아니었다.예전부터 강이찬이 너무 오냐오냐한 탓에 여동생의 버릇은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어디 이 4천만 원뿐이겠는가? 예전의 강이진은 2억을 쓴 적도 있었다.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뜬 후, 강이찬은 그녀가 가여운 마음에 적어도 물질적인 부분에서만은 하나뿐인 여동생을 푸대접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사달라는 건 뭐든 아낌없이 다 사줬다.그러나 인제 와서 보니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한 탓인지 강이진은 누구에게나 버릇없이 함부로 대했다. 강이찬은 다시 그녀를 바른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이미 배인 나쁜 습관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밖에서 세를 맡는 게 한꺼번에 4천만 원씩이나 필요하지 않잖아? 도대체 어디에 이렇게 큰돈이 필요한 건데?” “오빠, 내가 4천만 원 쓴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소비 습관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고쳐? 돈을 잘 안 쓰던 사람에게 쓰라고 하는 건 쉽겠지만 나 같이 펑펑 쓰던 사람더러 갑자기 아껴 쓰라고 하면 그게 어디 그리 말처럼 쉽냐고? 아무리 내 생활비를 끊는다고 해도 내가 적응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어? 게다가 고작 4천만 원이야. 예전에 4억 쓸 때도 별말 안 했으면서 지금은 왜 갑자기 이렇게 따지는 건데? 이제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이 친동생은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거야?”강이진은 강이찬의 약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자기가 이 말을 하면 강이찬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28화

    한편 전화를 끊은 강이진은 즉시 현금 4천만 원을 가방에 넣었다.사고를 낸 운전기사는 감옥에 수감 중이었지만 그 기사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 강이진의 정보와 전화번호를 자기 아내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운전기사의 아내는 매일이다시피 강이진에게 전화해 돈을 요구하며 귀찮게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돈을 안 주면 강이진을 당장 고소하겠다고 했다. 그녀의 협박에 강이진은 어쩔 수 없이 돈을 들고 기사의 가족을 찾아갔다.돈만 주고 나면 그들은 이제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다.‘절대 나까지 끌어들일 생각하지 마!’ ...모자와 선글라스를 푹 눌러쓴 강이진은 돈 가방을 들고 그 집의 대문을 두드렸다.운전자 가족은 시내 중심의 어느 한 달동네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이 일대는 더럽고 지저분하며 대부분 2층짜리 낮은 건물들이라 집안에 화장실도 없어 주민들은 길 어귀의 공중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다.문 앞을 지키던 진돗개는 낯선 얼굴을 보고 ‘멍멍’ 짖어댔다.곧바로 허름한 대문이 열리더니 잠옷 차림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한 중년 여성이 나왔다.이 중년 여성이 바로 사고를 낸 운전자의 아내였다.강이진을 보자마자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바로 물었다.“돈은?”“가방 안에.”중년 여성은 강이진 더러 들어오라는 듯 몸을 옆으로 비켰다. 뒤로 흘끔 돌아본 강이진은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가방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가방 안에 있던 돈을 낡고 허름한 작은 소파에 전부 쏟아 내더니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4천만 원이야. 일전 한 푼 모자라지 않으니 앞으로 더 이상 연락하지 마!”“너 때문에 내 남편이 2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생겼어! 당연히 네가 줘야 할 돈이야! 이거 고작 4천만 원이잖아! 그동안 일도 못 할 텐데 그 비용도 네가 책임져!”그 말에 강이진이 씩 웃더니 대답했다.“무슨 비용? 일개 기사가 하루에 벌면 얼마나 번다고! 4천만 원이면 감사한 줄 알아! 경고하는데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마! 그리고 앞으로 연락하지 말고!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29화

    ‘있는 집사람들에게는 체면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돈도 많은 아가씨가 왜 이렇게 인색하지?’강이진은 마음을 가라앉힌 후, 길게 한 번 심호흡하고 말했다.“얼마나 원하는데? 한 번에 끝내! 구질구질하게 시간이나 끌지 말고!”“이봐 아가씨, 나도 당신과 시간 끌고 싶지 않아. 당신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도 않고. 이렇게 해, 2년간 일을 못 한 비용 1억. 그리고 우리 남편 출소하면 전과자 신분이니까 일자리 찾기도 어려울 거야. 그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1억. 그러면 총... 2억. 2억 주면 될 것 같아.”2억?!강이진은 그 중년 여성을 노려보며 말했다.“차라리 은행을 털지 그래?”중년 여성은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나라고 안 그러고 싶겠어? 할 수만 있다면 진작 털었겠지. 하지만 내가 은행을 털 때까지 경찰이 가만히 있을까? 이런 말 다 필요 없고 돈은 줄 거야 말 거야? 그것부터 말해.”“못 줘! 이 4천만 원이 전부니까 받든 말든 맘대로 해.”말하자마자 강이진은 바로 돌아섰다.그때 중년 여성이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남편에게 들었는데 너에게 돈 많은 친오빠가 있다지? 네가 돈을 안 주면 너의 친오빠를 찾아가서 달라고 하면 되겠네. 어차피 나는 돈만 받으면 되니까 누가 주든 다 상관없어!”순간 강이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두 주먹을 불끈 쥔 강이진은 뒤돌아서 매서운 눈빛으로 중년 여성을 노려보며 말했다.“뭐라고? 그러기만 해봐 어디! 경고하는데 만약 우리 오빠를 찾아가면 이 줬던 돈도 다시 뺏을 거야! 알아서 해!”“그러면 너라도 2억을 줘야 할 거 아니야?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빨리 행동하는 게 좋을 거야!”협박을 당한 강이진은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약점이 잡힌 이상 맞설 수도 없었다.“알았어. 2억, 약속 지켜. 그때 가서 또 더 달라고 귀찮게 하지 말고!”“아가씨, 그건 걱정하지 마. 돈만 받으면 내가 우리 가족들 데리고 여길 떠날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30화

    선유는 영상에서 쉴 새 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조유진의 귀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배현수는 분명히 대제주시 없는데 그날 그에게 전화했을 때 왜 굳이 대제주시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을까?조유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고 느껴졌다.선유가 아무리 말해도 조유진이 대답하지 않자 녀석은 소리 높여 그녀를 불렀다.“엄마!”“어?”“엄마, 아빠, 다들 대체 왜 그래? 아빠와 통화해도 계속 넋이 나가 있고 엄마도 내 말 안 듣고!”조유진은 뽀로통한 녀석의 얼굴을 보고 한마디 달랬다.“밀크티 안 마실래?”‘밀크티’라는 말에 순간 선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방금 양치했는데 마셔도 돼?”“내가 시켜줄게. 금방 도착할 거야. 도착하면 할머니보고 문 앞에서 받아달라고 해.”그 말에 선유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응, 응! 요 며칠 아빠가 집에 없으니까 엄마가 매일 한 잔씩 주문해 주면 안 돼?”단 것을 좋아하는 선유는 밀크티를 제일 좋아했다. 하지만 요즘 유치 교환 시기라 충치 때문에 치과도 자주 가고 있었다.늘 아이에게 엄격한 배현수는 선유에게까지 칼같이 요구했다. 그래서 배현수와 선유는 군것질 문제, 고양이 문제로 자주 싸우곤 했다.배현수가 집에 없자 선유는 꼬마 다람쥐처럼 입을 내밀며 조유진에게 부탁했다.“엄마, 나에게 밀크티 시켜준 거 아빠에게 말하지 마.”아빠가 집에 있을 때면 양치 후에는 아무것도 못 먹게 했다.아무리 배고프다고 해도 배현수는 절대 선유의 말을 듣지 않고 엄격하게 가르쳤다.“저녁 잘 먹었으면 지금 배가 안 고프지. 그러니까 밥을 먹을 때 딴청 피우는 습관 좀 고쳐!”조유진은 선유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또 먹고 싶은 거 없어? 같이 주문해 줄게.”“진짜? 그래도 돼? 그럼 엄마, 나는 에그타르트와 치킨! 둘 다 먹고 싶어.”“알았어. 다른 간식은?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가 좀 이따 인터넷으로 사서 택배로 보내줄게. 침대 밑에 숨겨 놓고 먹어. 아빠에게 들키지 말고.”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431화

    올린 글은 ‘열두 바늘 꿰맸다’였다.그리고 그 위에는 그날 다친 그의 팔 사진이 있었다.평소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조유진이라 오늘 처음으로 이 스토리를 보았다. ‘팔의 상처가 다 나았는지 모르겠네...’만약 배현수가 진짜로 성남에 있다면 그녀를 구한 사람이 분명 그였을 텐데...참다못한 조유진은 서정호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병원에 있던 서정호는 발신자 표시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배 대표님, 유진 씨에게서 온 전화인데 받을까요?”“받아.”서정호는 전화를 받자마자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여보세요. 유진 씨?”전화기 너머의 조유진이 직접 물었다.“현수 씨는 지금 어디 있어요?”순간 배현수를 바라본 서정호는 그의 눈빛을 바로 알아차렸다.“배 대표님은 지금 대제주시에 있습니다.”조유진은 서정호의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한 마디 되물었다.“그래요?”“네, 유진 씨. 시간이 늦었는데 아직 안 주무셨네요?”“누구에게 바보처럼 속으니 잠이 안 오죠.”순간 서정호는 깜짝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옆에 있는 배현수도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선유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그렇다면 거짓말을 한 사람은 틀림없이 배현수와 서정호일 것이다.배현수가 입을 막 열려는 순간 조유진이 전화를 끊었다.서정호는 멍한 표정으로 배현수를 보며 물었다.“배 대표님, 유진 씨가 대표님이 성남에 있는 걸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희가 같이 속여서... 지금 화난 거죠?”조유진과 배현수는 닮은 점이 있다. 화가 날수록 말투가 차분해진다는 것이다.배현수는 병상에 기댄 채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서정호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배 대표님, 제가 다시 전화해서 유진 씨에게 얘기할까요?”“무슨 얘기?”아무리 얘기한다고 해도 두 사람 사이는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이때 갑자기 배현수가 한마디 했다.“퇴원 수속 좀 해 줘.”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서정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배현

최신 챕터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7화

    육성일의 압도적인 기운은 전화 너머에서도 남초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묵직한 압박감은 느껴졌다. 그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어떻게 육씨 집안에 시집갔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라리 구걸을 하더라도 절대 육씨 집안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남초윤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부탁드려요. 저희가 약속했던 건 두 달 전이었잖아요. 아직 두 달이 채 안 지났고, 제가 지금 아기를 가졌다고 해도 확인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육성일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전화를 겨우 넘겼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번엔 ‘개자식’ 육지율이었다. “...” 할아버지와 손자는 통화 시간까지 맞춘 것처럼 기가 막히게 연달아 전화를 걸어온다. 그녀는 냉랭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요?” 육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먹었어요?” 육지율이 자신의 책을 내리게 만들고, 지난달과 이번 달 원고료도 다 날려버린 상황에서 그녀가 전화를 받아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아직 유지 중이었고 필요한 것도 있으니 남초윤은 결국 목소리를 가다듬고 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지율 오빠, 무슨 일이에요?” “... 뭐라고 불렀어요?” “지~율~오~빠~” 그녀는 유설영의 말투를 흉내 내며, 아니, 오히려 더 능숙하게 말했다. 육지율은 순간 닭살이 돋았다. “제발 평소처럼 말해요. 저녁에 내 친구가 귀국하는데 같이 식사해요. 6시에 잡지사로 데리러 갈게요.” 남초윤은 단번에 거절했다. “난 안 갈래요.” “저녁에 뭐 다른 약속 있어요?” 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당신은 나한테 친구 한 명도 소개해 준 적 없잖아요.” 그리고 이제 곧 이혼할 텐데 친구를 만날 필요는 더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6화

    조유진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에서 누가 너 괴롭히진 않았어?” 배선유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응, 나 괴롭히는 사람 없어. 할아버지가 우리 학교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셔서 선생님들도 항상 나한테 잘해주시고 많이 관심 해주셨어. 그래서 나도 함부로 장난칠 수가 없어. 혹시 선생님이 할아버지한테 이르실까 봐.” 배현수는 이 말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배선유는 작은 악동처럼 말이 많았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아이였다. 배현수의 말에도 자주 대꾸를 하니, 만약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면 벌써부터 떠벌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을 괴롭히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성남에서 엄준은 배선유를 엄청나게 아끼며 키웠고, 그래서인지 아이는 주눅이 들지 않고 활발하게 자랐다.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다행이네. 우리 선유가 공부를 게을리할 걱정은 없겠어.” 배현수는 딸을 겁주듯 말했다. “너 공부 안 하고 일찍 연애라도 시작하면, 널 대제주에 데려와서 24시간 동안 지켜볼 거야.” 배선유는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이건 너무 심해요! 나 혹시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거 아니에요?” 배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말했다. “공부 안 하면 좋은 날은 없을 거야.” 잠시 후, 학교 종이 울릴 시간이 가까워졌다. 배선유는 전화를 끊으려다가 친구가 그린 결혼사진 두 장을 영상 속으로 건네받았다. “선유야! 너랑 지우의 결혼사진 내가 그려놨어! 한 번 봐봐!” 배선유가 물었다. “한 장에 얼마야?” “너니까 공짜로 해줄게! 대신 다음번엔 나랑 결혼해 줄 수 있어?” “생각해볼게!” “...” 이 속도로라면 그들 부부는 도대체 몇 명의 사위를 맞이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한편, 스타라이트 매거진에서.남초윤이 사이트 편집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그녀의 책은 예상대로 플랫폼에서 삭제되었고 이달 원고료는 한 푼도 들어오지 않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5화

    [합법적 부부] 함께 올라온 사진엔 결혼반지를 낀 두 손이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이 게시글이 올라가자마자 마치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어 반응했다. 육지율: [8년의 여정 끝에 드디어 자랑할 수 있네!] 송하진: [어! 전 두 사람 목숨 구해준 은인이에요. 제가 아니었으면 두 사람이 어떻게 혼인신고까지 했겠어요? 당장 절 주빈으로 식사 대접해요!] 남초윤: [아아아아! 유진이를 결혼이라는 무덤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대표님 너무하세요!] 엄창민: [내 여동생한테 잘해요. 혹시라도 괴롭히면 내 주먹이 용서 못 해요!] 엄명월: [형부! 이렇게 좋은 일에 저희한테 뭐라도 사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강이찬: [축하해, 결국 원하는 대로 됐네.] 심미경: [백년해로하세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서정호: [대표님, 일 다 끝냈으면 빨리 돌아오세요. 의사 선생님이 여기서 엄청 화내고 있어요. 저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요!] 학교 가기 싫어: [와! 아빠랑 엄마가 드디어 결혼했네요! 헤헷, 아빠, 나도 오늘 결혼했어요!] 배현수는 배선유의 댓글을 보고 순간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조유진이 운전하며 그의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물었다. “왜 그래요?” “선유가 결혼했다는데.” “뭐라고요?” 조유진은 깜짝 놀라 차를 도로 옆에 세우고 급히 배선유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배선유는 학교에 있었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외국어 학교라 분위기가 자유로워 아이들은 평소에도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다. 배선유는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을 카메라 앞으로 들이밀었다. “엄마, 아빠! 나 사진 보고 싶어!” 조유진은 그녀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나서 물었다. “선유야, 아까 결혼했다고 했잖아. 누구랑 결혼한 거야?” “우리 반 한지우랑! 엄마, 나 오늘 엄청 많은 축의금을 받았어! 내가 다 적어 놨어!”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4화

    조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갈게요.”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 한 번은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서정호가 산성 별장에서 두 벌의 정장과 결혼 서류를 준비해왔다. 조유진은 오랜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도 고데기로 말았다. 그녀는 하얀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사진에 잘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 썼다. 그녀는 한동안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았는데 하이힐을 신고 배현수 앞에 서니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 어색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나 어때요?” “아름다워. 넌 언제나 아름다워.” 배현수는 전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칭찬했다. 조유진은 웃음을 참으며 옆에 있던 넥타이를 집어 들고 배현수에게 매어주었다. 배현수는 그녀의 손길에 고개를 숙이며 협조했다. 조유진은 평소와 다르게 더 복잡하고 정중한 ‘엘드리지 매듭’으로 넥타이를 맸는데 배현수는 평소에 간단한 윈저 매듭만 했었다. “이 매듭은 좀 생소하네.” 조유진은 넥타이를 다 매고 나서 그의 셔츠와 정장 재킷의 깃을 정리해 주었다. “이게 엘드리지 매듭이라고 해요. 중요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방식이죠. 어때요, 괜찮아요?” “멋져. 하지만 여보, 우리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의사가 올 거야.” 웃으며 농담하듯 이야기하던 배현수는 조유진의 외투를 챙겨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고, 그녀를 한 손으로 감싸 병실을 몰래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마치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 그들이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가 병실에 회진을 왔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는 ‘무관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의사는 엄숙한 표정으로 서정호를 보며 물었다. “환자는 어디 갔죠? 튜브까지 다 뽑다니, 누가 뽑았습니까?” 서정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환자 본인이 뽑았습니다.”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팔을 정말 망가지게 할 작정인가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3화

    배현수의 가슴이 떨렸다. 그는 조유진과 이마를 맞대며 낮게 속삭였다. “그때 난 네 옆에 있진 않았지만 네 뒤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왜 울었어?” “현수 씨 생각이 났어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거든요. 내가 이렇게 좋은 남자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웠죠. 그래서 울었어요.” 지금 이렇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잃어버렸다가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조유진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슬픔이나 후회 때문이 아니었다. 감동과 감사함 때문이었다. 운명이 그들을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끝끝내 묶어 놓았고, 그들 사이에선 이제 더 이상 헤어질 수 없는 깊은 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배현수는 긴 손가락을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천천히 끼워 넣으며 손을 꼭 맞잡았다. 순간 그들의 손바닥에서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그는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진아, 넌 한 번도 날 잃은 적 없어. 우리가 몇 번을 떨어져도,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져 있더라도 난 결국 널 찾아내서 꼭 안고 말해줄 거야. 사랑한다고. 오직 너만 사랑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조유진은 배현수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조유진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현수 씨, 우리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의 대답은 8년 전과 똑같았다. 짧지만 확고했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조유진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손목에 걸린 달콤한 연녹색 비취 팔찌를 내려다보았다. “상처가 나으면 우리 같이 아주머니를 위한 좋은 묘지를 고르러 가요. 그분을 위한 의관묘라도 만들어 드리는 게 어때요?” “아직도 ‘아주머니’라고 불러?” 조유진은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며 말투를 바꿨다. 배현수는 그녀의 팔찌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풍수 좋은 곳을 따로 고를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2화

    육지율은 그 필명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기억해 냈다. “이 자식! 기억났어! 이 녀석이 책에서 날 모욕하지 않았나? 내 명성을 망가뜨렸잖아?” 남초윤은 급하게 말했다. “잘못 본 거 아니에요? 비엘 작가가 주인공을 모욕할 리가 없어요! 그러면 밥숟가락 들고 욕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요?” “나를 ‘수’로 묘사한 게 모욕이 아니고 뭐예요? 왜 항상 배현수가 공이냐고?” 남초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그 부분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였다.남초윤은 그가 진짜 작가를 고소할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변명하듯 말했다. “다음번엔 지율 씨가 공이고, 배 대표님이 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원래 BL 소설에서는 공수 구분이 모호해요. 겉보기에 수 같아도 사실은 공일 수도 있다고요!” 조유진은 살짝 의문을 제기했다. “난 현수 씨가 수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현수 씨가 진짜 수라면 캐릭터 붕괴지. 차라리 육 변호사님이 수인 게 더 어울려.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다정하잖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육지율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조유진에게 따졌다. “아니, 조유진. 내가 약해 보이는 수 같은 느낌을 준다고?” “...” 배현수는 차갑게 말했다. “유진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화내? 그럴 시간 있으면 작가나 고소해.” 남초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그냥 재미로 쓴 거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작가를 고소하면 너무 쪼잔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육지율은 이성을 잃고 이를 악물었다. “쪼잔해 보이든 말든, 그 책을 하차할 거예요!” 자신이 소설 속에서 수 역할로 묘사되었고, 그것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조유진은 객관적으로 말했다. “사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아요. 꽤 재미있고 독자도 많아요.” “독자가 몇 명인데?”“몇만 명 정도?” “뭐?”‘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 수로 상상했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1화

    병실에서 조유진은 그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있다가 잠들었다. 잠에 들어서도 손가락이 배현수의 손에 살짝 얽혀 있었는데 다정하고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이 사진은 완전히 남자 친구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입원 생활이 지루하다고 하다니.육지율이 댓글을 남겼다. “뭐야, 입원했어? 혹시 가정 폭력이라도 당한 거야?” 댓글을 남기고 나서 육지율은 차에 시동을 걸며 남초윤에게 말했다. “과일 바구니 좀 사서 병문안이나 가요. 친구가 입원했어요.” “친구? 설마 배 대표님이세요? 어디 아파요?” 육지율은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진짜 아플 수도 있고 그냥 꾀병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른다. 꾀병일지도....병원에서는 조금 전 장은숙이 산성 별장에서 저녁 식사를 가져왔다.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밤은 죽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했다. 배현수는 오른손을 쓸 수 없었기에 조유진이 죽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그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첫 숟가락을 그의 입 앞에 가져가자 배현수는 뜨겁다고 투덜댔다. 조유진이 후후 불어 온도를 맞춘 후 말했다. “이제 적당히 식었어요.” 배현수는 그제야 죽을 한 입 삼켰다. 그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난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아기로 됐네? 밥도 혼자 못 먹고, 조유진이 널 너무 오냐오냐한 거 아냐?” 조유진이 놀라서 뒤돌아보니, 육지율과 남초윤이 병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설명했다.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며칠 동안 오른손은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상처가 더 심해질 수 있거든요.” 그러자 육지율은 다짜고짜 그의 오른쪽 어깨를 툭 쳤다. “진짜야?” 배현수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미친놈아!” 조유진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변호사님, 진짜로 다쳤다니까요! 어깨에 구멍이 났다고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세요!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60화

    그녀를 겨우 한 번 데리러 온 김에 출퇴근길의 불편함을 느끼고는 아예 차를 사서 해결하려고 하다니, 정말 육지율 다운 방식이었다.이 4S 매장에서 파는 차들은 모두 포르쉐였고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수천억 원대였다. 남초윤은 이미 남씨 집안이 육지율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기에, 그가 차를 선물해 주겠다고 해도 받을 수 없었다.남초윤은 차분히 말했다. “앞으로는 출퇴근 길에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굳이 차를 선물할 필요는 없어요.”육지율은 순간 멈칫했다가 살짝 비웃으며 말했다. “차 한 대 선물한다고 귀찮다는 딱지가 붙어요? 이런 확산적 사고방식은 참 대단하네.”“....”정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평소에도 성격이 불 같았던 육지율은 차를 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녀를 달래는 상황이 우스웠는지 어이없어 웃었다. 둘 중 누가 더 성격이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영업 직원은 남초윤을 육지율이 외부 애인으로 오해했고, 이 큰 거래가 깨질까 봐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가씨, 변호사님께서 차를 사주시는 건 출퇴근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해주려는 마음이 아닐까요?”남초윤은 더 이상 그의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갚을 수 없는 빚이 너무 많았고 계속해서 더 쓴다면 두 아이를 낳아야 겨우 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러나 육지율은 그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 그는 VIP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빨리 골라요. 차 안 사면 집에 못 돌아가요.”남초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여자 영업 직원이 다가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할 때,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직원은 미소를 띠며 말도 아주 달콤하게 했다. “변호사님은 저희 매장의 단골이세요. 그런데 여자를 데리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변호사님이 정말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비싼 차를 고르시면 아마 더 기뻐하실 거예요.”역시, 판매왕이었다.감정적 가치를 제공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아는 직원이었다. 하지만 남초윤은 그저 외부의

  • 언젠가 다시 만나요   제959화

    남초윤은 결혼 상태를 한 번도 업데이트한 적이 없었다. 동료들 눈에는 여전히 미혼으로 보였다.처음 그녀와 육지율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 온 세상이 떠들썩했지만 사실 모두 육지율의 매력적인 외모 때문이었다. 아무도 남초윤처럼 작고 평범한 존재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육지율이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들의 침대 사진이 언론이나 남재원에게 유출되지 않은 것도 기적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육지율이라는 유명한 바람둥이가 ‘함정'에 빠져 순진한 여자와 관계를 맺은 후,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소문만 믿고 있었다.육지율이 연예계 인물이 아닌 만큼 동료들 중에서도 아무도 그 사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육지율이 ‘좋은 집안의 아들’ 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의 결혼 상대가 누군지에는 무관심했다. 그녀는 어디에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그의 곁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남초윤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숨겨져 있었다.동료들은 그저 그녀가 조금 집안 배경이 있는 부유한 여자인 줄로만 알았고 육지율의 아내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육지율의 아내라면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그들과 같이 일하며 고생할 일은 없을 테니까. 설령 과거에 파파라치 일을 했더라도 그렇게 높은 곳에 시집갔다면 육씨 집안이 그녀를 계속 그 일을 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세상은 모두 직업의 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상류 사회에는 여전히 그들만의 규칙이 있었다. 체면과 명예가 그들의 신분과 존엄을 상징했다. 파파라치라는 직업은 육씨 집안에게 있어 절대 자랑스러울 수 없는 일이었으니, 육지율과 강란희가 그녀에게 좀 더 체면 있고 유망한 직업들을 제안했지만 남초윤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시간을 보낸 끝에 동료들은 하나둘씩 퇴근하고 남초윤만 남았다. 한 시간이 흐른 뒤 남초윤은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녀는 통화 기록을 훑어보고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아마도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