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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아버지는 그래도 나와 육정우를 만나게 했다.

결혼을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명분을 구걸하기 위해서였다.

육정우가 곁에 두는 애인이라도 좋다는 거다.

육씨 가문과 조금이라도 얽히게 된다면 약간의 관계라도 좋다는 뜻이었다.

어쨌든 내 스캔들 때문에 육씨 가문이 혼인을 파기할 거라고 다들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재계에서 여우 같은 놈들은 육씨 가문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아버지에게 자금을 대주지 않았고 돈만 아니었다면 아버지는 나를 내보내지 않았을 거다.

육정우는 잘생기고 귀티가 났다. 하는 행동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만 봐도 있는 집에서 잘 배운 사람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육정우 씨.”

내가 먼저 침묵을 깨자 맞은편 사람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커피를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이렇게 말했다.

“희망아, 예전에는 오빠라고 부르더니 왜 갑자기 모르는 사람처럼 굴어?”

나는 놀라서 사레에 들렸다.

그를 부르는 언니의 호칭이 다소... 오글거렸다.

“상황이 조금 달라졌잖아요. 게다가 오늘은 파혼하려고 온 거고.”

나는 씁쓸한 침을 삼키며 말했다.

“알아요. 육씨 가문에서는 내가 직접 말하길 기다리고 있겠죠.”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진짜 언니라고 해도 사실 결혼하기도 전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며느리를 받아줄 만큼 너그러운 시댁은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은 그와 처음 만나는 강소원이었다.

...

그런데 뭐랄까, 육정우의 이어지는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희망아,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 때문에 그러는 거면 난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여자의 순결은 그 여자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아니잖아. 게다가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쁜 거지.”

나는 멈칫했다. 언니가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 남들과 달랐다.

“전에 있던 일은 내가 이미 사람 보내서 알아봤어. 호텔 카메라가 깨끗하게 지워져서 좀 까다롭긴 해도 시간만 주면 내가 제대로 알아낼게.”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날 좋아했어요?”

언니를 좋아했나요? 두 사람은 같은 마음인 건가요?

“난 너한테 단순히 사업상 하는 정략결혼 약속 지키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7살 때부터 넌 이 육정우가 유일하게 결혼하고 싶은 여자였어.”

진지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그 나쁜 놈들만 없었더라면, 언니가 이런 일을 겪고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둘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천생연분이 되었을 텐데.

갑자기 울리는 벨 소리가 우리 둘 사이의 침묵을 깨뜨렸다.

“뭐? 본사 시스템이 해킹당했다고? 지금 바로 갈게.”

남자의 중저음 목소리에 다급한 기색이 담겼고 급한 일인 것으로 보였다.

“희망아, 기사님한테 집으로 데려다주라고 할게.”

그가 돌아서서 떠나려고 하자 나는 소파에 벗어놓은 그의 양복을 챙기며 망설이다가 말했다.

“같이 가요.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지금이 육씨 가문이 수십 년 만에 직면한 가장 큰 위기인 것 같다.

본사 시스템이 해킹당해 수천억에 달하는 영업 비밀이 유출되는 큰 위기에 직면했다.

기술팀 담당자는 육정우에게 상황을 보고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상대방의 기술력이 너무 강해서 시스템을 재정비하려면 최소 3일은 걸릴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 가서 상대는 이미... 원하는 걸 얻었을 거예요.”

육정우가 언성을 높이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육 대표님께서 저를 믿어주신다면 제가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흐트러진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상대방의 IP주소도 찾아냈다.

“이 주소를 추적해서 그 사람을 잡으세요. 늦으면 그 사람이 도망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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