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중령님, 서우 씨, 제가 아까 여러분들 놀라게 한 건 아니죠?”백화점 밖으로 나온 윤여진이 아직도 넋이 반쯤 나가 있는 듯한 조명주와 최서우를 보며 혹여나 자신을 오해하게 될까 봐 조심스레 물었다.그들 앞에서는 한 번도 센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윤여진은 그렇다고 숨길 생각도 없었다.아침의 그 모습도 윤여진이고 아까 차갑던 모습도 마찬가지로 윤여진 본인이었기 때문이다.윤여진은 그저 서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태도가 바뀌는 것뿐이었다, 모두가 그러하듯.“그럴 리가요 여진 씨! 장이화 같은 여자한테는 그렇게 하는 게 맞죠.”조명주와 최서우도 장이화가 멀쩡한 차를 들이받고 저혈당을 이유로 막무가내로 나오자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는데 윤여진이 나서서 일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니 아주 통쾌해하고 있었다.다만 넋이 나간 건 그저 처음 본 윤여진의 기백에 놀라서였다.“아까 여진 씨 행동 너무너무 멋졌어요!”“진짜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최서우도 한마디 거들며 눈썹을 꿈틀거리자 윤여진은 부끄러운 듯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러더니 예쁜 두 눈을 깜빡이며 임유환을 향해 아까의 그 차가운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물었다.“유환 오빠도 그렇게 생각해요?”사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윤여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임유환의 생각뿐이었다.임유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윤여진은 가장 궁금했다.“나?”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하던 임유환도 이내 웃으며 말했다.“나도 엄청 잘했다고 생각해! 단호하고 기세도 있고 멋있었어.”“그럼 오빠는 단호한 내가 좋아요 아니면 다정한 내가 좋아요?”“난 다 좋아.”단호한 건 타인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성격이고 다정함이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이기에 임유환은 윤여진의 두 가지 모습을 다 좋아했다.“그럼 됐어요.”물론 그냥 오빠가 동생에 대한 순수한 좋아하는 마음일 뿐이었지만 윤여진은 다른 쪽으로 생각한 건지 얼굴에 웃음이 흘러넘치고 있었
한편 임유환도 금방 샤워를 마치고 나온 터라 회색 가운을 걸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울리는 핸드폰에 임유환은 바로 문자를 확인해봤다.문자의 발신자는 윤여진이었다.“오빠, 지금 시간 좀 있어요?”“응, 있어. 왜 그래 여진아?”임유환이 별생각 없이 대답하자 윤여진의 문자가 바로 이어졌다.“아니... 그냥 낯선 환경이라 적응도 안 되고 해서... 오빠가 와서 나랑 얘기 좀 같이 해주면 안 돼요?”“그래. 머리만 말리고 금방 갈게.”“네!”임유환의 흔쾌한 승낙에 윤여진도 빠르게 답장을 보내고는 긴장과 설렘이 동반된 마음으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하지만 임유환은 그런 윤여진의 마음은 물론 지금 윤여진이 검은색 슬립 하나만 입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냥 낯선 환경에 적응을 못 한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려고 서둘러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그냥 얘기만 하는 거라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았던 임유환은 가운을 입은 채 바로 윤여진의 방으로 향했다.-똑똑.“여진아, 문 열어도 돼?”“네, 안 잠갔으니까 그냥 들어오면 돼요.”윤여진의 방 앞에 도착한 임유환이 노크를 두어 번 하자 안에서 쑥스러워하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에 조금 이상했던 임유환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지만 이내 별일 아니겠지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여...”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들어온 건데 임유환의 눈 앞에 펼쳐진 건 속이 다 보일 것 같은 슬립 하나를 걸치고 침대에 엎드려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윤여진이었다.들어 올린 발은 공중에서 흔들거리고 있었고 뒷모습은 매끈한 곡선을 따라 여성스러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걸치고 있는 슬립이 시스루 타입이라 윤여진의 속살까지 비쳐 임유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윤여진이 입은 속옷과 그 안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가슴까지 모두 임유환의 정신을 아찔하게 하고 있었다.이 당황스러운 광경에 임유환의 눈동자는 갈 곳을 잃었고 심장도 세
이쯤 되면 다 앉았을 줄 알았는데 임유환이 고개를 돌렸을 때 윤여진은 아직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몸을 반쯤 일으킨 고양이 자세를 한 채로 침대에 두 손을 대고 있는 윤여진 때문에 원래도 브이넥으로 깊게 파인 슬립이 한층 더 아래로 내려가 있어 임유환 눈에는 자꾸만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보였다.눈이 부시게 흰 피부와 봉우리마냥 한껏 솟아있는 가슴을 보다 보니 임유환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이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그리고 슬립 안에 입은 것이 오늘 자신이 직접 채워주기까지 했던 검은색 레이스 속옷이라 임유환은 피가 더욱 들끓는 기분이었다.거기에 계속 시선을 두고 있다가는 정말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았던 임유환은 다급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고 곁눈질로 아까부터 임유환을 주시하고 있던 윤여진은 빠르게 돌아가는 그의 눈동자에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역시 연애 수첩에 쓰인 것처럼 이 검은색 속옷과 슬립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는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임유환의 자제력도 남다른 것 같았다.자신의 몸매가 남자들을 얼마나 잘 홀리는지 윤여진도 알고 있었기에 임유환도 다른 남자들처럼 제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할 줄 알았는데 빠르게 이성을 잡는 그 모습을 보고 윤여진도 조금은 의외였다.하지만 윤여진은 그래서 임유환이 더 좋았다.임유환은 윤여진의 얼굴과 몸매만 보고 좋다고 달려드는 여느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어릴 때 윤여진이 뚱뚱하고 못생겼을 때도 임유환은 한결같이 다정했다.자신을 겉모습이 아닌 사람 자체로 좋아해 준 사람은 임유환뿐이라 윤여진은 앞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은 임유환에게만 보여줄 생각이었다.다른 남자들이 제 몸을 보고 눈을 빛내는 것만 생각하면 윤여진은 구역질부터 나왔지만 임유환에게는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런 윤여진의 마음을 모르는 임유환은 이성으로 본능을 억제하느라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뒤를 돌았는데도 이런 모습일 줄 알았더라면 아까 힘들다고 둘러대고 나갔거나 아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오빠, 내가 이렇게 입은 게 신경 쓰여요?”임유환의 말을 들은 윤여진은 임유환이 이런 모습을 보기 꺼려하는 것 같아 조금 실망한 듯 물었다.좋아하면 담요를 덮으라는 소리를 할 리가 없었기에 윤여진은 자신이 그렇게 별로인가 싶어 우울해하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이상한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은 것 같은 윤여진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울적해 보이는 윤여진의 눈동자를 본 임유환은 그녀가 오해했음을 알아차리고는 서둘러 해명을 하기 시작했다.“아니야 여진아, 네가 오해한 거야. 나는...”그런데 해명을 하려던 임유환은 어떻게 해도 원만한 해명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다시 입을 다물었다.“역시 유환 오빠는 이런 거 안 좋아하는 거죠...”말을 하다 마는 임유환 때문에 자신의 이런 모습은 임유환이 취향이 아니라 확신한 윤여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망할 놈의 연애 수첩을 당장 태워버리겠다고 다짐했다.“그게 아니라 내 말은...”오해가 점점 깊어지는 것 같은 상황에 임유환은 눈을 질끈 감고 자기 생각을 그대로 털어놓았다.“내 말은 우린 이제 다 컸고... 어릴 때랑은 많이 다르잖아.”“네?”알 듯 말 듯 한 임유환의 말에 윤여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그럼 오빠는 내가 이렇게 입고 있는 게 좋은 거예요 아니면 싫은 거예요?”“좋긴 좋은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바로 되묻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좋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버려 다급히 말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윤여진은 그 뒤의 말은 더 듣고 싶지 않은지 기뻐하며 말했다.“오빠만 좋아하면 됐어요! 이런 모습 좋아하면 앞으로 매일 이렇게 입고 오빠한테 보여줄게요.”윤여진의 해맑은 말을 들은 임유환은 당장이라도 코피를 쏟을뻔했다.윤여진이 매일 이렇게 입고 눈앞에서 돌아다닌다면 그 어떤 남자라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그리고 임유환의 말은 그와는 정반대의 뜻이었다.둘이 있을 때는 이런 복장을 자제해달라는 말을 하려던 것인데 오해한 듯한 윤여진에 임유환은 바로 다시 설명하려 했지만 이
“그래 보여? 하하...”윤여진은 어색하게 웃는 임유환을 보며 일부러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긴장한 거 아니면 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앉아요?”“그냥 금방 샤워해서 그런가 좀 덥네.”임유환은 애꿎은 샤워가운만 털어대며 일부러 열을 식히는 척하자 윤여진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그럼 온도 좀 낮출까요?”리모컨을 들어 온도를 낮춘 윤여진은 바로 임유환 옆자리에 털썩 앉아버렸다.임유환은 저에게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옆에 바싹 붙어 앉아버린 윤여진의 행동에 한번, 그녀가 앉으면서 풍기는 은은한 바디워시 향에 한번, 그 짧은 시간 내에 두 번이나 놀라고 있었다.임유환은 멈출 수 없는 곁눈질로 윤여진을 한번 바라보았는데 그 얼굴을 보기도 전에 새하얀 다리가 먼저 눈에 들어와 또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시선을 조금만 위로 옮겨보면 검은색 시스루에 가려진 봉긋한 엉덩이와 얇은 허리가 드러났는데 잠옷이라고 걸친 게 속살이 언뜻언뜻 보이게 만든 천 쪼가리라서 아예 벗은 것보다 더 야해 보였다.몸 곳곳이 다 살인 무기 같이 치명적이라 임유환은 점점 더 가빠지는 호흡을 간신히 가다듬으며 온 힘을 다해 이성을 붙잡고 있었다.만약 지금 저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게 서인아나 윤서린이었다면 당장이라고 침대에 눕혀버렸을 테지만 하필이면 윤여진이라서 임유환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임유환과 윤여진이 진짜 피를 나눈 남매는 아니라지만 어릴 때부터 남매처럼 자라왔고 임유환 눈에도 윤여진은 동생으로만 보였고 윤여진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다 벗은 것 같은 모습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걸 텐데 여기서 자신이 파렴치한 행동을 해버린다며 임유환은 영영 본인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리고 윤여진도 저를 싫어하고 증오할 게 뻔하니 다시 그 얼굴을 볼 용기도 없었다.해서 임유환은 끓어오르는 본능을 참아내야만 했다.하지만 윤여진이 움직일 때마다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와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새하얀 속살에는 정신이 아찔해 질 수밖에 없어 임유환은 이 고난과 인내의 시간
“유환 오빠, 왜 땀 흘려요?”윤여진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는 임유환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물었다.“어? 내가?”그 말에 서둘러 이마에 손을 대본 임유환은 진짜 맺혀있는 땀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아, 그게... 방이 아직도 좀 더운가 봐.”“그런데요 오빠, 여기 지금 25도인데. 더울 온도는 아니지 않아요?”일반적으로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방은 27도로 설정됐을 때 가장 적당했기에 25도인 온도에 3단계의 바람으로 설정되어있는 지금은 추운 게 정상이었다.윤여진은 이미 몸이 살살 떨려오고 있었기에 아직도 덥다는 임유환의 말을 믿을 리가 없었다.“샤워했잖아 방금, 그래서 그런 걸 거야.”임유환이 또다시 둘러대려고 하자 윤여진이 임유환 쪽으로 다가가며 몸을 기댔다.“나는 추운데.”거리가 또 한 번 좁혀지며 윤여진의 팔뚝이 완전히 임유환 몸에 닿아버렸다.살과 살이 맞닿는 그 기분 좋은 느낌에 윤여진은 몽롱해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반대로 임유환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어른이 된 뒤로는 이렇게 진한 스킨십은 한 적이 없는 둘이었기에 임유환은 비단결처럼 매끈한 피부에 딱 한 번 닿은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려 서둘러 팔을 떼어냈다.아까의 다짐을 지켜내려면 더 이상의 스킨십은 없어야만 했다.“오빠, 왜 자꾸 나 피해요?”임유환이 일부러 몸을 피하자 윤여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물었다.“이...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이게 어때서요. 어릴 때는 매일 붙어있었잖아요.”머뭇거리며 말하는 임유환에 윤여진은 아무렇지 않아 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둘의 어릴 적을 회상했다.“우리 어릴 때, 내가 아픈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오빠가 나 학교에서 집까지 업어다 줬잖아요.”“아, 그때? 기억하지 나도.”윤여진의 말에 임유환도 둘의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네가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당연히 기억하죠. 오빠랑 함께한 모든 순간은 다 나한테 소중하니까요. 하나도 빼지 않고 전부 다 기억하고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임유환과 윤여진은 최서우의 병이 악화될까 염려하여 일부러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임씨 집안으로 향했다.임씨 집안으로 가는 차 안에서 윤여진은 사건의 자초지종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영상 속의 그 여자는 임유환의 시중을 들던 나비라는 이름의 메이드이고 그 메이드를 남자들에게 건네준 이가 임준호라는 사실까지 다 듣고 난 윤여진도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윤여진이 알고 있는 임준호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었는데 그런 분이 한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조차도 없는 잔인한 행동에 15년 전 자신의 친아들을 직접 내쫓던 그때의 임준호가 떠올라 윤여진은 온몸이 오싹해났다.아마도 15년 전 그날부로 임준호가 완전히 변한 게 아닌가 싶었다.30분 뒤 그들은 임씨 집안에 도착했지만 워낙 깊은 밤이라 저택의 대문은 당연히 잠겨있었고 흑기군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대기하고 있던 흑제가 임유환을 보고 인사를 건네왔다.“임 선생님.”“오셨어요?”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계 제일 갑부의 느닷없는 등장이 윤여진은 놀랍기만 했다.임유환을 대하는 흑제의 태도가 지나치게 깍듯해 그 둘의 사이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할 때라서 윤여진은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영상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며 윤여진이 다시 표정을 굳히자 아까부터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임유환이 앞으로 나서더니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임준호, 당장 나와!”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저택 사람들 몇 명이 눈을 떴고 하인 두 명이 달려 나왔다.밖에 나와 상황을 살피던 하인 두 명은 익숙한 임유환의 얼굴에 깜짝 놀랐지만 그런 놀라움도 얼마 오래가진 못했다.하인들은 이내 비아냥거리며 임유환을 향해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우리 임유환 도련님 아니세요?”입으로는 도련님이라 하고 있었지만 그 말투 속에 진하게 녹아나 있는 조롱은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을 정도였다.“무슨 도련님이야, 버려진 도련
임유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이미 덜덜 떨리고 있었다.“주인님, 그건 저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 영상도 그 경찰에 대해 조사할 때 경찰 시스템을 뒤지다 발견한 겁니다.”“경찰 시스템?”“그럼 이것도 정씨 집안에서 한 짓이란 말이야?”“그것까진 아직 모르겠는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저 여자분은 주인님... 아버님께서 직접 저 남자들 손에 넘긴 거였습니다.”이 일이 임유환의 아버지와 관련되어있기도 했고 영상 속의 여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면 더 위험한 일에 휘말릴 것 같아 흑제는 대답을 망설였다.“아버지?”“네, 주인님.”흑제의 말에 당황하던 임유환은 재차 확인을 거친 후에 또다시 기운을 뿜어내며 당장이라도 임준호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임유환은 어떻게 자신이 직접 데려온 아이를 또 내다 버릴 수가 있는지 임준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당연히 제 한 목숨 부지하고자 행한 나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겠지만 저 사람들 손에 끌려가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내어준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짓인지 의문이 갔다.영상 속 사람들이 말하는 비밀 열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임유환은 나비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것 같았다.“임준호!”갑자기 소리 지르는 임유환 때문에 방 안에 있던 윤여진은 화들짝 놀랐다.“흑제.”“예, 주인님.”“지금 당장 흑기군 준비해서 나랑 임씨 집안으로 간다.”“예, 주인님.”지금 임유환은 약해빠진 임준호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해있었다.그래서 직접 집으로 쳐들어가서 대체 나비를 누구에게 넘겨준 것인지, 나비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살아있다면 직접 얼굴을 봐야 했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봐야 진정될 것 같았다.임유환은 나비가 그 짐승 같은 놈들 손에 놀아나도록 두고 볼 수가 없었다.살아있다면 당장 데려다가 직접 치료를 해줄 것이고 죽었어도 데리고 와서 묻어줄 생각으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임유환은 차오르는 분노와
“나비?”아까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몰랐는데 영상 속의 여자는 바로 임유환만 보면 도련님이라 부르며 해맑게 웃던 나비였다.그렇게 밝고 예쁘게 웃던 아이가 피범벅이 된 채 모진 고문을 견뎌내는 걸 보고 임유환은 낯빛이 창백해졌고 머리가 울려왔으면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서 쫓겨난 지도 15년이니 나비도 많이 커서 얼굴만 보면 못 알아봤겠지만 나비 문양의 반점 덕분에 한눈에 그녀의 알아볼 수 있었다.나비라는 아이는 5살의 어린 나이에 임씨 집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름도 없어서 나비도 임유환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었다.나비는 어릴 때 강도들의 손에 부모님을 잃고 그들에게 이끌려 여기저기 팔려 다니던 이이였는데 그런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 임준호가 큰돈을 들여 데리고 오는 바람에 임씨 집안에서 메이드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나비는 임유환을 보자마자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때릴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나도 슬퍼 보여서, 웅크린 몸을 떨고 있는 아이가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임유환은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임유환이 임씨 집안에 들어온 이상 더는 그 어떤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다독여봐도 나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었다.다른 메이드들을 시켜 깔끔히 씻기고 머리도 빗겨주고 깨끗한 옷까지 갈아입혀 주니 왼쪽 얼굴에 있는 나비 모양의 반점도 드러났다.임유환이 그 반점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비는 신분이 낮은 제가 얼굴에 난 반점으로 임유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동굴 속에서 강도들에게 폭행당하던 것처럼 맞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반점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그에 임유환은 바로 나비의 손을 잡아주며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천천히 타일러주었다.그리고는 나비의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정원 산책까지 데리고 갔다.드넓은 정원에는 많은 꽃들이 피어있었고 그것들이 함께 조화로운 향도 만들어내고 있었다.이런 아름다운 곳은 처음 보는 나비는 처음에는 몸이 굳어버리며 어색해했지만 이
“아!”남자의 행동과 함께 흘러나온 여자의 처절한 비명이 밀실을 가득 채웠다.화면을 뚫고도 전해지는 여자의 절망과 고통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임유환의 몸도 떨려왔고 마찬가지로 비명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윤여진도 임유환 쪽으로 다가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어머!”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는 영상 속 인간들 때문에 윤여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소리쳤다.너무 집중해서 본 나머지 옆에 윤여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임유환이 다급하게 화면을 가리며 말했다.“여진아, 넌 보지 마.”“오빠, 이 사람들 누구예요?”“아직 모르겠어.”얼굴과 입술이 창백해진 윤여진이 걱정스레 물었지만 임유환은 한숨부터 쉬며 대답했다.“여진아, 네 방 화장실 좀 쓸게.”말을 마친 임유환은 화장실로 들어가서 다시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화면 속의 여자는 여전히 은침에 찔린 손을 들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온몸을 비틀려고 발버둥 치는 여자는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미꾸라지 같기도 했다.하지만 검은 옷차림의 남자는 그런 여자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차가운 눈을 하고 두 번째 은침을 꺼내 들어 여자의 다른 손가락에 찔러넣었다.“아!”가슴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에 여자는 순간 고개를 확 젖혀버렸고 이미 흑과 말라 굳어버린 핏자국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이 여자의 얼굴을 가렸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몰라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그냥 날 죽여줘요 제발...”“죽여주세요...”남자가 아까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물었지만 여자는 울며불멸 죽기를 애원하고 있었다.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으면 죽는 걸 원하고 있을까 싶어 임유환은 비통하다 못해 화까지 나고 있었다.“말했잖아, 얘기하면 죽여준다고.”말을 마친 남자는 섬뜩하게 웃더니 나머지 손가락에도 하나하나 은침을 꽂아 넣었고 여자는 온몸에 경련이 일듯 몸을 떨어대다가 한계에 다다른 건지 다시 한번 기절했다.은침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열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피들은 빠르게 작은 웅덩이
“마음의 준비요?”의미심장한 흑제의 말에 임유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영상인데 그래요?”“혼자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미 암호 걸어서 이메일 보내놨어요.”임유환이 영상을 보면 어떤 반응일지 알기에 흑제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알겠어요.”임유환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나서 빠르게 흑제가 보내온 이메일을 확인했다.이메일의 정체는 5분쯤 되는 영상이었는데 영상의 장소는 어두운 밀실같이 보였다.밀실 안에는 똑같은 옷차림을 한 남자가 다섯이나 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눈 하나만 내놓고 있었다.임유환은 그들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핸드폰 화면으로만 들여다보고 있음에도 무시무시한 그들의 기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남자들의 발밑에는 거의 죽어가는 젊은 여자 하나가 누워있었다.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몸에는 채찍에 맞느라 생긴 생채기들이 한가득이었다.생채기 주위의 살들은 진작에 터져나갔고 팔은 안에 있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했다.그리고 몸에 난 상처는 그뿐만이 아니라 담배로 인해 생긴 작은 화상 자국들도 빼곡했다.옛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 난 상처들은 이미 옷과 붙어버려 여자의 처참한 상태를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영상을 보고 있던 임유환도 서서히 여자가 불쌍해졌다.다섯 남자들은 대체 누구길래 여자한테 이토록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여자는 또 누구인지 임유환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영상 하단에 떠 있는 시간을 보니 아직 5분 1밖에 진행되지 않은 영상에 임유환은 계속해서 화면을 들여다봤다.화면은 빠르게 전환됐고 여전히 같은 복장을 한 남자 다섯 명과 아까와 다를 게 없는 밀실이 나타났지만 아까 그 일로부터 며칠은 지난 듯 보였다.영상 속의 남자는 찬물을 들어 쓰러져있는 여자의 몸 위로 뿌렸고 여자는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고통 속에서 소스라치며 눈을 떴다.“비밀 열쇠 어딨는지 말해.”검은 복면을 쓴 남자 하나가 입을 열자 나머지 네 명도 여자를 차갑게 바라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검사할 거예요 오빠?”그때 귀를 간질거리는 윤여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부끄러워하면서도 도발적인 말을 뱉어내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심장이 쿵쾅거렸다.“여진아, 나는...”오해를 풀어보려고 고개를 돌려 윤여진을 보던 임유환은 몸을 앞으로 숙인 탓에 훤히 드러난 검은색 슬립 아래의 몸매에 다시 말을 삼켜낼 수밖에 없었다.임유환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은 시각 동물인지라 완벽한 몸매와 유독 눈에 띄는 풍만한 가슴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임유환의 이성에 묻혀버렸다.“후...”임유환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했다.“여진아, 진짜 이제 그만해. 진짜 실수한다니까.”“오빠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 때문에 점점 본능이 들끓고 있었던 임유환은 이대로 있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그런데 그 순간 윤여진이 임유환의 손을 덥석 잡아 오자 우유 크림처럼 부드러운 그 느낌에 임유환은 일어서려던 다리마저 굳어버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유환 오빠, 나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윤여진은 여전히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하며 잡고 있던 임유환의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환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이 손을 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고 있었다.그런데 마침 타이밍 좋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둘 다 화들짝 놀랐고 임유환도 또 한 번 울리는 벨 소리에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윤여진도 겁먹은 고양이마냥 손을 빼내며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나... 전화 좀 받을게.”임유환이 어색하게 말하자 윤여진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네.”아까의 대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럼 타는 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임유환이 전화를 받았다.흑제에게서 온 전화라 조금 긴장한 채로 받았는데 역시나 전에 지시했던 일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임유환은 애써 윤여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장난치지 말라니까.”윤여진이 여전히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한 임유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서둘러 말을 돌렸다.“아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하다고 했잖아, 그거 알려줄게.”“그 얘긴 나중에 하고, 오빠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했잖아요.”“어... 그 얘기 먼저 하자, 불 끄면 졸려서 못 할 것 같아.”임유환은 기대에 찬 윤여진의 얼굴이 보였지만 어떻게든 이 숨 막히는 상황부터 끝내보고자 평소답지 않게 우겨댔다.그리고 사실 윤여진이 한 말이 장난인지 아닌지 제대로 분간도 가지 않아 아까부터 심장이 떨리고 있었다.장난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장난이 아니라면 아주 어색해질 것 같았다.“오빠, 왜 아까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리는 것 같죠?”그때 임유환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들을 보며 윤여진이 부드럽게 물어왔다.“그... 그래?”“긴장한 거예요 설마?”임유환에게 질문을 하며 코앞까지 다가온 윤여진 때문에 둘의 거리는 3㎝도 채 남지 않게 되었다.정말 조금만 움직여도 바로 닿을 것같이 가까운 거리라서 임유환은 윤여진이 내뱉는 호흡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뜨거운 숨결과 함께 풍기는 향기에 임유환은 헛기침을 하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여진아, 이제 진짜 그만해.”사람 둘은 족히 앉을 정도로 떨어져서야 임유환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장난 아니라니까요.”임유환이 저에게서 멀어지자 윤여진은 살짝 실망한 듯 보였지만 이내 연애 수첩 제1항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그래서 윤여진은 긴장한 듯 굳어있는 임유환을 보며 익살스레 웃어 보였다.“유환 오빠, 누가 그러는데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긴장을 한대요.”“오빠 설마 나 좋아하는 거예요?”윤여진이 이 질문을 할 때 임유환은 이게 장난이든 진심이든 간에 서둘러 이 화제가 지속되는 것부터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이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상해지는 방 안의
“어...”단도직입적인 윤여진의 말에 임유환은 뭐라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임유환의 생각이 불순한 건 맞지만 그게 오로지 임유환의 잘못은 아니었다.이미 성인이 된 그들은 15년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윤여진은 얼굴이며 몸매며 누가 봐도 예쁜 여자로 성장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도 멀쩡할 남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임유환 역시 남자였으니 검은색 레이스 속옷에 슬립까지 입고 제 눈앞을 돌아다니고 있는 윤여진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슬립 아래로 보일 듯 말 듯 한 윤곽이 아까부터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임유환은 지금 온 정신력을 다 쏟아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자신의 눈이 윤여진의 몸으로 향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임유환이기에 당연히 같이 자자는 그녀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모든 남자들의 워너비인 그 몸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밤을 조용히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오빠, 이상한 생각 한 거 맞죠?”한편 윤여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임유환을 보며 기쁨이 섞인 목소리로 장난스레 물었다.“어...”임유환은 이젠 정말 자신이 무슨 생각인지도 잘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정말 윤여진을 두고 이상한 생각을 했다고 말하기에는 그는 윤여진이 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그녀의 몸만 보면 저절로 뜨거워지는 가슴이 대신해서 부정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여진아, 사실... 나는...”다그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해명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진심이 전달될지 몰라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임유환에게 윤여진은 여전히 15년 전 꼬맹이였고 임유환 또한 그때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그는 윤여진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또 윤여진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여전히 그때처럼 윤여진이 힘들 때 그녀에게 힘이 돼주는 든든한 오빠가 되고 싶었는데 이 마음을 전하기에 말 한마디
“아니야, 그냥 네가 아까 한 말 생각하고 있었어.”“그럼 오빠도 나랑 같이 있고 싶은 거예요?”다급히 해명하는 임유환에 시무룩해 있던 윤여진은 다시 밝게 웃으며 물었다.“그럼.”임유환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와 윤여진이 말한 같이 있는다는 서로 전혀 다른 뜻이었다.“그럼 오빠, 오늘 밤은 나랑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임유환의 팔을 감싸 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말하는 윤여진에 임유환은 몸이 먼저 반응할 뻔한 걸 간신히 참고는 물었다.“여기서 너랑 같이 밤을 보내자고?”“네!”윤여진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임유환이기에 제 팔에 닿아오는 말랑거리는 그 느낌도 까맣게 잊은 채 놀랐다.그런 임유환의 반응을 보던 윤여진은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다급하게 한마디 더 보탰다.“여기서 자는 건 처음이라 좀 무서워요, 워낙 낯설기도 하고...”“어...”윤여진의 부탁도 일리가 있어 보여 임유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오빠, 그냥 남아서 나랑 같이 자면 안 돼요?”윤여진은 임유환의 팔을 좌우로 흔들며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임유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가만히 있어도 예쁜 얼굴인데 애교까지 부리니 귀여우면서도 섹시한 모습이 섞여 있어 웬만한 남자라면 다 윤여진한테 넘어갈 것 같았다.인내심과 자제력 하나는 자부하면서 살아왔던 임유환도 윤여진의 애교 공세에 3초도 못 버티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 알겠어.”임유환은 저도 모르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정말 이런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바로 거절하고 싶었지만 저를 향해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 윤여진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역시, 오빠는 내 말 들어줄 줄 알았어요!”결국 제 말을 들어준 임유환에 윤여진의 촉촉한 눈망울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너랑 같이 있어 줄 수는 있는데, 난 바닥에서 잘 거야.”같은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으니 임유환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최선책을 찾으려고 노력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