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은 결코 이서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화장실 위치를 가리켰다. 이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괴로워...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그녀는 가슴을 꽉 누른 채 아랫입술을 세게 물었고, 그 고통이 거리낌 없이 온몸에 퍼지도록 내버려두었다. 이서는 아무런 신음을 내지 않으려 했으나, 이내 이마에 수많은 땀방울이 맺혔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끊어진 구슬처럼 뺨으로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이서야!”문밖으로부터 지환의 매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정말 속이 안 좋은 거 맞아?” 이서가 깨물고 있던 입술을 천천히 풀며 태연한 어투로 대답했다.“네, 하 선생님, 혹시 약 좀 사다 주실 수 있어요?” 이 말을 들은 지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침묵했다.“알겠어, 사 올게.” 곧이어 문이‘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서는 이 소리를 듣고서야 구원을 받은 듯 신음을 내뱉었다. ‘드디어 가셨구나.’ “아... 아...”이서는 그제야 머리를 꽉 쥔 채 밀려오는 고통을 소리로 발산했다. 긴 경련과 발작 끝에 그녀는 마침내 고통을 이겨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이서는 거울 속의 창백한 자신을 보며 뺨을 힘껏 두드렸고, 볼에 불그스름한 빛이 떠오른 후에야 터덜터덜 화장실을 나섰다. 5분 후.약을 사 온 지환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는 이서를 보았고, 드디어 불안하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지환이 이서에게 약을 건네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괜찮아요.”“그래도 약부터 한 알 먹어.” “네.”이서는 순순히 약 한 알을 먹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오늘 간식을 하나 먹었는데, 그게 상했던 건지 계속 속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녀의 옆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지환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그렇구나.” “제가 먼저 파일을 열어봤는데
“이서야!”지환이 이서의 손을 잡았다.“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고집스러운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알겠어요, 하지만 회사의 홍보팀과 먼저 연락을 해봐야겠어요.”“그래, 그건 병원에 가는 길에 하면 되지 않을까?” 이서는 하는 수없이 지환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곧 홍보팀 팀장인 최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누가 이런 파란을 일으킨 건지 증명할 수 있는 증거는 찾은 거예요?” 최미영은 이때까지도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윤 대표님, 이번 파란을 일으킨 게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뜻밖에도 거짓 뉴스를 퍼뜨린 언론들이 모두 심씨 가문의 회사더군요. 하지만 이 언론들은 심씨 가문에 직접적으로 소속된 게 아니라, 제3자를 통해 심씨 가문과 엮여 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일의 배후에 심씨 가문이 있다는 걸 대중에게 알리고 싶으시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회사들이 어떤 3자를 통해 심씨 가문과 엮여 있는지 알아내야 할 테니까요.] 최미영이 말했다. 눈살을 찌푸린 이서가 잠시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12시간 더 드릴게요. 내일 아침, 즉 10시까지는 완벽한 증거들을 찾아주셨으면 해요.” [네, 알겠습니다.]수화기 너머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이서는 그제야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지환과 이서는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않고 호텔 부근의 병원에 다다랐다. 이곳은 개인 병원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환한 미소를 띤 간호사가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두 분, 무슨 일로 오셨어요?” 지환이 이서를 한 번 보았다.“전반적인 검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이서가 눈을 크게 뜬 채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는 배가 조금 아플 뿐이예요. 전반적인 검사를 할 필요는 없어요.” 지환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
이서와 지환이 다시 만나려던 찰나, 간호사가 그녀에게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렇게 빨리요?”이서가 간호사를 보며 물었다.“일을 정말 효율적으로 하시나 봐요! 앞으로는 꼭 여기 와서 검사받아야겠어요.” 간호사가 빙긋 웃었다.‘어떻게 빠르지 않을 수 있겠어요?’‘원장님께서 신신당부하신 귀한 분이신데요.’ ‘두 분, 도대체 뭐 하는 분들이실까?’ ‘원장님을 직접 나서게 할 정도면 평범한 분들은 아닌 것 같은데...’ 간호사가 곧 검사 결과 보고서 한 부를 이서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보고서를 한번 보고 나서야 지환을 향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보세요, 제가 문제없을 거라고 했죠? 왜 제 말을 믿지 않으신 거예요?” 지환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차갑던 그의 눈가에 웃음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문제없으면 됐어, 이만 돌아가자.” “네.”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날 밤, 그녀는 아주 편안한 숙면을 했다. 이서가 마음이 편안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지환을 속였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남은 일은 홍보팀이 조사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내일이면 그 언론사들과 심씨 가문의 관계를 밝힐 만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장희령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그러나, 이 좋은 꿈은 아침이 밝자마자 끝이 났다. 수많은 알람이 이서의 핸드폰 화면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녀는 아무것이나 하나를 눌렀는데, 그것은 나나가 있는 영화팀이 그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서가 눈살을 찌푸린 채 기사 중 하나를 누르자마자 제작진이 발표한 성명이 화면에 떠올랐다. [서나나 씨가 영화 팀 내의 동료를 폭행하고, 업무에 협조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아래와 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상적인 영화 팀의 업무를 전개하기 위하여, 우리 제작진은 서나나 씨를 우리 영화 팀에서 퇴출하고, 손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이 시점에서 나나를 해고하는 것으로 보아, 제작진도 모든 일이 나나
사람들은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대중들이야 나나의 행동을 보지 못한 채 제작진의 편을 든다고 여길 수 있었지만, 윤씨 그룹의 연예인들까지 모두 나서서 제작진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을 것이었다. 혹시라도 이서의 살인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회사 내의 연예인들조차도 참을 수 없을 것이었으며, 그 사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연예인들은 회사의 압박을 받았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대중들의 타오르는 주목은 다시 이서에게로 향했다. 차가운 얼굴로 소희의 보고를 들은 이서가 말했다.“우선 내버려둬. 다른 연예인들한테 입장을 표명하지 말라는 말을 할 필요도 없어.”“오히려 나는 우리가 지원하는 연예인 중에 현명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고 싶으니까. 어리석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이 끝난 후에 바로 해고하면 그만이야.” [네.]이서가 말을 이어 나갔다.“그리고 10시 전에는 나를 찾지 말아줘. 인터넷상의 일이 아무리 심각해지더라도, 그 누구도 나에게 연락하거나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으면 해.” [네, 언니.] 이서가 빵을 한 입 깨물며 말했다. “지금 바로 회사로 갈게.” 하지만 소희의 말투는 더 이상 그렇게 확고하지 않았다.[이서 언니, 아무래도 오늘은 회사에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그게... 이미 회사 입구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 때문에 앞문이고 뒷문이고 할 거 없이 막혀버렸거든요.] [그리고 인터넷 소식을 본 회사 직원들의 민심도 흉흉해요.] [만약 지금 회사로 오신다면, 밖에 있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회사 직원들의 민심도 달래셔야 할 것 같아요.]소희는 자신이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서라면 지금 회사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꼭 가야 해.”“무슨 일이 있어도 당장 오늘 사건의 경위를 밝혀야 해. 게다가 나는 사건의 중심인물이니까 반드시 회사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소희는 또 한 번 만류하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전화
“나나를 해고하라고요? 그럼 저는요? 제 사건이 모든 일의 도화선이 된 건데, 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마, 저를 물러나게 하시려는 건 아니죠?” 이 말이 나오자, 시장처럼 떠들썩하던 회사 로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사람들은 분분히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이서가 한 말이 그들의 마음속에 피어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하은철이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건 윤 대표님 때문이잖아?’ ‘그리고 이번에 윤 대표님은 살인사건에 연루되기까지 하셨어.’사실, 윤씨 그룹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고위층 임원들은 사석에서 의논한 바가 있었다.그것은 바로... 이서를 물러나게 한다면, 윤씨 그룹이 겪고 있는 위기를 완벽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래서 아까 그 사람도 나나를 해고하자고 한 것이었다. 한참이나 침묵하던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었으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씨 그룹이 우리의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건 모두 대표님 때문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표님은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셨고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대표님께서 은퇴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께서 물러나 주신다면, 하씨 그룹은 더 이상 윤씨 그룹을 겨냥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것만이 윤씨 그룹의 발전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하씨 그룹이 우리의 윤씨 그룹을 겨냥한 게 저 때문이고, 제가 물러나기만 하면 그들이 윤씨 그룹을 겨냥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흘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서가 화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 사람이 웅얼거리며 말했다.“그...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스스로 한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나 확신에 찬 어투로 말씀하신다고요?”“혹시, 하씨 그룹에게 포섭되신 거 아닙니까?” 그녀의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야 이서의 뒤에 또 하나의 높고 우뚝 솟은 그림자
같은 시각.이서는 홍보팀이 있는 층에 도착하여 바삐 걸음을 옮겼다.홍보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급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최미영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최미영은 부하직원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인 줄 알고 격동되어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선 사람이 이서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 곧바로 정신이 멍해지는 듯했다. “조사는 어떻게 됐어요?”이서는 최미영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뭐가 문제인 겁니까?” 멍하니 있던 그녀는 잠시 후에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이번 사건에서 주로 힘을 쏟은 큰 언론매체는 분명 심씨 가문의 회사가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제3자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어떤 회사가 심씨 가문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대중들은 모든 일의 배후에 심씨 가문이 있다는 걸 쉽게 믿지 못할 텐데 말이죠...” 이서가 시간을 힐끗 바라보았다.‘곧 10시가 될 거야. 더 이상 이 일을 미룰 수는 없어!’ 늘 홍보팀에게 주어진 골든 타임은 72시간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최미영에게 마지막으로 12시간을 준 이유이기도 했다.‘정말... 방법이 없단 말이야?’‘장희령이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나와 나나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는 게 밝혀진다면, 그 여자의 명성은 처참히 망가질 수 있을 텐데...’ ‘그때가 되면, 연예계를 헤집고 다니는 장희령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이서는 희령이 자신을 겨냥하는 때를 이용하여 그녀를 호되게 짓밟을 수 있기를 바랐다. ‘정말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거야?’ 벽에 걸린 시계가 조금씩 10시를 향해 다가가자, 조급하던 이서의 마음이 한순간에 풀려버리는 듯했다. 몸을 일으킨 그녀가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한 직원이 신이 나서 들어왔다. “알아냈습니다, 알아냈어요! 그 언론매체 중에 가장 큰 회사는 다른 회사에게 의지해서 심씨 가문의 지원을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즉, 자선단체가 개설한 뉴미디어 회사였다는
대중들은 한동안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본래 그 단편 소설 대회는 매년 소수의 참가자로 진행되는 것이었으나, 하이먼 스웨이의 합류로 인해 M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다른 쪽에 있던 H국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심가은이 경기에서 벌인 수작을 알 리가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가은이 우승을 거머쥐기 위하여 대가의 원고를 사들여 자신의 원고인 양 사칭하였고, 모든 수작이 드러나자 하이먼 스웨이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장의 CCTV에서는 가은이 험상궂은 얼굴로 이서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 생생히 찍혀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한을 느낄 지경이었다. ‘시상식 당일, 그곳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도 심가은은 윤이서를 죽이고 싶다는 표정을 전혀 감추지 않았어.’‘그런 사람이 사석에서 윤이서를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잖아? 아마 본인만 알 수 있는 끔찍한 일을 계획했을지도 모르지.’ 이 동영상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 가장 분노한 사람들은 하이먼 스웨이의 팬이었다. 그들은 하이먼 스웨이가 친딸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가 친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복을 보냈었다.하지만 찾았다던 그 딸이 가짜였을 뿐만 아니라, 꼬리가 백 개 달린 여우짓을 하며 하이먼 스웨이를 죽이려 했다니... 하이먼 스웨이의 팬들은 동영상 아래에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으나, 한 편으로는 궁금해하는 것이 있었다.[이 영상은 심가은의 악한 면을 보여준 것일 뿐이잖아요. 정말 윤이서가 심가은을 죽인 게 아닌 걸까요?][하지만 영상을 보면 윤이서는 심가은의 곁에 서 있잖아요. 만약 윤이서가 심가은을 죽인 거라면, 왜 CCTV에는 윤이서가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히지 않은 걸까요?] [꼭 그녀가 총을 들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사격수를 고용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에이, 저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계정을 확인한 사람들은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계정이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본 사람들은 재빨리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사람들은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성명서였는데, 가은의 죽음과 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명확히 쓰인 것이었다.이서에게 매수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M국의 경찰국은 현장 조사 내용과 이외의 모든 조사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사건이 두 나라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한 나라의 경찰국이 타국 플랫폼의 계정을 등록한 것이 자신들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국의 네티즌들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니...이것을 본 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윤이서 씨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경찰국이 계정까지 만들어서 그녀의 진실을 밝혀주려고 한 걸까요?]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경찰국이 윤이서 씨가 무고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조사받는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는 겁니다. 그건 보안 사항이잖아요!] [윤이서 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도대체 윤이서 씨의 배후에 어떤 후원자가 있는 건지 상상조차 되질 않아요!] [윤이서 씨의 후원자가 누구든 간에, 중요한 건 그녀가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저는 뒤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이 정말 악독하다고 생각해요. 바다 건너의 경찰국조차도 참을 수 없어서 직접 그 사람을 겨냥할 정도였으니까요!] “...”네티즌들의 여론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희령이었는데, M국의 경찰국에서 올린 성명서를 본 그녀는 화가 나서 태블릿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매니저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참 후에야 희령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을 것을 본 그가 입을 열었다.“네티즌이 말한 것처럼... 윤이서의 배후에 정말 후원자가 있는 거 아닐까?” 희령은 또 한 번 분노가 치솟는 듯했다.“후원자는 무슨 후원자! 그 여자가
차가 심씨 가문의 고택에 다다르자, 이서는 가장 먼저 지엽을 발견했다.지엽 역시 차에서 내리는 지환을 보고 얼굴이 굳어 버렸는데, 특히 이서가 자연스레 지환의 팔짱을 낀 순간, 지엽의 눈썹이 몇 번이나 심하게 떨렸다. “두 사람...” 지엽이 무언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 고택의 대문이 열리며 소희가 나왔다. “오셨네요!” 몇 초 후, 두 사람이 팔짱을 낀 모습을 본 소희는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두 분... 화해하신 거예요?” 이서는 지엽의 반응을 슬쩍 살피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됐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지엽이 떠난 뒤에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희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하나 언니는 아직 모르죠? 지금 바로 알려줘야겠어요!” 이서는 다급하게 소희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으며 말했다. “잠깐만!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소희 씨 얘기부터 하자. 지엽아, 얼른 조사한 결과부터 소희 씨한테 보여줘.” 지엽은 여전히 이서와 지환이 함께 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고, 이서가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소희에게 조사 결과를 건넸다. “소희 씨에게 누명을 씌운 건 심태윤이었어요. 소희 씨가 여태 친동생인 줄 알았던 그 사람이요.” 지엽은 여전히 이서와 지환 쪽에 신경이 쏠려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그 안에 다 적혀 있으니까 잘 읽어보면 돼요...” 지엽이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서야, 잠깐 나랑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서는 지환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서가 지환의 팔에서 손을 빼내려 하자, 지환은 더욱 강하게 이서의 손을 잡았다. 이서는 당황한 표정으로 지환을 올려다보며 눈빛으로 놓아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 대표님, 제가 이서랑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면
이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 같이 먹고, 같이 잔다고요?”지환은 그 말에 이서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채고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지만, 일부러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응, 어쩔 수 없잖아. 어둠의 호리병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이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당분간은 같이 지내야겠어요.” 지환의 미소는 더 깊어졌는데, 그 미소가 사라지기도 전에 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하도훈은 언제 처리할 수 있어요? 설마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죠?” 지환은 깊은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이 다크 웹의 1위와 2위의 위치만 알아낸다면, 하도훈과 정면 승부를 가릴 수 있을 텐데 말이지...”“어둠의 호리병은 그 둘의 위치를 모르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둠의 호리병도 순위에 올라 있는 킬러일 뿐, 그 사람들과 친구는 아니거든.” “단서도 전혀 없어요?” 지환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지만, 지금은 없어.” 이서는 실망이라기보다는 하도훈이라는 골칫거리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럼, 우린 이제 어디로 가요?” “회사로.” 고개를 끄덕인 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두 사람이 탄 차는 윤씨 그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서는 지엽의 전화를 받았다. “소희 씨에 대한 일은 어느 정도 해결된 거야?”이서는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얼른 가서 소희 씨한테 알려줘. 분명히 엄청나게 기뻐할 거야.” 수화기 너머의 지엽은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이서야, 난 소희 씨랑 이제 막 알게 된 사이라 조금 어색한데, 네가 같이 가주면 안 될까?] 이서는 곁눈으로 지환을 한 번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알았어.” 그 순간, 이서를 태우고 있던 지환은 잠시 핸들을 놓칠 뻔했
“고이서를 바로 내쫓으면 분명 편하긴 하겠죠. 하지만 내 손에 있는 윤씨 그룹의 자산 중 일부는 원래 윤씨 가문의 것이었어요.”“그 인간들의 만행이 제대로 폭로되지 않으면, 과거 윤씨 그룹에 몸담았던 몇몇 내부 인사들은 고이서와 손을 잡고 말 거예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 인간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지 모두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고이서를 회사의 대표 자리에 앉힌 거야? 그 여자가 빨리 본색을 드러내도록 하려고?” “네.”짧게 대답한 이서는 무심코 거울 속 자신을 보았고, 활짝 웃고 있는 자기 모습에 잠시 멍해졌다. ‘하지환 씨 앞에 서면 점점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는데, 이서에게 더 난감한 것은 지환이 자신의 정체를 속였던 일조차 잊고 있다는 점이었다. ...“왜 내려오라고 한 거예요?”아래층으로 내려온 이서는 지환의 차에 올랐다. “하도훈이 이렇게 오랫동안 잠적한 이유가 뭔지 알아?”“자식을 만드느라 바쁜 거겠죠.” “맞아.”“그동안 꽤 많은 여자를 만났고, 그중 한 여자가 진짜로 임신했다더라.” 이서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그럼 이제 하도훈이 다시 우리한테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는 거네요?” 지환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 없이 이서를 바라보았다. 이서는 지환의 표정을 보고 의아하게 물었다. “그 표정은 또 뭐예요? 설마... 예전에 내가 하도훈한테 여자를 붙여보라고 했던 그 작전을...” 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임신했다는 여자, 하지환 씨가 보낸 사람이에요?” “아니었으면 한 번에 임신했을 리가 없잖아.” 이서는 입을 살짝 벌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럼 그 아이는 하도훈의 아이가 아닌 거예요?” 지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이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도훈은 그 사실을 알면 미쳐버릴 거예요.” “미치면 더 좋지 않아?” 지환은 담담하게
모두 반대의 목소리뿐이었지만, 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불만 있으면 사직서 쓰세요.” 이 한마디에, 회사 고위층들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오늘부터 고 팀장님이 아닌 고 대표님이 된 거예요.”‘고 대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이서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새어 나오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너무나 큰 기쁨에,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으니 말이다.“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이서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고, 고이서는 문이 닫힌 후에도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5분이 지나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서의 책상으로 다가가 나뭇결을 쓰다듬었다. ‘이제 이 모든 건 다 내 거야...!’ 고이서는 마치 꿈속을 걷는 사람처럼 대형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 순간, 마치 가죽 의자가 아니라 구름 위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자리만 차지하면... 다시 예전처럼 호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거야. 원하는 대로 화려한 드레스를 사고, 반짝이는 보석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고... 돈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되겠지! 아, 내가 좋아하는 남자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을 거야.’ 고이서의 마음이 격렬히 요동치던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고이서는 마치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고,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김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팀장님, 회의 시간이 다 됐습니다.” ‘고 팀장’이라는 호칭에 고이서는 속으로 불쾌감을 느꼈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김하늘’이라는 이름을 새겨 두었다.‘며칠만 지나면 내가 정식으로 대표가 될 텐데, 그때 가장 먼저 잘라버릴 사람은 바로 네가 될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김하
고이서는 이서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성지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윤이서는 사실 아주 멍청한 사람이야.”“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하은철처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두고, 굳이 가난한 남자를 택했겠니?” 고이서는 예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윤이서가 정말 그렇게 멍청하다면, 누구도 살리지 못했던 회사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H 국의 4대 가문 중 하나로 만들진 못했을 거야.’‘그것도 혼자만의 힘으로.’‘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윤이서는 정말 멍청한 것 같아.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니까?’‘이 회사의 대표가 된 것도 전부 운 덕분이었던 것 같아.’ “고 팀장님?”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이서는 정신을 차렸다. “네, 대표님.” 이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큰 일이에요. 오늘은 제가 한 말을 잊어버린 정도로 끝났지만, 앞으로는 계약서 서명 같은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고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쉬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일은 누구한테 맡겨야 할까요?”이서는 갑자기 고이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래요, 고 팀장님! 고 팀장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고이서는 당황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 팀장님이 꼭 저를 도와줘야 해요. 고 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회사에는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고이서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별거 아니에요.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운영만 도맡아주면 돼요. 저는 회복하는 대로 다시 돌아올게요.” 고이서는 겉으로는 고개를 저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렇게 큰 회사를 저한테 맡기셨다가 큰 문제라고 생기면 어떡하시려고요.”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고이서는 속으로 이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드
하지만 한 회사의 대표는 곧 하늘과도 같았다. “아직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서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한 김하늘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그 사무실에도 CCTV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당장 영상 자료를 가져와 보라고요!” 김하늘은 당황하며 말했다. “대표님,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굳이 대표님께서 무안해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 이 정도의 생각은 김하늘도 하고 있었으나, 이서는 아주 단호했다.“됐고, 당장 가져오세요.” 김하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서는 의아해졌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비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그럼 설마...’ ‘그 꽃차가 효과를 나타낸 건가?’이 가능성이 떠오르자 고이서는 속으로 흥분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대표님께서 CCTV를 보자고 하신다면 봐야죠. 만약 저희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대표님께서도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겁니다. 그렇죠, 대표님?”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니까요.” “만약 김 비서가 잘못 전한 거라면 엄하게 처벌하고, 정말 내가 말해놓고 잊어버린 게 맞다면, 그땐 분명히 사과할게요.” 이쯤 되니 김하늘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김하늘은 결국 CCTV 영상을 가져왔고, 영상 속에는 이서가 몇 번이나 김하늘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고 팀장님을 불러주세요.”심지어 몇 분 간격으로 반복해서 지시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서는 그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내가 한 말이 맞다고...? 그런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김 비서, 미안해요.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랬어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너무 미안해서 가방을 하나 선물로 주고 싶은데, 오늘 퇴근하기 전에 나한테 와서 받아 가요, 알겠죠?”김하늘은 이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애매하고 거절하기도
“진짜예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이서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지환은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이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단순히 의례적인 질문으로 하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담아 묻곤 했다. 지환은 한동안 말없이 이서를 바라보다가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짜야. 생각해 봐. 네가 너희 가족 이야기를 고이서와 나눈 거잖아. 고이서 입장에선 너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거야.” 이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 “고마워요.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어요.” 이서는 진심으로 말했고, 지환은 잠시 이서를 응시하다가 짧게 대답했다.“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 이서는 문을 열고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서 내렸다. ...이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차를 들고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꽃차를 검사한 뒤 말했다. “지난번과 성분이 똑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양이 더 많네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겠어요.” 의사는 몇 번 더 종이에 뭔가를 적더니 고개를 들었다.“3일이에요. 이 차를 마시면 3일 후에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서, 생각보다 더 조급했구나?’ 이서는 병실로 돌아가 꽃차를 우린 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고 팀장님이 주신 꽃차 덕분에 불면증이 해결됐어요. 요즘 정말 잘 자고 있답니다.]문구와 함께 사진을 올리자, 고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모든 걱정을 덜어냈다. 이제 남은 건 이서가 언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느냐였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고이서는 간절하게 속으로 외쳤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윤씨 그룹의 CEO 자리에 앉고 싶다고.’특히 이서가 회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목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이서의 질투심이 극에 달했다.
고이서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참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듣고 있었어요. 대표님의 부모님께서 그렇게 하신 건, 뭔가 사정이 있으셨던 거 아닐까요?” 이서는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짓을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어떤 부모가 자기 딸의 신장을 빼앗으려는 남자에게 딸을 내줄 수 있다는 거죠?” 고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서는 혼자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제가 두 사람의 친딸이 아니라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 걸지도 모르죠.” 고이서는 숨이 잠시 멎는 듯했고, 이마에서 흐르던 땀은 이미 목덜미까지 흘러내려 고이서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세상에 다양한 부모가 있듯이, 부모의 형태도 여러 가지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서는 이미 땀에 젖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고이서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운 뒤, 사과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안해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 괜히 말을 길게 했나 봐요. 이만 돌아가 보세요. 더 있다가 더위 먹으면 안 되잖아요?” 고이서는 마치 구원을 받은 듯 서둘러 고개를 숙인 후 떠났고, 이서는 그녀의 젖은 등 뒤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지환은 이서의 눈가에 깃든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웃고 싶으면 그냥 웃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그제야 이서는 참지 않고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이서가 지환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진심 어린 웃음을 짓는 순간이었다. 지환은 이서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이서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오랜만에 네가 그렇게 웃는 걸 보니까 기록해 두고 싶어서. 혹시라도 불편하면 바로 지울게.” 이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황급히 말했다. “잠시만요!” 사진 속 이서의 얼굴은 오랜만에 활짝 핀 미소로 가득했다. ‘그러게, 이렇게 웃
“그럼요, 지금 바로 갈게요.” 이서는 전화를 끊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바쁘면 나 혼자 택시 타고 가도 돼요.” 하지만 지환은 이미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난 괜찮아.” 이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십여 분쯤 지나, 두 사람은 고이서를 마주했다.이서에게 꽃차를 건네주던 고이서는 지환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물론 지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마주한 지환은 자료 속의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지환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품격이 있었다. 그 품격은 마치 높은 자리에 있는 왕처럼 다가왔고, 고이서는 알 수 없는 질투심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성지영과 윤재하는 분명 여러 번 말했었다. “윤이서 남편은 돈도 없는 놈이야.” 그런데도 고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하은철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안녕하세요.” 고이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지환에게 인사를 건넸고, 이서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윤 대표님, 꽃차가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고이서는 이곳에 더 머물렀다가 의심을 살까 싶어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럼, 별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고이서가 돌아서려는 순간, 이서가 그녀를 불렀다. “고 팀장님.” 고이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고 팀장님이라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고이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묘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아마 자신이 꺼림칙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었다. 이서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고 팀장님이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