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를 해고하라고요? 그럼 저는요? 제 사건이 모든 일의 도화선이 된 건데, 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마, 저를 물러나게 하시려는 건 아니죠?” 이 말이 나오자, 시장처럼 떠들썩하던 회사 로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사람들은 분분히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이서가 한 말이 그들의 마음속에 피어난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하은철이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건 윤 대표님 때문이잖아?’ ‘그리고 이번에 윤 대표님은 살인사건에 연루되기까지 하셨어.’사실, 윤씨 그룹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 고위층 임원들은 사석에서 의논한 바가 있었다.그것은 바로... 이서를 물러나게 한다면, 윤씨 그룹이 겪고 있는 위기를 완벽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래서 아까 그 사람도 나나를 해고하자고 한 것이었다. 한참이나 침묵하던 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었으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씨 그룹이 우리의 윤씨 그룹을 겨냥한 건 모두 대표님 때문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표님은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셨고요. 그래서 저는 차라리 대표님께서 은퇴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께서 물러나 주신다면, 하씨 그룹은 더 이상 윤씨 그룹을 겨냥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것만이 윤씨 그룹의 발전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하씨 그룹이 우리의 윤씨 그룹을 겨냥한 게 저 때문이고, 제가 물러나기만 하면 그들이 윤씨 그룹을 겨냥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흘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서가 화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 사람이 웅얼거리며 말했다.“그...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스스로 한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나 확신에 찬 어투로 말씀하신다고요?”“혹시, 하씨 그룹에게 포섭되신 거 아닙니까?” 그녀의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모든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야 이서의 뒤에 또 하나의 높고 우뚝 솟은 그림자
같은 시각.이서는 홍보팀이 있는 층에 도착하여 바삐 걸음을 옮겼다.홍보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급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최미영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최미영은 부하직원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인 줄 알고 격동되어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선 사람이 이서라는 것을 알아차린 그녀 곧바로 정신이 멍해지는 듯했다. “조사는 어떻게 됐어요?”이서는 최미영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녀의 눈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또 뭐가 문제인 겁니까?” 멍하니 있던 그녀는 잠시 후에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이번 사건에서 주로 힘을 쏟은 큰 언론매체는 분명 심씨 가문의 회사가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제3자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어떤 회사가 심씨 가문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아내지 못한다면, 대중들은 모든 일의 배후에 심씨 가문이 있다는 걸 쉽게 믿지 못할 텐데 말이죠...” 이서가 시간을 힐끗 바라보았다.‘곧 10시가 될 거야. 더 이상 이 일을 미룰 수는 없어!’ 늘 홍보팀에게 주어진 골든 타임은 72시간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최미영에게 마지막으로 12시간을 준 이유이기도 했다.‘정말... 방법이 없단 말이야?’‘장희령이 여러 수단을 동원해서 나와 나나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는 게 밝혀진다면, 그 여자의 명성은 처참히 망가질 수 있을 텐데...’ ‘그때가 되면, 연예계를 헤집고 다니는 장희령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이서는 희령이 자신을 겨냥하는 때를 이용하여 그녀를 호되게 짓밟을 수 있기를 바랐다. ‘정말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거야?’ 벽에 걸린 시계가 조금씩 10시를 향해 다가가자, 조급하던 이서의 마음이 한순간에 풀려버리는 듯했다. 몸을 일으킨 그녀가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던 찰나, 한 직원이 신이 나서 들어왔다. “알아냈습니다, 알아냈어요! 그 언론매체 중에 가장 큰 회사는 다른 회사에게 의지해서 심씨 가문의 지원을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즉, 자선단체가 개설한 뉴미디어 회사였다는
대중들은 한동안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본래 그 단편 소설 대회는 매년 소수의 참가자로 진행되는 것이었으나, 하이먼 스웨이의 합류로 인해 M국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다른 쪽에 있던 H국 사람들로서는 당연히 심가은이 경기에서 벌인 수작을 알 리가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가은이 우승을 거머쥐기 위하여 대가의 원고를 사들여 자신의 원고인 양 사칭하였고, 모든 수작이 드러나자 하이먼 스웨이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장의 CCTV에서는 가은이 험상궂은 얼굴로 이서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 생생히 찍혀 있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한을 느낄 지경이었다. ‘시상식 당일, 그곳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도 심가은은 윤이서를 죽이고 싶다는 표정을 전혀 감추지 않았어.’‘그런 사람이 사석에서 윤이서를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잖아? 아마 본인만 알 수 있는 끔찍한 일을 계획했을지도 모르지.’ 이 동영상이 세상 밖으로 나오자, 가장 분노한 사람들은 하이먼 스웨이의 팬이었다. 그들은 하이먼 스웨이가 친딸을 간절히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녀가 친딸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복을 보냈었다.하지만 찾았다던 그 딸이 가짜였을 뿐만 아니라, 꼬리가 백 개 달린 여우짓을 하며 하이먼 스웨이를 죽이려 했다니... 하이먼 스웨이의 팬들은 동영상 아래에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으나, 한 편으로는 궁금해하는 것이 있었다.[이 영상은 심가은의 악한 면을 보여준 것일 뿐이잖아요. 정말 윤이서가 심가은을 죽인 게 아닌 걸까요?][하지만 영상을 보면 윤이서는 심가은의 곁에 서 있잖아요. 만약 윤이서가 심가은을 죽인 거라면, 왜 CCTV에는 윤이서가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히지 않은 걸까요?] [꼭 그녀가 총을 들고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사격수를 고용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에이, 저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계정을 확인한 사람들은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계정이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본 사람들은 재빨리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사람들은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성명서였는데, 가은의 죽음과 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명확히 쓰인 것이었다.이서에게 매수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M국의 경찰국은 현장 조사 내용과 이외의 모든 조사 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사건이 두 나라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한 나라의 경찰국이 타국 플랫폼의 계정을 등록한 것이 자신들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니라, 타국의 네티즌들이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라니...이것을 본 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윤이서 씨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경찰국이 계정까지 만들어서 그녀의 진실을 밝혀주려고 한 걸까요?]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세요? 경찰국이 윤이서 씨가 무고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조사받는 과정을 모두 공개했다는 겁니다. 그건 보안 사항이잖아요!] [윤이서 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도대체 윤이서 씨의 배후에 어떤 후원자가 있는 건지 상상조차 되질 않아요!] [윤이서 씨의 후원자가 누구든 간에, 중요한 건 그녀가 그런 일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저는 뒤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이 정말 악독하다고 생각해요. 바다 건너의 경찰국조차도 참을 수 없어서 직접 그 사람을 겨냥할 정도였으니까요!] “...”네티즌들의 여론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은 희령이었는데, M국의 경찰국에서 올린 성명서를 본 그녀는 화가 나서 태블릿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매니저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참 후에야 희령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을 것을 본 그가 입을 열었다.“네티즌이 말한 것처럼... 윤이서의 배후에 정말 후원자가 있는 거 아닐까?” 희령은 또 한 번 분노가 치솟는 듯했다.“후원자는 무슨 후원자! 그 여자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잖아?’ 이서 또한 오리무중이었는데, 최미영의 손에 있는 태블릿을 보고서야 사건의 경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상언이나 배미희가 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글쎄요, 저도 M국의 경찰국이 직접 나서서 증언을 도와줄 줄은 몰랐어요.”이서가 최미영에게 태블릿을 건네주었다.“상대편은 틀림없이 반격을 해올 거예요. 잠시 대기했다가 CCTV 영상의 내용을 공개하도록 하세요.” “네.”최미영은 이서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추궁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서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서나나, 사람을 때리다!’라는 글자가 금세 실시간 검색어 1위의 자리에 올라간 것을 발견했다. 이치대로라면, 현재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이서여야 하지만, 나나가 가장 논란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나를 겨냥하는 걸로는 이득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목표를 변경한 게 분명해.’하지만 증거를 손에 쥔 최미영은 당황하지 않았고, 인터넷상의 여론변화를 살피며 가장 적합한 시기에 손을 쓸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인터넷상에서는 인위적인 방해로 인해 나나에 대한 토론 열기가 다시 일어났다. [어쨌든 윤이서 씨가 사람을 죽인 건 사실이 아니지만, 서나나가 사람을 폭행한 건 사실인 셈이네요? 그날 그렇게 많은 스태프가 나서서 서나나를 비난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닐 수는 없잖아요?] [맞아요, 게다가 제작진도 서나나가 사람을 폭행했다는 성명을 발표했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윤이서 씨도 더 이상 그 여자를 감싸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는 서나나 씨를 해고하는 게 너무 너그러운 조치라고 생각해요. 저렇게 안하무인인 사람은 출연을 정지시켜야 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서나나 팬의 다수는 초등학생이지 않습니까?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맞아요, 어제 제 아들이 서나나 씨는 잘못이 없다고 하더군요. 아주 화가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려는 행위는 자연히 네티즌들의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여태 윤이서 씨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는데, 숨겨졌던 이 영상을 보면... 윤이서 씨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던 거잖아요?] 그리하여 네티즌들은 분분히 장희령의 계정으로 달려가 설명을 요구했다. 최미영은 장희령이 자초한 행동에 웃음을 터뜨렸고, 계정이 정지당한 그 댓글을 캡처하여 즉각 실시간 검색어에 올려놓았다.‘아마 지금쯤이면 장희령도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을 거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그 네티즌은 댓글에서 장희령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불만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말라는 겁니까? 이런 짓을 벌이다니... 정말 어이가 없네요. 원래 쓰던 계정이 정지당한 이상, 장희령의 만행을 꼭 밝혀야겠습니다.] [저는 장희령이 소속된 제작팀의 스태프입니다. 밥그릇마저 없어질까 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말이에요. 장희령은 제가 본 연예인 중에 단연코 가장 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연예계 대선배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배우들을 10~20시간 동안 물에 넣어 놓곤 했으니까요.][저도 스태프 중의 한 명이에요. 저도 장희령 씨의 만행을 폭로하겠습니다! 장희령 씨는 늘 팀 내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어요. 촬영이라는 명분을 빌어 거리낌 없이 상대 배우를 때리고, 욕하고, 모욕하기 일쑤죠. 베테랑 배우라면 장희령 씨가 일부러 상대 배우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니까요.] [맞습니다, 제가 장희령을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부분 때문이죠. 노련한 예술가인 척하면서 예술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쏟는 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 배우를 바보 취급하는 겁니다. 본인의 남자 친구가 심씨 가문의 아들인 심동 씨라는 것만 믿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인 다루듯 하는 거란 말입니다!] [장희령 씨는 본인이 미래의 심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는 것만 믿고, 좋은 대본을 독차지하고 있어요. 심지어는 그 역할이 자신한테 적합한지,
같은 시각.장희령과 관련된 일을 알게 된 심씨 가문의 고위층 임원들이 심동의 사무실을 찾아왔다.그들은 장희령이 연예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든 말든,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장희령의 행동이 회사의 이미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심동이 문을 열고 나오자, 무거운 표정의 얼굴들이 보였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한 심동에게 한 명의 고위층 임원이 말했다.“심 사장님, 최근 대표님 내외분께서 잃어버린 따님을 찾기 위해서 회사 일을 전적으로 사장님께 맡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대표님 내외분께서 마음 편히 따님을 찾으러 다닐 수 있으시겠습니까.” 심동이 말했다.“무슨 일입니까?” 이 말을 들은 고위층 임원들은 장희령이 한 일을 심동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했다. 심동은 안색이 점점 나빠졌고, 그들이 모든 말을 마치고서야 입을 열었다.“알겠습니다, 제가 곧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는 사무실로 몸을 돌려 들어갔는데, 너무 화가 나서 외출하려던 이유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사무실에 들어선 심동은 즉시 장희령에게 전화를 걸었다.“희령아,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반드시 이 일을 잘 처리해서 심씨 그룹에게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심동이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우린 헤어질 거야!” 그는 확실히 장희령을 아주 좋아하지만, 장희령을 위해서 미래를 버릴 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곧 물러나실 거고, 이 회사는 조만간 내 손에 들어오게 될 거야. 혹시라도 희령이가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희령이를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 장희령은 방금까지 인터넷에서 만신창이가 되도록 욕을 먹은 탓에 심신이 불안정했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걸려 온 심동의 전화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었다.[어떻게 나한테 그럴 말을 할 수 있어? 내가 지금 가장
이 말을 들은 장희령은 즉시 음침한 눈동자로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온몸을 벌벌 떨던 매니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령아,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는 단지... 심동 씨가 너를 돕지 않겠다고 한다면, 하은철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떻겠냐는 말이었어.” “하은철은 지금 곳곳에서 윤이서를 겨냥하고 있잖아? 아마 하은철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을 거란 말이지. 그 사람은 틀림없이 너를 도우려 할 거야.” 장희령의 얼굴에 점차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래, 하은철은 윤이서와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분명히 나를 도우려 할 거야, 분명히!” 그녀의 눈동자에는 다시금 희망이 피어올랐다. 장희령이 화장대로 다가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여자가 아닌, 위풍당당한 장희령이 서 있었다. 장희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매니저는 끊임없는 한기가 명치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장희령에 대한 인터넷상의 악플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보던 이서가 홍보팀을 나와 1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여전히 지환이 있었는데, 다른 고위층 임원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상황이었다. 이서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다들 어디 가셨어요?” “어떤 분들은 본인의 직장으로 돌아가셨고, 또 다른 분들은 병원에 가셨어.” ‘병원?’이 두 글자를 들은 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지만, 계속해서 묻지는 않았다.“일은 잘 해결됐어요.” 이서가 사탕을 요구하는 어린아이처럼 지환을 바라보았다. 지환이 그녀의 코를 살며시 쥐며 말했다.“잘했어!”이서가 흡족해하며 말했다.“축하하는 의미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 건 어때요? 하나랑 소희 씨도 부를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지환이 입을 열었다.“그래.” 이서가 말했다.“그럼 저는 그 전에 일부터 해야겠어요.” “응.”이서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지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그는 방금 마이클 천에게서 온 메시지를 받았다. 어제 이서가 진행한 신체검사에
지환과 이서는 곧 하도훈을 마주했는데, 두 사람을 보는 하도훈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래, 너희가 이겼어!” 겨우 이 말을 내뱉는 하도훈은 이미 온 힘을 다 쓴 듯했다.“원래는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환은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지만, 하도훈은 지환의 말에 흥분하기 시작했다.“허.”“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고? 네가 윤이서와 급히 결혼하지만 않았더라면, 은철이가 이 세상을 떠날 일은 없었을 거야!” “모든 비극은 너희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도훈이 여전히 고집을 부리며 잘못을 깨닫지 않자, 이서는 더 이상 하도훈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후, 이서의 눈빛을 마주한 지환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형님이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하도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이런 상황에서 알려줄 게 있다니, 두 사람한테 아이라도 있다는 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형님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지환이 먹구름처럼 어두운 눈동자로 하도훈을 응시하자,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하도훈이 곧장 몸을 일으켜 지환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지환은 그저 묵묵하게 하도훈을 응시할 뿐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닙니다.” “뭐, 뭐라고?”하도훈이 벼락을 맞은 듯 제자리에 얼어붙자, 지환은 한 번 더 입을 열었다.“그 아이는,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하도훈은 급기야 고개를 저으며 ‘하하’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하하하,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하지환, 내가 그 말에 속을 줄 알고?! 하하, 나는 절대 그 말에 속지 않을 거야!” 지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도훈의 손을 뿌리쳤고, 광기 어린 하도훈을 차갑게 응시했다.“그 여자는 형님을 만나기 전부터 임신 중이었습니다.”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이서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하도훈은 정말 그 여자를 믿었던 걸까요?” 고개를 돌려 이서를 바라보는 지환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정말이란다. 내가 왜 이런 일로 널 속이겠니?!” “정말 잘 됐어! 스웨이 여사도 이제야 소원을 하나 이룬 셈이니까!”배미희가 말했다.이서는 병실 입구까지 걸어온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이 결과에 놀란 하이먼 스웨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서는 붉은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어떤 말을 꺼내기도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잠시 후, 이제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 말이 눈물 속에 있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배미희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이서야, 엄마라고 불러보렴.” 이서는 이전에도 하이먼 스웨이를 ‘엄마’라고 부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하이먼 스웨이가 친엄마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하이먼 스웨이가 자신을 다정하게 챙겨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엄마’라는 호칭은 아주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이서는 여러 번 시도한 후에야 온몸을 떨며 말했다.“엄, 엄마...”이서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터져 나오자, 하이먼 스웨이는 이서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가... 드디어 널 찾았구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앞으론 엄마가 널 지켜줄게.”“엄마... 엉엉...”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한 이서는 그동안의 모든 억울함을 다 토해내는 듯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묵묵히 눈물을 흘렸다.잠시 후, 병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지환을 본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놓아주며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어서 오렴.” 지환은 서서히 하이먼 스웨이에게 다가갔고, 하이먼 스웨이는 지환의 손을 이서의 손 위에 올려 두었다.“이서야, 하 서방은 누구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이야. 하 서방이야말로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지.” “하 서방한테 널 맡길 수 있다면... 엄마는 얼마든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그
이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환은 몸에 난 상처로 인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서가 고개를 숙여 지환과 입을 맞추며 짜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전에, 하나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우리가 올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네?” 이서는 하마터면 놀라 넘어질 뻔했는데, 눈치 빠른 소희가 이서를 붙잡았다.이서가 다소 원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하나를 바라보자, 하나는 깔깔거리며 가지고 온 건강식품을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이내 상언과 지환은 그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서는 하나와 소희를 데리고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 화해한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하나가 호기심과 가십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가 기뻐하며 이서의 어깨를 두드렸다.“잘 생각했어. 형부가 신분을 속이긴 했지만, 형부가 널 사랑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아마 하은철은 형부의 반도 못 따라올 거야!” “근데 대체 언제까지 형부랑 그 쓰레기를 비교할 생각이야?”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랑 비교해야 한단 말이야. 아니다, 형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과거를 내려놓고 지환 씨와 다시 잘 지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 말을 끝으로 한숨을 내쉬던 이서의 표정이 다소 엄숙해졌다.“그러는 너는? 너는 상언 오빠랑 어떻게 됐어?’그동안 이서는 하나와 상언의 일을 잘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우리는...”하나가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꽤 괜찮아.” “뭐가 괜찮은데?” 소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와 묻자, 하나가 다소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결정했어, 그 사람을 내 영원한 남자 친구로 만들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평생 이 선생님과 함께 할 생각이야. 물론 이 선생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겠지만 말이야.” “아, 이제야 알겠다!” 이서가 말했다.“네 마음속 상언 오빠의 지위가 상승하긴 했지만, 아직 남편이 될 자격
이서가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던 그 순간, 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바람이 크게 일었다. 사람들은 그 위력에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서는 어렴풋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콥터가 선회하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이서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병상 위에 누운 상태였고, 곁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있었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이서야, 좀 괜찮니?” “... 네.”이서는 간신히 대답한 후 긴장한 표정으로 배미희의 손을 잡았다.“엄마, 지환 씨는요?” “무사해.”배미희가 자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다른 병실에 있는데, 아직 의식을 찾진 못했단다.” “지환 씨한테 가보고 싶어요.” 이서가 눈물을 머금고 배미희를 바라보자, 배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언에게 이서를 옆 병실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지환을 본 순간, 이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괜찮을 거예요. 조금만 있으면 깨어날 수 있을 거고요.”그 순간, 병실 안에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서가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조금 떨어진 창가에 멋지게 걸터앉은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그 여자는 아래로 떨어질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했다.“당신은...” “그 사람이 누구든 신경 쓰지 마세요.”갑자기 나타난 어둠이 호리병이 이서를 가로막으며 보물을 자랑하듯 말했다.“윤이서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겁니다!” 이서는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는데, 어둠의 호리병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 콜록콜록, 두 사람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윤이서 씨와 하 대표님은 이미 염라대왕을 만났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동원한 것도 당신들이었나요?”“맞아요, 우리가 하도훈이 데려온 사람들을 모두 해치웠고, 하지호와 박예솔까지 해결
지환과 이서는 숨을 돌리기도 전에 더욱 맹렬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는데, 다크웹 고수들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곳마다 파멸로 이끌었으니 말이다.이서는 바깥 상황을 보면서 많은 걱정에 휩싸였다. “어둠의 호리병은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죠? 설마... 우리를 속인 건 아니겠죠?”지환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럴 리 없어. 그 바닥 사람들은 의리를 아주 중요시하거든.”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데려오겠다고 약속한 이상, 어둠의 호리병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차에 이서를 태웠다. “너는 우선 여길 떠나.”이서는 지환의 말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환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길 떠나라니요?” 지환이 말했다.“하지호는 이미 모든 수를 동원했어. 그 자식들이 여기로 올지도 모르니까 너는 지금 당장 여길 떠나야 해!” 하지만 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가정법원에 가서 새로운 정보를 등록하지도 않았잖아요!” “일이 끝나는 대로 처리하러 가야 한다고요!” 이서는 여전히 지환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는데, 이서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잖아요.” 지환이 거친 손가락으로 이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일이 끝나는 대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줄게.” 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모진 마음을 먹고 이서의 손을 밀어냈고,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차에서 뛰어내려 소리쳤다.“우리한테는 아직 아이도 없다고요!”지환이 걸음을 멈추었다.“지환 씨,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이서는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약 냄새로 가득한 공기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앞으로 남은 당신의 운명이 죽음뿐이라면,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거예요.”“하지만 당신이 살아갈 운명이라면,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되죠, 지환 씨?” 지환은
지환의 모습을 본 이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내 말은, 가정법원에 가서 다시 혼인 신고하자는 뜻이었어요.”“이전에 등록한 건 다 가짜 정보였잖아요. 내일은 진짜 정보를 등록하자고요.” 지환이 기뻐하며 말했다.“좋아, 그렇게 하자.” 이서는 지환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다시 치켜세웠지만, 잠시 후 웃음을 거두었다. “아, 하도훈 쪽을 깜빡했네요. 우리가 가정법원에 가는 틈을 타서 기습하면 어쩌죠?”지환은 이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간을 미루고 싶진 않아. 하지만...’“그럼 어둠의 호리병이 다크웹의 1위와 2위를 찾을 때까지만 기다려보자...”바로 그때, 지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안색이 변한 지환은 곧장 창가로 걸어가 아래층에서 총을 발포한 두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중 한 무리는 하도훈의 사람들임이 분명했다.“무슨 일이에요?”이서가 침대에서 일어나 물었다.“아무래도 하도훈이 이곳을 떠나는 어둠의 호리병을 지켜본 모양이야. 이 기회를 틈타 첫 번째 공격을 하려고 한 거지.”지환은 이서를 데리고 방구석으로 향했고, 서랍에 있던 총을 꺼내며 이서에게 말했다.“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줘. 내가 저 사람들을 쫓아내 볼게.” 이서가 지환은 손을 잡고 말했다.“하지만... 혼자는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내가 널 지켜줄 거야.”지환이 말했다.“이서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내일이 밝으면 우리는 가정법원에 가서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이서는 지환의 마지막 말을 듣고 천천히 손을 놓았다.“나는 지환 씨를 믿어요. 당신은... 꼭 돌아올 거예요.” 굳게 마음먹은 지환이 떠나자마자 집 밖에선 몇 차례의 총소리가 울렸고, 머리를 감싼 이서는 구석에 웅크린 채 지환만을 기다렸다.‘이럴 때는 나 자신을 잘 보호해서 지환 씨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해.’ 이내 아래층의 총소리가 잦아들었고, 이서는 살며시 귀를 기울이고 나서야 별장 전체가 고요한
“윤이서 씨가 하 대표님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그 사람들을 찾아줄 의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호리병의 말을 들은 이서와 지환은 모두 멍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둠의 호리병이 이렇게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특히 이서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작은 어색함이 피어올랐다. “왜 대답이 없어요?”어둠의 호리병이 재촉하며 말했다.“뭐, 대답을 안 해도 상관은 없어요. 나야 그 사람들을 찾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만약 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상대할 작정이라면, 나는 언제든 도망가면 돼요. 하지만 두 사람은 어떻게 할 생각이죠?” 이서의 시선이 지환에게 떨어졌다.“하도훈이 최선을 다해 우리를 상대할 거라는 게 사실이에요?” 지환이 이서의 눈을 응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응.” 이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들어 어둠의 호리병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사람들을 찾을 방법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도울 건 없고요?”“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래요, 그럼...”이서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우리를 위해 두 사람을 찾아주기만 한다면, 그 조건을 승낙할게요.” 옆에 있던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의 말에 흥분하며 말했다.“이서야, 하 서방이랑 이혼하지 않겠다는 거니?” “네.”이서가 짧게 대답했다.어둠의 호리병의 제안은 이서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어준 셈이었고, 이서는 그 구멍을 통해 위기를 모면할 생각이었다. “잘 생각했어! 정말 잘 생각했어!”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이서를 안고 말했다.“정말 좋은 일이구나. 이제 DNA 검사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어!” 지환도 이서를 꽉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차린 배미희는 하이먼 스웨이와 어둠의 호리병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나가볼까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자리를 떠났고, 이서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닫혔다.적막한 방 안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이 남았고, 이서는 지환을 바라볼 수 없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배미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어머, 벌써 잊은 거야?”“애초에 스웨이 여사가 심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 그 가짜랑 DNA 검사를 했을 때 이서 네가 그 여자랑 함께 있었잖아!” “그때 우리는 CCVT 자료를 찾진 못했지만,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불러 DNA 검사를 진행했단다.” 그 일은 아주 명확한 결과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까지 그 가게에 있던 사람 중에 누가 하이먼 스웨이의 딸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그때 그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조사했어. 단 한 사람을 빼고 말이야!” 배미희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이서의 몸에 떨어지자, 하이먼 스웨이도 그제야 배미희의 뜻을 이해한 듯했다.하이먼 스웨이는 흥분한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았지만, 함부로 과욕을 부릴 수는 없었다.“이서야...”이서도 감격에 겨워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다.“설마... 그럴 리가...”배미희가 말했다.“완전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조사받았는데, 너랑 스웨이 여사만 DNA를 대조하지 않았잖니? 아니다,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서 DNA 검사를 하는 건 어떨까, 응?” 배미희의 말에 하이먼 스웨이와 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이서도 하이먼 스웨이가 친부모이길 바란 적이 있었고, 하이먼 스웨이도 이서가 딸이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두 사람 모두 반신반의했다.“제 생각에도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DNA가 일치한다면 아주 기쁠 일이지만, 아니라고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요?” 지환이 입을 열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격려하는 듯한 지환의 눈빛을 마주했다.이서는 다시금 하이먼 스웨이를 바라보았는데, 하이먼 스웨이의 눈동자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저는 괜찮은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하이먼 스웨이가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고말고...”잠시 후, 연락
성지영이 곧장 입을 열려고 하자, 윤재하가 성지영을 제지하며 말했다.“절대 말하지 마. 저 X이 친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게 해주자고!” “당신은 윤이서가 정말 우리한테 가장 좋은 변호사를 고용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이 걸려들지 않는 것을 보고도 이서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으며, 되려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는 있는 모양이네요.” 성지영은 자신이 정말 속았다는 것에 분개하며 소리쳤다.“이 사기꾼아!” 하지만 성지영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기도 전에 윤재하와 성지영은 경찰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윤재하와 성지영이 경찰차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이서는 꼭꼭 숨겨두었던 나약함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평생 친부모님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몰라.’‘하지만... 나는 절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이서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지환과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난 후회하지 않을 거야.’‘친부모님을 찾을 순 없지만, 저 친구들이 내 곁에 남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살 거니까.’“이만 돌아가자.” 이서의 목소리에는 형용할 수 없는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이서는 또 한 차례의 격전을 이겨내기 위해 푹 쉬어야만 했지만, 이서가 윤씨 가문의 혈육이 아니라는 가십이 온 세상을 들썩이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서는 일부로 그 가십을 잠재우려 하지 않았고, 되려 상황이 더욱 악화되도록 방치했다.이내 그 소식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되었고, 많은 사람은 윤씨 가문이 하씨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토록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어머, 그럼 윤이서 씨는 아무 잘못도 없이 윤씨 가문의 도구가 된 거예요? 너무 불쌍하네요.] [윤씨 가문 사람들, 정말 파렴치해요! 자기 딸은 자기 딸이지만, 다른 사람은 딸은 다른 사람의 딸인 거잖아요.][윤이서 씨가 친부모님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이서 씨의 친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