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선생님, 방금 나누신 대화 다 들었어요. 밖이 그렇게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나가시겠다면 말리지는 않을게요. 대신 한 가지 부탁은 꼭 들어주세요.”“물론이지.”지환이 말했다.그의 말투는 예솔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 뚜렷한 차이라면 바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동정이 서린 눈빛으로 예솔을 한 번 보았다. 그들은 모두 지환의 주변 사람들이어서 지환을 향한 예솔을 사랑을 익히 알고 있던 참이었다. “우선 그 상처부터 치료하고 나가셨으면 좋겠어요.”이서가 지환을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팔에 흐르던 선혈은 이미 응고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서는 제때 처치하지 않으면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 것이었다.지환이 팔의 총상을 한 번 흘겨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래.”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앤서니에게 말했다.“하지호한테 내가 상처부터 처치해야 한다고 전해줘. 처치가 끝나는 대로 내가 직접 박예솔을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갈 거라고도 덧붙여 주고.”“네.”앤서니가 대답했다. 지환은 그가 떠난 후에야 이서가 있는 백스테이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치하려던 의사 역시 그를 따라 들어가려 했으나, 지환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밖에서 기다리시면 됩니다.”정신이 멍해진 의사는 감히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대 뒤에 있던 이서가 이 문제에 주목하며 물었다.“왜 의사 선생님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난 네가 상처를 처치해 줬으면 해.”지환이 이서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지호를 만나러 가려던 지환의 마음은 대단히 복잡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생사의 여부를 알 수 없었던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는... 이서와 사랑했던 날들을 되새기고 싶었다. 이 순간만큼은... 이기적이고 싶었다. 다시 그의 뜨거운 눈빛을 마주한 이서는 어쩔 줄 몰랐다. 그녀가 중얼거리며 말했다.“방금, 방금 보니까... 여기 안에 구급상자가 있긴 하더라고요. 안에 알코올 솜도 있고
이서가 숨을 쉴 수 없을 때쯤, 지환이 마침내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이서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마치 잘 익은 감이 가지에 매달린 것처럼 유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환이 엄지손가락으로 이서의 입술을 닦았다. 그의 눈빛은 꽁꽁 감긴 실처럼 그녀를 단단히 묶는 듯했다. ‘내가 이런 나날을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여기서 조용히 기다려줘.”몸을 일으킨 지환이 단호하게 몸을 돌렸다. 그는 이서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면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이서가 지환의 뒤를 쫓으며 말했다.“H선생님, 여기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대신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아셨죠?” 그녀는 ‘무사히’라는 세 글자를 유독 강조했다. 지환은 끝내 이서를 돌아볼 수 없었다. 문을 나선 지환의 눈빛이 금세 차가워졌다. “두 사람만 여기 남아서 이서의 안전을 지켜보도록 해. 나머지는 나랑 같이 나가자.”지환이 매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곧 매서운 비바람이 몰아치려는 듯하자, 조직원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숙연한 표정을 지었고, 예솔을 언급하는 지환의 눈에서도 지난날의 부드러운 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대회장의 입구에 도착하자, 계단 아래에 수많은 차가 주차된 것이 보였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이미 그곳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지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차 안에 있던 지호가 걸음을 내디뎠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한 사람과 낮은 곳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한 사람... 두 사람은 여전히 2, 3미터 떨어진 곳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발걸음을 멈추었다.지호가 고개를 살짝 들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우리... 오늘 정말 바삐 움직이는 것 같네?”그가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것은 방금 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상처였다. 지호는 지환의 팔을 감싸고 있는 거즈를 보고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 듯했다. 지환이 옆
“그래.”지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윤이서랑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내도록 해. 하지만... 지환아, 이건 분명히 하자. 이번이 꼭 마지막 조건이어야 해. 네가 나중에 또 다른 조건을 제시한다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은 나를 탓하지 말아야 할 거야!”마지막 문장을 말하던 그의 말투는 갑자기 음산하고 공포스러워졌다. 지환은 시종일관 그를 상대하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오직 단 한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서부터 상언이네 집으로 돌려보내는 거야.’ ‘지금 이 상황에서는 이씨 가문만이 가장 안전한 곳일 테니까.’ “앤서니!”“네!”“여기는 너한테 맡길게. 만약 누구라도 경거망동한 행동을 보인다면, 곧바로 때려죽여도 좋아.”지환은 이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대회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곧, 그는 무대 뒤에 도착했다.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은 이서는 소파 뒤로 몸을 숨겼는데,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지환이라는 것을 똑똑히 확인하고서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온 힘을 다한 포옹을 받은 지환은 가슴이 철렁했다.그가 손을 들어 이서의 머리카락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잠시 후,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H선생님, 배미희 여사님과 스웨이 작가님을 이미 아래층으로 모셨습니다.”바깥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지환이 천천히 이서를 놓아주었다. “이서야, 내 말 잘 들어.”“이제 우리는 안전해. 하지만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이 좀 있어서 두 분과 먼저 돌아가 있으면...” 이서가 지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말... 안전한 거예요?”“응.”지환이 아련한 표정으로 이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정말이야.” “그럼 저도 선생님이랑 같이 남을래요!”‘H선생님을 홀로 여기에 남겨둘 순 없어!’ “바보야.”지환이 이서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닐뿐더러, 네가 남아봤자 나한테는 도움이 안 돼. 두 분이랑 먼저 돌아가 있
예솔 역시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지 못하는 게 한스럽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서는 이 두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기에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의 곁을 빠르게 지나치고 싶었다.그러나, 이서가 지호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쯤 지호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윤이서 씨?”이서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꼼꼼히 훑어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아름답네요. 그래서 내 동생이...” “하지호!”“지환아,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야? 말 한 번 걸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지환이 지호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이서를 향해 말했다.“어서 가!” 이서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세 사람은 지환이 마련한 차에 몸을 실었고, 차는 이내 훌쩍 떠나버렸다. 이 장면을 보던 지환이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 부부는 원래 숲속에 사는 새와 같다잖아. 큰 어려움이 닥치면 각자 살길을 찾아서 날아간다지? 지금 윤이서 꼴이 딱 그러네. 지환아, 여태 저런 여자를 사랑했던 거야? 쯧쯧쯧, 정말 가치가 없는 짓을 했었구나?” 지환은 지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아랑곳하지 않으려 했으나, 유독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냉소를 터뜨렸다.“너도 사람의 감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었어?”순간, 지호의 안색이 약간 변하였으나, 그는 하고 싶은 많은 말을 끝내 삼키려는 듯했다. 잠시 침묵하던 지호가 말했다.“이제 예솔이를 풀어줘.”“아직은 안돼.”지환이 말했다. 지호는 화가 날 법도 했으나, 오히려 웃으며 입을 열었다.“봐, 내가 그랬잖아. 너는 조건 하나를 들어주면 둘을 원할 거라고. 네 조건을 승낙하고 윤이서를 놓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윤이서가 없으면 너는 미친개나 다름없잖아. 상대가 누구든 거칠게 물어 뜯어버리는 개말이야.”“아, 내가 윤이서한테 숨 쉴 틈을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앤서니가 머뭇거리며 지호를 보았다.“네.”그는 두 명의 부하와 함께 예솔을 데리고 지호에게 향했고, 지환이 신호를 보내는 순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거치게 그녀를 넘겨주었다. 손을 뻗은 지호가 예솔을 부축하면서 지환을 바라보았다.“지환아, 너희 부하들도 너처럼 가녀린 여자를 불쌍히 여길 줄 모르나 보구나.”지환의 싸늘한 눈빛이 지호의 온몸을 감쌌다. “이제 됐지?”지호가 예솔을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지환아, 우리 사이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거야.”“이번에는 내가 너한테 속았으니, 다음에는 네가 나한테 속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지호는 이 말을 끝으로 예솔을 데리고 떠났다. 차에 도착하자, 앞 좌석에 앉은 부하들이 지환이 있는 곳을 주시하며 말했다.“보스, 설마 이대로 하지환을 놓아줄 생각이세요?” 지호는 한창 예솔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앞 좌석에 앉은 부하와 예솔을 번갈아 흘겨보며 말했다. “아니면 어쩔 건데?”“보스, 하지환은 분명히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갈 겁니다. 반드시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을 노려야 한다고요!” 부하들은 말할수록 흥분하는 듯했다. “어둠의 세력 대부분의 조직원은 그 여자를 돌보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연히 여기에 남은 조직원은 많지 않겠죠. 그러니까 반드시 이 기회를 틈타 그를 없애버려야 합니다! 운이 좋으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을 거라고요!”“오.”지환이 예솔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예솔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예솔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호를 바라보았다. “아주... 좋다고 생각해.”눈썹을 살짝 치켜세운 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 예솔아, 네가 웬일이야?”예솔이 말했다.“내 마음은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렸어. 내가 여태 그런 짓을 벌였던 건 지환이가 본인과 윤이서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다고!”“하지만 그는... 내 호
아쉽게도 지환이야말로 세력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에 앤서니는 부하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분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량은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이서는 이씨 가문 저택의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온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서야, 너 오늘 대체 왜 그래? 요리는 요리사한테 맡기고, 우리랑 앉아서 푹 쉬는 게 어떻겠니?”고개를 젓는 이서는 마치 마수에 빠진 것 같았다.“아니에요, H선생님께서 오늘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직접 풍성한 저녁상을 준비해 드리고 싶어요.”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는 서로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이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아무래도 이서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을 것 같지?’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주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하이먼 스웨이는 거실에 도착해서야 작은 목소리로 배미희에게 말했다.“하 서방 쪽은 어떻게 됐을까요?” 배미희가 눈썹을 비틀었다. 대회장을 나서던 그녀는 예솔과 지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줄곧 불길한 예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녀는 예솔이 어떻게 지호와 엮이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씨 가문을 풍비박산으로 만들 뻔한 지호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아무 일도 없이 돌아올 거예요. 지환이는 정말 착한 아이니까 하늘이 도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배미희의 이 말은 하이먼 스웨이를 위로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하이먼 스웨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긴장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입구를 바라보며 지환을 기다렸다.같은 시각.지호는 앤서니의 예상대로 부하들을 시켜 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 길에 매복을 설치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거침없이 어둠의 세력 차량을 들이받기 시작했다.“보스!”앤서니는 여러 대의 차량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는 지환이 몸을 실은 차량의 운전석으로 뛰어올라 운전대를 빼앗았다.“이씨 가문의 저택으로 가는 길은 이미 막혔
앤서니의 질문을 들은 지환이 물었다.“이 길에만 매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앤서니는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하지호라면 M국의 다른 길의 사정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우리가 아무리 다른 길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들은 곧장 달려와 우리를 포위하고, 추격하고, 차단할 거란 말이지!’ ‘이왕 이렇게 된 거...’지환에 의해 처참히 찌그러진 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대의 차들을 본 앤서니는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설령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난 보스와 함께 죽을 거야. 이렇게 대단한 인물과 함께 죽을 수 있는 기회도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닐 테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앤서니가 액셀러레이터를 바닥까지 밟았고, 차량은 화살처럼 날아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지호의 부하들은 전력을 다해 그들을 밀어냈고, 유성처럼 지환을 추격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환의 사격술은 완벽할 만큼 정확한 것을. 그렇다. 지환의 사격술을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도 아주 정확했다. 곧 상대의 차들은 처참히 퍼지기 시작했고, 차 안에 있던 운전자들은 악을 쓰며 엑셀러레이터를 밟았지만, 끝내 초조하다는 듯 운전대에 주먹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백미러를 통해 뒤를 살피던 앤서니는 갈수록 적어지는 상대의 차량을 보고는 기뻐하며 모퉁이를 돌았다.바로 그때, 갑자기 튀어나온 차 한 대가 앤서니의 차량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그 차량은 다시 한번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왔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속도였다.앤서니는 자신의 차량보다 두 배나 큰 승합차를 보고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다 끝났구나.’ 비록 그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운전대를 돌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펑!펑!두 번의 큰 소리가 앤서니의 귓가에 울렸지만, 그가 예상했던 통증은 밀려오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았던 앤서니가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의 거대한 차량을
이씨 가문의 저택.이서가 줄곧 식탁 위의 음식을 쳐다보며 전혀 숟갈을 뜨지 않는 것을 본 배미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이서야, 너는 오늘 하루 종일 밥을 먹지도 않았잖아. 그냥 먼저 먹고 있는 건 어떨까? 너의 몸이 견딜 수 없을까 봐 걱정돼서 그래.” 이서가 고개를 저었다.“엄마, 지금은 입맛이 없어요. H선생님이 무사히 돌아오는 걸 봐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배미희가 또 몇 마디 권하려던 찰나, 하이먼 스웨이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래,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마.” 이 말을 마친 하이먼 스웨이와 배미희가 그릇 옆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서가 바삐 입을 열었다.“스웨이 작가님, 그리고 엄마, 저는 아직 젊어서 밥을 몇 끼 굶는 것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두 분은...” “우리도 입맛이 없으니 너랑 같이 기다리는 게 낫겠구나.”배미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흥분한 집사가 뛰어 들어왔다. “사모님, 하... 아니, H선생님! H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서는 손에 든 젓가락을 내려놓고 즉시 밖을 향해 뛰쳐나갔는데, 몇 번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입구에 도착한 이서는 완전히 망가진 차에서 내리는 지환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미의 품을 찾은 아기 새처럼 곧장 지환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드디어 오셨네요, 약속을 지키러 오셨다고요!”지환의 품에 안긴 이서가 끊임없이 이 문장을 중얼거렸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터프한 성격의 앤서니도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듯했다.뒤이어 나온 배미희와 하이먼 스웨이도 지환이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먼 스웨이가 말했다.“이서야, 얼른 H선생님께 식사를 대접하려무나. 우리는 몰라도 H선생님은 엄청 출출하시지 않겠어?” 이서는 그제야 자신이 추태를 부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고개를 들어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누구라도 이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