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먼의 장원은 이씨 가문의 고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으나, 고풍스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장원의 집사가 상언을 거실로 안내했다. “이 선생님, 셔먼 장관님은 서재에서 급한 업무를 보시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 말을 마친 집사는 상언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하지도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셔먼은 족히 10여분이 지나서야 2층에서 내려왔는데, 상언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선생, 어쩐 일로 나를 다 찾아온 겁니까?”셔먼은 큰 키와 훤칠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비록 그의 얼굴에는 세월이 남긴 흔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젊은 시절의 풍모를 뽐내고 있었다. 상언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제 실험실을 폐쇄하셨다고 들었습니다.”셔먼은 전혀 얼굴을 붉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이 선생의 실험실이 폐쇄되었다고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상언이 한 번 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죠.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 말을 들은 셔먼은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이 선생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리죠.”“그래요, 이 선생의 실험실을 폐쇄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하지만 모든 건 이 선생을 위해서였죠.” 상언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셔먼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최근 대통령님의 마음에 드는 땅이 하나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 땅의 주인인 몬토 씨는 꽤 고집스러운 사람이라 누가 설득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런데 이 선생이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적이 있다면서요? 이 선생이라면 그 사람을 설득해서 그 땅을 대통령님께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몬토 씨는 이 선생을 아주 존경하고 있을 테니까요.”“만약 이 선생이 이 일을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대통령님은 크게 감동하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선생에게도 좋은 일이지 않겠습니까?”상언이 냉소를 터뜨렸다.“확실히
상언의 태도를 본 셔먼은 자신도 더 이상 빙빙 돌려서 말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그래요, 실험을 재개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몬토 씨를 설득하고 우리 딸과 결혼하기만 하면 되니까요.”셔먼이 웃으며 분위기를 완화시켰다.“이 선생, 이 선생이 이 두 가지 조건에 동의하기만 한다면, 나는 곧바로 이 선생의 실험실을 재개할 수 있어요.”상언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이 말을 마친 상언을 곧바로 고개를 돌려 떠났다.방에서 상언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던 케이티가 재빨리 2층에서 뛰어 내려왔다.“아빠...”아직 분노가 가시지 않은 셔먼이 케이티를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이 선생은 오래 버티지 못할 거야. 실험실이 빨리 재개되지 않으면, 여태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될 테니까.” 하지만 케이티는 안심할 수 없었다.“하지만... 이 선생님은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림없지, 실험을 재개하려면 그 두 가지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게다. 이건 대통령님이 어떤 땅을 지목했든 마찬가지였을 거야.”“대통령님도 실험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실 테니까...”셔먼이 말했다. “만약 주의를 기울이신다면요?”‘이 선생님의 가장 친한 친구는 하지환 대표님이셔. 만약 하 대표님이 이 일을 대통령님께 알린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우리를 돕는 세력이 있으니 걱정할 거 없다. 아무 일도 없을 게야.”케이티를 위로한 셔먼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리면서 단정하게 앉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셔먼의 태도는 더욱 공손해졌다.“하 사장님, 말씀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수화기 너머의 지호가 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오, 그 제안을 받아들이던가요?]고개를 숙인 셔먼이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아직이요... 하지만 10년간 진행한 중요한 실험을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실험을 재개하기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네가 시키는 일을 내가 어떻게 감히 거절할 수 있겠어?”콧방귀를 뀐 박예솔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자리를 떠나자, 지호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침 들어온 비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사장님, 예솔 아가씨께는... 왜 그런 관용을 베푸시는 겁니까?”‘만약 다른 사람이 노크도 없이 하 사장님의 사무실을 드나들었다면, 이미 사지가 찢겼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예솔 아가씨는 아무리 하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려도 무사할 수 있는 거지?’지호가 목소리를 높였다.“쓸데없는 소리 좀 집어치워!”비서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이야기를...” 비서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지호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에는 분노가 아닌 어떠한 추억이 서려 있는 듯했다. ‘휴, 다행이다.’ 그렇다. 지호는 확실히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는 예솔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아직 하씨 가문에 거주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를 도련님으로 모시며 아첨하기 바빴는데, 유독 예솔만이 그를 경멸하듯 바라보며 말했었다.“그쪽은 하씨 가문에서 기르는 사냥개일 뿐이에요.”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지호는 밀려오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호는 이 말을 듣고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웃음이 났다. 예솔이야말로 그에게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지호는 지환의 형이었기 때문에 하씨 가문 고용인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지호가 하씨 가문이 기르는 사냥개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총명했던 지호는 그들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매우 슬프게 한 것이었다.그래서 지호는 최근 몇 년 동안 자신이 지환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모든 신경 쏟았다.애석하게도 줄곧 기회가 없었지만 말이다.그러던 어느 날, 지호는 이서의 등장과 함께 지환의
[저기... 오늘은 출근할 필요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혼자 호텔에 있으면 정말 심심할 것 같은데... 혹시 시간 있으세요?]상언이 말했다.“그럼요. 하나 씨가 어디를 가든 함께 있어 줄게요.”곰곰이 생각하던 하나가 입을 열었다.[그럼 저랑 같이 쇼핑하러 가실래요? 여기에 온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 이곳의 거리를 마음 편히 구경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요.]“좋아요,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곧 데리러 갈게요.”상언이 말했다. 전화를 끊은 상언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그는 재빨리 하나가 있는 호텔로 차를 몰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나 씨, 곧 도착할 거예요. 지금 내려오면 될 것 같아요.”상언의 말에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온 하나는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상언의 차를 볼 수 있었다.상언이 조수석의 문을 열며 하나를 태우려 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제가 말한 쇼핑은 걸으면서 거리를 구경하는 거였어요.” 눈썹을 찌푸린 상언의 시선이 곧 하나의 발에 떨어졌는데, 그녀가 신은 것은 구두가 아닌 운동화였다.조금 놀란 그가 하나에게 물었다.“왜 갑자기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이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거든요.”하나가 주차장을 가리켰다.“주차하고 오세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럴 필요 없어요.”상언이 차 열쇠를 호텔 종업원에게 건네주었다.“이제 가요.”두 사람은 나란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상언은 오랫동안 M국에서 생활했으며, 이 일대는 지환이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었기에 딱 두 마디만 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었다.“이 일대는 전부 지환이의 영역이에요.”하나는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다.“이전에 형부가 세계 최고의 재벌이라고 했을 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이 세상에 하씨 가문보다 더 대단한 가문이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거죠.” “하나 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에요. 지환이는 혼자만의 힘으로 불과 몇
하나의 입술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럼... 저를 포기하시는 게...”여기까지 말한 하나가 고개를 들고 약간의 웃음을 띠었다.“이 선생님, 제가 이 선생님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벌써 잊으신 거예요?”그녀의 미소를 본 상언의 눈빛이 약간 흐려졌다. “하나 씨, 솔직히 말해봐요, 진심이에요?”하나는 마음속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네, 진심이에요, 저는 정말 이 선생님과 미래를 함께 할 수 없으니까요. 혹여라도 제가 이 선생님의 안전에 영향을 끼칠 상황이 된다면, 주저 없이 저는 포기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아시겠죠?” 상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나 씨의 눈빛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상언의 기세등등한 눈빛을 피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럼 왜 내 눈을 못 쳐다보는 거예요?”상언의 핍박을 받던 하나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밀어내야만 했다.“너무 피곤하네요. 인제 그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그녀는 이 말을 끝으로 온 길은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고집스러운 뒷모습을 보던 상언은 몇 초간 망설였지만, 결국 그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택했다. 이를 알아차린 하나의 발걸음은 갈수록 빨라졌는데, 나중에는 뒤에서 밀려오는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언은 그림자처럼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하나는 코끝이 찡해지는 듯했으며, 곧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호텔 입구에 거의 도착한 그녀는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고,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에야 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선생님, 더는 저를 따라오지 마세요.” “싫어요, 방 앞까지 데려다줄게요.”상언의 말투는 평소답지 않게 아주 단호했다. “하나 씨는 내 행동이 의미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입술을 움찔거리던 하나가 옅은 미소를 띠며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이 선생님은 지금 하는 모든 일
지환이 눈꺼풀을 치켜뜨며 상언을 흘겨보자, 그는 방금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 맞아.”“너더러 몬토 씨가 땅을 팔도록 설득하래?”“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상언은 지환이 항상 눈치가 빠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 내용까지 알고 있을 줄은 상상치도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셔먼 장관의 자택에 도청기라도 설치한 거야?’ “그 땅, 하지호가 원하는 거야.”‘그래서 지환이가 오늘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거구나.’“잠깐만, 분명 셔먼 장관은 대통령님이 그 땅을 원하시는 거라고...”말을 뚝 그친 그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대통령님이 그 땅을 원하시는 게 아니라, 날 이용해서 그 땅을 얻으려 한다는 거야?”“그런데 몬토 씨는 친한 사람이 아주 많잖아. 왜 하필 나야?” 지환이 또 상언을 흘겨보았다.“잊지 마, 너는 내 편이잖아.” 상언은 문득 크게 깨달았다.“날 이용해서 그 땅을 구매한 후,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속셈이구나...!”“그래, 하지호가 가장 잘하는 게 이간질이잖아. 그리고 그 사람은 네가 단지 이용당한 거라 할지라도, 우리 두 사람의 사이가 지금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거라고!” “이간질이라니... 꿈도 크네!”상언이 분노하며 말했다.“나는 절대 몬토 씨를 설득하지 않을 거야.” 상언은 본래 셔먼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배후와 속셈을 알게 된 이상 더욱 들어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아니,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몬토 씨를 설득시켜.”지환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상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환아, 너 미쳤어? 그 땅을 원하는 사람이 하지호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나한테 그런 요구를 하는 건데?”“네가 셔먼 장관의 요구에 응해야만 내가 하지호의 목을 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안 돼.”상언이 난색을 보였다.“지환아, 나는 못해.”‘셔먼 장
책상 위에는 지환이 이서를 위해 직접 번역한 소설이 놓여 있었다.바람이 불자, 그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서는 그 무엇으로도 종이를 누르려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 종이가 펄럭거리는 소리를 좋아했다.‘저 소리를 들으면 H선생님이 여전히 내 곁에 있는 것 같아.’ 그녀가 고개를 돌려 종이를 한 번 보았다. 종이에 쓰인 지환의 글씨체는 아주 힘차고 우수했으며, 아름다웠다. 마치 탁본 된 서예 글씨처럼.이서는 그 글자를 보고 있자 하니, 책상에 엎드린 H선생님이 그녀를 대신하여 한글 자 한 글자 번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듯했다. 그녀의 텅 빈 마음은 또 가득 채워졌다. 공허함과 흡족함을 동시에 느끼던 이서가 잠을 이루지 못하던 바로 그때,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하나였다. 이서가 자기도 모르게 시간을 확인했다. ‘3시 7분?’‘왜 지금...’이상함을 느낀 이서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이서야, 얼른 기사 좀 봐.]이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왜?”[우선 기사부터 봐봐.] 이서는 핸드폰의 뉴스 앱을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무슨 기사?”이서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이름인 인터넷 첫 페이지에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외국어로 쓰여진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1초 후에야 반응할 수 있었다. 이서가 얼른 기사를 클릭했다.‘나에 관한 기사라는 거야?’그 기사는 이서의 실력에 대한 칭찬을 연발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하이먼 스웨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인재이며, 하이먼 스웨이조차도 그녀의 작품을 보고 탄복을 금치 못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서는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기사를 읽어 보았다. 그 기사에는 이서가 H국 출신이라는 것과 여태껏 문학 산업에 종사한 적이 없다는 것, 조만간 열릴 단편 대회의 인기 참가자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이라면 두려울 게 전혀 없을 거야.’ 이서는 의심스러웠다.‘나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출
이튿날 이른 아침.이서는 깨어나 이 일을 상언에게 알려 주었다. 보도를 확인한 상언은 이서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지환에게 전화로 이 일을 알렸는데, 지환은 이 보도들이 모두 한 매체인 CC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CC는 지호의 회사 산하의 한 매체였는데, 다시 말하자면 이 보도는 모두 지호가 고의로 작성한 것이었다. “하지호,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지환이를 상대하려는 건 개인적인 원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서까지 끌어들이려는 건 정말 정신 나간 짓이라고!’지환이 말했다.[하지호를 잘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래?]상언은 순간 침묵했다. [어제 내가 생각해 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지환이 물었다.“나... 나는 못 해.” 상언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 상언이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맙다, 지환아.” 잠시 침묵을 지키던 상언이 화를 내며 물었다.“그나저나... 이서 일은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대로 방치할 생각이야, 아니면...” [일단 상황을 좀 지켜봐야겠어.] 지환이 손에 든 펜을 돌리며 말했다.[아마 하지호만이 이서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분명 겉보기에는 하지호가 벌인 짓이 맞아. 하지만 내가 아는 하지호는 이런 짓을 꾸밀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이서를 노리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거야?”한껏 눈살을 찌푸리던 상언은 문득 또 다른 일이 떠오른 듯했다. “맞다, 이전에 어떤 변태남이 이서를 습격했었잖아. 그 배후가 누구인지는 알아냈어?” [CCTV 복구가 늦어지고 있어. 조사 담당자 말로는 메모리가 손상되었다던데... 아무래도 그 사건의 배후에도 하지호가 연관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상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듯했다.“그러니까... 한참 전부터 이서를 노리고 있었다는 거네?” [응, 그랬던 것 같아.]상언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상언이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