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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1화

작가: 시해나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네가 시키는 일을 내가 어떻게 감히 거절할 수 있겠어?”

콧방귀를 뀐 박예솔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자리를 떠나자, 지호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침 들어온 비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사장님, 예솔 아가씨께는... 왜 그런 관용을 베푸시는 겁니까?”

‘만약 다른 사람이 노크도 없이 하 사장님의 사무실을 드나들었다면, 이미 사지가 찢겼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예솔 아가씨는 아무리 하 사장님의 심기를 건드려도 무사할 수 있는 거지?’

지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쓸데없는 소리 좀 집어치워!”

비서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이야기를...”

비서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지호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에는 분노가 아닌 어떠한 추억이 서려 있는 듯했다.

‘휴, 다행이다.’

그렇다. 지호는 확실히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는 예솔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는데, 당시 그는 아직 하씨 가문에 거주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를 도련님으로 모시며 아첨하기 바빴는데, 유독 예솔만이 그를 경멸하듯 바라보며 말했었다.

“그쪽은 하씨 가문에서 기르는 사냥개일 뿐이에요.”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지호는 밀려오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호는 이 말을 듣고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웃음이 났다.

예솔이야말로 그에게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지호는 지환의 형이었기 때문에 하씨 가문 고용인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지호가 하씨 가문이 기르는 사냥개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총명했던 지호는 그들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비위를 맞추기는커녕, 매우 슬프게 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호는 최근 몇 년 동안 자신이 지환보다 더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모든 신경 쏟았다.

애석하게도 줄곧 기회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호는 이서의 등장과 함께 지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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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반대의 목소리뿐이었지만, 이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불만 있으면 사직서 쓰세요.” 이 한마디에, 회사 고위층들은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서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고이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오늘부터 고 팀장님이 아닌 고 대표님이 된 거예요.”‘고 대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고이서는 애써 입꼬리를 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새어 나오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너무나 큰 기쁨에, 아무리 억제하려 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졌으니 말이다.“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이서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고, 고이서는 문이 닫힌 후에도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5분이 지나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이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이서의 책상으로 다가가 나뭇결을 쓰다듬었다. ‘이제 이 모든 건 다 내 거야...!’ 고이서는 마치 꿈속을 걷는 사람처럼 대형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 순간, 마치 가죽 의자가 아니라 구름 위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자리만 차지하면... 다시 예전처럼 호화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거야. 원하는 대로 화려한 드레스를 사고, 반짝이는 보석도 망설임 없이 살 수 있고... 돈 걱정 따위는 안 해도 되겠지! 아, 내가 좋아하는 남자도 내 마음대로 만날 수 있을 거야.’ 고이서의 마음이 격렬히 요동치던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고이서는 마치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고, 몇 초가 지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김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팀장님, 회의 시간이 다 됐습니다.” ‘고 팀장’이라는 호칭에 고이서는 속으로 불쾌감을 느꼈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김하늘’이라는 이름을 새겨 두었다.‘며칠만 지나면 내가 정식으로 대표가 될 텐데, 그때 가장 먼저 잘라버릴 사람은 바로 네가 될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김하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32화

    고이서는 이서가 진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문득 성지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윤이서는 사실 아주 멍청한 사람이야.”“정말 똑똑한 사람이었으면, 하은철처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을 두고, 굳이 가난한 남자를 택했겠니?” 고이서는 예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윤이서가 정말 그렇게 멍청하다면, 누구도 살리지 못했던 회사를 그렇게 짧은 시간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H 국의 4대 가문 중 하나로 만들진 못했을 거야.’‘그것도 혼자만의 힘으로.’‘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윤이서는 정말 멍청한 것 같아.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다니까?’‘이 회사의 대표가 된 것도 전부 운 덕분이었던 것 같아.’ “고 팀장님?”이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고이서는 정신을 차렸다. “네, 대표님.” 이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큰 일이에요. 오늘은 제가 한 말을 잊어버린 정도로 끝났지만, 앞으로는 계약서 서명 같은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고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잠시 쉬어야 할 것 같긴 한데...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일은 누구한테 맡겨야 할까요?”이서는 갑자기 고이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래요, 고 팀장님! 고 팀장님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고이서는 당황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 팀장님이 꼭 저를 도와줘야 해요. 고 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 회사에는 저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고이서는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감히...”“별거 아니에요. 제가 쉬는 동안 회사 운영만 도맡아주면 돼요. 저는 회복하는 대로 다시 돌아올게요.” 고이서는 겉으로는 고개를 저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이렇게 큰 회사를 저한테 맡기셨다가 큰 문제라고 생기면 어떡하시려고요.”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고이서는 속으로 이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드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31화

    하지만 한 회사의 대표는 곧 하늘과도 같았다. “아직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서가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듯한 김하늘의 표정을 보며 물었다. “그 사무실에도 CCTV가 있을 거 아니에요. 당장 영상 자료를 가져와 보라고요!” 김하늘은 당황하며 말했다. “대표님,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굳이 대표님께서 무안해지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아.’ 이 정도의 생각은 김하늘도 하고 있었으나, 이서는 아주 단호했다.“됐고, 당장 가져오세요.” 김하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서는 의아해졌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비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그럼 설마...’ ‘그 꽃차가 효과를 나타낸 건가?’이 가능성이 떠오르자 고이서는 속으로 흥분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말했다. “대표님께서 CCTV를 보자고 하신다면 봐야죠. 만약 저희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면, 대표님께서도 정확하게 설명해 주실 겁니다. 그렇죠, 대표님?”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건 작은 일이 아니니까요.” “만약 김 비서가 잘못 전한 거라면 엄하게 처벌하고, 정말 내가 말해놓고 잊어버린 게 맞다면, 그땐 분명히 사과할게요.” 이쯤 되니 김하늘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었다. 김하늘은 결국 CCTV 영상을 가져왔고, 영상 속에는 이서가 몇 번이나 김하늘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고 팀장님을 불러주세요.”심지어 몇 분 간격으로 반복해서 지시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서는 그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진짜... 내가 한 말이 맞다고...? 그런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김 비서, 미안해요. 정말 기억이 안 나서 그랬어요.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너무 미안해서 가방을 하나 선물로 주고 싶은데, 오늘 퇴근하기 전에 나한테 와서 받아 가요, 알겠죠?”김하늘은 이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애매하고 거절하기도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30화

    “진짜예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이서의 이 말을 듣는 순간, 지환은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이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단순히 의례적인 질문으로 하지 않고, 정말 진심을 담아 묻곤 했다. 지환은 한동안 말없이 이서를 바라보다가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짜야. 생각해 봐. 네가 너희 가족 이야기를 고이서와 나눈 거잖아. 고이서 입장에선 너와 더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거야.” 이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 흘렀다. “고마워요. 오늘 하루 정말 즐거웠어요.” 이서는 진심으로 말했고, 지환은 잠시 이서를 응시하다가 짧게 대답했다.“응.” “그럼 나 먼저 들어갈게요.” 이서는 문을 열고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서 내렸다. ...이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차를 들고 의사를 찾아갔고, 의사는 꽃차를 검사한 뒤 말했다. “지난번과 성분이 똑같아요. 하지만 이번에는 양이 더 많네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겠어요.” 의사는 몇 번 더 종이에 뭔가를 적더니 고개를 들었다.“3일이에요. 이 차를 마시면 3일 후에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할 거예요.”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이서, 생각보다 더 조급했구나?’ 이서는 병실로 돌아가 꽃차를 우린 후,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렸다. [고 팀장님이 주신 꽃차 덕분에 불면증이 해결됐어요. 요즘 정말 잘 자고 있답니다.]문구와 함께 사진을 올리자, 고이서는 핸드폰을 보며 모든 걱정을 덜어냈다. 이제 남은 건 이서가 언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느냐였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고이서는 간절하게 속으로 외쳤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윤씨 그룹의 CEO 자리에 앉고 싶다고.’특히 이서가 회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주목받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이서의 질투심이 극에 달했다.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29화

    고이서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참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듣고 있었어요. 대표님의 부모님께서 그렇게 하신 건, 뭔가 사정이 있으셨던 거 아닐까요?” 이서는 즉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짓을 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어떤 부모가 자기 딸의 신장을 빼앗으려는 남자에게 딸을 내줄 수 있다는 거죠?” 고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서는 혼자서 말을 이었다. “어쩌면 제가 두 사람의 친딸이 아니라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 걸지도 모르죠.” 고이서는 숨이 잠시 멎는 듯했고, 이마에서 흐르던 땀은 이미 목덜미까지 흘러내려 고이서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세상에 다양한 부모가 있듯이, 부모의 형태도 여러 가지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서는 이미 땀에 젖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고이서를 보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운 뒤, 사과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미안해요. 이렇게 더운 날씨에 괜히 말을 길게 했나 봐요. 이만 돌아가 보세요. 더 있다가 더위 먹으면 안 되잖아요?” 고이서는 마치 구원을 받은 듯 서둘러 고개를 숙인 후 떠났고, 이서는 그녀의 젖은 등 뒤를 바라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지환은 이서의 눈가에 깃든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웃고 싶으면 그냥 웃어.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 그제야 이서는 참지 않고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이서가 지환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 처음으로 진심 어린 웃음을 짓는 순간이었다. 지환은 이서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사진을 찍었다. 이서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오랜만에 네가 그렇게 웃는 걸 보니까 기록해 두고 싶어서. 혹시라도 불편하면 바로 지울게.” 이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황급히 말했다. “잠시만요!” 사진 속 이서의 얼굴은 오랜만에 활짝 핀 미소로 가득했다. ‘그러게, 이렇게 웃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28화

    “그럼요, 지금 바로 갈게요.” 이서는 전화를 끊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바쁘면 나 혼자 택시 타고 가도 돼요.” 하지만 지환은 이미 핸들을 돌리고 있었다. “난 괜찮아.” 이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십여 분쯤 지나, 두 사람은 고이서를 마주했다.이서에게 꽃차를 건네주던 고이서는 지환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물론 지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마주한 지환은 자료 속의 남자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지환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품격이 있었다. 그 품격은 마치 높은 자리에 있는 왕처럼 다가왔고, 고이서는 알 수 없는 질투심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성지영과 윤재하는 분명 여러 번 말했었다. “윤이서 남편은 돈도 없는 놈이야.” 그런데도 고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야. 하은철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안녕하세요.” 고이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지환에게 인사를 건넸고, 이서의 차가운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윤 대표님, 꽃차가 더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이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고이서는 이곳에 더 머물렀다가 의심을 살까 싶어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럼, 별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고이서가 돌아서려는 순간, 이서가 그녀를 불렀다. “고 팀장님.” 고이서는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네, 대표님. 무슨 일이세요?”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고 팀장님이라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고이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이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묘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아마 자신이 꺼림칙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었다. 이서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고 팀장님이 준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27화

    하지만 그 누구도 사다리를 건네주지 않아서, 이서는 계속 지붕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슬아슬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며 떨고 있을 뿐이었다.이 순간 누군가 사다리를 건네준다면, 이서는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서는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30분이나 지났네.’ 이서가 발을 닦고 나서 계단으로 나가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지환은 거실에서 서류를 펼쳐놓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하지환 씨가 사다리를 건네준다면... 나는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하지환 씨를 용서하게 될까?’ 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이서는 마음이 복잡해져서 서둘러 시선을 돌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일하는 중이에요?” 이서가 묻자 지환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응.” 이서는 지환과 한 발짝 떨어진 소파에 앉았고, 두 사람은 말없이 함께 앉아 있었다. 어색함도 없었고, 굳이 대화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었다. 이런 평온한 순간은 회사에 있을 때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이서는 문득 표정을 풀고,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이서는 성지영의 딸이야. 이번에 돌아온 것도 분명 윤씨 그룹을 노리고 돌아온 거겠지.” 지환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죠.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윤씨 그룹에 입사해서 나한테 약을 먹일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요. 고작 그런 방식으로 날 바보로 만들려고 하다니, 어이가 없어요.” 고이서 했던 짓을 떠올리자 이서는 코웃음을 쳤다. 이서의 예상이 맞다면, 고이서가 처음부터 자신이 윤재하의 친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그것만으로는 효과가 없을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윤씨 그룹은 과거의 윤씨 그룹이 아니었다. 윤씨 그룹이 MH 그룹과 통합한 후, 이서는 쓸모없는 윤씨 일가들을 모두 몰아내고 필요한 사람들만 남겼다. 설령 윤재하가 자신이 윤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며 이서의 자격을 문제

  • 억만장자 남편과의 달콤한 신혼일기   제1326화

    지환은 몸을 숙여 이서 뒤에 있던 이불을 집어 들고 이서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서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상황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방금 하지환 씨는 나한테 뭘 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이불을 덮어주려던 거였어?’ 이서는 닫힌 방문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고, 생각은 어느새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환 씨가... 나한테 정말 중요한 사람일까?’ 이서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마음속에서는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지환은 이미 아래층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서는 지환이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예전에도 지환은 자주 이렇게 아침을 준비하곤 했다. 물론 처음에는 요리 실력이 썩 좋지 않았고, 아주 서툴렀다. 하지만 그때의 이서는 눈치가 없어서 지환이 원래 요리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지환이 이서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준비했다는 사실은 참 감동적인 것이었다.지환은 두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밥 짓고, 반찬을 만들고, 살림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하지환 씨가... 나한테 정말 중요한 사람일까?’ 밤새 이서의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이 또다시 떠올랐지만, 이번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부엌에서 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이 다 됐어.” 이서는 자연스럽게 지환의 옆으로 다가가 아침 식사를 식탁으로 옮겼고, 자리에 앉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꼭 오래된 부부 같은 모습이네.’ “왜 그래?” 이서의 시선을 느낀 지환이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고, 이서는 하트 모양으로 구운 계란을 한 입 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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