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하경철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감정도 없다.“그래, 알았어. 나중에 얘기해. 나 대리 불러야 해.”이서는 전화를 끊고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다행히 아직 시내를 벗어나지 않아, 대리기사가 바로 출발했다.이서가 북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는 시간이었다.붉게 물들어 가는 서쪽 하늘, 석양이 산꼭대기에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만물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평온하지 않았다.집에 돌아와 신발 선반 위에 놓인 남성 슬리퍼를 보니 더욱 심란해졌다.그녀는 아예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버렸다.앉자마자 주경모 집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아저씨, 무슨 일이세요?”“아가씨, 북성에 돌아오셨나요?”“네, 방금 도착했어요.”“어르신께서 병원에 잠깐 들르라고 합니다.”이서는 방금 임하나가 했던 말이 떠올라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할아버지 괜찮으세요?”“어르신이 아닙니다.”주경모는 그녀가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알아차린 듯 굳이 숨기지 않았다.“도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가기 싫었지만, 하경철의 체면을 봐서 가겠다고 승낙했다.병원에 도착하니, 입원병동 앞에 고급세단이 줄지어 서 있었다.윤이서는 곧 정문에 도착했다.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윤이서를 보자 막아 서지도 않고, 그녀가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이서는 자기집 드나들 듯 쉽게 하은철의 병실을 찾아냈다.‘참, 세상도 요지경이다. 지난번에는 그녀가 하마터면 여기서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그녀가 하은철을 병문안 왔다.’하은철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분쇄성 골절로, 한쪽 다리를 통깁스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이서를 보자 하은철은 심기가 불편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할아버지.”이서는 얌전하게 하경철 앞으로 다가갔다.이서의 얼굴을 보자 하경철 얼굴에 근심이 사라지고 환하게 웃었다.“이서야, 널 여기까지 불러서 미안타.”“할아버지, 이게…… 뭔 일이래요?”하경철은 못마땅하게
윤이서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왜? 용건은?”“할아버지가 날 돌봐 주라고 했잖아.”하은철은 긴장한 표정으로 윤이서를 쳐다보았다.“설마 고새 마음이 바뀐 건 아니겠지?”윤이서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문을 나서서 경호원에게 주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경호원은 이서를 주방으로 안내했다.주방에는 각양각색의 채소와 육류, 생선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모두 깨끗이 손질해 두어서 조리하기만 하면 됐다.이전에는 하루 삼시 세끼를 다 이서가 챙겼기에 당연히 하은철의 입맛에 대해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서는 굳이 하은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할 예정이었다.30분 뒤, 경호원이 요리 두 접시를 내왔다.하나는 김치찜, 다른 하나도 김치찜이었다.하은철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리고?”“없는데…….”이서는 김치찜을 테이블 위에 놓고, 혼자 소파에 앉아 느릿느릿 먹기 시작했다.점심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실은 지금도 별로 입맛은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김치찜을 2인분 만들었던 것이다.하은철은 화가 나서 젓가락을 내던지며 말했다.“나 환자야, 이런 김치 쪼가리 먹으라고?!”예전의 이서는 이렇지 않았다.윤이서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중얼거렸다.“먹든가 말든가…….”“…….”하지환 거주 아파트.이상언은 단정하게 앉아 필사적으로 긴장한 모습을 연출하려고 했지만, 이 노력은 0.1초를 유지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하, 네가 윤이서한테 ‘섹파’라고 얘기했다고? 하하하…….”하지환의 얼굴이 어둡다 못해 탁해 보였다.웃음 코드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눈빛이었다.‘계약 규정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그렇다면, 섹파 관계로 둘 사이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육체적으로 연결된 사이라면, 한 장의 종이 쪼가리로 연결된 계약관계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하은철의 베프인 이상언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기에 가
하지환은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블루문(Blue Moon) 보내주세요.”이상언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블루문,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하경수는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옆에서 지켜주고 함께해 준 아내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60억 원의 거금을 들여 이 다이아몬드반지를 샀었다. 아내가 사망하기 전 다이아몬드반지를 하경수에게 주면서 훗날 며느리에게 전해주라고 유언을 남겼었다.‘하지환, 이 녀석 설마…….’수화기 너머의 하경수도 감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알았어, 곧 전용기 띄워 보낼게!]……병원.하은철은 투덜거리며 김치찜을 다 먹었다.이서는 경호원들과 같이 그릇이랑 뒷정리를 마치고, 다시 일어섰다.하은철은 재빨리 물었다.“너 또 어디 가게?”“집에 가야지.”“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돌보라고 했잖아.”“할아버지는 단지 내게 너의 삼시 세끼를 챙기라고 하셨을 뿐이야. 내일부터는 도시락 싸다 줄게.”서운한 마음이 순식간에 좋아졌다.이서가 틀림없이 자기에게 맛있는 밥을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집에 돌아온 이서는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마음은 피곤했지만, 머리는 더없이 맑았다.머릿속은 하지환이 낮에 얘기한 ‘섹파’단어로 가득했다.그녀는 귀를 막고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잠들지 않았다.이서는 아예 일어나 디자인 콘테스트에 출품한 작품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화장품 패키지 디자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서는 경험에 비춰, 요 며칠간 수정과 보정을 더해가며 작업을 해왔다.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마감일이 아직 일주일 남았는데, 금요일 전에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서는 수정을 마친 시안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의자에서 일어서서 기지개를 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5시가 넘었다.마침 아침밥을 하면 될 시간이었다.하은철에게 아침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윤이서는 짜증이 났다.하지만 하경철의 부탁이라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막 두 걸음 걷자마자 메스꺼움이 치밀어 오
그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디자인 콘테스트에 나가요?”“네.”세수하고 나온 이수는 고개를 숙이고 하지환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하지환은 주방의 유리문에 기대어 말했다.“먼저 한 잠 자요. 아침은 제가 간단하게 해 놓을게요.”“안 돼요.”윤이서는 코를 들이마셨다.“이따가 하은철에게 도시락 배달 가야 해요.”하지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하은철에게 도시락 배달요?”그도 방금 병원에서 오는 길이었다. 하은철이 입원한 일은 어제 이미 알았다.“네, 은철이는 입맛이 까다로워요.”이에 대해 이서는 잘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그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외면해 버리고 입에 대지도 않았다.“암튼 잠깐 앉아 계세요. 바로 돼요.”그녀는 정말이지 하지환과 같은 공간에 있는 자체가 부담스러웠다.하지환은 마음속의 불쾌감을 억누르며 말했다.“설마 아직도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나요?”후드 소리에 하지환의 목소리를 묻히면서 이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는 어젯밤에 다듬어 놓은 야채를 손질해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탕탕탕, 치익, 닥닥 음식하는 소리가 폭죽 터지듯 요란했다.미간을 한껏 찌푸린 하지환은 소녀의 아담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짙은 먹물이 끼었다.요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이미 하지환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이서는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하지환이 가버리는 것도 좋았다.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대충 아침을 먹고서는 하씨 집안의 경호원에게 아침을 가져가라고 전화했다.경호원은 도시락을 챙겨가며 윤이서에게 물었다.“아가씨는 안 가나요?”하은철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이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경호원이 물었다.“네, 안 가요.”윤이서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저는 밀린 잠이나 자야겠어요.”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혼곤히 잠이 들었다.이서는 아주 평온하게 한 잠 잘 잤다. 임하나의 전화가 걸려 오기 전까지.“여보세요?”[이서야, 나
“에이, 신경 꺼. 이쪽 바닥에서 쟤와 하은철 삼촌의 혼사가 해프닝이라는 소문이 난 후부터 저년, 반은 미쳐 있어.”임하나는 지체 없이 야식 도시락을 열고 냄새를 한껏 맡았다.“와아, 냄새 봐라, 너무 맛있겠다. 이서야, 내가 얼마나 네 요리가 고팠는 줄 알아?”이서는 주차장을 힐끗 보았다.“먼저 먹어, 나 야식 배달 다녀올게.”“이렇게 급히? 민예지 그 미친년 간 다음에 가지……?”이서는 웃으며 말했다.“걔가 누굴 찾으러 왔는지 대충 알 거 같아. 부딪힐 일 없어.”“오, 그래.”임하나는 맛있는 음식에 정신을 뺏긴 지 오래였다.“그럼 얼른 가봐.”이서는 일어나 주차장으로 가서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 맞은편 하씨 빌딩으로 향했다.예전에 하은철이 야근할 때, 종종 야식 배달하러 왔었는데, 그때는 늘 냉담하게 받아줘서 나중에는 그게 익숙해졌었다.그런데 오늘 밤, 여기 서 있으니 왠지 모르게 다시 긴장되었다.“아가씨!”경비원은 한눈에 윤이서를 알아보고 눈빛에 동정표를 띠었다.“도련님께 야식 배달하러 오셨어요? 그런데 어떡하죠? 도련님 지금 안 계시거든요.”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경비원은 멍해졌다.“그럼?”“음…… 그게…….”윤이서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뜸 들이다가 말했다.“친구에게 주려고요…….”경비원은 거의 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하씨 빌딩을 힐끗 보았다.“꼭대기 층으로 배달 가는 건가요?”총 88층으로 지어진 하씨 빌딩의 꼭대기 층은 줄곧 비어 있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입주했다. 그룹 전체 내부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개 경비원이 알리는 더욱 만무했다.다만 간혹 밤에 88층의 불이 켜지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오늘 밤처럼.이서도 꼭대기 층을 한번 보았다. 하지환이 그룹에 들어왔다고 한 이상 건물 전체에 꼭대기 층만 불이 켜져 있으니, 아마 거기로 가면 될 것이다.“네.”경비원은 윤이서의 통행로를 열어주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
화가 나서 씩씩거리던 민예지는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냉소를 지었다.“됐어, 내가 너랑 이런 것들 가지고 시시콜콜 따져서 뭘 하겠니? 봐봐…….”민예지는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인 벨벳 상자를 열어 보여주었다.보기 드문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이서 앞에 나타났다.머리가 ‘윙’ 어질어질 터질 것 같았다.아직 미처 반응하지 않았는데, 민예지가 그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지에 끼며 말했다.“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래. 아름답지?”따뜻한 주황색 불빛 아래 굴절된 빛을 발산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이서의 눈을 시리게 하고 마음도 아프게 했다.그녀는 명치의 위치를 눌렀다.“정말 너였어?!”‘하지환이 밖에 둔 여자가 민예지라니!’“당연히 나지.”민예지는 윤이서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득의양양했다.“안 그럼 너겠니? 꿈도 꾸지 마, 가서 거울이나 봐. 네가 가당키나 해? 어울리기는 하고?”이서의 눈은 이미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붉은 입술을 꽉 깨물고 한참 동안 낮게 중얼거렸다.“그래, 맞아. 계약에 따르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 무슨 자격으로……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친 이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나가 버렸다.이서가 이렇게 눈치 빠르게 물러가자, 민예지는 오히려 당황했다. 이서가 가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후련했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너무 예쁜 다이아몬드 반지다.’‘정말 내게 줬으면 좋겠다.’“너 어떻게 들어왔어?”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민예지의 뒤에서 울렸다. 키다리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민예지의 손에 낀 반지를 낚아챘다.민예지는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마셨다.“아파요!”하지환은 차가운 기운이 눈가의 점까지 전해졌다.“누가 함부로 내 물건에 손 대래!”민예지는 억지로 애교를 부렸다.“저기…… 이 다이아몬드 반지, 너무 아름답네요. 저 주면 안 돼요?”하지환은 눈동자가 차가웠다. 그러다가 바닥에 놓인 보온 도시락통을
윤이서는 다급한 나머지 미친 듯이 경적을 울렸다.하지환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이서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천천히 차를 몰고 다가갔다.하지환은 여전히 눈 깜짝 않고 이서의 차가 가까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전조등의 빛이 그의 얼굴에 비치며 그의 이목구비를 더욱 뚜렷하게 그려냈다.불빛을 빌려, 그는 차 안에서 운전대를 꼭 쥐고 있는 이서를 보았다.차가 천천히 지면을 밟으며 다가갔다.1세기 같은 1초를 버티던 이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마침내 브레이크를 밟았다.그러고는 차에서 뛰어내렸다.“미쳤어요? 왜 안 피해요? 죽고 싶어요?”하지환은 웃는 듯 마는 듯 도시락통을 들고 입을 열었다.“나에게 주는 거예요?”“아니요!”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인했다.하지환은 윤이서의 손을 잡으러 앞으로 나갔다.오늘 아침 이서가 하은철에게 도시락을 준비해 주는 모습을 본 그는 기분이 극도로 나빠져 복싱장에 가서 한바탕 분풀이하고 왔다. 그런데 지금 이서가 챙겨온 음식을 보니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윤이서는 피했다.“나 갈래요, 더 이상 막지 마세요.”하지환은 이서를 가까이 끌어당겨 화가 난 작은 여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어딜 가려고?”그는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몸에서 나는 은은한 박하 향이 코끝을 파고들었다. 이서는 코가 시큰거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목을 꼿꼿이 세우고 두 사람의 거리를 확보하려 했다.“당연히 집에 가야죠.”“좋아, 그럼 같이 가.”그는 이서의 귀 끝을 가볍게 물었다.이서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잠깐 멍 때리다 바로 정신을 다잡고 거의 온몸의 힘을 다해 하지환을 밀면서 쌀쌀하게 말했다.“뭐하러요, 민…….”상대방의 사생활에 간섭할 수 없다는 조항이 생각난 이서는 억지로 ‘민예지와 함께하라’는 얘기를 속으로 삼켰다.그러고는 몸을 되돌려 차로 갔다.하지환은 그녀가 단순히 삐진 줄 알고, 냉큼 안아 이서가 어떻게 항거하든 상관하
요즈음 그는 매일 맛집 투어를 나선다.오늘 이른 아침, 집에서 유유히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즐기기도 전에 현관문이 ‘펑’ 하고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화가 잔뜩 난 모양이었다.이상언은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몇 걸음 나가 보기도 전에 하지환이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왜? 또 무슨 일이야? 또 싸웠어?”하지환은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더니 입술을 바짝 오므렸다.이상언은 자신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내가 너한테 뭘 잘못한 거라도 있니?”‘설마?’‘내가 뭘 했다고 밉보여?’하지환은 실눈을 뜨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이상언은 그에게 샌드위치 하나를 건네주었다.“자, 먹고 나면 다 해결돼. 그래도 안 되면, 하나 더 먹으면 되고…….”하지환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이상언. 너…….”이상언은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장난기를 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대체 뭔 일인데? 말 안 하면, 내가 어찌 알겠어?”하지환은 그를 흘겨보고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두 손 두발 다 든 이상언이 체념한 듯 말했다.“그럼 네가 말하고 싶을 때 다시 이야기하자.”……이서는 오늘도 평소대로 하은철에게 줄 아침을 준비를 마치고 경호원이 도시락 찾아가기를 기다렸다.시간을 보니 경호원이 도착하려면 아직 10여 분이 남았다. 그녀는 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디자인 시안을 다시 체크하고, 그리고 콘테스트 대회 주최 측에 시안을 발송할 예정이었다.노트북을 열어 메일 쓰기를 누르자마자 경호원이 도착했다.이서는 도시락을 가지러 갔다.“여기요.”경호원은 도시락을 받지 않고, 난처한 듯 얘기했다. “아가씨, 도련님께서 오늘 도시락은 직접 배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이서는 눈썹을 찡그렸다.“저희도 참 난감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가씨.”윤이서는 숨을 내쉬며, 가방을 챙기러 갔다. “알았어요.”경호원은 곧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아가씨.”이서는 경호원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병실에 들어서자, 통깁스를 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