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달아 민씨 집안도 웃음거리가 되었다.그가 오늘 온 것은 바로 민씨 집안의 체면을 되찾기 위해서였다.하경철은 불쾌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맞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긴 하지만, 지환이 이미 결혼한 걸 어쩌겠나? 그리고, 내가 맞선을 얘기한 거지, 둘의 혼약을 약속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결혼 얘기까지 나왔는지,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네.”민호일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잠자코 당할 수만은 없었다.“그래도 보상은 해주셔야죠.”민호일은 하지환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큰 집 도련님은 이미 결혼했다고는 하나, 현재 주요 사업이 국내에 있으니…… 남자는 혼자 있으면 외롭기 쉽습니다. 차라리 한국에서…… 새 장가 한 번 더 드는 건 어떨까요?”말하면서 민예지를 하지환 곁으로 밀어붙였다.민예지는 수줍어하며 고개를 숙이고 하지환의 품속에 쓰러지려고 했다.하지환은 가볍게 옆으로 피했다.헛발 디딘 민예지는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가까스로 똑바로 서자, 하지환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우리 집사람이 원치 않아서, 저는 새 장가 못 갑니다.”‘집사람’이라는 세 글자는 하지환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자상함과 온화함이 묻어났다.민예지는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하지환의 아내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질투를 느꼈다.그녀는 어색한 억지웃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삼촌을 모실 수 있는 건 제 영광입니다. 혼인 신고 안 해도 상관없어요. 당신 곁에서 말 잘 듣고 있을게요.”하경철의 눈살이 더욱 찌푸려졌다.하지환은 오히려 흥이 나서 입꼬리를 올렸다.“정말?”민예지는 눈동자가 밝아지자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네,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할게요.”“그럼, 바닥에 엎드려 개 짖는 소리나 두 번 해보던가.”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눈가에 있는 점이 불빛 아래에 사악한 기운을 더해주었다.민호일과 민예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도련님……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건 너무하네요.” 민호일은 하마터면 화가 나서 돌아가
방금 하지환에서 된통 당한 민예지는 이서를 보자 분풀이할 대상을 찾은 듯 두말없이 다짜고짜 이서의 팔을 잡고 물었다.“네가 왜 여기 있어? 설마 하은철 둘째 삼촌한테 꼬리 치려는 거니?!”이서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민예지에게 잡힌 팔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손 놔!”미쳐 날뛰는 민예지한테 이서의 소리가 들리기 만무했다.‘내가 못 가지는 걸 네가 뭔데 가져?’그녀가 손을 놓지 않자, 이서는 민예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자 손톱이 민예지의 살을 파고들었다.강한 통증을 느낀 민예지는 이서를 밀어냈다. 손목에 생긴 손톱자국을 보고는 또 달려들었다.이서는 재빨리 피하고, 고개를 들어 CCTV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말했다.“민예지, 이미지 챙기는 게 좋을 걸?”민호일도 이곳이 그들의 바운더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식했는지 급급히 민예지를 막아섰다. CCTV가 폭로되어 민예지의 악행이 만천하에 알려지면 자기들에게 득이 되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지야.”민호일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이서를 바라보았다.“이런 뜨내기들에게 손 더럽히지 마. 그건 네 신분을 깎아 먹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 가자.”민예지는 내키지 않은 듯 얘기했다.“그런데 아빠, 쟤가 뭔데 둘째 삼촌이랑 같이 밥 먹냐고?”이미 엘리베이터에 들어온 이서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하은철 둘째 삼촌도 오셨다고?’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 치덕대는 민씨 부녀가 눈앞에서 철저히 사라지자, 이서는 그제야 기분이 다소 홀가분 해지는 것 같았다.하은철의 둘째 삼촌도 계신다고, 심지어 살짝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였다.곧 3층에 도착했다.이서는 가벼운 걸음으로 룸으로 향했다.“할아버지…….”문을 밀고 들어온 윤이서는 텅 빈 룸을 보고 얼떨떨했다.그녀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하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하지환을 보았다.그녀는 전화를 끊고 쏜살같이 달려가 긴장한 듯 하지환의 옷을 잡고 물었다.“괜찮아요?”하지환은 어리둥절했
윤이서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하경철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감정도 없다.“그래, 알았어. 나중에 얘기해. 나 대리 불러야 해.”이서는 전화를 끊고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다행히 아직 시내를 벗어나지 않아, 대리기사가 바로 출발했다.이서가 북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 5시가 넘는 시간이었다.붉게 물들어 가는 서쪽 하늘, 석양이 산꼭대기에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만물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평온하지 않았다.집에 돌아와 신발 선반 위에 놓인 남성 슬리퍼를 보니 더욱 심란해졌다.그녀는 아예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버렸다.앉자마자 주경모 집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아저씨, 무슨 일이세요?”“아가씨, 북성에 돌아오셨나요?”“네, 방금 도착했어요.”“어르신께서 병원에 잠깐 들르라고 합니다.”이서는 방금 임하나가 했던 말이 떠올라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할아버지 괜찮으세요?”“어르신이 아닙니다.”주경모는 그녀가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알아차린 듯 굳이 숨기지 않았다.“도련님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가기 싫었지만, 하경철의 체면을 봐서 가겠다고 승낙했다.병원에 도착하니, 입원병동 앞에 고급세단이 줄지어 서 있었다.윤이서는 곧 정문에 도착했다.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은 윤이서를 보자 막아 서지도 않고, 그녀가 들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다.이서는 자기집 드나들 듯 쉽게 하은철의 병실을 찾아냈다.‘참, 세상도 요지경이다. 지난번에는 그녀가 하마터면 여기서 죽을 뻔했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그녀가 하은철을 병문안 왔다.’하은철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분쇄성 골절로, 한쪽 다리를 통깁스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이서를 보자 하은철은 심기가 불편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할아버지.”이서는 얌전하게 하경철 앞으로 다가갔다.이서의 얼굴을 보자 하경철 얼굴에 근심이 사라지고 환하게 웃었다.“이서야, 널 여기까지 불러서 미안타.”“할아버지, 이게…… 뭔 일이래요?”하경철은 못마땅하게
윤이서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힐끗 보았다.“왜? 용건은?”“할아버지가 날 돌봐 주라고 했잖아.”하은철은 긴장한 표정으로 윤이서를 쳐다보았다.“설마 고새 마음이 바뀐 건 아니겠지?”윤이서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 문을 나서서 경호원에게 주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경호원은 이서를 주방으로 안내했다.주방에는 각양각색의 채소와 육류, 생선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모두 깨끗이 손질해 두어서 조리하기만 하면 됐다.이전에는 하루 삼시 세끼를 다 이서가 챙겼기에 당연히 하은철의 입맛에 대해 똑똑히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서는 굳이 하은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할 예정이었다.30분 뒤, 경호원이 요리 두 접시를 내왔다.하나는 김치찜, 다른 하나도 김치찜이었다.하은철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그리고?”“없는데…….”이서는 김치찜을 테이블 위에 놓고, 혼자 소파에 앉아 느릿느릿 먹기 시작했다.점심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실은 지금도 별로 입맛은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김치찜을 2인분 만들었던 것이다.하은철은 화가 나서 젓가락을 내던지며 말했다.“나 환자야, 이런 김치 쪼가리 먹으라고?!”예전의 이서는 이렇지 않았다.윤이서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중얼거렸다.“먹든가 말든가…….”“…….”하지환 거주 아파트.이상언은 단정하게 앉아 필사적으로 긴장한 모습을 연출하려고 했지만, 이 노력은 0.1초를 유지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하, 네가 윤이서한테 ‘섹파’라고 얘기했다고? 하하하…….”하지환의 얼굴이 어둡다 못해 탁해 보였다.웃음 코드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눈빛이었다.‘계약 규정에 따르면, 그들은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그렇다면, 섹파 관계로 둘 사이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은가?’‘육체적으로 연결된 사이라면, 한 장의 종이 쪼가리로 연결된 계약관계보다 훨씬 나을 거 같은데?’하은철의 베프인 이상언은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기에 가
하지환은 핸드폰을 들고 번호를 눌렀다.“블루문(Blue Moon) 보내주세요.”이상언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블루문,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 반지.’하경수는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옆에서 지켜주고 함께해 준 아내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60억 원의 거금을 들여 이 다이아몬드반지를 샀었다. 아내가 사망하기 전 다이아몬드반지를 하경수에게 주면서 훗날 며느리에게 전해주라고 유언을 남겼었다.‘하지환, 이 녀석 설마…….’수화기 너머의 하경수도 감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알았어, 곧 전용기 띄워 보낼게!]……병원.하은철은 투덜거리며 김치찜을 다 먹었다.이서는 경호원들과 같이 그릇이랑 뒷정리를 마치고, 다시 일어섰다.하은철은 재빨리 물었다.“너 또 어디 가게?”“집에 가야지.”“그런데 할아버지가 날 돌보라고 했잖아.”“할아버지는 단지 내게 너의 삼시 세끼를 챙기라고 하셨을 뿐이야. 내일부터는 도시락 싸다 줄게.”서운한 마음이 순식간에 좋아졌다.이서가 틀림없이 자기에게 맛있는 밥을 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집에 돌아온 이서는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마음은 피곤했지만, 머리는 더없이 맑았다.머릿속은 하지환이 낮에 얘기한 ‘섹파’단어로 가득했다.그녀는 귀를 막고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잠들지 않았다.이서는 아예 일어나 디자인 콘테스트에 출품한 작품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화장품 패키지 디자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서는 경험에 비춰, 요 며칠간 수정과 보정을 더해가며 작업을 해왔다.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마감일이 아직 일주일 남았는데, 금요일 전에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서는 수정을 마친 시안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의자에서 일어서서 기지개를 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5시가 넘었다.마침 아침밥을 하면 될 시간이었다.하은철에게 아침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윤이서는 짜증이 났다.하지만 하경철의 부탁이라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막 두 걸음 걷자마자 메스꺼움이 치밀어 오
그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디자인 콘테스트에 나가요?”“네.”세수하고 나온 이수는 고개를 숙이고 하지환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 “먹고 싶은 거 있어요?”하지환은 주방의 유리문에 기대어 말했다.“먼저 한 잠 자요. 아침은 제가 간단하게 해 놓을게요.”“안 돼요.”윤이서는 코를 들이마셨다.“이따가 하은철에게 도시락 배달 가야 해요.”하지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하은철에게 도시락 배달요?”그도 방금 병원에서 오는 길이었다. 하은철이 입원한 일은 어제 이미 알았다.“네, 은철이는 입맛이 까다로워요.”이에 대해 이서는 잘 알고 있다. 조금이라도 그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바로 외면해 버리고 입에 대지도 않았다.“암튼 잠깐 앉아 계세요. 바로 돼요.”그녀는 정말이지 하지환과 같은 공간에 있는 자체가 부담스러웠다.하지환은 마음속의 불쾌감을 억누르며 말했다.“설마 아직도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나요?”후드 소리에 하지환의 목소리를 묻히면서 이서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녀는 어젯밤에 다듬어 놓은 야채를 손질해서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탕탕탕, 치익, 닥닥 음식하는 소리가 폭죽 터지듯 요란했다.미간을 한껏 찌푸린 하지환은 소녀의 아담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짙은 먹물이 끼었다.요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이미 하지환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이서는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하지환이 가버리는 것도 좋았다.그녀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 대충 아침을 먹고서는 하씨 집안의 경호원에게 아침을 가져가라고 전화했다.경호원은 도시락을 챙겨가며 윤이서에게 물었다.“아가씨는 안 가나요?”하은철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이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 경호원이 물었다.“네, 안 가요.”윤이서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저는 밀린 잠이나 자야겠어요.”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혼곤히 잠이 들었다.이서는 아주 평온하게 한 잠 잘 잤다. 임하나의 전화가 걸려 오기 전까지.“여보세요?”[이서야, 나
“에이, 신경 꺼. 이쪽 바닥에서 쟤와 하은철 삼촌의 혼사가 해프닝이라는 소문이 난 후부터 저년, 반은 미쳐 있어.”임하나는 지체 없이 야식 도시락을 열고 냄새를 한껏 맡았다.“와아, 냄새 봐라, 너무 맛있겠다. 이서야, 내가 얼마나 네 요리가 고팠는 줄 알아?”이서는 주차장을 힐끗 보았다.“먼저 먹어, 나 야식 배달 다녀올게.”“이렇게 급히? 민예지 그 미친년 간 다음에 가지……?”이서는 웃으며 말했다.“걔가 누굴 찾으러 왔는지 대충 알 거 같아. 부딪힐 일 없어.”“오, 그래.”임하나는 맛있는 음식에 정신을 뺏긴 지 오래였다.“그럼 얼른 가봐.”이서는 일어나 주차장으로 가서 보온 도시락통을 들고 맞은편 하씨 빌딩으로 향했다.예전에 하은철이 야근할 때, 종종 야식 배달하러 왔었는데, 그때는 늘 냉담하게 받아줘서 나중에는 그게 익숙해졌었다.그런데 오늘 밤, 여기 서 있으니 왠지 모르게 다시 긴장되었다.“아가씨!”경비원은 한눈에 윤이서를 알아보고 눈빛에 동정표를 띠었다.“도련님께 야식 배달하러 오셨어요? 그런데 어떡하죠? 도련님 지금 안 계시거든요.”윤이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아니에요.”경비원은 멍해졌다.“그럼?”“음…… 그게…….”윤이서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뜸 들이다가 말했다.“친구에게 주려고요…….”경비원은 거의 불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하씨 빌딩을 힐끗 보았다.“꼭대기 층으로 배달 가는 건가요?”총 88층으로 지어진 하씨 빌딩의 꼭대기 층은 줄곧 비어 있다가 얼마 전에 갑자기 입주했다. 그룹 전체 내부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일개 경비원이 알리는 더욱 만무했다.다만 간혹 밤에 88층의 불이 켜지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오늘 밤처럼.이서도 꼭대기 층을 한번 보았다. 하지환이 그룹에 들어왔다고 한 이상 건물 전체에 꼭대기 층만 불이 켜져 있으니, 아마 거기로 가면 될 것이다.“네.”경비원은 윤이서의 통행로를 열어주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
화가 나서 씩씩거리던 민예지는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냉소를 지었다.“됐어, 내가 너랑 이런 것들 가지고 시시콜콜 따져서 뭘 하겠니? 봐봐…….”민예지는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인 벨벳 상자를 열어 보여주었다.보기 드문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가 이서 앞에 나타났다.머리가 ‘윙’ 어질어질 터질 것 같았다.아직 미처 반응하지 않았는데, 민예지가 그 핑크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지에 끼며 말했다.“날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거래. 아름답지?”따뜻한 주황색 불빛 아래 굴절된 빛을 발산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는 이서의 눈을 시리게 하고 마음도 아프게 했다.그녀는 명치의 위치를 눌렀다.“정말 너였어?!”‘하지환이 밖에 둔 여자가 민예지라니!’“당연히 나지.”민예지는 윤이서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득의양양했다.“안 그럼 너겠니? 꿈도 꾸지 마, 가서 거울이나 봐. 네가 가당키나 해? 어울리기는 하고?”이서의 눈은 이미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붉은 입술을 꽉 깨물고 한참 동안 낮게 중얼거렸다.“그래, 맞아. 계약에 따르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 무슨 자격으로……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친 이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나가 버렸다.이서가 이렇게 눈치 빠르게 물러가자, 민예지는 오히려 당황했다. 이서가 가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후련했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약지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너무 예쁜 다이아몬드 반지다.’‘정말 내게 줬으면 좋겠다.’“너 어떻게 들어왔어?”차가운 목소리가 갑자기 민예지의 뒤에서 울렸다. 키다리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민예지의 손에 낀 반지를 낚아챘다.민예지는 아파서 연신 숨을 들이마셨다.“아파요!”하지환은 차가운 기운이 눈가의 점까지 전해졌다.“누가 함부로 내 물건에 손 대래!”민예지는 억지로 애교를 부렸다.“저기…… 이 다이아몬드 반지, 너무 아름답네요. 저 주면 안 돼요?”하지환은 눈동자가 차가웠다. 그러다가 바닥에 놓인 보온 도시락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