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을 보고 있던 이서는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걸 보고 궁금해하며 물었다.“무슨 비밀 얘기를 그렇게 하는 걸까요?”이상언은 즉시 웃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아... 아니에요,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수상한데?”두 남자에게 별 관심 없는 듯 임하나가 이서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이서야, 저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주문이나 하자.”“응.” 이서와 임하나, 심소희 세 사람은 음식을 주문했다.지환과 두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재잘거리는 세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세 남자의 눈가에 옅은 웃음기가 피어났다.하지만 웃음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의미는 다 달랐다.식사를 마친 후 임하나는 이상언과 함께 돌아갔다. 재결합한 커플의 훼방꾼이 되기 싫은 심소희는 이서의 차에 올라탔다.운전석에 앉은 임현태는 조수석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소희 씨, 여기 앉아.”뒷좌석에서 손을 꼭 잡고 있는 이서와 지환을 본 심소희는 눈치 빠르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이서는 웃는 얼굴로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친남매로 지낼 수 있다고, 신경 안 쓸 거라고 하두만, 신경 제대로 쓰고 있네...’차 안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지환이었다.“오늘 인수인계식 봤어.”“하고 싶은 말씀은...?”“우리 와이프 참말로 예쁘더라.”지환은 말하면서 이서의 손에 가볍게 키스했다.이서는 어이없는 듯 말했다.“아이참, 장난 그만하고..., 다른 건?”앞좌석에 있던 임현태와 심소희는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음.”이서는 웃었다.“회의장에서 나름 누군가를 위해 감동적인 얘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괜한 짓 한 건가?”지환은 웃으며 이서의 머리를 가볍게 만졌다.“그럴 리가?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난 다 알아. 느낄 수 있어.”갑자기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줄었다.“그런데 거기서 그 여자가 한 얘기, 무슨 뜻이야?”“여자?” 이서는 어리둥절했다.“있잖아,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가 윤씨 그룹 사람이 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서도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다.“응, 결과 나오면 가장 먼저 알려줘요.”이서의 눈가에 아른거리는 웃음을 보며 지환도 웃음을 지었다.이서가 윤씨 핏줄만 아니라면... 모든 건 쉽게 해결된다.그와 이서에게도 드디어 좋은 날이 올 것이다.집에 도착하자, 임하나한테서 전화가 왔다.[이서야, 우리 한동안 놀러 간 기억이 없네.]그녀는 웃었다.“왜?”[우리 간만에 바람 쐬러 갈까?]전화기 너머에서 임하나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너 결혼한 뒤 우리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은 거 알지?]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순간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미안해...”[저기요, 따지러 전화한 게 아니고...]임하나는 이서의 말을 잘랐다.[난 단지 너랑 단둘이 놀러 가고 싶을 뿐이야. 마침 나한테 온천호텔 이용권 두 장 있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좋지.”회사 구조조정은 지환에게 맡길 생각이다.CEO라는 역할에 미리 적응할 기회도 되고.그녀도 마침 기분 전환하러 가고, 일석이조인 셈이다.최근 참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나가서 바람도 쐬고 기분 전환하고 오면, 또 새로운 뭔가 생길지도 모른다.이서는 자신의 생각을 지환에게 말했다.지환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럼, 회사 쪽 일은 나한테 맡겨. 자긴 나가서 잘 놀고 오기만 하면 돼.”“응, 고마워.”이서는 지환의 얼굴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몸을 돌려 샤워실로 들어갔다.이서의 모습을 보며, 지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이서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자, 그의 눈동자에 서렸던 미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곧 휴대전화를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방금 어디까지 얘기했지?”수화기 너머의 이천은 갑자기 이야기하다 말고 사라지는 지환의 대화법에 이미 익숙해졌다. 그는 아무 일 없었듯 보고를 계속했다.[방금 사모님과 윤씨 부부의 친자관계 확인해 보라고 하셨습니다.]지환은 ‘응’ 하고 다시 말을 있다.“내일 결과를 알아야겠다.”[...]‘성질 급
하지만 이서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본인이 모든 고통을 감내할지언정 지환을 잊고 살아갈 자신은 없었다.그녀의 문자를 본 마이클은 잠깐 침묵했다.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의사의 관점에서 그는 당연히 첫 번째 방식을 추천할 것이다.최면요법은 머릿속 지우개처럼 과거의 기억을 지우면서 고통을 더는 치료법이다.즉 깨끗한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거다.반면, 전기 충격 요법은 가장 비추하는 치료법이다.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면 심지어 언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왜냐면 치료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서에게 문자를 보냈다.[이서 씨, 전기 충격 치료법으로 치료한 환자들의 인터뷰 자료를 먼저 보내 드리겠습니다. 보시고 괜찮다고 생각된다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봅시다.][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서는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저도 전기 충격 요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저 이미 결정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부탁컨데 제 남편한테는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이서의 확고한 태도에 마이클 천은 설득을 포기했다.“누구랑 그렇게 문자질이야?”운전 중이던 임하나가 고개를 돌려 이서를 한 번 보았다.이서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아니야.”지환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혼자 조용히 그 고통을 감내할 생각이었다.“보나마나 남편이겠지.”임하나가 퉁명스럽게 말했다.“오늘 지환 씨가 소중한 아내를 내게 양보한 걸 봐서, 내가 네 남편 뒷담화는 하지 않겠어.”이서는 굳이 반박하지 않고 웃어넘겼다.“우리 어느 호텔로 가?”출발한지 벌써 한 시간이나 훌쩍 넘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듯했다. “다 왔어. 여기 온천 호텔인데, 내 고객의 말을 빌리자면 현지에서 꽤 유명하대. 타지 사람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이서는 이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아주 외진 곳은 아니겠지? 그 고객, 남자야, 여자야?”임하나는 순간 마음이 덜컹했다.“남자인데.
“이서야, 신경 쓰지 마. 하은철 입에서 뭔 좋은 소리 들으려고? 가자!”이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임하나의 손을 지긋이 눌렀다.“말해봐.”그녀는 하은철을 보며 말했다. 드디어 제대로 그를 쳐다보았다.그녀의 시선에 하은철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막 입을 열려다 임하나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우리 둘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이 사람 참...”이서는 짜증 난 임하나를 다독였다.“알았어, 다만 밀폐된 공간이 아닌 공공장소여야 해.”하은철은 기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 사그라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호텔 부근의 분수대를 가리켰다.“저기 가서 이야기할까?”이서도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그녀는 임하나더러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하은철과 분수대 쪽으로 걸어갔다.분수대에 도착하자, 이서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우리 남편이 왜? 뭐가 어쨌는데?”하은철은 마음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작은아빠 얘기를 꺼내야만 이서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구나.’“네 남편이 누군지 알아냈어.”그의 얘기에 바로 경각심이 생긴 이서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그래서? 어쩌려고?”수호자의 신분으로 나서는 이서의 모습에 하은철은 어처구니없었다.그가 뭘 어쩌려는 게 아니라, 작은아빠가 그의 약혼녀를 빼앗은 셈이니.“너 아직도 모르지?”“뭘?”이서의 눈에 비친 경계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네 남편이, 바로 내 작은아빠야.” 하은철은 한 글자 한 글자씩 뱉고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이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역시나 이서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의 마음속에서 순식간에 희망이 되살아났다.“몰랐었구나...”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냥꾼이 인내심을 갖고 작은 동물이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이서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은철을 바라보았다.입을 열자, 쉰 목소리가 나왔다.“거짓말!”하은철은 조급해했다.“정말이야, 네 남편이 정말 내 작은아빠이라니까!”“안 믿어!”이서는 믿지 않았다
하은철은 몇 마디 더 덧붙이려 했다. 하지만 임하나는 그럴 여지를 주지 않고, 이서를 끌고 나오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이서야, 그만 가자.”이서는 임하나가 그녀를 차에 태우도록 내버려두었다.“이서...”차에 올라탄 임하나는 이서의 손발이 여전히 차갑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란 나머지 가볍게 이서를 흔들었다.이서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두 눈은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문득 이서가 발병할 때의 모습을 떠올린 임하나는 이상언에게 전화에 걸려고 했다. 그때 이서의 힘 없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하나야, 우리가 이곳에서 하은철 만났던 일은 상언 씨에게 비밀로 해줘.”이서가 마침내 입을 열자, 임하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깜짝 놀랐잖아. 하은철 그 자식, 도대체 너한테 뭐라디?”이서의 시선이 위아래로 움직였다.하지만 말은 없었다.긴장하고 불안함에 휩싸인 임하나는 이서의 손을 잡았다.“이서야, 왜 그래? 사람 놀라게 하지 마...”“나 괜찮아.”하나의 따뜻한 손의 온도를 느끼고서야 이서의 눈빛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괜찮아...”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이서야, 우리 그냥 집에 가자.”“아니야.”이서가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아냐, 안 갈 거야.”지금 지환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의 과민한 반응에 임하나는 깜짝 놀랐다.“이서야...”이서는 임하나를 보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돌아 갈 거야. 지금 돌아가기 싫어.” “알았어, 지금 가지 말자. 우리 먼저 가서 호텔 룸부터 잡자. 걱정 마, 절대 하은철 그 자식이 다시 접근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이서는 임하나의 어깨에 기댔다. 그제야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임하나는 이서를 데리고 체크인하러 갔다.이서는 목석처럼 따라다니기만 했다.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임하나는 마음이 아프고 짠했다.체크인 수속을
이서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지환은 불길한 예감이 갈수록 강해졌다.옆에 있던 이상언이 지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하나 씨랑 바람 쐬러 간 거잖아. 뭘 그렇게 긴장해?”지환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전화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내가 하나에게 전화할까?”거절 의사가 없자, 이상언은 곧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임하나의 액정에 나타난 ‘이상언’ 세 글자를 보고 바로 이서를 쳐다보았다.“이서야.”이서는 그제야 얼떨결에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 화면에 뜬 ‘이상언’ 세 글자를 보았다.“하나야, 받아, 나 지금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알았어.”임하나는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전화가 연결되자, 저쪽에서 이상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제야 전화 받아요?]임하나는 침대에 축 늘어져 있는 이서를 한번 보고는 짜증이 올라왔다“무슨 일인데요?”임하나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언도 멍해졌다. 그리고 곧 지환을 슬쩍 쳐다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이서 씨 옆에 있어요?]임하나는 눈을 깜박였다.“화장실 갔는데, 무슨 일이에요?”이상언은 한숨을 내쉬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따가 나오면 지환에게 전화 좀 하라고 전해줘요.잠깐 못 봤다고, 그새 또 보고싶은가 봐.]임하나도 마음이 불편한지 몇 마디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쪽 상황을 전혀 알 리 없는 이상언은 임하나가 자기에게 화난 줄 알고, 마음속으로는 이유도 모르고 당하니 억울하기만 했다.“뭐래?”지환이 물었다.“어, 이서 씨 화장실에 갔대. 내가 뭐랬어? 괜찮다니까.” 이상언은 지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 요즘 너무 초긴장 상태인 거 같아. 별거 아닌 일에도 엄청 예민하고...”지환은 입을 오므리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호텔 안.임하나는 전화를 끊고 방안으로 돌아왔다.여전히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있는 이서를 본 임하나는 앞으로 다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야...”임하나의 품에 머리를 묻고
이서는 고개를 들어 핸드폰을 보았다.잠시 후, 그녀는 핸드폰 홈 화면 버튼을 눌렀다.그러나 통화 다이얼을 누르려는 순간, 손을 다시 움츠렸다.두려웠다.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게 답이 되어 돌아올까 봐.바로 이때,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마이클 천이 보낸 것이었다.다음 치료는 이틀 후로 정해졌다는 연락이었다.이서는 지금 치료에 신경 쓸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그녀는 바로 문자를 넘겼다.임하나는 무심결에 문자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이서야, 너 천 의사랑 치료 약속 잡았었어?”“응.” 이서의 시선은 다시 지환의 번호에 떨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침내 큰 결심을 굳힌 듯 전화버튼을 눌렀다.지환 쪽은 바로 받았다. 마침 핸드폰을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사람처럼.이서의 마음은 또 약해졌다.[방금 전화했는데...]지환의 목소리는 마치 뭔가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이서의 마음은 이미 누그러졌다. 눈시울도 약간 뜨거워졌다.“응, 씻고 왔어요. 핸드폰 두고 가서...”[그랬었구나.] 지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자기야, 나 없이 노니까 재미있어?]이서는 높은 호텔 룸에서 아래의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머리속에는 온통 하은철이 한 그 얘기로 가득했다.심장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웠다.“응, 재미있어...”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지환과 대화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확실한 건 하은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도무지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괜히 질문했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불신과 의혹이 그녀와 지환을 압사시킬 수도 있겠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이서야.”임하나도 이서가 이번 문제에 직면할 용기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우리 바람 쐬러 왔잖아. 그러니까 걱정일랑 집어 치우고, 여행 끝나고 다시 생각하자.”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미안해, 하나야, 나 때문에 기분 다 망쳤지?”“뭔 소리야!”임하
이서의 메시지를 확인한 마이클 천은 다소 의아했다.[갑자기 왜요?]이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내일 치료받기를 바란다는 얘기만 했다.마이클 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결국, 돈줄을 쥔 자가 갑이니.치료 시간을 확정하고 나서야 이서의 어수선한 마음은 다소 진정해졌다.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이제 내일만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이서와 전화를 마친 후 지환의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손에 일이 안 잡힐 리가 없었다.“아니, 방금 이서 씨랑 통화했잖아, 왜 그런데 아직도 저기압이야?”이상언은 이해할 수 없었다.지환은 말없이 눈으로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았다.이상언은 그를 슬쩍 밀쳤다.지환은 그제야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이상언은 지환의 눈동자가 까맣고 유난히 밝은 걸 발견했다. ‘젠장, 이건 폭풍전야의 징조다.’“너... 왜 그래?”지환은 미간을 꾹 눌렀다.“아니야. 괜찮아.”“괜찮기는, 네 모습을 봐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은데.” 이상언은 친구가 걱정되었다.“도대체 무슨 일이길래?”지환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기우이길 바랄 뿐이야.”이서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이상언은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것 같았다.“그럼 이렇게 하자, 내일 나랑 같이 이서 씨 있는 곳으로 가보자.”‘임하나도 볼겸.’지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럼 일찍 쉬어.”오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음.”‘오늘도 또 불면의 밤이 되겠구만.’다음날 이른 아침, 지환은 일어나자마자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상언은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지환의 전화에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이렇게 일찍 갈 필요 없잖아. 이제 겨우 6시야. 이서 씨 어디 도망 안 간다고.”지환의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겼다.“얼른 일어나, 지금 넘어 갈게.”이상언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지환의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로했다.“친구야, 너 이서 씨랑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미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