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지환은 불길한 예감이 갈수록 강해졌다.옆에 있던 이상언이 지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하나 씨랑 바람 쐬러 간 거잖아. 뭘 그렇게 긴장해?”지환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하지 않았다.전화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내가 하나에게 전화할까?”거절 의사가 없자, 이상언은 곧 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임하나의 액정에 나타난 ‘이상언’ 세 글자를 보고 바로 이서를 쳐다보았다.“이서야.”이서는 그제야 얼떨결에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 화면에 뜬 ‘이상언’ 세 글자를 보았다.“하나야, 받아, 나 지금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알았어.”임하나는 베란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전화가 연결되자, 저쪽에서 이상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제야 전화 받아요?]임하나는 침대에 축 늘어져 있는 이서를 한번 보고는 짜증이 올라왔다“무슨 일인데요?”임하나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언도 멍해졌다. 그리고 곧 지환을 슬쩍 쳐다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이서 씨 옆에 있어요?]임하나는 눈을 깜박였다.“화장실 갔는데, 무슨 일이에요?”이상언은 한숨을 내쉬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따가 나오면 지환에게 전화 좀 하라고 전해줘요.잠깐 못 봤다고, 그새 또 보고싶은가 봐.]임하나도 마음이 불편한지 몇 마디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이쪽 상황을 전혀 알 리 없는 이상언은 임하나가 자기에게 화난 줄 알고, 마음속으로는 이유도 모르고 당하니 억울하기만 했다.“뭐래?”지환이 물었다.“어, 이서 씨 화장실에 갔대. 내가 뭐랬어? 괜찮다니까.” 이상언은 지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너 요즘 너무 초긴장 상태인 거 같아. 별거 아닌 일에도 엄청 예민하고...”지환은 입을 오므리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호텔 안.임하나는 전화를 끊고 방안으로 돌아왔다.여전히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있는 이서를 본 임하나는 앞으로 다가가 이서를 껴안았다.“이서야...”임하나의 품에 머리를 묻고
이서는 고개를 들어 핸드폰을 보았다.잠시 후, 그녀는 핸드폰 홈 화면 버튼을 눌렀다.그러나 통화 다이얼을 누르려는 순간, 손을 다시 움츠렸다.두려웠다.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게 답이 되어 돌아올까 봐.바로 이때,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마이클 천이 보낸 것이었다.다음 치료는 이틀 후로 정해졌다는 연락이었다.이서는 지금 치료에 신경 쓸 기분은 전혀 아니었다.그녀는 바로 문자를 넘겼다.임하나는 무심결에 문자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이서야, 너 천 의사랑 치료 약속 잡았었어?”“응.” 이서의 시선은 다시 지환의 번호에 떨어졌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마침내 큰 결심을 굳힌 듯 전화버튼을 눌렀다.지환 쪽은 바로 받았다. 마침 핸드폰을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사람처럼.이서의 마음은 또 약해졌다.[방금 전화했는데...]지환의 목소리는 마치 뭔가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이서의 마음은 이미 누그러졌다. 눈시울도 약간 뜨거워졌다.“응, 씻고 왔어요. 핸드폰 두고 가서...”[그랬었구나.] 지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자기야, 나 없이 노니까 재미있어?]이서는 높은 호텔 룸에서 아래의 인산인해를 바라보며 머리속에는 온통 하은철이 한 그 얘기로 가득했다.심장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괴로웠다.“응, 재미있어...”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지환과 대화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확실한 건 하은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다.도무지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괜히 질문했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불신과 의혹이 그녀와 지환을 압사시킬 수도 있겠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이서야.”임하나도 이서가 이번 문제에 직면할 용기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우리 바람 쐬러 왔잖아. 그러니까 걱정일랑 집어 치우고, 여행 끝나고 다시 생각하자.”이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미안해, 하나야, 나 때문에 기분 다 망쳤지?”“뭔 소리야!”임하
이서의 메시지를 확인한 마이클 천은 다소 의아했다.[갑자기 왜요?]이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내일 치료받기를 바란다는 얘기만 했다.마이클 천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결국, 돈줄을 쥔 자가 갑이니.치료 시간을 확정하고 나서야 이서의 어수선한 마음은 다소 진정해졌다.그녀는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이제 내일만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이서와 전화를 마친 후 지환의 계속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니 손에 일이 안 잡힐 리가 없었다.“아니, 방금 이서 씨랑 통화했잖아, 왜 그런데 아직도 저기압이야?”이상언은 이해할 수 없었다.지환은 말없이 눈으로 멍하니 바닥만 바라보았다.이상언은 그를 슬쩍 밀쳤다.지환은 그제야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이상언은 지환의 눈동자가 까맣고 유난히 밝은 걸 발견했다. ‘젠장, 이건 폭풍전야의 징조다.’“너... 왜 그래?”지환은 미간을 꾹 눌렀다.“아니야. 괜찮아.”“괜찮기는, 네 모습을 봐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은데.” 이상언은 친구가 걱정되었다.“도대체 무슨 일이길래?”지환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기우이길 바랄 뿐이야.”이서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이상언은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것 같았다.“그럼 이렇게 하자, 내일 나랑 같이 이서 씨 있는 곳으로 가보자.”‘임하나도 볼겸.’지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럼 일찍 쉬어.”오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음.”‘오늘도 또 불면의 밤이 되겠구만.’다음날 이른 아침, 지환은 일어나자마자 이상언에게 전화를 걸었다.이상언은 아직 꿈나라에 있었다. 지환의 전화에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이렇게 일찍 갈 필요 없잖아. 이제 겨우 6시야. 이서 씨 어디 도망 안 간다고.”지환의 미간을 있는 대로 구겼다.“얼른 일어나, 지금 넘어 갈게.”이상언은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지환의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참지 못하고 울분을 토로했다.“친구야, 너 이서 씨랑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미치겠지
두 사람은 곧 마이클 천의 병원에 도착했다.임하나는 원래 치료실 벤치에서 이서를 기다릴 예정이었는데, 이서는 먼저 들어가라고 성화였다.“치료 마치면 택시 타고 갈게, 너 먼저 돌아가.”“정말 괜찮겠어?”“의사 샘이 둘만 보자고 하셔서..., 언제 마칠지도 모르는데, 먼저 들어가는 게 좋겠어.”“알았어.”임하나는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나섰다.임하나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이서는 마이클 천에게 말했다.“선생님, 시작하시죠.”마이클은 하려던 말을 얼버무렸다.이서는 빙그레 웃었다.“저는 이미 준비 다 되었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따라오시죠.” 마이클 천은 이서를 데리고 특별히 마련된 진료실로 갔다.진료실의 외벽은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차갑고 삼엄해 보였다.마이클 천이 문을 열었다.안에는 의자 하나가 보였고, 의자 옆에는 다양한 의료기기들이 놓여 있었다.“앉으세요.”마이클 천은 시시각각 이서의 표정 변화에 주의를 기울였다.눈앞의 기기에 별로 놀라지 않은 모습을 보고서야 한숨을 돌렸다.이서는 마이클 천의 지시에 따라 의자에 누워 천천히 눈을 감았다.옆에 있던 간호사는 즉시 앞으로 다가가 차가운 기구를 이서의 신체 각 부위에 붙였다.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기기의 차가운 촉감에 이서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찌릿했다.“이서 씨, 모든 잡념은 버리고 제 얘기를 들으면서 꿈나라로 들어가는 겁니다.지금 풀밭에 누워 있습니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이 보인다고 상상해 보세요.”심리학 방면의 대가답게 시작하자마자, 이서는 정신이 혼미해지며 잠이 들었다.꿈속에서 그녀는 마치 정말 풀밭에 있는 것 같았다. 먼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모든 것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그녀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천둥번개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놀라서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다.천둥과 번개의 굉음은 점점 가까워졌다. 마치 그녀의 옆까지 바짝 쫓아온 것 같았다.그녀의 느낌은 틀리지 않았
임하나는 홧김에 말을 뱉고는 곧 후회했다.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으니.그녀는 오히려 목을 꼿꼿이 세우고 이상언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이상언은 속눈썹을 거두고 다시 한 번 말했다.“오늘 내가 자기를 막아선다면, 우리 둘은 깨진다는 거다. 그 얘기죠? 지금?”“네.” 임하나의 떨리는 소리로 답했다.“우리 감정이 이렇게 가벼웠던 거군요.”이상언은 쓴웃음을 지었다.“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서도, 우리 사이가 이처럼 가벼운 사이인 줄은 몰랐네.”임하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 얘기 그만하고 싶어요. 비켜요. 나 이서 지키러 갈 거야!”저는 지환이 이서를 아프게 하는 걸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없다.“그래요.” 이상언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철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도 지금 우리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이서 씨와 지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고. 지환이 이서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두 사람이 막 결혼했을 때, 지환도 이서가 은철의 약혼녀였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나중에 알았을 때는, 이서가 하씨 집안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니까, 갖은 방법을 써서 숨기려고 했던 거고. 이 모든 건 이서랑 함께하기 위해서였다고... 지환이 이서를 다치게 할 거라고 생각된다면, 가요.”말이 끝나자, 이상언은 한 걸음 물러서며 길을 내주었다.임하나도 그제야 좀 진정되는 듯했다.텅 빈 복도를 보며,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웅크리고 제자리에 앉았다.“하늘도 무심하지, 이서는 태어날 때부터 하씨 집안과 엮여서 한번도 편안한 날을 보낸 적이 없어. 그래도 결혼하면서 하씨 집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 남편이 하씨 집안 사람이라니...”이상언의 눈동자는 고통으로 가득했다. 상심에 빠진 임하나를 보니 꼭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끝내 다가가지 않았다.같은 시각, 진료실은 ‘펑’하는 소리와
마이클 천은 바로 나갔다.마이클이 자리를 비우자, 이상언은 지체하지 않고 곧 지환에게 말했다.“지환아, 잘 들어. 너 지금 선택해야 해. 이서 씨가 고통받도록 두던가, 아니면... 널 잊게 하던가.”임하나는 숨을 죽이고 긴장한 모습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녀도 지환이 어떤 선택을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이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던 그에게는 고통이 따를 것이기다.한 세기가 같은 몇 분이 지나고, 지환의 고통에 휩싸인 목소리가 들렸다.“날 잊게 해.”말을 마친 지환은 육안으로 볼 수 있듯이 초췌해졌다.옆에서 지켜보던 임하나도 마음이 아플 정도로.계속 입을 꼭 다물고 있던 임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방법은 없어요?”이상언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결정했으면 나가자.”임하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이서를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진료실을 나섰다.막 몸을 돌려 다시 한번 이서를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문이 닫혀버렸다.임하나가 긴장한 듯 말했다.“대체 지금 뭐하는 거예요?”유리 창문을 통해 안쪽을 보던 이상언이 지환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긴장하지 마. 단지 이서와 제대로 작별하고 싶었을 거예요.”임하나의 마음도 칼로 에이듯이 아팠다.진료실 안.지환은 이서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시간이 1초, 1초 흘러갈 때마다 그는 심장이 한 올 한 올 도려지는 것 같았다.“자기야, 날 꼭 기억해줄 거지? 난 자기 믿어.”그는 이서의 손을 자신의 볼에 대고 어루만지며 말했다.이서의 피부에서 느껴지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꿈속의 이서는 무언가를 느끼기라도 한 듯 미간을 다시 한번 깊게 찌푸렸다.5분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치료실에 들어온 마이클 천은 지환의 모습을 보면서 말했다.“대표님, 나가 주셔야 합니다.”지환은 이서를 그윽한 눈으로 보고, 또 보았다. 빨개진 눈동자를 숨기고서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마이클 천을 바라보았다.“잘 부탁해요, 다만 기억해.
마이클 천이 답했다.“현재로서는 저도 아직 확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서 씨가 깨어나야 알 수 있습니다.”진료실이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또 족히 1세기가 지나서 마침내 이서가 깨어났다.마이클 천은 앞으로 다가가려는 사람들을 막아서며 말했다.“깨어났어요?”이서는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눈앞의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곧 임하나에게 집중되었다.“하나?”임하나는 기뻤다.“이서야, 나 기억해?”“하나야, 무슨 소리야? 그리고 여긴 어디야? 나 왜 여기 있지?”임하나는 이상언을 한번 보고서야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물었다.“이서야, 다른 거 더 기억나는 거 없어?”이서는 갑자기 목을 움츠렸다. 긴장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을 보며 임하나의 손을 꼭 잡았다.“하나야, 저 두 사람은 누구야, 네 친구들이야?”그중 한 사람의 눈빛은 정말 무서웠다.매우 강한 소유욕을 띤 그런 눈빛이라고나 할까...임하나는 고개를 돌려 지환을 한번 보았다.“아, 잊었구나. 저분은...”마이클 천은 갑자기 뒤에서 임하나를 살짝 잡아당겼다.“하나 씨.”그는 고개를 저으며 임하나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표시했다.“이서 씨, 여기서 잠깐 쉬세요. 우리 잠시 후에 다시 올게요.”이서는 불안한 듯 임하나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녀는 공포로 가득 찬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두려움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빛에, 지환은 날카로운 칼이 그의 가슴을 에이는 것 같았다.지환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임하나도 마음이 아팠다.비록 이서를 속인 개자식이긴 하지만...“가요.” 이상언은 임하나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임하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두 사람이 문 쪽에 도착했을 때, 지환이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한, 이상언은 앞으로 가서 그를 끌어당겼다.“가자.”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지환을 쳐다보는 이서를 보고 있자니 주위사람들조차 안쓰럽게 만들었다.지환을 진료실에서 데리고 나간 이상언은 즉시 치료실
그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집안의 몰락으로 지환이 부득이하게 가장의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금처럼 풀이 죽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이서를 만난 후, 지환도 드디어 사람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오늘 지환도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나약한 순간이 있다는 걸 느꼈다.이상언은 지환 옆에 말없이 서 있다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가자.”지환도 묵묵히 몸을 돌려 진료실의 방향을 한 번 보았다.“너 먼저 가, 난 여기서 기다리고 싶어.”“그런데...” 이상언은 숨을 들이쉬었다.“그럼 내가 같이 있어 줄게.”지환은 아무 말없이 몸을 돌려 차로 갔다.이상언도 조수석의 위치에 따라 앉았다.같은 시각, 임하나는 소설 마니아의 위력을 발산하며 이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그러니까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잃었다는 거지. 그래서 정신의학과 선생님께 진료를 본 거고, 여기 진료실에 있는 거고...”“응. 맞아.” 임하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이서를 쳐다보았다.이 순간, 그녀는 왜 지환이 이서를 속이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이서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그럼 사고 낸 사람은?”“아, 그거 이미 보험 처리하고 다 끝냈어. 걱정하지 마. 우리 이제 집에 가자.”진료실 내의 다양한 의료기기를 둘러본 이서는 마음속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뭐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왜?”“아니야.” 이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물었다.“방금 그 두 사람은 누구야, 네 친구야?”“응.”“근데 아까 그 남자, 나를 보는 눈빛이 무서웠어. 돈 떼먹은 사람처럼 말이야, 내가 설마 돈 빌렸어?”눈가에 핑 도는 눈물을 감추고자 임하나는 얼른 눈을 깜빡거렸다.“아니야, 그 사람 인상 좀 더럽지?”그녀는 바삐 몸을 돌려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갈까?”“그래.” 침대에서 일어난 이서는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임하나는 즉시 몸을 돌려 이서 쪽으로 걸어왔다.“이서야...”“나 괜찮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