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의 애교에 지환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다행히 머릿속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이성의 끈이 그를 제때에 붙잡았다.“여보, 나 정말 같이 못 가. 그 날... 그 날 중요한 선약이 있었어.”“무슨 중요한 일? 나보다 더 중요해?” 이서는 뾰로통하게 붉은 입술을 내밀며 몸을 돌렸다.그녀는 이번 인수인계식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연을 소개할 수 있기를 정말로 바랐다.하필 지환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지 않았다.이서는 이 상황이 정말 화가 나고 아쉬웠다.지환은은 이서의 허리를 껴안고 목덜미를 살짝 스치며,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꽤 육감적이었다.“당신이 물론 첫 번째야. 하지만 당신의 인수인계식이 더 완벽했으면 좋겠어. 내가 안 나타났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될걸?”“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라니.”지환의 말에 이서가 불쾌하게 대꾸했다.지환은 이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이서는 상황을 보고 망설이다가 말했다.“미안, 내가 너무 진지했네. 별다른 뜻은 없었어. 이렇게 중요한 날에 당신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지환 씨를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 지환 씨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그런 것 말고!”지환은 고개를 숙이고 이서를 쳐다보았다.“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이서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그 말들은 너무 듣기 거북했다.이서는 결코 지환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말해봐.” 지환은 이서를 안고 다리 위에 앉혔다.“어디 들어나 봅시다.”“싫어.” 이서는 지환의 품에 머리를 묻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지환은 낮고 가볍게 웃으면서 거친 손가락으로 운서의 허리를 매만졌다. 사람을 끄는 목소리는 마치 첼로 연주음처럼 들렸다.“왜?”“좋은 말도 아닌데, 음...”지환의 차가운 입술이 갑자기 이서의 입술을 덮자 이서는 깜짝 놀랐다. 반항하려고 했지만 두 손이 지환에 의해 뒤로 잡혔다.그러자 모든 저항은 신음소리로 변했다.결국 이서는
이 메시지를 보낸 후 지환은 핸드폰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품 안의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때 이서는 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입속으로는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그런 거 아니야, 난 아니야, 난 정말 아니야...”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그러나 이서가 이러는 것을 볼 때마다 지환의 마음은 늘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는 이서를 꼭 안고 이서에게 온몸으로 힘과 온기를 전달하면서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다행스러운 것은 마이클 첸은 이서에게 약을 처방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처방으로 이서는 이전처럼 밤낮으로 악몽을 꾸지 않았다.최근에는 예전처럼 자다가 놀라서 깨는 일도 없었다.곧 깊이 잠을 잘 자게 되었다.이서가 잠든 것을 보고 지환은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감고 이서와 함께 깊이 잠들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는 하은철의 마지막 답장을 보았다.“관학루, 내일 저녁 9시, 올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이 문자는 어제 보낸 것이었다.지환은 눈썹을 모으고 휴대전화를 접으려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발견다.“깼어?”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앉았다.“내가 어쩌다 잠들었지?”그녀의 기억으로는 어젯밤에 지환에게 무슨 중요한 일을 말했었다.그러다가 부지불식간에 잠이 들었다.무슨 중요한 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이서는 자기 머리를 몇 번 툭툭 쳤지만, 여전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왜?” 지환은 이서의 손을 가리며 말했다.“더 보조되려고?”“아니야, 어젯밤에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얘기했던 사실은 기억나는데 왜 무슨 일이었는지가 전혀 기억이 안 나지? 쉬, 내 머리가 고장 난 거 아닌가 몰라.”지환은 가볍게 웃었다.“이렇게 해서 머리가 고장 나면, 다른 사람들은 아예 머리가 없게?”이서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깨달았다.“알았다! 옛날 임금들은 예쁜 여자가 사람을 망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작은 아빠!”은철은 결국 일어서서 지환에게 인사를 했다.지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은철과 마주 앉았다.“앉으세요.”은철은 지환과 마주 앉은 후에야 무언가 눈치챘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너무 유치한 것 같아 그냥 참고 계속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한순간의 감정이 지나가고 나자 은철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왜 저에게 말 안 했어요? 왜 우리를 속이려고 한 겁니까? 할아버지는 작은 아빠와...”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지환을 슬프게 바라보았다.“작은 아빠는 조카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지환은 은철에게 있어 마치 하늘에 있는 태양처럼 줄곧 그의 방향을 인도했다.은철은 언젠가 지환이라는 태양의 눈부신 빛이 그를 비춰 그를 태울 수도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지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은철을 쳐다보았다. 그는 우아하게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결혼은 내 개인적인 일인데, 내가 너에게 일일이 말해야 하니?”“그렇다 해도 그건 이서잖아요! 내 약혼녀! 작은 아빠는 대체 어떻게?!” 하은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은철은 지환에게 배신당했다고 느꼈다.“내가 아는 건 단지 내 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둘 다 싱글이었다는 거야.”하은철은 허탈해하며 일어섰다.“작은 아빠, 맞습니다. 과거에는 확실히 제가 잘못한 게 있죠. 제가 이서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그렇게 황당한 제안을 했습니다. 근데 그건 제가 이서를 사랑했다는 걸 미처 몰랐을 때 일입니다. 윤수정은 제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윤수정을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그게... 이서를 다치게 한 이유가 될 수 있어?” 지환은 담배를 한 모금 내쉬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속으로 그의 검고 무거운 눈동자 속에는 은철을 향한 짙은 조롱이 담겨 있었다.은철은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의자에 주저앉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예, 모두 제 잘못 맞습니다. 제가 사랑과 연민을 잘 구분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
이번에 은철은 영혼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우리는...”“너희?”지환은 모질고 경멸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마치 신이 하늘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너희 가족들이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너와 너희 가족들 때문에 이서는 하씨 집안을 증오해, 그래서 이서는 너희들과 같은 하씨인 나를 좋아할 수 없게 된 거야!”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너는 아직도 내가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느냐고 따질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하니?”지환의 검은 눈동자는 은철을 무겁게 응시했다.마치 바람이 새지 않는 촘촘한 그물처럼 은철을 겹겹이 에워싸는 것 같았다.은철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네,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서에게 보상해주고 싶어요. 작은 아빠, 이서와 이혼해주세요. 이제 제게 기회를 주시라고요”지환은 은철의 가슴을 발로 찼다.은철은 갑자기 방어하지도 못하고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아직 낫지 않은 상처가 다시 건드려져 금세 핏발이 배어 하얀 셔츠에 물들었다.지환의 시선은 그 핏자국에 머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이서를 너와 결혼하도록 강요하는 순간부터 나와 너희 집안은 아무 상관도 없어. 하은철, 넌 이제 내 조카가 아니라 내 여자를 뺏으려는 남자야. 지금까지 너 같은 사람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방법으로 상대해왔어. 만약 네가 하씨 가문이 도산하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으면, 이쯤에서 네 마음 정리해. 그렇지 않으면, 설령 전체YS그룹이 너와 내기를 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수렁에 빠뜨려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게 할 거야!”지환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디며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은철은 힘겹게 일어나 쫓아가려다 이천에 가로막혔다.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은철은 목소리를 높였다“작은 아빠, 피차 깨끗한 척하지 맙시다. 작은 아빠의 정체를 이서에게 말할 겁니다.”이미 엘리베이터 앞에
마이클 첸은 서슬 퍼렇게 고압적인 지환의 모습이 이미 익숙했다.그리고 마이클 첸은 심리학 전문가로서 최근 이서의 치료 기간에 걸친 관찰을 통해 지환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이서뿐이라는 것을 알았다.지환의 말을 들은 마이클 첸은 의자를 열고 지환에게 먼저 앉으라고 권했다.“하 대표님, 지난번에 윤이서 씨에게 최면을 걸고 나서 전문가팀의 다른 멤버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다 함께 상의한 결과 윤이서 씨의 경우 이전에 최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치료를 위한 2차 최면을 걸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첫 최면 때 쓴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윤이서 씨는 분명히 이미 그 경험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최면술사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지환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지금은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전기충격 치료를 통해 강력한 자극을 뇌에 주어 하 어르신의 죽음을 잊게 하는 것입니다.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최면입니다. 하지만 윤이서 씨가 처음 최면에 걸렸을 때 그 최면술사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 모르기 때문에 최면 이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예상되는 최악의 결과는?”“최악이라면...”마이클 첸은 잠깐 멈춰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최악의 결과는... 윤이서 씨는 모든 기억을 다 잃게 될 겁니다.”지환의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졌다.“나까지?”마이클 첸은 지환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떨리는 것을 들었다.마이클 첸은 매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전부 다요.”지환은 눈을 깜박거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그것 말고 제3의 치료법은 없겠습니까?”마이클 첸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지환의 질문에 대답했다.“하 어르신이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을 직접 본 윤
구태우가 웃으며 말했다.[먼저 심가은 씨 쪽 상황을 말씀드릴게요. 가서 확인해보니 심가은 씨는 확실히 보육원에서 입양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심가은 씨가 보육원에서 데려갔을 때는 고작 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지난번에 말한 그 하이만 스웨이의 딸과는 전혀 조건이 맞지 않습니다.]“보육원에서 데려간 후 대여섯 살이 되어서 다시 심씨 집안으로 들어간 게 아닐까요?” 이서는 구태우가 제시한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다.[이런 가능성이 꼭 없으리라는 법도 없죠. 내가 알아봤는데 보육원에서 심가은 씨를 데려간 뒤 심씨 집안 유모가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심근영 부부도 가끔 심가은 씨를 찾아갔지만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자 심씨 집안으로 데려왔습니다.]이서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한 말이 뜻밖에도 앞뒤 상황이 딱 맞아떨어졌다.“그래도 난 황당합니다... 아무리 몇 번 안 만났어도 대여섯 살이나 된 아이를 착각할 수는 없잖아요?”[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사람을 시켜 더 자세히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아마도 분명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그런 건 상관없어요.”이서는 속눈썹을 늘어뜨렸다.“조사 결과만 정확하면 됩니다.”그녀는 공을 들여 이 일을 정확히 조사하려고 애썼다.스웨이 작가님의 일이니까.[문제없습니다.]구태우 쪽에서 종이를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윤 대표님에 대한 일 말입니다. 따로 알아봤는데요. 대표님이 대여섯 살 때, 즉 출국하던 해에 확실히 심리상담소 진료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담소의 의사는 기억 정화 전문이라고 합니다.]“기억을 정화한다고요?”[네, 최면을 이용하여 머릿속의 기억을 지우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곳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심리상담소의 정신과 의사가 사람을 도와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
지환의 몸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느껴지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지환을 살폈다.“당신 왜 그래요? 첸 선생님한테서 이야기 듣고 돌아온 거 아니에요?”지환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마 자기 일 외에 다른 것은 없을 것이라고 이서는 생각했다.지환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이서는 입을 꾹 다물고 하고 싶은 말을 눌러 참았다.“밥은요?”“아직 안 먹었어.”“그럼 오늘은 나가서 먹자.”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말했다.“지환 씨, 우리 아직 한 번도 촛불 켜고 같이 저녁 먹은 적 없는 것 같아.”지환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응.”“그럼 우리 오늘 프랑스 요리 먹으러 가요, 지환 씨가 전에 나에게 청혼했던 그 집 어때요?”“아직도 기억해?”“그럼요!”이 일을 말하자 이서는 지환이 청혼했던 날의 일을 잊은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아니, 내가 어떻게 잊겠어?” 지환은 이서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당신 먼저 올라가서 옷 갈아입어. 내가 사장님께 전화해서 우리 자리 남겨 달라고 할게.”“좋아요.”이서는 지환에게 대답을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지환은 이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가슴이 아파져 왔다.마이클 첸이 제안한 이른바 세 가지 치료 방안은 모두 이서와 지환을 궁지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지환은 눈을 깊이 감고 잠시 동안 눈 속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식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환이 이 모든 일을 마치자 이서도 마침 스커트를 갈아입고 내려왔다.그녀가 오늘 입은 것은 프랑스 스타일 스커트였다.치맛자락이 넓고 나풀거리며 흘러내리면서 이서의 예쁜 발목만 살짝 드러난다.그리고 허리를 묶는 디자인은 그녀가 지환의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가냘픈 허리를 드러냈다.지환은 양복을 벗어 이서의 상의 위에 걸쳤다.“가자.”이서는 지환을 쳐다보며 말했다.“왜 나에게 수트를 걸치는 거예요? 이렇게 코디하면 정말 보기 흉한데.”지환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내가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이렇게
“지금 이렇게 이야기 쓰는 거 너무 재밌어. 내 이런 느낌을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까?”이서는 이야기할수록 들떠서 지환을 바라보았다.이서를 보며 지환이 살짝 웃었다.“음.”지환은 비록 대본을 쓸 줄은 모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들이는 열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되었다.지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서는 기뻐하며 입술을 쀼루퉁하게 내밀고 웃었다.이서는 자신이 아끼는 일을 지환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까 봐 걱정했다.과거 하은철은 수도 없이 이서와 이서가 좋아하는 것들을 무시했다.하지만 지환이 은철과 다른 모습을 보이자 이서는 매우 기뻤다.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함께 웃는 지환이 자신을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래서, 나 응원해주는 거지?”“그럼.” 지환은 이서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손을 꼭 잡았다.“그런데 여보, 당신도 나에게 한 가지 약속해줘.”“무슨 약속?”이서가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네 치료에 대한 문제는 나에게 숨기지 마.”이서는 지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지환 씨를 속여? 안심해. 어떤 치료를 받든 꼭 당신과 먼저 상의할게.”지환은 이서의 눈을 깊이 응시하다가 이서의 손을 놓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이서는 지환의 귀여운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뭐 하는 거야? 나랑 약속하자고?”“협의서 써서 거기에 서명까지 하자면 너무 번거롭잖아, 이렇게 약속하자.”이서는 가끔 지환이 유치할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유치하지만 귀엽네.’“그래.” 그녀는 선뜻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지환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이렇게 새끼손가락으로 고리 걸어 약속하면 그 약속은 100년 동안 지켜진대.”말이 끝나자 또 엄지손가락을 지환의 엄지손가락에 도장 찍듯 꾹 눌렀다.“이제 됐죠?”지환의 찌푸려진 미간이 그제야 살짝 펴졌다.“응.”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다.이서가 귀가하자마자 곧바로 새 은행장인 서찬영으로부터 인수인계에 관해 묻는 전화가 왔다. 인수인계식이 은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