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철 오빠, 나한테 이러면 안 돼...나한테 이러면 안 돼...나한테 감정이 하나도 없어도, 내가 오빠의 생명의 은인이잖아, 나 아니었으면 오빠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 수 있었겠어? 오빠 정말... 진짜 나한테 이러는 거 아니지!]은철은 무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그렇긴 하다.윤수정은 은철을 위험에서 구했다.하지만 요 몇 년 동안 은철도 여러 경로로 수정에게 은혜를 갚았다.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수정이 돈을 원하든 사람을 원하든 다 상관없지만, 은철은 앞으로 더 이상 수정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가 원하는 것은... 이서와 함께하는 것이었다.이 순간에야 은철은 비로소 자신이 이서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정말로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서 이서를 잃을 수는 없었다.‘반드시 작은 아빠의 손에서 이서를 되찾을 거야.’이때 연속적으로 여러차례 충격을 받은 수정은 완전히 바닥에 쓰러졌다.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민씨 그룹 인수 건이 이미 확실히 결정되었고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하나둘씩 잇달아 떠났다.이렇게 큰 파티룸에 수정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수정은 갑자기 헤벌쭉 웃기 시작했다“허허... 허허, 윤이서, 너는 이렇게 하면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잊지 마, 너는 윤씨 가문의 딸이 아니야! 절대 아니라고! 너는 아니야!”큰 파티룸에는 윤수정의 절망적인 절규가 울려 퍼졌다.아무도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무수한 외로움만이 그녀를 겹겹이 감싸고 있었다....은행에서 민씨 그룹이 이서에게 인수될 것이라는 발표 후 인수 당사자인 이서가 참석해야 하는 간단한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다.이서가 지환에게 물었다.“지환 씨, 나랑 같이 갈래?”민씨 그룹의 새로운 주인을 소개하는 날은 아주 시끌벅적할 것이었다.그날은 수많은 매체가 와서 상황을 중계할 것이다.이서는 그날 지환을 모두에게 소개하고 싶었다.모든 사람들에게 지환이 멍청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릴
이서의 애교에 지환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다행히 머릿속 마지막 한 가닥 남은 이성의 끈이 그를 제때에 붙잡았다.“여보, 나 정말 같이 못 가. 그 날... 그 날 중요한 선약이 있었어.”“무슨 중요한 일? 나보다 더 중요해?” 이서는 뾰로통하게 붉은 입술을 내밀며 몸을 돌렸다.그녀는 이번 인수인계식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연을 소개할 수 있기를 정말로 바랐다.하필 지환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지 않았다.이서는 이 상황이 정말 화가 나고 아쉬웠다.지환은은 이서의 허리를 껴안고 목덜미를 살짝 스치며, 낮고 울리는 목소리가 꽤 육감적이었다.“당신이 물론 첫 번째야. 하지만 당신의 인수인계식이 더 완벽했으면 좋겠어. 내가 안 나타났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하게 될걸?”“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아쉬움라니.”지환의 말에 이서가 불쾌하게 대꾸했다.지환은 이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이서는 상황을 보고 망설이다가 말했다.“미안, 내가 너무 진지했네. 별다른 뜻은 없었어. 이렇게 중요한 날에 당신이 함께하면 좋겠다는 거지.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지환 씨를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 지환 씨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말하는 그런 것 말고!”지환은 고개를 숙이고 이서를 쳐다보았다.“사람들이 뭐라고 하는데?”이서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그 말들은 너무 듣기 거북했다.이서는 결코 지환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말해봐.” 지환은 이서를 안고 다리 위에 앉혔다.“어디 들어나 봅시다.”“싫어.” 이서는 지환의 품에 머리를 묻고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지환은 낮고 가볍게 웃으면서 거친 손가락으로 운서의 허리를 매만졌다. 사람을 끄는 목소리는 마치 첼로 연주음처럼 들렸다.“왜?”“좋은 말도 아닌데, 음...”지환의 차가운 입술이 갑자기 이서의 입술을 덮자 이서는 깜짝 놀랐다. 반항하려고 했지만 두 손이 지환에 의해 뒤로 잡혔다.그러자 모든 저항은 신음소리로 변했다.결국 이서는
이 메시지를 보낸 후 지환은 핸드폰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품 안의 이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때 이서는 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입속으로는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그런 거 아니야, 난 아니야, 난 정말 아니야...”이런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그러나 이서가 이러는 것을 볼 때마다 지환의 마음은 늘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는 이서를 꼭 안고 이서에게 온몸으로 힘과 온기를 전달하면서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다행스러운 것은 마이클 첸은 이서에게 약을 처방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처방으로 이서는 이전처럼 밤낮으로 악몽을 꾸지 않았다.최근에는 예전처럼 자다가 놀라서 깨는 일도 없었다.곧 깊이 잠을 잘 자게 되었다.이서가 잠든 것을 보고 지환은 그제야 안심하고 눈을 감고 이서와 함께 깊이 잠들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는 하은철의 마지막 답장을 보았다.“관학루, 내일 저녁 9시, 올 때까지 기다릴 겁니다.”이 문자는 어제 보낸 것이었다.지환은 눈썹을 모으고 휴대전화를 접으려다 이서가 깨어나는 것을 발견다.“깼어?”이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앉았다.“내가 어쩌다 잠들었지?”그녀의 기억으로는 어젯밤에 지환에게 무슨 중요한 일을 말했었다.그러다가 부지불식간에 잠이 들었다.무슨 중요한 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이서는 자기 머리를 몇 번 툭툭 쳤지만, 여전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왜?” 지환은 이서의 손을 가리며 말했다.“더 보조되려고?”“아니야, 어젯밤에 당신에게 정말 중요한 얘기했던 사실은 기억나는데 왜 무슨 일이었는지가 전혀 기억이 안 나지? 쉬, 내 머리가 고장 난 거 아닌가 몰라.”지환은 가볍게 웃었다.“이렇게 해서 머리가 고장 나면, 다른 사람들은 아예 머리가 없게?”이서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득 깨달았다.“알았다! 옛날 임금들은 예쁜 여자가 사람을 망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작은 아빠!”은철은 결국 일어서서 지환에게 인사를 했다.지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은철과 마주 앉았다.“앉으세요.”은철은 지환과 마주 앉은 후에야 무언가 눈치챘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너무 유치한 것 같아 그냥 참고 계속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한순간의 감정이 지나가고 나자 은철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왜 저에게 말 안 했어요? 왜 우리를 속이려고 한 겁니까? 할아버지는 작은 아빠와...”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지환을 슬프게 바라보았다.“작은 아빠는 조카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지환은 은철에게 있어 마치 하늘에 있는 태양처럼 줄곧 그의 방향을 인도했다.은철은 언젠가 지환이라는 태양의 눈부신 빛이 그를 비춰 그를 태울 수도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지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은철을 쳐다보았다. 그는 우아하게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결혼은 내 개인적인 일인데, 내가 너에게 일일이 말해야 하니?”“그렇다 해도 그건 이서잖아요! 내 약혼녀! 작은 아빠는 대체 어떻게?!” 하은철은 말을 잇지 못했다.은철은 지환에게 배신당했다고 느꼈다.“내가 아는 건 단지 내 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둘 다 싱글이었다는 거야.”하은철은 허탈해하며 일어섰다.“작은 아빠, 맞습니다. 과거에는 확실히 제가 잘못한 게 있죠. 제가 이서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그렇게 황당한 제안을 했습니다. 근데 그건 제가 이서를 사랑했다는 걸 미처 몰랐을 때 일입니다. 윤수정은 제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윤수정을 모른 척할 수 없었어요.”“그게... 이서를 다치게 한 이유가 될 수 있어?” 지환은 담배를 한 모금 내쉬었다.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속으로 그의 검고 무거운 눈동자 속에는 은철을 향한 짙은 조롱이 담겨 있었다.은철은 누군가에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의자에 주저앉아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예, 모두 제 잘못 맞습니다. 제가 사랑과 연민을 잘 구분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
이번에 은철은 영혼까지 떨리는 것 같았다.“우리는...”“너희?”지환은 모질고 경멸 섞인 말투로 말했다. 마치 신이 하늘에서 어리석은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너희 가족들이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너와 너희 가족들 때문에 이서는 하씨 집안을 증오해, 그래서 이서는 너희들과 같은 하씨인 나를 좋아할 수 없게 된 거야!”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너는 아직도 내가 왜 진실을 말하지 않느냐고 따질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하니?”지환의 검은 눈동자는 은철을 무겁게 응시했다.마치 바람이 새지 않는 촘촘한 그물처럼 은철을 겹겹이 에워싸는 것 같았다.은철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떨렸고,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네,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서에게 보상해주고 싶어요. 작은 아빠, 이서와 이혼해주세요. 이제 제게 기회를 주시라고요”지환은 은철의 가슴을 발로 찼다.은철은 갑자기 방어하지도 못하고 의자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아직 낫지 않은 상처가 다시 건드려져 금세 핏발이 배어 하얀 셔츠에 물들었다.지환의 시선은 그 핏자국에 머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이서를 너와 결혼하도록 강요하는 순간부터 나와 너희 집안은 아무 상관도 없어. 하은철, 넌 이제 내 조카가 아니라 내 여자를 뺏으려는 남자야. 지금까지 너 같은 사람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방법으로 상대해왔어. 만약 네가 하씨 가문이 도산하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으면, 이쯤에서 네 마음 정리해. 그렇지 않으면, 설령 전체YS그룹이 너와 내기를 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수렁에 빠뜨려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게 할 거야!”지환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디며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은철은 힘겹게 일어나 쫓아가려다 이천에 가로막혔다.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은철은 목소리를 높였다“작은 아빠, 피차 깨끗한 척하지 맙시다. 작은 아빠의 정체를 이서에게 말할 겁니다.”이미 엘리베이터 앞에
마이클 첸은 서슬 퍼렇게 고압적인 지환의 모습이 이미 익숙했다.그리고 마이클 첸은 심리학 전문가로서 최근 이서의 치료 기간에 걸친 관찰을 통해 지환의 정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이서뿐이라는 것을 알았다.지환의 말을 들은 마이클 첸은 의자를 열고 지환에게 먼저 앉으라고 권했다.“하 대표님, 지난번에 윤이서 씨에게 최면을 걸고 나서 전문가팀의 다른 멤버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다 함께 상의한 결과 윤이서 씨의 경우 이전에 최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결론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치료를 위한 2차 최면을 걸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첫 최면 때 쓴 방법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윤이서 씨는 분명히 이미 그 경험에 대해 아무런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최면술사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지환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지금은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전기충격 치료를 통해 강력한 자극을 뇌에 주어 하 어르신의 죽음을 잊게 하는 것입니다.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최면입니다. 하지만 윤이서 씨가 처음 최면에 걸렸을 때 그 최면술사가 어떤 수단을 썼는지 모르기 때문에 최면 이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예상되는 최악의 결과는?”“최악이라면...”마이클 첸은 잠깐 멈춰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최악의 결과는... 윤이서 씨는 모든 기억을 다 잃게 될 겁니다.”지환의 표정이 극도로 일그러졌다.“나까지?”마이클 첸은 지환의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떨리는 것을 들었다.마이클 첸은 매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전부 다요.”지환은 눈을 깜박거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들었다.“그것 말고 제3의 치료법은 없겠습니까?”마이클 첸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지환의 질문에 대답했다.“하 어르신이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을 직접 본 윤
구태우가 웃으며 말했다.[먼저 심가은 씨 쪽 상황을 말씀드릴게요. 가서 확인해보니 심가은 씨는 확실히 보육원에서 입양된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심가은 씨가 보육원에서 데려갔을 때는 고작 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지난번에 말한 그 하이만 스웨이의 딸과는 전혀 조건이 맞지 않습니다.]“보육원에서 데려간 후 대여섯 살이 되어서 다시 심씨 집안으로 들어간 게 아닐까요?” 이서는 구태우가 제시한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다.[이런 가능성이 꼭 없으리라는 법도 없죠. 내가 알아봤는데 보육원에서 심가은 씨를 데려간 뒤 심씨 집안 유모가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심근영 부부도 가끔 심가은 씨를 찾아갔지만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대여섯 살이 되자 심씨 집안으로 데려왔습니다.]이서가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한 말이 뜻밖에도 앞뒤 상황이 딱 맞아떨어졌다.“그래도 난 황당합니다... 아무리 몇 번 안 만났어도 대여섯 살이나 된 아이를 착각할 수는 없잖아요?”[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사람을 시켜 더 자세히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아마도 분명하게 조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그런 건 상관없어요.”이서는 속눈썹을 늘어뜨렸다.“조사 결과만 정확하면 됩니다.”그녀는 공을 들여 이 일을 정확히 조사하려고 애썼다.스웨이 작가님의 일이니까.[문제없습니다.]구태우 쪽에서 종이를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윤 대표님에 대한 일 말입니다. 따로 알아봤는데요. 대표님이 대여섯 살 때, 즉 출국하던 해에 확실히 심리상담소 진료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담소의 의사는 기억 정화 전문이라고 합니다.]“기억을 정화한다고요?”[네, 최면을 이용하여 머릿속의 기억을 지우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곳 직원의 말에 따르면, 그 심리상담소의 정신과 의사가 사람을 도와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
지환의 몸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이 느껴지자 이서는 고개를 들어 지환을 살폈다.“당신 왜 그래요? 첸 선생님한테서 이야기 듣고 돌아온 거 아니에요?”지환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마 자기 일 외에 다른 것은 없을 것이라고 이서는 생각했다.지환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이서는 입을 꾹 다물고 하고 싶은 말을 눌러 참았다.“밥은요?”“아직 안 먹었어.”“그럼 오늘은 나가서 먹자.”이서는 지환의 손을 잡고 말했다.“지환 씨, 우리 아직 한 번도 촛불 켜고 같이 저녁 먹은 적 없는 것 같아.”지환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응.”“그럼 우리 오늘 프랑스 요리 먹으러 가요, 지환 씨가 전에 나에게 청혼했던 그 집 어때요?”“아직도 기억해?”“그럼요!”이 일을 말하자 이서는 지환이 청혼했던 날의 일을 잊은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아니, 내가 어떻게 잊겠어?” 지환은 이서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당신 먼저 올라가서 옷 갈아입어. 내가 사장님께 전화해서 우리 자리 남겨 달라고 할게.”“좋아요.”이서는 지환에게 대답을 남기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지환은 이서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가슴이 아파져 왔다.마이클 첸이 제안한 이른바 세 가지 치료 방안은 모두 이서와 지환을 궁지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지환은 눈을 깊이 감고 잠시 동안 눈 속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식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환이 이 모든 일을 마치자 이서도 마침 스커트를 갈아입고 내려왔다.그녀가 오늘 입은 것은 프랑스 스타일 스커트였다.치맛자락이 넓고 나풀거리며 흘러내리면서 이서의 예쁜 발목만 살짝 드러난다.그리고 허리를 묶는 디자인은 그녀가 지환의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가냘픈 허리를 드러냈다.지환은 양복을 벗어 이서의 상의 위에 걸쳤다.“가자.”이서는 지환을 쳐다보며 말했다.“왜 나에게 수트를 걸치는 거예요? 이렇게 코디하면 정말 보기 흉한데.”지환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내가 보기에는 정말 예쁜데. 이렇게
심유인이 말하지 않자, 심근영은 소민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민찬은 선물에 대해 전혀 몰랐던 터라, 값싼 선물들을 보고 당황하여 얼른 설명했다.“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선물들은 제가 산 게 아니라, 전부 유인이가 산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애초에 유인이는 저한테 몸만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여러분,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소민찬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답례 선물은 안 받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죠?” 소민찬은 이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심씨 가문의 저택을 떠났다. 심유인은 그의 뒤를 쫓아가려다가 심근영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유인아, 우리가 알아듣게끔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니?”심유인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삼촌, 숙모, 저... 저는...”“차마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네요.”소희가 심유인의 곁으로 다가가 냉소하며 말했다.“제가 대신 말씀해 드릴게요.” “제 남자 친구가 운전기사라는 걸 알고, 일부러 소민찬 씨를 찾아가서 남자 친구 역할을 해달라고 한 거죠?” “소민찬 씨는 남자 친구인 척만 하면 되니까, 이 선물들도 소민찬 씨가 샀을 리 없어요.”“전부 다 언니 사비로 사신 거죠?” 심유인의 안색이 아주 어두워졌다.“그런 거 아니야...!”심유인은 아직도 변명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소민찬 씨가 선물을 준비한 게 아니라면, 그 많은 돈은 어디서 난 거니?”이지숙이 물었다. ‘다른 세 가지 선물은 전혀 가짜가 아니었어. 확실히 수십억은 되는 것들이었다고.’‘회사에서 근무하지도 않는 유인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겠어?’심유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심근영은 심유인의 반응을 살피다가 집사를 불렀다.“당장 조사해, 당장!”심유인은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아 ‘털썩’ 소리를 내며 심근영 앞에 무릎을 꿇었다.“삼촌, 제가 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 선물들은... 전부
심유인과 소민찬은 그제야 제자리에 얌전히 섰다.“유인아, 네가 먼저 말해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심유인은 소민찬의 핸드폰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더 많은 비밀이 폭로되는 건 막아야 해!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겠어.’ “사, 사실 민찬 씨는 제 남자 친구가 아니에요. 하지만 민찬 씨가 제 남자 친구가 되길 바랐고, 제가 먼저 그 말을 꺼내기는 부끄러워서 제 남자 친구인 척해달라고 한 거예요. 이번 일로 잘 지내면서 감정을 키우고 싶었거든요.” “절대 다른 뜻은 없었어요. 맹세할게요!” 심유인이 마지막 말을 하지 않았다면, 소희는 심유인을 믿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심유인의 마지막 말은 소희의 의심을 더욱 확고히 했다.‘심유인, 일부러 그런 거구나?’ ‘소민찬을 남자 친구인 척 데려온 건, 현태 오빠에게 망신을 주기 위한 거였어.’ “감정을 키우고 싶었다면서, 왜 저렇게 많은 선물을 사 오라고 한 거예요?”소희는 일부러 모르는척하며 물었고, 단번에 덜미를 잡힌 심유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주방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은 소민찬과 심유인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소민찬은 특히 소지엽의 시선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 그건...”“민찬 씨는 저를 좋아하지 않지만, 소씨 가문은 아무래도 명문가 집안이잖아요. 그런 분들을 뵈러 오려면 선물 정도는 가져와야 하지 않겠어요?”심유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정 교육이 잘 되어 있어서 남의 집에 방문할 때 선물을 챙기는 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2억도 아닌 몇십억짜리 선물을 준비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요?”소희는 비웃으며 선물 더미 옆으로 향했고, 상자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안에도 아주 비싼 게 들었겠죠?” 심유인은 곧장 소희를 막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소희는 선물 상자를 뜯기 시작했고, 이내 안에 있던 선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그 선물을 확인한 소희는 놀라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형, 안녕.”소민찬은 소지엽의 질문을 피하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소지엽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소민찬을 바라보았다.“민찬아,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잖아. 네가 왜 여기 있냐니까?” 소민찬은 이제 마냥 대답을 회피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분명히 실마리가 드러날 것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나만 보고 있어...’소희는 소민찬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의문을 제기했다.“모르셨어요? 소민찬 씨는 유인 언니의 남자 친구예요. 오늘 여기 온 이유도 사실상 저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온 거죠.” “심유인 씨랑 사귄다고?”지엽이 눈살을 찌푸렸다.“며칠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여자는 심유인 씨가 아니었잖아?” 소민찬과 심유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형, 아무래도 잘못 기억하는 것 같아. 그날 같이 밥을 먹은 사람도 유인이었어.” 소지엽은 지난번에 집에서 함께 식사한 여자가 심유인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여자의 성이 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는 어렴풋이 기억나.’‘그 여자는 절대 심유인 씨가 아니었어.’ “아니, 그 여자는 심유인 씨가 아니었어!” 소지엽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리고 그 여자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은 건 불과 며칠 전의 일이잖아. 지금은 왜 또 심유인 씨와 사귄다는 거지?” 소민찬은 한참 동안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못하다가 한참 후에야 다소 역정을 내며 말했다.“형, 이건 내 사적인 일이라, 형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부모님도 내가 여자 친구를 몇 명을 사귀는지 신경 쓰지 않으시는데, 형이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그래, 나는 네 사적인 일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어. 하지만 계속 본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본사에 들어가고 싶다면 절대 스캔들을 만들면 안 돼! 그런 일은 큰 파장을 일으킬 거라고!” 소민찬은 당황하기 시작했다.‘아버지는 나를 좋아하지
소민찬이 비웃으며 말했다.“허, 천재다운 모습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심근영이 말했다.“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군요.” “천재답게 생긴 게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런 규칙은 누가 정한 거죠?” “어차피 임현태 씨는 허풍을 떠는 거지 않습니까? 시험에 합격에서 하버드에 들어갔을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두 사람, 문맹이거나 눈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에요?”소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현태 오빠의 소개란에 당시 오빠의 성적을 적어둔 게 있잖아요. 클릭해서 좀 보세요. 현태 오빠는 수석으로 하버드에 들어갔다고요.”“그리고 오빠에게 추천서를 써준 사람은 하버드에서 공정하기로 유명한 물리학 교수라고요.”“설마 그 교수님보다 두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죠?” 소민찬과 심유인은 그제야 상세 내용을 확인하고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가 또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은 확인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큰소리를 친 것을 후회했다.‘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했다면, 임현태를 다른 방식으로 비웃을 수 있었을 텐데.’“그게 뭐 어떻다고 그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보통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잖아. 하지만 우리 민찬 씨는 달라. 단순히 해외 유학파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경주, 승마, 골프도 할 줄 안다니까?” “소희야, 네 남자 친구는 그렇게 고상한 취미는 즐길 줄 모르지?” 현태가 말했다.“하 대표님의 곁에 있는 경호원에겐 기본인 것들입니다. 만약 그것도 할 줄 모른다면, 하 대표님은 저를 곁에 두지 않으시겠죠.”‘기본’이라는 말은 소민찬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완전히 짓밟는 것이었다. 자동차 경주, 승마, 골프...이런 것들은 흔히 ‘재산을 낭비하며 점차 타락하는 부잣집 도련님들의 기본 패키지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실력을 갖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현태에게는 그저 기본일 뿐이었다.‘감히 날 모욕해?’소민찬이 일어서서 자리를 떠나겠다고 말하려던 참에 고용인이 뛰어와 말했다.“윤 대표님
심유인과 소민찬의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가까스로 하버드에 합격했다고?’‘허풍 떠는 거 아니야?’ “정말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라고요? 하버드 학원 출신이 아니고요?” 현태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저는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이 맞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조사해 보셔도 되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 하버드 대학교 홈페이지를 검색했다.두 사람은 약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홈페이지 링크를 누르자마자 우수한 동문의 행렬에 있는 현태의 얼굴을 발견했다.이를 믿을 수 없는 것은 이지숙도 마찬가지였다.‘정말... 사진 속의 사람이 현태 씨라고?!’ ‘말도 안 돼!’‘소민찬이 어느 대학교에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Y국에 있는 대학교 출신일 거야. 학문도, 능력도 없는 재벌 2세들이 어디서 신분 세탁을 하는지는 불 보듯 뻔한 거니까.’ Y국의 학위는 이수하기가 가장 수월해서 누구나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외부 사람은 분명히 알지 못해서 겁을 먹기 일쑤였다.심유인은 원래 소민찬의 학력을 빌미로 현태를 놀라게 하려 했다.하지만 놀래키기는커녕 본인이 놀라게 된 셈이었다. 심유인은 곧 문제점을 발견했다.“... 하버드 대학교에 체육생으로 입학한 게 아니네요? 전공은 물리학이랑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임현태 씨는 체육에 타고난 거 아니었나요? 왜 물리학을 전공한 거죠?”“아, 시험 봐서 들어간 게 아니라, 부정 입학이었나 보네요, 그렇죠?” 소민찬은 심유인의 말을 듣고, 혈색을 띠며 현태의 학력을 비웃었다.“하하, 유인아, 그런 건 부정 입학이나 비리가 아니라 기부라고 하는 거야.”“임현태 씨, 입학하는 데 얼마가 필요하던가요?”“하하, 하 대표님과 대체 무슨 사이길래 그렇게 아낌없이 돈을 쓰는 거죠?” “저는 학력을 산 적도, 학력을 위해서 돈을 쏟아부은 적도 없습니다. 정당하게 시험으로 합
심근영이 얼른 말했다.“그래, 내가 경솔했군. 하지만 현태는 내 말의 뜻을 알 거야.” “우리 소희는 어깨를 들지도, 손을 쓰지도 못해. 이 아이와 서로 보완될 수 있는 사람을 찾았으니, 아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모두 화기애애한 웃음을 짓는 반면, 옆에 있던 심유인과 소민찬만이 웃지 못했다. 더욱이 소민찬은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 사실, 소민찬이 여기에 온 것은 심유인이 돈을 주면서 자신의 남자 친구 역할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즉, 소민찬은 여기에 와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소민찬은 웃음거리로 전락했으니, 그가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소민찬은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하지만 심유인은 곧장 가서 소민찬을 끌어당겼다.“어디 가요?” 소민찬은 이미 주방에 도착한 심근영 일가를 힐끗 보았는데, 그들은 소민찬과 심유인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소민찬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당연히 가야지! 왜, 계속 남아서 네 사촌 동생의 남자 친구한테 굴욕이라도 당하라는 거야?!” “저는... 저 사람이 그저 운전기사인 줄 알았다고요.”“일단 진정해 봐요. 어쨌든 민찬 씨는 소씨 가문의 사람이잖아요.” “소씨 가문의 도련님이 한낱 경호원보다 못하겠어요?” 소민찬은 분명 소씨 가문의 사람이지만, 소태성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더군다나 소지엽이야말로 소태성 같은 사람인데, 소민찬이 어떻게 명함을 내밀 수 있겠는가? 이것은 소민찬이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외국으로 내몰린 이유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소태성에게 즉시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심유인이 시선과 체면이 하늘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 소민찬은 난감해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봤자 나는 소씨 가문의 도련님일 뿐이야. 사람을 죽일 듯이 때리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고.” 심유인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가요, 저 사람들의 기세를 제대로 꺾어놓자고요.”
“엄마, 뭔가 오해하신 것 같아요. 현태 씨가 왜 그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았다고 생각하세요? 현태 씨의 돈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소희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린 사람은 심유인이었다.“소희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운전기사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이 있겠어?” 소희도 심유인을 따라 웃기 시작했다.“언니, 현태 오빠가 누구의 운전기사인 줄 알고나 말하는 거예요?” “뭐?”심유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이서 언니예요.”“이제 이해가 좀 되세요?”소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심유인의 표정을 보고 말을 덧붙였다.“현태 오빠가 운전기사인 건 명백한 사실이에요. 하지만 또 다른 직업도 있어요. 그건 바로 이서 언니를 보호하는 거죠.” “운전기사일 뿐만 아니라, 경호원이란 말이에요.” 심유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시큰둥하게 말했다.“흥, 그게 뭐 어쨌다고 그래? 기껏해야 운전기사나 경호원을 하는 사람인 거잖아. 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어. 경호원이라 해봤자 한달에 몇백만원을 버는 게 전부일 텐데, 90억짜리 헤어샵을 사는 게 말이나 돼?” 소희는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서 망설였지만, 현태의 진짜 과거를 털어놓기로 했다.“허, 몇 년 동안 UFC의 챔피언 자리를 지킨 사람한테, 몇십억이 무슨 대수라고 그러세요? 혹시 꿈이라도 꾸는 거예요?” “UFC?!”심유인은 격투기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UFC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소희는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말했다.“모르면 인터넷에 찾아보시던가요.”“언니, 제가 언니의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 현태 오빠가 평범한 운전기사라고 생각해서 일부로 언니의 남자 친구도 부른 거잖아요.” “저희 부모님께는 남자 친구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은 언니의 남자 친구와 제 남자 친구를 비교하고 싶은 거잖아요, 안 그래요?” “이런 말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니가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말씀해 드릴게요. 제 남자 친구가 언니의 남자 친구보다 돈이 더 많을
현태는 설명하기 시작했다,“제가 그 헤어샵을 인수하긴 했지만, 사모님께 드릴 거거든요.” “앞으로는 사모님께서 그 샵의 사장님이십니다. 미용은 하고 싶을 때 하시면 됩니다.”심씨 가문에는 전속 미용사가 있었지만, 꽤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게다가 이지숙이 미용 기계를 사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어떤 시술을 두세 달이나 반년 정도 지나야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미용 기계에 먼지만 앉지 않겠는가?결국 이지숙은 헤어샵에 가서 시술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어샵에 가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시간을 예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가끔 일이 생겨서 시간을 놓치면, 다시 예약을 잡아야만 했다.이지숙은 진작에 헤어샵을 인수하려고 했는데, 줄곧 자신에게 적합한 헤어샵을 찾지 못했다.이지숙은 현태가 선택한 헤어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하지만 그 샵의 사장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적지 않은 명성을 떨치던 터라 온 가족이 외국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이지숙은 이미 그 사람과의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는 않았고, 모든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생각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었다.심유인은 ‘말도 안 돼’ 라는 말만 연신 해댔다.“말도 안 돼요! 임현태 씨는 그냥 운전기사잖아요. 대통령을 위해 운전한다고 해도 헤어샵을 살 수는 없을 거라고요!”그 헤어샵은 심유인도 아는 곳이었다.‘거긴 적어도 100억은 있어야 인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이지숙도 마음속에 품었던 호기심을 드러냈다.“이 샵의 사장이 계속 외국에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그 사람하고 연락한 거죠?” “아, 그 부분은 하 대표님께서 힘써주셨습니다. 마침 하 대표님께서 그 샵의 사장님과 구면이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하 대표님의 곁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장님께서 흔쾌히 샵을 양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지숙이 물었다.“하 대표가 이 일에 직접 나섰다고요?” “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순조롭
심유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했다.“고작 한 세트가 다예요?”“그래도 이해는 해드릴게요. 이게 능력 범위 내에서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제품이었을 테니까요. 800만원, 900만원을 저축하려면 몇 개월은 걸려야 하잖아요, 그렇죠?” 이지숙이 곧장 입을 열었다.“유인아, 그게 무슨 말이니? 선물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거란다.” “그래.”심근영도 현태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네 숙모를 위해 스킨케어 제품을 골랐다는 건, 충분히 마음을 썼다는 증거란다.”심유인이 입을 삐죽거리자, 현태가 웃으며 말했다.“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마음이 중요하다지만, 조금 쑥스러워서 다른 선물도 준비해 왔습니다.”심유인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그 선물도 화장품은 아니겠죠? 또 몇백만원짜리인 건가요?”“유인아!”이지숙은 다소 불쾌해졌지만, 성격이 좋은 현태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아닙니다, 이번 선물은 스킨케어 제품보다 조금 비싼 거거든요.”현태는 이 말을 끝으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심유인이 목을 길게 빼며 재촉했다.“숙모, 어서 열어보세요. 목이 빠질 것 같은데, 대체 뭐예요?” 이지숙은 손에 쥔 작은 상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꽤 가벼워. 아무래도 큰 선물은 아닌 것 같아.’“밥부터 먹고 열어보자꾸나.” “지금 열어보시죠. 심유인 씨도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하신 모양인데요.” 현태가 이지숙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심유인이 경멸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방금 그 스킨 케어 제품보다 조금 더 비싼 선물을 꺼내면, 내가 감탄한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허, 정말 웃겨.’‘저것도 고작 몇백 만원짜리 선물일 뿐일 거야.” “숙모, 선물한 사람도 저렇게 말하잖아요. 어서 열어보세요!”이지숙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선물 상자를 열자마자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스킨케어 제품이 아니라...’‘작은 증서?’상자를 또 한 번 확인한 이지숙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건.